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한비자(중국어:韓非子hán fēi zǐ)는 전국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한비(韓非)이다.
개요[편집]
한비자는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왕족 출신이다. 법치주의를 주장했으며 법가를 집대성한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통이라면 본명의 '한'을 따서 '한자(韓子)'라고 해야겠지만, 후에 당의 유가 사상가 한유를 한자라 부르게 되면서, 법가 사상가인 한비의 우선순위가 낮기 때문에 한비 쪽을 이름 전체를 넣어서 한비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한비자는 이상적인 제도의 법제화를 통한 올바른 통치를 말한 것이며, 이는 절대군주의 사사로운 판단이나 감정을 배제한 합리적이고 공개된 통치를 주장한 것이었다. 한비에 의하면 법은 귀족이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 않고 모든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적용하여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공리성(公理性)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형벌이 엄중하면 귀족이 백성을 감히 업신여기지 못한다(刑重則不敢以貴易賤)'고 했다. 또한 군주의 독단적인 1인 통치를 방지하기 위해 관료제(官僚制)를 주장했다.
생애[편집]
한비자(기원전 280년? ~ 기원전 233년)는 《한비자》를 저술한 전국 시대 중국의 정치철학자, 사상가, 작가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그는 한(韓)나라의 공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일찍이 형명과 법술을 익혀 중앙집권적 제국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창도한 법가 이론의 집대성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순자의 문인이다.
한비자는 어려서 법가 사상가인 이사와 함께 순자 밑에서 같이 배움을 같이 하였다. 이사는 말주변이 뛰어났지만 한비자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학문에 있어서는 한비자가 이사보다는 훨씬 뛰어났다. 한비자는 법가 외에도 유가, 도가, 묵가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법에 의한 정치를 강조하였다. 당시 한나라가 문화가 떨어지고 세가 기우는 때여서 여러 가지 방법을 왕에게 제안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비자는 진시황이 존경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한비자가 쓴 고분과 오두를 진시황이 보고 크게 감명받았다. 이사는 진시황에게 한비자를 얻고 싶다면 한나라를 공격하면 한비자가 사신으로 올 것이고 그때 회유하면 된다고 하였다. 결국 진시황은 한나라를 공격하게 되고 한비자가 사신으로 와 한나라를 공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현명하게 이야기하지만 결국 감옥에서 독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한비자의 법가 서적인 '한비자'는 한비자와 그의 제자들이 쓴 것으로 5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중에 한비자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오두', '현학', '고분'이다. 대부분의 내용은 절대적 군주권의 수립 및 현실에서 출발하는 국가 전체의 질서 정립이라는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다.
한비자는 공자의 문인인 자궁(子宮)의 문도였던 스승 순자로부터 사서육경을 배웠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자를 사숙하였으며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강력한 법질서가 필요하다 확신하였다. 또한 스승 순자의 영향을 받아 노예 제도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였는데 이 때문에 하늘의 질서(天理)를 어지럽히는 궤변론자로 몰리기도 했다. 전국 열국의 왕공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일찍이 산으로 들어가 서실을 열고 문하생들을 가르쳤다. 동문이기도 했던 이사와 절친했던 한비는 이사를 통해 진왕 영정을 소개받게 되고, 그의 달변에 매료된 진왕 정은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 노력하였다. 진시황은 한비자를 만나보고 그에게 호감을 가졌으나, 순자 문하에서 함께 배웠던 이사가 질투 때문에 꾸민 음모에 휘말려들어 투옥당했고, 결국 음독자살로 생애를 마감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저서 한비자[편집]
《한비자》(韓非子)는 중국 전국 시대 한비 등이 쓴 책으로 법가 사상을 집대성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 고전시대 다른 많은 책처럼 집단적 저작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편장은 어느 정도의 일관성 아래에 포괄될 수 있는 부분들임이 명백하다. 이 책은 총 55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편장들은 몇 가지의 특색 있는 종류들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편장은 한비가 군주에게 부여하는 권력의지의 지향점인 절대적 군주권의 수립 및 현실에서 출발하는 국가 전체의 질서 정립이라는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다.
≪한비자≫는 전국시기에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이다. 한비가 활동했던 시대인 전국시기는 중국 역사상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정벌 전쟁을 일삼은 혼란의 시기였다. 또 각국에서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아들이 부친을 살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런 시기에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늘 외세의 침략을 받아 쇠퇴 일로를 걷고 있었다. 한비는 기존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1]
제왕학[편집]
군주에게 배우는 학문이라는 뜻인 제왕학은 말 그대로 군주가 국가를 다스릴 때 알아야 하는 지식들을 정리한 책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왕권 강화나 독재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진시황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하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오로지 자신의 명령에만 따르게 했다고 한다.
한비자의 업적[편집]
한비자는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가 안정되고 질서 있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법률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에는 매우 진보적인 생각으로, 강력한 중앙 집권적 국가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이는 후대의 많은 정치 체제 구축에 영감을 주었다.
한비자는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고 보고, 따라서 강력한 법률과 규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간관은 그의 법치주의 사상과 맞물려, 사회 안정과 질서 유지를 위한 강력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한비자는 전쟁과 외교에 대한 실용적인 조언을 제공했다. 그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실 정치에 있어서의 실용주의적 접근을 주장했다. 이러한 점에서 한비자는 단순히 이론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치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결책을 제시한 실용주의자로 볼 수 있다.
한비자의 저작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한비자》라는 책이다. 이 책은 그의 사상과 이론을 다루고 있으며, 후대에 많은 학자와 정치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상은 특히 진시황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중국 최초의 통일된 중앙 집권 국가인 진나라의 정치 체제 구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비자의 업적은 그의 법치주의 사상,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 그리고 정치와 외교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철학과 이론은 당시에는 혁신적인 생각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여러 분야에서 그의 사상이 연구되고 있음은 그의 지대한 영향력을 증명한다.
한비자의 사상[편집]
한비자는 스승인 자궁과 순자의 견해를 계승하여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악한 존재이며 강력한 법과 형벌로 사회를 통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인과 각국의 제왕들에게 공자의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사후 그의 제자들은 법가를 이루어 육가의 하나를 이루었다.
그의 문도들은 다른 유학자들과는 달리 법치주의와 실용주의를 강조하였고 후대에 송나라 때에 가서는 성리학자들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고 유교 내에서도 극소수로 전락하게 된다.[2]
한비자는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해결방법을 제시하면서 '법'과 '술'을 강조했다. 먼저 법은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래야 백성들이 안심하고 따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술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술로써 설득시키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것 또한 매우 중요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유교국가였던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수많은 왕조가 교체되면서 강력한 힘을 가진 전제군주의 등장이 빈번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한비자의 철학은 현실성 있는 조언이자 지침서로서 많이 활용되었다.
한비자는 그의 엄격한 법치주의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인해 고대 중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 속에서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오늘날에도 한비자의 철학은 법률, 정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우리에게 실질적인 영감과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단순히 역사적인 이론에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도 그 유효성을 발휘하며, 정치 체계의 구성, 법의 집행,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 규범 설정에 있어서 근본적인 토대를 제공했다.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특히 현대 사회의 복잡한 법률 체계와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의 이론은 정치학, 법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한비(韓非,BC 280?~BC 233)〉, 《두산백과》
- 〈한비자〉, 《위키백과》
- 〈한비〉, 《위키백과》
- 〈한비자〉, 《나무위키》
- 책썰미, 〈나이 들수록 너무 와 닿는 '이 남자'의 명언 "함부로 친절하지 마라"〉, 《네이버포스트》, 2024-10-04
- 공부길잡이, 〈한비자의 제왕학 주장 한비자의 저서〉, 《네이버블로그》, 2023-12-09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