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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수공업은 역사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형태를 거쳐 현재의 근대적 가내공업으로 이행되어 왔다. 첫째는 자연경제(현물경제) 하에서의 가내공업으로 원료 생산에서 제품 가공까지가 특정한 가족노동에 의하여 수행되며 그 제품은 원시적인 농촌 공동체나 하나의 봉건 영토 안에서 자급자족으로 소비되는 형태이다. 둘째는 자급적인 농촌공동체가 스스로 소유하고 있던 수공업에서 생겨난 도시 길드(guild)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초기에는 특정한 소비자의 주문, 요구에 따른 고객생산을 하고 있었으나 원격지 무역의 발전에 따라 차차로 예상생산으로 바뀌어 생산물을 시장에 내놓아 판매하게 되었다. 더욱이 길드 제도의 이완(弛緩)과 상품경제의 농촌 침투에 따라 자급적인 농촌 내부에 일체화되어 있던 가내공업이 특히 직물공업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자립화하여 매뉴팩처로 발전하고 초기 산업자본을 형성하는 것이 나타났다. 이러한 가내공업이 상업자본의 지배하에 놓여서 원료나 도구를 대여받아 스스로는 가공임만 받게 된 것이 하청제 가내공업이다. 최종적으로 그들은 사실상의 임금노동자로 전락하였으며 가혹한 근로조건 밑에서 시달리는 일이 많아졌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하여 기계공업이 일반화됨으로써 박약한 기술적 기반밖에 가진 것이 없는 가내공업은 이미 자립, 분산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으며 제조공업의 외주부로 포섭되어 근대적 가내공업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었다. 이 근대적 가내공업은 유럽, 미국에서도 저임금과 나쁜 근로조건 때문에 여러 가지 노동입법에 의하여 보호되고 있다. 한국의 가내공업도 대규모적인 제조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그 대부분이 소멸하였으나 하청 가내공업 내지 실질적인 임가공 노동자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있으며 수공예 분야에는 아직도 일부 독자적인 형태의 가내공업이 남아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54283&cid=40942&categoryId=31868 가내공업]〉, 《네이버 지식백과》</ref>
  
 
==현대 가내수공업==
 
==현대 가내수공업==

2022년 6월 21일 (화) 14:00 판

가내수공업(家內手工業)은 가정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이다. 가내공업(家內工業)이라고도 한다. 가내수공업은 서양에서 18세기에서 19세기에 많이 이루어졌으며 주로 농촌에 사는 사람이 부업으로 했다.[1][2]

개요

가내수공업은 집 안에서 손이나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작은 규모의 공업이다. 가내수공업은 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공장이 아닌 집 안에서 만들어 사용하는 형태이다. 수공업의 형태는 천연 동굴이나 움집에 살던 선사 시대부터 인간과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면서부터 나타난 공업 형태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일어나기 이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오랫동안 농사를 주업으로 삼았다. 당시 농업사회는 서민 대부분이 농사에 매달려야만 근근이 먹고 살 수 있었다. 당시 가장 중요했던 사회 단위는 가정과 마을이었으며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 역시 스스로 자급자족하였다. 가내수공업은 기계공업이 탄생하기 이전까지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내직적 수공업, 부업적 수공업, 전업적 수공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3]

가내수공업은 주문자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으로 원료를 공급받고 기계나 도구를 대여받아 가공임(加工賃)을 받기 위하여 노동하는 것으로 저임금과 나쁜 근로조건이 일반적이다. 가내수공업은 직접생산자가 자신의 집을 작업장으로 사용하는 공업생산의 형태를 말한다. 우리나라 공업의 시작은 조선시대에 가내수공업 형태로 발달하였던 전통 공업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 공업은 보통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서 발달하였기 때문에 각 지역의 고유한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생산 규모가 작고 손이나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만든 수공품 생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는 주로 특산물의 형태로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강화의 화문석, 안성의 유기, 담양의 죽세공품, 안동의 삼베, 한산의 모시, 전주의 한지, 통영의 나전칠기 등이 있다.[4][5]

역사

가내수공업은 역사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형태를 거쳐 현재의 근대적 가내공업으로 이행되어 왔다. 첫째는 자연경제(현물경제) 하에서의 가내공업으로 원료 생산에서 제품 가공까지가 특정한 가족노동에 의하여 수행되며 그 제품은 원시적인 농촌 공동체나 하나의 봉건 영토 안에서 자급자족으로 소비되는 형태이다. 둘째는 자급적인 농촌공동체가 스스로 소유하고 있던 수공업에서 생겨난 도시 길드(guild)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초기에는 특정한 소비자의 주문, 요구에 따른 고객생산을 하고 있었으나 원격지 무역의 발전에 따라 차차로 예상생산으로 바뀌어 생산물을 시장에 내놓아 판매하게 되었다. 더욱이 길드 제도의 이완(弛緩)과 상품경제의 농촌 침투에 따라 자급적인 농촌 내부에 일체화되어 있던 가내공업이 특히 직물공업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자립화하여 매뉴팩처로 발전하고 초기 산업자본을 형성하는 것이 나타났다. 이러한 가내공업이 상업자본의 지배하에 놓여서 원료나 도구를 대여받아 스스로는 가공임만 받게 된 것이 하청제 가내공업이다. 최종적으로 그들은 사실상의 임금노동자로 전락하였으며 가혹한 근로조건 밑에서 시달리는 일이 많아졌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하여 기계공업이 일반화됨으로써 박약한 기술적 기반밖에 가진 것이 없는 가내공업은 이미 자립, 분산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으며 제조공업의 외주부로 포섭되어 근대적 가내공업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었다. 이 근대적 가내공업은 유럽, 미국에서도 저임금과 나쁜 근로조건 때문에 여러 가지 노동입법에 의하여 보호되고 있다. 한국의 가내공업도 대규모적인 제조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그 대부분이 소멸하였으나 하청 가내공업 내지 실질적인 임가공 노동자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있으며 수공예 분야에는 아직도 일부 독자적인 형태의 가내공업이 남아 있다.[6]

현대 가내수공업

분류

장점

단점

각주

  1. 가내수공업〉, 《위키백과》
  2. 가내수공업〉, 《나무위키》
  3. 김강호 기자, 〈(핸드메이드 역사 이야기 1) 가정과 함께한 핸드메이드, '가내수공업'〉, 《핸드메이커》, 2019-08-26
  4. 가내 수공업〉, 《네이버 지식백과》
  5. 교육부, 〈우리나라의 공업발달 및 특색〉, 《네이버 블로그》, 2015-09-21
  6. 가내공업〉,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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