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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08742&cid=40942&categoryId=34110 티라나(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08742&cid=40942&categoryId=34110 티라나(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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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7일 (일) 23:27 기준 최신판

티라나(알바니아어: Tirana)는 동남유럽 알바니아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아드리아해와 접해 있는 두러스에서 동쪽으로 3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티라나주의 주도이자 티라나 현의 현청 소재지이다.[1]

개요[편집]

티라나는 알바니아 중부에 위치하고 다이티산 국립공원과 말리메그로파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아드리아해에서 동쪽으로 27㎞ 떨어져 있으며 티라나강과 라너강이 시내를 지난다. 지중해에 가까이 있어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으며 연평균 해가 나는 시간이 2,544시간으로 유럽에서 화창한 날씨를 가진 도시에 속한다. 티라나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때인 1614년 이 지역의 지도자였던 슐레이만 바르지니(Sulejman Bargjini)가 인구집중을 위해 사원과 대중목욕탕 등의 기반시설을 갖추고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후 도시가 발달하여 비단과 면직물, 가죽, 도자기 등을 생산하였으며 철, 은, 금을 가공하였다. 20세기에 도시와 도시 주변 지역이 급속히 발전하며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18세기에 티라나는 실크, 면직물, 가죽, 도자기, 은그릇 등으로 유명한 교역도시로 발전하였다. 첫 발칸전쟁이 발생한 1912∼1913년에 일시적으로 세르비아 군대에 점령을 당하였으며, 1920년 루신저(Lushnjë)에서 열린 의회에서 티라나를 수도로 결정하였다.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병합되었다가 독일군에 점령당하는 등 혼란의 시기였던 1930∼1944년에 티라나 시민들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굴복하지 않고 대항해 싸웠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진행된 소련의 원조로 인해 금속, 섬유, 식품 가공, 담배 등의 산업이 발달했다. 티라나에는 티라나 대학 이외에 각종 전문 학교가 있다. 시내에는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인 스칸데르베그의 동상이 있다. 티라나에는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산다. 알바니아인이 84%로 가장 많고 그리스인, 아로마니아인, 마케도니아인, 이탈리아인이 소수민족으로 존재한다. 21세기에 들어서 세계 각지로부터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생활 조건을 찾아 티라나로 오고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티라나는 다이티산과 말리메그로파산맥 사이의 티라나 평원에 위치한다. 평균 고도는 해발 약 110m이고 가장 높은 곳은 1,828m이다. 티라나는 아테네에서 북쪽으로 501km,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613km, 몬테네그로의 포드고리차에서 남쪽으로 131km, 북마케도니아의 스코페에서 남서쪽으로 153km, 코소보의 프리슈티나에서 남서쪽으로 250km 떨어져 있다. 티라나는 두 개의 중요한 보호 구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이티 국립공원과 말리메그로파비저 마르타네시 보호구역이 그것이다. 숲은 주로 소나무, 오크, 너도밤나무로 이루어져 있고 협곡, 폭포, 동굴, 호수 등이 곳곳에 있다. 이들 보호구역은 '티라나의 자연 발코니'라 불리며 티라나 사람들의 인기 있는 휴식처이다. 티라나강과 라너강이 시내를 관통한다. 티라나에는 여러 개의 인공호수가 있다. 티라나호, 파르카호, 투피나호, 카샤르호 등이 그것이다.

티라나는 습한 아열대 기후 지역에 속한다. 연평균 강수량은 1,266mm이다. 비는 11월부터 3월까지 주로 겨울에 많이 내린다. 6월부터 9월까지 여름에는 적게 내린다. 비와 눈의 양으로 볼 때 티라나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습한 도시 중의 하나이다. 기온은 1월에 평균 6.7°C이고 7월은 평균 24°C이다. 1년에 2,500시간 이상 해가 나서 유럽 대륙에서 화창한 도시로 손꼽힌다.[3]

역사[편집]

티라나 남동쪽의 펄룸바스 동굴이 발견됨으로써 구석기시대에 인간의 문화가 알바니아에 존재하였음이 알려졌다. 티라나 시내 안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유적은 서기 3세기의 로마시대 집으로 이 집은 나중에 교회로 바뀌었다. 시내의 무라트톱타니 거리를 따라 잔재가 남아 있는, 티르칸이라 불리는 성은 비잔티움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세웠고 18세기에 아흐메드 파샤 톱타니가 복원하였다. 티라나는 오스만제국이 이곳을 정복한 다음 1418년에 베네티아 문서에 기록되었다. 1431~32년의 오스만인들의 최초의 토지등록부는 티라나가 60개의 지역에 2,028채의 가옥이 있고 7,300명의 주민이 살았던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1510년에 알바니아의 가톨릭 사제이며 학자였던 마린 바를레티는 알바니아의 국민적 영웅 스컨데르베우의 전기에서 이 지역을 작은 마을이라고 기술하면서 티라나를 작은 티라나와 큰 티라나로 구별했다.

티라나는 지방 통치자인 술레이만 바르기니가 옛 모스크, 작은 상업 중심지와 목욕탕을 지었던 1614년 이전에 이미 시장으로 발달하기 시작했고 여러 개의 물방앗간을 가지고 있었다. 레츠의 모스크와 무요의 모스크는 라너강 왼쪽에 있었고 나중에 페트렐라의 몰라베이에 의해 에템베이 모스크가 세워졌다. 에템베이 모스크는 1821년에 몰라의 아들이자 바르기니의 종손이었던 에템에 의해 완성되었다. 1800년에 소위 오르토독시트라고 하는 기독교도가 티라나에 도착했다. 그들은 코르처와 포그라데츠 근처 마을에서 온 블라크들로서 이들은 오늘날의 인공호 위의 티라나공원 근처에 정착했다. 그들은 일라치파츠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807년에 티라나는 크루여 티라나의 중심이 되었다. 1816년 이후에 티라나는 크루여의 톱타니 가문의 지배 아래서 침체했다. 그 후에 티라나는 새로 만들어진 슈코더르빌라예트의 하위 단위가 되었다. 1889년에 티라나의 학교에서 알바니아어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애국 단체 바슈키미가 1908년에 창립되었다.

1920년 2월 8일에 루슈녀 의회는 티라나를 1912년에 독립을 얻은 알바니아의 임시 수도로 선포했다. 티라나는 그 지위를 1925년 12월 31일 영구히 획득했다. 1923년에 최초의 도시계획이 오스트리아 건축가들에 의해 마련되었다. 티라나의 중심은 이탈리아 무솔리니시대의 유명한 건축가들인 플로레스타노 디 파우스토와 아르만도 브라시니의 작품이었다. 티라나는 파시스트 이탈리아알바니아 사이의 티라나 조약이 조인된 곳이었다. 1939년에 티라나는 파시스트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고 그들은 괴뢰정권을 세웠다. 1941년 알바니아공산당이 만들어졌으며 엔베르 호차가 그 지도자로 등장했다. 티라나는 곧 알바니아 공산주의자들의 중심이 되었고 그들은 이탈리아 파시스트들 그리고 나중에는 나치 독일인들에 대항했다. 1944년 11월 17일 티라나는 공산주의자들과 독일군 사이의 치열한 교전 끝에 해방되었다.

1944년부터 1991년까지 대단위 사회주의식 아파트단지와 공장들이 세워졌고 스컨데르베우 광장은 많은 건물이 철거되는 등 디자인이 바뀌었다. 주 대로의 북쪽 부분은 스탈린거리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의 동상이 도시광장에 세워졌다. 개인의 승용차 소유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교통은 주로 자전거, 트럭, 버스가 담당했다. 1985년 호차가 죽은 후에 그를 기리는 피라미드박물관이 정부에 의해 세워졌다. 1986년 마더 테레사가 티라나를 방문했다. 티라나 대학 학생들은 1990년대 초기에 정치적 자유를 요구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시위가 시작하여 스컨데르베우 광장에서 엔베르 호차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것으로 끝났다.

1990년대 중반에 발칸반도의 혼란 속에서 티라나는 1997년의 알바니아 소요 발발과 1998년 9월 14일의 실패한 쿠데타 같은 극적인 사건들을 경험했다. 1999년에 코소보 전쟁에 따라 티라나공항은 나토군의 구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작전을 위한 공군 기지가 되었다. 2000년에 임기를 시작한 전 티라나 시장 에디 라마는 일리르메타 정권 아래서 시내 중심 주변과 라너강을 따라 서 있는 불법 건축물 철거 운동을 시작해 1990년 이전 상태로 돌려놓았다. 순환도로(우나자), 카바야 거리 등 대부분의 주요 도로는 다시 놓였다.

2005년부터 알바니아 남동부, 주로 파르케와 페트렐라가 많은 주거단지가 지어지고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티라나동문이 생기는 등 선호되는 지역이 되어 갔다. 2011년 1월 21일 알바니아경찰은 야당 지지자들과 정부청사 앞에서 충돌하여 차들이 불탔고 3명이 죽고 150명이 다쳤다. 2015년 지방선거에 따라 권력은 민주당 대표 룰짐 바샤에게서 사회당 후보 에리온 벨리아이에게로 넘어갔다. 행정구역 개혁에 따라 티라나의 행정구역 13개는 기존의 11개 행정구역에 통합되었다.

2016년에 스컨데르베우 광장은 2010년에 나온 게획에 따라 디자인을 바꾸었다. 더 큰 녹지가 광장 주변에 마련되었고 지하에 주차장이 들어섰다. 새 대로가 조구 1세 대로 북쪽 옛 티라나 철도역 자리에 문을 열었다. 티라나시청의 새 본부는 근처의 중앙공원과 함께 새 대로를 따라 짓기로 계획되어 있다.[4]

경제[편집]

티라나는 알바니아에서 가장 공업화되고, 경제적으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지역이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3차 산업 부문이 티라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해졌다. 서비스업은 티라나 노동력의 68%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노동 인구의 26%가 2차 산업에 종사하고 1차 산업은 5%에 그친다. 티라나는 16세기 초 오스만제국 시기에 시장이 서고 수공업자들이 비단과 면직물, 가죽, 세라믹, 금은 가공품 등을 만들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티라나와 그 주변 지역은 빠르게 팽창했다.

알바니아의 금융 중심지를 이루면서 금융업은 티라나 3차 산업의 주요 요소이고 재산 사유화와 화폐정책 덕분에 잘 발달하고 있다. 알바니아은행, 알바니아증권거래소 같은 가장 중요한 금융기관이 모두 티라나에 있고 방카콤버타레트레그타레, 라이페이센은행, 크레딘스은행, 인테사산파올로은행, 티라나은행 같은 은행들도 티라나에 있다. 통신산업은 또 하나의 중요한 성장의 기여 요소이다. 보다폰, 텔레콤알바니아, 이글 등의 회사가 티라나의 선도적인 통신산업 공급자이다. 티라나의 관광 산업은 크게 발전해 경제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교통[편집]

티라나는 티라나 국제공항이 나라의 관문 구실을 한다. 매년 250만 명의 승객을 유럽 대륙 여러 나라의 많은 도시로 가기 위해 이곳을 이용한다. 알바니아 로마가톨릭수녀 마더 테레사를 기린, 마더 테레사 티라나 국제공항이 공식적인 이름이다. 티라나는 항공, 철도, 도로 교통의 중요한 합류점이다. SH1, SH2, SH3와 A3 등의 도로가 티라나와 몬테네그로, 그리스를 연결시켜주고 SH2를 통해 아드리아해의 두러스를 직접 연결시켜준다. 외곽의 큰 순환고속도로 건설이 2011년 시작되었다. 알바니아-코소보고속도로는 티라나와 코소보를 이어준다.

2018년에 국제 자전거공유 시스템 모바이크가 티라나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에 에코볼리스라는 자전거공유시스템이 시작되었다. 자전거전용로가 스컨데르베우 광장, 라너강, 카바야 거리 등에서 보행로를 따라 만들어졌다.

관광[편집]

티라나에는 국립극장, 국립 오페라발레극장, 국립 고고학박물관, 알바니아미술관, 알바니아 과학박물관, 국립 역사박물관 등과 같은 알바니아의 가장 큰 문화기관들이 있다. 국립도서관은 100만 권 이상의 장서, 정기간행물, 지도, 마이크로필름 등을 소장하고 있다. 티라나에는 5개의 전통 박물관, 56개의 문화기념물, 8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박물관은 스컨데르베우 광장에 있는 국립 역사박물관이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알바니아의 고고학적 유물을 상당수 가지고 있다. 마더 테레사가 사용한 물건들도 있다. 2012년에 거의 100만 명이 방문객이 다녀갔다.

국립 고고학박물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생긴 첫 박물관이었다. 국립 미술관은 1954년에 문을 열었고 5,000점 이상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자연사박물관은 동물학, 식물학, 지질학 등의 분과가 있다. 그 밖에 호차박물관과 분카르트박물관이 있다. 2017년에 비밀감시박물관이 새로 꾸민 뒤 다시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은 알바니아공산주의 정권의 어두운 과거를 보여준다.

알바니아에는 이슬람, 정교회, 가톨릭교회 등 세 개의 주요 종교가 있다. 이들은 모두 티라나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이슬람교의 일종인 벡타시 교단의 지도부가 알바니아로 들어와 티라나에 세계본부를 두고 있다. 매년 티라나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이 영화제는 알바니아 최초의 국제영화제이다. 디타에베러스는 매년 3월 14일에 봄이 온 것을 축하하는 행사로 알바니아 최대의 토속신앙 축제이다. 이 축제는 티라나, 엘바산에서 열리며 이탈리아의 아르버레시에서도 열린다.[5]

지도[편집]

아드리아해 국가 지도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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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티라나〉, 《위키백과》
  2. 티라나〉, 《나무위키》
  3. 티라나(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4. 티라나〉, 《요다위키》
  5. 티라나(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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