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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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핀란드어: Helsinki, 스웨덴어: Helsingfors)는 핀란드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헬싱키 교외엔 핀란드의 제2의 도시인 에스포(Espoo/Esbo)나 반타(Vantaa/Vanda) 같은 도시들이 붙어 있으며 이들을 합치면 인구가 130만여 명으로 100만 명 이상 도시 중에선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헬싱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활 수준을 자랑하는 도시로 2011년 영국 잡지 모노클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고, 2012년에는 세계 디자인 수도로 지정되기도 했다.[1]
개요
- 행정 단위: 핀란드 수도
- 면적: 715.49km²
- 지역어: 핀란드어, 스웨덴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hel.fi/helsinki/fi
헬싱키는 핀란드 남부 핀란드만 연안에 위치해 있다. 핀란드 남부의 우시마주(Uusimaa)에 위치해 있으며 에스토니아 탈린(Talin)에서 북쪽으로 80km,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에서 동쪽으로 400km,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서 서쪽으로 300km 떨어져 있는데, 이 세 도시와 밀접한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다. 헬싱키는 캄차카반도의 최북단에 해당하는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 발트해의 핀란드만에 접한다. 현재의 도시역은 핀란드만에 돌출한 작은 곶과 그곳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1550년 스웨덴의 구스타브 1세가 처음으로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당시의 위치는 곶의 동부에서 북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후미 안쪽에 있었다. 구스타브 1세는 러시아 무역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이 도시를 건설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도시역은 현재의 위치로 옮겼는데 급속히 성장한 것은 투르쿠에 있던 수도가 옮겨온 1812년 이후였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항구도시로 발트해 항로의 객선이 기착하는 남항(南港) 외에 북항, 서항이 있어 기능이 분화되어 있다. 핀란드 최대의 수입항이며 동시에 수출항으로도 중요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쇄빙선을 가동하여 항로를 유지한다. 북항을 중심으로 한 동쪽 연안부와 서항 주변은 공업지역으로 조선을 비롯하여 섬유, 식품, 금속, 기계, 도기 등의 생산이 활발하다. 헬싱키에는 190여개의 종합학교, 41개의 중등학교, 그리고 15개의 직업교육기관이 있다. 고등교육기관은 8개, 4개의 폴리테크닉 대학이 있다. 대표적인 대학교로 헬싱키대학교(University of Helsinki),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 한켄경제대학교(Hanken School of Economics), 헬싱키예술대학교(University of the Arts Helsinki)가 있다. 헬싱키는 유럽혁신기술센터(Institute of Innovation and Technology)의 지식혁신공동체(Knowledge and Innovation Community)의 공동센터 중 하나다. 핀란드의 수도인 만큼 헬싱키는 핀란드 GDP의 약 1/3을 담당하며 1인당 GDP는 국가 평균보다 1.3배 높다. 헬싱키의 주요 산업은 서비스, IT 및 공공부문이며 중공업에서 건너온 해운 회사들도 상당한 인원을 고용하고 있다. 헬싱키 100대 대기업 중 83곳이 헬싱키에 본사를 두고 있다. 헬싱키는 1952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했고, 2007년엔 제52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주최하기도 했다.[2]
어원
16세기에 나온 학설에 따르면 스웨덴이 핀란드의 일부 해안 지역을 식민지배할 무렵 스웨덴 중부의 헬싱란드(Hälsingland) 주민들이 현재 반타(Vantaa)강으로 알려진 곳으로 이주했다. 이곳은 당시 헬싱게 강으로 불렸으며, 1300년대엔 헬싱게 마을과 교회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방언 연구 자료를 보면 이주민들이 핀란드 북부 우프란드(Uppland)에서 온 것으로 나타나 이 학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른 학설은 헬싱키가 인간의 목처럼 좁아 물살이 빠른 강 어귀에 위치한 점으로 미루어 스웨덴어로 목을 뜻하는 'hals'의 고대어인'helsing'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덴마크의 헬싱외르(Helsingør)와 스웨덴의 헬싱보리(Helsingborg)같은 지형적으로 유사한 스칸디나비아 도시들도 비슷한 이름이 붙여졌다.
지리 및 기후
헬싱키는 핀란드만으로 튀어나온 곶과 315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다. 도심의 인구밀도는 비교적 높아 칼리오(Kallio)지구의 경우 km2당 16,494명에 달하지만, 헬싱키 전체로는 3,050명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유럽 수도에 비해 인구밀도가 낮은 도시로 분류된다. 도심에서 북쪽으로 뻗은 10km 길이의 헬싱키 센트럴 파크는 시민들에게 중요한 휴식처다. 헬싱키엔 약 11,000개의 보트 정박지가 있다. 수도권에 인접한 바다엔 140 km2가 넘는 낚시 구역이 있고 60여 종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헬싱키는 일본 홋카이도와 비슷한 습한 대륙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발트해와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으로 1~2월 겨울 기온이 북방 지역으로는 높은 평균 -5˚C 정도다. 헬싱키의 겨울은 핀란드 북부에 비해 따뜻하며, 눈 시즌도 짧다. 이는 헬싱키가 핀란드 최남단에 위치한데다 도심의 열섬 효과 때문이다. -20˚C 미만의 온도는 기껏해야 1년에 몇 번 발생한다. 그러나 높은 위도로 인해 해가 매우 낮은 동지 무렵엔 낮 시간이 5시간 48분에 불과하고, 날씨마저 흐린 날이 많아 낮이 더욱 짧게 느껴진다. 반대로 여름엔 낮 시간이 18시간 57분 동안 지속돼 시민들은 길게 햇빛을 즐긴다.[3]
역사
철기시대에 헬싱키 지역은 타바스티안(Tavastians)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10세기 농경 주거지의 흔적이 있고, 14세기 이후의 기록도 타바스티안족의 정착지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13세기 후반 스웨덴인들이 헬싱키의 해안선을 따라 식민지 건설에 나서 타바스티안족을 지배했다. 헬싱키는 1550년 스웨덴의 구스타프 1세가 헬싱포르스(Helsingfors)라는 무역 도시로 건설한 것이 그 시초다. 그는 헬싱포르스로 한자동맹 도시인 레발(Reval, 오늘날 탈린으로 알려진 도시)를 견제할 생각이었다. 구스타프 1세는 포르보(Porvoo), 에케네스(Ekenäs), 라우마(Rauma), 울빌라(Ulvila)의 부자들을 이주시키는 명령을 내렸지만 헬싱키가 가난, 전쟁, 질병으로 시달리는 바람에 이주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1710년 전염병이 돌아 헬싱키 주민들 대부분이 죽었다. 18세기에 스베아보르그(Sveaborg, 핀란드 말로 비아포리(Viapori), 오늘날엔 수오멘린나(Suomenlinna)) 해군 요새가 건설돼 헬싱키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핀란드의 핵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809년 핀란드 전쟁에서 러시아가 스웨덴을 격파하고 핀란드를 자치 대공국으로 합병한 이후부터였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Alexander)1세는 1812년 핀란드 수도를 투르쿠에서 헬싱키로 이전해 스웨덴의 영향력을 줄이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더 가깝게 만들었다. 1827년 투르크의 대화재로 당시 핀란드 유일의 대학이었던 투르쿠 왕립 아카데미를 헬싱키로 이전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헬싱키대학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도시는 지속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 19세기, 헬싱키는 핀란드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철도 건설과 산업화로 인한 기술 발전이 도시 성장의 핵심 요소였다. 90년 간 러시아 통치하에 있었던 이 시기 핀란드는 국가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니콜라스 2세(Nicholas II) 때 핀란드의 러시아화가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지배에 대한 불만이 계속되면서 1917년 핀란드는 러시아 혁명을 이용해 독립을 이뤘다. 하지만 독립 이후 사회정치적 혼란으로 내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1939년 8월 소련과 나치간의 독소 불가침 조약(Molotov–Ribbentrop Pact)으로 핀란드는 소련의 세력권에 놓였다. 1939년 11월 30일 소련은 핀란드를 공격했고 헬싱키는 폭격 당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독일 태생의 건축가 C.L.엥겔(Engel)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신고전주의 양식을 본 따 도심 건축물들을 설계했다. 헬싱키를 발전시킨 요소는 철도와 산업화 같은 기술발전이었다.
헬싱키는 20세기 전반의 혼란스러운 역사(핀란드 내란과 겨울전쟁)를 딛고 발전을 계속했다. 획기적인 사건은 헬싱키에서 열린 1952년 올림픽이었다.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 늦게 시작했지만 1970년대 급속한 도시화는 수도권 인구를 3배나 증가시켰고, 지하철도 건설되었다. 헬싱키의 인구 밀도가 다른 유럽 수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과 그 독특한 구조는 도시화가 늦게 시작된 데서 비롯된다. 2000년 헬싱키는 유럽문화수도, 2012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4]
경제
헬싱키 광역권은 핀란드 GDP의 약 3분의 1을 생산한다. 1인당 GDP는 전국 평균의 약 1.3배다. 서비스 관련 IT 및 공공 부문이 이익을 많이 내고 있다. 중공업에서 옮겨온 해운회사들도 상당한 인원을 고용하고 있다. 1인당 부가가치 생산은 유럽 27개 대도시 평균의 200%로, 스톡홀름과 파리의 평균치와 비슷하다. 연간 총 부가가치 증가율은 약 4%다. 핀란드 100대 기업 중 83곳이 헬싱키 광역권에 본사를 두고 있다. 200명의 핀란드 기업 임원들 중 66%가 헬싱키 광역권에, 42%가 헬싱키시에 살고 있다. 상위 50명의 평균 소득은 165만 유로이다.
교통
도시 내 이용가능한 대중교통은 지하철, 트램, 버스, 택시, 페리 등이 있다. 헬싱키 지하철은 1개 노선으로 서쪽 에스푸(Espoo)에서 시내를 거쳐 동쪽 교외까지 운행한다. 2017년 11월에 연장 개통되어 현재 지하철역은 총 25개로 구성되어 있다. 트램은 관광객에게 가장 편한 대중교통이다. 특히 2, 3번 트램은 도시 주변을 다니는 주요 노선이다. 시내 중심부를 트램이 운행하는 동안 버스는 트램이 운행하지 않는 지역을 운행한다. 버스 탑승 시 앞문을 통해 타야하며 하차시에는 중문과 후문을 이용해야 한다. 미리 구매한 표를 버스 탑승 시 운전기사에 보여줘야 하며 표가 없을 경우 운전기사를 통해 표를 구매할 수 있다.
헬싱키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화됨에 따라 자동차 수는 늘어나게 되었다. 최근 들어 도시 곳곳에 주거지, 공원 등의 시설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지난 2012년 6월 12일 버려진 철로를 재생한 바나(Baana)에 로우라인(Low Line)이 들어섰다. 원래 바나는 헬싱키 남서부 컨테이너 항구에서 중앙 기차역까지 화물을 운반하는데 사용되었던 철로로 약 1.3km 길이다. 철로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으나 최근 들어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길로 다시 태어났다. 도심 한가운데 일반 도로보다 낮은 위치에 있고 자동차와 신호등의 방해 없이 도심 한가운데까지 가로지를 수 있다. 도심 곳곳에 자전거 대여소가 설치되어 있고 자전거 길 안내와 같은 서비스 또한 제공하고 있다.
관광
헬싱키는 크지 않은 규모의 도시로 도보로도 충분히 여행이 가능하다. 삼면이 바다인 헬싱키에서의 여행은 여름이 여행하기 좋은 시즌이다. 해변 뿐 아니라 많은 공원들이 있으며 교회, 박물관, 그리고 갤러리 등을 방문할 수 있다.
헬싱키에서 가장 큰 역사박물관은 핀란드 국립박물관이다. 국립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역사적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헬싱키시립박물관 또한 주요 역사 박물관으로 헬싱키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헬싱키 대학교는 많은 주요 박물관을 가지고 있는데 헬싱키 대학 박물관 (Arppeanum)과 핀란드 자연사 박물관 등이 있다.
핀란드 국립 미술관은 핀란드 고전 미술관인 아테넘 미술관(Ateneum Art Museum), 유럽 고전 미술관인 시네브리코프 미술관(Sinebrychof art Museum), 그리고 현대미술의 키아스마 미술관(Kiasma Art Museum)으로 구성된다. 그 밖에도 헬싱키는 헬싱키 미술관(HAM, Helsinki Art Museum)에 자체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디자인 박물관(The Design Museum), 군사 박물관(The Military Museum of Finland), 디트리첸 미술관(Didrichsen Art Museum), 아모스 렉스 미술관(Amos Rex art museum) 등이 있다.
수오메린나(Suomenlinna)는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헬싱키에 위치한 6개의 섬(쿠스탄미에카(Kustaanmiekka) 섬, 수시사리(Susisaari) 섬, 이소무스타사리(Iso-Mustasaari) 섬, 피쿠무스타사리(Pikku-Mustasaari) 섬, 랜시무스타사리(Länsi-Mustasaari)섬, 롱외렌(Långören)섬에 있는 요새이다. 1700년대 중반, 핀란드는 스웨덴의 지배하에 있었고 수오메린나는 러시아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졌다. 하지만 러시아-스웨덴 전쟁(1788~1790년)에서 스웨덴의 패배로 러시아 군사가 주둔하였고, 러시아는 방어시설을 더 강화하였다. 이후 크림 전쟁으로 파괴되었지만 전쟁 후 복구되었다. 1917년 핀란드 독립 후 1918년 핀란드 내전 때 반란군을 가두었던 감옥으로 사용했다.
수오메린나 옆에 있는 오래된 요새 섬으로 요새와 자연이 보존된 발리사리(Vallisaari), 핀란드 각 지방의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문화를 볼 수 있는 헬싱키 근교에 위치한 세우라사리에 박물관(Seurasaari Open Air Museum), 섬 전체가 동물원으로 구성되어있어 약 200종의 동물을 볼 수 있는 헬싱키 동물원 코르케아사리(Korkeasaari) 등도 헬싱키의 관광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5]
헬싱키대학교
헬싱키대학교(University of Helsinki)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있는 핀란드 최고의 국립 종합대학교이다. 핀란드가 스웨덴령이던 1640년 크리스티나 여왕이 옛 수도였던 바르시나이즈수오미주의 주도 투르쿠에 왕립 투르쿠아카데미(Royal Academy of Turku)로 설립하였다. 핀란드가 러시아의 자치령이던 1827년 도시가 큰 화재로 소실되자 새로운 수도 헬싱키로 옮겨 대학을 이전하여 재건하고 핀란드알렉산더제국대학(Imperial Alexander University of Finland)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대학의 주요 역할은 대공국의 공무원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19세기 들어 핀란드의 문화, 정치, 법률 부문의 중심지가 되었고 핀란드 독립주의자와 자유주의 문화운동, 정치 세력, 학생조직의 원동력이 되었다. 1917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으며 핀란드 독립 이후 국가 조직과 복지사회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헬싱키대학교는 인문, 신학, 법학, 행동과학, 사회과학, 과학, 약학, 생명공학, 의학, 농 ·임학, 수의학의 11개 학부가 있으며, 수업에는 주로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병용하며 영어도 사용한다. 원래 모든 캠퍼스는 헬싱키 도심에 있었는데, 1930년대 이래 대학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다른 곳으로 확장하였다. 유서 깊은 시티센터 캠퍼스(City Center Campus)는 캠퍼스를 헬싱키로 이전한 후 대학의 중심지가 되었고, 네오클래식 양식부터 유겐트슈틸 양식을 거쳐 20세기의 모더니즘 양식까지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깊은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있다. 그밖에 쿰풀라 캠퍼스(Kumpula Campus), 메일라티 캠퍼스(Meilahti Campus), 비키 캠퍼스(Viikki Campus)가 있으며 핀란드 20곳에 대학 시설이 있다. 부설기관으로는 도서관, 알렉산테리 연구소의 러시아·동유럽연구 핀란드센터, 핀란드자연사박물관, 식물원, 핀란드유럽연구센터, 헬싱키정보공학연구소, 헬싱키물리연구소, 생명공학연구소 등이 있다.[6]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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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헬싱키〉, 《위키백과》
- 〈헬싱키〉, 《나무위키》
- 〈헬싱키〉, 《요다위키》
- 〈헬싱키(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헬싱키(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헬싱키대학교(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북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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