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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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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군기
칠곡군 위치
칠곡군청

칠곡군(漆谷郡)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서남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으로 군위군, 서쪽으로 성주군, 김천시, 남쪽으로 대구광역시, 북쪽으로 구미시와 접한다. 경상북도의 군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으며, 대구광역시의 위성 도시 중 하나이다. 조선 시대에는 칠곡읍(1981년에 대구로 편입)이 칠곡군의 중심지였으나, 1914년 4월 1일에 인동군을 칠곡군에 합치고 군청을 왜관읍으로 옮긴 후 왜관읍이 칠곡군의 군청소재지이자 중심지가 되었다.[1]

개요[편집]

칠곡군은 동경 128°16′∼128°38′, 북위 35°52′∼36°07′에 위치한다. 면적은 450.93㎢이고, 인구는 2023년 7월을 기준하여 111,434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 5개 , 203개 행정리(73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 있다.

주변 도시들의 배후지 성격으로 칠곡군 곳곳에 규모의 시가지가 형성되었으며, 읍이 3곳(왜관읍, 북삼읍, 석적읍)이나 있다. 원래는 칠곡읍도 있었지만, 칠곡지구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대구가 1981년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칠곡읍을 편입했다. 다만 칠곡군청은 일제강점기 이후 계속 왜관읍에 있었는데, 왜관읍이 지리적으로 1914년 인동군과 통합된 새로운 칠곡군의 중심에 있으며 경부선이 지나가는 등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고 구 칠곡읍은 칠곡군의 동쪽 끝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칠곡군에는 칠곡(읍)이 없다.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칠곡군이라는 지역성과 동질감이 옅은 데다가, 인접 대도시대구광역시구미시에 여러 차례에 걸쳐 행정구역이 편입되면서 칠곡군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일단 칠곡군 자체로 시 승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는 있다. 구미시와의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러나 현재 지방자치법 상으로는 중심지인 왜관읍의 인구가 시 승격 기준인 5만 명에 이르지 못해 칠곡군의 시 승격이 불가능하다. 왜관읍과 석적읍을 통합하는 편법을 쓰거나 지방자치법 자체를 개정하려는 등 갖은 수단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대구 사람들은 칠곡군에 갈 때 '왜관 간다.'고 하지, '칠곡 간다.'고 안 한다. 대구에서 '칠곡 간다.'는 말은 팔달교 건너편 칠곡택지지구로 간다는 의미이기 때문. 칠곡군청에 가려면 경부선 왜관역이나 왜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야 한다.

대구의 옆에 있으면서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등)와 가까운 이점 때문에 많은 공장이 대구에서 이전해 갔다.[2][3]

자연환경[편집]

태백산맥의 지맥이 북동으로 연장되면서, 가산(架山)을 거쳐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군의 동북부를 형성하고, 서쪽으로는 도립공원인 금오산(金烏山)이 구미시와 경계를 이룬다. 군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지질이 중생대 백악기의 경상계(慶尙系) 퇴적암으로 되어 있다. 팔공산의 화강암과 접하는 부분에는 변성암이 분포한다.

중앙부에는 가산(架山, 902m)과 유학산(遊鶴山 또는 遊嶽山, 839m)·황학산(黃鶴山, 782m)·소학산(巢鶴山, 622m)·작오산(鵲烏山, 303m)·숲데미산(519m)·기반산(岐般山, 465m)·장원봉(莊元峰, 372m)·백운산(白雲山, 713m)·우계산(466m) 등이 솟아 있다.

북쪽으로는 천생산(407m)·봉두암산(鳳頭巖山, 327m) 등이, 남쪽으로는 명봉산(402m)·도덕산(道德山, 660m) 등이 솟아 각각 구미시와 대구광역시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 서쪽은 지질이 고생대의 화강편마암으로 되어 있고, 금오산(977m)·영암산(鈴巖山, 782m)·서진산(棲鎭山, 742m)·봉화산(468m)·도고산(349m) 등이 솟아 김천시·성주군과의 동쪽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천으로는 낙동강 서쪽의 금오산 남쪽사면과 영암산 북쪽사면에서 발원하여 북삼읍·약목면을 관류하여 동류하는 경호천(鏡湖川)이 면 중앙을 가로질러 동류하는 두만천(頭滿川)과 약목면 덕산리에서 합류하여 관호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기산면 중앙을 관류하여 동류하는 서원천(書院川)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동쪽에서는 가산면을 흐르는 한천(漢川)과 석적읍 북부를 서류하는 광암천(廣巖川)이 낙동강에 흘러든다. 동명면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팔거천과 지천면을 남북으로 관류하는 이언천(伊彦川)이 남류하다가 금호강(琴湖江)으로 흘러든다.

낙동강의 주변에는 넓은 충적 평야가 발달되어 있으며, 경호천은 유역에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여 북삼읍의 북삼들, 약목면의 약목들을 전개시킨다.

기후는 연교차가 큰 남부내륙형이며, 연평균기온 14.8℃, 1월 평균기온 0.8℃, 8월 평균기온 25.8℃이며, 연 강수량은 1222.4㎜이다.[4]

역사[편집]

이 지역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 중기부터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경상북도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석적읍 중리에서 구석기시대 중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는 르발루아첨기(Levallois尖器)·돌망치·찍개(chopper) 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에도 이곳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유물·유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삼한의 군미국(軍彌國)이 이 곳에 위치했던 것으로 비정된다. 이들 소국의 행방은 알 수 없으나, 일찍부터 백제와 신라의 영토확장으로 인해 양국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결국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신라 때에는 사동화현(斯同火縣)·대목현(大木縣)·팔거리현(八居里縣)이 설치되었다. 이 후 757년(경덕왕 16)에 각각 수동현(壽同縣)·계자현(谿子縣)·팔리현(八里縣)으로 개칭되어 수동현과 계자현은 성산군(星山郡: 星州)에, 팔거리현은 수창군(壽昌郡)에 속하였다.

후삼국 시대에는 견훤(甄萱)과 왕건(王建)의 세력이 경쟁적으로 이 지역에 진출하였다. 927년(태조 10) 견훤이 신라를 공략하고 귀환하는 길에 계자현 들판에 쌓인 곡물을 불태웠다고 한다.

고려 초에 수동현이 인동현(仁同縣)으로, 계자현이 약목현(若木縣)으로, 팔리현이 팔거현(八居縣 또는 八莒縣)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인동현과 팔거현이 경산부(京山府: 星州)의 속현으로 되었다.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약목현 역시 경산부에 내속(來屬)하였다.

고려 말에 이르러 1390년(공양왕 2)에는 인동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약목현도 겸임하였다. 한편, 1031년에 만들어진 약목현의 정도사(淨兜寺) 오층석탑의 조성기(造成記)는 고려 초 지방사회의 구조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 초에 인동현에는 감무 대신 현감(縣監)이 파견되었으며, 약목현은 인동현의 속현으로, 팔거현은 성주목의 속현으로 되었다. 당시 이곳의 토지는 절반만이 비옥했고 풍속은 검소했으며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호구수는 657호 4,551인이었다.

1593년(선조 26)경에 경상도 감영이 일시 팔거현으로 옮겨지면서 이 지역이 중요시되었다. 그 결과 1604년에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의 요청에 따라 천생산성(天生山城)이 축조되고 인동현이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640년(인조 18)에는 팔거현에 가산산성이 축조되면서 팔거현이 칠곡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이처럼 좁은 지역에 2개의 도호부가 설치된 것은 이 지역이 경상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감영인 대구를 방비할 수 있는 천연적인 요새였기 때문이다.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 때 23부제가 실시됨에 따라 칠곡군과 인동군으로 개편되어 대구부에 속하였다. 다음해에 13도 제가 실시되자 다시 경상북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인동군이 폐지되었고 그 관할구역은 칠곡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시기에 항일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이 지역 인사들도 많이 참여하였으며, 이러한 항일의식은 1919년의 3·1 운동으로 이어져 인동·약목·석적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49년 8월 13일 왜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6·25전쟁 때에는 대구를 함락하기 위한 북한군의 주력이 이곳을 공격해와 낙동강을 경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때 아군은 가산면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기는 쾌거를 올렸다.

1973년 7월 1일 북삼면 낙계동이 선산군 구미읍으로 편입되었고, 1974년 11월 1일 약목면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6년 4월 1일 가산면으로 승격되었다. 1978년 2월 15일에 인동면 일원이 구미시로 편입되었고, 1980년 12월 1일 칠곡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이듬해 대구직할시로 편입됨으로써 군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1987년 1월 1일 선산군 장천면 석우리가 가산면에 편입되었고, 1988년 5월 1일 동이 이로 개칭되었으며, 1989년 1월 1일 가산면 신장리가 선산군 장천면으로 편입되었다. 2003년 7월 1일 북삼면이 북삼읍으로 승격되었고, 2006년 10월 1일 석적면이 석적읍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관할구역은 왜관읍·북삼읍·석적읍과 지천면·동명면·가산면·약목면·기산면의 3읍 5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대구와 구미 사이에 낀 도시다 보니 근교 농업이 발달했다. 낙동강 유역 농촌 지역에는 쌀 외에도 딸기, 상추 등 과채 농업, 원예농업이 발달해있다.

제조업의 경우, 대구와 구미에서 이전한 중소기업의 공장이 많다. 인근 구미의 영향을 받아 전자부품 산업이 많이 발달했고, 대구와 같이 기계 부품, 금속 가공 산업이 많이 발달했다. 구미 3공단 부지의 일부가 석적읍에 있다.

그 외 교촌 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의 등기상 주소가 가산면으로 되어 있어서 지방세 납부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왜관역 뒷쪽으로 미군 부대가 크게 펼쳐져 있는데, 여기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업의 규모도 상당했다. 그리고 독일, 일본, 미국의 영향을 받은 곳인데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이 있는 데다 다부동 전투의 배경이다 보니 관광업 역시 발달해 있다.

교통[편집]

칠곡군은 왜관역의 영향이 매우 강하여 철도 초강세 급을 넘어서 철도가 지배하는 지역이며 버스 교통의 무덤에 속한다. 2018년 6월 30일까지만 해도 도서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에서도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시외버스가 없는 유일한 군에 속했다. 이러한 경향은 대구권 광역 철도가 개통되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철도는 경부선, 경부고속선이 지나며 왜관역, 약목역, 신동역, 약목보선기지가 있다.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칠곡물류 IC, 왜관 IC)와 중앙고속도로(다부 IC, 가산 IC), 대구 외곽순환고속도로(칠곡 JC, 지천 IC)를 이용할 수 있다.

관광[편집]

북부에 팔공 산맥(八公山脈)의 서쪽 끝인 가산에서 유학산으로 이어지는 산지가 있고, 서부에 금오산·영암산이 솟아 있다. 낙동강이 중앙을 남북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어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이 군은 대구 근교에 위치하며 대도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산악·전적(戰蹟) 관광지이다. 또한, 낙동 강변의 과수농원은 대구 근교의 주말 관광지로 대두되고 있다.

관광지로는 가산면 가산리의 가산산성과 다부리의 다부동전적기념관, 가산면 학산리·학상리와 석적읍 성곡리 경계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유학산, 동명면 구덕리의 송림사, 북삼읍 숭오리의 금오동천이 있다.

팔공산 북서단의 가산 산정에 임진왜란 이후 축조된 가산산성(架山山城)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일대는 팔공산도립공원 4개지구(架山·把溪寺·桐華寺·銀海寺) 중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칠곡 일대는 부산·대구·조령(鳥嶺)·충주·서울로 통하는 영남(嶺南)의 요로(要路)였다.

가산산성은 이 길을 감제(瞰制)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병자호란(丙子胡亂) 후 17∼18세기에 걸쳐 축조되었다. 우리나라 산성으로는 유일하게 정상에 내성(內城), 중턱에 중성(中城), 하단에 외성(外城)을 쌓은 3중성(三重城)이며 포곡식(包谷式: 계곡 포함, 테뫼식) 석성(石城)이다. 이 성은 천험(天險)의 요새에 입보(入堡)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축성기술이 명확하게 남아 있어 조선 후기의 성곽연구에 중요한 사료(史料)가 되고 있다.

학이 노닐다 갈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유학산에는 높이가 50m나 되는 바위 절벽(일명 쉰질바위)과 도덕암이 있고 정상에는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유학산 동남쪽 다부리에는 6·25전쟁 때 북한군의 낙동강 도하를 저지하여 적군을 섬멸한 것을 기념하는 다부동 전적기념비와 기념관이 있다.

544년(진흥왕 5)에 창건된 송림사는 1235년에 몽고군에 의해, 1597년에는 왜병에 의해 불탔다가 1858년 중건되었다. 대웅전 앞의 많은 벽돌(塼)을 반듯하게 쌓아 만든 높이 16.3m의 오층전탑(五層塼塔)은 9세기 초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의 현판은 숙종의 친필이며 대웅전 안에는 대한민국에서는 보기드문 큰 목(木)불상이 모셔져 있고, 그 외에도 전국에서도 규모가 제일 큰 명부전과 당간지주가 있다.

금오동천(金烏洞天)은 영남의 명산이며 경북팔경 가운데 제일로 꼽히는 수려한 명산인 금오산의 서쪽 계곡이다. 금오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800m가량 아래의 성안 분지에서 아래 계곡이 끝나는 지점까지를 말하며, 특히 여름철에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사철 맑고 시원한 물이 숲에 덮인 계곡을 흐르고 작은 폭포와 소(沼), 바위틈에 부딪치는 물소리 등이 어우러져 선경을 이룬다.

그 외 동명면 득명리의 한티마을과 구덕리의 기성 계곡 그리고 기성리의 삼층석탑, 지천면 연화리의 신나무골, 칠곡군 석적읍의 왜관지구 전적기념관, 가산면 금화리의 금화계곡과 금화저수지·금화관광농원, 임진왜란 때 홍의 장군 곽재우(郭再祐)가 많은 의병을 모아 왜군을 대파한 천생산성 등이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1985년부터 매년 10월에 칠곡문화제가 열리고 있으며, 청단제(淸壇祭)라고 하는 동제가 정월 초순에서 보름 중에 열린다. 또 매년 5월 아카시아꽃이 만개할 즈음 열리는 아카시아 벌꿀 축제는 점차 시민축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칠곡군〉, 《위키백과》
  2. 칠곡군〉, 《네이버 지식백과》
  3. 칠곡군〉, 《나무위키》
  4. 칠곡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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