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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5일 (일) 23:30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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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독일어: Leipzig, 소르브어: Lipsk, 문화어: 라이프찌히)는 독일 작센주의 가장 큰 도시이다. 라이프치히의 인구는 제2차 세계대전 전에 750,000명으로 역사상 정점을 지나 현재는 약 60만 명이다. 통일 이후 BMW와 포르쉐가 라이프치히에 공장을 신설하면서 자동차 공업이 성하고 있다.[1]
개요[편집]
라이프치히는 베를린에서 182km 남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엘스터강의 지류인 바이세엘스터강에 면한다. 독일의 10대 도시 중 하나이며 동독에서는 동베를린에 이어 제2의 도시였다. 라이프치히는 신성 로마 제국 이후 무역 도시로 번창하였으며 15세기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무역박람회는 유럽 각지로부터 많은 상인을 끌어들여,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독일의 최대 무역박람회로 알려져 있었다. 바흐, 멘델스존, 슈만 등의 걸출한 음악가들이 활동한 음악,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며 주도 드레스덴과 함께 작센주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에 속하면서 그 명성이 퇴색되기도 하였으나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다시 부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는 멘델스존이 설립한 음대 라이프치히 음악연극대학교와 동독 지역에서 유명한 국립대학 중 하나인 라이프치히 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의 인쇄업, 출판의 중심지로서 400개 이상의 출판, 인쇄회사가 있었으며 도서출판업은 지금도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그 밖에 철강, 기계, 화학, 섬유 등의 공업이 발달했으며, 주요 공장지구는 바이세엘스터강의 서안(西岸)과 동쪽 교외에 전개되어 있다. 1989년 성 토마스 교회에서 열린 라이프치히의 시위는 동유럽과 중유럽 공산주의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독일 통일의 즉각적인 효과로 공해를 유발하던 중공업이 붕괴되면서 심각한 실업난이 발생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역사적인 주요 건축물들이 복원되고 현대식 교통인프라가 구축되었으며 새로운 산업이 발전됐다. 오늘날 라이프치히는 경제적 중심지로 역동감이 넘치는 도시로 떠올라 HWWI 경제연구소와 베렌베르크 은행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독일에서 전망이 밝은 두 번째 도시로 나타났다. 라이프치히는 프랑크푸르트와 함께 2개의 국립도서관 중 하나가 위치하고 있고 연방행정법원의 소재지이다. 라이프치히 터널 개통으로 중부 독일 대중교통 가운데 중단거리 노선을 담당하는 S-Bahn의 중심지가 되었다. 2013년에는 독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뽑혔으며, 2015년과 2016년에는 뮌헨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뮌헨에 이어 독일에서 가장 크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로 꼽힌다. 유명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거점 도시이자 RB 라이프치히라는 축구팀의 거점 도시이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라이프치히는 북부 독일 평원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변 숲처럼 습지대가 있고 북쪽에는 석회암지대가 있다. 도시 내에는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이 몇 개 있으나 도시 외곽은 상대적으로 산림지대가 적다. 20세기에 몇 개의 노천광산이 가동되었고 이 중 일부는 인공호수가 들어섰다. 그중 하나가 노이젠란트 구역으로 10여 개의 인공호수로 구성된 곳인데 2060년까지 물이 다 채워지면 호수 면적만 여의도의 40배에 달하는 70,00ha에 달한다.
라이프치히는 독일 동부에 위치한 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대륙의 영향을 받는 해양성 기후에 가깝다. 겨울은 온화하다가 추워지는 등 변화무쌍한데 평균 기온은 약 1°C이다. 여름은 일반적으로 따뜻하고 평균 기온은 19°C로, 낮 기온이 24°C이다. 겨울의 강우량은 여름의 약 절반이다. 일조량은 겨울과 여름의 차이가 매우 큰데 7월은 하루 7.4시간으로 12월의 하루 1.7시간에 비해 많은 차이가 있다.[3]
역사[편집]
라이프치히란 도시명은 '보리수가 있는 곳에서의 정착'이란 의미인 슬라브어 리프스크(Lipstk)에서 유래됐다. 이 도시는 1989년 동구 공산권의 몰락을 가져온 월요일 시위로 '영웅의 도시'란 별명을 얻었다. 최근에는 역동적인 생활 스타일과 수많은 창업기업의 창조성이 높게 평가되어 동독의 '붐 타운'이라고도 불린다.
라이프치히는 1015년 처음으로 공식문서에서 언급되고 1165년 오토 2세 후작에 의해 도시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중세시대부터 열린 라이프치히 무역 박람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박람회이다. 1409년 라이프치히 대학 설립을 계기로 독일 법과 출판의 중심지로 발전해 독일제국에서 사법재판소와 국립도서관의 소재지가 되었다. 1701년에는 기름을 연료로 하는 가로등 시스템이 도입되었는데 700개의 가로등을 밝히기 위해 가로등 관리인을 두었다.
1813년 나폴레옹 군대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연합군이 이곳에서 전투를 치렀다. 이 라이프치히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가장 큰 규모의 전투였는데 연합군의 승리로 나폴레옹은 독일에서 철수하고 결국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 이 전투는 독일인의 애국심을 고취했을 뿐 아니라 그 후 전시 동원이나 구호 활동, 전후 기념행사에서 시민의 자발적인 지원을 유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독일의 첫 노동당이 1863년 설립될 정도로 독일에서 자유 운동의 중심지였다. 산업화 초기에 생겨난 지역은 1 · 2차 세계대전에서 별 피해를 입지 않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동독 당국의 철거정책도 이겨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나치가 집권하던 1933년 1만 1,000명 이상의 유대인이 살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2년 유대인 수가 2,000여 명으로 줄었고 이들 모두가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가스실에서 살해됐는데 53명만이 생존했다. 라이프치히는 종전 후 소련군의 점령지역으로 남아 있다가 동독으로 편입됐다. 박람회의 도시답게 동구 공산권 경제블록인 코메콘에서도 박람회를 개최해 회원국 간 경제 교류의 장소로 활용됐다.
그러나 계획경제 탓에 전쟁 전의 출판, 법률 등 서비스 경제는 몰락하고 중공업만 남아 경제가 부진했다. 라이프치히는 공산정권하에서 독일이 다시 통일될 때 까지 인구가 6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줄었다. 1989년 독일 통일 후 중공업 분야는 경쟁력 약화로 6년 만에 거의 파산하고 일자리가 10%밖에 남지 않았다. 10만여 명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났고 도시의 빈집이 사회문제가 됐다.
2000년부터 시작된 도심 재개발사업으로 도시의 쇠락이 멈추고 반등이 시작됐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2010년대부터 도시는 독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곳으로 생활의 질이 높은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2013년 10년간의 공사 끝에 라이프치히 터널이 완공되면서 작센, 작센-안할트, 튀링겐, 브란덴부르크 등 중부 독일를 잇는 S-Bahn의 중심 도시로 부상했다. 중부 독일을 다니는 중단거리 철도 S반의 7개 노선 중 6개 노선이 라이프치히 터널을 통과한다. [4]
교통[편집]
시내 교통[편집]
라이프치히의 시내 교통은 LVB(Leipziger Verkehrsbetriebe, 라이프치히 교통국)소속이며, 버스, 트램, 그리고 Nightliner라 불리는 야간 트램을 관리한다. 교통비는 여느 유럽 도시와 비슷하다. 단거리용 표는 2.00유로, 라이프치히 도심인 Zone 110 전체를 커버하는 일회성 표는 3.00 유로이다. 표는 구매 후 한 시간 이내에 개찰할 경우에만 유효하며, 트램 정류장의 티켓 판매기에서 티켓을 구매할 경우에는 목적지까지 버스, 트램, S반에 관계 없이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표는 정류장이나 역에서도 구매할 수 있고, 트램의 경우에는 정류장에 티켓 자동판매기가 없을 경우 트램 안의 자동판매기에서 구매해도 된다.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주요한 대중교통은 트램이다. 무려 24시간 다닌다. S반은 있지만 노선이 많지 않고, 트램만큼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지는 않으므로 트램을 이용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U반은 따로 없다. 정시성이 매우 뛰어나지만 빠르지는 않다. 독일에서 광궤 노선을 사용하는 두 개의 트램 시스템 중 하나이며, 표준궤보다 약간 넓은 1458mm 광궤를 사용한다. 노선이 많이 모이는 정류장은 환승이 다소 복잡할 수 있고, 노선도 상에서 색이 동일한 노선이 많아 처음엔 헷갈릴 수 있으나, 주된 운행 방향을 기준으로 색과 승강장을 배정해놓았기 때문에 조금만 타다 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배차 간격은 10분에서 15분 정도이며, 이른 아침과 늦은 밤 시간대에는 배차 간격이 더 길어지는 편이다. 여느 유럽 대중교통이 다 그렇듯이 문은 직접 열어야 하지만, 트램에서 내릴 때에는 미리 문열림 버튼을 눌러두면 트램이 정차한 후에 문이 열린다. 다만 미리 버튼을 눌러두지 않으면 자동으로 열리지 않으며, 이 때는 문열림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야 한다. 트램으로 사람이 죄다 몰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버스나 S반이 한산한 감이 있다.
S반은 라이프치히-할레 S반으로 불리지만 공식 명칭은 미텔도이칠란트(Mitteldeutschland) S반이며, 마찬가지로 라이프치히 대학교 학생증을 가지고 있으면 무료로 탑승할 수 있다. 라이프치히와 근교의 소도시들을 이어주며 베를린 S반과의 차이점은 1, 2등석이 구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1등석은 매우 적고 탑승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원래는 라이프치히와 할레 S반이 각각 별개로 운영되었으나 두 시스템을 합치면서 S반 미텔도이칠란트로 개편되었다. 가장 멀리까지 가는 노선인 S4의 경우 라이프치히에서 브란덴부르크 주의 호이어스베르다까지 가는데, 소요시간이 무려 2시간 30분이다.
시외교통[편집]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독일철도에서 지정한 21개의 중앙역(Hauptbahnhof) 중 하나이다. 다만 드넓은 독일 국토에서도 동쪽에 치우쳐있다는 한계 덕분에 국제 노선 비중은 다소 빈약한 편이다. 프라하, 부다페스트, 바르샤바 같은 보다 동쪽의 위치한 유럽 도시를 가려면 드레스덴이나 베를린에서, 암스테르담이나 브뤼셀, 파리같은 보다 서쪽의 위치한 도시를 가려면 쾰른이나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해야 한다. 하지만 독일 내 다른 대도시로 가는 ICE는 환승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아서 쉽게 유럽 내의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있다.
라이프치히의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인 할레와의 중간지점 즈음에 라이프치히-할레 국제공항이 있다. IATA 코드는 LEJ, ICAO 코드는 EDDP. 여객으로는 다소 밀리는 공항이지만, DHL의 화물 허브가 여기에 있어서 DHL Express로 독일로 보내는 화물은 여기로 들어온다. 화물청사에 항상 러시아의 화물 항공사인 Volga-Dnepr의 An-124가 주기되어 있으며, 종종 An-225도 들어온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화물 터미널의 허브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한 안토노프의 항공기 정비가 가능하다.
관광[편집]
라이프치히는 도심이 굉장히 작은 편이고, 오랜 역사에 비해 관광지가 많은 장소는 아니다. 독일 역사에서 중요한 도시임은 맞지만 드레스덴 같은 관광지라고 하기는 어렵다. 관광지로 손꼽히는 동네도 아니고, 관광을 하더라도 며칠씩 머무를 정도는 아니다 보니 호텔이나 호스텔이 다른 독일 대도시에 비해 굉장히 빈약하다. 라이프치히 시내는 한두 시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고, 관광지를 몇 군데 들른다고 해도 반나절, 여유있게 봐도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인지도가 없는 도시는 아니다 보니 나름 주말이나 휴일에는 투어 버스도 다니는 편이고 그래도 제법 관광객이 있는 편이다.
라이프치히를 관광하려면 인근의 베를린이나 드레스덴을 여행하는 김에 유레일패스로 ICE를 탑승해서 당일치기 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유레일패스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면 플릭스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데, 워낙 가깝기 때문에 표값이 정말 싸다. ICE로 베를린에서 라이프치히는 약 한 시간 반, 드레스덴은 한 시간 정도 걸리며, 버스로는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베를린 알렉산더광장까지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드레스덴 중앙역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IC버스 프라하 왕복편도 있다.
관광지[편집]
- 니콜라이 교회 (Nikolaikirche) : 1165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후 고딕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되었다. 1539년 개신교회로 바뀌었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평범하고 오래된 교회로 보이겠으나 사실 이곳은 바로 소위 월요 시위의 촉발점이 된 기도회가 시작된 곳으로 1989년 9월 바로 이곳에서 시민들이 비폭력 시위를 벌이기 시작함으로서 1년간의 동서독 통일로의 여정이 시작된다. 독일인들한테는 곧 통일의 성지인 셈이다. 안에는 당시 쓰였던 피켓 구호와 팜플렛, 현수막들이 전시되어있다. 토요일마다 무료 음악회가 열린다.
- 바흐 뮤지엄 (Bach Museum) : 2010년 재개관해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일가의 삶과 작품을 인터액티브하게 보여준다. 바흐의 악보 원본을 포함한 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은 정원, 오디오룸, 카페 글로리아 등의 시설이 있다. 개관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이며, 매월 첫 번째 화요일은 입장이 무료다.
- 구시청 (Altes Rathaus) : 라이프치히 중심가에 위치해있다. 1566년 세워져 1905년까지 시청으로서 기능하였으며 이후에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앞이 광장이며 여기서 때때로 길거리 공연이 펼쳐지며 요일장이나, 부활절시장, 크리스마스 시장과 같은 행사도 여기서 열린다. 구 시청 건물 밑에는 기념품 가게가 자리잡고 있다. 광장 지하에 S반역(Leipzig Markt)이 위치해 있어 이것을 타고 중앙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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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라이프치히〉, 《위키백과》
- ↑ 〈라이프치히(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라이프치히(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라이프치히〉, 《요다위키》
- ↑ 〈라이프치히〉,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 〈라이프치히〉, 《위키백과》
- 〈라이프치히〉, 《나무위키》
- 〈라이프치히〉, 《요다위키》
- 〈라이프치히(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라이프치히(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