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랑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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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랑구역(樂浪區域)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서남부에 위치해 있는 구역이다.[1][2]
개요[편집]
락랑구역의 면적은 88.21㎢로서 평양시 면적의 3.41%를 차지한다. 구역 면적 가운데서 농업토지는 64.95%, 수역토지는 18.05%, 산업토지는 8.00%, 주민지구토지는 5.49%, 특수토지는 2.32%, 산림토지는 1.19%를 차지한다. 인구는 282,681(2008)명이다. 평양시 서부에서 서쪽에서 남쪽으로 흐름을 바꾸는 대동강의 남동안(南東岸)에 위치한다.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북동쪽에는 평천구역·선교구역 등의 도심부, 북쪽에는 만경대구역, 서쪽에는 천리마군(평안남도)가 있다. 남쪽은 강남군, 동쪽은 력포구역에 접한다. 지명의 유래는 고대에 이 지역에 자리했던 낙랑국에서 따왔다.
도심에서 가까운 부분에서는 시가지화가 진행되고 있다. 대동강가의 통일대로에는 2003년에 농민 시장을 개편해 만들어진, 북한에서 제일 큰 종합 시장으로 여겨지는 '통일대로시장'이 있다.[3]
자연환경[편집]
락랑구역은 평양시 주변 구역들 가운데서 해발높이가 가장 낮은 지역이다. 구역의 지형은 전반적으로 해발높이 60m 이하이며 그 가운데서도 20m 이하 되는 령역이 구역면적의 60% 이상이나 된다. 구역에서 해발높이가 높은 지구는 남동부의 류소리, 남사리와 북동부의 동산동, 정오 1동, 정오 2동, 정백 1동, 정백 2동이다. 이 지구에는 구역에서 가장 높은 오봉산(59m)과 봉화산(58m), 백학산(51m), 대문산(43m) 등이 있다. 락랑구역은 북부와 서부의 변두리로는 대동강이 흐르고 남부 강남군과의 경계로는 곤양강 하류가 지나가므로 전반적 지세가 서부와 남부로 가면서 낮아지고 있다.
구역의 지형은 지형형성과정과 형태적 특징으로 보아 언덕벌지구와 충적벌지구로 갈라진다. 언덕벌은 류소리북동부로부터 원암동동부까지 약 9㎞의 길이를 가지며 구역면적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 언덕벌은 평양벌의 구성부분으로 된다. 구역에서 언덕벌의 근 80%는 보통경사를 가진 작은 언덕으로 되여 있고 나머지는 경사가 느린 긴 언덕으로 되여 있다. 이 언덕은 력포구역의 긴 언덕들이 락랑구역에로 련속되여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 류형의 언덕은 력포구역과의 경계에 놓인 류소리와 동산동 령역에만 있다. 이 긴 언덕들은 해발높이가 30~20m이며 비탈면의 경사가 10~5° 밖에 안된다.
대체로 이유형의 언덕들은 하부고생대의 탄산염암석들이 풍화-용식된 붉은색잔적점토층으로 덮여 있는데 류소리 일대에서는 두께가 5~6m나 된다. 이 점토층은 벽돌을 비롯한 건재생산원료로 쓰이고 있다. 구역의 언덕벌에서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언덕들은 오랜 침식-삭박과정을 걸쳐 침식에 견디여낸 부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언덕들의 해발높이는 50~30m 정도 밖에 안된다. 자그마한 곬들에 의하여 여러 갈래로 패여서 이루어진 언덕들은 비탈면경사가 25~20°로서 다소 급한 편이다.
구역에서는 강물에 의한 쌓임작용으로 형성된 충적지벌도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벌들은 구역의 서부 대동강 우안과 남부의 곤양강 우안에 분포되여 있으며 제4기 상세 이후에 형성되였다. 이 벌들은 해발높이 10m 이하이며 그 가운데서 대부분은 5m 이하이다. 구역에서 논고장으로 알려지고 있는 룡호리와 금대리 벌은 남북길이가 6㎞ 이상인데 그 해발높이는 7~4m 정도이다. 이 벌의 동부에 있는 룡호강과 곤양강의 하류구간은 지난날 대동강이 흘렀던 물길자리이다.
이밖에 구역의 남부에는 곤양강우안을 따라 송남리로부터 동부의 남사리에로 련결되는 충적벌이 길게 펼쳐져 있다. 이 벌의 길이는 9㎞나 되며 해발높이는 10~5m이다. 충적벌을 흐르는 하천들은 벌바닥의 높이가 낮은 것으로 하여 매우 심하게 굽이흐름을 하고 있다. 이 충적벌에는 지난날 강자리였던 물길과 진펄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대동강에는 현세 하상과정에 의하여 형성된 수많은 충적섬들이 있다. 중단동이 자리잡은 두루섬은 면적이 3.8㎢이며 그 해발높이는 5~6m이다. 자갈과 모래층 우에 모래메흙이 두텁게 깔려 있어 수도시민들을 위한 남새(남한말:채소)생산기지로 유명하다. 섬의 동쪽에는 봉래도, 반월도가 잇닿아 있으며 서쪽에는 작은 물곬을 사이에 두고 곤유섬이 있다. 두루섬 남쪽에는 대동강 왼쪽 물길을 사이에 두고 두단동이 자리잡은 두단섬이 남시방향으로 길게 놓여 있다. 두단섬은 원래 물곬을 사이에 두고 북동쪽 두단섬과 남서쪽 문발도로 갈라져 있었는데 그 사이가 일부 구간에서 맞붙어서 하나의 큰 섬으로 되였다.
그리하여 이 섬은 길이가 6㎞나 되며 면적이 4.0㎢이상, 해발높이는 6~5m이다. 오늘 이 섬은 평양시 주민들을 위한 남새생산과 오리고기생산기지로 튼튼히 꾸려졌다. 구역의 남서부끝에는 벽지도리가 자리잡은 벽지도가 있다. 섬의 남북길이는 3.5㎞이며 면적은 약 3.0㎢, 해발높이는 5~4m이다.
평양시의 서남부에 자리잡고 있는 락랑구역은 전반적 지역이 벌로 되여 있으므로 기후요소의 지역적 차이가 매우 작다. 락랑구역은 또한 대동강 하류에 놓여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하여 강남군과 함께 바다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의 하나로서 내륙지역보다 강수량은 적으나 해비침조건과 온열조건은 매우 좋다. 그리하여 삼석구역 도덕리보다 한해평균강수량은 186㎜ 적으나 한해평균해비침시수는 110시간, 20℃ 이상 적산온도는 75℃나 많다.
원암동에서 한해평균해비침시수는 2,390시간 정도이며 한해평균해비침률은 55%이다. 해비침시수는 봄철에 하루평균 7.6시간, 겨울철에 하루평균 5.6시간이다. 여름철에는 흐린날이 많으므로 해비침률은 낮으나 낮길이가 길기 때문에 하루평균 6.3시간이며 가을철에는 하루평균 6.5시간이다.
한해 평균기온은 9.6℃이며 8월 평균기온은 24.3℃, 1월 평균기온은 -7.6℃로서 평균기온의 한해변화너비는 31.9℃이다. 한해평균최고기온은 15.3℃이며 8월 평균최고기온은 29.0℃, 1월 평균최고기온은 -2.2℃이다. 한해평균최저기온은 4.8℃이며 8월 평균최저기온은 20.5℃, 1월 평균최저기온은 -12.5℃이다. 하루평균기온이 0℃ 이하로 되는 기간은 99일, 하루평균기온이 20℃ 이상 되는 기간은 92일 정도이다. 하루평균기온이 0℃ 이상 되는 기간은 266일이며 적산온도는 4,020℃ 정도이고 10℃ 이상 되는 기간은 190일, 적산온도는 3,640℃ 정도, 20℃ 이상의 적산온도는 2,150℃ 정도이다.
한해 평균강수량은 960㎜ 정도이며 대동강을 따라 상류지역으로 올라가면서 강수량이 약간 많아진다. 철별로 보면 봄철 강수량은 134.4㎜로서 한해강수량의 14%, 여름철 강수량은 595.2㎜로서 한해강수량의 62%, 가을철 강수량은 172.8㎜로서 한해강수량의 18%, 겨울철 강수량은 57.6㎜로서 한해강수량의 6%이다.[4]
역사[편집]
락랑구역은 1959년 9월에 생긴 구역이다. 락랑구역 땅은 오래 전부터 평양과 련관되여 왔다. 고구려 때에 락랑땅은 평양성 남부변방을 이루고 있었으며 리조시기에는 평안도 평양부, 례안부, 대동강방에, 1896년 우리나라를 13개 도로 나눌 때는 평안남도 평양부 대동강면, 석을곳면과 룡연면, 고순화면에 속해 있었다. 1920년대에 락랑구역 땅은 대동군 대동강면, 룡연면, 남곳면(석곳면), 고평면(고순화면)으로 나뉘여져 있었다. 일제 말기에 대동강면은 평양부에 편입되였다.
해방 후에는 락랑구역 령역이 주로 중화군과 평양시 동구역(동구), 남구역(남구)에 속하여 있었으며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 후에는 강남군, 중화군, 동구역에 속하여 있었다. 1959년 9월 락랑구역이 신설되면서 강남군에서 송남리, 보성리, 남사리, 원암로동자구, 중화군에서 류소리, 력포리, 양음리, 류현리, 동구역에서 두단동, 락랑리, 토성리, 소신리, 송가동, 정백동, 장진리, 정오동이 락랑구역에 들어왔다. 이때 락랑구역에는 5개 동 11개 리가 있었다.
1960년 10월에는 력포리 일부, 류현리, 양음리, 소신리, 장진리가 력포구역에 넘어가고 송가동은 동산동으로 그 이름을 고치였으며 외성구역에서 중단리가 넘어왔다. 1965년 1월에는 강남군의 금대리, 벽지도리가 락랑구역으로 넘어왔으며 금대리 일부를 분리하여 룡호리를 신설하였다. 1967년 10월에는 원암동 일부를 분리하여 긴골리를 내오고 1986년 8월에는 정백동을 분리하여 정백1동과 정백2동을 내왔으며 토성동을 없애면서 정백1동과 락랑동에 넘겨주었다.
락랑구역은 1989년 말 현재 9개 동(원암동, 두단동, 중단동, 정백1동, 정백2동, 락랑동, 정오1동, 정오2동, 동산동) 8개 리(송남리, 보성리, 남사리, 룡호리, 금대리, 벽지도리, 류소리, 긴골리)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해방 전 락랑지방은 메마른 땅에서 조, 수수와 같은 잡곡농사만 하던 농촌 지역이였으며 공업이랑 전혀 없었던 고장이다. 오늘 구역에는 8개의 중앙공업공장과 20여 개의 지방공업공장들이 배치되여 있다. 뿐만 아니라 알곡생산을 위주로 하면서 남새(남한말:채소)생산과 축산업을 빨리 발전시킴으로써 락랑구역은 수도의 믿음직한 알곡, 남새와 고기, 알생산공급기지로 전변되였다.
락랑구역의 경제에서 공업은 주도적 자리를 차지한다. 해방 전 공장 하나 없던 락랑구역에 해방 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인 중앙 및 지방 공업공장들이 수많이 창설되고 수도의 중심부로부터 공업기업소들이 이설됨으로써 더 많은 공장들이 배치되였다.
오늘 락랑구역은 시 안에서 다섯 번째로 공장, 기업소들이 많은 구역으로, 전국적 또는 시적으로 큰 의의를 가지는 중앙 및 지방공업 공장들이 많이 배치된 것으로 하여 평양시 경제발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구역의 하나로 되였다. 락랑구역의 공업총생산액은 1960년에 비하여 1986년에 3.2배로 장성하였다. 평양시 공업생산액에서 락랑구역은 3.5%를 차지한다.(1986년) 구역 공업생산액 가운데서 지방공업은 64.3%, 중앙공업은 35.7%를 차지하였다.(1986년) 구역의 지방공업생산액은 평양시 지방공업생산액의 4.25%로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5]
고적[편집]
락랑구역의 고적으로는 원암동절터, 원암동유적 등이 있다. 원암동절터는 고구려시기의 절터이다. 건물터는 대동강 기슭 언덕의 약간 평평하고 전망이 좋은 곳에 있다. 원암동유적은 청동기시대의 집자리유적이다. 대동강에서 약 500m 떨어진 언덕에서 2개의 집자리가 드러났다. 원암동유적은 한국 청동기시대 말기 문화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락랑구역〉, 《위키백과》
- ↑ 〈락랑구역〉, 《나무위키》
-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락랑구역의 지리적 위치와 령역 및 행정구역〉, 《네이버 지식백과》
-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락랑구역의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락랑구역의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락랑구역의 고적과 주요 주민지점〉,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락랑구역〉, 《위키백과》
- 〈락랑구역〉, 《나무위키》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락랑구역의 지리적 위치와 령역 및 행정구역〉, 《네이버 지식백과》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락랑구역의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락랑구역의 고적과 주요 주민지점〉, 《네이버 지식백과》
-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락랑구역의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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