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읍
한림읍(翰林邑)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부에 있는 읍이다. [1]
개요[편집]
한림읍은 동쪽은 애월읍과 안덕면, 서쪽은 바다, 남쪽은 한경면과 안덕면, 북쪽은 애월읍과 각각 접하고 있다. 면적은 91.09㎢이며, 인구는 외국인을 제외하고 2023년 6월을 기준으로 21,134명이다. 읍 소재지는 한림리이다. 제주도 전체에서 舊 제주읍(현 제주 시내) 다음으로 승격된 읍으로, 1956년 7월 8일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토지 이용을 보면, 경지 면적이 52.4%, 과수원 6.7%, 목장 용지 13.1%, 그리고 임야가 35.3%로 경지율은 구 북제주군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 교육 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교, 중학교 2개교, 그리고 인문계와 실업계 각 1개교의 고등학교 2개교가 있다.
중산간지대(中山間地帶:해발고도 200∼500m)에는 넓은 초지가 발달하여 이시돌 목장을 중심으로 육우(肉牛)·면양 사육 및 양돈 등의 축산업이 발달되었다. 해안 저지대의 경지에서는 고구마·보리·맥주보리·유채(油菜)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며 감귤 및 채소 재배도 많아졌다. 한림항은 제주 서부지역의 수산 센터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연근해의 중심지이다. 읍내에는 제빙·탁주·배합사료·소라통조림 등의 제조업도 비교적 발달되었다.
한림면 시절에는 아래의 한경면도 관할하고 있었으나 읍 승격과 함께 분리됐다. 제주도 서부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읍사무소가 있는 한림리는 서귀포 시내 중심부와 비교해도 그렇게 뒤떨어지지 않는 번화한 마을이다. 한림항은 제주도 어업의 중요 기지로 꽤 규모가 큰 항구다. 한림 공원과 협재 해수욕장이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으며 유인도인 비양도가 있다.
읍내와 인접한 동명리에는 제주서부소방서, 한국남부발전 소속 화력발전소가 있다. 옹포리에는 일제강점기 때 통조림공장 자리가 남아 있다. 금오름 정상에는 KBS(MBC 임대사용)의 중계소가 있어서 제주시 서부 방향으로 TV와 FM 라디오 전파를 송신한다. 내륙 지역에는 목장이 많이 있어서 목가적인 풍경이 아름답다.
옆 동네 애월읍과 함께 이주민들이 선호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제주의 거센 바람을 아랫동네 한경면이 대신 맞아주고 1132번 도로를 통한 제주시로의 진입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되면 1132번 도로엔 헬게이트가 열린다. 이 시간에는 자치경찰들이 원활한 소통을 위해 간격을 두고 배치되기도 한다.
제주 신공항의 부지로 부동산 사기꾼들이 수많은 투자자들을 낚아 올릴때 들먹이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 결과는 여전히 제주도 사정에 어두운 육지인들을 속여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들이 많다. 신공항 부지는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지, 제주시 한림읍 일대가 아니다.[2][3][4]
자연환경[편집]
지형의 특성은 해안에서 완만한 경사가 내륙쪽으로 깊숙이 이어져 층위별 저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화산 지형의 특색으로 16개의 오름이 분포하는데 금오름(427.5m)·정물오름(466.1m) 등이 해발 200m의 중산간 마을인 금악리에 집중되어 있다. 용암 동굴은 24곳에서 발견되는데 쌍용굴·협재굴·소천굴 등이 협재리, 명월리, 상명리에 있다. 해안 쪽으로의 완만한 경사는 협재리 등의 해안 저지대에 용암 표면이 고결 되었지만 내부는 유동 용암이 하류로 흘러 생겨난 용암 동굴이 발달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해안 지역은 평지 지형이어서 용천수가 이용 가능한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마을이 발달해 왔다. 현재 대림리에서 한림리에 이르는 지역에는 참나무와 느티나무 등이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어 한수풀로 불리며, 중산간 지대에는 넓은 초지가 발달해 있다.
역사[편집]
고려 시대 1002년 본읍 북방4km 해상에 화산이 폭발하여 비양도가 분출 형성되었으며, 귀덕 지방과 명월 지방을 중심으로 촌락이 형성되었다. 1212년 고려 희종 8년 석천촌(현 귀덕1리)에 귀덕현을 설치하여 현령으로 다스리고 지방행정의 기초를 닦았다. 1271년 고려 원종 12년 원나라 초토사 도관이 다스렸으나 고려 삼별초 김통정 장군이 명월에 입관하여 성벽을 쌓고, 망대를 설치하여 명월현을 두었으며 삼별초의 난이 끝난 후 원에 예속되었다.
1404년 조선 태종 4년 탐라를 제주라 칭하고 목사와 판관을 두었으며 1416년 제주목, 대정군, 정의현이 설치되어 제주 목사가 다스리게 되었다.
일제 시대인 1935년 3월 15일 전라남도령 제7호로 구우면을 한림면으로 개칭하였다. 해방후인 1946년 8월 1일 제주도 승격에 따라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면이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6년 7월 8일 법률 제393호로 한경면을 분리시키고 읍으로 승격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007년 7월에 제주특별자치도가 되어 제주시 한림읍이 되었다.
명칭유래[편집]
한림의 옛 이름은 한술 또는 한수풀이다. 한술의 한은 큰의 뜻을 가진 고유어이고 술은 수풀 또는 덤불의 뜻을 가진 제주도 방언으로, 한자로 대림(大林)으로 표기된다. 한림(翰林)이라는 표기는 19세기 말 자료인 『제주군읍지』 등에 나타난 이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어항[편집]
제주 서쪽에 위치한 한림항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인들이 어업 기지로 이용하였던 과거가 있는 연안항이다. 현재는 서부 지역에서 가장 큰 항구로, 시멘트, 감귤 등의 화물을 실어 나르는 화물항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추자도의 인근에서 잡은 조기는 전량 한림항으로 들어오는데 조기를 실은 배가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수십명의 어부들이 모여 ‘조기 털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밤새 잡힌 물고기들은 어판장으로 곧바로 옮겨져, 오전 6시경에는 활기찬 경매 시장이 열린다. 다양한 종류의 생선들이 상인들의 낙찰을 기다리며 나무 박스에 겹겹이 쌓여 있는데, 치열한 경매 현장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저렴하게 생선을 구매하기 위해 찾는다면, 경매가 마무리될 즈음인 오전 7시 정도가 좋다. 상인들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즉석에서 구매할 수 있다. 한림항에서는 비양도를 오가는 도항선을 운행하고 있어 비양도를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림항에 내 도선 대합실을 이용하면 된다.〈한림항〉, 《비짓제주》</ref>
산업[편집]
주요 농산물로는 밭작물로 양배추·양파, 그리고 맥주보리가 중심이 되며, 특히 양배추는 애월읍과 함께 제주도 내 뿐 아니라 전국적인 재배지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수산물과 감귤, 그리고 선인장이 중요한 소득원이다. 이시돌목장을 중심으로 육우, 면양 사육 및 양돈 등의 축산업이 발달하였고, 한림항은 제주 서부지역의 수산 센터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연근 해의 중심지이다. 동굴과 해수욕장은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
금능리 쪽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농공단지가 조성돼 농산물·축산물 가공업체가 여럿 입주해 있다. 최근에 런칭된 제주맥주 양조장도 이곳에 있는데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맥주 제조 공정을 견학할 수 있는 코스를 개방하고 맥주 무료 시음까지 할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어 성인 관광객들이 방문할 만한 곳이 됐다.
한림읍은 어업과 관련된 산업에 발달해 있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 비중이 높은 편이다.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출신 노동자들이 많으며 한림리에는 베트남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이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한림리에 존재한다.
교통[편집]
주요 도로 망으로는 12번 일주도로가 해안 저지대의 여러 마을을 연결하고 있으며, 16번 중산간도로는 명월리에서 내륙 쪽에 있는 금악리, 상명리, 그리고 월림리를 연결해 준다.
관광[편집]
-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 - 한림읍 협재리와 금능리 및 그 남측 약4km 지역에 위치한 망오름을 서로 연결한 삼각지대내에 용암동굴이 산재해 있으며 대표적인 동굴은 소천굴, 황금굴, 협재굴 등이다.
- 월령리 선인장 군락 - 한림읍 월령리의 해안과 마을내의 잡석이 쌓여있는 곳에서 자라고 있는 선인장은 자생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선인장은 멕시코가 원산지이며 흔히 형태가 손바닥과 같아서 손바닥 선인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선인장이 이곳에서 자라게 된 것은 집에서 가꾸던 것에서 퍼졌다고 보지만, 해류를 따라 바닷가의 모래땅이나 바위틈에 기착한 것으로도 보고 있다.
- 명월대 - 명월대는 조선 말기 이 지방 유학자들과 시인들이 어울려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석교 아래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수십그루의 팽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운치있는 곳으로 한 여름 무더위를 피해 많은 피서객들이 몰려든다.
- 명월 팽나무군락지 - 한림읍 명월리 중동의 마을 중심으로 흐르는 하천 양측에 수령 500년 이상을 자랑하는 팽나무와 푸조나무의 노거수 100여 주가 잘 보존된 채 자생하고 있다. 팽나무는 도내의 오래된 부락에는 정자목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으나 명월의 팽나무는 노거수집단으로 단순 군락을 이루고 있어 고대 원식상을 추리하는 자료가 되어 학술적 가치가 높아서 기념물로 지정되고 있다.
- 명월성지 - 명월성은 지역적으로 비양도와 가까운 곳으로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1510년 장림 목사가 목성을 축조하였으나, 선조 25년 목사 이경록이 목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이 곳은 고려원종 12년(1270년) 이문 장군이 삼별초의 근거를 마련, 이듬해 진도에서 이곳으로 옮긴 김통정 장군과 함께 여렇?연합군의 좌군과 치열한 격전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 에는 만호 고덕비 5기와 조선 영조부터 고종 32년까지 131년동안 당시 명월진의 책임자 112인 만호 명단비가 함께 건립되어 있다.
- 배령연대 - 배령연대는 한림읍 금능리에 있으며, 명월진에 소속된 연대였고 돌출하여 민가와 인접되는 곳에 연대가 있다. 연대의 동쪽으로는 비양도, 그리고 서쪽으로는 두모리가 보이는 곳이다. 동쪽으로 마두연대, 서쪽으로 대포연대와 서로 연락을 취했었다.
- 우지연대 - 우지연대는 한림읍 귀덕 2리에 있으며, 명월진에 소속된 연대였다. 1976년 9월 9일에 제주도기념물 제23-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고, 복원은 1976년에 이루어졌다. 귀덕초등학교 입구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1.6㎞를 가면 북쪽으로 약50m 정도 떨어진 곳에 연대가 있다. 해안과는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고, 애월연대와 같이 지형이 높고 돌출된 위치에 있어서 해안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동쪽으로 귀덕연대, 서쪽으로는 죽도연대와 서로 연락을 취했었다.
- 귀덕연대 - 귀덕연대는 한림읍 귀덕 1리에 있으며, 명월진에 소속된 연대였다. 지금은 귀덕초등학교 북쪽 울타리안에 연대터가 남아 있으나 예전에는 이곳이 주변 해안과 비교하여 완만하게 안으로 들어온 속칭 "복덕개"라 부르는 포구와 가까웠다. 해안과는 약90m정도 떨어져 있지만 연대자리와 포구 와는 높이의 차이가 있다. 연대 동쪽으로는 애월연대가 있는 애월리 해안, 서쪽 으로는 우지 연대가 직접 보이고 멀리 수원리 해안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우지연대, 동쪽으로는 애월 연대와 서로 연락을 취했었다
- 제주 비양도 호니토 - 비양도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지역으로 비양도 북쪽 해안의 용암 기종군은 규모와 산출 상태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현상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 협재ㆍ금능 해수욕장 - 조개껍질이 많이 섞여 있는 에메랄드 빛 백사장이깨끗한 수질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눈부시게 전개된 곳으로, 해수욕장 수심이 얕고 경사도가 완만하여 탈의샤워장, 야영장, 식기 세척장, 민박 등이 완비되어 있어 가족 해수욕장으로 적합하다.
- 비양도 - 다양한 어족과 풍부한 어장을 갖춘 청정 해양수역 한가운데 1002년 제주에서 가장 나중에 분출 형성되어 기생 화산섬으로 원형이 잘 보존 되어 있는 지역이다. 섬주위에는 80여종의 어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섬주변 에는 애기 업은 돌을 비롯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지정기념물 제48호인 비양 나무 자생지가 있고 6개의 봉오리로 된 비양봉 및 2개의 분화구가 있다.섬 한바퀴 (동ㆍ서 1.7㎞, 남ㆍ북 1.69㎞, 해안선 길이 3.0㎞)를 일주하는데는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 한림공원 - 한림공원에는 천연기념물 제236호인 용암동굴과 석회동굴이 복합된 세계 유일의 2차원적인 동굴인 협재, 쌍용굴을 포함하여 기이한 지하 경관과 아열대 식물원 및 워싱턴 야자나무 등이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겨주는 곳이다. 이 밖에도 신비로운 기암 괴석과 분재작품이 있는 제주ㆍ석분 재원과 재암수석관, 제주의 옛 모습을 재연한 '재암민속마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 놀이동산과 다수의 휴양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 이시돌목장 - 넓은 초원에 말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자유로이 풀을 뜯고 유유히 노니는 모습을 고수목마라 하여 옛부터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장관을 이룬다. 특히 이시돌목장은 제주의 축산발전을 위한 기술 파급 등 지대한 공헌을 해온 대단위 목장으로 대자연의 신선함을 만끽할 수 있으며 관광지 경유 중 관망할 수 있는 곳이다.
- 귀덕 석잔도 거북등대 - 귀덕 1리 포구 앞 큰여에 설치된 등대로 오고 가는 배의 이정표 역할을 해주고 있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뱅어돔, 감성돔 등 전국적인 낚시 포인트로 저녁 노을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5]
문화재[편집]
문화재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용암동굴지대(濟州道熔岩洞窟地帶:천연기념물 236), 명월대(明月臺:제주기념물 7), 명월팽나무군락(제주기념물 19), 명월성지(明月城址:제주기념물 29), 선인장자생지(제주기념물 35), 비양도의 비양나무자생지(제주기념물 48), 귀덕리(歸德里) 지석묘, 대림리 선돌(大林里立石) 등이 있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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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