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대교
양화대교(楊花大橋)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연결하는 왕복 8차로의 한강 다리로, 제2한강교라고 불렸다. 국도 제6호선과 국도 제77호선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다리 중간에 있는 선유도공원 부분을 포함하면 다리의 총 길이는 약 1.14 km이다.
개요[편집]
양화대교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 사이를 잇는 길이 1,053m, 폭 18m의 구교와 그 상류측에 세워진 길이 1,053m, 폭 16.1m의 신교를 합친 왕복 8차선 다리이다. 구교는 1962년 6월에 착공해 1965년 1월 25일 준공하였으며, 신교는 1979년 1월에 착공해 1982년 2월 2일 준공하였다. 원래는 구교를 제2한강교라고 하였는데, 1982년 9월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구교와 신교를 합해 지금의 명칭으로 개칭되었다. 이름의 어원은 과거 이 다리 인근에 있었던 한강의 주요 나루터인 양화진에서 따온 것이며, 6번 국도와 77번 국도의 일부이다. 한강대교가 노들섬을 거쳐가는 것처럼 이 다리는 선유도를 거쳐간다.
구교는 8.15 광복 후 한국 기술진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한강다리로, 완공 이후 경서지방과 인천광역시 지역, 그리고 김포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서울특별시 서부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도심과 영등포, 김포시 및 경인고속도로를 오가는 교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1979년부터 확장공사를 진행, 1982년 2월 2일 신교를 준공하였다.
이 신교가 완공됨으로써 양화대교는 4차로 양방향 통행방식의 총 8차로 교량이 되었다. 그러나 1996년 성능 개선을 위해 보수•보강 공사에 들어가 6년 만인 2002년 4월 1일 다시 개통하였는데, 이전의 4차로 양방향 통행 방식에서 구교는 양평동 방향으로, 신교는 합정동 방향으로의 각각 일방 통행으로 바뀌었다. 이와 함께 일산신도시, 마포대교, 여의도, 인천국제공항 방향에서 양화대교를 연결하는 진출입 램프도 함께 개통되었다.
기존의 양화대교는 서울 서부(서대문)지역과 인천지방 그리고 김포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서울의 서부 관문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한강상 3번째 도로 교량이었으나 개통한 지 불과 14년만에 교통량의 증가와 대형교통수단의 많은 통행으로 교량의 노후화와 교통체증이 심각하여 이에 대한 해소방안으로 기존의 양화대교를 확장하고 입체시설도 개선하여 현재의 교량으로 개축되었다. 현재 북단은 합정역-홍대입구역으로 연결되고, 남단은 선유로가 연결되어 있는데, 경인고속도로로 진출입하는 길목이라서 국회대로와 만나는 경인고속입구 교차로는 상습정체구역이다.
산업발달과 물동량 증가로 교통량이 증가하여 2등교인 구교 이용이 불편할 뿐 아니라 시설물의 노후화 및 안전이용이 우려되어 양화대교 신·구교 모두 성능개선 및 보강공사를 시행하여 구교(하류측)는 2000년 6월 25일 완료하였고 신교(상류측)는 2002년 4월 1일 재개통하였다.
제2한강교를 처음 세울 당시의 에피소드. 교량과 직결하는 도로를 건설하려면 주변의 토지를 매입해야 했는데, 매입 가격을 두고 정부와 토지 소유주 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그런데 토지 소유주 중 하나인 회사의 경영인이 비교적 싼 가격에 팔겠다고 먼저 나서서 나머지 토지 매입도 적당한 가격에 타협이 났다고 한다. 이 경영인이 바로 유일한이다.
구교 개통 당시 영상에도 나오지만 다리 북단 입구에는 높이 50m의 대형 조형물이 있었다. 이 탑은 유엔군의 6.25 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뜻에서 국민 성금을 모아서 지은 철근 콘크리트 형태의 '유엔군 자유수호 참전기념탑'이었다. 그러나 이 탑은 양화대교 신교 확장 공사의 영향으로 1981년 철거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또 신기하게도 이 다리 위엔 카페가 있다. 원래는 서울시에서 직접 운영하던 곳인데 박원순 시장 집권기에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커핀 그루나루라는 커피 체인점에 임대하였다. 2019년 현재는 커핀 그루나루는 철수하고, 체인점이 아닌 카페가 영업중인데 다리 양쪽에 다 있다. 동쪽과 서쪽 모두 엘리베이터가 있어 자전거로 접근하기에 좋다.
2010년 교량 개량보수 공사 논란[편집]
한강 남측 방향으로 선유도공원이 있으며,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서울시 관광 프로젝트 및 '서해뱃길' 조성과 관련 배가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교량 중간 112m와 교각 2개를 철거하고, 대신 아치를 만드는 공사를 시행 중에 있었으나.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여 서울특별시의회를 장악하면서 서울특별시청과 정면충돌. 민주당의 시의회는 당시 주장하던 전면 무상급식을 도입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양화대교 공사를 4대강 관련 사업이라 주장하면서 남은 예산 180억원을 완전 삭감했다. 이로 인해 다리가 ㄷ자 형태로 굽어진 상황에서 공사가 중단, 7개월간 방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각자의 입장은
- 서울특별시 의회
4대강 사업을 위해 멀쩡한 다리를 뜯은 것이다. 이전에 안전점검 B등급을 받은 다리로 안전을 위한 보수 공사가 시급한 상황이 아니다. 공사내용도 보수나 확장은 주가 아니다. 뭐 덤으로 약간 보강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일단 주는 아니다. 거기다가 10년 전에 이미 한 번 개보수한다고 뜯은 다리이다. 지금 손댄 것은 하류 뿐이니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상류는 손대지 마라. 하부 85억 예산주면 그 돈 가지고 상부 공사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예비비를 쓰던 아니면 다른 예산을 전용하건 알아서 해라. 하류만 아치가 되어서 기형적 형태가 되어도 안전에는 상관없다. 오히려 전시행정, 예산낭비의 표본으로 경계의 의미가 될 것이다.
- 서울특별시청
양화대교 아래로 대형 선박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하여 관광 산업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상황인데, 강제로 공사를 중단해서 다리가 기형화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고 그 결과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하류만 하고 상류는 그대로 두면 하류는 아치형, 상류는 일반형이라는 기형적 행태가 되며 애초에 기대했던 선박 왕래로 인한 관광 산업 활성화라는 목표도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미 매몰비용만 260억이고, 상류 아치건설 매몰비용은 60억이다. 제발 모두 공사할 수 있게 예산 달라. 시민 안전을 위해 방치된 다리 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공사를 하게만 해주면 예비비도 동원해서 가능한 한 빨리 끝내겠다.
민주당이 이 공사를 4대강 정비 사업의 한 부분으로 규정하면서 거시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사건은 4대강 사업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립의 한 부분이 되었고, 작게 보자면 일단 지르고 보는 지방정부에 대한 의회의 예산 태클의 좀 극단적 형태가 되겠다.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장악한 서울특별시의회와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행정권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가 무상급식 문제로 정면충돌한 상황에서 동시에 벌어진 일이라 원만한 수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서울시는 시의회가 예산을 전액 삭감한 상황에서 2011년 2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예비비를 투입해서 공사를 재개했다.
당시 서울시의회와 연대하여 무상급식 운동을 벌이던 박원순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26개는 '한강운하백지화서울운동'(운하백지화운동)을 결성하여 공사를 진행 중인 서울시를 맹비난했다. 시민단체는 시의회가 공사 중단을 강행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오히려 서울시가 스스로 시민 안전을 팽겨친 것이라 주장했다.
서울시가 예비비로 진행한 하류 쪽 공사가 마무리되어 5월에 개통했다. 그러나 상류 쪽 공사를 두고 서울시는 이미 들인 예산을 생각해서라도 공사는 마무리해야한다는 입장이었고, 시의회는 절대 불허 방침을 보이며,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결국 서울시의회의 반대로 추진해오던 주요 정책들이 모두 무산될 위기에 처하게 된 오세훈 시장은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시장직을 걸고 승부수를 던졌으나 투표율이 미달되어 뚜껑도 열어보지 못하고 시장직을 자진 사퇴했다.
오세훈 시장의 자진 사퇴로 보궐 선거가 치뤄지게 되자 안철수가 압도적인 여론조사 1위를 달리게 되었지만, 대선을 노린 안철수는 시장 후보를 사퇴했고, 이때 책사였던 윤여준의 아이디어로 박원순에게 양보 선언을 하게 되었다. 결국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은 안철수 지지층을 대거 흡수하며 지지율이 5%에서 40%대로 급상승하며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박원순은 시장 선거 유세에서 양화대교를 4대강 정비 사업의 상징으로 규정하면서 다리를 저 상태로 영구 방치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양화대교 상류측 아치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선거 전에 나머지 반쪽의 상판을 뜯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고, 기형적 형태의 다리에 주민들의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공사를 강제로 중단할 것이 확실시 되자 권영규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선거기간 동안 공사를 진행해버린 것이 원인이다. 이 때문에 75억 원이 추가로 투입되었다. 2012년 6월 상류쪽 아치도 올리게 되었고 8월 재개통하였다.
양화대교 교각 철거 공사를 수주한 건설사가 면허도 없는 공사업체에 하도급을 맡긴 것이 드러나 배임수재 혐의로 건설사 소장과 관련 공무원을 입건했다고 보도됐다.
아치교 개죠[편집]
2002년 전면 리모델링을 완료한 양화대교에 또다시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게 되는데, 이는 2006년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된 오세훈 시장의 정책인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에 포함되면서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사항 중 하나인 한강 선착장 건설계획에 따라 양화대교의 주교각 일부를 아치교 형태로 개조하고, 교각간격이 확장된 하부를 통해 선박의 통행을 원활히 하겠다는 것. 이 프로젝트에 따라 양화대교는 리모델링 후 얼마 지나지않은 2010년부터 다시 주교각의 철거와 임시교량 건설 및 아치 구조물을 올리는 대형 개조사업을 받게 되었다.
이 개조사업은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2010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당선된 박원순은 선거기간동안 양화대교 개조사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등 정치적 논리에 의해 공정률이 꽤 진행된 사업을 강제로 중단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고, 공사완공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박원순 시장의 의도와는 다르게 공사는 강행되어 2012년 10월 14일에 아치교 개조가 완료되어 재개통 하였다.
이 교량을 경유하는 노선 버스[편집]
주의 : 광역/직행좌석버스의 경우 도로 사정에 따라 이 대교를 경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 이 교량 위에 양화대교전망카페 정류장과 선유도공원 정류장이 있으나, 두 곳 모두를 정차하는 노선은 없다.
- 서울 버스 602[카페]
- 서울 버스 603[선유도]
- 서울 버스 604[카페]
- 서울 버스 761[선유도]
- 서울 버스 N26
- 서울 버스 N62
- 서울 버스 5712[카페]
- 서울 버스 5714[선유도]
- 서울 버스 6712[카페]
- 서울 버스 6716[카페]
- 서울 버스 7612[선유도]
- 서울 버스 9707
- 서울특별시 관외 시내버스
- 고양 버스 108
- 고양 버스 830
- 고양 버스 870
- 고양 버스 871
- 고양 버스 1082
- 고양 버스 1500
- 굿모닝버스 G6000
- 김포 버스 1004
- 김포 버스 2000(선진상운)
- 김포 버스 3000
- 김포 버스 3000A
- 김포 버스 이음1
- 파주 버스 9030
- 인천 버스 1000
- 인천 버스 1100
- 인천 버스 1101
- 인천 버스 1200
- 인천 버스 1300
- 인천 버스 1301
- 인천 버스 1302
- 인천 버스 1400
- 인천 버스 1500
- 인천 버스 1601
- 광역급행버스 M6117
- 광역급행버스 M6628
- 광역급행버스 M6724
대중문화[편집]
- 자이언티의 2014년 노래 〈양화대교〉는 이 다리를 건너는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양화대교는 업무 지구가 밀집한 종로구, 용산구 일대와 목동으로 대표되는 서울 서남부의 베드타운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다시 말해, 집과 직장을 오가는 손님들을 태우는 택시 기사인 화자 아버지의 일터이다. 따라서 양화대교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새벽까지도 도로 위에서 일을 해야 하는 아버지의 고단함을 상징한다. 화자는 유년 시절 그 고단함을 몰랐지만, 가장이 되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게 되자(가족들이 '나를 바라보게' 되자) 아버지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