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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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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면 행정구역

한경면(翰京面)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부에 있는 이다. [1]

개요

한경면은 동쪽은 서귀포시 대정읍안덕면, 서쪽은 바다, 남쪽은 대정읍, 북쪽은 한림읍과 각각 접하고 있다. 면적은 79.1㎢이며, 인구는 외국인을 제외하고 2023년 6월을 기준으로 9,476명이다. 소재지는 신창리이다. 원래는 한림면(翰林面)의 일부였으나, 1956년 한림읍으로 승격되면서 서부 일부가 분리되어 한경면이 되었다.

한라산의 북서사면 가장자리에 위치한 관계로 해발고도 200m 이하의 저지대를 이루어 해안 일주 도로변과 중산간지대(中山間地帶)에 취락이 골고루 발달하였다. 고구마·보리·맥주맥·유채 등을 생산하며, 최근 감귤 수확도 많아졌다. 중산간지대에 많은 초지를 가지고 있어 2개의 공동 목장 등 대규모 기업 목장이 있다. 신창리(新昌里)와 본도의 가장 서부에 위치한 고산리(高山里)를 중심으로 중산간지대에 버스가 왕래한다.

교육 기관은 고산초등학교, 신창초·중학교, 저청초·중학교, 고산중학교, 그리고 고산 관광정보고등학교가 있다. 기관은 한경면사무소, 한경파출소, 고산농업협동조합, 한경농업협동조합, 한림수협 한경지점, 한림수협 고산지점, 한경보건지소 등이 있다.

제주시 서쪽 끝에 위치한 면이다. 행정구역 면사무소의 신창리보다 고산리 시가지가 5일 장 등 더 발달해 있다. 여기 속한 섬인 차귀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최서단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농사가 좀 되었었던 곳이기도 하다. 고산리는 제주에서도 바람이 가장 센 곳으로 유명하며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내습할 때 국내 최고기록인 순간최대풍속 60m/s를 찍은 적이 있다. 고산리 343번지에 KBS AM 송신소가 있다.

예전 종이 우편 번호부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던 읍면동이었다. 반대로 가장 먼저 나오던 곳은 지금은 신흥 부촌으로 탈바꿈한 개포동이다.[2][3][4]

자연환경

한라산의 북서사면에 위치하여 멀리 수월봉과 당산봉에 이르며, 차귀도로 이어진다. 지형은 한라산 가장자리 해발고도 200m 이하의 저지대가 거의 완만한 경사지를 이루며, 중산간 지역에 넓은 초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내륙의 중산간 지역에는 마을들이 산재하여 분포하고 있다. 화산 지형의 특색으로는 13개의 오름이 있는데, 해발 100m 이상의 저지리와 청수리 일대에 마중오름(168.6m)·이계오름(167.7m)·송아오름(104m) 등이 있다. 용암 동굴은 6개가 분포하는데, 조수리 일대 저지대에서 3개(굽은 오름 서굴·굽은 오름뒷굴·성둥 이동산굴), 그리고 해안 저지대에서 나머지(성굴·끌왓디동굴·고산리 동굴)가 나타난다. 이 지역은 제주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 지대로 한 때 벼농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역사

1874년(고종 11년) : 귀덕리 서쪽에서 고산리 동쪽을 제주목 구우면으로 편입 1915년 : 도(島)제 실시로 전라남도 제주도 구우면으로 개칭 1935년 03월 15일 전라남도령 제7호로 구우면을 한림면으로 개칭 1946년 08월 01일 도(道) 승격에 따라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면으로 개칭 1950년 : 한림면 신창출장소 설치 1956년 07월 08일 법률 제393호로 한림면이 분리되어 한림읍과 한경면을 설치 1958년 12월 12일 : 고산출장소 설치 1988년 09월 14일 : 북제주군 조례 제1532호로 고산출장소 폐지, 동소에 이동민원실 설치 운영 1999년 03월 30일 : 한경면 이동민원실을 고산1리사무소로 이전 운영 2001년 12월 22일 : 한경면 이동민원실을 고산문화의집으로 이전 운영 2006년 07월 01일에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함에 따라 제주시 한경면이 되었다.

어항

용수항은 한경면 용수리에 위치한 소규모 어항으로, 용수리포구 또는 용수포구로 불리기도 한다. 제주올레 12코스의 종착지이자 13코스의 출발점인 지점이다. 용수항의 옛 이름은 쇠머리 코지 자락에 있는 포구라 하여 ‘우두포’라 했다. 용수항 앞 바다에서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무인도인 차귀도의 푸른 실루엣이 보인다. 포구의 양쪽으로는 마을을 지켜주는 방사탑이 우뚝 서 있는데, 해의 부리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매주제가’라고 불리는 탑이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천주교 신부가 1845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귀국하다 풍랑을 만나 표류한 곳이 바로 용수항이다. 이후로 천주교 제주교구는 이곳을 성지로 선포하고, 2006년 11월 포구 앞에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관을 세웠으며, 2008년 9월에는 기념관 옆으로 기념 성당을 조성하였다. 인근 관광 명소로는 가슴 절절한 이야기가 담긴 절부암, 제주의 무인도인 차귀도,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협재해수욕장 등이 있다.[5]

산업

토지 이용을 보면, 경지 면적이 44.5%, 과수원 9.5%, 목장용지 1.5%, 그리고 임야가 33.4%로 경지율이 높은 편이다. 경지 중에서도 특히, 논 면적이 전체 면적의 1.4%를 차지하여 제주도내에서는 논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산업별 취업자 구성비를 보면, 농업종사자 64%, 서비스업과 수산업이 각각 9%, 유통운수업이 7% 순으로 농업의, 비중이 가장 높다. 주요 소득원은 양파·양배추·마늘·맥주보리와 같은 밭작물로 47%를 차지하며, 감귤과 수산물도 중요한 소득원이다. 중산간 지대의 넓은 초지에는 2개의 공동목장 등 목장이 다수 분포하여 또 다른 소득원이 되고 있다.

교통

주요 도로는 12번 일주도로가 해안 저지대의 판포리, 금등리, 두모리, 신창리 등을 연결하고 있으며, 16번 중산간도로가 중산간의 조수리, 낙천리를 연결해 준다.

관광

  • 수월봉과 자구내 포구 (한경면 고산리 자구내포구 일대) - 수월봉은 해발 77미터 높이의 제주 서부지역의 조망봉으로서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청량제처럼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특히 수월봉의 바다쪽 절벽은 깍아지는듯한 절벽으로 형성되어 동쪽으로 2킬로미터까지 이어진다. 이 해안 절벽을 “엉알”이라고 부르며 벼랑 곳곳에는 맑은 샘물이 솟아흘러서 “녹고물”이라는 약수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산 향토지에 의하면 자구내는 “고산1리와 고산2리에서 흐르는 여러 갈래의 물이 한내(漢川)에서 합류되어 큰 내를 이루어 고산평야(차귀벵듸)를 중심으로 굽이굽이 흘러 자구내 포구로 흐르는 고산의 설촌의 큰 내(川)이다.”라고 한다. 자구내 포구의 볼거리로는,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섬 차귀도와 섬 우측으로는 당산봉, 그 사이로 멀리 보이는 용당지역에서 한가로이 돌아가고 있는 풍력 발전기를 감상할 수 있으며, 좌측으로는 수월봉을 볼 수 있다.
  • 엉알 산책로 (한경면 고산리 수월봉 입구 아래쪽 바닷가) - 고산 자구 내포구에서 해안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쭉 오다 보면 해안도로 마지막 수월봉과 만나는 쪽 부근이다. 절벽을 뜻하는 제주 방언인 ‘엉’과 아래를 뜻하는 ‘알’이 합쳐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절벽 아래의 이 길을 따라 산책이나,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기에 안성 마춤이다.
  • 낙천리 테마 마을 - 낙천리는 숲이 우거져 공기가 맑고 경치가 좋으며 물이 풍부한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유난히 굿(연못)이 많은데, 옛날 가마솥을 만들던 송씨 일가가 낙천리에 정착하면서 가마솥에 필요한 흙을 파내 점점 구덩이가 생겨나 자연스럽게 연못들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아홉굿마을은 아홉 개의 연못을 뜻하기도 하고, “아홉가지의 좋은 일(이 생긴다, nine good)”을 뜻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테마마을 을 소롱낭머들이라고 한다. 낙천리 테마 마을 회관과 인접한 이 숲은 설촌 이전부터 독립된 숲으로 조성되어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아오며, 해방 직전에는 학교 교실을 빼앗긴 학생들이 야외 녹음교실로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4.3사건 당시 일제히 벌목되고, 그 자리에 도장한 수십종의 접목이 숲으로 재조성 되었는데 2004년 “생명의 숲”의 지원을 받아 재정비하여 곶자왈 체험장 등 다양하게 활동되고 있다.
  • 멋물 쌈지공원 (한경면 두모리) - 한경면 두모삼거리 부근에 위치한 두모경로당 앞에서 근사한 연못, 두모리의 최고의 자랑거리며 멋물 쌈지공원을 만날 수 있다. 주변을 지나다 잠시 쉬어가기 적당한 곳이기도 하고 가족끼리 나들이하기 좋은 곳이다.
  • 차가 있는 해안도로와 싱게물 쉼터 (한경면 신창리 해안도로 일대) - 한림읍을 지나 한경면 판포리에 진입하면 멀리 한가로이 돌아가는 바람개비들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서쪽으로 가다가 두모삼거리에서 마을로 진입, 한경면사무소를 150m정도 지나쳐 우회전하여 해안도로에 진입하면 멀리서 보던 바람개비들이 이곳 해안도로위에 있다. 풍차를 제일 처음 만나는 곳 부근에서 싱게물 쉼터를 만날 수 있다. 여름철 가족끼리 나들이하기 좋은 풍경과 시원하게 지하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에 몸을 담그며 피서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쉼터 내부에는 용천수 남탕, 여탕, 정자시설, 조각상(해녀상, 미완성상), 지압 보도 등이 있으며 길 맞은편에는 간단한 운동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한경면에는 40여 개의 용천수가 있고, 신창리 10개 정도가 존재하며 싱게물은 용천수 중에서도 이용도 및 용천수 용출량도 다른 곳에 비하여 꽤 좋은 곳이다. 신갯-물, 싱게-물 이라고도 불리운다.
  • 고씨부인 전설이 있는 절부암 (한경면 용수리 해안도로변) - 절부암은 고씨부인의 절개를 기리고 있는 바위이다. 조선 후기 이 마을의 어부 강사철이 죽세공품(竹細工品)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베어 돌아오다 거센 풍랑을 만나 실종되었다. 그의 아내 고씨는 며칠동안 남편을 찾아 헤매다가 끝내 남편을 찾지 못하자 남편의 뒤를 따르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여 소복을 입고 이곳 나무에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자 홀연히 남편의 시체가 이 바위 밑에 떠올랐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중국 조아의 옛 일과 같다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속칭 ‘엉덕 동산’속의 산책로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절부암을 찾을 수 있다.
  • 아름다운 숲 저지오름 (한경면 저지리 산50-1번지) - 해발고도 239m, 비고 100m, 분화구 둘레 800m, 깊이 62인 화산체로 정상에 깔때기 형태를 띤 원형의 분화구를 갖고 있는 오름이다. 저지오름의 유래는 저지 마을 형성과 동시에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닥모루 또는 새오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저지오름 일대에는 효자 동산, 가메창, 오름허릿당 등이 자리하고 있어 저지 마을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예부터 저지오름은 초가집을 덮을 때 사용했던 새(띠)를 생산하던 곳이었으나 마을 주민들의 힘으로 나무를 심어 오늘의 울창한 숲으로 만들었다. 저지오름에는 소나무, 삼나무, 상산, 팽나무, 육박나무, 자금우 등 70과 220여 종 2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어 지역주민들에게 멋진 자연학습 생태 장이자, 체력단련장을 제공한다. 2005년 6월 생명의 숲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제8회 아름다운 숲 시상에서 대상(생명상)을 수상하였다.
  • 돗곳물 쉼터 (한경면 조수1리) - 조수1리는 중산간 마을로서 일주도로와 중산간 마을을 연결하는 교통 중심지이며, 정동 쪽으로는 한라산 영봉이 아름답게 보이고, 저지악/망오름, 동남쪽에 이계오름, 서쪽에 두강봉, 북쪽에 밝은오름, 대왓동산으로 둘러싸운 전원적 농촌 마을이다. 감귤과 밭농사를 주로하며 예로부터 물이 귀하여 마을 설촌부터 오랜 기간 연못을 파고 습지를 보존하여 물을 만드는데 조상들이 많은 노력을 해온 마을답게 습지와 연못이 잘 보존되고 있다. 돗곳 물은 조수 1리에서 두모로 가는길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작은 갈림길(복호동 가는길) 부근에서 만날 수 있다. 제주 오름 분화구 모형의 습지 연못이 3군데 모여 있으며, 주변에 140여 년된 보호수(팽나무) 2그루와 제주의 희귀종인 건복나무(140년) 1그루가 있다. 마을에서도 생태보존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마을의 보물로 지정하고 있으며, 쉼터로서, 자연학습장으로서의 활용도가 매우 높은 곳이다. 돗곳의 유래로는 옛날 산돼지가 많아서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먹이 찾기를 얻기 위해 숲속을 헤매고 다녔고 숲 속에 살면서 코, 주둥이로 땅을 파고 두더지를 파먹었다. 이러면서 파헤친 곳에 조금씩 물이 고이게 되었고 물이 고임에 따라 숲 사이에 큰 연못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돼지 코와 주둥이로 파서 물이 고이게 되었다고 해서, 이 못을 돗곳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제주전통 옹기터 (한경면 조수2리) - 조수리는 오래전부터 옹기를 굽던 마을이다. 굽은오름 뒤쪽에 물이 있었는데 흙이 붉어서 물도 붉게 비치니까 이 동네를 불그못 한자로는 주지동(朱池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제주도화산 폭발로 인하여 생성된 화산 회토가 지표면을 덮고 있다. 토질은 찰기가 없고 가볍고 푸석지며 철분이 많이 함유 되어 있으며 이러한 흙을 재료로 이용, 유약을 전혀 쓰지 않는게 특징이며,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옹기들이 두껍고 조악 할 수 밖에 없었다. 토기 제작 기술은 기와와 같은 흑회색 연질 토기를 거쳐 보다 단단하고 밝은 옹기로 점차 발달하게 되었다. 서민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옹기는 제주도의 자연 환경에 맞추어 생활 용구도 그에 적응하는 형태를 이루었으며, 한때는 가장 경건한 제사상의 향로에서부터 연적, 벼루 등의 학습 용구나 어부들이 사용하는 그물의 추가 문어 잡이통 등 다양하게 사람들의 생활속에 자리하였다.
  • 가마 오름 (한경면 청수리) - 한경면 청수리에 있는 표고 140m(비고 51m)의 나지막한 오름이다. 이 오름의 주봉인 남쪽 봉우리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뻗은 등성마루에는 언덕 같은 봉우리가 솟아 있고, 동북쪽으로 완만하게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다. 이 오름은 주로 붉은 송이로 이루어져 있다. 오름 모양이 가마솥을 엎어 놓은 모양과 같다고 해서 ‘가메오름’이라 불리고 있는데, ‘가메’는 ‘가마’ 또는 ‘가마솥’의 제주 방언이다. 오름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군단사령부가 주둔했던 일본군 진지땅굴이 있는데 도내 최대 규모라고 한다. 오름 전사면에는 소나무(해송)와 잡목이 어우러져 있고 군데군데 풀밭을 이루고 있다.
  • 향나무 거리 (한경면 한원리) - 신창리 사거리에서 한라산 방면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자그마한 마을 한원리를 만날 수 있다. 한원리 마을 회관 앞, 120년 된 보호수(퐁낭)이 있고 산간방향으로 계속하여 향나무가 즐비해있다. 마을로 가는길 중간 복호동과의 갈림길에 연자방아로 만들어진 이정표가 보인다. 연자방아에는 ←복호동, 한원리→ 라고 쓰여져 있는데 1960년대 사용하지 않아 마을 회관 동네에 땅을 파고 묻었던 것을 한원리 청년회에서 2006년도에 파내어 이곳 마을 입구 이정표를 세웠다고 한다.[6]

문화재

문화재로는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濟州高山里先史遺蹟:사적 412), 차귀도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422), 절부암(節婦岩:제주기념물 9), 용수마을 방사탑(防邪塔) 등이 있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한경면〉, 《위키백과》
  2. 한경면〉, 《네이버 지식백과》
  3. 한경면〉, 《나무위키》
  4. 한경면〉, 《향토문화전자대전》
  5. 용수항〉, 《비짓제주》
  6. 한경면〉, 《제주시청》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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