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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추크'''(Zug)는 [[스위스]] [[추크주]]의 [[주도 (도시)|주도]]로서 대표적인 [[크립토밸리]]이다. '''주크'''라고도 한다. 추크의 위치는 동경 8°31′, 북위 47° 10′이며 주민들의 수는 약 3만 명 정도이다. [[이더리움]]을 창시한 [[비탈릭 부테린]]이 2014년 스위스 추크에 재단을 설립하면서 대표적인 크립토밸리로 성장했다. 2017년 한국 정부가 모든 [[ICO]]를 금지하자, [[아이콘]], [[에이치닥]] 등 한국 기업들이 스위스 추크에 기업을 설립하고 ICO를 진행하였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B6%94%ED%81%AC 추크]〉, 《위키백과》</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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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 ||
+ | 추크는 추크호의 북동 호안에 있고 중앙고원과 프레알프스산맥 사이에 위치하여 관광 휴양지인 동시에 금속, 섬유 등의 공업도 활발하다. 추크라는 이름은 낚시 용어에서 유래했다. 중세 시대에는 그물을 끌어올릴 권리를 말했고, 따라서 물고기를 잡을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키부르크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으며 1352년 구스위스동맹에 합류했다. 종교개혁 중에도 가톨릭 신앙을 지켰다. 리큐어(liqueur)가 제조되고 우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시내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시계탑과 16세기에 건립된 수도원 등 옛 건조물이 다수 남아 있다. 주민은 주로 독일어를 사용하며 로마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추크의 공식 언어는 스위스 표준 독일어이지만 주요 사용 언어는 알레만계 스위스 독일어 방언의 현지 변형이다. 추크는 [[취리히]]와의 근접성과 매력적인 조세정책 등에 힘입어 국내외 금융 및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규모 산업 및 상업지역이 들어섰으며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추크주는 영국 가디언지가 선정한 ‘세계 경제의 나침반’ 도시가 되었다. 추크에는 세 개의 [[박물관]]이 있다. 선사박물관은 후기 청동기시대 정착지 섬프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적들을 소장하고 있다. 오테르스윌/인젤아이엘렌, 리에드마트, 섬프 등의 선사시대 정착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일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7630&cid=40942&categoryId=34080 추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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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 및 기후== | ||
+ | 추크의 면적은 21.63k㎡이다. 이 지역 중 약 33.1%가 농업용으로 사용되고 37.9%는 산림이다. 나머지 토지 중 26.6%는 정착지이고 2.5%는 비생산적인 토지이다. 2004년 조사에서 총 353ha 또는 전체 면적의 약 16.3%가 건물로 덮여 있었는데, 이는 1982년에 비해 60ha가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시정촌의 레크리에이션 공간은 8ha 증가했으며 현재 전체 면적의 약 2.53%이다. 농경지 중 54ha는 과수원과 포도원으로 사용되고 651ha는 들판과 초원이며 39ha는 고산 목초지로 구성되어 있다. 1982년 이래로 농경지는 74ha 감소했다. 같은 기간 동안 산림 면적은 2ha 증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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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크의 연간 강우량은 평균 136.1일이며 평균 강수량은 1,224mm이다. 1년에 평균 5.5일이 있으며 가시성은 국제 안개의 정의인 1km 미만으로 감소한다. 가장 습한 달은 8월로 추크의 평균 강수량은 158mm이다. 이 달의 평균 강수일은 12.7일이다. 강수량이 가장 많은 달은 6월로 평균 13.7일이지만 강수량은 156mm에 불과하다. 일년 중 가장 건조한 달은 1월로 12.7일 동안 평균 강수량이 67mm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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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 ||
+ | ===선사시대=== | ||
+ |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의 증거는 기원전 14,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목민 사냥꾼과 채집인에게서 나온 구석기 시대 유물이 추크호수 북쪽 제방에서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또한 신석기 시대(기원전 5,500-2,200년)에 최초로 정착한 농부들의 시대부터 추크호수 기슭에서 말뚝 주거지로 알려진 40개 이상의 호숫가 정착지를 발견했다. 이 호숫가 [[마을]] 정착지의 정점은 기원전 3800년에서 2450년 사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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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 600년경에 알레만족 가문과 부족이 현재의 추크 지역으로 이주했다. Blickensdorf라는 이름과 '- ikon'으로 끝나는 지명은 이것이 최초의 알레만식 생활 공간임을 증명한다. 바르와 리쉬의 교회도 중세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에 대한 최초의 문서는 858년에 작성되었으며 독일인 왕 루트비히가 농장 차마 (캄)를 취리히 프라우뮌스터 수도원에 주었다고 언급한다. 이때, 오늘날의 추크 지역은 완전히 다른 수도원 지주와 세속 지주에게 속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합스부르크 왕가였으며, 1264년에 키부르크 권리를 상속받았고, 약 1400년까지 중앙 정치 권력을 유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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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도 중세 도시 건설 과정에서 추크의 정착지는 1200년 이후 어느 시점에서 읍성을 받았다. 도시 설립자는 아마도 키부르크 백작이었을 것이다. 서기 1240년에 처음 언급된 이 도시는 1242년에 ‘오피 둠’, 1255년에 ‘카스트럼’이라고 불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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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73년에는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1세가 키부르크의 상속인이자 에버하르트의 아내인 안나에게서 사들였다. 이 구매를 통해 추크 지역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제로 넘어갔고, 합스부르크 집행관 하에 놓였다. 오이서 암트(Aeusser Amt) 또는 외부 지구는 각각 자체 란츠게마인데가 있지만 단일 합스부르크 집행관이 통치하는 추크 주변의 마을과 마을로 구성되었다. 추크는 키부르크와 합스부르크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서, 그 다음에는 지역 시장으로, 그 후에는 상품(특히 소금과 철)을 히르첼 언덕을 넘어 루체른으로 운송하기 위한 무대 도시로서 중요했다. | ||
+ | ===스위스 연방=== | ||
+ | 1352년 6월 27일, 추크 마을과 오이서 암트(Aeusser Amt)가 [[스위스]] 연방에 가입했으며, 오이서 암트는 도시와 정확히 같은 조건으로 받아들여졌고, 외곽 지역의 경우 평소와 같이 종속 토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1352년 9월 추크는 다시 자신의 영주를 인정해야 했고, 1355년에는 동맹과의 연결을 끊어야 했다. 1364년경, 도시와 오이서 암트는 슈비츠의 남자들에 의해 리그를 위해 회복되었고, 이때부터 추크는 리그의 모든 활동에 정회원으로 참여했다. 1379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바츨라프는 추크는 모든 외부 관할권에서 면제되었고 1389년 합스부르크 왕가는 자신들의 주장을 포기하고, 연간 20 실버 마르크만 지불하도록 유보했으며, 1415년에 종료되었다. 1400년에 벤츠슬라우스는 모든 형사 관할권을 마을에만 부여했다. 1404년 오이서 암트는 추크의 깃발과 인장이 시골 지역 중 하나에 보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슈비츠가 이 주장을 지지했다. 이 문제는 중재에 의해 1412년에 마침내 해결되었으며 깃발은 마을에 보관되었다. 마침내 1415년에 그들의 란트담만을 선출할 권리는 연방에 의해 추크에게 주어졌고 독일 왕 지기스문트는 오이서 암트에 형사 관할권을 부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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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51년 우리, 슈비츠, 운터발덴 및 루체른의 4개 삼림주와 [[취리히]]의 동맹이 시작되었다. 추크라는 도시는 취리히 및 루체른 도시와 합스부르크 관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정복되어야 했다. 이것은 경제적인 이유보다 정치적인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루체른 시장은 스위스 중부에서 매우 중요했지만 취리히에도 크게 의존했다. 취리히는 1352년 6월에 연방군과 함께 추크를 포위했다. 추크는 항복했다. 1352년 6월 27일 취리히, 루체른, 추크, 우리, 슈비츠, 운터발덴이 동맹을 맺었다. 취리히에서는 이 ‘추커분트’(추크 동맹)를 편의 동맹으로 보았다. 추크라는 도시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고 추크는 합스부르크로 남았다. 같은 해, 추크 동맹은 모든 당사자에 의해 무효로 선언되었다. 그 후 슈비츠 지배의 기간이 따랐다. 점차적으로 추크는 주권과 연방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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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시에 추크는 영지(발히빌, 캄, 강골프스빌, 휘넨베르크 및 슈타인하우젠, 현재 알그가우주의 일부인 오버뤼티) 형태로 여러 농촌 지역을 획득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추크는 그 자체로 연방이 되었으며, 그 자체로 도시와 해당 지역, 그리고 세 개의 외부(‘자유’) 시정촌인 애게리, 멘징겐(노이하임 포함)과 바르가 있다. 이 문제가 있는 이원론은 1798년까지, 즉 구 연방이 끝날 때까지, 즉 추크주의 정치 구조를 지배했다. 이 축소된 연맹의 통합 요소는 무엇보다도 시골 지방 자치 단체와 40명으로 구성된 시의회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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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85년에 추크는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3세에 대항하여 슈바벤 도시 동맹에 합류했고, 젬파흐 전투의 승리뿐만 아니라 남부 동맹의 다양한 아르고비아(1415) 및 투르고비안(1460) 정복에 참여했으며, 나중에는 이탈리아의 정복에도 참여했다. 이미 도솔라 계곡 점령에 참여했다. 1379년(발히빌)과 1477년(캄) 사이에 추크는 주로 북쪽과 서쪽에 있는 자신의 이웃에 있는 여러 지역을 획득했으며, 이 지역은 1798년까지 도시 단독으로 종속 토지로 통치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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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8년에 더 큰 성벽의 건설이 시작되어, 도시 면적이 6배 늘어났다. 같은 해에 후기 고딕 양식의 성 오스왈드 교회가 건축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성벽의 건축 주인은 바바리언 스바비아 출신의 한스 펠터였다. 성벽의 평면도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대칭 평면을 나타낸다. 이는 그 당시에는 매우 드문 것이었다. 추크의 작은 마을에서 구현된 전반적인 도시 계획은 당시에 현대적이었다. | ||
+ | ===근대=== | ||
+ | 종교개혁의 혼란기 동안 추크는 스위스 중부의 가톨릭 편에 머물렀고 옛 신앙을 유지했다. 전쟁 중인 종교 동맹은 카펠 암 알비스(Kappel am Albis, 1531)와 멘징엔의 구벨(Gubel)에서 싸웠다. 추크는 스위스 중부의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종파적인 [[국경]] 도시가 되었다. 종교개혁 기 동안 추크는 오래된 신앙을 고수했으며, 1529년에는 기독교 연합의 회원이 되었다. 1586년에는 황금 동맹의 회원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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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8년까지의 기간은 내부 정치적 경쟁과 격동으로 특징지어졌다. 프랑스군의 침공은 구질서의 종말을 의미했고, 헬베티아 공화국의 질서와 함께 급진적인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추크는 발트슈태텐주의 일부가 되었고, 잠시나마 주의 수도가 되었다. 1848년 연방제와 중앙집권제, 연방과 중앙정부, 보수와 진보-급진주의 사이에서 50년간의 투쟁 끝에 오늘날의 스위스 연방 정부가 탄생했다. 추크는 11개의 지자체로 구성된 현재의 주 구조를 받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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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까지 추크는 농경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제 산업화는 1834년 운터애게리(Unterägeri)에 면화 공장을 세운 기업가 볼프강 헹켈러와 함께 시작되었다. 노이애게리와 바르의 두 회사가 그 뒤를 이었다. 1866년 미국의 조지 햄 페이지(George Ham Page)는 캄(Cham)에 유럽 최초의 연유 공장을 세웠고, 나중에 네슬레와 합병했다. 추크의 산업은 1896년에 설립되어 현재 도시바가 소유한 Landis+Gyr라는 회사가 지배했다. 1864년 스위스 철도망에 대한 연결이 중요했고, 20세기 초에 전기 트램으로 산과 계곡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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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기 후반에 역동적인 확장이 이루어졌고, 추크는 취리히와의 근접성과 매력적인 세금 정책의 도움으로 국내 및 국제 금융 및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동시에 대규모 산업과 상업지역이 발전했다. 고용이 급격히 증가하자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고, 건물 붐이 급증했다. 주도 추크는 재정적으로 강한 주의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오늘날 이 도시는 영국 가디언지가 쓴 것처럼 ‘세계 경제의 나침반’이 되었다. | ||
+ | ===현대=== | ||
+ | 추크는 세금이 낮은 지역으로 여러 다국적 기업의 본부이다. 20,000명 이상의 응답자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2019년 Expat 도시 랭킹은 조사에 포함된 모든 도시 중에서 추크의 삶의 질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농산물은 키르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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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9월 27일, 분노하고 불안정한 총잡이 프리드리히 라이바허(Friedrich Leibacher)는 추크 주의회에서 자신을 포함하여 15명을 사살했다. 이 사건은 추크 대학살로 알려지게 되었다.<ref>〈[https://yoda.wiki/wiki/Zug 저그]〉, 《요다위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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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 ||
+ | 추크는 세율이 낮아 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지멘스빌딩테크놀로지와 노드스트림AG 등 글로벌 기업들에게 인기 있다. 추크는 또한 [[이더리움]]의 공동창업자인 [[미하이 알리시]]에 의해 크립토밸리(Crypto Valley)라고 불리기도 했다. [[암호화폐]] 관련 기업이 이 도시에 많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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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7월, 추크는 도시요금을 디지털 화폐로 받기 시작했다. 시의회는 추크를 미래 기술로 혁신하는 지역으로 바꾸기 위해 200스위스프랑까지 소액결제 수단에 [[비트코인]]을 추가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934986&cid=66751&categoryId=66771 추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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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 | ||
+ | * S반 - S반은 독일어권을 사용하는 국가들의 정거장을 다니는 광역전철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다니며 이 열차로 추크 도시철도를 지날 수가 있다. | ||
+ | * 추크 국제공항 -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며 직항 노선은 호놀룰루, 괌, 마셜제도 마주로, 콰잘렌섬으로 총 4개 목적지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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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관== | ||
[[파일:추크 시계탑.jpg|300픽셀|썸네일|추크 시계탑(Zug clocktower)]] | [[파일:추크 시계탑.jpg|300픽셀|썸네일|추크 시계탑(Zug clocktower)]] | ||
− | + | 추크는 추거베르크산과 발치빌러베르크 오베랄미크산, 회로넨강, 시흘강 등 여러 산과 강, 호수로 둘러싸여 있다. 촐러 자연보호구역도 추크 호수 근처에 있다. 호숫가를 둘러싼 산책로가 유명하다. 이곳에서 리기와 필라투스의 경치는 물론 베르네즈오버란트의 눈 덮인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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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13세기 키부르크 가문이 만든 시계탑과 1485년 추크의 문장으로 사용된 노섬브리아 왕성 오스발트의 교구교회다. 52m 높이의 시계탑은 구시가지 진입로에 벽의 일부로 지어졌고, 이후 증축을 통해 현재의 시계탑으로 바뀌었다. 산허리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카푸친 수녀원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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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내에는 고딕 양식의 성당들이 있다. 휘넨베르크 근처에 있는 성 볼프강 성당, 성 오스발트 성당, 구시가지에 있는 후빌러 탑, 추를라우벤호프, 시 외곽에 있는 추를라우벤 가문의 봉건 사유지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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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크에는 세 개의 박물관이 있다. 선사박물관은 후기 청동기시대 정착지 섬프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적들을 소장하고 있다. 오테르스윌/인젤아이엘렌, 리에드마트, 섬프 등의 선사시대 정착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일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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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크성(城)은 추크시와 주의 문화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추크성은 1300년경 합스부르크가 소유하고 있었으나 휘넨베르크가 최종적인 개인 소유자였다.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개조를 거쳐 현재는 박물관이 되었다. 그외 클림트, 에곤쉴레 등 현대 예술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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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크에 있는 카지노 [[극장]], 추크부르그바켈러는 촐레할레 문화센터와 함께 가장 유명한 시설이다. 추크는 체리로도 유명하다. 유명한 체리 리큐르 케이크와 체리주 등 많은 특산품 요리가 있다. | ||
===추크 시계탑=== | ===추크 시계탑=== | ||
13세기에 세운 시계탑이며 추크 구시가지의 입구에 있는 콜린 광장에 있다. 이 추크 시계탑은 추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이는 52m이며 한스 펠더라는 건축가가 시계탑의 층의 높이를 높였고 지붕 형태도 갖추면서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1547년에는 더 큰 시계를 달았는데 그래서 몇 세기 동안 시계탑은 도시에서 여러가지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도시 출입구, 감옥, 시계, 화제 감시대 등 있다. | 13세기에 세운 시계탑이며 추크 구시가지의 입구에 있는 콜린 광장에 있다. 이 추크 시계탑은 추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이는 52m이며 한스 펠더라는 건축가가 시계탑의 층의 높이를 높였고 지붕 형태도 갖추면서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1547년에는 더 큰 시계를 달았는데 그래서 몇 세기 동안 시계탑은 도시에서 여러가지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도시 출입구, 감옥, 시계, 화제 감시대 등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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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밸리== | ==크립토밸리== | ||
− | 2019년 7월부터 스위스의 추크시는 세계 최초로 공공요금을 비트코인으로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는데 블록체인 관련 협회가 공공요금을 비토코인으로 내고 싶다는 요구가 있어서가 아니라 한 개인이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납부할 것을 요청하자 겨우 2주 만에 이를 수용했다.<ref>여정현 정책연구4만건, 〈[https://blog.naver.com/pcparts/221388888456 스위스의 제4차 산업혁명, 추크와 크립토밸리]〉, | + | 2019년 7월부터 스위스의 추크시는 세계 최초로 공공요금을 비트코인으로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는데 블록체인 관련 협회가 공공요금을 비토코인으로 내고 싶다는 요구가 있어서가 아니라 한 개인이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납부할 것을 요청하자 겨우 2주 만에 이를 수용했다.<ref>여정현 정책연구4만건, 〈[https://blog.naver.com/pcparts/221388888456 스위스의 제4차 산업혁명, 추크와 크립토밸리]〉, 《네이버 블로그》, 2018-10-31</ref> 스위스는 블록체인 기술에 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는데 이들은 다른 국가에서 ICO를 금지하거나 규제를 강화하였을 때도 스위스는 규제를 강화하지도 않았고 각 국의 엔지니어들의 수용을 허락하였다. 그렇기에 스위스의 블록체인 기술은 많이 향상되어 있는데 한국보다 약 2년 정도 앞서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의 이러한 행보로 인해 추크는 인구 3만 명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도시지만 블록체인 기업만 4만 개이며 새로 추가된 일자리도 3000개 정도라고 한다. 스위스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추크에서는 수백 개의 연구실과 인큐베이터, 엑셀러레이터, 세금전문가 등 다방면의 인프라가 구축되었다.<ref>스위스경영연구소, 〈[https://blog.naver.com/yoonsung1108/221360745610 '인구3만'스위스 추크...암호화폐 기업만'4만개']〉, 《네이버 블로그》, 2018-09-17</ref> 또한 2018년에 추크시는 스위스 정부의 협력을 받아 투표 시스템과 주민 신분증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투표 프로젝트를 실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고 시행을 하였다. 2018년 요한 슈나이더 암만 스위스 경제부 장관은 앞으로 이러한 것들을 많이 발전 시켜 크립토벨리가 아니라 크립토네이션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하였다.<ref>cointoday, 〈[http://cointoday.co.kr/all-news/15603/ 스위스 추크, 이더리움 기반 앱 투표 프로젝트 시행]〉, 《코인투데이》, 2018-06-12</ref> |
− | </ref> 스위스는 블록체인 기술에 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는데 이들은 다른 국가에서 ICO를 금지하거나 규제를 강화하였을 때도 스위스는 규제를 강화하지도 않았고 각 국의 엔지니어들의 수용을 허락하였다. 그렇기에 스위스의 블록체인 기술은 많이 향상되어 있는데 한국보다 약 2년 정도 앞서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의 이러한 행보로 인해 추크는 인구 3만 명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도시지만 블록체인 기업만 4만 개이며 새로 추가된 일자리도 3000개 정도라고 한다. 스위스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추크에서는 수백 개의 연구실과 인큐베이터, 엑셀러레이터, 세금전문가 등 다방면의 인프라가 구축되었다.<ref>스위스경영연구소, 〈[https://blog.naver.com/yoonsung1108/221360745610 '인구3만'스위스 추크...암호화폐 기업만'4만개']〉, | ||
− | </ref> 또한 2018년에 추크시는 스위스 정부의 협력을 받아 투표 시스템과 주민 신분증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투표 프로젝트를 실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고 시행을 하였다. 2018년 요한 슈나이더 암만 스위스 경제부 장관은 앞으로 이러한 것들을 많이 발전 시켜 크립토벨리가 아니라 크립토네이션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하였다.<ref>cointoday, 〈[http://cointoday.co.kr/all-news/15603/ 스위스 추크, 이더리움 기반 앱 투표 프로젝트 시행]〉, | ||
== ICO == | == ICO == | ||
− | + | ===이더리움=== | |
+ | [[이더리움]](Ethereum)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 계약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분산 컴퓨팅 플랫폼이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만든 가장 대표적인 알트코인으로서, '비트코인 2.0'이라고도 부른다. 이더리움이 제공하는 이더(Ether)는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의 일종으로 거래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더리움'은 플랫폼이고, '이더'가 암호화폐이지만, 일반적으로 양자를 구별하지 않고 '이더리움'을 암호화폐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더리움의 화폐 단위는 ETH이다. 2015년 7월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 C++과 고(Go) 언어로 개발했다. 이더해시(Ethash) 알고리즘 기반의 [[작업증명]](PoW) 방식으로 채굴 중이지만, 앞으로 작업증명 방식을 벗어나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추크 시는 이더리움 기반 앱 투표 프로젝트르 시행하였으며 이더리움 기반의 응용 프로그램 '유포트(uPort)'를 출시하여 주민들의 신원 정보를 디지털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ref>cointoday, 〈[http://cointoday.co.kr/all-news/15603/ 스위스 추크, 이더리움 기반 앱 투표 프로젝트 시행]〉, 《코인투데이》, 2018-06-12</ref> {{자세히|이더리움}} | ||
+ | ===보스코인=== | ||
+ | [[보스코인]](BOScoin)은 한국 최초로 ICO를 진행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이다. 보스(BOS)는 블록체인 운영체제(Blockchain Operating System)의 약자이다. 보스코인은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플랫폼을 지향한다. 보스코인 기반의 공공금융을 통해 투자자금을 모집할 수 있고, 지불, 결제, 송금, 커머스, 여행, 모빌리티 등 다양한 서비스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보스코인은 의회 네트워크에 기반한 투표를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보스코인은 리플에서 하드포크한 스텔라루멘을 기반을 만들었으며, 기존의 연합 비잔틴 동의 알고리즘을 변형한 수정 연합 비잔틴 동의 합의 알고리즘을 적용하였다. {{자세히|보스코인}} | ||
=== 에이치닥 === | === 에이치닥 === | ||
+ | [[에이치닥]]은 현대BS&C(주)가 개발한 사물인터넷 플랫폼 암호화폐이다. 스위스 추크에서 ICO를 진행하여 약 3,000억원에 이르는 투자자금을 확보했다. 에이치닥의 특징은 블록체인 기술을 사물인터넷 분야에 점목시킨 것이 특징이며 퍼블릭 블록체인 메인넷에 다수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사이드 체인 형태로 복수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또한 에이치닥은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고 블록체인에 연결하기 위해 균형 작업증명이라는 새로운 합의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러한 특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암호화폐 대비 최소 20배에서 최대 250배 정도의 빠른 속도로 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 {{자세히|에이치닥}} | ||
* 2017년 3월, 5월, 7월 한국의 [[에이치닥]](Hdac)이 세 차례의 [[프리세일]]에서 1만 4,000 비트코인의 투자 자금 확보 | * 2017년 3월, 5월, 7월 한국의 [[에이치닥]](Hdac)이 세 차례의 [[프리세일]]에서 1만 4,000 비트코인의 투자 자금 확보 | ||
* 2017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TGE]](=Token Generation Event)로 1,200 비트코인의 투자 자금을 추가로 확보 | * 2017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TGE]](=Token Generation Event)로 1,200 비트코인의 투자 자금을 추가로 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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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콘]]은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암호화폐이다. 아이콘은 [[인터체인]] 알로리즘을 사용한 대표적인 암호화폐이며 인터체인을 사용하면 A라는 암호화폐로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인터체인으로 연결된 B라는 다른 암호화폐로도 구매할 수 있다. 인터체인에 속하는 유사한 암호화폐로 아이온(AION)이 있다. 아이콘의 화폐 단위는 ICX이다. 아이콘 네트워크는 국가 간 송금은 물론 여러 나라의 투자자들이 애플, 구글, 삼성 주식 등을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다. 아이콘은 세계 각국에서 형성된 블록체인 커뮤니티를 스마트 계약을 통해 탈중앙화 방식으로 연결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블록체인 사용자들과 커뮤니티를 연결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여 아이콘코인을 사용한다. {{자세히|아이콘}} | ||
* 2017년 09월 한국의 [[아이콘]](ICON)이 [[ICO]]를 진행하여 이더리움 15만개(약 450억원)의 투자 자금 확보 | * 2017년 09월 한국의 [[아이콘]](ICON)이 [[ICO]]를 진행하여 이더리움 15만개(약 450억원)의 투자 자금 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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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https://ko.wikipedia.org/wiki/%EC%B6%94%ED%81%AC 추크]〉, 《위키백과》 |
− | * | + | * 〈[https://yoda.wiki/wiki/Zug 저그]〉, 《요다위키》 |
− | * | +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7630&cid=40942&categoryId=34080 추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 * 스위스경영연구소, 〈[https://blog.naver.com/yoonsung1108/221360745610 '인구3만'스위스 추크...암호화폐 기업만'4만개']〉, | +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934986&cid=66751&categoryId=66771 추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 * | + | * 한국어문기자협회,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74564&cid=51778&categoryId=51778 추크]〉, 《세계인문지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 * cointoday, 〈[http://cointoday.co.kr/all-news/15603/ 스위스 추크, 이더리움 기반 앱 투표 프로젝트 시행]〉, 《코인투데이》, 2018-06-12 | ||
+ | * 스위스경영연구소, 〈[https://blog.naver.com/yoonsung1108/221360745610 '인구3만'스위스 추크...암호화폐 기업만'4만개']〉, 《네이버 블로그》, 2018-09-17 | ||
+ | * 여정현, 〈[https://blog.naver.com/pcparts/221388888456 스위스의 제4차 산업혁명, 추크와 크립토밸리]〉, 《네이버 블로그》, 2018-10-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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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크(Zug)는 스위스 추크주의 주도로서 대표적인 크립토밸리이다. 주크라고도 한다. 추크의 위치는 동경 8°31′, 북위 47° 10′이며 주민들의 수는 약 3만 명 정도이다. 이더리움을 창시한 비탈릭 부테린이 2014년 스위스 추크에 재단을 설립하면서 대표적인 크립토밸리로 성장했다. 2017년 한국 정부가 모든 ICO를 금지하자, 아이콘, 에이치닥 등 한국 기업들이 스위스 추크에 기업을 설립하고 ICO를 진행하였다.[1]
목차
개요[편집]
추크는 추크호의 북동 호안에 있고 중앙고원과 프레알프스산맥 사이에 위치하여 관광 휴양지인 동시에 금속, 섬유 등의 공업도 활발하다. 추크라는 이름은 낚시 용어에서 유래했다. 중세 시대에는 그물을 끌어올릴 권리를 말했고, 따라서 물고기를 잡을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키부르크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으며 1352년 구스위스동맹에 합류했다. 종교개혁 중에도 가톨릭 신앙을 지켰다. 리큐어(liqueur)가 제조되고 우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시내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시계탑과 16세기에 건립된 수도원 등 옛 건조물이 다수 남아 있다. 주민은 주로 독일어를 사용하며 로마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추크의 공식 언어는 스위스 표준 독일어이지만 주요 사용 언어는 알레만계 스위스 독일어 방언의 현지 변형이다. 추크는 취리히와의 근접성과 매력적인 조세정책 등에 힘입어 국내외 금융 및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규모 산업 및 상업지역이 들어섰으며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추크주는 영국 가디언지가 선정한 ‘세계 경제의 나침반’ 도시가 되었다. 추크에는 세 개의 박물관이 있다. 선사박물관은 후기 청동기시대 정착지 섬프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적들을 소장하고 있다. 오테르스윌/인젤아이엘렌, 리에드마트, 섬프 등의 선사시대 정착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일부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추크의 면적은 21.63k㎡이다. 이 지역 중 약 33.1%가 농업용으로 사용되고 37.9%는 산림이다. 나머지 토지 중 26.6%는 정착지이고 2.5%는 비생산적인 토지이다. 2004년 조사에서 총 353ha 또는 전체 면적의 약 16.3%가 건물로 덮여 있었는데, 이는 1982년에 비해 60ha가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시정촌의 레크리에이션 공간은 8ha 증가했으며 현재 전체 면적의 약 2.53%이다. 농경지 중 54ha는 과수원과 포도원으로 사용되고 651ha는 들판과 초원이며 39ha는 고산 목초지로 구성되어 있다. 1982년 이래로 농경지는 74ha 감소했다. 같은 기간 동안 산림 면적은 2ha 증가했다.
추크의 연간 강우량은 평균 136.1일이며 평균 강수량은 1,224mm이다. 1년에 평균 5.5일이 있으며 가시성은 국제 안개의 정의인 1km 미만으로 감소한다. 가장 습한 달은 8월로 추크의 평균 강수량은 158mm이다. 이 달의 평균 강수일은 12.7일이다. 강수량이 가장 많은 달은 6월로 평균 13.7일이지만 강수량은 156mm에 불과하다. 일년 중 가장 건조한 달은 1월로 12.7일 동안 평균 강수량이 67mm이다.
역사[편집]
선사시대[편집]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의 증거는 기원전 14,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목민 사냥꾼과 채집인에게서 나온 구석기 시대 유물이 추크호수 북쪽 제방에서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또한 신석기 시대(기원전 5,500-2,200년)에 최초로 정착한 농부들의 시대부터 추크호수 기슭에서 말뚝 주거지로 알려진 40개 이상의 호숫가 정착지를 발견했다. 이 호숫가 마을 정착지의 정점은 기원전 3800년에서 2450년 사이였다.
AD 600년경에 알레만족 가문과 부족이 현재의 추크 지역으로 이주했다. Blickensdorf라는 이름과 '- ikon'으로 끝나는 지명은 이것이 최초의 알레만식 생활 공간임을 증명한다. 바르와 리쉬의 교회도 중세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에 대한 최초의 문서는 858년에 작성되었으며 독일인 왕 루트비히가 농장 차마 (캄)를 취리히 프라우뮌스터 수도원에 주었다고 언급한다. 이때, 오늘날의 추크 지역은 완전히 다른 수도원 지주와 세속 지주에게 속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합스부르크 왕가였으며, 1264년에 키부르크 권리를 상속받았고, 약 1400년까지 중앙 정치 권력을 유지했다.
고도 중세 도시 건설 과정에서 추크의 정착지는 1200년 이후 어느 시점에서 읍성을 받았다. 도시 설립자는 아마도 키부르크 백작이었을 것이다. 서기 1240년에 처음 언급된 이 도시는 1242년에 ‘오피 둠’, 1255년에 ‘카스트럼’이라고 불렸다.
1273년에는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1세가 키부르크의 상속인이자 에버하르트의 아내인 안나에게서 사들였다. 이 구매를 통해 추크 지역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제로 넘어갔고, 합스부르크 집행관 하에 놓였다. 오이서 암트(Aeusser Amt) 또는 외부 지구는 각각 자체 란츠게마인데가 있지만 단일 합스부르크 집행관이 통치하는 추크 주변의 마을과 마을로 구성되었다. 추크는 키부르크와 합스부르크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서, 그 다음에는 지역 시장으로, 그 후에는 상품(특히 소금과 철)을 히르첼 언덕을 넘어 루체른으로 운송하기 위한 무대 도시로서 중요했다.
스위스 연방[편집]
1352년 6월 27일, 추크 마을과 오이서 암트(Aeusser Amt)가 스위스 연방에 가입했으며, 오이서 암트는 도시와 정확히 같은 조건으로 받아들여졌고, 외곽 지역의 경우 평소와 같이 종속 토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1352년 9월 추크는 다시 자신의 영주를 인정해야 했고, 1355년에는 동맹과의 연결을 끊어야 했다. 1364년경, 도시와 오이서 암트는 슈비츠의 남자들에 의해 리그를 위해 회복되었고, 이때부터 추크는 리그의 모든 활동에 정회원으로 참여했다. 1379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바츨라프는 추크는 모든 외부 관할권에서 면제되었고 1389년 합스부르크 왕가는 자신들의 주장을 포기하고, 연간 20 실버 마르크만 지불하도록 유보했으며, 1415년에 종료되었다. 1400년에 벤츠슬라우스는 모든 형사 관할권을 마을에만 부여했다. 1404년 오이서 암트는 추크의 깃발과 인장이 시골 지역 중 하나에 보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슈비츠가 이 주장을 지지했다. 이 문제는 중재에 의해 1412년에 마침내 해결되었으며 깃발은 마을에 보관되었다. 마침내 1415년에 그들의 란트담만을 선출할 권리는 연방에 의해 추크에게 주어졌고 독일 왕 지기스문트는 오이서 암트에 형사 관할권을 부여했다.
1351년 우리, 슈비츠, 운터발덴 및 루체른의 4개 삼림주와 취리히의 동맹이 시작되었다. 추크라는 도시는 취리히 및 루체른 도시와 합스부르크 관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정복되어야 했다. 이것은 경제적인 이유보다 정치적인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루체른 시장은 스위스 중부에서 매우 중요했지만 취리히에도 크게 의존했다. 취리히는 1352년 6월에 연방군과 함께 추크를 포위했다. 추크는 항복했다. 1352년 6월 27일 취리히, 루체른, 추크, 우리, 슈비츠, 운터발덴이 동맹을 맺었다. 취리히에서는 이 ‘추커분트’(추크 동맹)를 편의 동맹으로 보았다. 추크라는 도시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고 추크는 합스부르크로 남았다. 같은 해, 추크 동맹은 모든 당사자에 의해 무효로 선언되었다. 그 후 슈비츠 지배의 기간이 따랐다. 점차적으로 추크는 주권과 연방이 되었다.
동시에 추크는 영지(발히빌, 캄, 강골프스빌, 휘넨베르크 및 슈타인하우젠, 현재 알그가우주의 일부인 오버뤼티) 형태로 여러 농촌 지역을 획득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추크는 그 자체로 연방이 되었으며, 그 자체로 도시와 해당 지역, 그리고 세 개의 외부(‘자유’) 시정촌인 애게리, 멘징겐(노이하임 포함)과 바르가 있다. 이 문제가 있는 이원론은 1798년까지, 즉 구 연방이 끝날 때까지, 즉 추크주의 정치 구조를 지배했다. 이 축소된 연맹의 통합 요소는 무엇보다도 시골 지방 자치 단체와 40명으로 구성된 시의회였다.
1385년에 추크는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3세에 대항하여 슈바벤 도시 동맹에 합류했고, 젬파흐 전투의 승리뿐만 아니라 남부 동맹의 다양한 아르고비아(1415) 및 투르고비안(1460) 정복에 참여했으며, 나중에는 이탈리아의 정복에도 참여했다. 이미 도솔라 계곡 점령에 참여했다. 1379년(발히빌)과 1477년(캄) 사이에 추크는 주로 북쪽과 서쪽에 있는 자신의 이웃에 있는 여러 지역을 획득했으며, 이 지역은 1798년까지 도시 단독으로 종속 토지로 통치되었다.
1478년에 더 큰 성벽의 건설이 시작되어, 도시 면적이 6배 늘어났다. 같은 해에 후기 고딕 양식의 성 오스왈드 교회가 건축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성벽의 건축 주인은 바바리언 스바비아 출신의 한스 펠터였다. 성벽의 평면도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대칭 평면을 나타낸다. 이는 그 당시에는 매우 드문 것이었다. 추크의 작은 마을에서 구현된 전반적인 도시 계획은 당시에 현대적이었다.
근대[편집]
종교개혁의 혼란기 동안 추크는 스위스 중부의 가톨릭 편에 머물렀고 옛 신앙을 유지했다. 전쟁 중인 종교 동맹은 카펠 암 알비스(Kappel am Albis, 1531)와 멘징엔의 구벨(Gubel)에서 싸웠다. 추크는 스위스 중부의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종파적인 국경 도시가 되었다. 종교개혁 기 동안 추크는 오래된 신앙을 고수했으며, 1529년에는 기독교 연합의 회원이 되었다. 1586년에는 황금 동맹의 회원이 되었다.
1798년까지의 기간은 내부 정치적 경쟁과 격동으로 특징지어졌다. 프랑스군의 침공은 구질서의 종말을 의미했고, 헬베티아 공화국의 질서와 함께 급진적인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추크는 발트슈태텐주의 일부가 되었고, 잠시나마 주의 수도가 되었다. 1848년 연방제와 중앙집권제, 연방과 중앙정부, 보수와 진보-급진주의 사이에서 50년간의 투쟁 끝에 오늘날의 스위스 연방 정부가 탄생했다. 추크는 11개의 지자체로 구성된 현재의 주 구조를 받았다.
19세기까지 추크는 농경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제 산업화는 1834년 운터애게리(Unterägeri)에 면화 공장을 세운 기업가 볼프강 헹켈러와 함께 시작되었다. 노이애게리와 바르의 두 회사가 그 뒤를 이었다. 1866년 미국의 조지 햄 페이지(George Ham Page)는 캄(Cham)에 유럽 최초의 연유 공장을 세웠고, 나중에 네슬레와 합병했다. 추크의 산업은 1896년에 설립되어 현재 도시바가 소유한 Landis+Gyr라는 회사가 지배했다. 1864년 스위스 철도망에 대한 연결이 중요했고, 20세기 초에 전기 트램으로 산과 계곡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했다.
세기 후반에 역동적인 확장이 이루어졌고, 추크는 취리히와의 근접성과 매력적인 세금 정책의 도움으로 국내 및 국제 금융 및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동시에 대규모 산업과 상업지역이 발전했다. 고용이 급격히 증가하자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고, 건물 붐이 급증했다. 주도 추크는 재정적으로 강한 주의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오늘날 이 도시는 영국 가디언지가 쓴 것처럼 ‘세계 경제의 나침반’이 되었다.
현대[편집]
추크는 세금이 낮은 지역으로 여러 다국적 기업의 본부이다. 20,000명 이상의 응답자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2019년 Expat 도시 랭킹은 조사에 포함된 모든 도시 중에서 추크의 삶의 질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농산물은 키르슈이다.
2001년 9월 27일, 분노하고 불안정한 총잡이 프리드리히 라이바허(Friedrich Leibacher)는 추크 주의회에서 자신을 포함하여 15명을 사살했다. 이 사건은 추크 대학살로 알려지게 되었다.[3]
경제[편집]
추크는 세율이 낮아 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지멘스빌딩테크놀로지와 노드스트림AG 등 글로벌 기업들에게 인기 있다. 추크는 또한 이더리움의 공동창업자인 미하이 알리시에 의해 크립토밸리(Crypto Valley)라고 불리기도 했다. 암호화폐 관련 기업이 이 도시에 많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추크는 도시요금을 디지털 화폐로 받기 시작했다. 시의회는 추크를 미래 기술로 혁신하는 지역으로 바꾸기 위해 200스위스프랑까지 소액결제 수단에 비트코인을 추가했다.[4]
교통[편집]
- S반 - S반은 독일어권을 사용하는 국가들의 정거장을 다니는 광역전철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다니며 이 열차로 추크 도시철도를 지날 수가 있다.
- 추크 국제공항 -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며 직항 노선은 호놀룰루, 괌, 마셜제도 마주로, 콰잘렌섬으로 총 4개 목적지가 있다.
경관[편집]
추크는 추거베르크산과 발치빌러베르크 오베랄미크산, 회로넨강, 시흘강 등 여러 산과 강, 호수로 둘러싸여 있다. 촐러 자연보호구역도 추크 호수 근처에 있다. 호숫가를 둘러싼 산책로가 유명하다. 이곳에서 리기와 필라투스의 경치는 물론 베르네즈오버란트의 눈 덮인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
추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13세기 키부르크 가문이 만든 시계탑과 1485년 추크의 문장으로 사용된 노섬브리아 왕성 오스발트의 교구교회다. 52m 높이의 시계탑은 구시가지 진입로에 벽의 일부로 지어졌고, 이후 증축을 통해 현재의 시계탑으로 바뀌었다. 산허리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카푸친 수녀원이 있다.
마을 내에는 고딕 양식의 성당들이 있다. 휘넨베르크 근처에 있는 성 볼프강 성당, 성 오스발트 성당, 구시가지에 있는 후빌러 탑, 추를라우벤호프, 시 외곽에 있는 추를라우벤 가문의 봉건 사유지 등이 있다.
추크에는 세 개의 박물관이 있다. 선사박물관은 후기 청동기시대 정착지 섬프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적들을 소장하고 있다. 오테르스윌/인젤아이엘렌, 리에드마트, 섬프 등의 선사시대 정착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일부다.
추크성(城)은 추크시와 주의 문화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추크성은 1300년경 합스부르크가 소유하고 있었으나 휘넨베르크가 최종적인 개인 소유자였다.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개조를 거쳐 현재는 박물관이 되었다. 그외 클림트, 에곤쉴레 등 현대 예술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 있다.
추크에 있는 카지노 극장, 추크부르그바켈러는 촐레할레 문화센터와 함께 가장 유명한 시설이다. 추크는 체리로도 유명하다. 유명한 체리 리큐르 케이크와 체리주 등 많은 특산품 요리가 있다.
추크 시계탑[편집]
13세기에 세운 시계탑이며 추크 구시가지의 입구에 있는 콜린 광장에 있다. 이 추크 시계탑은 추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이는 52m이며 한스 펠더라는 건축가가 시계탑의 층의 높이를 높였고 지붕 형태도 갖추면서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1547년에는 더 큰 시계를 달았는데 그래서 몇 세기 동안 시계탑은 도시에서 여러가지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도시 출입구, 감옥, 시계, 화제 감시대 등 있다.
크립토밸리[편집]
2019년 7월부터 스위스의 추크시는 세계 최초로 공공요금을 비트코인으로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는데 블록체인 관련 협회가 공공요금을 비토코인으로 내고 싶다는 요구가 있어서가 아니라 한 개인이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납부할 것을 요청하자 겨우 2주 만에 이를 수용했다.[5] 스위스는 블록체인 기술에 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는데 이들은 다른 국가에서 ICO를 금지하거나 규제를 강화하였을 때도 스위스는 규제를 강화하지도 않았고 각 국의 엔지니어들의 수용을 허락하였다. 그렇기에 스위스의 블록체인 기술은 많이 향상되어 있는데 한국보다 약 2년 정도 앞서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의 이러한 행보로 인해 추크는 인구 3만 명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도시지만 블록체인 기업만 4만 개이며 새로 추가된 일자리도 3000개 정도라고 한다. 스위스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추크에서는 수백 개의 연구실과 인큐베이터, 엑셀러레이터, 세금전문가 등 다방면의 인프라가 구축되었다.[6] 또한 2018년에 추크시는 스위스 정부의 협력을 받아 투표 시스템과 주민 신분증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투표 프로젝트를 실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고 시행을 하였다. 2018년 요한 슈나이더 암만 스위스 경제부 장관은 앞으로 이러한 것들을 많이 발전 시켜 크립토벨리가 아니라 크립토네이션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하였다.[7]
ICO[편집]
이더리움[편집]
이더리움(Ethereum)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 계약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분산 컴퓨팅 플랫폼이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만든 가장 대표적인 알트코인으로서, '비트코인 2.0'이라고도 부른다. 이더리움이 제공하는 이더(Ether)는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의 일종으로 거래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더리움'은 플랫폼이고, '이더'가 암호화폐이지만, 일반적으로 양자를 구별하지 않고 '이더리움'을 암호화폐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더리움의 화폐 단위는 ETH이다. 2015년 7월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 C++과 고(Go) 언어로 개발했다. 이더해시(Ethash) 알고리즘 기반의 작업증명(PoW) 방식으로 채굴 중이지만, 앞으로 작업증명 방식을 벗어나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추크 시는 이더리움 기반 앱 투표 프로젝트르 시행하였으며 이더리움 기반의 응용 프로그램 '유포트(uPort)'를 출시하여 주민들의 신원 정보를 디지털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8] 이더리움에 대해 자세히 보기
보스코인[편집]
보스코인(BOScoin)은 한국 최초로 ICO를 진행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이다. 보스(BOS)는 블록체인 운영체제(Blockchain Operating System)의 약자이다. 보스코인은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플랫폼을 지향한다. 보스코인 기반의 공공금융을 통해 투자자금을 모집할 수 있고, 지불, 결제, 송금, 커머스, 여행, 모빌리티 등 다양한 서비스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보스코인은 의회 네트워크에 기반한 투표를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보스코인은 리플에서 하드포크한 스텔라루멘을 기반을 만들었으며, 기존의 연합 비잔틴 동의 알고리즘을 변형한 수정 연합 비잔틴 동의 합의 알고리즘을 적용하였다. 보스코인에 대해 자세히 보기
에이치닥[편집]
에이치닥은 현대BS&C(주)가 개발한 사물인터넷 플랫폼 암호화폐이다. 스위스 추크에서 ICO를 진행하여 약 3,000억원에 이르는 투자자금을 확보했다. 에이치닥의 특징은 블록체인 기술을 사물인터넷 분야에 점목시킨 것이 특징이며 퍼블릭 블록체인 메인넷에 다수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사이드 체인 형태로 복수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또한 에이치닥은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고 블록체인에 연결하기 위해 균형 작업증명이라는 새로운 합의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러한 특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암호화폐 대비 최소 20배에서 최대 250배 정도의 빠른 속도로 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 에이치닥에 대해 자세히 보기
- 2017년 3월, 5월, 7월 한국의 에이치닥(Hdac)이 세 차례의 프리세일에서 1만 4,000 비트코인의 투자 자금 확보
- 2017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TGE(=Token Generation Event)로 1,200 비트코인의 투자 자금을 추가로 확보
- 2017년 한 해 동안 총액 약 3,000억원의 투자 자금을 확보함
아이콘[편집]
아이콘은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암호화폐이다. 아이콘은 인터체인 알로리즘을 사용한 대표적인 암호화폐이며 인터체인을 사용하면 A라는 암호화폐로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인터체인으로 연결된 B라는 다른 암호화폐로도 구매할 수 있다. 인터체인에 속하는 유사한 암호화폐로 아이온(AION)이 있다. 아이콘의 화폐 단위는 ICX이다. 아이콘 네트워크는 국가 간 송금은 물론 여러 나라의 투자자들이 애플, 구글, 삼성 주식 등을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다. 아이콘은 세계 각국에서 형성된 블록체인 커뮤니티를 스마트 계약을 통해 탈중앙화 방식으로 연결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블록체인 사용자들과 커뮤니티를 연결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여 아이콘코인을 사용한다. 아이콘에 대해 자세히 보기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추크〉, 《위키백과》
- ↑ 〈추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저그〉, 《요다위키》
- ↑ 〈추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여정현 정책연구4만건, 〈스위스의 제4차 산업혁명, 추크와 크립토밸리〉, 《네이버 블로그》, 2018-10-31
- ↑ 스위스경영연구소, 〈'인구3만'스위스 추크...암호화폐 기업만'4만개'〉, 《네이버 블로그》, 2018-09-17
- ↑ cointoday, 〈스위스 추크, 이더리움 기반 앱 투표 프로젝트 시행〉, 《코인투데이》, 2018-06-12
- ↑ cointoday, 〈스위스 추크, 이더리움 기반 앱 투표 프로젝트 시행〉, 《코인투데이》, 2018-06-12
참고자료[편집]
- 〈추크〉, 《위키백과》
- 〈저그〉, 《요다위키》
- 〈추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추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한국어문기자협회, 〈추크〉, 《세계인문지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cointoday, 〈스위스 추크, 이더리움 기반 앱 투표 프로젝트 시행〉, 《코인투데이》, 2018-06-12
- 스위스경영연구소, 〈'인구3만'스위스 추크...암호화폐 기업만'4만개'〉, 《네이버 블로그》, 2018-09-17
- 여정현, 〈스위스의 제4차 산업혁명, 추크와 크립토밸리〉, 《네이버 블로그》, 2018-10-31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