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
영주시(榮州市)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북부 중앙에 있는 시이다. 동쪽으로 경상북도 봉화군, 서쪽으로는 예천군, 남쪽으로는 안동시, 북쪽으로는 마구령을 경계로 강원 특별자치도 영월군, 죽령과 고치령을 경계로 충청북도 단양군과 인접한다. 풍기인삼과 소수서원, 부석사, 소백산 국립공원으로 유명하다.[1]
개요
영주시는 동경 128°25′23″~128°44′41″, 북위 36°41′32″~37°03′46″에 위치하며, 면적은 669.27㎢이고, 인구는 2023년 7월을 기준하여 100,363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9개 면, 9개 행정동(13개 법정동), 199개 행정리(94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에 있다.
인구는 2022년 10월 기준으로 약 10만 1,000명으로 계속 인구가 줄고 있다. 경북 북부 지역 철도교통의 중심지로서 시내에 있는 영주역에서 중앙선, 영동선, 경북선이 교차한다. 대한민국 철도청 시절에는 전국에 5개밖에 없었던 지방철도청이 자리잡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철도공사 대구 경북본부라는 명칭으로 있다. 과거 철도로 번성한 도시였지만 경상북도가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통하는 남부지역을 발달시키면서 영주시가 속한 경북 북부는 발달 동력이 없어지면서 낙후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도시가 많이 쇠퇴했으며 번성의 계기가 된 철도는 도심을 이리저리 관통하며 찢어놓아 도시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여론이 높아진 상태이다. 그러나 2021년 중앙선 KTX가 풍기역과 영주역에 정차하기 시작하면서 영주시를 전체적으로 재개발하게 만들고 있다.
2017년 인구가 줄고 있는 전국 20개 중소도시 중 하나로 보도되었다. 국토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인구 기준으로 정점 대비 인구 감소율 37.2%, 빈집 비율은 9%라고 한다. 빈집 비율은 전국 기준 빈집 6.5%보다는 높지만, 다른 19개 도시가 모두 10%를 넘기는 데 비하면 낮다고 한다.
여느 경북 북부 지역처럼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 비율이 전체 인구의 약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토박이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2][3]
자연환경
소백산맥이 북서쪽 시계를 따라 달리고 있어, 북서부에는 선달산(先達山, 1,236m)·어래산(御來山, 1,064m)·형제산(兄弟山, 1178m)·국망봉(國望峰, 1,421m)·소백산(小白山) 비로봉(1,440m)·제일연화봉(第一蓮花峰, 1,394m) 등 소백산맥의 연봉들이 솟아 있다.
또한, 그 지맥으로 남쪽에 있는 시루봉·집봉(543m) 등과 연결되며, 용처럼 생긴 바위와 옛 성이 있는 용암산(龍巖山, 637m), 꼭대기에 비봉산성(飛鳳山城)과 적석고분(積石古墳)이 있는 비봉산(飛鳳山, 420m), 배나무고개·삼거리현·갈가리치(葛加里峙) 등의 고개가 있어 산맥의 동·서 양 지역을 연결하는 대마산(大馬山, 375m)과 원적봉(圓寂峰, 961m)·이자산(二子山, 605m) 등의 산이 이어져 있다.
반면에 남동부에는 소백산에서 발원하는 남원천(南院川)·죽계천(竹溪川)·감천천(甘泉川) 등의 하천유역에 침식분지가 발달되어 있다. 죽계천은 순흥면의 국망봉에서 발원해 시의 북서부를 관통해 남동류하며, 내죽리의 소수서원을 지나 죽계구곡을 이루고, 단산면 동원리에서 단산 천과 합류한다.
그리고 다시 남류해 창진동에서 남원천과 합류하고 문수면의 중앙을 관류해 월호리에서 내성천으로 흘러든다. 하천의 넓은 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감천천은 천부산에서 발원해 용암산·시루봉·집봉·주마산으로 이어지는 남북방향의 긴 산맥 산기슭을 따라 남류하다가 하촌리에 이르러 연평천(硯坪川)이 되며, 예천군 감천면의 서부를 돌아 남동류해 예천군 보문면 간방리에서 내성천으로 흘러든다.
토질은 대부분이 사질양토로 각종 농산물이 잘 자라며, 특히 북부 산악지대는 사양토이기 때문에 배수가 잘되어 인삼, 사과 등의 생육에 적절한 곳이다.
경상북도 최북단의 내륙 산악지대에 위치하여 대륙성기후의 특징인 한서의 기온차가 뚜렷한 편이다. 계절적으로 봄과 가을이 짧으며 1월 평균기온은 -2.9℃ 안팎이며, 8월의 평균기온은 24.5℃이를 나타낸다. 최저기온은 -16.2℃이고 최고기온은 35.5℃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0.8℃이고, 연 강수량은 약 1,515㎜이다. 겨울(12~2월)의 강수량은 108.3㎜로서 전체 강수량의 7.1%의 비율을 차지하고 여름(6~8월)의 강수량은 744㎜로서 전체 강수량의 49%를 차지하는 다우지역이다. 여름에는 한 달에 10일정도 비가 오고, 겨울에는 한 달에 4일 정도 비가 온다.[4]
역사
선사 유적은 많이 조사되지 않아 사람이 언제부터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이 휴천동·가흥동, 안정면 안심리와 풍기읍 등에서 발견되어 이 시기에 이미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인의 활발한 활동에 의해 이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소국(小國: 城邑國家)이 형성되었는데, 진한 12국의 하나인 기저국(己柢國)이 풍기읍에 비정되고 있다.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신라 파사이사금에 의해 이 지역이 공략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신라지배집단의 이동과정에서 있었던 일로 짐작된다.
그 뒤 이 지역은 고구려의 영역에 들어가 내이군(奈已郡: 지금의 영주시)·급벌산군(及伐山郡: 지금의 풍기읍)이 되었다가 신라에 병합되어 내이군·급벌산군은 그대로 유지되고, 기목진(基木鎭: 지금의 풍기읍)이 새로 설치되었다.
500년(소지마립간 22) 왕이 이 곳에 행차해 벽화(碧花)와의 전설을 남기기도 했고, 676년(문무왕 16)에는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아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내이군은 내령군(奈靈郡)으로, 급벌산군은 급산군(及山郡)으로 개명되어 삭주(朔州: 지금의 춘천)에 포함되었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곳은 후고구려의 세력권에 들어가 궁예(弓裔)가 부석사에 행차한 설화가 전해진다. 고려 통일 이후 안동부의 관할 지역이 되었는데 내령군은 강주(剛州)로, 급산군은 흥주(興州)로, 기목진은 기주현(基州縣)으로 개명되었다.
강주에는 995년(성종 14)에 도단련사(都團練使)가 파견되었으나, 1018년(현종 9) 이 지역 모두가 다시 안동부의 속읍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강주가 순안현(順安縣)이 되어 현령이 파견되자 흥주도 이에 예속되었는데, 순안현은 1259년(고종 46) 김인준(金仁俊)의 공으로 인해 지영주사(知榮州事)로 승격되었다.
흥주와 기주는 1172년(명종 2)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흥주는 충렬왕 때 흥녕현(興寧縣), 충숙왕 때 지흥주사(知興州事), 충목왕 때 순흥부(順興府)로 승격되었다. 기주는 감무가 폐지되고 다시 안동부에 속했으나, 1390년(공양왕 2) 감무가 설치되면서 안동부의 속읍인 은풍현(殷豊縣)을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 후기에 안향(安珦)·안축(安軸)·정운경(鄭云敬)·정도전(鄭道傳) 등과 같은 사대부들이 배출되었다.
1413년(태종 13) 군현 등급의 조정에 따라 영주와 기주는 영천군·기천현이 되었고 순흥부는 도호부로 되었으며, 기천현은 1450년(세종 32)은 풍현으로 합해 풍기군(豊基郡)으로 승격되었다.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당시의 호구수는 영천군이 377호 5,902인, 순흥부가 284호 3,599인, 풍기군이 160호 1,511인이었다고 한다. 토지는 대부분 척박했고, 풍속은 근검해 누에고치의 재배와 같은 생업에 힘썼다고 한다.
순흥부는 1457년(세조 3) 금성대군(錦城大君)과 부사 이보흠(李甫欽)의 단종복위 기도 때문에 부가 폐지되고 영역이 영천·풍기·봉화 등에 분 속되었다. 그 뒤 고을 사람들이 계속된 상소에 따라 1683년(숙종 9)에 부활되었다.
그러나 1829년(순조 29) 강상지변(綱常之變)이 일어나 한때 현으로 강등되었다. 1729년(영조 5) 풍기군도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연루되어 역적의 출생지라 하여 한때 현으로 강등되었다.
1894년 8도 제 시행 당시에는 경상도 영주군·풍기군·순흥부이었다가, 1895년 갑오개혁에 의해 23부제가 실시되자, 세 지역 모두 군이 되어 안동부에 소속되었다. 1896년의 13도제 실시에 의해 경상북도 영주군·풍기군·순흥군으로서 4등 군이 되었다.
1906년 일부 면들이 봉화군에 이속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면 통폐합시 3개 군이 되어 영주군을 이루었고, 일부 지역이 봉화군·예천군에 다시 할양되었다. 1940년영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한말에 소흥학교(紹興學校)·안정학교(安定學校) 등이 차례로 건립되어 근대적 교육활동이 활발히 일어났으며, 항일의병운동도 계속 일어나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는 3월 20일에서 4월 11일까지 영주면·풍기면·하리면·장수면 등지에 만세시위운동이 계속 일어났다.
8·15 광복 이후 지역분할 정도의 행정구역 개편만 이루어지다가 1973년 7월 1일 풍기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80년 4월 1일 영주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영주시와 영풍군이 분리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영주시가 되었다.
1998년 1월 19일 봉현면 오현리의 일부가 대촌리에 편입, 같은 해 8월 20일에는 이산면 운문리의 일부가 평은면 금광리에 편입, 이산면 석포리의 일부가 이산면 신암리에, 평은면 평은리의 일부가 강동리에 각각 편입되었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풍기읍 및 단산면·문수면·봉현면·부석면·순흥면·안정면·이산면·장수면·평은면과 상망동·하망동·영주 1동·영주 2동·휴천 1동·휴천 2동·휴천 3동·가흥 1동·가흥 2동의 1읍 9면 9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
전체면적 가운데 약 67%가 임야이며, 경지 면적은 24% 정도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감자 등의 식량작물과 무·배추·오이·참외·수박·복숭아·사과·포도 등의 채소와 과일류이다. 특히 풍기사과는 맛과 질이 좋아 유명하다.
특용작물로는 고추·마늘·참깨가 있고, 약용작물로는 지황·모란·백작약·황기 등이 생산된다. 가축으로는 한우와 젖소·돼지 등이 주로 사육된다. 특산물로는 예로부터 한국의 3대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인삼을 비롯해 영주사과, 영주한우, 마, 하수오, 전통장류, 소백산 오정주, 장수 참기름, 선비촌 버섯, 선비촌 유과, 순흥 복숭아, 단산 포도 등이 있다.
광업으로는 규석·고령토·장석 등이 생산된다. 섬유공업은 1934년부터 시작된 풍기 인견직이 아직까지 생산되고 있으며, 섬유·화학·기계·식료품 공업이 발달하였다. 2001년 현재 가흥·봉현·적서·장수·휴천 등 5개의 농공단지에 총 64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상줄동의 가흥 농공단지에는 11개 업체가 입주해 있고, 봉현농공단지에는 26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데 대부분 직물산업체이다. 적서동의 적서농공단지에는 알루미늄판을 생산하는 업체가 1개 입주해 있다. 장수농공단지에는 25개 업체가 입주해 있고, 적서동의 휴천 농공단지에는 KT&G 영주공장이 들어서 있다. 산악 지대로서 임업도 발달하여 목재·펄프·제재업이 성하다.
교통
영주동을 중심으로 중앙선·경북선·영동선 철도가 통과하는 교통의 중심지다. 다른 중소도시에 비해 상업·서비스업 등 3차산업의 비중이 크다. 1961년 삼척·안동 철도국이 영주 철도국으로 통합 개편됨에 따라 이와 관련된 산업이 발달하였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중앙고속도로와 동쪽으로 봉화·울진, 서쪽으로 예천·문경, 남쪽으로 안동·대구, 북쪽으로 단양·제천에 이르는 국도 및 지방도가 이어져 있다.
중앙선을 중심으로 경북선과 영동선이 만나다 보니 철도만으로도 지금의 도시 규모를 만들 수 있었다. 2021년 1월 5일을 기해 청량리 - 안동 구간에 우선적으로 KTX가 개통되면서 청량리 - 영주 간을 1시간 40분에 오고 갈 수 있게 되었다. 2022년 말에 중앙선 복선화가 완료되면 청량리 방면 KTX의 증편과 증속은 물론, 동대구, 태화강, 부전 방면으로도 KTX가 다닐 예정이기 때문에 다시 철도가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관광
소백산맥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낙동강의 여러 지류가 시내를 흐르고 있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자연 관광자원뿐만 아니라 귀중한 문화적 자원도 함께 갖추고 있는 소백 산권의 산악 관광지이다.
유명한 관광지로는 소백산국립공원의 희방사·희방폭포와 소수서원·부석사 등이 있다. 희방사와 희방폭포는 소백산의 가장 유서 깊은 골짜기인 희방골에 있는데, 희방폭포는 해발 900m쯤에 있는 폭포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28m가 된다. 특히, 여름에는 하얀 물보라와 쏟아지는 우렁찬 물소리가 더위를 쫓아버린다.
희방폭포에서 300m가량 더 오르면 희방사가 있다. 연화봉 아래의 희방사는 643년(신라 선덕여왕12)에 두운대사가 창건하였다. 월인석보·훈민정음의 판목을 보관해 오고 있었는데 6·25전쟁 때 UN군에 의해 불타버렸다.
이 외에도 소백산천문대와 비로사·초암사·성혈사 등 조용한 산사들이 있으며,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풍기읍 삼가리·욱금리·금계리에 이르는 금선계곡은 맑고 차가운 물, 아기자기한 폭포, 깨끗한 연못 등으로 인해 여름 피서지로 적격이다.
소백산은 언제 올라도 울창하고 아름다운데, 특히 ‘소백산철쭉제’ 무렵에 오르면 철쭉 향기를 흠뻑 마실 수 있다. 소수서원은 본래 숙수사(宿水寺)라는 신라 시대 창건된 큰 사찰이 있던 곳이다.
그런데 억불숭유정책으로 번영하지 못하던 이 절을 주세붕이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였다. 그래서 서원 입구의 송림 속에 숙수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경렴정(景濂亭)에서 마주 보이는 죽계(竹溪) 건너편에 경자암(敬字巖)이 있다.
소수서원 경내에는 명륜당·전사청·일신재·직방재·동몽재·서장각 등의 건물이 있다. 그리고 영정각에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안향 초상과 대성지성 문선왕 지선도가 있다. 아울러 이황의 친필인 성학십도(聖學十圖)병풍과 보물인 주세붕영정 등이 보존되어 있다.
소수서원 서쪽으로는 국망봉에서 발원한 죽계구곡이 흘러내리며, 동북쪽으로 14㎞ 떨어진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鳳凰山, 819m) 기슭에는 부석사가 있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절의 중심건물인 부석사무량수전은 고려 중기 목조건물로서 우리 나라 옛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힌다.
그 밖에 부석사무량수전앞석등·부석사조사당·부석사소조여래좌상·부석사조사당벽화·영주북지리석조여래좌상·삼층석탑·당간지주·고려각판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가파른 108계단을 올라야만 사바의 번뇌(煩惱)를 깨치고 전망이 툭 트이며 아미타여래가 사는 극락세계로 인도된다.
아울러 안정면 단촌리와 순흥면 태장리의 느티나무, 단산면 병산리의 갈참나무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도심의 영주동 한복판에 마치 거북모양을 한 나지막한 구성산이 있고, 산에는 옛날의 산성터가 있으며 구성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지금은 옛 성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고,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이 곳에 오르면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공원의 정상에는 가학루가 있고, 동쪽으로 동구대, 가학루 아래에 서구대와 구학정이 있으며, 구성산 서쪽에 영훈정이 있다.
영주 시내에서 예천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2㎞쯤 가다 보면 길 오른쪽으로 남쪽의 산이 끝나는 곳에 층을 이룬 커다란 바위가 있다. 그리고 이 바위에 높게 영주가흥리마애삼존불상이 부조되어 있다. 이 밖에 가흥동에는 제민루가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
풍기인삼은 영주는 몰라도 풍기는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매년 나름 큰 축제인 풍기인삼축제를 개최한다. 인견은 비스 코스 레이온. 펄프로 만든 재생섬유로 풍기읍 쪽에서 밀고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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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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