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여수시(麗水市)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동남부 여수반도에 있는 시이다. 면적은 510.08km²이고, 해안선 길이는 879.03km이며, 365개의 부속 섬이 있다. 임해산업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에 GS칼텍스, LG화학, 롯데케미칼, 여천NCC 등 264개 기업이 입주하여 석유화학 공업이 발달하였다. 대한민국 비료의 33%, 석유화학(에틸렌)의 47%, 정유의 26%를 생산한다. 명소로는 이순신 장군이 근무했던 전라좌수영 본영인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동도 등이 있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가 있다. 2013년 오천동으로 해양경찰교육원이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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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여수시는 동경 127°13′∼127°54′, 북위 34°00′∼34°53′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508.84㎢이고, 인구는 2023년 6월을 기준하여 273,070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6개 면, 20개 행정동(51개 법정동), 208개 행정리(63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전라남도 여수시 학동에 있다. 동쪽은 여수수도(麗水水道)를 끼고 경상남도 남해군, 서쪽은 순천만을 끼고 고흥반도의 동남쪽과 바다로 경계를 이루며, 남쪽은 남해, 북쪽은 순천시와 접하고 있다. 해안선 총길이는 905.87㎞이며, 연륙도 3개, 유인도 46개, 무인도 268개의 부속도서가 있다. 산맥과 구릉이 동에서 남으로 뻗어 있어 대체로 경사가 급하며 평지가 적다.
전라남도 2위의 인구와 전남 GDP의 50%가량을 만들어내며 전라남도 수출액의 74.4%를 담당하고 1,316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등, 전남의 핵심적인 도시다. 북쪽으로 순천시, 광양시, 남쪽으로 남해가 펼쳐있고 동쪽으로 경상남도 남해군, 서쪽으로 고흥군, 남서쪽으로 완도군과 접해있다. 한려해상,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두 국립공원 모두 여수시 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중 한려해상의 려가 여수시를 의미한다.
여수시는 여수 엑스포 직후인 2010년대부터 도시의 모습이나 위상이 급격하게 변화했다. 돌산이 최고급 펜션들로 가득차고 헤엄쳐도 갈 거리지만 다리가 없던 경도엔 2조 원짜리 리조트가 들어왔으며 구도심이던 대교동 인근이 관광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여수시의 강남이라는 웅천지구의 변화는 그 축을 같이한다. 따라서 여수시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2010년대를 기준으로 구분해서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1][2]
자연환경[편집]
여수반도와 연륙교로 이어지는 돌산도의 지형은 마치 H자형을 이루고 있다. 여수반도와 돌산도를 비롯한 도서 지역의 지층은 백악기층(白堊紀層)에 속한다. 이 지층은 다시 경상누층군(慶尙累層群)과 기타의 백악기층으로 양분되어 있다. 금오도·개도·백야도·낭도·안도·소리도·장도 등은 중성화산암류층(中性火山岩類層)을 이루며 쥬라기의 대동누층군층(大同累層群層)에 관입하여 형성되었다.
소백산맥에서 이어져 온 높고 낮은 산들이 여수반도 북쪽의 앵무산을 비롯하여 국사봉·수암산·황새봉으로 이어져 오다가 동북쪽으로 가마봉·전봉산(戰鳳山, 379m)·영취산(靈鷲山, 510m)·제석산(帝釋山, 336m)으로 연이어 있다.
동남쪽으로 호랑산(虎狼山, 470m)·천성산·봉화산(烽火山, 422m)이 솟아 있다. 남쪽으로는 비봉산(240m)·안심산(安心山, 347m)·안양산(324m)·이영산(336m)·고봉산(364m)·봉화산(烽火山, 371m)이 연이어 뻗어 있다.
여수만(가막만)을 가운데 두고 동쪽에 돌산도의 대미산(359m)·천왕산(385m)·봉황산(鳳凰山, 441m), 남쪽에 개도의 봉화산(338m)·화태도의 삼각산(118m)이 둘러싸고 있다.
이렇게 기복이 심한 산맥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고 경사가 심하여 평야가 적다. 반도 북쪽에 소라평야가 넓게 퍼져 있으며 남쪽은 가막만으로 함몰한다. 소라 평야는 대포천(大浦川)에 의해 형성된 충적평야이다.
대포천은 소라면의 북부 중앙을 동류하는 하천으로 길이(13.5㎞)가 여수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수량은 비교적 많은 강으로서 여러 가닥의 지류를 합하고 대포리 저수지로 흘러들어 간다. 다시 하류에 발달한 소라 간척지를 관류하여 북동류하는 덕양천에 합류하여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경사가 심한 지형의 특성으로 긴 강은 없다. 대부분의 하천은 호랑산·전봉산·구봉산을 수원(水源)으로 하여 광양만으로 흘러들며, 석유 화학공단의 공업용수로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하구에는 소규모의 삼각주가 있었으나 지금은 간척지로 개간되었다. 연화천(蓮花川)이 북부를 관류하여 순천만에 들어간다. 연등천(蓮燈川)은 호랑산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흘러 여수만으로 흘러든다. 해안선은 복잡한 출입을 이루고 곳곳에 간석지(干潟地)를 개간한 간척지가 있다. 광양만에 있는 묘도에는 넓은 간석지가 발달해 있다.
전봉산과 영취산의 서쪽·북쪽 산기슭에 비교적 넓은 여천 평야가 전개되어 농경지로 이용되고, 북쪽 평지의 대부분 지역은 여천 공업단지로 개발되어 있다. 여수반도와 돌산도 사이에는 여수수도가 있는데 흐름이 빠르다.
여수반도의 동남단 앞 바다에는 대경도(大鏡島)·소경도(小鏡島)·가장도(加長島)·야도(冶島)·오동도(梧桐島)·돌산도(突山島) 등의 도서가 천연의 방파제를 이루고 있어 여수항은 천혜의 양항이라 할 수 있다. 유인도 46개, 무인도 268개, 연륙도 3개 등 총 317개의 섬이 있다.
기후는 온화하여 눈이 내리지 않는 해도 있다. 연평균기온 15.0℃, 1월 평균기온 2.9℃, 8월 평균기온 25.6℃이며, 연 강수량은 1,433㎜이다. 금오도·거문도 등에는 난대림이 무성하고, 아열대식물이 분포하는 곳도 있다.[3]
역사[편집]
선사시대[편집]
대부분의 전라도 지역이 그러하지만 신석기 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림동이나 돌산등지에 이를 뒷받침하는 고인돌 유적이 발견되어 일부 보존된 상태이고 부속도서인 안도나 송도등지에서 신석기 시대의 패총이 발견된바 있다. 이 들 패총에서는 흑요석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 흑요석의 산지를 일본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편집]
여수는 고대의 시기 삼한시대 마한연맹체의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백제와 가야의 영향권이 교차하여 유지되었으며 백제의 힘이 일시적으로 약해진 시기 대가야의 진출이 있었고 실제로 죽림지구 택지개발사업시 유물이 출토되었다. 다시 대가야의 세력을 약화시킨 백제 성왕 때 이미 여수에선 반도지역은 원촌현, 도서지역은 돌산현(突山縣)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의 지명 한자화 정책으로 여수는 해읍현, 여천지역은 여산현(廬山縣)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때부터 승평군(순천)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편집]
태조 왕건 때 이름이 다시 여수현, 돌산현으로 돌아갔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승주목의 속현이었으며 돌산현과 여수현으로 나누어져 존속하였으며 이는 여수와 돌산지역의 생활권이 구분되어 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여수가 순천부 관할이지만 속현으로 되어 있음으로서 서로 생활 권역이 약간이라도 달랐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 경계는 근대까지 이어져 돌산군과 여수군으로 나뉜 조선 말 까지 양 쪽의 생활권이 서로 달랐음을 의미하고 있다.
조선시대[편집]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개국시 여수현령 오흔인(吳欣仁)이 신왕조에 불복하였다 하여 1396년(태조 5)에 여수현이 폐현되어 순천도호부에 속한 여수면이 되었고 1414년 돌산현마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연안 도서를 독자의 군현으로 편제하기보다는 수군 진지로 편성하고자 하는 방침과 관련이 있어 폐현되어 순천도호부로 편입되어 여수반도 전체가 조선시대 순천도호부의 땅으로 계속 잔류했다.
1479년 내례만호진을 폐하고 전라좌수영이 설치됨으로 인해 순천부와 전라좌수영의 이중통치와 이중과세로 인한 고통으로 뻗쳐서 순천부로부터 분리를 하게 될 상황에 이르게 된다.
1696년 숙종때 잠시 여수도호부로 승격, 복권 했다가 순천부 아전배들의 농간으로 다시 순천도호부로 귀속당했고 이후로도 역사를 반복했으니 (영조 때인 1725년, 1750년에도 반복) 삼복삼파로 불리었다. 순천도호부의 상급 기관인 전라좌도수군절도영은 성종 때 이래 여수에서 유지 된 것으로 보아 좌수영성지인 여수와 그 일대는 사실상 순천에서 독립된 생활 권역을 계속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유명한 건물이 이순신 장군의 진남관이다
조선 말기에 여수는 행정적으로 순천에서 독립하여 여수군과 돌산군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육지부는 여수군이 관할했으며, 여수의 섬 지역은 흥양현, 광양현, 낙안군 소속 섬들과 짜깁기되어 돌산군이 된다. 1896년 완도군과 지도군하고 함께 돌산군이 먼저 신설되었고 육지부는 순천에 잔류했지만 불공평한처사에 여수주민들이 분노하여 또 다시 복현 운동의 결과로 이듬해인 1897년(고종 34) 정확히 500년만에 순천도호부에서 분리 독립하여 육지 지역에 여수군이 설치되어 여수·율촌·삼일·소라의 4개 면을 관할하는 여수군이 복군되었다.
여수반도와 순천시를 가로지르는 산맥을 타고 좌우로 해촌면과 용두면이 자리하는데 여수에 소속되어 있던 용두면 지역은 여수로 환원되지 않고 잔류 되었다가 1914년 군면폐합때 해촌면과 합쳐서 해룡면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삼복삼파로 인해 1397년부터 5백여년간 여수군 설군을 통해 독립되기 이전까지 털릴대로 철저히 탈탈 털렸던 원한과 피해의식도 적잖게 있어 광양만권 통합에 적극적이지 못한 편이다.
일제강점기[편집]
1914년 조선총독부의 부군면 통폐합과 함께 역사적으로 돌산 소속이 아니었으나 돌산군에 편입된 섬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원래 돌산 소속이었던 섬은 일부 지역(태인면은 광양군에, 금산군과 봉래면은 고흥군에)을 제외하고 여수군에 편입됨으로써 조선시대 말까지 역사속에 없었던 여수의 이름은 완벽하게 복권되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여수지역 공업화의 배경은 1923년 여수항 개항과 여수면의 지정면승격, 1930년 12월에 있었던 광주-여수 간 철도(오늘날의 경전선) 개통과 여수-시모노세키(하관) 간 '관려연락선' 취항이었다. 또 1930년대 여수지역 공업화의 상징은 혼다本田 조면공장과 천일고무공장이었다. 여수에 조면공장이 세워지게 된 것은 '전조선 굴지의 면화생산지'였던 여수의 면화농업과 관련이 있다. 천일고무회사의 공장이 여수에 세워진 것도 직항로를 통해 고무원료를 일본으로부터 직접 들여와 고무제품을 생산하고, 생산된 고무제품은 전남 내륙으로 이어진 철도를 통해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전개된 여수의 공업화는 여수읍의 도시화로 이어졌다. 도시화는 인구의 집중과 증가를 수반했다. 1925년부터 1940년까지 15년간 여수군의 인구는 전남이나 조선전체의 평균인구증가율을 2배 이상 웃도는 비율로 급증했다. 이러한 여수군의 인구증가는 15년간 130%에 이르는 여수읍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서 비롯되었다.
공업화에 따른 또 다른 변화는 도시 기반시설의 정비이다. 이는 도로 개설, 항만매립, 신시가지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 과정이었다. 여수의 공업화와 그에 따른 도시화를 주도한 인물은 여수에서 활동했던 기업인들이었다. 이들 기업인은 토착 조선인, 이주 조선인, 여수거주 일본인, 외래 일본인 등 네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들 네 부류의 기업인들은 여수상공회와 여수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하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공동보조를 취했다. 여수에서 활동했던 기업인들은 일제의 자문기구 참여를 매개로 식민권력과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었다.
이들 기업인들은 여수의 도시화 과정, 즉 철도 개통, 도로 개설, 항만 매립, 신시가지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 과정에도 진정위원이 되어 일제 권력과 대기업을 상대로 청원 활동을 하거나 여수토지건물주식회사 등을 통한 기업 활동을 하면서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대한민국[편집]
8.15 광복 후 여수는 전국 주요도시에 포함되면서 1949년 대통령령으로 여수군 여수읍이 여수부(府)에서 여수시(市)로 승격되었다. 여수군의 잔여지역은 여천군으로 개칭되었다. 1980년 삼일면과 돌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여천군 삼일읍과 쌍봉면이 여천시로 분리 승격되었으며, 1998년 이른바 '삼려(三麗) 통합'이라 불리며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이 다시 하나의 여수시로 통합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 여천 국가 산업단지가 정부 주도로 건설되면서 여수시는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된다. 여수문화방송과 한국방송공사 여수방송국이 개국하였으며 완도군 금당도와 여서도등 전남 동부지역의 모든 여객선 항로가 여수를 기 종점으로 운행되어 완도군 일부, 고흥군 일부, 남해군 지역이 약간이나마 여수 생활권을 공유하였다.
2008년 현재 돌산읍과 소라·율촌·화양·남·화정·삼산면, 동문·한려·중앙·총무·광림·서강·대교·국·월호·여서·문수·미평·둔덕·만덕·쌍봉·시전·여천·주삼·삼일·묘도동 등 1읍 6면 20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여수시의 경제력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전라남도 그 자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엄청난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전남 최대규모의 수산업, 단일규모 세계 최대크기의 화학 산업단지, 전국적으로 손에 꼽히는 관광지로서의 급부상까지 전국적으로 도시 규모에 비해 유래없는 총 생산량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돈이 상당히 많은 지역이다. 현대는 석유화학단지를 통해 돈을 만진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인접한 광양시와 더불어 전라남도의 핵심 산업지역이다. 2013년에는 여수세무서가 전국 세무서 중 세수입 4위를 기록 하기도 했다.
타지 사람은 보통 수산업을 여수의 주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통합 이전의 여수의 경제에 수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여수의 수산물 가공업에 쥐포 제조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사실 쥐포와 연관되었다는 것은 일반적인 통설이고 여수와 돈과 관련된 것은 훨씬 이전 일제강점기부터 나온 말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전남 동부권의 對일본 모항은 여수였기 때문에 해운업이 주변에 비해서 발달했었고 철도 노선 등 사회간접 자본이 충실하게 투자되고 있었다. 익산과 여수를 연결하는 전라선이 개통되고 이 철도가 여수항과 직결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여수의 수산업 인구 규모는 정부의 어획강도 감축사업의 일환으로 현재 계속적으로 어선의 감척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양식업과 수협공판장의 경매 절차의 투명성확보를 바탕으로 하여서 목포와 완도 일대의 활어 위판이 이루어 지고 있다. 정부는 다기능 어항사업의 일환으로 국동항에 다기능 어항이 조성되었다.
농업 분야에서 2020년 12월 기준, 경지면적은 101.57㎢ 가운데 논이 38.38㎢, 밭은 63.19㎢이며, 과수원은 약0.6㎢ 경지율은 약 20%다. 소라 평야를 비롯한 여러 곳의 평지에서 벼농사가 성하고, 특히 광양만 안의 덕양·화치마을은 광복전에 일군 간척지가 넓고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져서 벼의 생산량이 많은 곳이다. 그 밖에 주요 농산물은 보리·밀·콩·팥 등이다. 완만하게 경사진 밭에서는 잡곡과 고구마의 생산량이 많다. 수박·오이·고추·참깨·마늘 등의 생산도 많다. 또 참깨·들깨·땅콩 등이 특용작물로 생산된다. 유자·배·복숭아·포도·감·밤·대추·은행·표고버섯 등의 임산물이 재배 생산된다.
농업은 밭작물 위주에서 벗어나 도시 근교 농업인 화훼와 축산업, 한약재인 택사 등 약용 식물의 재배로 전환되면서 농가 소득의 증대가 꾀해지고 있다. 특히 돌산도에서 대규모로 재배되는 갓은 김치로 담가져서 소위 ‘돌산 갓김치’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현재 여수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시 북쪽 여수 여천에 위치한 여수국가산업단지와 그 안에 있는 GS 칼텍스, 롯데케미칼, 삼남석유화학, 남해화학(구 제7 비료공장), 여천 NCC, DL 케미칼, 한화솔루션, LG 화학, 금호석유화학 등의 수많은 대기업들이다. 울산광역시의 국가석유산단 다음으로 규모가 큰 곳임에도 타 지역민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석유화학 부문만으로는 동양 최대 규모의 산업단지이다. 이 석유화학 회사들의 평균연봉은 국내에서도 최정상급으로 꼽히고 생산직군의 경우에도 억대 연봉이 꿈이 아닌 회사들이다.
일반 산업단지로는 수산물 가공하는 오천동 소재 오천 일반 산업단지가 있고 율촌 산업단지 인 경우 조성이 마무리 된 1 산업단지와 티스푼 공사 중인 2 산업단지, 예정중인 3 산업단지이 있으며 묘도 서쪽 해변에 산을 깎아 묘도 녹색 산업단지이 조성 중에 있다. 농공 단지는 화양면 화동리 일원의 화양 농공단지와 조성 중인 옥적리 한옥특화농공단지가 있다. 그 외로 신월동 해변에 한화(구 한국화약) 공장이 있다.
여수시의 흑역사이지만, 한때 여수의 지역경제를 먹여 살렸던 산업 중 하나로 밀수가 있었다. 여수를 기반으로 한 밀수업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존재해왔고, 특히 일본과의 수교 이후 여수는 부산의 뒤를 잇는 밀수 주력 항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관광 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결정적인 계기가 2012년 2012 여수 엑스포로, 행사 자체는 대박을 쳤다고 보기 힘들지만 여수시의 인지도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엑스포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가 대성공하면서 관광 명소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자연환경과 입지, 경관 등이 우수한 것을 바탕으로 외지인의 부동산 투자 또한 증가하였다. 여수 엑스포 유치 확정 전후로 더욱 늘어났는데 특히 유력 대기업 총수들의 개인적인 부동산 투자가 잇달았다. 통일그룹과 문선명의 경우는 개인적인 투자는 물론 회사 차원에서도 화양면에 복합 관광단지 조성, 소호동에 디오션리조트(구 파라오션 워터파크) 건설을 위해 많은 규모의 토지를 매입하기도 했다. 특히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소라면 궁항 마을 여자만에,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GS그룹 일가는 율촌 산업단지 부근에 개인적인 목적으로 섬이나 토지를 사들여 화제가 되었다.
교통[편집]
전라남도에서 동남부로 치우친 반도이기 때문에 2012년 이전까지는 가장 가까운 도시인 순천 방향의 도로 및 철도 교통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2012 여수 엑스포 개최 덕분에 전라선 신호 개량 및 고속화 사업으로 KTX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여수 - 순천 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신설되면서 서울, 광주 방향으로의 교통은 단순히 순천 외곽을 거쳐가게 되었으며, 부산, 경남 방향으로는 이순신 대교를 통해 더욱 빠르게 갈 수 있게 되면서 교통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여수 화양면 적금도와 고흥 영남면을 잇는 연륙교인 팔영 대교가 익산지방국토관리청공고 제2016-322호에 의거하여 2016년 12월 27일에 개통되었다. 미래에셋증권이 경도에 투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경도와 신월동을 잇는 다리를 짓겠다는 계획도 있다. 2020년 2월 화양면에서 적금도를 잇는 네 교량이 공식적으로 개통되었다.
여수 관내로 진입하는 고속도로는 없지만, 엑스포로 인해 생긴 자동차전용도로 엑스포대로가 엄청난 직진성을 띄고 순천완주고속도로 동순천 나들목과 직통으로 이어져있어, 굳이 돈을 내고 통과해야 하는 고속도로로 변경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톨 게이트만 없으면 고속도로 끝난줄도 모른다. 민선 8기에 들어 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호남고속도로 여수연장을 전남도에 요청했다.
2021년 8월 24일, 전남 여수시와 경남 남해군의 숙원 사업인 '여수∼남해 해저터널'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자 여수시와 지역 정치권이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해저터널은 2027년에 개통될 예정이며, 약 90분 걸리던 교통 시간이 무려 10분으로 단축될 전망이다. 터널은 여수 신덕 해수욕장과 가깝다.
관광[편집]
여수반도의 내륙에 산재 된 유물 유적은 물론이고 남해안의 맑고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중심으로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여수는 충무공이순신장군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이 많다. 시전동에 있는 망마산이 서쪽 산기슭의 선소(사적, 1995년 지정)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이곳에는 둘레가 300m, 수심이 3∼4m 가량되는 굴강(屈江), 선소를 관리하던 관청인 세검정지, 선소의 경계를 표시하던 돌장승(석장생), 거북선을 계루하던 석주(石柱) 등이 남아 있다.
영취산 중턱에는 고려 명종 25년 보조국사(普照國師)에 의해 창건된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원통전(圓通殿)이 있다. 흥국사의 가람배치는 법화경에 의한 구도라는 것이 특이한 점이며, 대웅전에 빗살문을 달아 전부 개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큰 특징이다.
대웅전의 후불탱화(보물, 1974년 지정)와 괘불(掛佛)이 불화로 유명하다. 또 사찰 입구에 있는 홍교의 수려한 자태가 일품이다. 흥국사는 임진왜란시 승병의 훈련소로 유명하며 승군이 이순신 휘하에서 전투에 참여하였다.
한편 4월 초순부터 한 달 동안 계속되는 영취산 진달래 군락도 장관을 이룬다. 또 영취산 계곡의 맑은 물은 여수시민에게 좋은 휴식처를 제공한다. 광양만에 있는 묘도는 해수의 침식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수려한 해안경관을 자랑한다.
호랑산의 산성, 고락산성(鼓樂山城), 여수석보(麗水石堡), 봉계성(鳳溪城), 석창성(石倉城) 등 많은 성과 산성이 연계되어 여수의 방위망을 이루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두력도와 장도·가덕도는 이순신이 거북선을 제조·수리·계루하였던 선소를 방어하는 섬으로 쓰였다.
1598년(선조 31)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 이시언(李時言)이 건립한 객사(客舍)인 진남관은 목조건물로서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좌수영(左水營)의 본영으로서, 삼도수군(三道水軍)의 총사령부로서 사용되었다.
자산공원(紫山公園)은 종화동에 있는 시립공원으로 여수항과 오동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공원 주위에 수목이 울창하여 일출시에는 산봉우리가 자색으로 물들일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여수항 앞 바다에 있는 작은 섬(주위 600m)인 장군도(將軍島)에는 1497년 수군절도사 이량(李良) 장군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수중석성(水中石城)과 방왜축제비(防倭築提碑)와 승전비(勝戰碑)가 있다. 여수8경 중의 하나이며 충무공의 작전지휘소였던 고소대(姑蘇臺)에는 1620년에 건립된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충무공의 부하들이 공의 덕을 사모하여 만들어 세운 타루비가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대표적 명소는 오동도(梧桐島)이다. 오동도는 수중 꽃섬이라 할 정도로 190여 종의 희귀수목이 그 자태를 뽐내며 온 섬에 동백과 시누대로 뒤덮여 있다. 해안으로 기암절벽의 다양한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검은 모래로 유명한 만성리해수욕장이 시 중심지에서 동북 3㎞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통이 편리하여 여름철에 전국 각지에서 피서객들로 붐빈다.
특히 검은 모래가 신경통에 좋다고 하여 모래찜질을 하려는 해수욕객이 많이 찾았다. 최근 이 지역의 공업화로 인해 그 명성이 점차 쇠퇴하면서 찾는 관광객 수도 감소하고 있다.
화정면 사도(沙島)는 조그만 섬으로 다양한 기암괴석(奇巖怪石)과 철새의 서식처, 천연 해수욕장, 낚시터로 유명하다. 여수반도와 인접한 돌산도에는 여수와 돌산을 잇는 국내 최초의 사장교인 돌산대교(길이 450m, 폭 17m), 울창한 송림과 아담한 백사장이 조화를 이룬 방죽포해수욕장, 이순신장군이 왜군을 유인해 큰 공을 세운 무슬목, 금오산 기슭에 있는 향일암이 대표적 명소이다.
방죽포해수욕장(防竹浦海水浴場)은 돌산읍 죽포리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돌산대교를 건너 남쪽으로 11㎞ 지점에 위치한다. 그 규모(길이 300m, 폭 79m)는 작으나 모래가 곱고, 일부는 모암의 영향을 받아서 거무스레한 모래를 형성하고 있다. 원래 내륙 깊숙이 만입한 바다였으나 조선 시대 말에 현재의 제방이 축조되었고, 그 배후습지는 논으로 일구어졌다.
제방을 쌓으면서 곰솔을 많이 심었으므로 수령이 100여 년 가량 되는 아름다운 숲으로 성장했으나 여러 차례의 해일에 말라죽어 지금은 150여 그루에 불과하다. 그 동안 파도에 밀린 모래가 쌓여서 아름다운 백사장을 이룬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었다.
향일암은 돌산의 동남단에 있는 금오산(金鼇山)의 기암절벽 사이에 위치한 조그만 암자로 664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일출 광경은 절경이어서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남면의 소라도 등대섬에서 남쪽으로 70해리를 가면 바다 위에 산재해 있는 39개의 크고 작은 무인도군이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의 흰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이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백도이다. 여수 상백도·하백도 일원은 1979년 명승으로 지정되었고, 서방바위·각시바위·보석바위·매바위·등대바위 등 기이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으며 남해의 푸른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해상경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거문도는 쇠뜨기·땅채송화 등 아열대 식물군과 천연비둘기인 흑비둘기, 바닷속의 어류와 해양식물 등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어 남해의 해금강으로 불리어진다. 거문도 주변은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성어기(盛漁期)에는 많은 고기잡이배들이 몰려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어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거문도와 백도는 198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에 해마다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백도는 무인도여서 관광편의시설이 전혀 없으나 거문도에는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여수다도해 일원에는 좋은 낚시터가 많아 돔·볼락·농어 등이 잡힌다.
1968년한려수도(閑麗水道)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여수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관문이며 해상공원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과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다.
매년 5월 3일부터 8일까지는 여수지방의 각종 민속놀이와 예술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지는 진남제 여수거북선축제가 향토문화축제로 개최된다. 기타 축제로는 오동도동백꽃축제, 향일암일출제, 영취산진달래축제, 거문도백도은빛바다축제가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문화행사로는 진남제(鎭南祭)가 있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구국혼을 되새기고 향토문화의 전승을 위해 매년 거북선이 만들어진 5월 5일 전후로 열린다.이밖에 해마다 4월 초순에 열리는 영취산 진달래축제, 향일암 일출제, 향토민속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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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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