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
하동군(河東郡)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서부에 있는 군이다. 남쪽과 서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전라남도와 경계를 이룬다. 매년 하동문화제가 개최되며, 화개장이 유명하다. 특산물로 섬진강 재첩이 유명하다.[1]
개요
하동군은 동경 127°35′∼127°56′, 북위 34°57′∼35°20′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진주시와 사천시, 북쪽으로 산청군·함양군과 전라북도 남원시와 접하고, 남쪽으로 남해를 사이에 두고 남해군과 마주하며, 서쪽으로는 섬진강(蟾津江)과 통꼭봉(905m)·불무장등(不無長嶝:1446m) 등의 연봉을 경계로 전라남도 구례군·광양시와 각각 접한다. 면적은 675.24㎢이고, 인구는 42,042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2개 면, 319개 행정리(108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다.
하동군은 위치상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중간에 끼어 있어서 양쪽 문화를 공유한다. 전라남도 최대 도시인 순천시까지의 거리는 약 39km 정도 된다.
하동은 화개장터로 유명하다. 타지 사람들이 하동은 몰라도 화개장터는 안다고 할 정도이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곳이라 음식도 풍부한데 섬진강에서 나는 은어, 참게, 재첩과 더덕구이 등 각종 산나물로 유명하다. 하동의 더덕 백반은 단연 일미(一味)다. 섬진강 유역에는 취미 삼아 은어 잡기 하는 사람이 많다. 주변 임해 지역 만큼이나 생선회가 유명하다.[2][3]
자연환경
지세는 소백산맥의 지맥이 남쪽으로 뻗어 군의 북쪽에서 험준한 준봉으로 올랐다가 다시 남쪽으로 가면서 차츰 낮아져 남해에 이른다. 북쪽 군계에는 명선봉(明善峰, 1,586m)·형제봉(兄弟峰, 1,433m)·덕평봉(德坪峰, 1,522m)·영신봉(靈神峰, 1,652m) 등이 있다.
동쪽에는 삼신봉(三神峰, 1,284m)·주산(主山, 831m)·우방산(牛芳山, 570m)·옥산(玉山, 614m)·이명산(理明山, 570m), 서쪽에는 황장산(黃獐山, 942m)·신선봉(神仙峰, 600m)·형제봉(兄弟峰, 1,115m), 남쪽에는 연대봉(蓮臺峰, 447m)·금오산(金鰲山, 849m) 등이 있다.
하천으로는 북쪽의 진안고원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흐르는 섬진강(蟾津江)이 군의 서쪽 경계를 이루며 남해로 흘러든다. 섬진강의 지류로 화개면 대성리에서 발원한 화개천(花開川)이 남쪽으로 합류하며, 청암면 묵계리에서 발원한 횡천강(橫川江)은 남류하여 군의 중앙부인 횡천면을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화개천은 약 20㎞에 달하는 화개계곡을 만들어 절경을 이루고, 횡천강은 유역에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그밖에 악양면 시리봉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섬진강에 합류하는 악양천(岳陽川), 이명산에서 발원하여 고전면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 섬진강에 흘러드는 주교천(舟橋川),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옥종면을 지나 동남쪽으로 흘러 남강에 흘러드는 덕천강(德川江) 등이 있다.
기후는 남부 및 남해안 기후대로 볼 수 있는데, 남부 기후대는 북쪽의 산간지구, 남해안 기후대는 남해안에 면한 지구에서 나타난다. 연평균기온은 13.8℃, 1월 평균기온은 0.2℃, 8월 평균기온은 25.3℃인데, 산간지역의 연교차는 이 수치보다 훨씬 큰 편이다. 연강수량은 연평균 1,512.8㎜로서 대한민국의 최다우지역에 속한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화강암·화강편마암·화산암류가 복잡한 산악 지형을 형성하며 기타 하천유역에는 퇴적층에 의한 충적암이 주로 나타난다. 식생은 온대남동부 및 난대가 동시에 나타나고 중부형도 일부 분포하는데, 전나무·편백·해송·삼나무·리기다소나무·오동나무 등이 다양하게 자란다.[4]
역사
하동군 지역은 섬진강 유역의 서남부와 남강 유역의 동부지역으로 갈라져 있는데,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은 이 두 지역에서 고르게 발견되고 있다. 삼한 시대에는 변한의 낙노국(樂奴國)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는 가야 연맹권에 속하여 다사성(多沙城)이라 불렸다.
후에 백제의 세력에 들어가 한다사군(韓多沙郡)이라 불리었는데, 이때 섬진강은 백제와 일본 간의 교통로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에는 757년(경덕왕 16)에 하동군이라 개칭되었다.
성량현(省良縣: 뒤에 金良部曲이 됨)·악양현(岳陽縣: 본래 少多沙縣)·하읍현(河邑縣: 본래 浦村縣) 등의 영현도 모두 이때 개칭된 것이다. 828년(흥덕왕 3)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차 종자를 가져와 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는데, 이때부터 차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의 속군이 되었으며, 악양현은 진주의 영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설치했는데, 이때 군에서 현으로 강등된 듯하다.
1414년(태종 14)에 남해현을 합하여 하남현(河南縣)이라 하고 현령을 두어 진주목에 소속시켰다가 이듬해 다시 하동현으로 분리·환원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세종 때 하동현의 호구수는 340호 1,208인, 악양현은 61호 181인이었다.
1518년(중종 13)에 악양·화개 지방이 진주와 거리가 멀어 관곡의 수납에 어려움이 많다 하여 악양에 의창(義倉)을 설치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에 왜군은 진주성을 함락하고 하동까지 침입해 와 읍성을 불태웠으며, 읍내는 일시에 폐허가 되는 피해를 당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왜군이 섬진강을 통하여 호남으로 진출하면서 주변의 쌍계사 등 대소 사찰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하동에서는 읍의 위치에 대한 논의와 변동이 자주 일어나, 1661년(현종 2)에 읍의 위치를 횡포(橫浦)로 옮겼다가 1679년(숙종 5)에 다시 구읍으로 환원하였다.
1702년(숙종 28)에 읍민들의 진정으로 교통이 편리한 섬진강변의 현재 읍내로 옮기고, 동시에 화개·악양·진답(陳畓)·적량(赤良) 등 4개 면을 하동으로 이속시켰다. 이듬해 다시 진답면의 소재[牛嶺]로 옮겼다가, 1704년(숙종 30)에 진답면 두곡리의 섬진 강변으로 옮기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730년(영조 6)에 읍의 터전이 좁고 평탄하지 못하다 하여, 5리 정도 떨어진 나동(螺洞)으로 옮겼다가 1745년에 부사 전천상(田天祥)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1759년 하동부의 호구 수는 3,832호 1만 7289인이었다. 1895년(고종 32)의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도호부에서 군으로 환원되어 진주부에 소속되었다.
1906년에는 동부의 청암·북천·옥종 지방의 9개 마을이 진주군에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주군에서 편입된 지역을 북천·가종·옥동·청암 등 4개 면으로 통합했으며, 곤양군의 금양면·서면을 편입하면서 서면을 남면으로 개칭하였다. 1915년에는 전라남도 광양군 다압면 섬진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4월 3일부터 동월 20일까지 하동장을 비롯한 진모·옥종·화개 등에서 수많은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이로 인해 많은 인사가 살해 또는 투옥되었다. 1933년에 가종면·옥동면을 합하여 옥종면으로, 금양면·남면을 합하여 금남면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1938년에는 하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8년 10월에는 여수·순천 사건으로 화개·악양·청암 등 3개 면의 일부가 소개되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으며, 한국전쟁 때에도 그 여파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55년 7월 1일에 옥종면 원계리가 진양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66년에는 화개면에 신흥(新興)출장소, 1969년에는 청암면에 위태(葦台)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68년에는 경전선이 개통되었고, 1973년에는 남해고속도로가 군 남부를 관통함으로써 지역발전에 커다란 계기가 마련되었다.
1983년에는 옥종면 중태리가 산청군 시천면에 이속 되었다. 1986년에는 금남면에 갈사(葛四) 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9년 4월 1일에 금성면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이 해 1월 1일에 금남면 술상리가 진교면에, 옥종면 법대리 일부가 병천리에 편입되었다.
1992년에 군청 소재지가 읍내리의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1996년 3월에는 화개면 신흥출장소가, 1998년 9월에는 청암면 위태출장소가 폐지되었다. 2002년 12월에는 청암면 위태리·궁항리·회신리가 옥종면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하동읍과 화개면·악양면·적량면(赤良面)·횡천면(橫川面)·고전면(古田面)·금남면·진교면(辰橋面)·양보면(良甫面)·북천면(北川面)·청암면·옥종면·금성면 등 1읍 12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며 화개면을 중심으로 한 녹차 재배가 유명하다. 섬진강 하구를 중심으로 김 양식과 같은 어업도 성행했는데, 광양제철소 및 관련 산업단지 조성으로 물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면서 전멸하였고, 재첩과 은어잡이가 성행하였으나 바닷물의 역류가 점점 올라오면서 위기상태.
1990년대에 현대제철이 광양과 바로 인접한 하동 금성면 갈사만 일대에 제철소를 조성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이른바 하동 프로젝트. 당시 현대제철은 물론 하동 지역 주민들도 기대를 많이 했었으나 도중에 1997년 외환 위기를 맞게 되어 결국 하동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현대제철 공장은 결국 광양보다 더 멀리 충청도 당진으로 가버렸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화력발전소인 하동화력발전소가 갈사도에 위치하고 있다. 하동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연료는 석탄이다.
하동의 차(茶)는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밤과 대나무도 이름나 있다. 인초·저마·토란·연근·생강과 은행·배·복숭아·포도·감·잎담배·인삼의 재배가 성하고 산지에서는 홉이 재배된다.
축산업으로는 한우·젖소·돼지·사슴·개·산양·양봉이 성하다. 광양만의 개발 때문에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김 양식업이 큰 타격을 받아 폐업되었고, 섬진강 은어잡이도 급격히 감소했다. 수산업 인구가 많고 어선도 많아 연안통발·연성·유자망 어업을 하지만, 규모는 극히 영세하다.
산간지역이라 공업의 발달이 뒤떨어져 있다. 제조 업체수는 41개, 월평균 종사자수는 621명으로 도내에서 가장 적다. 광업으로는 특히 고령토가 많이 산출된다. 고전면과 적량면에 있는 2곳의 농공단지에는 전기전자·기계금속·봉제섬유 등 11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교통
하동군의 교통은 남해고속도로가 군의 남쪽을 통과하고 있으며, 목포·광주·부산·광양 등지를 연결하는 국도가 하동읍과 연결된다. 그밖에 지방도가 군내 대부분의 지역을 연결하여 도로 교통이 비교적 발달하였고 경전선(慶全線) 철도가 지나고 있어 철도 교통은 편리하다.
관광
하동군은 국립공원 지리산의 장엄함과 섬진강의 평화스러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곳으로 곳곳에 경승지와 고찰 및 유적이 많아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하동포구 80리’라고 일컬어지는 섬진강 하류는 흰모래 사장과 울창한 송림으로 절경을 이루는 이른바 한국의 다뉴브이다.
보통 하동포구라 부르며 죽순이 나는 대나무 밭과 흰모래와 소나무가 잘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더구나 봄의 꽃, 가을의 단풍은 원색의 수를 놓고, 강 위에 떠 있는 흰 돛단배는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하동읍 광평리 섬진 강변에는 하동송림이라 하여 2㎞ 길이에 약 5,000평 정도 되는 곳에 300년 이상 된 노송의 숲이 있으며, 섬진강 인도교와 멀리 경전선철도가 바라다보이는 백사장에는 활터가 있다.
유행가가 작곡되어 불릴 정도로 유명한 이 포구는 60여 년 전만 해도 섬진강을 이용한 수운으로 수백 척의 어선이 정박하였으나 지금은 강이 점점 메워져 배가 들어 오기 힘들고 도로 이용이 늘어나 한가하다.
섬진강의 상류 협곡을 따라 올라가면 중국의 악양팔경(岳陽八景)을 연상하게 하는 악양루(岳陽樓)·동정호(洞庭湖)·고소산성 등 빼어난 경승지가 유명하다. 섬진강 지류인 화개천의 화개계곡에 자리잡은 신라의 고찰 쌍계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보물급 불교 문화재가 산재하여 있는데다가 주변에 절경을 이루는 곳이 많다.
특히 쌍계사로 들어가는 화개동구 10리 벚꽃 길은 봄철이면 벚꽃터널로 일대 장관을 이룬다. 쌍계사 북동쪽 4㎞에 있는 불일폭포(佛日瀑布)는 지리산의 유일한 폭포로 사계절 마르지 않으며, 못 위로 날아오르는 학의 모습과 어우러져 속세를 떠난 비경을 안겨 준다.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청학동마을은 우리 고유의 풍습을 지니고 문명을 거부하는 이방지대로 알려져 있다. 이곳 주민들은 학교 교육을 거부하고 서당교육을 받으며 전통적인 한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는 등 전통 생활풍속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곳이 유명해지면서 등산객 등 외부인의 방문이 잦아지고 있어 은둔지로서의 청학동 성격은 달라지고 있다.
그 밖에 진주암 일대의 청학계곡은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하동읍 흥룡리 계곡의 와룡폭포(臥龍瀑布)가 여름의 더위를 식혀 주고, 향교 뒷산의 섬호정(蟾湖亭)은 섬진강의 절경을 조망하기에 좋다. 남해고속도로와 국도가 잘 정비되어 있고 지리산국립공원을 비롯한 오염되지 않은 경승지가 산재하여 관광지로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하동읍 읍내리의 하동문화예술복지회관은 2001년에 개관하였으며 대·소공연장 및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악양면 평사리에 자리 잡은 평사리문학관은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최참판댁 가옥과 연계하여 하동 및 지리산 일대와 관련한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2005년에 건립되었다.
화개면 운수리의 차문화센터는 이 고장의 특산물인 야생차의 홍보를 위하여 2003년에 설립되었다. 2005년 개관한 화개면 운수리의 차 체험관은 녹차 잎따기, 녹차 만들기의 전 과정을 체험하고, 전통다례를 배우는 공간이다.
적량면 고절리의 하동공설운동장은 1992년에 완공되었는데, 면적은 25,124㎡이고 10,000석의 관중석과 인조 잔디 구장으로 되어있다. 고절리에 위치한 하동실내체육관은 면적이 1,152㎡이다.
문화행사 및 축제
문화행사로는 해마다 4월 군민의 날에 맞춰 열리는 하동문화제(河東文化祭)가 있으며, 이 밖에도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 매년 2월 말 경칩 전후로 열리는 고로쇠 축제, 악양 대봉감 축제 등이 있다. 민속놀이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초에서 보름까지 농악을 울리며 풍년을 기원하는 메구치기가 전해져온다.
매년 이루어지는 하동군민의 날 행사는 군민의 화합과 애향심을 고취하기 위해 문화예술 및 농악, 씨름,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와 다양한 체육 경기를 펼치는 한마당 축제이다. 화개면 운수리 차시배지 일원과 진교면 백련리 찻사발 도요지에서 펼쳐지는 하동야생차 문화축제는 정부 지정 문화관광축제로서 야생차의 역사적 전통과 한국의 전통적인 차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이다.
이 고장을 배경으로 쓴 대하소설 『토지』의 문학적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문학예술축제인 토지문학제가 매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 진행된다. 평사리문학대상·토지백일장·시낭송·문학강좌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외에 화개면 화개장터 팔각정에서 이루어지는 고로쇠약수제와 화개장터 일원에서 이루어지는 화개장터벚꽃축제 등이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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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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