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도색)
칠(漆)은 옻나무의 수액으로 만든 천연도료다. 동식물의 기름과 글리세린 등을 섞어 만든 페인트에 밀려 위상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칠은 인체에 무해한 무공해 도료로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널리 사용되어왔다. 칠은 물건에 액체나 기름 등을 바르는 행위이며 한국에서는 칠하다가 바르는 행위를 모두 총칭한다. 회칠(회漆), 기름칠(기름漆), 비누칠(비누漆), 페인트칠(페인트漆) 등은 바르는 행위를 표현하다.[1][2]
개요[편집]
옻나무에서 채취한 칠을 생칠(生漆)이라 하며 이것을 도장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공한 칠을 정제칠이라 부른다. 칠자(字)는 본래 '桼'이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옥편 설문(說文)을 보면 '桼'은 옻나무 본신을 말하고, '桼'자의 형상은 상형문자로서 옻나무가 물방울을 흘리는 형상이라고 하였다. 칠자는 칠수명(漆水名)이며 칠수(漆樹)에서 흘러내린 칠즙(桼汁)을 말하는 것으로 사실상 '桼'자와 엄격히 구분된다. 그러나 즙(汁)을 '桼'이라 하며 그것이 오늘날 변화되어 칠자가 되었다. 옻칠 속에는 옻산(칠산 : Urushiol), 고무질, 함질소물, 수분 등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옻산 성분이 많을수록 양질이고 수분이 많을수록 저질의 칠로 구분된다. 옻나무에서 채취된 생칠은 회백색이며 공기 중에 산화되면서 더욱더 진한 황갈색으로 변한다. 맛은 단맛이며 접착력이 좋다. 옻칠은 생칠 자체로도 공예용으로 활용되며 특히 강장제로 쓰이고 위장, 냉대하 등에 효력이 좋다. 예로부터 머리 염색약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주로 목재에 옻칠을 하므로 수분 60∼70%, 온도 17∼23℃를 조절하여 공예품을 제작하지만, 유럽에서는 자동차, 라이터, 만년필 등 공산품(주로 금속)에 옻칠을 활용하기 때문에 200∼700℃의 고열 건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칠을 만지거나 옻나무 근처에 가면 옻이 오르는데 옻나무를 태울 때 그 훈기를 쐬거나 옻을 끓일 때 수증기에 닿으면 옻 오르는 강도는 더 높아진다. 옻이 올랐을 때의 치료방법은 주로 가재, 게를 빻아 그 즙을 바르거나 바닷물 혹은 두부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수를 바르는 등 민간 치료요법을 이용한다. 옻칠은 일단 건조되고나면 내화(열)성, 내수성, 방부성, 방충성, 내산성이 강하여 공예품, 공산품용으로 그 활용 가치가 높다. 특히 자연에서 얻는 무공해 도료로서 여느 도료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다.[3]
칠은 한국, 중국, 일본, 미얀마, 베트남에서 생산된다. 옻나무 표피에 상처를 내면 상처로부터 유회백색의 유액상 수지가 나온다. 이것을 생칠이라 한다. 칠액의 주성분은 우루시올이며, 기타 수분과 소량의 고무질 및 함질소물(含窒素物)을 함유하고 있으며, 조성은 산지에 따라 다르다. 생칠을 그대로 도료로서 칠하면 광택이 나쁘고 또한 산화효소 라카아제(laccase)의 작용으로 건조가 너무 빠르므로 각각의 용도에 맞추어 가공할 필요가 있다. 채취 직후의 칠은 공기에 접하면 흑색을 나타낸다. 장시간 저장하면 수분과 고무질은 가라앉게 되어 칠이 상층에 모인다. 생칠은 용기 내에서 상온(常溫)으로 휘저어 섞은 후 38∼45 ℃로 수시간 보존하면 빛깔이 검게 변한다. 이 공정을 소흑목(素黑目)이라고 하며 공정 중의 주반응은 산화와 탈수라고 생각된다. 이 밖에 기름을 가하든지 안료를 첨가하여 정칠(精漆)이라는 최종제품을 얻게 된다. 옻칠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예로부터 금속이나 목공 도장용(木工塗裝用)으로 가장 소중히 여겨왔던 도료이다. 최근에는 생산량이 적고 비싸기 때문에 주로 미술공예품 등의 용도에 사용된다. 도막(塗膜)의 경도, 부착성, 광택 등이 뛰어나지만 담색(淡色)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페인트 및 에나멜 등에 비하여 깊이가 있고 무게 있는 예술적 감각 때문에 많이 쓰인다. 이 밖에 높은 전기저항과 내열성을 이용하여 전기 절연도료, 내산 도료에도 간혹 사용된다. 특히 옻칠이 손이나 얼굴에 닿으면 우루시올의 작용으로 옻이 오른다. 피부에 닿은 옻칠은 식용유를 이용하여 닦아내고 식용유는 온수와 비누로 잘 씻는다.[4]
옻칠[편집]
옻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인도 등에서 자란다. 따라서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옻나무에서 채취한 인체에 무해한 무공해 도료인 옻칠을 이용해왔다. 중국의 경우는 절강성 하모도(河姆渡) 신석기 유적에서 완전한 모습을 갖춘 주칠목기(朱漆木器)가 발견된 바 있다. 전설적인 인물인 순(舜)임금이 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고, 기원전 1세기경에 만들어진 한나라 마왕퇴 무덤에서는 칠기로 관을 만들어 시체를 썩지 않도록 건조시켜 미라처럼 보존시킨 예도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는 칠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조칠(彫漆- 금속이나 나무 그릇의 표면에 옻칠을 한 다음, 그 위에 산수, 인물, 화조 따위를 새기는 기법)기법이 발달하였고, 일본은 마키에(蒔繪- 장식 면에 옻으로 문양을 그리고 그 위에 금, 은, 주석가루나 색 가루를 뿌려 굳히는 방식)라는 칠공예 장식법이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전칠기(螺鈿漆器), 황칠(黃漆)등이 대표적인데, 이처럼 동아시아의 각 나라마다 특색있는 칠문화가 발전을 해왔다.
장점[편집]
옻은 옻나무의 진으로 끈적거리는 성질이 있으므로 칠은 장식 재료를 기물과 접착시켜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기물에 칠을 하면 부패를 막아주는 방부성, 방수성이 생긴다. 나무로 만든 그릇은 물이 새어 나오기 쉬우나, 칠을 하면 물이 스며들지 않으니 썩지 않는다. 팔만대장경 등이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나무에 옻칠을 했기 때문이다. 물을 담아 두어도 되니, 국물 등을 담는 그릇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칠은 세균을 막아주는 방충작용을 한다. 따라서 칠기가 식기로 널리 사용될 수 있었다. 칠을 하면 기물에 윤기가 생겨 표면이 매끄러워지고 광택이 나므로 고급스러움을 줄 수 있다. 흑색, 갈색, 황색, 붉은색 등 여러 색을 낼 수도 있다. 또한 칠은 열(熱)과 산성(酸性)에도 강하며, 전자파를 흡수하는 장점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살균력이 좋다고 알려져 옻칠을 한 도마나 국자, 수저 등의 상품도 이용되고 있다. 칠의 단점을 굳이 꼽자면, 낮은 생산량과 높은 가격이다. 옻나무에서 옻을 생산하는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궁궐의 나무 기둥에는 옻칠이 아닌 단청을 했던 것이다.
역사[편집]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칠기(漆器)는 기원전 3세기경 충남 아산 남성리 유적, 2세기경 전남 함평 초포리 유적, 황해도 서흥 천곡리 석관묘 등에서 발견된 칠기 파편 등을 들 수 있다. 보다 완전한 칠기로는 기원전 1세기에 만들어진 창원 다호리, 광주 신창동 유적 등에서 발견된 칠기 그릇과 칼집 등을 들 수 있다. 칠기는 고조선-삼한 시대부터 널리 사용되었던 것이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의안군(義安郡)에 속한 칠제현(漆隄縣)은 원래 칠토현(漆吐縣)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지금의 칠원현(漆園縣)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곳은 칠기 유물이 출토된 창원시 다호리와 그리 멀지 않은 함안군 칠원면, 칠서면, 칠북면 일대다. 이 지역은 약 2천 년 전부터 옻나무를 재배하고 칠기를 제작하던 곳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옻나무의 산지로 특히 유명했던 곳은 평안북도 태천 지역이다. 때문에 평안도 일대에서는 기원 전후시기 많은 칠기류가 생산된 바 있다. 칠기의 원류라고 할 중국 지역보다 당시 이곳에서 더 발전된 칠기가 생산되기도 했다. 옻나무가 많았던 고구려에서는 장천1호분을 비롯한 여러 무덤에서 옻칠을 한 나무관의 파편이 발견된 바 있다.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관에 옻칠을 하여 사용했던 것이다. 무용총, 각저총 벽화에서 보이는 식기류, 소반도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 역시 칠기라고 볼 수 있다. 백제의 경우에도 523년에 죽은 무령왕의 무덤에서 옻칠을 한 왕과 왕비의 목관과 두침, 발 받침대가 발견된 바 있다. 백제에서는 검은 칠과 붉은 칠을 고루 사용했고, 여러 가지 문양을 그려 넣기도 했다. 신라의 경우에는 천마총, 황남대총,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식리총, 호우총, 은령총, 안압지 등에서 옻칠을 한 잔(盞), 고배(高杯)형 그릇, 합(盒-둥근 그릇), 원반(圓盤), 빗(梳), 함(函) 등 다양한 종류의 칠기가 출토된 바 있다. 특히 신라에서는 칠전(漆典)이란 관청이 있어 옻칠의 생산과 관리를 감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칠전은 경덕왕(742〜765)때 식기방(飾器房)으로 고쳤다가 다시 칠전이 되었다. 칠전이 식기방이란 이름을 한때 사용했던 이유는, 궁중에서 칠을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 식기류였기 때문일 것이다. 834년 신라 흥덕왕은 사치를 금하는 칙령을 내렸는데, 4두품에서 일반 백성까지는 금, 은, 놋쇠로 만든 제품의 사용과 주리평문( 朱裏平文- 문양이 새겨진 붉은 색 칠기 그릇)의 사용을 금지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당시에 칠기는 일반 백성들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귀족들의 사용품이었다.
채취 방법[편집]
- 살소법 : 7∼8년생 나무가 20m 정도 자랐을 때 채취를 시작한다. 먼저 채취할 나무를 정하고 1인당 500 그루를 4일간에 모두 채취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운다. 지표에서 21∼23㎝, 너비 3.9㎝ 되는 곳에 수평으로 옻나무 껍질을 V자 형으로 벗겨낸다. 4일 후부터 36.4㎝ 가량 간격을 두고 좌우 모두에 3.3㎝, 길이 9㎝ 정도의 흠을 낸다. 먼저 본나무 줄기의 둘레를 깨끗이 한다. 즉 나무에 흠을 내기 전에 나무 주위를 옻칼의 날로써 정리한다. 그리고 나서 행객기(행긋기)한다. 이것은 나무에 옻칼로 흠을 내는 것으로 오른손에 옻칼을 잡고 엄지손가락은 나무에 대고 긋는다. 행객기를 한 후에 옻이 홈에 맺히면 칠주걱으로 긁어 모은다. 처음 긁는 것은 아이긁기(애벌긁기)라 하고, 두 번째 긁는 것을 뒤칠긁기, 세 번째를 세벌긁기라 한다. 칠주걱으로 긁은 옻은 휴대용 옻통에 담는다. 옻나무에서 칠을 채취할 때 보통 1∼3배 긁기를 하는데, 1배 긁기는 나무 둘레가 20∼25㎝정도, 2배 긁기는 나무 둘레가 40㎝ 정도 되었을 때가 적당하다. 이렇게 칠 채취작업을 반복 하다보면 6월 상순부터 10월 하순까지 보통 22∼25개의 홈이 남게 된다. 생칠 채취가 끝나면 그 옻나무는 베어내게 된다. 보통 25그루에서 1년에 3.75㎏ 씩 채취한다. 주의할 점은 옻칠 채취통으로는 고무통이나 플라스틱통이 좋고 금속제품은 피한다.
- 양생법 : 매년 혹은 격년제로 채취하는데, 보통 7월 상순부터 8월 하순까지 만 채취한다. 즉 옻나무를 살려가면서 채취하는 방법인데, 채칠 능률이 좋고 단기간에 비교적 우수한 칠을 다량으로 채취할 수 있다.
- 화소법 : 옻나무 직경이 4∼5m 되는 2∼4년생을 벌채하여 불에 쬐어 가며 옻칠을 채취하는데 이를 화칠 또는 숙칠(熟漆)이라 한다. 화칠은 옻나무를 불에 쬐는(뜸을 들이는) 과정에서 수분이 상당 부분 증발되고 옻 속에 함유되어 있는 산화효소(酸化酵素)가 약화되어 건조가 빠르므로 주로 목물에 많이 사용된다. 지리산 주변의 남원, 산청, 함양 등지에서 옛날부터 활용되고 있는 도장방법이다. 보통 한 그루당 20∼35㎏ 채취된다.
생칠은 6월 상순∼7월 상순까지 채취한 칠을 초칠(初漆), 7월 중순∼9월 중순까지 채취한 칠을 성칠(盛漆) 또는 중칠(中漆), 9월 하순∼10월 중순까지 채취한 칠을 말칠(末漆), 10월 하순∼11월 중순까지 채취한 칠을 끝칠 또는 뒤칠이라고 한다. 채취량은 나무 둘레가 15∼18㎝이면 칠액 113g, 24∼30㎝이면 225g, 30∼39㎝이면 424g 가량 채취한다. 옻칠을 채취하는 사람을 옻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들은 보통 이른 아침 동트기가 무섭게 옻나무에 오르며, 점심을 먹은 후 2∼3시에 일을 끝낸다. 한 사람이 보통 하루 150그루 정도 채취하는 것이 적정량이다. 비오는 날은 채취하지 않는데, 비오기 전날이나 화창한 날의 다음날 날씨가 흐리면 생칠은 더 많이 채취된다. 조선시대에는 항아리 채취법이 있었다. 이것은 옻나무 밑둥을 파고 항아리를 묻은 뒤 옻나무 뿌리를 끊어 항아리에 넣어 두고 항아리 속으로 옻칠이 흘러들게 하여 채취하는 방법인데, 근래에는 이런 채취법은 없다. 생칠의 채취 도구로는 칠칼, 칠주걱, 휴대용 칠통, 낫 등이 필요하다. 이렇게 채취된 생칠은 집에 있는 저장용 큰 통에 담아 보관하며, 종이(대개 한지 또는 시멘트 포장용지)가 생칠과 닿게 덮어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밀폐시킨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생칠은 채취 중에 나뭇잎이나 벌레 등 이물질이 들어가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러한 불순물을 여과기(濾過器)에 넣어 걸러낸 것을 정제 생칠이라고 한다. 이 정제생칠을 교반기(攪拌機)에 넣어 회전 가열, 탈수시켜 다시 원심 분리기에서 이물질을 제거한 칠을 정제칠이라 한다. 정제칠은 투명칠과 흑칠로 구분하여 정제할 수 있는데, 보통 안료나 채색용칠은 정제 투명칠에서 얻을 수 있다. 정제생칠은 주로 하지용, 접칠용(摺漆用) 투명칠에 사용되며 정제 투명칠에는 고광택칠, 투명 남색칠, 투명 하도칠, 투명 중도칠, 투명 반무광칠이 있다.. 정제 흑칠엔 흑남색칠, 흑유광칠, 흑하도칠, 흑중도칠, 흑반무광칠 등으로 구분 정제되는데, 이것은 무광, 유광, 반무광으로, 그 기능과 특성이 각기 다르게 정제된다. 또한 정제 시간을 자유 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정제칠도 구할 수 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