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번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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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번트리(영어: Coventry)는 영국, 잉글랜드의 웨스트미들랜즈 주에 있는 도시로 버밍엄 남동쪽 약 30km에 있다. 코번트리는 잉글랜드에서 10번째, 영국에서 13번째로 큰 도시이며 면적은 98.64km², 인구는 약 37만 명이다. 19세기 말까지는 섬유 산업이 활발하였으나 현재는 영국 자동차 공업의 중심이다.[1]
개요
코번트리는 웨스트미들랜즈에서 버밍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로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181km 떨어져 있다. 코번트리는 영국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한 도시로 레스터셔(Lestershire)에 있는 나라의 지리 중심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져 있다. 코번트리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을 받아, 14세기에 건립된 성미카엘 대성당을 비롯하여 도심부가 파괴된 후 다시 지어졌다. 새 시가지는 주변에 주차장을 배치하고 중심부에 자동차 진입을 대폭 제한하는 도시 조성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 자동차 회사들은 영국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항공기 엔진, 재봉틀, 시계, 화학제품, 도료(塗料) 등을 제조한다. 도심에 있는 코번트리 대학, 남부 외곽에 있는 워윅 대학, 그리고 코번트리 공항 근처에 본부가 있는 사립 아르덴 대학 등 세 개의 대학이 있다. 코번트리는 유럽의 주요 평화와 화해의 도시 가운데 하나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매년 '평화의 달'을 개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국제 차량들을 소장하고 있는 교통박물관은 도심의 관광 명소다. 가장 눈에 띄는 자동차는 속도에서 세계 신기록을 갖고 있는 스러스트2와 스러스트SSC다. 도시 중심에서 약 6.4km 떨어진 곳에는 원래 부지에 재건된 로마시대 룬트 요새가 있다. 미들랜드 항공 박물관은 코번트리 공항과 인접해 있다. 2017년 12월 7일 코번트리는 페이즐리, 스토크온트렌트, 스완지, 선덜랜드를 제치고 '영국문화도시' 타이틀을 획득했다.[2]
지리 및 기후
코번트리는 버밍엄에서 동쪽으로 31km, 레스터에서 남서쪽으로 29km, 워윅에서 북쪽으로 18km,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181km 거리에 있다. 영국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한 도시다. 면적은 100km²에 육박한다. 사방에서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웨스트 미들랜즈 그린벨트(West Midlands Green Belt)는 도시 확장 및 주변 도시와의 융합을 막았다.
시원한 여름과 온화한 겨울 날씨가 특징인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코번트리에서 기록된 극한 온도는 1947년 2월 -18.2°C에서 2019년 7월 35.2°C까지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의 최저 기온은 2010년 12월 –10.8°C였다.
역사
로마인들이 소웨강 옆에 있는 백튼에 정착지를 세웠고, 색슨 수녀원 주변에 다른 정착지를 만들었다. 메르시아의 레오프릭 백작과 그의 아내 고디바 부인은 1043년 성 마리아를 기리는 베네딕트 수도원을 세웠다. 때맞춰 수도원 관문에 시장이 형성되고 주민 거주지가 확대됐다. 코번트리 성은 도시 안의 작은 베일리 성이었는데, 12세기 초 체스터의 제4대 백작 란눌프 드 게르논(Lannulf de Gernon)에 의해 지어졌다. 14세기에 이르러 코번트리는 섬유 무역의 핵심 도시였고, 중세 내내 영국에서 중요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1451년에 자치주가 됐다. 18세기~19세기에 코번트리는 영국 시계 제조의 3대 도시 중 하나가 됐다.
19세기 후반 자전거 제조로도 유명했다. 제임스 스타리와 그의 조카 존 캠프 스타리가 앞뒤 바퀴 크기가 비슷한 '로버 안전 자전거'를 발명하면서 자전거 산업이 활기를 얻었다. 이 회사가 로버 그룹의 모태가 됐다. 자전거 제조는 20세기 초 자동차 제조로 발전했고 코번트리시는 영국 자동차 산업의 주요 중심지가 됐다. 재규어(Jaguar)의 연구 및 디자인 본부는 휘틀리 공장에 있으며 2004년에 브라운스 레인 공장에서 차량 조립이 중단됐지만 재규어 본사는 2011년에 코번트리로 돌아왔다. 재규어는 인도 회사인 타타 모터스(Tata Motors)가 소유하고 있다.
노후 건물들이 점점 거주하기에 불편해지고 제1차 대전 종전 후 산업 기반이 확충되면서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도시 전역에서 수많은 주택 개발이 이루어졌다. 1930년대에 시작해 1940년에 완공된 남쪽 우회도로 개발은 이전에 시골이었던 넓은 땅을 도시로 편입하는 데 도움이 됐다.
코번트리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심각한 폭격 피해를 입었다. 독일군은 1940년 11월 14일부터 이틀간 '달빛 소나타 작전'이라는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이 날 폭격으로 도심의 넓은 지역과 역사적인 대성당이 첨탑만 남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4천 채 이상의 주택과 공장의 약 4분의 3이 파괴됐고 수백 명이 사망했다. 코번트리는 독일군의 공습으로 다른 영국 도시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영국의 전쟁 준비에 크게 기여한 군비, 군수품, 항공기, 엔진 공장이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습 표적이 됐다.
전후에는 깁슨 계획에 따라 대규모로 재건됐고 유럽에서 최초로 대규모 보행자 위주의 신개념 쇼핑 구역이 생겼다. 1962년 바질 스펜스 경이 설계해 성미카엘 대성당을 재건했다. 조립식 강철 첨탑(fléche)은 헬리콥터로 내려졌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공장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많은 주택이 지어졌고, 이는 도시 확장으로 이어졌다. 래드포드, 코운드온, 캔리, 샬레스모어, 스토크 히스가 이 때 생겨난 지역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자동차 산업이 붐을 이루었고 코번트리 산업은 '황금시대'를 누렸다. 이 때 주민들의 가처분소득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스포츠와 예술의 혜택을 고루 받았다. 영국에서 몇 안 되는 올림픽 표준 수영장 중 하나를 갖춘 새로운 스포츠 센터가 건설됐고 코벤트리 시티 풋볼 클럽은 영국 축구 제1부에 올랐다. 벨그레이드 극장도 허버트 아트 갤러리와 함께 지어졌다.
보행자 전용 프레시틱 쇼핑 구역은 런던 밖에서는 가장 훌륭한 소매점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1965년 설립된 워릭 대학교는 영국의 대표적인 고등 교육 기관 중 하나가 됐다. 1948년 이후 영연방 식민지에서 도착한 아시아와 카리브해 이민자들은 코번트리의 대규모 산업기반에 매력을 느꼈다. 늘어나는 이슬람 교인들을 위해 1960년 이글 가에 모스크 사원이 문을 열었다.
1970년대 영국 자동차 산업의 쇠퇴로 심한 타격을 입었다. 1980년대 초 전국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고 범죄율은 전국 평균을 훨씬 상회했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현재 영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자동차 산업은 기울었지만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서 점차 경제적으로 회복되었다.[3][4]
경제
코번트리는 자전거와 자동차 제조의 중심지였다. 코번트리 모테트, 그레이트 호러리스 캐리지 컴퍼니, 스위프트 모터 컴퍼니, 험버, 힐만, 라일리, 프랜시스-바넷트, 다임러, 트라이엄프 오토바이가 이 곳에서 만들어졌다. 자동차 산업은 쇠퇴했으나 재규어 회사는 워윅 대학교의 연구개발팀과 함께 하고 있으며, 푸조는 라이턴 공장(옛 루트스 그로 소유) 폐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험버 로드에 큰 부품 센터를 가지고 있다. 런던의 유명한 택시(블랙캡)는 코번트리 LTI가 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밖에 이 지역 주요 산업은 자동차, 전자 장비, 기계 공구, 농업 기계, 인공 섬유, 항공 우주 부품 및 통신 장비 등이다. 최근 몇 년간 도시는 제조업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서비스, 금융, 연구, 디자인 및 개발, 창조 산업, 물류, 여가 산업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
코번트리는 2017년 12월 7일 '2021년 영국의 문화 도시'에 선정됐다. 2013년 데리, 2017년 헐에 이어 세 번째로 이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 도시는 19세기 초 누나톤 근처에서 태어난 작가 조지 엘리엇 때문에 잘 알려졌다. 그녀의 유명한 소설 미들마치(1871년)의 모델이 되었기 때문이다. 벨그레이드 극장은 1958년 개관한 영국 최초의 시민 극장이다. 1965년 교육에 극장을 활용하는 세계 최초의 Theatre-in-Education(TiE · 극장활용 교육) 회사가 설립됐다. TiE 운동은 전세계에 퍼졌는데, 지금도 코번트리의 젊은이들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고 있다. 개축을 거쳐 2007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극작가 앨런 폴락은 코번트리에서 자랐으며, 닉 워커와 크리스 오코넬도 이 도시와 연관이 있는 극작가들이다. 코번트리에는 국제적인 재즈 프로그램, 코번트리 재즈 축제, 고디바 축제를 포함한 다양한 음악 행사가 있다. 고디바 축제 기간 토요일에는 도심에서 카니발 퍼레이드가 시작돼 축제가 열리는 전쟁기념공원으로 행진한다.
코번트리 대성당
코번트리 대성당은 영국 런던 북서부의 코번트리에 있는 성당이다. 14~15세기에 걸쳐 완공된 성 미카엘 대성당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공습으로 파괴되어 첨탑과 외벽만 남자, 그 옆에 새로운 성당을 지어 하나로 연결시킨 것이다. 전쟁의 참혹한 폐해를 상기시키고 평화와 화해에 대한 메시지를 일깨워주는 건축물로 잉글랜드 1급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코번트리 대성당은 본래 14세기와 15세기에 걸쳐서 완공된 고딕성당으로 성 미카엘 대성당으로 불렸다. 이 성당은 런던 북서부에 위치한 코번트리에서 가장 큰 성당이며 영국 중서부 일대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성당 가운데 하나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500년 이상 코번트리의 정신적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1940년 11월 14일 가해진 독일 전투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산업도시였던 코번트리는 사회 기반 시설의 60% 이상이 파괴되는 대참사를 겪었다. 코번트리 대성당 역시 무참하게 파괴되어 거대한 잿더미가 되었고, 첨탑과 성당의 외벽만 겨우 남아 옛 성당의 윤곽을 간신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전쟁이 끝나자 코번트리 시는 폐허가 된 성당을 재건축하기로 결정하고 1950년 새로운 성당 디자인을 위한 대규모 공모전을 실시했다. 200여 안이 제출된 공모전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건축가 바실 스펜스(Basil Spence)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공사는 6년 후인 1956년에 시작되어 1962년 완공되었다.
새로운 성당은 기존의 성당 오른편에 지어졌다. 이 두 성당 사이에는 출입구를 높게 만들었으며 넓은 마당을 두어 외벽만 남은 기존의 성당과 새로 지은 성당이 좌우로 연결되도록 했다. 새로운 성당의 외관은 기존 성당에서 사용된 외벽과 유사한 붉은 사암으로 마감하여 두 건물이 외따로 보이지 않게 했다. 단순하면서도 웅장한 형태의 새 성당은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기존 성당을 감싸면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새 성당의 문과 벽은 투명한 유리로 디자인되었다. 유리벽은 폐허가 된 옛 성당과 새로 건축한 성당이 서로를 비추며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 되게 했다. 코번트리 대성당의 축성식은 1962년 5월 30일 거행되었다. 코번트리 대성당은 20세기 가장 참혹한 역사의 한 공간을 그대로 보존함은 물론 폐허가 된 옛 성당을 끌어안는 형태의 새 성당을 건축함으로써 전쟁의 아픔을 되새기고 평화와 화해를 기원하는 성지가 되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영국의 헤리티지 재단과 방송사인 채널 4는 공동으로 지난 한 세기 동안 대중에게 사랑받은 현대 건축물을 선정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코번트리 대성당이 당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런던의 주요 건축물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코번트리 대성당은 옛 성당과 새 성당 모두 영국 잉글랜드 1급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5]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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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코번트리〉, 《위키백과》
- ↑ 〈코번트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코벤트리〉, 《요다위키》
- ↑ 〈코번트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코번트리 대성당(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코번트리〉, 《위키백과》
- 〈코벤트리〉, 《요다위키》
- 〈코번트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코번트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코번트리 대성당(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