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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1세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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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1세섬 위성사진
페테르1세섬 위치

페테르1세섬(노르웨이어: Peter I Øy) 또는 피터1섬(영어 : Peter I Island)은 남극벨링스하우젠해에 위치해 있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화산섬으로, 남극에 속한 지역으로는 인류가 최초로 발을 딛은 곳이다. 현재 노르웨이가 남극에 있는 또다른 지역인 퀸모드랜드와 함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국제 사회에서는 남극 조약을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1]

개요[편집]

페테르1세섬은 남극 대륙에 얼음으로 덮인 화산섬으로 남극 대륙에서 450km(240해리) 떨어져 있다. 길이는 19km, 너비는 11km, 면적은 156㎢이다. 어느 나라 영토인지 명확하지 않아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다. 높이 1640m인 라스 크리스텐센(Lars Christensen) 봉우리가 제일 높다. 정상부가 빙하로 덮여 있어 사화산인지 활화산인지는 알 수 없다. 섬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유빙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 기간 동안에는 접근할 수 없다. 섬에는 바다새와 물개 몇 마리를 제외하면 척추동물이 거의 없다. 1821년 1월 21일 서남극 연안에서 러시아 해군이자 탐험가였던 파비안 폰 벨링스하우젠(Fabian von Bellingshausen)이 발견하였다. 벨링스하우젠은 자신이 발견한 이 섬을 로마노프 황조의 시조인 표트르 1세를 기리기 위해 표트르 1세섬(러시아어: Остров Петра I)로 명명하였으나 러시아 혁명을 겪으면서 이곳은 거의 잊혀지고 말았다. 첫 상륙은 1929년에야 이루어졌다. 그 후 노르웨이의 탐험대가 이곳을 탐험하고 이 섬을 노르웨이의 영토로 선언하였다.그 다음 상륙은 1948년에 일어났고, 그 섬은 약간의 과학적인 연구와 제한된 관광의 대상이 되어왔다. 1961년에 남극 조약으로 인해 부정되었고 현재는 세계 각국이 자유로이 기지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1987년부터 섬에는 자동화된 기상 관측소가 있었다. 1995년 5월 5일 이후 노르웨이 법은 피터 1세 섬을 포함한 남극에서의 모든 노르웨이 활동이 남극의 국제 환경법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했다. 따라서 피터 1세 섬에서 활동을 계획하는 모든 노르웨이 시민은 노르웨이 극지 연구소에 보고해야 하며, 연구소는 비준수 활동을 거부할 수 있다. 섬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연 보호, 쓰레기 처리, 공해, 수색과 구조 작업을 위한 보험에 관한 법을 따라야 한다. 섬은 남극권에 위치한 섬 중 유일하게 식물이 자라는 곳으로 이끼 등이 주로 서식한다. 또한 일부 해양 조류들이 번식을 하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2]

지리[편집]

페테르1세섬은 남극대륙 엘즈워스 랜드(Ellsworth Land) 해안에서 450km(280mi)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사우스 셰틀랜드 제도에서 가장 가까운 스미스섬의 남서쪽으로 약 1400km(870mi) 떨어져 있다. 면적은 156㎢이다. 섬은 거의 완전히 빙하로 덮여 있으며 표면의 약 95%가 얼음으로 덮여 있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40m(130피트) 높이의 얼음 전선과 수직 절벽이 있다. 길게 뻗은 만년설에는 암석 노두로 보충한다. 상륙은 3개 지점에서만 가능하며, 섬이 팩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은 1년 중 단기간에만 가능하다. 착륙은 북부와 산데프조르드북타(Norvegiabukta)를 나누는 반도인 캅프 잉그리드 크리스텐센(Kapp Ingrid Christensen)에 서쪽에 이루어진다. 곶에는 상륙에 적합한 좁은 해변 띠가 몇 개 있다. 노르베기아북타 해변은 폭이 4m(13ft)에 불과하며 자연 아치인 차르포르텐(Tsarporten)을 통해 들어온다. 서쪽에는 고원이 있고, 북쪽과 남해안에는 빙붕이 있다. 동쪽은 가장 가파르고 바다 위에 평평한 바위 기둥이 두 개 있다.

섬은 아직 활동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방패 화산으로, 0.1만 년에서 0.35만 년 전의 날짜 표본을 바탕으로 홀로세나 역사 중 하나로 분류됐다. 정상인 라스 크리스텐슨 봉우리는 100m(330피트) 넓이의 원형 분화구다. 고도 1,640m의 초특급 봉우리인 이 봉우리의 이름은 라르스 크리스텐센(Lars Christensen)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 화산이 멸종된 것인지 아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윗부분은 빙하로 인해 수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수 세기 전에 분화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3]

역사[편집]

페테르1세섬의 첫 목격은 1821년 10월 21일 파비안 고틀립 폰 벨링스하우젠(Fabian von Bellingshausen)의 탐험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는 러시아 국기를 단 보스토크와 미르니 함정을 지휘했다. 그는 이 섬을 러시아의 차르 피터 1세(Peter the Great)의 이름으로 명명했다. 유빙은 벨링하우젠이 섬에서 25km(16mi) 이상 가까이 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남극권 남쪽에서 발견된 최초의 땅이며, 따라서 발견 당시 가장 남쪽에 보이는 땅이기도 했다. 1910년 1월 장바티스트 샤르코트(Jean-Baptiste Charcot)와 그의 배 푸쿼이파스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는 벨링스하우젠의 발견을 확인했지만, 그들 역시 상륙하지 않아 유빙으로 섬에서 5km(3.1mi) 떨어진 곳에 저지되었다.

1926년과 1927년에 노르웨이의 선원 에이빈드 토우프트(Eyvind Tofte)는 섬을 순회하며 조사하였다. 그러나 그의 상륙도 막혔다. 노르웨이의 고래선 주인인 라스 크리스텐슨(Lars Christensen)은 부분적으로는 연구를 위해, 부분적으로는 노르웨이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남극으로의 여러 탐험에 자금을 지원했다. 후자는 남극의 고래잡이 역에 대한 영국의 과세에서 동기부여를 받았으며, 크리스텐슨은 더 나은 특권을 얻기 위해 노르웨이의 영토에 역을 설립할 수 있기를 바랐고, 그래서 적어도 그 세금은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 섬에 상륙하기 위한 첫 번째 탐험은 닐스 라센(Nils Larsen)과 올라 올스타드(Ola Olstad)가 이끄는 크리스텐슨(Christensen)이 자금을 조달한 제2차 노르베지아 원정대였다. 그들은 1929년 2월 2일에 상륙하여 노르웨이의 땅이라고 주장했다. 라센은 1931년에 다시 착륙을 시도했지만, 유빙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1931년 3월 6일 노르웨이의 왕실 선언으로 이 섬을 노르웨이의 주권 하에 선포했고 1933년 3월 23일 이 섬은 종속 섬으로 선언되었다.

다음 상륙은 1948년 2월 10일 라르센(Larsen)의 배 브라테그(Brategg)에 의해 이루어졌다. 생물학적, 지질학적, 수력학적 조사가 3일 동안 진행되었고 유빙으로 탐험대를 떠나도록 강요했다. 원정대는 오두막을 짓고 1929년부터의 점령문서 사본을 안쪽에 두었다. 1959년 노르웨이가 조약에 서명한 후 1961년 6월 23일 피터 1섬은 남극조약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여러 나라가 과학수사를 위해 섬에 여러 차례 상륙한 것은 물론 관광객을 섬에 성공적으로 상륙시킨 선박도 제한적으로 있었다.

1987년 노르웨이 극지연구소는 5명의 과학자를 보내 11일을 섬에서 보냈다. 섬의 정확한 지도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항공사진과 지형 측정이 주안점이었다. 두 번째로 중요한 분야는 지질, 생물학 및 기타 조사도 실시되었지만 해양 생물학 조사였다. 이 팀은 자동 기상 관측소를 건설하기도 했다. 1987년, 1994년, 2006년에 세 개의 DX-탐사대(DX-pedition)가 이 그 섬으로 보내졌다.[4]

벨링스하우젠해[편집]

벨링스하우젠해(Bellingshausen Sea)는 남극반도의 서쪽 부분을 따라 알렉산더섬과 서스턴섬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바다이다. 이 바다는 1821년에 이곳을 탐험한 러시아의 탐험가인 파비안 고틀리프 폰 벨링스하우젠(Fabian Gottlieb von Bellingshause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남위 71도를 중심으로 서경 75~100도에 걸쳐 있는 남극대륙의 연해로 남극을 최초로 배로 일주한 러시아의 남극탐험대장 F.F.벨링스하우젠을 기념하여 이름을 붙였다. 대륙붕의 폭은 250km이고 그 연변의 깊이는 600m 정도 된다. 남극반도 서부의 알렉산더섬과 그 서쪽 마리버드랜드 연안의 서스턴섬 사이인 남위 71°를 중심으로 서경 75°∼100°에 걸쳐 있다. 연안 대륙부는 남극대륙 연안 가운데에서도 해안과 접하기가 곤란한 해역의 하나이다. 대륙붕은 폭이 250km이고, 그 연변의 깊이는 약 600m이다. 1898년 벨기에의 제를라시가 선박 벨지카호를 타고 남위 71°31′, 서경 85°16′까지 항해, 이 해역에서 얼음에 갇혀 첫겨울을 지내야 했다. 이 배의 이름에서 연유하여 벨지카해라고도 부른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페테르 1세섬〉, 《위키백과》
  2. 페테르1세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Peter I Island", Wikipedia
  4. 피터 1세 섬〉, 《요다위키》
  5. 벨링스하우젠해〉,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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