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원
북한 원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圓)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통용되는 화폐이다. 1원은 100전에 해당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에 의해 발행된다. 다만, 환율의 가치를 볼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00원은 대한민국 돈으로 약 135원 내외를 가지고 있는 가치가 되므로 1KPW = 1.35KRW의 가치를 두고 있는 등가를 가지고 있는 셈이지만 실제 가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이 대한민국 원보다 7배 정도 싸다.
목차
개요
북한원은 북한의 통화. ISO 4217 코드는 KPW이며, 대한민국 원과 마찬가지로 기호는 ₩, 실생활에선 한글로 "원"이라고 쓴다. 북한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환율은 '1딸라=100원'이기는 한데 실제로 시장에 거래되는 가격은 이보다 수십 배, 많게는 100배 이상 높다. 꼭대기 놈이 일관성 없는 학정을 본격화한 뒤로는 특별히 낮아지거나 높아졌을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1달러=7000~9000원 사이에서 형성되었다. 아시아프레스의 물가 정보 발표 내용에 따르면 2024년 5월 10일 암시장 기준 북한 환율은 1달러=9000원이라고 하며, KBS의 취재에서는 1달러에 13000원을 초과하기도 했다고 한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북한의 물가상승률이 연 평균 수십% 이상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았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외화가 결제 수단으로 쓰이고 있고, 재산축적도 외화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 자본이 많이 진출해있는 라선시 등 국경 지대에서는 장마당(=재래시장)에서도 중국 위안화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공식 환율과 암환율간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대만에서조차 환전이 불가능하며, 굳이 환전을 하려면 암달러상을 통해 하는 것이 이득이다.
데일리NK가 2009년 8월 15일부터 평양, 신의주, 혜산 지역의 1달러당 실질 환율과 쌀값을 거의 2주마다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실질 환율을 보면 보면 2010년은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의 영향으로 매우 불안정한 환율을 보여주고 있으며, 2011년 봄~가을까지는 1달러당 3000원 전후의 비교적 안정적인 환율을 보여줬다가 이후 급격히 상승하다가 2013년에야 오늘날과 얼추 비슷해졌고, 2020년 11월~2022년 7월까지는 8000원을 밑돌다가[4] 2022년 8월부터는 1달러당 8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예전엔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을 위한 화폐로 외화와 바꾼돈표가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로 북한 돈의 가치가 급속히 떨어지고 직거래하는 것이 대세가 되면서 2002년에 폐지하고 미국 달러와 유로를 공식적인 외국인용 화폐로 지정한 상태다. 남한 사람들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경할 일이 없으나 북한 상인과 일반 인민들에 의해 중국의 중개상에게 넘겨져 점차 유출되는 방식으로 퍼져 이 루트를 타면 손 쉽게 구할 수 있다. 북-중 국경 근처(단둥시, 도문시)의 가게에서도 볼 수 있고 파주, 고성(강원도) 소재 통일전망대에서도 팔고 있으나 화폐 가치에 비해 굉장히 비싸므로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가장 저렴한 곳은 다름아닌 알리바바 혹은 타오바오. 국내 화폐상에서도 약간 가격이 있긴 하다만 나름 간단히 구할 수 있다. 참고로 중국 등 제3국에 이미 반출된 북한 화폐를 들여오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허가없이 북한측 당사자와 직접 북한 화폐를 매매, 교환하는 것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다.
북한의 대략적인 환율과 물가
2024/02/02 기준 휘발유 1kg 경유 1kg 백미 1kg 옥수수 1kg 중국 위안 미국 달러 북한 원 가격 (한국 원 환산 가격)
13,500원 (약 2,075원)
12,800원 (약 1,967원)
5,800원 (약 891원)
2,900원 (약 446원)
1,270원 (약 195원)
8,700원 (약 1,337원)
〈아시아프레스 북한 시장 최신 물가 정보〉
2020년대의 북한 원은 시장 환율 기준으로 대한민국 원의 대략 15% 정도의 가치를 지니며, 국영 외화상점에서 또는 고급 물품 구매에 사용할 경우 최대 10% 이하로도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경 북한 최초의 대형마트인 광복지구상업중심이 개장했을 당시 리포터가 식용유, 샴푸와 기타 화장품, 2~3kg 정도의 모듬빵, 음료수 2병, 술 1병을 구입했을 때 가격으로 360,780.00원이다. 이 정도면 북한 노동자의 (제대로 줄 때의) 월급과 맞먹으며, 남한 돈으로 계산 시 51,540원~60,130원 정도이다. 공식환율이면 아예 말도 안되는 가격이고.
유튜브에서 평양에 여행 갔다온 외국인들이 찍어서 올린 동영상들을 살펴보면 대략적으로나마 가장 나은 형태로 추정할 수 있었다. 2014년 평양 기준으로 호떡이나 밀전병 같은 간단한 간식이 3,500원, 간단한 소형 전자기기들도 50만원 ~ 2백만원에 필적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물가는 그냥 북한에 소식통을 가진 언론사들이 측정하고 있다.
한때는 평양 물가가 북한 전체의 물가가 아니었으나, 적어도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뇌물을 끼고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서비차'가 보편화 되고, 휴대전화로 물가 등을 공유하여 거의 비슷해졌다. 코로나 시국에 이동이 제한되어 괴리가 일어난 사례가 있던 정도다. 데일리NK라는 언론이 정기적으로 평양 물가와 환율을 측정하고 있다. 링크 량강도와 함경북도를 뭉뚱그려 물가를 조사하는 아시아프레스와도 비교할 수 있다. 링크 북한 정권에 대한 반발심으로 평양만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권의 탄압은 심하지만 주민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지방에도 부자가 존재한다.외국인들도 찾는 평양 중심부에 사는 40~60만 명(평양 주민의 20~30% 정도)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평양 시민들은 지방도시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부자가 정부의 감시를 피한 자수성가형 부자일 수도 있다. 평양도 중심부 빼고는 지방도시 못지 않게 가난한 곳이 많다. 이것은 구글 어스 같은 위성사진으로 건물이 정비된 모습을 관찰해도 확인할 수 있다.
공식환율의 변천사를 보자면 2002년까지는 '1달러 = 2.2원' 안팎 수준이었으나 2002년 '7.1 조치'를 통해 '1달러 = 140원' 안팎 수준의 보다 현실적인 수준으로 인상되었고,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을 기점으로 '1달러=100원'의 공식환율이 확립되었다. 초인플레이션이 왔는데 공식환율의 가치는 오히려 상승한 것이다.
시리즈
북한 원은 5회의 화폐개혁을 거쳤기 때문에 모두 더해 5개의 시리즈가 존재한다. 하지만 개혁을 했어도 ISO 4217 코드는 바뀌지 않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화폐개혁을 하거나 디자인을 바꾸면 짧아도 2~3년 정도는 교환을 위해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북한의 화폐정리사업은 딱 1주의 여유만 있었다.
심지어 이 1주 후에는 돈으로써 인정해주지 않았기에 무조건 바꿔야 하지만 이게 북한당국은 인민들이 몰래 모은 돈을 자신들이 꿀꺽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다보니, 평생 모은 돈 10억이 곧바로 1억이 되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모든 자산가들은 위안화나 달러로 보관하게 되었다.
소련군사령부 군표
1945년 여름에 소비에트 연방 국가은행/재무인민위원회/국방인민위원회가 금엔으로 표시한 군표의 발행을 제안했으니,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위원회의가 소련군에 대하여 금융지원을 결정하면서 소련군이 점령한 곳에서 소비에트 연방 국가은행의 금루블로 거래하는 행위를 엄금했다. 1945년 가을에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위원회의가 군표의 발행을 지시한 덕택에 북한 땅을 다스리는 소련군사령부는 조선 엔과 등가로 교환이 가능한 군표(1엔/5엔/10엔/100엔)를 발행했다.
현재 소련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당시에 이 군표가 미군정 산하 남한에서 발행한 조선은행 원보다는 훨씬 가치가 높았다.
1기 (1차 시리즈)
- (전화는 왼쪽에서 오른쪽, 원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 전화 (15전, 20전, 50전) / 원화 (1원, 5원, 10원, 100원) = 7종
1947년 12월 6일부터 1947년 12월 12일까지 일본 제국의 조선은행권 1엔을 조선중앙은행권 1원으로 바꾸어 주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947년 12월에는 일본 제국의 조선은행권 20억 엔과 소련군사령부의 군표 80억 엔이 북한 땅에서 돌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제국의 본토에서 1946년에 실행한 화폐개혁(1:1)과 소비에트 연방의 본토에서 1947년에 실행한 화폐개혁(10:1)은 일본은행과 소비에트 연방 국가은행이 일본 제국의 금엔과 소비에트 연방의 군표에 대하여 보증을 거부하는 명분이 되었으니, 북한의 국민경제를 위해서 화폐개혁을 실행한 것이다. 당시의 화폐개혁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가) 1세대 단위로 세대주는 500원, 만 18세 이상의 동거가족 1명에 대해서는 200원으로 계산된 금액까지 교환할 수가 있었고, 육해공군/공안당국/민정관청/국유기업/사회단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국가로부터 생활보조를 받는 사람들은 1947년 11월 봉급과 동액까지 교환할 수가 있었지만, 그들의 가족에 대하여 교환하지 않았다.
(나) 10명 이상의 노동자와 사무원을 고용하는 민간기업소 및 민간단체에 대해서는 교환액이 1947년 11월 지불임금의 50%를 넘지 못했고, 10명 이하의 노동자와 사무원을 고용하는 민간기업가, 수공업자, 소상인 및 자유직업자들은 1947년 11월 납세한 액수에 대하여 시도 인민위원회 재정과장의 증명서를 제출하여 사업소득세 또는 자유소득세의 과세표준액 1개월분의 반액까지 교환할 수가 있었다.
(다) 농민들은 현물세를 납부한 농가에 한하여 1호당 700원까지 교환할 수가 있었고, 기숙사에 있는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은 교장증명서를 제출하여 500원씩 교환할 수가 있었고, 전문학교학생 및 대학생들은 1명당 1개월분의 국가장학금 지급액에 준해서 교환할 수가 있었다.
(라) 여행하고 있는 사람은 여행증명서를 제출하여 500원까지 교환할 수가 있었고, 세대주가 감옥에서 복역하는 경우에는 동장증명서를 제출하여 500원을 가족이 교환할 수가 있었고, 소련군에 속한 사람과 인민군에 속한 사람에 대해서는 일반교환소에서 취급하지 않았다.
(마) 소련군은 병영에서 소련군사령부의 군표를 조선중앙은행권에 무제한으로 등가교환해 소련군의 주둔비를 북한인들에게 전가했다.
이렇게 해서 동결한 예금 가운데 단체예금은 1947년 12월 5일을 기준으로 하여 육해공군/공안당국/민정관청/국유기업/사회단체의 예금은 전액 지불하고 그 뒤에 입금된 금액은 동결했다. 협동조합과 백화점의 예금은 화폐개혁 직후에 물가가 절반으로 내려갔다는 기준을 적용하여 교환기간까지의 예금총계의 50%를 지불하였다. 민간예금은 1948년 2월 25일에 지불했는데, 1명의 예금자에 대하여 1개의 계좌로 통합하면서 특정한 계산법에 따라 지불액을 산출하고 잔액은 무이자예금으로 동결했다. 민간예금을 새돈으로 지불하는 계산법을 보아라.
- (가) 2,000원 이하는 전액지불하고 2,000원 초과분은 3천원까지 50%로 교환(즉 구 5천원=신 3,500원)
- (나) 5천원 초괴분은 이후 5천원까지 30%로 교환(구 1만원=신 5천원)
- (다) 1만원 초과분은 이후 4만원까지 20%로 교환(구 5만원= 신 1만 3천원)
- (라) 5만원 초과분은 10%로 교환
6.25 전쟁 중 국군이 평양을 잠시 수복했을 때, 북한 원을 법화로 인정한다고 시당국이 밝히면서 남한 화폐의 유입으로 급속히 치솟던 인플레가 진정되기도 했다.
1970년대 말 북한정부에서 위 지폐들을 기념품 형식으로 재발행해 지금도 알리바바, 타오바오나 화폐상을 돌아보면 10~15달러 정도면 입수 가능하다.
진품은 색깔이 좀 노랗고, 빛에 비춰보면 다이아몬드 모양의 체크무늬가 보인다. (이를 투문(透紋)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원 지폐에도 그 지폐에 나오는 인물이 투문으로 따로 새겨져 있다.)
1차 지폐로 투문이 있는 세트는 200만원 정도 하며, 최고액권인 100원권 미사용은 간간히 보여 5~6만원 정도에 입수 가능하나, 저액권일수록 미사용권 입수 난이도가 급상승하는 특징이 있다.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한 재발행본은 특정한 숫자패턴이 있으며, 백원권은 70, 10원권 80, 5원권 90, 1원권 50으로 시작한다. 그 외에 번호로 시작하는 투문없는 지폐들은 모두 가짜 복사본 지폐들이다.
2기 (2차 시리즈)
1979년 4월 7일부터 1979년 4월 12일까지 [ 1:1 ]로 교환했는데, 다른 의도는 전혀 없고 디자인만 바뀐 흔한 개혁조치 수준이다. 50전 지폐가 없어진 대신에 천리마 동상이 그려진 동전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북한 경제를 지탱하던 천리마 운동의 퇴색 탓으로 추정. 그런데 옛돈을 새돈으로 교환하는 절차는 1명당 1회만 할 수가 있었고, 옛돈을 새돈으로 교환하면서 가능하면 전액을 저금해서 필요한 만큼의 돈을 가끔 인출할 것을 장려했다. 무현금유통을 뒷받침하는 은행저축사업을 홍보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때부터 외화와의 태환권(일명 '돈표')이 발행되어 환율을 도입했는데, 공식 고정환율로 미국 1달러는 북한 2.18원이었다. 따로 태환권이라는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폐 뒷면에 도장을 찍어서 구분했었다. 공산주의국가 출신 외국인에겐 붉은 도장이 찍힌 것을, 자본주의국가 출신 외국인에겐 푸른 도장이 찍힌 것을 주었는데 "외화와 바꾼 돈표" 도장이 안 찍힌 것이 더 귀한 대접을 받으며, 100원권은 찍지 않았다.
그리고 지폐에 김일성이 그려진 첫 시리즈이기도 하다.
화폐 앞면 뒷면 일원 나팔부는 소년과 소녀, 청년과 후프 체조하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 꽃파는 처녀, 피바다 오원 대학생 및 공업도시 풍경 금강산 십원 천리마동상 남포시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오십원 주체사상과 4대 근로인민대중 삼지연 백원 김일성 만경대고향집
이후 1988년에 조선무역은행에서 위와 같이 내국인용과 완전히 다른 모습의 외화와 바꾼 돈표라는 이름의 태환권을 발행했는데, 매우 조악한 질을 자랑했다.
4기 (4차 시리즈)
대부분 "북한돈" 하면 떠올리는 시리즈로, 1992년 7월 15일부터 1992년 7월 20일까지 [ 1:1 ]로 교환했다.(그리고 3년 뒤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된다.) 인민 1명당 400원을 초과한 옛돈을 새돈으로 교환을 거부하면서 400원을 초과한 액수의 옛돈을 조선중앙은행으로 입금했으며, 자연인 1명당 30,000원 이상의 옛돈을 저금할 수가 없게 했으니, 처음으로 재정회수를 위해 계획적으로 자행한 화폐개혁이다. 하지만 교체 당시만 해도 김일성이 버젓이 살아있었고, 그 위대하신 수령님이 원하신다는데 선량한 인민들이 무엇을 의심할까, 그냥 당의 선전만 믿고 입금했다 큰 낭패를 보고 말았다.
북한의 국민경제가 점차 나빠지게 될 때에 발행한 것인데, 그냥 보면 매우 복잡한 구성으로 보이겠지만, 처음 도입했을 무렵에는 3차 시리즈를 계승하여 100원, 50원, 10원, 5원, 1원 5종류를 그대로 이어서 발행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으로 인한 물가 폭등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1998년에 500원권을 추가 하였다. 이것이 1959년 이후로 등장한 첫 고액권이었다. 그 후 2002년 7월 1일의 조치에 따라 1,000원권과 5,000원권을 발행하면서 2005년에는 200원권을 발행했다. 동전도 마찬가지로 1987년에 1원짜리가 등장한 이후로 계속 변화가 없다가, 2005년에 5원, 10원, 50원, 100원짜리를 급조했다. 이는 2009년에 모두 폐기되어버렸다.
한국 및 대부분 쇼핑몰에서 수집용으로 판매하는 북한 지폐는 십중팔구 4기 지폐이다.
5원권과 10원권은 1992년판과 1998년판이 있으며 1992년판의 가격이 훨씬 비싸다. 인쇄판식도 다르며, 1992년판은 요판, 1998년판은 평판이다. 4차권은 여러가지 지폐의 변형이 존재하는 판으로 수집하기 매우 까다로운 권종이다.
화폐 앞면 뒷면 일원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홍영희) 금강산, 선녀 오원 학생과 지구본 인민대학습당 십원 노동자, 천리마 동상 서해갑문 오십원 3대 인민계층, 주체사상탑 백두산 풍경 백원 김일성 만경대고향집 이백원 함박꽃나무 숫자 200 오백원 금수산태양궁전 청류교 천원 김일성 만경대고향집 오천원 김일성 만경대고향집
- 백원(적색), 천원(녹색), 오천원(보라색)은 티끌 하나 다르지 않고 색깔만 다른 변형이다.
5기 (5차 시리즈, 현행권)
2009년 11월 30일에 도입, 동년 12월 6일까지만 교체가 진행된(단,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시리즈. 계획경제의 강화와 팽창된 통화를 회수하기 위해 발행하였으며, 북한 사상 처음으로 실패를 인정한 통화개혁이기도 하다.
구권과 신권을 은행에서 교환하는 비율은 [ 100:1 ]인데 누구나 은행에 입금하면 10배 부풀려서 넣어준다는 선전까지 했을 정도로 그 의도가 확실했다. 하지만 이미 4차 개혁때의 속임수를 모르는 인민이 없었으니 어떻게든 안 넣으려 애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의 상황은 북한의 화폐개혁 항목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으니, 이쪽을 참고하도록 하자. 다만 북한 입장에서는 이 화폐개혁 실패가 오히려 약이 된 측면도 있다. 이후 북한 당국에서 화폐 가치 안정에 신경을 쓰면서 2013년을 기점으로 북한의 물가상승률이 한자릿수대로 안정화되었고, 암시장 환율도 7000~8000원대로 안정화되었다는 것이며, 이것이 2010년대 중후반의 테마파크붐을 비롯한 북한 경제 회복에 도움을 준것이다.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권종별 지폐 크기가 모두 동일하다.
화폐 앞면 뒷면 오원 과학자와 대학생 수풍댐 십원 조선인민군의 공군, 해군, 육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오십원 인민 3대 계층 조선로동당창건기념탑 백원 함박꽃나무 액면 단위 이백원 천리마동상 액면 단위 오백원 평양 개선문 액면 단위 천원 회령고향집 삼지연 이천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백두산 천지 오천원 만경대고향집 국제친선전람관
- 동전은 5종류 일원(김일성화,지름 25mm), 오십전(김정일화,지름 22mm), 십전(진달래,지름 20mm), 오전(목란꽃,지름 19mm), 일전(철쭉꽃,지름 18mm)가 있었으나...현재는 쓰이지 않는 편이다.
- 본래 오천원권은 아래와 같이 김일성이 앞면에 그려져 있었으나, 2014년에 뒷면의 만경대고향집이 앞면으로 옮겨지고 국제친선전람관이 뒷면에 새로 들어간 신권으로 교체되면서 김일성 도안은 유통 정지되었다.
기념권 (기념 문구 가쇄권)
1998년부터 특정한 날을 맞이하여 기존 지폐에 기념 문구를 가쇄하여 발행하고 있다. 1998년, 2012년, 2013년, 2017년, 2018년, 2019년에 기념 문구를 가쇄하여 발행하였다.
현황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북한원은 널리 쓰이지만, 1990년대~2010년대 초반 물가상승의 여파로 고액거래를 하거나 고급식당 출입같은 고급문화를 향유할 때에는 평양에서는 미국 달러를 사용하며 지방에서는 중국 위안을 쓴다. 심지어 북한 주민들조차도 우스갯소리로 "김일성 할아버지보다 (미국 100달러의) 벤저민 할아버지가 더 힘이 세다." 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2020년 코로나 19가 닥친 이후로 암시장 기준으로 원 달러 환율이 8,000원대에서 4,000원대로 내려가며 북한 원의 가치가 크게 오른 적이 있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봉쇄조치와 백신 접종 지연으로 무역재개가 늦어지고 있는 탓에 물자공급이 원활치 못해 별로 좋지 않은 점이나 2010년대 이전에 경제위기가 올 경우에 물가가 폭등한 선례를 볼때 북한 원의 가치가 올라간 것은 특이한 일로, 그 만큼 북한 내에서 외화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이게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썩 좋은 상황이 아닌 것이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는 데다가 수입 물가가 싸졌냐면 그건 딱히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경제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오죽하면 이 때문에 평양시의 한 환전상을 처형했다는 소문이 있다. 주성하 기자 같은 다른 해석으로는 김정은이 코로나로 돈줄이 마른 나머지 지방 상업망에 암시장 시세보다 낮은 국정가격으로[26] 북한 원화만을 취급하게 하려고 했으나, 지방 상업망이 그래도 암시장을 이용하자 본보기로 환전상을 처형을 시켰다는 것이 있다. 또한 북한 당국이 북한내 외국인(외교관)들에게 미국 달러화 대신 북한 원화만을 사용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10월 경 대북제재의 영향으로 조폐용지와 특수잉크 수입도 중단되어 중앙은행도 돈을 더이상 찍을 수 없게 되었고 이 때문에 그나마 쓰이고 있는 권종들도 상태가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일부 소식통에 의하면 "내화 지폐가 너무 낡아서 풀로 붙이거나 종이를 덧대는 일이 장사보다 더 번거롭고 돼지고기 데꼬(대규모 상인)나 큰 장사꾼들은 저녁마다 사람을 고용해 돈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할 정도"라고 전해질 정도니.
결국 이로 인해 한달 전 북한산 용지로 19년 만에 부활시킨 돈표 형태의 오천원권을 화폐 그 자체로 쓰게 되었고, 이마저도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모양인지 2022년 4월 경엔 기존 액면의 10배인 오만원권 돈표를 도입했다.
다만 2024년 기준 아직까지 북한 원은 나름대로 쓰이고는 있는데, 주 용도는 바로 거스름돈. 북한 주민들은 경제 활동이나 재산 축적은 여전히 달러와 위안으로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시중에서 사용하는 외화는 기본적으로 밀수로 유입된 것으로, 부피를 줄이기 위해 100달러와 100위안 같은 고액권 위주로만 들어오게 된다. 반대로 소액권은 찾기 힘든데 일상 생활에서 사용이 잦다보니 장마당에서 이리저리 유통되면서 훼손이 되어 유통물량이 감소한 것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백화점이나 양곡판매소에서도 외화가 암묵적으로 사용 가능하지만 무조건 북한 원으로만 거스름돈을 지급하기에 북한 원의 유통과 사용은 유지되고 있다.
북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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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북한 원〉, 《나무위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 《위키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