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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30일 (토) 01:4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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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그리스어: Αιγαίο Πέλαγος, 튀르키예어: Ege Denizi, 영어: Aegean Sea)는 그리스와 소아시아, 크레타섬에 둘러싸인 바다이다.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마르마라해 및 흑해와 연결된다. 에게해의 섬들은 크레타와 로도스 같은 그리스 남부 현까지 산재한다. 튀르키예의 에게해 지역은 터키 남서부의 9개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부는 에게해와 접하고 있다. 남북길이 640km, 동서길이 320km이다. 대소 400개의 섬이 산재해 있으며 다도해라고도 불린다.[1]
개요
에게해는 지중해의 일부를 구성하는 내해로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에 놓여있는 바다이다. 북쪽으로는 마르마라해와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흑해로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본 지중해로 연결된다. 위치는 대충 동지중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북쪽은 트라키아, 동쪽은 이오니아, 남쪽은 크레타, 서쪽은 그리스와 접하는 바다이고 다도해와 리아스식 해안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파도가 잔잔한 편이고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의 성지이다. 보통 지중해 크루즈여행은 이곳을 의미하며 인터넷에 나오는 아름다운 지중해 사진도 절반 이상은 에게해가 배경인 경우가 많다.
에게해 도서(島嶼)의 대부분은 파쇄(破碎)되어 침수한 구육괴(舊陸塊)의 정상부에 해당하며 동서 방향의 신기 조산대 몇 줄기가 이를 꿰뚫고 있다. 따라서 해저의 지형도 복잡하며, 수심이 2,300m 정도로 깊은 곳도 있고, 수십m에 불과한 얕은 곳도 있다. 그러나 섬을 따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으며 해역 전체가 아시아와 유럽의 접촉점에 위치하고 고대문명이 꽃핀 이집트에도 가까웠기 때문에, BC 1500년경부터 이 해역을 중심으로 한 에게문명이 생겨났으며, 고대 후기에는 그리스문화의 중심부가 되었다. 플라톤이 연못 둘레에 있는 개구리에 비유했던 것처럼 그리스인은 이 바다의 연안을 생활무대로 삼았다. 그러나 북동부로는 다르다넬스해협을 통하여 마르마라해, 흑해와도 이어지는 해역 교통상의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주변 민족들의 격전지가 되었으며, 일찍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리던 델로스섬을 비롯하여 여러 섬들이 누리던 문화는 이제 보잘것 없이 쇠퇴하였다. 주민도 고대 그리스인의 후예는 적고 대부분이 혼혈이며 영세 농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밀, 포도, 무화과 외에 산호, 해면(海綿)이 산출된다. 19세기에는 러시아가 이 해역을 발판으로 남하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2]
어원
고대에 "에게"라는 이름에 대해 수많은 설이 있었다. 대개는 그리스의 한 도시이던 아이가이 혹은 이 바다에서 죽었다는 아마조네스의 여왕 아이게아(Aegea)의 이름을 땄다고도 하며, 혹은 백 개의 손을 가진 브리아레오스의 다른 이름인 "바다 염소" 아이가이온(Aigaion)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하며, 특히 아테네인들 사이에서는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가 아들이 죽은 줄 착각하고 이 바다에 투신하여 그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한다. 또 한 가지는, "파도"를 뜻하는 그리스어 낱말 "아이게스"(αἶγες, 알렉산드리아의 헤쉬키오스는 "염소αἴξ"의 은유적 표현으로 썼다)에서 나왔다고도 하는데, 그리하여 "파도치는 바다"란 뜻이 된다. "해안"을 뜻하는 (αἰγιαλός)에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지리
에게해는 과거에 지중해와 마찬가지로, 이 지역은 거대한 평야 지대였으며, 대략 후기 빙하시대인 BC 16000여 년경에는 에게해 대부분이 물이 많은 거대한 해안 평야였다. 이 지역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기원전 8000여 년경에도 이 지역은 많은 부분이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반도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빙하시대가 지나고 기원전 4000여 년경이 되어서야 오늘날과 같은 해안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게해의 면적은 대략 214,000km²이며 흔히 다음과 같은 7개의 구역으로 분류된다.
에게해 제도
- 북동부 에게해 제도 - 현재 튀르키예에 속한 보즈자아다(테네도스), 괵체아다(임브로스), 그리스에 속한 타소스, 렘노스, 사모트라키, 레스보스, 히오스, 사모스, 이카리아 등등.
- 에비아(고대의 에우보이아) - 그리스 본토와 엄청 가까워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 북부 스포라데스 제도 - 스키로스 섬 일대.
- 키클라데스 제도 - 낙소스를 중심으로 한 원형(Κύκλος, kyklos)의 군도들.
- 살로니카 제도 - 아테네 앞바다에 위치한 살라미스, 이드라 등의 섬들.
- 도데카니사 제도 - 로도스섬을 중심으로 한 코스, 카르파토스, 파트모스, 카스텔로리조 등의 12개(δώδεκα, dodeka)의 주요 섬들.
- 크레타 - 그리스 남부 에게 해와 지중해에 걸쳐 있는 섬으로, 그리스에서는 가장 크고 지중해에서는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크레타섬 남쪽 근해에 있는 가브도스섬은 유럽의 최남단이기도 하다. 크레타주는 이 섬과 부속도서로 이루어진 주로, '에게 분권 정부'에 속한다. 이라클리온, 라시티, 레팀노, 하니아 등 총 4개의 지역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3]
군도(群島)를 뜻하는 아르키펠라고(Archipelago)라는 명칭은 원래 에게해와 그 제도를 이르는 지명이었다. 여러 에게해 제도(혹은 열도)는 사실 본토에 뻗어있는 산맥의 연장인데, 어떤 산맥은 히오스 섬까지 연결되며, 에비아와 사모스까지 이어지는 것도 있고, 다른 산맥은 펠로폰네소스에서 크리티를 지나 로도스까지 이어져 에게해와 지중해를 구분해준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리스와 터키도 그렇듯 지진대의 정중앙을 지난다. 지진도 꽤나 자주 발생해서 1년에 심심하다 싶으면 해저지진 소식이 들린다. 잔잔한 해양 관광지의 이미지가 강해서 바다 자체도 대륙붕처럼 상당히 얕은 곳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의외로 수심이 깊은 해역이다. 평균 수심은 1500m, 가장 깊은 해역은 크레타 동쪽 해역으로 3543m까지 내려간다.
수역
에게해의 소금기가 많은 지중해 바닷물이 터키 서부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고 일부는 흑해로 흘러 들어가면서, 바닷물이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염분 농도가 높은 지중해 바닷물이 흑해로 유입되면, 수심 23~30m 아래로 내려가서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나 마르마라해에 초속 5~15cm로 흘러간다. 흑해에서 흘러나오는 바닷물은 에게해 북부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흘러가서 그리스 동부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간다. 에게해의 물리적인 해양 움직임은 주로 지역 기후, 남동부 유럽의 하천에서 흘러나오는 담수,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해 흘러나오는 흑해 바닷물의 계절적인 변화에 주로 영향을 받는다.
- 1991년과 1992년의 에게해 분석은 세 수괴를 보여준다.
- 에게해 표면 해수: 40~50m 두께로, 기온은 여름에 21~26°C이고, 겨울에 북쪽은 10°C이고 남쪽은 16°C에 이른다.
- 에게해 중간 해수: 수심 40~50m 밑에서 200~300m 사이로, 기온은 11~18°C이다.
- 에게해 해저 해수: 수심 200~300m 밑이며, 매우 균일한 온도(13~14°C)와 염분 농도(39.1~39.2%)를 보인다.
역사
현재의 해안선은 기원전 4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 시대인 후기 빙하시대(약 기원전 16,000년)의 절정 때 전체 해수면은 130 m 낮아 에게 해 북부의 상당수는 물이 많은 거대한 해안 평야였다. 최초로 인간이 이 곳을 점유한 뒤에도 오늘날의 밀로스섬과 같은 곳은 그리스 본토와 연결되어 있었다. 현재의 해안 배치는 빙하시대 이후 해발 고도가 이후 3,000년여 년간 높아지던 기원전 7,000년에 나타났다. 이후 청동기 시대에 그리스와 에게해의 문명은 에게 문명으로 일컫는다. 고대에 이 바다는 크레타섬의 미노스 문명과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미케네 문명 이 두 고대 문명의 모태가 되었다.
기원전 2000여 년경에 키클라데스 문화라는 독특한 문화가 발전했다. 이 문화권은 극도로 추상화된 석상과 해양문화라는 특징을 갖는데, 특히 산토리니섬의 아크로티리 유적과 크레타에서 발굴된 벽화는 당시의 풍요로운 해양 문명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트로이까지 에게 문명에 포함시킨 지도도 있다. 이후 에게해는 그리스 문화권에 속하며, 그리스인들의 내해로 문화와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을 거친 후 오늘날에 이른다. 영웅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 왕이 아들이 원정에서 사망한 줄 착각하여 절망감으로 바다에 투신하여 그 바다에 그의 이름을 붙여 에게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이 그리스 신화에 있는데, 이 또한 이 시기 즈음에 만들어진 이야기인 것으로 보인다. 에게해에는 섬이 무척 많은데, 작은 섬 몇개를 제외하면 튀르키예 코앞에 있는 섬까지 전부 그리스 땅이다. 한때는 그리스 본토까지 포함해 모두 오스만 제국 땅이었지만 제국이 차츰차츰 몰락하면서 19세기~20세기 초반에 그리스에 하나 하나씩 다 털려버렸다.
로잔 조약에 따라 에게해의 섬은 튀르키예 영토의 코앞에 있는 것까지 죄다 그리스에 넘어갔다.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항복한 뒤 이스탄불에 진주한 연합군의 우두머리인 영국인 고등판무관이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을 지켜보다가 그리스군이 튀르키예군에 져서 에게해로 밀려나자 궁지에 몰린 그리스군을 구하고, 전쟁이 확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생 튀르키예 정부에 압력을 넣어 이스탄불 부근의 동트라키아 지역 아니면 에게해의 섬들 중 하나를 가지라고 제안하자 튀르키예 정부가 이스탄불 주변 땅을 가지겠다고 선택해서 에게해가 그리스 땅이 된 것이다. 그리스는 제1차 세계 대전 연합국으로 참가해 득본 셈이다. 튀르키예는 독일 편을 든 덕분에 영국에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고 이 때문인지 지금도 이 지역의 영해 범위를 놓고 튀르키예와 그리스 사이에 영토 분쟁이 있다고 한다. 2017년에 에게해의 작은 무인도 이미아(튀르키예명 카르다크)섬을 둘러싸고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일단 로잔 조약에 따라 이곳은 그리스가 점유하고 있으나 튀르키예는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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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