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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흥산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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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흥산구역(東興山區域)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함흥시 서북부에 위치해 있는 구역이다.[1] [2]

개요

함흥시 동흥산구역은 서쪽으로 함주군, 북쪽으로 영광군과 접한다. 구역명은 함흥의 진산(鎭山)인 동흥산에서 따왔다. 원래 '반룡구역'이었으나 1977년 산 이름이 바뀌면서 구역명도 함께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2001년 8월에는 동흥산구역이 폐지되면서 함흥시 동흥산 동으로 되었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면, 과 구의 이름이 원래 이름인 '반룡산', '반룡구'나 '반룡산구'로 바뀔 수도 있다.[3]

자연환경

함흥시는 성천강 하류 함주벌의 동부에 자리잡고 있는데, 대부분 지역이 하천 연안의 충적평야와 높지 않은 구릉지대로 되어 있다. 북부와 북동부, 동부에는 해발 400~800m의 산들이 분포되어 있으며 서부와 남부에는 해발 200~300m의 산들이 솟아 있다. 신흥군과의 경계에는 박달봉(905m), 개재산(883m)이 있고 북동부에는 함관령산줄기가 북서~남동방향으로 뻗어 있다.

여기에는 봉화산(烽火山, 814m), 함관령(咸關嶺, 462m), 갈미봉(葛味峯, 787m) 등이 솟아 있고, 동부에는 초막산(草幕山, 579m), 장기봉(482m), 운주봉(雲柱峯, 616m), 초고대령(草古垈嶺, 409m) 등 해발 200~600m의 산과 영들이 있다. 남서부 지역에는 동흥산지가 남북방향으로 길게 놓여 있는데, 여기에는 경치 아름다운 명승지 동흥산(東興山, 319m)이 있다.

동해의 영향을 많이 받아 겨울에는 같은 위도 위의 서해안지방 보다 훨씬 따뜻하다. 여름에는 반대로 기온이 좀 낮으며 서늘하다. 함흥지방의 연평균기온은 9.4℃, 1월 평균기온은 -5.4℃, 8월 평균기온은 22.9℃로서 함경남도에서 기온이 비교적 높은 지대이다. 연평균일조시간수는 2,448.9시간이며 0℃이상 적산온도는 3,812℃, 5℃이상 적산온도는 3,700℃, 10℃이상 적산온도는 3,392℃로서 여러 가지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유리하다. 연평균강수량은 934.2mm인데, 연강수량의 61%가 여름에 내리고 겨울과 봄, 가을에는 비교적 적게 내린다. 함흥지방은 연평균강수날짜가 100일로서 도안에서 많은 편이다.

첫 서리는 10월 하순, 마지막 서리는 4월 중순에 내린다. 함흥지방에서는 계절풍이 뚜렷이 나타난다. 겨울에는 주로 북서풍, 여름에는 남동풍이 많이 분다. 1월 평균풍속은 4.0m/s, 8월 평균풍속은 1.9m/s, 연평균풍속은 2.9m/s이다.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특이한 바람은 겨울철에 장진지방으로부터 바다쪽으로 부는 매우 차고 강한 바람인 ‘함흥내기’를 들 수 있다. ‘함흥내기’의 풍속은 장진지방에서 5~6m/s, 함흥지방에서 15~20m/s나 된다. ‘함흥내기’가 불어 올 때에는 공기의 상대습도가 낮아지나 기온은 9℃ 정도로 높아진다.

함흥시의 기본하계를 이루는 것은 성천강(城川江) 하류부분과 그 지류인 호련천이다. 성천강은 시의 서부지역에서 거의 남북방향으로 흐르며 호련천은 시의 북부산지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북동~남서방향으로 흘러 시 중심에서 경흥천(慶興川)을 비롯한 여러 개의 지류들을 합류하여 줄기흐름에 흘러든다. 함흥시에는 이밖에도 금사천(錦絲川), 광덕천(鑛德川), 동천(東川) 등 여러 하천들이 있다. 함흥시에는 금사저수지(錦絲貯水池), 풍경저수지(豊慶貯水池)를 비롯하여 여러 저수지들이 있다.

산림은 함흥시 전체 면적의 61%를 차지하며 주로 소나무 숲과 소나무-참나무 숲으로 되어 있다. 주요 수종은 잣나무, 소나무, 잎갈나무 등의 침엽수와 참나무, 밤나무, 황철나무와 같은 활엽수들이 많다. 함흥시에는 주로 갈색산림토양, 충적토, 논토양이 분포되어 있다. 갈색산림토양 가운데서 담갈색산림토양 및 미분화갈색산림토양은 함흥시의 동부와 북부지대, 유류(옛풍화각)갈색산림토양은 주로 성천강 왼쪽 연안에 퍼져 있다. 충적지는 주로 성천강을 비롯한 하천 연안에 분포되어 있다. 토양의 기계적 조성에서 사양토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4]

역사

함흥시 지역은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판도로 되어 있다가 신라 진흥왕 때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발해 개국에 이르러 발해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소속되었다. 발해가 패망한 뒤 함흥시 지역은 오랫동안 여진족에 예속되어 있었다. 1107년(예종 2년)에 고려의 영역으로 되었고 그 후에 함주라 칭하였다. 13세기 중엽 몽골의 손아귀에서는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에 속하였다.

1356년(공민왕 5년)에 쌍성총관부가 수복됨에 따라 고려의 영토로 되었고 1369년에 함주목으로 격상되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서서 1416년(태종 16년)에 함주도독부와 덕주를 병합하여 함길도 함흥부로 되었다. 1470년(성종 원년) 함길도가 영안도로 개칭되면서 함흥군으로 강등되고 군의 일부를 분리하여 홍원군을 신설하였다가 1509년(중종 4년) 영안도가 다시 함길도로 됨에 따라 함흥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전국 8도제를 23부제로 개편하면서 함흥부 함흥군으로 되어 주남사(州南社), 삼평사(三坪社), 주동사(州東社), 덕산사(德山社), 천원사(川原社), 주북사(州北社), 기곡사(岐谷社), 동명사(東溟社), 가평사(加平社), 고천사(古遷社), 고산사(高山社), 선덕사(宣德社), 운전사(雲田社), 주지사(朱地社), 덕천사(德川社), 주서사(州西社), 천서사(川西社), 조양사(朝陽社), 기천사(岐川社), 퇴조사(退潮社), 원평사(元平社), 영천사(永川社), 원천사(元川社), 보청사(甫靑社) 등 24개 사(社)를 관할하다가 1896년(고종 33년) 전국23부제를 13도제로 개편하면서 함경남도 함흥군으로 되었고, 주남사를 주남면(州南面)으로, 덕산사를 덕산면(德山面)으로, 천원사를 천원면(川原面)으로, 주북사를 주북면(州北面)으로, 기곡사를 기곡면(岐谷面)으로, 동명사를 동명면(東溟面)으로, 가평사를 가평면(加平面)으로, 고산사를 고산면(高山面)으로, 주지사를 주지면(朱地面)으로, 덕천사를 덕천면(德川面)으로, 천서사를 천서면(川西面)으로, 영천사를 영천면(永川面)으로 개편하고, 삼평사를 분리하여 동삼평면(東三平面)과 서삼평면(西三平面)을, 주동사를 분리하여 남주동면(南州東面)과 북주동면(北州東面)을, 고천사를 분리하여 상동고천면 · 하동고천면 · 서고천면을, 운전사를 분리하여 동운전면(東雲田面)과 서운전면(西雲田面)을, 주서사를 분리하여 상주서면(上州西面)과 하주서면(下州西面)을, 조양사를 분리하여 상조양면(上朝陽面)과 하조양면(下朝陽面)을, 기천사를 분리하여 상기천면(上岐川面)과 하기천면(下岐川面)을, 원평사를 분리하여 동원평면(東元平面)과 서원평면(西元平面)을 각각 신설하였으며 선덕사는 정평군에, 퇴조사 · 원천사 · 보청사는 홍원군에 편입시키고 연포면(連浦面)이 군에 편입되어 30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주남면을 함흥면으로, 동명면을 서호면(西湖面)으로 개칭하고 동상평면과 서삼평면을 병합하여 삼평면(三坪面)을, 동운전면과 서운전면을 병합하여 운전면(雲田面)을, 상주서면과 하주서면을 병합하여 주서면(州西面)을 각각 신설하였으며 서퇴조면이 군에 편입되고 가평면, 동원평면, 서원평면, 하동고천면, 상동고천면, 서고천면, 고산면, 영천면을 신흥군에 편입시켜 20개 면을 관할하였고, 1930년에 함경남도 함흥부로 승격하면서 함흥면의 하서리(荷西里), 동평리(東坪里), 동흥리(東興里), 동양리(東陽里), 서양리(西陽里), 신창리(新昌里), 하동리(荷東里), 신흥리(新興里), 운흥리(雲興里), 향교리(鄕校里), 중리(中里), 중하리(中下里), 상리(上里), 종각리(鐘閣里), 풍양리(豊陽里), 풍서리(豊西里) 등 16개 리와 남주동면의 사포리(沙浦里), 용호리(龍湖里)가 함흥부에 편입되었고, 삼평면, 남주동면, 북주동면, 덕산면, 천원면, 주북면, 기곡면, 서호면, 주지면, 덕천면, 주서면, 천서면, 하조양면, 상조양면, 하기천면, 상기천면, 서퇴조면, 연포면을 함주군에 편입하였으며, 운전면 일부로 운남면(雲南面)을, 흥남면과 운전면 일부로 흥남읍(興南邑)을 신설하였다.

1933년에 하서리를 분리하여 황금정일정목(黃金町一丁目) · 황금정이정목을, 동평리를 분리하여 중앙정일정목(中央町一丁目) · 중앙정이정목 · 중앙정삼정목 · 일출정(日出町) · 서정일정목(曙町一丁目) · 서정이정목 · 금정일정목(錦町一丁目) · 금정이정목을, 동양리를 분리하여 군영통일정목(軍營通一丁目) · 군영통이정목 · 조일정(朝日町)을, 하동리를 분리하여 복부정일정목(福富町一丁目) · 본정일정목(本町一丁目) · 본정이정목 · 본정삼정목을, 향교리를 분리하여 반룡대정(盤龍臺町) · 낙민정(樂民町) · 지락정(知樂町) · 만세정(萬歲町)을, 중리 · 중하리 · 상리를 분리하여 성천정일정목(城川町一丁目) · 성천정이정목 · 성천정삼정목 · 성천정사정목을, 종각리를 분리하여 본정사정목 · 본정오정목 · 황금정삼정목 · 황금정사정목을, 풍양리 · 풍서리를 분리하여 복부정이정목 · 복부정삼정목 · 영정 · 대화정일정목(大和町一丁目) · 대화정이정목 · 대화정삼정목 · 대화정사정목을, 함주군 북주동면의 화상리 일부로 치마정(馳馬町)을, 둔지에 소화정일정목(昭和町一丁目) · 소화정이정목 · 산수정일정목(山手町一丁目) · 산수정이정목 · 산수정삼정목 · 춘일정일정목(春日町一丁目) · 춘일정이정목 · 출운정(出雲町)을 각각 신설하고, 서양리를 유락정(有樂町)으로, 신창리를 주길정(住吉町)으로, 신흥리를 신흥정(新興町)으로, 운흥리를 동문정(東門町)으로, 사포리를 사포정(沙浦町)으로 개칭하여 50개 정목을 관할하였으며, 1939년에 동흥리를 용흥정으로 개칭하고 신흥정 일부를 분리하여 하신흥정(下新興町)을, 사포정을 분리하여 사포일정목(沙浦一丁目) · 사포이정목 · 사포삼정목을 신설하고, 함주군 북주동면의 회상리를 함흥부 회상정(會上町)으로, 함주군 주북면의 서상리(西祥里) · 용흥리(龍興里)를 병합하여 함흥부 서흥정(西興町)으로 개편하였다.

1943년에 함주군 동천면의 운흥리가 산수정일정목, 산수정이정목, 산수정삼정목에 분리 편입되었다. 광복 직후 함경남도 함흥시로 개편되고 황금정일정목 · 황금정이정목을 통남리일구 · 통남리이구 · 통남리삼구 · 통남리사구로, 중앙정일정목 · 중앙정이정목 · 중앙정삼정목을 중앙리일구(中央里一區) · 중앙리이구 · 중앙리삼구로, 일출정 · 금정일정목 · 금정이정목을 금사리일구(錦絲里一區) · 금사리이구로, 서정일정목 · 서정이정목을 용마리(龍馬里)로, 군영통일정목 · 군영통이정목 · 조일정을 동문리(東門里)로, 북부정일정목 · 본정일정목 · 본정이정목 · 본정삼정목을 연지리(蓮池里)로, 신흥정 · 하신흥정을 신흥리로, 반룡대정을 반룡리(盤龍里) · 독립리일구(獨立里一區) · 독립리이구로, 지락정을 지락리 · 낙산리일구(樂山里一區) · 낙산리이구로, 성천정일정목 · 성천정이정목 · 성천정삼정목 · 성천정사정목을 성천리일구(城川里一區) · 성천리이구 · 성천리삼구 · 성천리사구로, 본정사정목 · 본정오정목 · 황금정삼정목 · 황금정사정목을 남문리일구(南門里一區) · 남문리이구 · 남문리삼구 · 남문리사구 · 남문리오구로, 복부정이정목 · 복부정삼정목 · 영정을 광화리일구(光華里一區) · 광화리이구 · 광화리삼구로, 대화정일정목 · 대화정이정목 · 대화정삼정목 · 대화정사정목을 삼일가일구(三一街一區) · 삼일가이구 · 삼일가삼구 · 삼일가사구로, 사포정일정목 · 사포정이정목 · 사포정삼정목을 사포리일구(沙浦里一區) · 사포리이구 · 사포리삼구로, 소화정일정목 · 소화정이정목을 해방리일구(解放里一區) · 해방리이구로, 산수정일정목 · 산수정이정목 · 산수정삼정목을 운흥리일구(雲興里一區) · 운흥리이구 · 운흥리삼구로, 춘일정일정목 · 춘일정이정목을 지장리일구(智將里一區) · 지장리이구로 각각 개편하고 용흥정을 용흥리로, 유락정을 서문리로, 주길정을 신창리로, 동문정을 이화리(梨花里)로, 만세정을 만세리로, 낙민정을 낙민리로, 출운정을 서운리로, 회상정을 회상리(會上里)로, 서흥정을 서흥리로, 치마정을 치마리로 각각 개칭하였으며 함주군 주서면의 구억리, 서상리, 신상리, 십이리(十二里)가 편입되어 38개 구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함주군 동천면의 경흥리(慶興里), 평수리(坪水里), 회양리(會陽里), 하신흥리(下新興里), 회상리(會上里)가 편입되어 38개 구 2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함주군 운남면의 보고리(保古里), 당보리(塘保里), 초운리(草雲里), 연흥리(蓮興里)가 편입되었는데, 당시 보고리가 당보리에 흡수되어 38개 구 2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53년에 통남리일구 · 통남리이구 · 통남리삼구 · 통남리사구를 통남동(通南洞)으로, 중앙리일구 · 중앙리이구 · 중앙리삼구를 중앙동(中央洞)으로, 금사리일구 · 금사리이구를 금사동(錦絲洞)으로, 성천리일구 · 성천리이구 · 성천리삼구 · 성천리사구를 성천동(城川洞)으로, 남문리일구 · 남문리이구 · 남문리삼구 · 남문리사구 · 남문리오구를 남문동(南門洞)으로, 광화리일구 · 광화리이구 · 광화리삼구를 광화동(光華洞)으로, 삼일가일구 · 삼일가이구 · 삼일가삼구 · 삼일가사구를 삼일동(三一洞)으로, 독립일구 · 독립이구를 독립동(獨立洞)으로, 낙산리일구 · 낙산리이구를 낙산동(樂山洞)으로, 해방리일구 · 해방리이구를 해방동(解放洞)으로, 운흥리일구 · 운흥리이구 · 운흥리삼구를 운흥동(雲興洞)으로, 지장리일구 · 지장리이구를 지장동(智將洞)으로, 사포리일구 · 사포리이구를 사포동(沙浦洞)으로 각각 개편하고 용흥리를 용흥동(龍興洞)으로, 동문리를 동문동(東門洞)으로, 연지리를 연지동(蓮池洞)으로, 신창리를 신창동(新昌洞)으로, 서문리를 서문동(西門洞)으로, 신흥리를 신흥동(新興洞)으로, 용마리를 용마동(龍馬洞)으로, 반룡리를 반룡동(盤龍洞)으로, 지락리를 지락동(知樂洞)으로, 낙민리를 낙민동(樂民洞)으로, 만세리를 만세동(萬歲洞)으로, 서운리를 서운동(瑞雲洞)으로 개칭하여 25개 동 16개 리를 관할하였으며 1954년에 서상리와 신상리가 함주읍에, 구억리가 함주군 구흥리에, 십이리가 함주군 동암리에 편입되어 25개 동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55년에 용마리, 하신흥리, 이화리, 회상리, 치마리가 동으로 되었고, 1957년에 통남동을 분리하여 통남일동 · 통남이동을, 용흥동을 분리하여 용흥일동 · 용흥이동을, 신흥동을 분리하여 신흥일동 · 신흥이동을, 남문동을 분리하여 남문일동 · 남문이동을, 운흥동을 분리하여 운흥일동 · 운흥이동을, 회상동을 분리하여 회상일동 · 회상이동 · 회상삼동 · 회상사동을, 치마동을 분리하여 치마일동 · 치마이동을 각각 신설하고 중앙동 일부가 해방동에, 금사동 일부가 중앙동 · 용마동에, 하신흥동 일부가 용흥이동에, 성천동 일부가 통남이동에, 광화동 일부가 삼일동에, 삼일동 일부가 동문동 · 서문동에, 용마동 일부가 중앙동 · 금사동에, 만세동 일부가 서문동에, 해방동 일부가 반룡동에, 지장동 일부가 해방동 · 용마동 · 운흥일동에, 서운동 일부가 지장동 · 용마동 · 금사동 · 이화동 · 운흥이동에 각각 편입되었으며 독립동이 동문동에, 신창동이 서문동에, 지락동이 반룡동 · 만세동에, 낙민동이 만세동에, 낙산동이 동문동 · 반룡동 · 만세동에 각각 편입되면서 폐지되어 34개 동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60년에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흥남시 퇴조군 전체와 함주군 일부 · 오로군 일부를 병합하여 성천구역(城川區域), 반룡구역(盤龍區域), 회상구역(會上區域), 덕산구역(德山區域), 사포구역(沙浦區域), 본궁구역(本宮區域), 용성구역(龍城區域), 흥남구역(興南區域), 퇴조구역(退潮區域) 등 9개 구역으로 개편되었다. 1970년에 함경남도 관하의 일반시로 강등되면서 덕산구역과 퇴조구역을 분리하여 덕산군과 퇴조군을 신설하였다. 1974년에 본궁구역을 사포구역에, 덕산군을 회상구역에 편입시켜 6개 구역을 관할하였으며 1977년에 반룡구역을 동흥산구역으로 개칭하였다.[5]

산업

함흥시는 화학공업과 기계공업을 비롯한 강력한 중공업경공업을 가지고 있다. 광복 전 함흥시의 경제는 일제의 식민지적 약탈정책으로 인하여 매우 뒤떨어져 있었다. 광복 후 함흥시는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의 식민지적 기형성과 편파성이 사라지고 합리적인 생산력 배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공업부문 간, 부문 내부 간의 생산적 연계가 더욱 강화되고 새로운 공업부문들이 창설됨으로써 함흥시는 종합적으로 발전된 강력한 중공업과 경공업을 가진 공업도시로 전변되었다.

함흥시는 또한 발전된 농업과 현대적인 설비와 기술로 조성된 수상업과 교통 운수를 가진 종합적인 지방경제 단위의 하나로 전변되었다. 공업은 함흥시 경제에서 기본부문이다. 주요 공업부문은 화학공업, 기계공업, 금속가공공업, 건재공업, 방직 및 피복 공업, 식료품공업, 일용품 공업 등이다. 화학공업, 기계공업을 비롯한 일련의 공업부문들은 전국적 의의를 가진다. 함흥시는 무기 및 유기 화학공업이 결합된 대규모의 화학공업기지이다. 함흥시의 화학공업은 비날론, 화학비료, 카바이드, 농약, 합성수지, 합성고무, 물감, 기초약품 생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함흥시에서는 야산들에 과수밭을 많이 조성하여 많은 과일을 생산하고 있다. 주요 과일은 사과, 배, 복숭아, 자두, 살구, 포도 등이다. 함흥시 농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누에치기는 주로 원 회상구역에서 많이 한다. 함흥시에서는 닭, 토끼, 염소, 소, 돼지, 오리 등을 많이 기른다. 함흥시에는 현대적인 닭공장이 있다. 함흥시의 축산물에서는 고기, 알, 젖 등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6]

교통

함흥시는 북한 동해안 북부지역과 북부내륙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상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도로는 원산~우암 간 1급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함흥~흥남, 함흥~낙원, 함흥~용림, 함흥~부전, 함흥~대흥 간 2급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시내 교통으로는 회양동~덕성동, 회양동~은덕동(흥남) 간에는 무궤도전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회양동~덕산동, 용성동~은덕동(흥남), 용성동~흥남 간에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7]

동흥산 은행나무

북한의 행정구역상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에 있는 은행나무이며 북한 천연기념물 제251호. 은행나무는 동흥산 기슭의 남쪽에 있다. 북쪽과 서쪽은 동흥산이 둘러 있으므로 아늑한 곳이다. 이곳은 원래 무성한 소나무숲 이었으므로 예로부터 ‘송정’이라고 불렸다.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는 토양은 산림 밤색 토양이고 자갈이 섞인 모래메흙이며 토심은 깊고 습기는 알맞다. 은행나무는 1680년경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무는 높이 18.5m, 뿌리목 둘레 4.42m, 가슴높이둘레 3.25m, 수관 지름 31m정도이다.

1차 큰 가지 10여개가 우산살을 펴 놓은 것처럼 뻗었다. 그것이 땅과 수평 되게 뻗었으므로 수관은 넓은 우산모양을 이루고 있다. 나무는 썩거나 떨어져 나간 가지들이 없으므로 나무 모양을 바로잡기 위하여 8개의 큰 가지들을 잘라주었다. 열매는 최고 400㎏까지 달린다.

이 은행나무는 동흥산 기슭의 풍치수이므로 적극 보호하고 있다.[8]

지도

동영상

각주

  1. 함흥시〉, 《위키백과》
  2. 동흥산구역〉,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동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함흥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함흥시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함흥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7.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함흥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8. 동흥산 은행나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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