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군
거창군(居昌郡)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서북부에 있는 군이다. 경상북도, 전라북도와 마주하고, 김천시, 장수군, 무주군, 성주군, 합천군, 산청군, 함양군 등 총 7개 시, 군과 경계를 이룬다.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3대 국립 공원의 가운데 자리잡아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기온의 일교차와 연교차가 크기 때문에 농특산물로 사과가 유명하다. [1]
개요[편집]
거창군은 동경 127°39′∼128°06′, 북위 35°31′∼35°56°에 위치한다. 면적은 803.13㎢이고, 인구는 2023년 6월을 기준하여 60,356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1개 면, 267개 행정리(94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에 있다.
거창은 예부터 아름다운 숲, 밝은 곳, 매우 넓은 들, 넓은 벌판, 즉 넓고 큰 밝은 들이란 뜻에서 거열(居烈), 거타(居陀), 아림(娥林)으로 불리어 오다가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거창(居昌)으로 처음 불린 후 주변영역과 분할, 합병되면서 여러 지명으로 부르다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창읍에 인구가 많아 거창시 승격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이미 1980년대에 3만 명대 후반에 도달하여 조만간 시로 승격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1995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만 해도 읍내 인구가 5만 명을 넘으면 군과 분리되어 거창시 거창군으로 분리가 가능했다. 그런데 읍의 인구는 그때부터 30년이 지난 현재 변화가 없다.
거창군과 함양군, 합천군을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합천읍이나 함양읍의 인구가 적고, 세 지역을 합쳐도 인구가 15만 명 이하이기 때문에 시 승격은 불가했다.
경상남도지만 부산광역시, 창원시, 진주시보다는 대구광역시와의 교류가 더 많다. 거창은 거리상으로 김천시, 대구와 가깝기 때문이다.[2][3]
자연환경[편집]
경상남도 최서북부에 위치하며, 소백산맥의 준령을 경계로 경상북도·전라북도와 접경하고 있으며 한국 남부지방에서는 유일한 고원 지대인 진안고원에 연속된 산지 지대의 일부이다. 지세상의 특징은 군의 중남부가 대체로 해발 200m 내외의 저평지를 이루며 잔여 부분은 대부분이 중·저산성 산지부를 형성한다. 고산 지대의 산록에는 침식된 저산성 산지가 다수 분포하고 있으며, 화강암이 침식된 곳도 도처에 산재되어 있다.
북쪽에 덕유산(德裕山, 1,591m)·삼봉산(三峰山, 1,254m)·국사봉(國士峰, 875m)·수도산(修道山, 1,316m)·단지봉(丹芝峰, 1,327m)·좌일곡령(佐一谷嶺, 1,258m)·두리봉(頭利峰, 1,135m) 등의 비교적 높은 산과 험준한 고개가 전라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연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서쪽에는 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기백산(箕白山, 1,331m)·금원산(金猿山, 1,353m) 등이 연이어져 있고, 동쪽에는 의상봉(義湘峰, 1,046m)·비계산(飛鷄山, 1,126m)·오도산(吾道山, 1,134m)·수성산(宿星山, 899) 등이 전개되어 각각 함양군 및 합천군의 군계를 이루고 있다. 한편 남쪽은 비교적 낮은 보록산(保錄山, 767m)·철마산(鐵馬山, 705m)·갈전산(葛田山, 763m) 등으로 둘러싸인 산간분지에 해당되며 내부의 대분지 속에도 호음산(虎陰山, 930m)·건흥산(乾興山, 563m)·금귀봉(金貴峰, 827m)·보해산(普海山, 912m) 등이 분포되어 작은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위의 산들은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黃江)·남강(南江)·감천(甘川)과 금강 등의 원천이 되고 있다. 거창분지에 모이는 영천(瀯川)과 아월천(阿月川) 황강을 이루면서 대산천·가천천과 합류해 합천댐으로 흘러든다.
경상남도 내륙 지방에 자리 잡은 거창군의 기후는 대륙성 기후의 특성이 현저하며, 연평균기온 13℃, 1월 평균기온 1℃, 8월 평균기온 26℃이며, 연 강수량은 1,729㎜, 평균습도 68.0%이다(2008년 현재).
지질은 선캄브리아기 편마암의 변성암을 기반으로 화성암류가 주를 이루며, 화강암과 제4기 충적층도 일부 산재한다. 북단인 고제면 궁항리 일대에 화강암과 편마암이, 주상면과 위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과 위천면 상천리 금원산록 일대에는 화강암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토양은 갈색 산림토가 지배적이며 표층은 갈색, 하층은 황갈색을 띤다.
식생은 냉대림·온대림·고산식물 등이 혼재하며, 진달래·싸리·소나무·참나무·오리나무·닥나무·대나무 등이 낮은 산지에, 적송·낙엽송·주목 등이 높은 산지에 분포되어 있다.[4]
역사[편집]
낙동강의 지류 황강 상류에 넓게 펼쳐진 이 지방에 처음으로 인류의 발자취가 미친 것은 신석기시대 말기로 추측된다. 최근에 이 지역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는 강을 따라 올라온 최초의 주민들이 남긴 유물일 것이다. 청동기시대에 와서는 인류가 이 지방 거의 전지역에 널리 퍼져서 각처에 선돌·고인돌 같은 유적을 남겼다. 삼한 시대 변진 고순시국(古淳是國)을 이 곳으로 비정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초기부터 거타(居陀) 또는 거열(居烈)이라는 이름으로 문헌에 나타나는데, 이름이 진주의 옛 이름과 똑같아서 혼동을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서부 경상남도 지방을 총칭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낙동강 유역 각지에 분립한 가야연맹 중의 하나가 이 지방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은 거창읍 개봉동과 마리면 말흘리 고분군의 규모와 여기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지리적으로 백제에 인접해 그 세력권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가 가야제국을 차례로 병합해 그 세력이 이 지방에까지 미치게 된 7세기 초에는 양국이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피나는 쟁탈전이 벌어졌고, 현재 이 지방에 남아 있는 여러 산성들은 대개 이 때의 전장이라 전해지고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685년(신문왕 5) 전국을 9주로 개편하면서 거타주를 나누어 진주에 청주(菁州)를 설치하고 이 곳에 거열군(居烈郡, 또는 居陀郡)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이 곳을 거창군으로 개칭하였다. 또 영현(領縣)인 남내현(南內縣)을 여선현(餘善縣: 지금의 위천지방)으로, 가소현(加召縣)을 함음현(咸陰縣: 지금의 加祚地方)으로 개칭했으며, 마리지방은 이안현(利安縣)으로 고쳐서 천령군(天嶺郡: 지금의 함양군)에 소속시켰다.
고려 초 함음현을 원래의 이름대로 가소현으로 환원하고 여선현을 감음현(感陰縣)으로 개칭하였다. 1018년(현종 9) 합천이 주로 승격하면서 거창현으로 강등되어 가소현·감음현·이안현과 함께 합주(陜州)에 소속되었다. 1161년(의종 15) 고을사람의 무고사건으로 감음현을 부곡으로 개편했다가 1391년(공양왕 3) 현을 복구하면서 이안현을 감음현에 병합하였다. 1172년(명종 2)에는 거창현에 감무를 두었다. 1271년(원종 12) 거듭되는 왜구의 침범으로 거제현이 가소현으로 피란 오자 가소현을 거제현으로 이속하였다.
조선 초 1414년(태종 14) 가소현에 우거(寓居)한 거제현과 거창현을 제창현(濟昌縣)으로 통합했다가 이듬해 거창현으로 환원해 현감을 두었다. 1415년 향교를 창설하였다. 1432년(세종 14)에 거제현이 본도로 수복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세종 때 거창현의 호구수는 505호 3,150인이었다. 1470년(성종 1) 왕비의 고향이라 해 군으로 승격했다가 중종 초에 현으로 환원했으며, 1658년(효종 9)에도 안음현(安陰縣)에 합했다가 2년 뒤에 다시 환원하였다. 1728년(영조 3)에 노론의 정치독점에 반대한 정희량(鄭希亮)이 청주의 이인좌(李麟佐), 합천의 조성좌(曺聖佐)와 통모해 안음현에서 반란을 일으켜 거창지역까지 점령하였다. 1729년에는 무신란(戊申亂)으로 폐현이 된 안음현의 북부를 편입해 거창부(居昌府)로 승격하였다. 1506년(중종 초) 단경황후 신씨의 폐위로 다시 거창현으로 격하되었으나 1739년(영조 15) 단경왕후 복위로 거창부로 승격하고, 1788년(정조 12) 한때 현으로 강등되었으나 1799년 부로 환원하였다. 1759년(영조 35) 거창부의 호구 수는 4,263호 2만31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거창군이 되고 1914년 군의 폐합에 따라 마리·위천·북상의 3면을 안의군에서, 신원면(神院面)을 삼가군에서 편입해 13개 면이 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김병직(金秉直)·어명준(魚命俊) 등이 양기리 장날에 거사했는데 3,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1937년 거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말기의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의정부참찬으로 있었던 곽종석(郭鍾錫)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 폐기를 상소했고 경술국치 뒤에는 고향인 거창에 은거하면서 3·1운동 때는 전국 유림을 규합해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는 등 구국운동과 후진양성에 헌신하였다. 1957년 월천면이 거창읍으로 편입되었고, 1973년 함양군 안의면 진목리, 춘전리가 남상면으로 편입되었으며, 현재는 거창읍, 주상, 웅양, 고제, 북상, 위천, 마리, 남상, 남하, 신원, 가조, 가북 등 1읍 11면의 행정구역으로 되어 있다.
1949년 8월 공비의 거창읍 습격사건과 이듬해의 6·25전쟁으로 읍내의 공공시설과 시가지가 큰 피해를 입었으며, 1951년에는 신원면에서 이른바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나 군민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1957년에 월천면이 거창읍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함양군 안의면의 춘전리·진목리가 남상면에 편입되었다. 1984년 영남과 호남을 잇는 88올림픽고속도로(현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이 지역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1988년 8월 1일거창읍 상동이 상림리로, 하동이 중앙리로, 동동이 대동리로, 금천동이 금천리로 개칭되었다. 1995년에는 일부 마을의 지명이 변경되기도 하였다.
현재 거창읍 및 주상(主尙)·웅양(熊陽)·고제(高梯)·북상(北上)·위천(渭川)·마리(馬利)·남상(南上)·남하(南下)·신원(神院)·가조(加祚)·가북면(加北面) 등 1읍 11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한국 대다수 군지역이 그러하듯 전통적으로 농업이 주산업이 되어왔다. 내륙 산간지역이 많지만 거창읍 일대는 지대가 낮은 편이고 비옥하여 쌀 생산이 많다. 특산물로는 사과, 딸기, 한우, 포도가 알려져 있다. 특히 기온의 일교차와 연교차가 심해 사과 맛이 뛰어나다. 그래서 '거창한 사과'라고 홍보한다. 사과 말고도 쌀에도 '거창한 쌀'이라고 붙여서 판매한다.
1차산업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농공단지를 유치하여 소규모 공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서울우유의 거창공장도 있다. 그리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승강기 산업 밸리를 군내에 구축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인근에 대도시도 없는데다 시설 여건도 부족하여 승강기 관련 업체들의 참여가 지지부진한 상황.전기신문보도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례없는 '승강기 전문 교육 기관'인 한국승강기대학교는 이 승강기 산업 밸리 사업의 일환이다.
이미 오티스 엘리베이터, 미쓰비시 엘리베이터는 인천에, 현대 엘리베이터와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는 충청도에 자리잡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창읍내는 로터리, 법원사거리, 대동로터리 이 3곳의 위치만 제대로 파악하면 길 잃어버릴 일이 없었는데 상동 택지지구, 소만 택지 지구 등 신시가지가 조성되어 시가지 범위가 넓어졌으므로 주요 포인트를 더 숙지해야 한다.
군 지역으로는 드물게 서브웨이, 크리스피 크림 도넛, 푸라닭, 버거킹 피자헛 등 도시권에 주로 분포하는 프렌차이즈들이 읍내에 존재하고 있고 군 단위에서 보기 힘든 KB국민은행, 신한은행도 있다.
교통[편집]
고속도로는 광주대구 고속도로(거창 IC, 가조 IC)를 이용할 수 있다. 광주대구 고속도로를 통한 대구광역시 방면 교통 수요가 많다. 신원면 일대에 함양울산 고속도로 남거창 IC가 생길 예정으로, 부산과 경남 동부와의 접근성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국도는 3번 국도, 24번 국도, 26번 국도, 59번 국도가 있다.
철도는 없으나 추후 달빛고속철도가 추진됨으로써 거창역이 신설될 예정이다. 한가지 호재로서 전북에서는 전주 김천간 철도 사업이 잘 되고 있지 못하자 별도로 새만금과 직선으로 잇는 차원에서 장수군 지역구 전북도의원이 새만금-전주-장수간 철도를 만들어 달빛고속철도와 연계하자고 제안했지만 바로 번암면을 연결할지 장계면거쳐 거창으로 이어질지 두고볼 일이다.
관광[편집]
경치 좋고 인심 좋은 곳으로 이름난 이 고장에는 수려한 덕유산의 산세에다가 옛 신라·백제·가야의 완충지대였던 관계로 유적지도 많아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덕유산에서 흘러내리는 위천은 맑은 계곡과 곳곳에 절경을 이루는 기암괴석이 많아 예로부터 풍류를 즐기기에 알맞은 곳으로 유명하다.
거창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13㎞ 지점에 자리잡은 수승대는 이 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위천의 맑은 계곡에 섬같이 우뚝 솟은 수승대는 이황(李滉)이 명명한 거북형의 넓은 암반으로 주위에 노송이 울창하고 구연서원·관수루·약수정 등의 누각이 건립되어 특히 여름철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이 곳에서 위천을 따라 내려가면 맑은 계곡물과 울창한 송림, 구름다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는 건계정에 이르게 되고, 북쪽 산록에는 자연동굴에서 샘이 솟아나오는 거열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 밖에 사선대·가조폭대·가북낙모대·심노정·육모정·인풍정 등도 명승지로서 이름난 곳이다. 광주대구고속도로를 이용한 관광객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김천리 에 자리 잡은 거창박물관은 전시실과 강당을 갖추고 있으며 이 고장의 독지가인 최남식(崔南植)과 김태순(金泰淳)이 기증한 유물을 바탕으로 1988년에 개관하였다. 김천리의 거창군문화센터는 군민의 여가생활과 문화적 혜택을 위해 2001년에 개관하였으며 실내공연장과 야외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대현리의 거창사건역사교육관은 거창사건희생자합동위령사업의 일환으로 2003년에 개관하였으며 거창사건관련 사료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시되고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1989년 시월 연극제로 출발한 거창국제연극제는 황산리 수승대 군민 관광지 일대에서 개최되는 국내 최대의 야외연극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60년에 시작된 아림예술제는 이 지역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종합예술축제이다. 위천천 둔치 및 읍 일대에서 이루어진다. 거창군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거창평화 인권예술제는 한국전쟁 관련 민간인 유족들에 대한 지원과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2000년부터 시행된 학술제 및 문예활동 등의 행사이다.
이 밖에 거창 사과 축제가 유명하며 주요 민속놀이로는 돌싸움이 전해지며, 민요로는 농사 지을 때 부르는 모찌기 소리, 논매기 소리, 삼삼기 소리 등이 전해온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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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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