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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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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運輸)란 운송이나 운반보다 큰 규모로 사람을 태워 나르거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것을 말한다.[1]

운수업[편집]

운수업은 여객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운송업과 이를 지원하는 창고 및 운송관련 서비스업을 포함하는 산업을 말한다.

운수업은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어디인지에 따라 육상운송업・수상운송업・항공운송업 등으로 나뉘며, 이들 운송업을 지원해주는 창고 및 운송관련 서비스업도 포함한다. 육상운송업은 철도운송업(철도・도시철도), 버스운송업(시내버스・시외버스・고속버스・마을버스・전세버스), 택시운송업(일반 및 개인택시), 화물운송업, 기타 운송업(파이프라인 포함)으로 세분된다. 수상운송업과 항공운송업은 여객부문, 화물부문, 기타부문으로 나뉜다. 창고 및 운송관련 서비스업은 보관 및 창고업, 육상운송지원, 수상운송지원, 항공운송지원, 화물취급업, 기타운송관련 등으로 나뉜다.

운수업 변천[편집]

우리나라의 운수업은 도로・철도・항만・공항 등과 같은 교통기반시설 및 교통수단의 개선과 함께 발달하였다. 옛날의 수송수단은 우마차(牛馬車)를 이용한 육상운송과 선박을 활용한 해상운송이 주요한 것이었고, 내륙지방에서는 나룻배와 목선 및 뗏목 등에 의한 하천운송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현대적 자동차운송과 철도운송, 그리고 기선운송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일이다.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3년 고종이 미국에서 소형승용차를 구입하여 사용하면서부터이지만, 본격적으로 자동차 교통시대가 열린 시기는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된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자동차 수는 1945년 광복 당시에 7326대에 불과하였으나, 1960년대부터 국내 자동차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1970년에는 14만 대를 넘어섰고, 1985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100만 대를 돌파하였다. 그 후 1992년 10월에 500만 대를, 2013년에 1940만 대를 넘어섰다.

철도교통은 1899년 일본인 소유의 경인철도합자회사(京仁鐵道合資會社)가 노량진에서 제물포에 이르는 33.2㎞의 구간을 운행한 경인선이 효시이다. 그 뒤 1905년에 서울에서 부산 초량 간 445.6㎞의 경부선을 비롯하여 경의선(1906년), 호남선(1914년), 경원선(1914년), 충북선(1929년), 전라선(1936년), 중앙선(1942년) 등이 차례로 개통되어 간선철도망이 구축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남북한을 합하여 철도연장은 6326㎞에 달하였으나 국토분단으로 남한의 철도연장은 2642㎞로 감소하였다. 분단 이후 역은 762개소에서 300개소로 감소하였고, 기관차 보유대수는 1166대에서 517대로, 객차와 화차는 모두 5만 2379량에서 9724량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철도 노선의 궤도 총연장은 2003년에 7000㎞를 넘어섰으며, 2012년 말 기준으로 8419㎞에 달한다. 역의 수는 1990년대 초반에 일시적으로 감소하였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증가 추세를 나타내어 2012년 말에는 662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궤도 길이와 역의 수가 증가한 것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도시철도 및 광역철도의 개통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해상운송의 발달이 이루어졌다. 선사시대에는 뗏목이나 통나무배와 같은 원시적인 운송수단을 이용하였고 항만발달도 미비하였으나, 통일신라시대에 장보고(張保皐)가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여 일본 및 당나라와 무역활동을 하였다는 사실로 보아 인공적인 항만시설이 착실히 발전한 것으로 사료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주변 국가들과의 무역활동이 이루어졌다.

해상운송은 1876년(고종 13) 외세에 의해 이루어진 개항과 더불어 외국과의 무역활동이 재개되고 일반인의 무역이 허가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876년에 부산항이 공식적으로 개항한 것을 필두로 인천항(1883년), 목포항(1897년), 군산항(1899년)이 개항하면서, 일본을 비롯한 대만·사할린·남양군도 등지와 해외무역이 이루어졌다. 1892년에는 최초의 해운회사인 이운사(利運社)가 정부직영 관영기업으로 운영되었다.

광복 당시 우리나라의 선박 보유 톤수는 20톤 이상의 배 855척에 10만 9700톤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1960년에 이르기까지 큰 발전이 없었다. 정부에서는 1967년 3월 30일 법률 제1941호에 의거하여 16개의 무역항과 24개의 연안항을 지정하였으며, 1998년에는 무역항과 연안항이 각각 28개와 22개로 확대 지정되었다. 2013년 기준으로 무역항은 국가관리무역항 14개와 지방관리무역항 17개가 있으며, 연안항은 국가관리연안항 11개와 지방관리연안항 18개가 설치되어 있다.

항공운송은 1939년에 김포비행장이 처음으로 설치되면서 본격화하였으며, 1952년 11월 11일에 국제민간항공조약에 가입하였고,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의 회원국이 되었다. 1947년 7월 15일에 최초로 외국항공사인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가 취항한 이래 2012년 12월까지 세계 93개국과 항공협정을 체결하였다. 2001년 4월에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이 항공노선의 중심지로 변모하면서 동아시아의 허브공항으로 발돋움하였다. 2014년 현재 8개의 국제공항과 7개의 국내공항이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19 전후 운수업 변화[편집]

2019년
통계청 2019년 운수업조사 결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운수업 조사 결과'(잠정)에 따르면 2019년 운수업 매출액은 152조원으로 전년도(146조9000억원)보다 3.5% 증가했다. 운수업 매출액은 2013년부터 2년 연속 감소하다가 2015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선 뒤 5년 연속 늘고 있다. 다만 국제사회 무역 갈등 영향으로 항공운송업에서만 매출 감소가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철도여객, 버스, 택시 등 육상운송업 매출액이 67조8000억원으로 3.6% 올랐고, 수상여객 및 화물을 포함하는 수상운송업도 29조2000억원으로 3.1% 상승했다. 창고・운송관련 서비스업은 30조2000억원으로 7.1%의 비교적 높은 매출 신장 폭을 기록했다.

반면 항공운송업은 전년도 25조원에서 24조8000억원으로 0.7% 감소했다. 2016년 이후 3년 만에 매출이 줄면서 관련 업종 중 유일하게 뒷걸음했다. 통계청은 '택배업과 외항화물운송업 등의 증가로 전체 매출은 늘었지만 국제사회 무역 갈등 영향으로 항공화물운송 실적이 부진해 항공운송업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운수업 매출액 증가와 함께 영업비용도 139조5000억원으로 3.7% 증가했다. 생활물류 등 물동량 증가에 따른 물류시설 확충과 인건비 상승 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운수업 기업체 수는 39만3000개로 전년 대비 8800개(2.3%)가 늘었고, 종사자 수도 115만4000명으로 1년 사이 1만9000명(1.7%) 증가했다.

기업체수는 주로 육상운송업으로 1.5t 이하 택배용 차량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별・용달화물차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종사자 수는 육상, 수상, 항공운송업에선 모두 늘었지만, 창고 및 운송 관련 서비스업 종사자는 3.3% 줄었다.

통계청은 운수업 가운데 여객을 제외한 물류 관련 25개 업종과 운수업 외 물류 관련 서비스업을 8개를 포함한 33개 업종을 따로 분리해 집계했다. 물류산업 기업체 수는 21만7000개, 종사자 수는 59만6000명, 매출액은 92조4000억원으로 나타났다.[2]

2020년
통계청 2020년 운수업조사 결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운수업 조사 결과'(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운수업 매출액은 153조2000억원으로 전년도(168조5000억원) 대비 9.1%(15조3000억원) 감소했다.

운수업 매출액은 2013년부터 2년 연속 감소하다가 2015년부터 증가세로 전환한 뒤 5년 연속 늘었지만 지난해 6년 만에 흐름이 끊겼다.

전반적인 매출 감소에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온라인 쇼핑 비중이 커지면서 육상운송 매출액은 76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1조2000억원) 증가했다.

비대면 소비 활성화로 화물차, 택배, 늘찬배달(퀵서비스) 등 도로화물 매출이 51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2%(7조2000억원)나 급증했다. 관련 종사자도 60만8000명으로 전년 보다 5만8000명 늘었다.

국내 여행객 감소와 재택근무 등의 영향으로 철도운송은 매출이 22.1% 감소했고, 육상여객도 17.4% 쪼그라들었다. 철도운송은 신규 노선 등으로 종사자가 2000명가량 늘었지만 버스와 택시 등 육상여객 종사자는 3만6000명(-8.1%) 줄었다.

항공운송업은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매출액은 12조6800억원으로 전년(25조8800억원)보다 무려 51%나 감소해 2년 연속 뒷걸음했다. 항공운송업 매출이 12조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07년(12조5700억원) 이후 13년 만이다.

통계청은 '코로나19가 본격적인 확산세를 보인 지난해 초부터 주요국이 국경을 폐쇄하고,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의 영향으로 항공운송업에 충격이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해외 여행객 감소 등으로 항공여객 매출액은 5조4700억원으로 전년도(21조4000억원)의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관련 기업체도 51개에서 35개로 줄었고, 종사자 수 역시 전년보다 7000명(-18.5%)이 줄어 3만명을 겨우 넘었다.

수출 호조와 해외 직구 등의 영향으로 항공화물 매출액(7조2000억원)이 60.7% 증가하며 항공여객 매출을 앞질렀지만 전체적인 매출 감소 충격을 만회하긴 불가능했다.

수상운송업도 내·외항 화물 감소 영향으로 매출액 27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7%(3조4000억원) 감소했다. 120개 업체가 문을 닫고, 관련 종사자도 3600명가량 떠났다.

통계청은 운수업 가운데 여객을 제외한 물류 관련 25개 업종과 운수업 외 물류 관련 서비스업을 8개를 포함한 33개 업종을 따로 분리해 집계했다. 물류산업은 기업체수 37만9000개(-0.6%), 종사자수 75만1000명(6.5%), 매출액 114조1000억원(9.7%)으로 나타났다. 전체 운수업에서 물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기업체 수 68.2%, 종사자 수 57.7%, 매출액 72.4%를 차지했다.[3]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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