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김해시(金海市)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동부에 있는 시이다. 낙동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세기 중엽부터 4세기 말까지 가야 연맹체의 중심국이었던 가락국(금관가야)의 도읍지였다.[1]
개요[편집]
김해시는 동경 128°49′~ 128°56′, 북위 35°10′~ 35°17′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밀양시·양산시과 접하고, 동쪽은 낙동강 건너 양산시·부산광역시 강서구, 남쪽은 창원시 진해구, 서쪽은 창원시 의창구·성산구에 접하고 있다. 면적은 463.36㎢이고, 인구는 2023년 6월을 기준하여 533,009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 6개 면, 12개 행정동(34개 법정동), 246개 행정리(67개 법정리)이다. 시청은 경상남도 김해시 부원동에 있다.
김해(金海)의 한자에는 바다 해(海)가 들어있지만, 바다가 없는 내륙 지역이다. 과거엔 바다를 끼고 있었지만 바다와 만나는 지역들을 부산에 모두 뺏겨버렸다. 신라, 가야 시절에 쇠가 바다처럼 많이 난다고 하여 김해라고 이름 붙은 것이다.
부산의 위성도시 중 하나이지만 단순한 베드타운으로는 보기 힘든 면이 있는데 과거, 부산에 비해 싼 지가 때문에 김해로 이전한 많은 공장들 때문에 다른 위성도시와는 다르게 부산에서 김해로 출근하는 사람이 더 많아 아침에는 김해 방향, 저녁에는 부산 방향으로 정체가 극심하기 때문이다.[2][3]
자연환경[편집]
시의 북부를 관류하다가 동북부에서 방향을 바꾸어 남류하는 낙동강(洛東江)이 밀양시·양산시 및 부산광역시와의 자연적 경계를 형성한다. 지세를 보면, 시의 북반부는 낙동강의 유수에 의해 침식되어 단절되었다가 다시 돌출된 태백산맥의 지맥이 지나가 평지가 적고, 무척산(無隻山, 700m)·석룡산(石龍山, 495m)·금동산(琴洞山, 463m)·신어산(神魚山, 630m) 등이 솟아올랐으나 차츰 고도가 낮아져 하구 쪽의 평야부와 맞닿아 있다. 대동수문은 밀물 때 바닷물이 흘러드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하며, 관개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김해평야는 낙동강의 상·중류에서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되어 이룩한 대한민국 최대의 삼각주상의 충적 평야이다
서쪽에는 북에서 남서쪽으로 해안산맥이 연속되어 비음산(飛陰山, 510m)·용지봉(龍池峰, 728m)·대종산(大宗山, 655m)·불모산(佛母山, 802m)·팔판산(八板山, 801m)·화산(花山, 798m)·굴암산(窟巖山, 621m)·보배산(479m) 등이 창원시와의 동부 경계를 이루며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중앙부는 낙동강 삼각주의 거대한 평야부를 이루어 이 시의 시가지와 일부의 농경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동부는 북쪽에서 낙동강이 유로를 바꾸어 부산광역시와 경계를 이루며 남류하다가, 중앙의 삼각주 평야부를 배후지로 한 뒤 하구 부근의 명지도에 이르러, 유로가 두 갈래로 나뉜 동부의 본류와는 달리 폭이 현저히 좁아진 지류로서 남해에 도달한다. 낙동강에 유입되는 시역내의 소하천으로는 주촌면 덕암리 쪽의 황새봉(393m)에서 발원해 주촌면·장유면을 관류하며 농경지를 형성하고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조구천(潮溝川)과, 진례면 산본리의 남쪽 용지봉에서 발원해 진례면·생림면을 북류하며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화포천(花浦川)을 비롯해 동쪽의 대조천·예안천, 시 중심부의 해반천, 서쪽의 진례천·주촌천·죽동천, 서남쪽의 내삼천·죽동천 그리고 남쪽의 율하천·사촌천 등이 있다.
기후는 대체로 해양성의 온난다습한 기후를 보이는데, 연평균기온 14.4℃, 1월 평균기온 0.9℃, 8월 평균기온 25.6℃이며, 연강수량은 1,427㎜이다. 서리는 10월 말부터 내려 이듬해 3월 초순에 끝난다. 지질구조는 중생대 경상계 지층으로 덮여 있다.[4]
역사[편집]
가락국(駕洛國)의 도읍지였던 김해는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농경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인간생활의 터전이 되었는데, 부원동 등의 패총과 고인돌(支石墓)·고분군 등이 각 대학 박물관과 관계 연구기관에 의해 발굴되어 도처에 산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2세기경에 고대국가의 틀이 잡히기 시작해, 삼한 시대에는 구야국(狗耶國)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했고, 그것이 가락국으로 발전해 6가야국(加耶國)의 맹주국이 되었다. 서기 42년(삼한 시대)에 김수로왕(金首露王)이 가락국(金官加耶)를 건국해 10대 491년을 이어 가야연맹체의 중심세력이 되었으며, 532년(법흥왕 19)에 구해왕(九垓王)이 신라에 투항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가, 680년(문무왕 20)에 다시 금관소경(金官小京)이 설치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초인 940년(태조 23)에 김해소경은 다시 김해부가 되었다가 임해현(臨海縣)으로 강등되었으나 곧 임해군으로 승격했으며, 971년(광종 22)에 주도호부(金州都護府)로 승격했고, 1000년(목종 3)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개칭하였다. 1012년(현종 3)에 김주(金州)로 개칭해 방어사를 두었으며, 1018년 의안(義安: 지금의 창원)·함안(咸安)과 칠원(漆原 : 지금의 함안군 칠원)·합포(合浦: 지금의 창원시 마산합포구)·웅신(熊神: 지금의 창원시 웅천)의 3현을 속군(현)으로 삼았다. 1078년(문종 32)에 동남해선병도부서사본영(東南海船兵都部署使本營)을 김해에 설치해 동남해 방비의 기지가 되었는데, 이 본영은 이후 존폐를 거듭하다가 1368년(우왕 4)에 폐지되었다. 1271년(원종 12)에 밀양에서 일어난 반란을 방어사 김훤(金晅)이 평정한 공으로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했으나, 1276년(충렬왕 2) 안렴사(按廉使) 유호(劉顥)가 살해되는 사건으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08년에 다시 김주목(金州牧)으로 승격되고, 1310년(충선황 2)에 김해부가 되었다.
김해부는 조선 초인 1413년(태종 13)에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로 승격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세종 때 김해부는 1,290호 1만 6642명이 살았으며, 웅신현은 63호 641명이 살고 있었다. 1467년(세조 12)에 지방군제 개편으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 관하의 김해진관(金海鎭管)이 설치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4월 19일에 김해성이 왜병에게 포위되자 부사는 성을 버리고 탈출했으나 고을 선비인 송빈(宋賓)·이대형(李大亨)·김득기(金得器)·유식(柳湜) 등이 의병을 일으켜 대적하다 순절하였다.『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에 따르면, 1759년(영조 35) 김해도호부의 호구수는 8,511호에 인구수는 3만 3015명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편으로 김해군이 되었으며, 1906년대산면(大山面)을 창원군으로 이관하고 양산군 대저면(大渚面)을 편입하였다. 1910년 23개 면을 14개 면으로 통합하고, 1918년좌부면(左部面)과 우부면을 김해면으로 통합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장유면 무계리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시위를 전개하였다. 1931년 11월 1일김해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33년 낙동대교가 준공되어 부산 구포와 연결되었으며, 1942년 10월 1일진영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된 해에 대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6년 김해국제공항이 개설되었으며, 1978년 2월 15일 서낙동강 강동지역인 대저읍·명지면과 가락면 일부가 부산직할시 북구로 이관되었고, 다시 1989년 1월 1일 가락면·녹산면이 부산직할시에 이관되었다. 1976년 4월 20일부터 중부·동부·서부출장소를 설치했고, 1979년 5월 1일 다시 북부출장소를 설치해 4개의 출장소를 운영해 오던 중, 1981년 7월 1일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해 김해군 1개 읍 9개 면과 김해시로 분할되었다가, 1995년 5월 10일 도농통합에 따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김해시가 되었다. 1998년 칠산동과 서부동이 칠산서부동으로 통합한 뒤 1읍(진영읍) 7면(장유면·주촌면·진례면·한림면·생림면·상동면·대동면) 9동(동상동·회현동·부원동·내외동·북부동·칠산서부동·활천동·삼안동·불암동) 체제를 유지하였다. 이후 장유면을 중심으로 한 장유신도시와 율하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2013년 7월 장유면을 폐지하고 장유 1동·장유 2동·장유 3동을 신설하였다.
산업[편집]
기후가 따뜻하고 인근에 대도시가 있어 일찍부터 도시 근교 농업이 발달하였으며 우리나라 처음으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온실농업이 시작된 고장이다. 전국 최대의 화훼재배단지로 연간 3억 본의 화훼를 생산하여 일본,동남아, 중국 등지로 수출하고 있고 진영 단감과 칠산 참외는 비타민과 당도가 높아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소비자의 건강과 환경오염 예방을 위한 고품질의 친환경농산물 생산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남동 임해 공업벨트를 중심으로 대도시와 연접하고 있고 김해국제공항, 부산항, 고속도로 등 편리한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물류유통과 인력 수급, 원자재 확보의 이점 등으로 현재 5,2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기계, 자동차, 금속 분야가 특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메카노 21 기계 산업과 의생명산업 등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집중 육성해 나가고 있다.
산업단지로는 어방공업지구, 지내공업지구, 안동공업지구, 지내준공업지구, 나전농공단지, 본산준공업지구, 봉림농공단지, 진영농공단지, 내삼농공단지, 덕암지방산업단지, 병동농공단지 총 11개 산업단지가 있다.
주촌과 어방동에 대단위 축산물 도매시장이 있고 장유에 농산물종합유통센터가 건설되는 등 유통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교통[편집]
부산·마산·창원·진해·대구의 중간에 위치하여 교통로가 발달하였다. 남부로 남해고속도로가 동서로 통과하고, 중앙으로 부산·창원·마산을 연결하는 국도가 통한다. 2004년 12월 기준 고속도로 4개 노선을 포함하여 총 2,275개 노선에 1,546km의 도로가 개설되었으며 도로 포장률은 95%이다.
관광[편집]
낙동강 하류의 저평한 평야에 자리 잡은 이 고장은 수향(水鄕)이자 고대 변한과 옛 가락국의 영토로 유형·무형의 각종 문화재가 많은 역사적인 고장이다. 부산광역시와 접해 있는 데다가 낙동 강변의 경치가 수려하고 철새도래지·낚시터 등이 산재해 공휴일에는 수많은 탐조 유람객이 찾아든다.
시의 중앙에 솟은 기암괴석의 신어산은 소금강으로 불릴 정도로 절경이며, 이 곳에서 바라보는 낙동 강변과 삼각주평야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신어산과 양산 토곡산 사이의 깊은 협곡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가는 낙동강은 조선 시대에 황산강(黃山江)으로 부르던 아름다운 강으로, 흰 모래사장과 과수원이 줄지어 있어 장유면 대청리의 장유계곡과 함께 ‘한국의 다뉴브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서낙동강 일대는 전형적인 수향으로, 도요새·백조·청둥오리·가마우지 등 100여 종의 철새들이 찾아드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부산의 전원지역으로 교통이 편리한 데다 공해에 오염되지 않은 관광자원이 풍부해 앞으로 관광지로 크게 부각될 전망이다.
1998년에 개관한 국립김해박물관은 구지봉(龜旨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가야(加耶)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기 위해 개관되었으며 부산·경남 지역의 선사시대의 문화과 가야의 성장 기반이 된 변한(弁韓)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2006년 개관한 봉항동유적패총 전시관은 회현리 패총으로 유명한 봉황동유적의 패총 발굴면을 실물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2005년 개관한 김해문화의 전당은 내동에 자리 잡고 있으며 최첨단 무대 시설의 대·소공연장과 전시관, 영상미디어센터, 빙상장을 갖춘 스포츠센터 등 다양한 문화·레저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예술공간이다.
내동에 위치한 김해 시민스포츠센터는 약 만평에 이르는 종합스포츠시설로서 수역과 빙상을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를 관람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봉황동에는 김해공설운동장이 위치하고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매년 개최되는 가야세계문화축전(GIFC)은 김해시 가야 유적지 일원에서 이루어지는 가야문화를 계승하고 이 고장의 예술적 가치를 드높이려는 수준 높은 예술축제이다. 가락문화제는 김수로왕의 창국 정신을 기리고 조상이 남긴 문화 유산의 얼을 되새기며 지역민의 화합과 단결을 위한 행사로서 민속행사, 축제 행사, 부대행사로 이루어진다. 매년 10월에 개최되는 김해예술제는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의 욕을 높이고 양질의 문화예술 작품들을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이 고장 유일의 순수예술축제이다. 이외에도 가락문화제, 진영 단감 축제, 김해 분청 도자기 축제 등이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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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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