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흥군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경흥군(慶興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북동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경흥군의 면적은 940km²이며 인구는 89,244명(2008)이다. 남쪽은 동해이며 북쪽의 두만강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의 동북지역과 접하는 국경 지대이다. 두만강의 맞은편은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훈춘시가 있고, 서쪽으로는 회령시가 있다. 두만강을 따라서 북쪽으로 경원군, 남쪽으로 라선시가 있다. 남서(녹야리)~북동(신아산리) 간의 거리는 54km이고, 북서(안길리)~남동(철주리) 간의 거리는 20km이며, 도 전체면적의 5.92%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6구 10리로 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경흥읍이다.
고려시기와 조선 초기, 경원군 지역과 함께 공주(孔州), 공성(孔城), 광주(匡州)라 하였는데, 모두 곰골 또는 검골의 이두식 표기로서 '검은골'이라는 뜻을 나타냈다. 이는 예로부터 이 지대에 석탄이 많아 땅의 빛깔이 검은 것과 관련된다. 한편 추성(楸城)이라고도 하였는데, 가래나무가 많은 것과 관련하여 가래나무 '추(楸)'자로 표기하였다. 그 후 15세기 중엽에 조선왕조는 공성을 왕조의 조상과 연맥하여 '경사스럽고 흥성할 곳'이라는 의미에서 경흥이라 하였다. 1977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은덕으로 나날이 변모해 가는 고장이라 하여 경흥군이라 개칭하였다.
1945년 해방 당시의 경흥군 지역은 현재 대부분 라선시에 속하고, 현재의 경흥군은 해방 당시 경흥군 아오지읍을 중심으로 경원군 유덕면·아산면 및 종성군 화방면을 합친 지역이다. 현재의 경흥읍(경흥군 인민위원회 소재지)은 해방 당시 아오지읍의 읍사무소 소재지였다.
아오지 탄광으로 유명하다.[3]
자연환경[편집]
경흥군의 대부분이 중산성 및 저산성산지로 되어 있다. 동부 두만강과 그 지류인 회암천 연안지역이 비교적 낮은 지대로서 구릉지대와 평야로 되어 있으며 녹야리와 금송리를 비롯한 경흥군의 남서부 지역이 비교적 높은 중산성산지로 되어 있다. 남부에는 송진산(松津山, 1,146m) · 유현덕산(柳峴德山, 853m) · 수침산(水砧山, 827m), 청진시 청암구역과의 경계에는 배덕이산(898m), 남서부 회령시와의 경계에는 까치봉(1,085m) · 다탄산(多炭山, 817m), 북부 경원군과의 경계에는 탑향산(塔鄕山, 825m)이 솟아 있다.
라선시와의 경계에는 동해안 지방과 두만강 연안의 여러 지역들 사이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는 저슬령(352m)이 있다. 신아산리 일대에는 모래산이 형성되어 있다. 두만강에는 물길변화와 퇴적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진 신아산섬, 지경섬과 같은 충적섬들이 있다.
경흥군의 지층은 주로 두만계(豆滿系)의 암기통, 계룡산통, 송산통, 함경계(咸鏡系)의 용동통, 평륙층, 함진층, 제4기층 그리고 두만강암군, 압록강암군의 암석돌로 되어 있다. 이러한 지층에는 석탄, 금, 동, 망간 등이 매장되어 있다. 매장량이 많은 석탄은 경흥, 용연, 오봉, 귀락, 태양 일대의 평륙층에 있다. 탄층의 두께는 평균 2~5m이다. 경흥군에서 대륙성기후와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두만강연안은 기온차가 적고 일조율이 낮으며 안개가 자주 낀다.
특히 5~7월 사이에 기온이 낮아지고 안개가 자주 끼여 일조율이 낮아짐으로서 냉해를 입을 수 있는 불리한 기후현상이 나타난다.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적게 받는 내륙지대에서 여름에 일조율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연평균기온은 6.2℃, 1월 평균기온은 -10.6℃, 8월 평균기온은 21.4℃, 10℃ 이상 적산온도는 2.700℃, 일조율은 55%이다. 안개가 자주 끼는 5~7월에는 일조율이 31% 낮아진다.
연평균강수량은 600mm 정도이다. 첫서리는 9월 중순 또는 10월 초에, 마지막 서리는 5월 초 및 중순에 내린다. 땅이 어는 깊이는 70~80cm이다. 바람은 여름철에 남동풍이, 겨울철에 북서풍이 우세한다. 연평균 풍속은 3.1m/s이다. 동부 변두리로 두만강이 흐르고 경흥군의 중앙을 그 지류인 회암천(灰岩川)이 관류하고 있으며 남서부에 오룡천(五龍川)의 지류인 방산천(方山川)이 유입되어 있다.
이 밖에도 경흥군에는 여러 개의 작은 하천들이 있다. 경흥군에는 송학저수지(松鶴貯水池), 장평저수지(長坪貯水池), 대동저수지(大洞貯水池)가 있다. 산림에서 기본수종은 참나무와 소나무이다. 산림 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금송, 녹야, 장평 일대이다. 녹야, 금송 일대는 산과실과 송이버섯이 매우 많다.
산에는 여우, 너구리, 오소리 등 짐승이 서식하고 있으며 녹야 일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향노루가 있다. 경흥군의 주요 토양유형은 갈색산림토양, 충적지토양, 논토양이며 적은 규모로 분포된 진펄토양도 있다. 갈색산림토양은 두만강연안의 충적토와 논토양을 제외한 모든 곳에 분포되어 있으며 논토양에서는 하성충적지논토양이 기본이다.[4]
역사[편집]
경흥군 지역은 원시사회에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주변에서 굴포문화로 특징지어지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많은 유적,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사기』 등 옛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 경흥군 지역에는 읍루, 숙신, 예맥, 말갈, 부여 등 부족국가가 있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판도에 속하였다.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패망한 뒤 한때 당나라에 예속되었다가 신라문무왕 9년 발해국이 건립되면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에 소속되었다.
발해가 멸망해서부터 고려 말기까지 몇 세기에 걸쳐 경흥군 지역은 줄곧 이민족의 판도로 흥망을 거듭하였는바, 926년(태조 9년)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된 후에는 요나라에 예속되어 있었고, 1125년(인종 3년)에는 금나라의 속지로 되어 있었으며 1234년(고종 21년)에는 원나라의 지배 하에 있었다. 오랫동안 영역을 이곳에 미치지 못했던 고려는 1368년 원나라가 명나라에 의해 패망한 틈을 타서 두만강 하류지역까지 판도를 확장하였으며 경흥군 지역은 지금의 경원군을 합쳐 1390년(공양왕 2년)에 동북면 공주(孔州)로 되었다.
1398년(태조 7년)에 북방의 행정구역을 분정할 때 공주를 경원(慶源)으로 개칭하고 경원부(慶源府)를 설치하였다. 1409년(태종 9년)에 읍치를 고성에서 현재의 경원(경원군) 용당근처의 소다로(蘇多老) 책성(柵城)으로 옮겼다. 1410년(태종 10년) 2월 여진이 침입하였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4월에 치소를 경성(鏡城)으로 옮겼다. 1411년(태종 11년)에 경원진을 폐지하고 그 후 1417년(태종 17년)에 경원부를 현재의 부령군 부거(富居)로 복귀하여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로 승격시켰다.
1435년(세종 17년)에 지난날 공주에 소속되어 있었던 현재의 경원군을 분리하여 공성현(孔城縣)을 설치하였고 1437년(세종 19년)에 공성현을 경흥군(慶興郡)으로 개칭하였다. 1443년(세종 25년)에 성을 확장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459년(세조 5년)에 읍치를 무안보로 옮겼다. 1476년(성종 7년) 아오지에 만호진을 설치하였다.
1895년(고종 32년)에 23부제를 실시하면서 경성부 경흥군으로 되어 읍사(邑社), 무이사(撫夷社), 아오지사(阿吾地社), 신안사(新安社), 해정사(海汀社), 서수라사(西水羅社), 조산사(造山社) 등 7사를 두었고, 1년 후 다시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함경북도 경흥군으로 되어 사를 폐지하고 읍면(邑面), 고면(古面), 신면(新面), 서면(西面), 노면(蘆面), 상면(上面), 하면(下面), 해면(海面), 신해면(新海面), 안화면(安和面) 등 10면을 개편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경흥군 읍면 · 신면 · 고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경흥면(慶興面)을, 경흥군의 고면, 노면의 각 일부와 신면을 병합하여 노서면(蘆西面)을, 경흥군 상면과 하면을 병합하여 상하면(上下面)을, 경흥군 해면과 노면 일부를 병합하여 웅기면(雄基面)을, 경흥군 신해면과 안화면을 병합하여 신안면(新安面)을 각각 신설하고 종성군 풍해사를 경흥군 풍해면(豊海面)으로 개편하여 6면을 관할하였다.
1936년에 웅기면을 읍으로 승격하였고, 신안면과 풍해면을 통합하여 나진부(羅津府)를 신설하여 관하에 1읍 3면을 두었으며, 1947년에 웅기읍이 다시 면으로 강등되면서 경원군의 유덕면(有德面)과 종성군의 화방면(華方面)을 흡수하여 경흥면, 상하면, 웅기면, 유덕면, 화방면, 노서면 등 6면을 관할하였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전 경흥군 아오지면(阿吾地面), 유덕면의 전체 리와 경흥면의 7개 리, 화방면의 4개 리, 경원군 아산면(阿山面)의 10개 리, 회령군 팔을면(八乙面)의 1개 리를 통합하여 경흥군을 구성하였는데, 아오지면의 신아오지리 · 농경리 · 신농경리 · 회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경흥읍(慶興邑)을 신설하고, 경흥면의 오봉리 일부와 아오지면의 아오지리 · 용연리를 병합하여 아오지리(阿吾地里)로, 아오지면의 송학리 · 삼봉리 · 명룡리를 병합하여 송학리(松鶴里)로, 경흥면의 경흥리 · 원정리를 병합하여 원정리(元汀里)로, 아산면의 아산리 · 산서리 · 백안리 · 신아산리를 병합하여 신아산리(新阿山里)로, 화방면의 화운리 · 녹야리를 병합하여 녹야리(鹿野里)로, 아오지면의 귀락리 · 송상리 · 회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귀락리(貴洛里)로, 화방면의 사탄리 · 금송리를 병합하여 금송리(金松里)로, 아산면의 백동리 · 하면리 · 송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백동리(栢洞里)로, 아산면의 차동리 · 장평리 · 최치리 · 송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장평리(長坪里)로, 유덕면의 죽기리 · 용막리 · 고사리를 병합하여 죽기리(竹基里)로, 경흥면의 하회리 · 은계리 · 청학리를 병합하여 하회리(下檜里)로, 유덕면의 가현리 · 창평리, 아오지면의 오봉리를 병합하여 오봉리(梧鳳里)로, 유덕면의 박상리 · 지경리 · 학동리를 병합하여 박상리(朴上里)로, 유덕면의 장안리 · 대동리 · 녹야리 · 소랑리를 병합하여 장안리(莊安里)로, 아오지면의 태양리 · 용성리를 병합하여 태양리(太陽里)로, 경흥면의 하여평리와 오봉리 일부를 병합하여 하여평리(下汝坪里)로 각각 개편하였으며, 동시에 회령군 팔을면 용성리(龍城里)를 흡수하여 1읍 17리를 관할하였다.
1958년에 귀락리 일부 지역이 경흥읍에 흡수되었고, 1961년에 아오지리 일부가 분리되어 용연노동자구(龍淵勞動者區)가 신설되었고, 백동리가 장평리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용성리 전체가 녹야리에 편입되었고, 1965년에 오봉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으며, 1977년 9월 경흥군이 은덕군으로 개칭되면서 경흥읍도 은덕읍(恩德邑)으로 되었다.
1981년 6월에 아오지리가 학송리(鶴松里)로 개칭되고 같은 해 10월에 장안리가 안길리(安吉里)로 개칭되었으며 1983년 9월에 선봉군의 철주리가 은덕군에, 은덕군의 원정리, 하회리, 하여평리가 나진-선봉시 선봉군에 각각 편입되었다. 1987년에 송학리가 분리되어 명룡노동자구(明龍勞動者區)가 신설되었다. 1990년에 박상리가 양덕리(暘德里)로, 1991년 11월에 죽기리가 송산리(松山里)로 선후 개칭되었으며 1993년에 원정리, 하회리, 하여평리가 나진-선봉시 선봉군에 이관되면서 선봉군의 철주리(鐵柱里)가 은덕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 12월에 은덕읍의 일부로 농경노동자구(農耕勞動者區)를 신설하였고, 귀락리의 일부가 은덕읍에 편입되는 동시에 은덕읍의 일부가 귀락리에 흡수되면서 귀락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으며, 학송리의 일부가 용연노동자구에 편입되었고 용연노동자구 일부가 학송리에 흡수되면서 학송리가 노동자구로 되었다. 2006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경흥읍), 6구(귀락노동자구, 농경노동자구, 용연노동자구, 명룡노동자구, 오봉노동자구, 학송노동자구), 10리(금송리, 녹야리, 송산리, 송학리, 신아산리, 안길리, 양덕리, 장평리, 철주리, 태양리)로 되어 있다. 경흥군 소재지는 경흥읍이다.[5]
산업[편집]
경흥군은 지리위치상 농산물생산과 유축농업이 흥했으며 1930년대부터 탄광이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화학공장도 건설되었다. 광복 전까지 두만강 연안에서는 주로 피를, 산간지대에서는 조 같은 잡곡을 심어 왔으며 많은 토지와 야산들은 일제의 군마방목지와 훈련장으로 이용되었다. 광복 후 채굴업과 화학공업을 기본으로 하는 중앙공업과 지방공업, 농업으로 기본산업형태가 이루어졌다. 채굴업에서 의의가 큰 것은 석탄생산이다. 경흥군에는 6월13일탄광(六月十三日炭鑛), 오봉탄광(梧鳳炭鑛), 은덕탄광(恩德炭鑛) 등 채굴업에서 주류로 되는 탄광들이 있다.
경흥군은 북한 북부지방의 중요한 화학공업 기지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전국적 의의를 가지는 화학공장들과 중소규모의 화학공장들이 건설되어 있다. 주요 제품은 메탄올과 비료이다. 이밖에 가성소다와 도료(塗料)류를 비롯한 여러 가지 화학제품들도 생산된다. 군의 기계공업은 석탄공업, 화학공업, 농촌경리 발전에 복무하는 생산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군에서는 채탄 및 운반설비들을 비롯한 탄광설비들과 화학공업설비들 그리고 자동화요소들과 농기계들이 생산된다.
경흥군에서는 시멘트, 블록, 부재 같은 것을 자체로 생산하여 지방수요를 보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경흥군에서는 여러 가지 식료품, 수지일용품, 목제일용품, 철제일용픔, 종이류, 의약품, 동물박제품 등이 생산되고 있다. 농경지는 군 전체면적의 9%를 차지하며 그 중 논이 12%, 밭이 78%를 점한다. 농산업에서 기본은 곡물 생산이다. 주요 곡물은 옥수수, 벼, 콩 등이며 그 가운데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옥수수는 은덕 · 태양 · 오봉 · 귀락 · 송산 · 양덕 · 안길 · 금송 · 녹야 일대에서, 벼는 송학 · 신아산일대를 비롯한 두만강과 회암천연안에서 주로 재배된다.
이 밖에 감자, 보리, 수수와 같은 잡곡들도 생산된다. 공예작물에서는 담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재배지역은 녹야, 금송, 안길, 송산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채소는 배추와 무이며 시금치, 양배추, 호박, 오이, 파, 마늘 등도 생산된다. 축산업은 중산성 및 저산성산지가 발달한 군에서 예로부터 흥해온 부문으로서 군에서는 초식동물양식에 유리한 자연방목지를 이용하여 소, 양, 염소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이외 닭, 토끼, 돼지, 오리 등 가축도 기르고 있다. 소, 양, 염소 등은 사료자원이 풍부한 녹야, 금송, 태양, 오봉 일대에서 많이 사육하고 있다. 경흥군에는 오리공장과 닭공장이 있다. 군에는 350여 정보의 과수밭이 있으며 과수에서 배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과일이 많이 산출되는 지역은 신아산과 회암 일대이다. 경흥군은 양봉업이 발달한 지역으로서 장평, 신아산, 송학, 태양, 귀락, 녹야 지방은 경흥군에서 꿀이 많이 나는 곳으로 알려졌다.[6]
교통[편집]
교통은 동부로 함북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학송역에서 오봉에 이르는 오봉선(梧鳳線, 10.4km)이 분리된다. 명간군에는 또한 춘두선이 부설되어 있다. 영역 내에 신아산역(新阿山驛), 송학역(松鶴驛), 학송역(鶴松驛), 은덕역(恩德驛), 회암역(灰岩驛), 오봉역(梧鳳驛) 등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 교통은 함북선과 병행하여 신의주~우암 간 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녹야~회령 간, 녹야~청진 간 도로가 달리고 있다. 은덕~녹야, 은덕~장평, 은덕~원정(나선시), 은덕~하회(나선시) 간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경흥군〉, 《위키백과》
- ↑ 〈경흥군〉, 《나무위키》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경흥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경흥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경흥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경흥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경흥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경흥군〉, 《위키백과》
- 〈경흥군〉, 《나무위키》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경흥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경흥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경흥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경흥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경흥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