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산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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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산구역(兄弟山區域)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 구역이다.[1][2]
개요[편집]
형제산구역의 면적은 80.88㎢로서 시 면적의 3.12%를 차지한다. 구역 면적 가운데서 농업토지는 39.00%, 산림토지는 26.01%, 주민지구토지는 12.35%, 수역토지는 9.17%, 산업토지는 6.91%, 특수토지는 6.56%를 차지한다. 인구는 160,032(2008)명이다. 북쪽으로 순안구역, 동쪽으로 룡성구역, 서성구역, 남쪽으로 만경대구역, 서쪽으로 평안남도 대동군과 접한다.
봉수산과 북한의 극영화 전문 촬영소인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위치한다. 정찰 총국 본부와 애국열사릉이 있다.[3]
자연환경[편집]
형제산구역의 지형은 해발높이 150m 이하의 언덕산과 벌로 이루어져 있다. 구역에서 제일 높은 산은 학산리에 있는 봉수산(166m)이다. 보통강의 중류가 구역의 중부지역을 북쪽으로부터 남족으로 흘러내리므로 이 구역은 동부와 서부의 언덕산 지구로 갈라진다.
동부 언덕산지구는 보통강의 좌안지류인 학산개에 의하여 형성된 학산벌을 사이에 두고 북동부의 신미리 언덕지구와 동부 및 남동부 언덕지구로 갈라진다. 이 북동부언덕지구는 기반암이 시생대 랑림층군에 속하는 흑운모편암과 흑운모편마암으로 구성되여 구역의 다른 곳과는 구별된다. 이 지구는 룡성구역과의 경계에 해발높이 120~130m 정도의 언덕산이 있지만 대부분이 해발높이 70~100m의 낮은 언덕산이며 골깊이도 1㎞를 넘지 못한다.
동부 및 남동부의 언덕지구에는 봉수산을 비롯하여 서성구역과의 경계에 돌박산(142m), 장산(106m) 등이 솟아 있고 그밖의 대부분은 해발높이 50~70m밖에 되지 않는 낮은 언덕들로 되여 있다. 이 언덕지구는 보통강의 좌안 지류들인 천남천과 서포천에 의하여 수많은 언덕무리들로 갈라졌다. 이 지구의 언덕들은 대부분이 중생대 경상계에 해당하는 응회질력암과 사암, 니회암 등으로 되여 있다.
서부 언덕산지구는 형산리와 제산리 령역을 포괄하는데 여기에는 형제와 같이 나란히 솟은 두 야산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서쪽의 것이 큰 형제산(143m), 동쪽의 것이 작은 형제산(127m)이다. 이 구역의 이름과 형산리, 제산리라는 이름도 이 두 산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지구의 언덕산들은 대부분이 력질사암, 분사암, 니암, 탄질편암과 응회질력암, 사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경대구역과의 경계에는 광대산(118m)을 비롯하여 해발높이가 100m 좀 넘는 언덕산이 있을 뿐이고 거의 대부분은 해발높이 50m 안팎 되는 낮은 언덕들이 차지한다.
이 지구에서도 보통강의 우안 지류들인 시정천, 제산개 등에 의하여 언덕들이 수없이 갈라지고 크지 않은 오로벌과 제산벌이 끼여 있다. 구역에는 보통강을 따라 형산벌이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데 벌의 길이는 약 8.0㎞이다. 벌의 평균너비는 1.5㎞ 정도이며 남쪽의 하당동 령역에서 좁아진다. 벌의 해발높이는 하당동 령역에서 5m 정도이고 그밖의 지역에서는 10m 안팎이다.
형제산구역의 기후는 보통강을 따라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가면서 기온이 낮아지고 강수량은 많아진다. 서포 1동에서 한해 평균 해비침시수는 2,430시간 정도이며 한해 평균해비침률은 56%이다. 철별로 보면 해비침시수는 봄철에 700시간, 하루평균 7.7시간으로서 한해해비침시수의 29%를 차지한다. 여름철에는 흐린날이 많으므로 해비침률이 낮아서 한해해비침률보다 11%나 낮은 45%에 지나지 않지만 낮길이가 길기 때문에 해비침시수는 겨울철보다 길어서 하루평균 6.4시간이다. 가을철 해비침시수는 하루평균 6.6시간이며 해비침시수가 제일 짧은 겨울철에는 하루평균 5.8시간이다.
서포 1동에서 한해 평균기온은 9.5℃이며 기온이 제일 높은 8월 평균기온은 24.4℃, 기온이 제일 낮은 1월 평균기온은 -7.8℃로서 평균기온의 한해변화너비는 32.2℃이다. 구역의 한해평균최고기온은 15.4℃이며 8월 평균최고기온은 29.4℃, 1월 평균 최고기온은 –2.2℃이다. 한해평균 최저기온은 4.7℃이며 8월 평균최저기온은 20.6℃, 1월 평균 최저기온은 -12.6℃이다. 하루평균기온이 0℃ 이상 보장되는 날수는 266일이고 그 기간의 적산온도는 4,000℃, 10℃ 이상 보장되는 날수는 190일, 적산온도는 3,630℃, 20℃ 이상 보장되는 날수는 92일, 적산온도는 2,140℃ 이다.
서포 1동에서 한해 평균강수량은 1,014.1㎜로서 만경대구역의 칠골동보다는 33㎜많으며 순안구역의 룡복리보다는 43㎜적다. 철별로 보면 봄철 강수량은 136.9㎜로서 한해강수량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봄철에는 강수량이 적은 데다가 개인날이 계속 되면서 메마른 바람이 세게 불므로 증발량이 많아서 가물이 자주 든다. 여름철에는 강수량이 많아서 한해강수량의 63%에 해당하는 634.6㎜의 비가 내리는데 그 가운데서도 장마철에 많은 비가 내려 한해강수량의 54%에 달하는 406.5㎜의 비가 7~8월 두 달 동안에 내린다. 가을철에는 봄철보다 강수량이 약간 많아서 193.3㎜이며 강수량이 제일 적은 겨울철에는 한해강수량의 5%에 지나지 않는 49.3㎜이다.[4]
역사[편집]
형제산구역은 1960년 10월 새로 생긴 구역이다. 형제산구역은 서성구역의 천남리, 학산리, 신간리, 서포동, 하당동 일부와 만경대구역의 당촌리, 봉수동 일부, 고천리와 룡성구역의 신미리, 평안남도 순안군의 대양리 일부로 새로 내온 구역이다. 이때 구역에 형제산이 있다 하여 형제산구역이라고 하였다. 《형제산》은 두 개의 산이 나란히 솟은 것 마치 형제와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형제산구역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고조선의 주요한 주민지대였다.
형제산구역의 서포동에서는 기원전 1000년기 전반기의 고조선사람들이 남긴 비파형단검유물이 나왔고 제산리 움무덤유적에서 나온 좁은 놋단검도 기원전 1000년기 후반기 고조선사람들이 남긴 유물이다. 이웃인 남포시 강서구역 대보산리(반천리)와 태성리 유적들에서도 이와 같은 유물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형제산구역 남형제산움무덤, 만경대구역 룡산동과 남포시 강서구역 태성리, 평양시 락랑구역 정백동의 나무팍무덤 유적들은 기원전 시기의 고조선사람들이 남긴 것이다. 이렇게 형제산구역은 이웃지역들과 함께 오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농산업과 목축업, 수공업 등을 발전시키면서 살아온 주요한 주민지대였다는 것을 확증하여 준다.
형제산구역은 고구려시기 수도를 평양성으로 옮긴 이후 평양성의 북부에 있었으며 고려시기 1136년 5도량계와 서경(평양) 6현을 설치할 때 북계(서경 6현)에 속하여 있었다. 리조시기 형제산구역은 평안도 평양부에 속하여 있었으며 리조 말기에는 평안남도 평양부의 남형제산방, 부산방, 서천방, 재경리방 등에 편입되여 있었다.
형제산구역은 일제의 조선강점 초기에 평안남도 평양부가 26개 면으로 구성될 때 서천면 천남동, 2계동, 동포동, 삼봉동, 서룡동, 상당동, 하당동, 남형제산면 자류동, 고천동, 당촌동, 사동, 내동, 사포동, 모로동, 부산면 신흥동, 서산동, 학산동, 신미동, 신안동, 재경리면 간동, 현암동 등 지역에 속하여 있었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평양시 행정구역을 식민지통치에 유리하게 개편하였다. 그리하여 형제산구역은 평안남도 대동군 남형제산면, 재경리면, 서천면, 부산면 등에 편입되였다.
해방 후 형제산구역이 나오기까지 여러 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천남리와 하당1동, 하당2동은 평안남도 대동군과 평양시 서성구역(1959년)에, 학산리, 신간1동, 신간2동, 신간3동은 평안남도 대동군과 순안군(1952년), 평양시 서성구역(1959년)에, 신미리는 대동군, 순안군, 평양시 룡성구역(1959년)에, 서포1동, 서포2동, 서포3동, 하당1동, 하당2동, 중당동은 대동군, 평양시 서성구역(1959년)에 속하여 있다가 1960년 10월 형제산구역이 신설될 때 편입되였다.
1960년 10월 만경대구역 당촌리를 제산리로, 만경대구역 고천리를 형산리로, 1965년 1월 서성구역 서산2동을 석전동으로 각각 고치고 형제산구역에 편입시켰다. 형제산구역은 1989년말현재 11개의 동(신간1동, 신간2동, 신간3동, 서포1동, 서포2동, 서포3동, 상당동, 하당1동, 하당2동, 중당동, 석전동)과 5개의 리(천남리, 학산리, 신미리, 제산리, 형산리)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해방 전 오늘의 형제산구역은 평양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지역으로서 변변한 공장이란 한 개도 없고 생산성이 낮은 수수, 조, 피를 주로 재배하던 매우 뒤떨어진 농업지역이였다. 해방 후 이 지역은 여러모로 발전한 공업과 농업을 가진 지역으로 전변되였다. 1970년대 말에는 신간지구가 자재공급을 위한 상사도시로 전변되였으며 서포와 간리는 화물수송의 중심지로 꾸려졌다.[5]
교통[편집]
철도는 평의선이 통과하고 있는데, 간리역과 서포역이 개설되어 평양∼순안간 통근열차가 다니고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형제산구역〉, 《위키백과》
- ↑ 〈형제산구역〉, 《나무위키》
-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형제산구역의 지리적 위치와 령역 및 행정구역〉, 《네이버 지식백과》
-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형제산구역의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형제산구역의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형제산구역〉, 《위키백과》
- 〈형제산구역〉, 《나무위키》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형제산구역의 지리적 위치와 령역 및 행정구역〉, 《네이버 지식백과》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형제산구역의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형제산구역의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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