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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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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시 위치

청암구역(靑岩區域)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청진시 북쪽에 위치해 있는 구역이다.[1][2]

개요[편집]

청진시 청암구역의 인구는 2008년 기준으로 136,659명이다. 북한 학계에서 발해 오경의 하나인 동경용원부의 위치로 비정하고 있는 부거리 토성 유적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청진시에서 가장 넓은 구역으로, 관할구역의 대부분이 옛 부령군의 동해 연안지역 전부(관해면, 삼해면, 부거면, 연천면, 청암면)에 해당된다.

자연환경[편집]

청진시 지역은 함경산맥에서 뻗은 지맥들로 하여 바닷가와 하천연안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중산성 및 저산성 산지로 되어 있다. 북서부에 함경산맥, 중부 청암구역과 부령군 경계에 함경산맥의 기대봉(1,049m)에서 신암구역의 고말산(高抹山, 183m)까지 남북방향으로 된 철근령산맥(鐵芹嶺山脈)이 뻗어 있다. 산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은 부윤구역, 청암구역, 송평구역, 신암구역이다.

청진시는 긴 해안선을 끼고 있다. 청암구역의 해안은 작은 만들이 많아 비교적 다양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천해양식에 유리한 연진만(連津灣), 노창만(蘆倉灣), 용제만(龍濟灣), 이진만(梨津灣) 등 만들이 분포되어 있다. 신암구역과 나남구역 사이 해안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경성만(鏡城灣)을 이루고 있다.

청진시일대의 지층은 마천령계(摩天嶺系), 두만계(豆滿系), 대동계(大同系), 함경계(咸鏡系)의 지층과 제4기층 그리고 삼해암군, 청진암군, 두만강암군, 단천암군, 압록강암군에 속하는 암석들로 되어 있다. 이러한 지층에는 니켈, 크롬, 금, 석탄, 석회석 등 여러 가지 지하자원들이 매장되어 있다.

니켈은 부윤일대에, 크롬은 청암구역 교원리일대에, 금과 석회석은 청암구역 금바위동에, 석탄은 나남일대에서 풍부한 매장량을 보이고 있다. 나남일대의 탄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주 유명하였는바 함탄층은 용동통이며 탄층의 두께는 일반적으로 1~5m이다. 기후는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온은 일반적으로 바닷가에서 내륙지역으로 들어가면서 낮아진다.

연평균기온은 7.6℃, 1월 평균기온은 -6.7℃, 8월 평균기온은 21.6℃이다. 청진시는 봄과 여름철에 안개가 자주 끼며 일조율이 낮다. 안개일수는 35~45일 정도이며 총안개일수의 90%는 4~9월경에 나타난다. 안개가 가장 많이 끼는 시기는 7월이며 이때 일조율은 최저점에 도달하여 약 25~30% 정도밖에 안 된다.

안개가 자주 끼는 시기에는 기온이 하강하고 흐린 날씨가 많아지면서 이슬비가 내려 농작물의 성장에 불리한 냉해현상이 나타난다. 청진시는 북한에서 강수량이 적은 지역에 속한다. 연평균강수량은 약 600mm이며 때때로 폭우가 내린다. 1961년 8월 4일에는 316.8mm의 폭우가 내린 적도 있다.

첫서리는 바다를 낀 구역에서 10월 초순 혹은 말에, 마지막 서리는 전반적 지역에서 4월 말~5월 중순경에 내린다. 봄과 여름에는 주로 남동풍이, 가을과 겨울에는 북풍 또는 북서풍이 분다. 연평균풍속은 2.3m/s이며 풍속이 가장 높은 1월에는 3.6m/s이다. 동토층은 지하 78~90cm이다.[3]

역사[편집]

구석기시대부터 청진시 지역에는 이미 인류가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진시 지역의 농포리에서 신석기시대의 뗀석기 등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고 주변의 지역에서도 구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원시사회의 유적유물들이 다량 발견된 것이 이 점을 유력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역사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 청진시에는 숙신(肅愼), 읍루(挹婁), 예맥(濊貊), 옥저(沃沮), 말갈(靺鞨) 등 부족국가(部族國家)가 있었으며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고구려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한때 당나라의 예속 하에 있다가 발해국이 건립되면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에 소속되었다.

926년(태조 9년) 발해가 망한 뒤 거란의 속지로 되었으며 그 후 금나라의 판도로 되었다가 금나라가 망한 뒤에는 원나라의 지배아래에 있었다. 고려말기에 고려의 세력이 하류지역까지 확장되면서 청진시 지역은 삭방도(朔方道) 또는 동북면(東北面)의 우롱이(于籠耳, 현재 경성군지역)에 소속되어 있었다.

조선왕조가 건립된 후 1398년(태조 7년) 정도전이 북방의 행정구역을 정할 때 경성군 관하 석막(石幕)에 소속되었고 1417년(태종 17년)에는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의 관하에 편입되었다.

1438년(세종 20년)에 부거현(富居縣)의 관하에 들어갔다가 후에 부령부(富寧府)가 설치되면서 그 관하의 청하면(靑下面)에 소속된 자그마한 어촌으로 있었다. 시초에 지금의 신암으로부터 산기슭을 따라 마을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점차 수성벌 일대로 확장되어 갔다.

조선 말엽에 이르러 청진시 지역은 동해안을 끼고 있는 천혜의 조건을 이용하여 점차 발전의 걸음마를 타기 시작하였는바, 특히 1908년에 만국통상항으로 지정되면서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1907년에 부령군 지역을 통합하고 청진부(淸津府)로 승격되어 청하(靑下), 청상(靑上), 연천(連川), 동(東), 판장(板長), 삼리(三里), 해(海), 서촌(西村), 상(上), 하무산(下茂山), 석막(石幕) 등 11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부령군(富寧郡)이 다시 복귀되면서 청상, 연천, 동, 판장, 삼리, 해, 서촌, 상, 하무산, 석막 등 10개 면이 부령군에 귀속되었고, 청진부는 당시 청하면의 청진동 · 신암동과 인곡동 일부 · 부령군 청곡면의 포항동을 통합하여 송도정을, 일출정(日出丁), 영정, 서정, 교립정, 고사정, 파정, 수정, 행정, 축정, 상반정, 상생정, 길천정, 부도정, 대화정, 조일정, 목가전정, 명치정(明治町), 보정, 입반정, 미생정, 부귀정, 복천정, 북성정(北星町), 신암동(新岩洞), 포항동(浦港洞)을 각각 신설하여 24정 2동을 관할하였다.

청진시 지역은 함경선철도와 청회선철도가 부설되면서 상품수출입항구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었고 이에 반하여 항구건설이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무산광산(茂山鑛山)이 개발됨으로 해서 청진에는 제철소를 비롯한 각종 공장기업소들이 들어앉게 되었고 일약 중공업도시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1939년에 부령군 청암면(靑岩面)의 수남동(水南洞)과 경성군 용성면(龍城面)의 송향동(松鄕洞)을 흡수하여 24정 4동을 관할하였다.

1943년에 송향동이 용성면에 귀속되고 신암동 · 포항동 · 수남동이 각각 신암정 · 포항정 · 수남정으로 개편되었고, 또 경성군 경성읍의 회향동(檜鄕洞), 용성면의 수성동(輸城洞) · 근동(芹洞) · 회암동(回岩洞) · 송정동(松亭洞) · 송동(松洞) · 용향동(龍鄕洞) · 봉암동(鳳岩洞) · 강덕동(康德洞) · 농포동(農浦洞) · 수북동(水北洞) · 수남동(水南洞) · 용암동(龍岩洞)과 부령군 청암면의 직하동(稷下洞) · 자작동(自作洞) · 월포동(月浦洞) · 창평동(倉坪洞) · 반죽동(斑竹洞), 나남읍의 나남정(羅南町) · 생구정 · 초뢰정 · 미길정 · 나북동 등 지역을 흡수하였으며, 나북동을 나북정(羅北町)으로 개편하여 32정 18동을 관할하였다.

광복 직후 함경북도 청진시로 개편되면서 송동이 부령군에 이관되었고, 전 청진부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나남시(羅南市)를 신설하였으며, 경성군 용성면의 송향동(松鄕洞)과 경성면의 남석동(南夕洞) 그리고 부령군 하무산면의 사봉동(沙峯洞)과 청암면의 서수라동(西水羅洞)을 분리하여 청진시에 편입하였다.

이때 명치정과 북성정을 병합하여 명성동(明星洞)을, 신암동을 분리하여 동신암동(東新岩洞) · 서신암동(西新岩洞) · 천마동(天摩洞)을, 포항정을 분리하여 서흥동(西興洞) · 관해동(觀海洞) · 중앙동(中央洞) · 근동(일명 근화동 · 槿花洞) · 인곡동(仁谷洞) · 민주동(民主洞) · 남강동(南江洞)을, 전 청진부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교동(校洞) · 신진동(新津洞)을, 서수라동을 분리하여 동서수라동(東西水羅洞) · 대서수라동(大西水羅洞)을, 수남동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신향동(新鄕洞) · 추평동(楸坪洞) · 말음동(末陰洞)을, 송향동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송평동(松坪洞)을, 용향동을 분리하여 용호동(龍湖洞)을, 낙양동(洛陽洞) · 어항동(漁港洞) · 송흥리(松興里) · 정산리(靜山里) · 송곡리(松谷里)를 각각 신설하고 얼마 후 교동을 분리하여 해방리(解放里)를 신설하여 명성, 동신암, 서신암, 천마, 서흥, 관해, 중앙, 근동(일명 근화), 교동, 신진, 동서수라, 대서수라, 남강, 민주, 낙양, 해방, 인곡, 수남, 신향, 어항, 추평, 송평, 송향, 반죽, 직하, 창평, 강덕, 농포, 수성, 용호, 월포, 남석, 용향, 사봉, 말음, 자작, 송정, 회암, 정산, 근동, 송흥, 송곡 등 동리를 관할하였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리제를 실시하면서 자작리 · 송곡리 · 수성리 · 근동리 · 송정리와 회암리 · 남석리의 각 일부로 수성면을 신설하여 부령군에 편입시키고 수남동 · 용암동 · 봉암동 · 수북동 · 나북동 등이 나남시에 이관하였으며, 회암리 나머지 일부가 송흥리에, 남석리의 나머지 일부가 용호리(龍湖里)에, 송흥리 일부가 송향리(松鄕里)에 편입되었다.

1950년에 직하리가 부령군 청암면에 이관되었으며,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송흥리가 월포리(月浦里)에, 용향리가 강덕리(康德里)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1957년에 인곡동 · 수남동 · 반죽동의 각 일부를 분리하여 남향동(南鄕洞)을, 동신암동과 서신암동을 병합하여 신암동을 신설하였고, 민주동의 일부가 해방리에, 송향동의 일부가 용호리에, 중앙동 일부가 남강동에 편입되었다.

청암구역은 1960년에 청진시의 창평(倉坪), 반죽(斑竹), 인곡(仁谷), 낙양(洛陽), 정산(靜山), 해방(解放) 등 6개 동과 부령군의 직하(稷下) · 토막(土幕) 등 2개 리를 병합하여 신설한 구역이다.

원 청암면과 연천면, 부거면, 판장면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그 중 청암면의 이름을 따서 청암구역이라 하였다. 이와 동시에 창평동을 청암(靑岩)동으로 개칭하였다. 1963년에 청진직할시 청암구역으로 되었고 해방동의 일부로 역전(驛前)동을 신설하였으며, 인곡동을 분리하여 인곡일동과 인곡이동을, 반죽동을 분리하여 반죽일동과 반죽이동을 신설하였다.

1967년에 반죽일동 일부와 청암동을 분리하여 청암일동과 청암이동을 신설하고, 토막리를 금바위동으로 개칭하여 11개 동, 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70년에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으로 되었고, 1972년에 부령군의 교원(橋院), 연천(連川), 연진(連津), 사구(沙口), 마전(麻田), 용제(龍濟), 부거(富居) 등 7개 리가 편입되었다.

이와 동시에 청암일동, 청암이동, 직하리 각 일부를 분리하여 산업(産業)동을 신설하여 포항구역에 편입시켰다. 1977년에 청진시(직할시) 청암구역으로 되었고, 1985년에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으로 되었다.

1991년에 반죽일동을 문화일동(文化一洞)으로, 반죽이동을 문화이동으로 개칭하였다. 1992년에 연진리를 연진동으로, 마전리를 마전동으로, 용제리를 용제동으로 개편하여 14개 동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93년에 나진시의 관해(觀海) · 방진(方津) · 낙산(洛山) · 이진(梨津) · 삼해(三海) · 노창(蘆倉) · 나석(羅石) 등 7개 동과 무창(武倉) · 서(西) 등 2개 리가 편입되었다. 1995년에 무창리가 나진-선봉시에 편입되었다.

2002년 현재 행정구역은 21동(관해동, 금바위동, 나석동, 낙산동, 낙양동, 연진동, 노창동, 용제동, 이진동, 마전동, 문화일동, 문화이동, 방진동, 삼해동, 역전동, 인곡일동, 인곡이동, 정산동, 청암일동, 청암이동, 해방동), 6리(교원리, 연천리, 부거리, 사구리, 서리, 직하리)로 되어 있다. 구역에는 토성, 봉화대, 조개무덤 등 역사유적과 동호, 남호 같은 자연보호구들이 있다.[4][5]

산업[편집]

청진시는 천혜의 풍부한 지하자원, 수산자원과 양호한 지리조건 등 경제발전에 유리한 조건들을 가지고 20세기 초엽부터 벌써 각광을 받기 시작하여 급성장을 이룩하였는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미 제철, 제강, 화학섬유, 조선 등 산업을 가진 중공업 도시로 자리 매김을 하였다.

광복 후 청진시는 흑색금속공업을 비롯하여 중공업, 경공업, 수산업, 농업 등 다양하게 산업이 발달하였다. 청진시의 경제에서 기본은 공업이다. 대표적인 공업부문은 흑색금속공업, 기계공업, 화학공업, 전기공업, 건축재공업이다.

이 밖에 북한 금속공업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청진 제강소와 여러 가지 규격의 강재, 주철관, 철판 등을 생산하는 금속공장들이 있다.

광복 후 새롭게 발전한 기계공업은 매우 다양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진시에서 금속공업의 버금으로 가는 위치를 차지한다. 주요 제품으로는 채굴설비와 탐사설비, 교통설비와 그 부속품들, 연결농기계와 관개설비, 건설기계와 양곡가공설비, 자동화 요소와 기구들이다.

농업은 농산업, 축산업, 과수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경지에서 밭이 약 80%를 차지한다. 그 면적의 90%는 청암, 송평, 나남 구역에 분포되어 있다. 농업에서 채소생산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청암구역의 연진 · 사구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해안지대, 나남구역의 나북천 연안에는 채소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특히 송평구역의 송향 · 월포 · 용호 · 근동 · 은정, 청암구역의 직하 · 청암, 나남구역의 신흥 · 봉암 · 용암 일대는 채소집중재배지역으로 되어 있다. 채소에서 기본은 배추, 무, 양배추이다. 청진시에서는 옥수수, 감자, 벼도 생산한다.[6]

교통[편집]

청진시북한에서 수륙교통 중심지의 하나이다. 철도운수는 청진시 운수에서 기본을 이룬다.

도로 교통은 원산~우암 간 1급도가 통과하고 있으며 청진~회령, 부거리~부령, 관해동~은덕, 봉안리~부윤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청진항을 통하여 수상통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청진~무산 사이에는 1976년에 건설된 현대적인 대형장거리정광수송관이 설치되어 있다.

청진~부거(48km), 청진~무산(105km), 청진~경성(40km), 무산~광대암 간(40km)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청암구역〉, 《위키백과》
  2. 청암구역〉,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청진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청진시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청진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7.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청진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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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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