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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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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탈린 위치

탈린(에스토니아어: Tallinn, 러시아어: Таллин, 독일어: Reval)은 에스토니아수도이며 발트해핀란드만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로서 공업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에스토니아 인구의 약 1/3인 약 45만 명이 거주하고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탈린은 발트해의 실리콘밸리라 불릴 정도로 정보기술(IT)산업이 발달해 있다. 옛 이름은 레발(Reval)인데 1918년 에스토니아가 독립하면서 '탈린'으로 명명하였다. 탈린은 2011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됐다.[1]

개요[편집]

탈린은 에스토니아 북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행정구역상 하리우주에 속하며 에스토니아의 정치, 금융, 산업, 문화, 교육, 연구의 중심이다. 탈린은 핀란드와 가까워 헬싱키 남쪽 불과 80km 거리에 위치하며 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서쪽으로 320km, 스웨덴 스톡홀름의 동쪽으로 380km 떨어져 있다. 탈린항은 발트해 지역에서 큰 항구 가운데 하나이다. 옛 항구는 10세기 이래 편리한 항구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화물 운송은 탈린 동쪽의 무가화물항과 탈린 서쪽 팔디스키항으로 옮겨갔다. 탈린의 산업으로는 조선, 기계, 금속가공, 전자, 섬유 등이 있다. 조선 회사인 BLRT그룹은 탈린에 본사와 몇 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항공기 정비 전문인 에어메인티넌스에스토니아, AS팬에이이애틱메인티넌스사가 모두 탈린공항에 회사가 있다. 탈린은 문화 중심지로서 탈린에서 열리는 에스토니아가요페스티벌은 유네스코무형문화재목록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큰 합창 축제 가운데 하나이다. 탈린의 구시가지에는 올레비스테교회, 성니콜라우스교회, 알렉산데르네브스키성당 등 오래되고 웅장한 교회 건축물들이 있고 에스토니아국립오페라극장, 톰페아성 같은 유서 깊은 명소가 있다. 탈린은 매년 43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이는 최근에 꾸준히 늘어난 숫자이다. 탈린 구시가지는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주요 관광지이다. 에스토니아해양박물관, 탈린동물원, 카드리오르그공원, 에스토니아야외박물관 등도 관광 명소이다.[2]

탈린은 역사적인 구시가지와 첨단적 현대식 건물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탈린은 역사적으로 톰페아, 구시가지, 구시가지 남쪽의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톰페아는 일명 성당 언덕으로, 중앙 권력이 자리한 곳이었다. 맨 처음에는 덴마크 지배자들이, 그 다음에는 독일기사단의 장군들이, 그리고 스웨덴러시아의 지배자들이 그곳에서 지냈다. 톰페아는 1877년까지 별도의 도시였고 귀족들의 거주지였다. 현재 에스토니아의회, 정부, 대사관이 있다. 구시가지는 옛 한자동맹의 도시로 중세에 상업의 중심지였다. 탈린 구시가지는 고풍스런 분위기의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해 관광객이 많이 오며 구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다만, 구시가지 지역은 규모가 작은 편으로 인구도 4,000명이 채 안된다. 구시가 지역은 크게 서쪽의 톰페아 언덕과 동쪽의 저지대로 나눌 수 있는데,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성당과 톰 교회, 에스토니아 국회(톰페아 성)가 톰페아 언덕에 위치해 있고 동쪽 저지대에는 라에코야 광장과 올레비스테 교회가 위치해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약국 중에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이곳에 있다. 이 약국은 1422년에 개업했다. 구시가지의 동남쪽으로는 신시가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동북쪽으로는 항구가 위치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러시아인이 에스토니아인보다 많았고, 지금도 탈린은 러시아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인구의 40%가 러시아인인데 라스나매에 같은 지역은 여전히 러시아인이 에스토니아인보다 많다. 러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탈린시내에서는 러시아어와 에스토니아어가 함께 쓰이고 있고 러시아어와 에스토니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3]

지리 및 기후[편집]

탈린은 에스토니아 북서부의 핀란드만 남쪽 해안에 위치한다. 탈린에서 가장 큰 호수는 윌레미스테호로 탈린의 식수원으로 쓰인다. 서쪽에 있는 하르쿠호수는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탈린의 동쪽 외곽에 피리타강이 흐른다. 역사적으로 해리아페아강이 윌레미스테호수에서 흘러나와 도시를 통과해 바다로 흘러갔으나 이 강은 1930년대에 방향이 돌려지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석회암 절벽이 시내에 있다. 톰페아, 라스나매, 아스탕구에서 석회암 절벽을 볼 수 있다. 탈린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탈린 남서쪽의 넘메 지역 히우에 있고 이곳의 해발 높이는 64m이다. 해안의 길이는 46km이다. 해안에는 코플리반도, 필리아사레반도, 카쿠매반도 등 세 개의 큰 반도가 있다. 탈린에는 피리타, 스트로미, 카쿠매, 하르쿠, 피카카리 해변 등 많은 해변이 있다.

탈린은 습윤한 대륙성 기후 지역에 있다. 겨울은 춥지만 해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위도에 비하면 포근하다. 겨울에 기온은 결빙점 가깝게 가곤 하지만 따뜻한 기간이 기온을 영상으로 밀어올려 때로는 5℃ 이상 되기도 한다. 찬 공기 덩어리가 기온을 영하 18°C 아래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동지에는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겨우 6시간뿐이다. 가장 더운 달은 보통 7월로 평균 기온은 17.2°C이다. 하지에는 18시간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해가 있다. 탈린은 연평균 618mm의 강수량으로 1년 내내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이나 3월과 4월은 건조하여 평균 30mm이고, 7월과 8월은 가장 습한 달로 74mm의 강수량을 보인다.

역사[편집]

탈린 시내 중심에 약 5천 년 전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고고학자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이곳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3천 년 시기의 것이고 줄무늬토기는 기원전 2,500년 시기의 것이다. 1050년 무렵에 최초의 요새가 탈린의 톰페아 지역에 만들어졌다. 탈린은 러시아와 스칸디나비아 사이의 중요한 무역항이었다. 탈린은 기독교가 이 지역 사람들에게 강요되었던 13세기 초의 북방십자군 시기에 튜턴기사단과 덴마크왕국의 중요한 확장 목표지였다. 1219년에 탈린과 북부 에스토니아에 대한 덴마크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1285년에 레발로 더 널리 알려졌던 탈린은 한자동맹의 북쪽 맨 끝 도시가 되었다. 한자동맹은 북부 유럽에서 독일어가 지배적인 도시들의 상업적, 군사적 동맹체였다. 덴마크왕은 레발과 다른 북부 에스토니아 땅을 1346년에 튜턴기사단에 팔았다. 중세에 레발은 서유럽, 북유럽러시아 사이의 교역로가 교차하는 곳으로 발전했다. 중세 전성기에 인구가 약 8천 명이었던 레발은 성곽과 66개의 탑으로 둘러싸여 잘 요새화된 도시였다. 1710년에 탈린은 스웨덴령 에스토니아, 리보니아와 함께 제정러시아에 항복했다. 지방의 법원 등 자치정부 기관들은 제정러시아 안에서 에스토니아의 행정단위로서 자치를 유지했다. 레발의 치안판사는 1889년에 폐지되었다.

19세기에 항구가 중요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공업화가 전개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러시아화 조치가 강화되었다. 레발 해안 밖에서 1908년 6월에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차르와 알렉산드라 여제는 자녀들과 함께 그들의 아저씨와 아주머니인 영국의 에드워드 7세와 알렉산드라 왕후를 만났다. 이는 전해인 1907년에 맺은 영국과 러시아의 우호조약을 왕실이 확인한 행위인 동시에 영국의 군주가 최초로 러시아를 방문한 사례였다.

1918년 2월 24일 에스토니아 독립선언이 레발에서 있었다. 탈린은 독립한 에스토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에스토니아는 붉은 군대에 점령당했고 1940년에 소련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년 뒤에 나치독일에 점령되어 1944년까지 독일군의 지배하에 있었다.

독일군이 탈린에 쳐들어왔을 때 탈린시에는 약 천 명의 유대인이 남아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유대인은 나치에 의해 홀로코스트 때 죽었다. 1944년 독일이 물러간 후 탈린은 다시 소비에트에 점령당했다. 에스토니아는 소련에 편입되고 탈린은 공식적으로 소련 내 에스토니아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에서 요트 경기가 탈린 북동쪽의 피리타에서 열렸다. 탈린텔레비전탑, 올룸피아호텔, 새 우체국, 레가타센터 같은 건물들이 올림픽을 위해서 지어졌다. 1991년에 독립된 민주에스토니아국이 다시 수립되었고 탈린은 현대적 유럽 수도로서 발달했다.[4]

경제[편집]

탈린은 에스토니아의 경제와 상업의 수도이다. 탈린은 고도로 분화된 경제를 가지고 있고 특히 정보기술, 관광, 운송 등에 강점이 있다. 에스토니아 국내총생산(GDP)의 반 이상이 탈린에서 만들어진다. 오랫동안 항구와 수도로서 존재한 데 더해서 탈린은 정보기술이 발달해왔다. 2005년 12월 13일 뉴욕타임스는 에스토니아를 발트해의 실리콘밸리라고 했다. 탈린의 자매도시 중 하나가 미국 캘리포니아실리콘밸리 로스개토스이다. 스카이프는 탈린에서 시작된, 가장 유명한 에스토니아 스타트업 중 하나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소비에트 시기 사이버네틱스연구소에서 비롯되었다. 최근에 탈린은 서서히 유럽의 주요 IT 중심지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나토의 협동사이버방위우수연구소를 비롯한 IT 기관들이 탈린에 있다. 거라지48, 게임파운더스 같은 스타트업 육성기관들이 에스토니아와 세계 여러 나라의 신생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탈린은 에스토니아의 금융 중심이고 스칸디나비아-발트 지역의 강력한 경제 중심이다. SEB, 스웨드뱅크, 노르데아, DNB 같은 많은 주요 은행이 탈린에 지사를 두고 있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암호화폐코인메트로와 DX익스체인지가 탈린에 본부를 두고 있다. 탈린증권거래소는 에스토니아의 유일한 거래소이다.

교통[편집]

시내에 버스(73노선), 트램(4노선), 트롤리버스(4노선)가 운행되고 있고 요금은 고정으로 부과된다. 대중교통 요금은 키오스크나 우체국 같은 데서 선불카드를 사서 결제한다. 선불카드인 탈린카드로 대중교통 외에 많은 박물관과 기타 명소를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고 상점과 레스토랑에서 할인을 받거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탈린시에 등록된 사람들은 2013년부터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한다. 이 무료 서비스는 유럽 수도 중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렌타르트메리탈린공항은 시청광장에서 남동쪽으로 약 4km 떨어져 있다. 공항과 시내 중심 끝을 연결하는 2번 버스와 4번 트램이 공항까지 운행된다. 공항과 가장 가까운 기차역인 윌레미스테역은 1.5km 떨어져 있다.

철도는 엘론철도회사가 탈린에서 타르투, 발가, 튀리, 빌랸디, 타파, 나르바, 오라바, 코이둘라 등으로 가는 열차를 운행한다. 러시아철도 회사는 탈린과 모스크바 사이의 국제 침대열차를 매일 운행한다. 탈린은 또한 탈린중앙역에서 동쪽과 서쪽의 두 방향으로 통근 열차를 운행한다. 이들 노선은 전철화되어 있고 엘론철도회사가 맡고 있다.

비아발티카 자동차도로가 라트비아를 거쳐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경계까지 연결되어 있다. 장거리버스가 탈린과 에스토니아의 다른 지역 사이에 운행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라트비아의 리가로 가는 버스도 운행되고 있다. 2013년 320m 길이의 윌레미스테터널이 개통되었다.

탈린은 여객선 노선도 많다. 해상교통의 요지이다. 바이킹라인, 린다라인, 탈링크와 에케로라인 등의 페리 선사들이 탈린에서 헬싱키, 마리에함, 스톡홀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페리선을 운항한다. 탈린-헬싱키 노선은 2~3.5시간 걸린다.

명소[편집]

탈린에는 60개가 넘는 박물관미술관이 있다. 그 대부분은 시내 중심가인 케스클린에 있고 탈린의 풍부한 역사를 보여준다. 탈린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역사적 박물관은 에스토니아역사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에스토니아 역사를 보여준다.

에스토니아해양박물관은 에스토니아의 해양사를 자세히 보여준다. 이 박물관은 구시가지에 있으며 그 자체가 탈린의 예전 도시 방어 구조의 한 부분을 이룬다. 시내 구시가지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역사박물관은 탈린시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1991년 에스토니아가 독립을 되찾은 시기까지의 역사를 보여준다. 탈린시박물관 9개의 분관이 시 주변에 있다. 그 중 하나는 탈린사진박물관으로 에스토니아 사진의 100년 역사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점령박물관은 탈린 시내 중심에 있는 또 하나의 역사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에스토니아가 소련과 나치독일에 점령당했던 52년의 역사를 보여준다. 멀지 않은 곳에 소비에트의 에스토니아 점령과 관련된 다른 박물관이 또 있다. KGB박물관이 그것으로 소코스호텔 꼭대기층인 23층에 있다. 이 박물관에서는 러시아비밀경찰 요원들의 복장, 도구와 자료를 전시한다.

탈린에 매우 특이한 야외 공연 시설이 있다. 탈린노래무대가 그것으로 에스토니아어로는 탈리나라울루밸리아크라 한다. 탈린 동쪽 외곽 바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탈린노래무대는 5년마다 열리는 에스토니아가요페스티벌이 펼쳐지는 곳이다. 1960년에 완공된 이 무대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만들어졌고 무대에서 나는 소리가 청중에게 에코로 전달된다. 에스토니아가요페스티벌에는 거의 25,000명의 가수와 10만 명 가까운 관객이 참가한다. 무대 옆에 42m 높이의 소방탑이 있어 이곳에 올라가면 탈린과 핀란드만을 내려다볼 수 있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탈린〉, 《위키백과》
  2. 탈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탈린〉, 《나무위키》
  4. 탈린〉, 《요다위키》
  5. 탈린(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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