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
영천시(永川市)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남동부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포항시·경주시, 서쪽은 대구광역시·경산시, 남쪽은 경산시·청도군, 북쪽은 대구광역시 군위군, 경상북도 청송군, 포항시와 접한다.[1]
개요
영천시는 동경 128°41′∼129°09′, 북위 35°50′∼36°10′에 위치한다. 면적은 920.29㎢이고, 인구는 2023년 7월을 기준하여 100,689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5개 행정동(30개 법정동), 276개 행정리(209개 법정리)가 있다. 시화는 장미, 시조는 비둘기, 시목은 은행나무이다. 시청은 경상북도 영천시 문외동에 있다.
경산과 같이 대구의 위성도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대구권에 속하지만, 대구와 거리가 있어 경산처럼 중소 생활권까지 대구와 겹치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독자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천시 일부 지역은 경주와 포항의 영향을 받는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으로 Star YeongCheon을 내세우고 있다. 보현산 천문대가 행정구역상으로 영천시에 속하기 때문이며, S-sound, T-Technology, A-art, R-river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 인구 대비 절대적인 규모로 봐서도 완산동에 있는 영천공설시장 5일장이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덕분에 5일 장이 열리는 날의 영천 시내 교통은 다소 복잡하다.
대구보다 높은 기온과 적게 오는 비, 절대적으로 높은 일조량으로 인해 영천에서 재배한 포도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즉 영천시의 전국 포도 생산량과 재배량은 모두 1위를 차지한다. 영천시 금호읍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미국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영천시에서는 한약재 대신 포도를 밀어주며 보현산 천문대가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별빛 포도'라는 자체 브랜드도 존재한다. 지리적 표시제 대한민국에도 영천 포도는 53호로 등록되어있다. 비는 적게 와도 수리시설이 발달한 데다 전국 최고 수준의 일조량, 과실이 잘 자랄 수 있는 기후 환경을 활용한 농산물 생산지로서 유명하며, 우수 특산물에 '별빛촌' 이라는 공동 브랜드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상주, 김천과 같이 샤인 머스캣 주산지로 유명하며 기존의 캠벨 얼리, MBA나 거봉의 재배 면적이 감소하고 있는 대신 샤인 머스캣 재배 면적이 증가하고 있다. 수출 물량 역시 샤인 머스캣의 점유율이 증가하고 있다.[2][3]
자연환경
동쪽 경계는 태백산맥의 남쪽 여맥에 해당하며 이 부근에서 산세가 약해져서 운주산(雲住山, 806m)·도덕산(道德山, 703m)·관산(冠山, 394m) 등의 낮은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쪽에는 팔공산(八公山, 1,193m)·태실봉(466m) 등이 있다.
남쪽에는 금박산(金泊山, 432m)·구룡산(九龍山, 675m)·사룡산(四龍山, 685m) 등의 맥으로 이루어져 있고, 북쪽은 보현산(寶賢山, 1,124m)을 주봉으로 해 600∼800m의 급사면에 둘러싸여 있는 화산(華山, 828m)과 수석봉(水石峰, 821m)·모자산(母子山) 등이 동서 방향으로 이어져 있어 지형은 완전한 분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금호읍 경계에 봉화산(烽火山, 277m)·유봉산이 있고, 화산면과 신녕면의 경계에 일명 할미산 또는 새미산이라고 하는 노고산(老姑山, 520m)이 있다. 산맥으로 이루어진 시계에는 갑령(甲嶺, 288m)·노고재(502m)·시치재(195m) 등 유명한 고개들이 있고, 이들 고개는 예로부터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갑령은 신녕면 화남리와 군위군 고로면 화수리의 경계에 있는, 팔공산맥(八公山脈)의 준령을 횡단하는 고개로 6·25 때의 격전지이기도 하며, 고개 밑에는 갑현(甲峴)이라는 취락과 갑현제(甲峴堤)라는 못이 있다.
시치재(195m)는 고경면 청저리와 경주시 안강읍 하곡리와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일명 시티재로 불린다. 한편, 시의 중앙부는 대체로 주위가 수성암으로 된 저산성 구릉지로 되어 있다.
낙동강의 대지류인 금호강(琴湖江)은 영천분지의 물을 집수해 낙동강으로 배수한다. 그런데 이 강의 주요 지류인 자호천(紫湖川)·고촌천(古村川)·신녕천(新寧川)·고현천(古賢川) 등은 분지 중앙인 도심지 부근에서 그 연안에 주남들이라 불리는 영천 시가지 남방에 형성된 궁상(弓狀)의 대충적 평야인 영천 평야와, 시가지 동쪽 금호강이 곡류하는 매상부(袂狀部)에 영천평야보다 규모가 작은 장천평야를 형성하면서 모두 합류한다.
이 중 신녕천은 신녕면 시루봉에서 발원해 부산리에서 동쪽으로 꺾이고 신녕면을 관류하면서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그리고 다시 청통면과 화산면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동남류해 도심지에서 고현천을 합해 도심지 서단에서 금호강으로 흘러든다.
분지의 저지는 대부분 중생대 경상계의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진 낮은 구릉지로서 야산으로 남아있거나 밭농사에 이용되며, 하천 연변의 충적평야는 주요 논 농사 지역으로 개발되었다. 기후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온대몬순 기후권에 속하며, 동하 절기의 기후가 현저히 다르다. 하 절기에는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받아 고온다습하고, 동 절기에는 대륙성기후로 인하여 한랭건조하여 한서의 차가 큰 편이다. 연평균기온 12.25℃이며, 최고기온은 39.4℃(1994.07.20), 최저기온은 -20.5℃(1981.01.17)이다. 1월 평균기온 -0.9℃, 8월 평균기온 27.7℃이며, 연 강수량은 1,021.8㎜이다.[4]
역사
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 지역에서 출토된 많은 청동기 유물과 유적을 통해 청동기시대에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 화산면 연계리와 금호읍 어온리에서 발견된 각종 청동제품은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다. 청동기사회의 발전에 따라 사회가 분화되었던 사실은 양평리, 조곡리, 자양면 용산리의 지석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소국(小國: 邑城國家)들이 등장했는데, 변진 24국의 하나인 호로국(戶路國)과 골벌국(骨伐國)이 이곳에 비정되고 있다. 이들 나라는 236년(조분이사금 7) 신라에 병합되어 군현체제에 들어가 절야화군(切也火郡: 지금의 영천)과 사정화현(史丁火縣)이 되었다.
504년(지증왕 5)에는 이곳에 골화성(骨火城)이 축조되기도 했고, 531년(법흥왕 18)에는 왕명으로 제방 수리시설이 이루어져 536에 청제(菁堤)라는 저수지가 축조되고 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지방 제도를 개편할 때 절야화군과 사정 화현이 각각 임고군(臨皐郡)과 신녕현(新寧縣)으로 개명되어 양주(良州)에 속하였다. 당시 이 지역은 임고군을 중심으로 장진현(長鎭縣: 지금의 경주시 북쪽)·임천현(臨川縣: 지금의 임고면)·도동현(道洞縣: 지금의 영천시)·신녕현(지금의 신녕면)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 지역은 경주에 가까이 있었으므로 왕건과 견훤의 관심이 집중된 지역이 되었다. 925년(경애왕 2) 고울부(高鬱府)의 장군 능문(能文)이 왕건에게 항복하자, 이 지역이 경주에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크게 우대되었다.
927년 견훤이 신라를 공격할 때에도 이 지역은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고려 통일 이후 임고군·임천현·도동현이 통합되어 영주(永州)가 되었는데 고울군이라고도 하였다. 995년(성종 14) 자사(刺史)가 파견되기도 했으나, 1018년(현종 9) 신령현과 함께 동경유수관의 속현이 되었다.
영주는 1172년(명종 2)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며, 다시 지주사(知州事)로 승격되었다. 1202년(신종 5) 경주에서 신라부흥운동이 일어나자 이와 대립해 경주 별초군(別抄軍)과 싸움이 일어났고, 1233년(고종 20)에는 경주인과 연합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335년(충숙왕 복위 4) 영주관내의 이지은소(梨旨銀所)가 현으로 승격했고, 속현이던 신녕현에도 1390년(공양왕 2) 감무가 임명되었다.
조선 초에는 고려에 이어 영주군·신녕현으로 나뉘었다가 1413년(태종 13) 영주군은 영천군으로 개명되었고, 신녕현은 1497년(연산군 3) 현의 향리들이 현감의 악정 때문에 도망가자 현이 한때 해체되기도 하였다.
당시 이 지역의 토질은 비옥·척박이 반반이었다고 하며, 풍속은 평이했고, 주민들은 학문을 좋아했다고 한다. 호구수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영천군이 863호 8,104인, 신녕현이 382호 2,679인, 이지속현(梨旨屬縣)이 88호 410인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정세아(鄭世雅)·조희익(趙希益)·권응수(權應銖)·정대임(鄭大任) 등이 의병을 크게 일으켜 이 지역 일대의 적을 대대적으로 격파해 적이 2경주로 후퇴하도록 했고, 경주성 탈환에도 큰 공을 세웠다.
1895년 영천·신녕이 모두 군이 되어 대구부에 속했고, 1896년 경상북도 영천군·신녕군이 되었는데 각각 2등 군·4등 군으로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시 신녕군이 영천군에 흡수되어 오늘에 이른다. 1934년 화북면·고경면이 만들어졌고, 1937년 영천군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 시기에 근대적 학교가 설립되자 은해사(銀海寺)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해창학교(海昌學校)가 설립되었고, 일제 침입에 대항한 의병운동이 계속 일어났다.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 편성시에 이 지역에 유림들이 크게 호응했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신령 공립보통학교의 교사와 학생, 완전동 기독교신자, 화북면민과 임고면민의 만세시위 운동이 잇따라 일어났다.
8·15광복 이후 지방 제도의 개편은 거의 없었으나, 1950년 북한군의 침입으로 인한 영천지구공방전 및 신녕지구 전투의 승리는 이 전쟁에서 우리측 승리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1973년 7월 1일 금호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81년 7월 1일 영천읍이 시로 승격되어 시·군이 분리되었다. 1986년 4월 1일 화북면 삼창출장소가 화산면 구호동을 편입해 화남면으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1995년 1월 1일 시·군의 통합에 따라 영천시와 영천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영천시가 되었다. 같은 해 8월 21일에는 화북면 오리를 오동리로, 고경면 답수리를 논금리로 각각 개칭하였다.
1998년 10월에는 영천시 조례 제211호에 의해 교동과 대전동의 대전 및 서산을 통합하여 서부동으로 하고, 명산동과 대전동의 오미를 중앙동으로 편입하였으며, 주남동, 봉작동, 영도동을 통합하여 남부동으로 변경하는 행정구역개편이 있었다.
현재 행정구역은 금호읍 및 청통면·신녕면·화산면·화북면·화남면·자양면·임고면·고경면·북안면·대창면 등 10개 면과 동부동·중앙동·서부동·완산동·남부동의 5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
경지 면적의 감소로 경지율이 19%이며, 논의 감소로 논과 밭의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사과·마늘·보리·양파·포도·복숭아·고추·참깨·콩 등이다. 이 밖에 담배와 누에고치의 생산도 많다. 전체 가구 가운데 농업 가구수가 35% 정도를 차지하며, 미곡·맥류·잡곡·두류·서류 등의 식량작물을 생산한다.
축산업도 성하여 구영천시·청통면·고경면 등을 중심으로 한우·젖소·돼지·닭 등을 사육하고 있다. 그밖에 호두·대추·송이버섯·산나물 등과 같은 임산물도 생산된다.
포도 식초, 마늘 식초, 김치, 포도즙, 토종밀가루, 미숫가루, 뽕잎차·누에, 전통한방차, 전통찹쌀유과 등의 가공식품이 있고, 전통 목공예와 전통 신라 토기는 지역 특산물로서 유명하다.
교통이 편리하고 대도시에 인접한 관계로 최근 들어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서비스업과 상업 등 3차산업의 비중이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 농업과 제조업 순이다. 계속해서 대구, 포항, 구미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살려 내륙 공업단지로 변화하고 있다.
섬유와 기계, 석유화학, 식품업 등이 주종을 이루고 광업은 미약한 편이다. 도남·본촌·북안·화산·고경 농공단지와 갑을 공업단지를 비롯해 신녕·도남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교통
중앙선과 대구선 철도가 영천역에서 교차할 뿐만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와 국도 및 지방도 5개 노선이 통과하고, 여기에 시·군도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경상북도 동남부 지역에서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경부고속도로, 새만금 포항고속도로, 국도(4번 국도, 28번 국도, 35번 국도)가 통과하여 대구, 부산, 울산, 창원, 포항, 구미, 거제 등 경상도의 주요 대도시와 공업도시는 물론이고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접근하기 편리한 교통의 요충지이다. 교통의 요충지라고는 하지만 철도와 차량이 통과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 이점이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경부고속도로(영천 JC, 영천 IC), 상주영천고속도로(신녕 IC, 화산 JC, 동영천 IC, 북안 IC, 영천 JC), 새만금 포항고속도로(청통 와촌 IC, 화산 JC, 북영천 IC, 임고 IC)가 위치해 있다.
관광
대구의 근거리에 있는 이 시는 대구를 거점으로 하는 대구관광권에 속하며, 보현산을 비롯해 수석봉·운주산·팔공산·화산·사룡산 등 수림이 울창한 산악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위장병과 고혈압에 특효가 있다는 황수탕(德井藥水), 잉어·붕어가 많은 파계지(巴溪池) 낚시터와 사동저수지, 포항제철의 공업용수와 포항시민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자호천의 계곡을 막아 1980년 완공한 영천댐 등도 있어 자연적 관광자원은 풍부하다.
오랫동안 행정 중심지였기 때문에 많은 문화유적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문화적 관광자원으로는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은해사를 손꼽을 수 있다. 팔공산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보 3점과 60여 점의 문화재와 24동의 건물이 있다.
원래 13개의 부속암자가 있었으나 은해사 서쪽 2㎞ 지점에 비구니 암자로 간결미가 돋보이는 극락전과, 생동감 넘치는 기법으로 표현된 대좌수미단이 있는 백흥암, 김유신장군이 머물며 심신을 단련했으며 장군이 마셨다는 샘물 ‘장군수’가 샘솟고 있는 중암암, 청동보살좌상이 있는 운부암, 산책로가 멋진 기기암(寄基庵)과 거조암·백련암(白蓮庵) 등 8개의 암자만이 현재 남아 있다.
그중 거조암의 영산전은 고려 말기의 대표적 목조건물로 내부에 500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특히 백흥암의 극락전에 있는 백흥암극락전수미단은 현존하는 불단 중 가장 화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풍치절경의 절벽에 신선이 머무르다 갔다는 삼인암과 약수·만년송·신라석탑이 있다.
팔공산이 북쪽 산자락을 드리운 신령면에는 치산(雉山)계곡이 펼쳐지고 있는데, 웅장한 폭포와 울창한 삼림이 6㎞나 이어지는 이 계곡은 높이 20여m의 수도사폭포(修道寺瀑布) 등이 산과 조화되어 오랫동안 팔공산의 숨은 명소로 손꼽혀 왔다.
치산계곡 중턱에는 원효대사와 자장율사가 창건한 수도사가 자리하고 있다. 영천 최북단 화북면 정각리에 천문대로 유명한 보현산이 우뚝 솟아 포항·영천·청송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 밖에 영천의 산 역사나 다름없는 조양각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삼루에 속한다. 1368년(공민왕 17)에 부사 이용이 명원루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8년에 중건하면서 조양각으로 고쳐 불렀다. 조양각은 영천문화의 요람으로, 율곡·노계·포은 등 명현들의 시문이 수십 편 걸려 있고, 앞뜰에는 영천문화원이 있다.
그리고 임고면 양항리에는 임고서원이 있다. 또한, 금호강 북안의 절벽에 서 있는 정몽주의 청계석벽시(淸溪石壁詩) 외에 70여점의 명현의 유운(遺韻)이 보존되어 있는 조양각과 1433년에 건립된 숭렬당이 있다. 한편, 맞배집으로 건조된 중국양식의 영천향교대성전, 정호례(鄭好禮)가 건조한 일(一)자형의 목조와가 등도 유명하다.
이 밖에 마현산(馬峴山)의 마현공원(馬峴公園), 시내의 창구공원(昌邱公園)·완산공원(完山公園)이 있다. 마현공원은 이른봄부터 늦여름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며, 임진왜란 때의 화공전(火攻戰)으로 유명한 전술지였다. 그리고 6·25 때에는 국군이 반격을 감행해 승전한 곳이기도 하다.
교촌동에는 영천지역의 옛 조상들이 사용했던 문화재 700여점이 전시된 영천 민속 박물관이 있다. 농기구·생활용품·장신구 등이 용도별·분야별로 분류되어 전시되어 있고 아담하게 가꾸어 놓은 정원은 옥외전시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
문화행사로는 매년 10월 영천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영천문화예술제가 있다. 이 행사는 영천의 역사와 전통을 재조명하기 위한 전통문화행사로서 읍성 축등 달기·왕평 가요제·불꽃놀이·풍물한마당 등 각종 행사가 마련된다. 영천 민속 축제는 연날리기·윷놀이·제기차기·널뛰기·승경도놀이 등 전통민속놀이가 행해진다. 4월에는 최무선 장군 기념 행사를 갖고, 8월에는 시청광장에서 지역 우수 특산물의 부가가치를 증대시키고 농가소득증대 및 시민화합과 애향심을 고취하기 위한 포도 축제가 열린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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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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