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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고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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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고리차 시기
포드고리차 휘장
포드고리차 전경

포드고리차(몬테네그로어: Podgorica / Подгорица)는 몬테네그로의 수도이며 몬테네그로의 중심인 제타 평원(Zeta Plain)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바다와 대륙으로 이어지는 여러 주요 도시의 교차로에 있어 몬테네그로의 행정, 정치, 경제, 교통, 교육 및 문화를 대표하는 중심지이다. 1326년 이전에는 리브니차(Ribnica), 1945년부터 1991년까지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이름을 따서 티토그라드(Titograd)라고 불렀다.

개요[편집]

역사[편집]

포드고리차(Podgorica)는 몬테네그로어로 ‘고리차(Gorica) 아래’ 지역을 뜻한다. 고리차는 작은 산의 이름으로, 이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임을 가리켜 이러한 이름이 지어졌다.

11세기 이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웠다. 초기에는 ‘비르지미니움(Birziminium)’이라 불렸고, 로마시대 전후로는 ‘듀클리아(Duklia)’로 불리웠는데, 이는 포드고리차에서 북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로마황제 디오클리티아누스(Diocletian)의 이름을 딴 ‘도클레아(Doclea)’의 폐허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중세에는 리브니차(Rivnica)로 불렸으며 1946년에서 1992년까지는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장군인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의 이름을 따서 티토그라드로 불렸다. 현재 포드고리차란 도시명은 1326년 이후 사용되었다.

지금의 포드고리차가 있는 지역은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일리리아 부족(Illyrian)이 있던 철기시대부터 비교적 인구밀도가 높은 마을을 형성해왔다. 슬라브족이 들어온 기원전 5세기에는 리브니차(Ribnica)로 불리웠고, 이때 세르비아 왕국의 일부로서 처음 언급되었다. 포드고리차란 이름은 1326년 처음 공식문서에 언급되었다. 당시 라구사 공화국(Republic of Ragusa)과 세르비아 간의 무역 통로가 포드고리차로 이어지고 유지되었다. 여러 지형의 교차로일 뿐 아니라 다양한 무역 노선이 지나는 지역이었던 터라 이곳은 역동적인 소통의 중심지였으며, 경제적, 군사 전략적 요충지였다.

1474년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했고, 이때 도시의 방어력을 강화하면서 요새나 성문, 성벽 등 도시의 여러 모습이 바뀌었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종식된 이후 1878년 베를린 회의몬테네그로 공국에 귀속되었다. 4세기 동안의 오스만 제국 통치가 끝나고 몬테네그로의 도시로 새 시작을 하게 되면서 급속도로 발전했다. 당시 수도였던 체티네(Cetinje)를 제치고 몬테네그로 최대 도시로 급부상하였다. 1902년 본격적으로 도로가 건설되었고, 담배가 주요상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1904년에는 훗날 포드고리차 은행으로 발전하게 되는 제트스카(Zetska) 저축은행이 생겨나면서 최초의 금융기관을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8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합병되면서 일개 소도시로 다시 전락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군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몬테네그로는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었으며, 전쟁으로 인해 70여회 이상 폭격을 당하면서 도시 곳곳이 망가졌다. 1941년 4월 처음으로 도시가 폭격을 당했으며, 1944년 5월 5일 추축군을 공격하던 미육군항공대에 의해 폭격 당하면서 400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합병에 대항하여 몬테네그로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났으며, 결국 이탈리아에 의해 진압되었다. 1943년 이탈리아가 물러난 이후에는 1년간 독일군으로부터 지배를 받다가 1944년 도시는 해방되었고, 1946년 몬테네그로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6개 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13일 수도를 체티네에서 이곳으로 옮겼고, 이때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티토 장군을 기념하여 티토그라드(Titograd)로 개칭하였다.

이후 리브니차강(江)과 모라카강 언덕에 새로운 시가지를 건설하여 물자, 인재, 과학, 교육, 교통 등 여러 면에서 발전을 이루었고 몬테네그로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1992년 유고연방 중 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슬로베니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4개 공화국이 독립해 나가고 몬테네그로가 세르비아와 함께 신유고연방을 수립하면서 같은 해 4월 2일 본래의 포드고리차로 개칭하였다. 2006년 5월 국민투표를 통해 몬테네그로는 독립했고, 포드고리차는 독립국가의 공식적인 수도가 되었다.

포드고리차는 몬테네그로인들의 혁명과 시위의 장소이기도 했다. 티토그라드(Titograd) 시절 유고슬라비아의 관료주의를 반대하는 시위가 1989년 1월에 열렸으며, 이 시위는 10,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대규모로 집회였다. 2008년엔 몬테네그로 정부가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이를 크게 반대했던 세르비아를 지지하는 시위대로부터 코소보 독립선언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으며, 2015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앞두고 이를 반대하는 집회가 진행되었다. NATO 가입 또한 친러시아 노선의 세르비아와 친서방 노선을 택한 몬테네그로가 갈등하는 원인이었으며, 친러시아 혹은 친세르비아 성향의 시위대로부터 집회가 열렸다.

지리[편집]

포드고리차는 몬테네그로의 중심인 제타 평원(Zeta Plain)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리브니차강(Rivnica river)과 모라카강(Moraca river)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며, 이는 제타 평원과 옐로파블리치 협곡(Bjelopavlići Valley)이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포드고리차는 습한 아열대 기후를 띤다. 연평균 강수량이 1,659ml로 유럽에서 가장 습한 수도로 손꼽힐 정도이다. 일 년 중 비 오는 날이 120일 가량으로, 강수량이 40ml 미만인 시기는 여름 한 달 정도이다. 여름 최고 기온은 30°C이며 겨울의 최고 기온은 약 10°C 이다. 지중해의 아드리아해안에 가깝게 위치해 있지만 디나르 알프스 산맥의 루미야(Rumija)산이 방어벽 역할을 하고 있어 바다와 분리된 기후를 나타낸다. 매년 평균 온도가 15.6°C 이며, 북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겨울 기온이 몇도 더 내려가기도 한다.

포드고리차는 수역이 풍부한 도시이다. 두 강이 교차하는 곳이며, 스카다르 호수에서는 북쪽으로 15km정도 떨어져 있다. 모라차강과 리브니차강이 도시를 통과해 흐르고 도시 근처에도 제타강, 체브나강, 마레자강이 흐르고 있다. 이 중 모라카강이 도시에서 가장 큰 강으로, 70m의 폭으로 흐르며, 강 일부에 20m 깊이의 협곡을 형성하고 있다. 대부분 산지로 형성된 몬테네그로의 중심부에는 제타 평원이 펼쳐져 있고, 이 제타 평원 북쪽 끝에 포드고리차가 위치해 지형이 평탄하다. 포드고리차 이름에서 나오는 고리차(Gorica) 언덕은 높이 130m로 솟아있다. 그밖에 말로브르도(Malo brdo), 벨레 브르도(Velje brdo), 류보비치(Ljubovic), 다이바프스카 고라(Dajbapska gora) 등의 크고 작은 언덕이 있다.

도시 구조[편집]

포드고리차의 건축양식은 복잡한 역사를 반영하듯 여러 양식이 혼재된 모습을 보인다. 포드고리차의 시가는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는데, 모라차강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뉜다. 북쪽이 신시가지이고, 남쪽이 구시가지이며, 구시가지가 포드고리차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다. 특히 구시가지의 일부분인 스타라 바로쉬(Stara Varos)와 드라치(Drac)가 전형적인 튀르키예식 형태를 띠고 있어 한 때 이 도시가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엔 두 개의 모스크와 튀르키예식 시계탑이 있으며, 시가지의 길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인해 망가져버린 도시가 해방 후 재건되기 시작했는데, 이때 동부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블록형 대규모 주거형태가 만들어졌다. 주요 도로도 이때 만들어졌으며, 도시 전체가 남서쪽으로 확장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발전할 수 있었다.

포드고리차 건축은 1990년대 후반에 주요 발전을 시작했다. 포드고리차는 과거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공간적 특성 갖는 반면, 독립 후 10년간 민주국가로서의 현대적 도시 공간으로 빠르게 재구성하려 했기 때문에 두 모습이 충돌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몬테네그로는 단시간에 더 매력적인 도시 정체성 구축을 위해 대담한 전략을 해왔다. 특히 서구 국가를 모델로 도시 중앙 공간을 변화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쇼핑몰과 서양식 대규모 복합 상점이 많이 지어지는 소위 ‘몰 붐(mall boom)’ 현상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 쇼핑몰 주변으로 새로운 주거지역이 생겼고, 상업, 주거, 엔터테이먼트가 집중되면서, 이곳 모라차강 서쪽으로 도시 중심이 이동하였다.

현대에는 트렌디한 현대적 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주거시설과 비즈니스 건물이 빠른 속도로 지어지고 있으며, 도시 곳곳의 공공장소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아파트 형태의 높은 주거공간과 대형 쇼핑몰이 들어섰으며, 체티네의 성 피터 대로(St. Peter of Cetinje Boulevard)를 중심으로 도시의 모습이 점점 더 현대적으로 갖춰지고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로는 신시가지 북쪽에 위치한 그리스도 부활 교회(Saborni Hram Hristovog Vaskrsenja)와 모라차강의 밀레니엄다리가 있다. 그밖에 신시가지 서쪽의 로마 광장(Rimski trg), 모라차강에 위치한 블라조 요바노비치 다리(Blazo Jovanovic Bridge) 등이 유명하다.

행정[편집]

시 행정은 시장, 시의회 , 여러 사무국 및 행정 기관으로 구성되며, 이들이 함께 시 지방 정부 역할을 gks다. 시 의회는 61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으로 직접 선출ehls다. 과거에는 시장의 임기가 5년으로 직접 선출되었으나 몬테네그로 지방자치단체에 새로운 법이 도입된 이후 시장은 시의회에서 선출되며 임기 동안 지지를 유지해야 gks다. 골루보프치 (Golubovci) 지역구는 포드고리차( Podgorica) 자치체 내 행정 자치권의 일부이기 때문에 별도로의 선거를 실시한다.

경제[편집]

포드고리차는 몬테네그로의 행정과 경제 중심지이다. 대부분의 산업ㆍ금융 기관이 포드고리차에 위치해있다.

포드고리차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경제 체계가 설립되어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주로 무역과 소규모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포드고리차가 몬테네그로의 수도가 되면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시대에 담배 가공업, 섬유, 엔지니어링, 차량과 와인 생산업 등이 자리 잡았다. 사회주의 국가 주도의 빠른 도시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경제가 크게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전쟁과 경제 제재로 인해 산업 기반이 붕괴되고,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하면서 경제력이 크게 감소하였다. 이 시기에 살아남은 알루미늄 제련소를 비롯한 일부 제조업이 현재까지도 몬테네그로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침체된 경제는 1990년대 후반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하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특히 서비스 부문이 집중적으로 증가했으며 국가의 주요 기관들이 생겨났다. 몬테네그로 증권거래소를 비롯한 주요 금융기관과 통신사, 미디어, 아울렛, 몬테네그로 대표 항공사 등 주요 기관들이 들어섰으며, 그에 따른 서비스업이 발달했다. 서비스 산업은 현재에도 몬테네그로의 가장 큰 경제 수단이며, 정부기관에 쓰이는 노동력과 함께 2000년대 경기침체를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교통[편집]

포드고리차는 몬테네그로의 중심으로서 주요 운송수단이 지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몬테네그로의 도로는 여느 유럽 국가들의 도로보다 조금 낡은 것은 사실이나 포드고리차를 통해 국내 곳곳은 물론 이웃 국가로 이동할 수 있게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으며 도시 내 교통을 효율적으로 흐르게 하는 다차선 도로망이 특징이다.

포드고리차에서부터 몬테네그로 북부를 거쳐 세르비아로 연결하는 도로가 있으며, 대부분의 주요 고속도로들이 포드고리차 인근을 지난다. 4.2km에 달하는 소지나(Sozina) 터널은 항구도시인 바르(Bar)까지 소요시간을 30분 미만으로 단축시켰다.

포드고리차의 주요 대중교통은 버스로 11개의 시내버스 노선과 16개의 시외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배차 간격이 그리 좁지 않아서 편리하고 빠른 택시 이용이 늘고 있다. 택시비용은 물가에 비해서는 비싼 편이나 버스와의 서비스 경쟁으로 인해 많이 저렴해졌으며 20개 이상의 택시회사가 운영되고 있다.

도시철도는 크게 보았을 때 X자 형태이며 포드고리차는 이 철도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다. 특히 세르비아베오그라드와 몬테네그로 항구도시 바르(Bar)를 잇는 철도는 포드고리차를 기준으로 갈라진다. 기차역은 광장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터미널과의 거리는 멀다. 기차는 몬테네그로에서 상당히 저렴한 교통수단에 속한다. 포드고리차 공항은 도시 중심부에서 1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공항은 골루보브치(Golubovci)란 마을의 행정구역 내 위치하고 있어 이름도 ‘루보브치 공항’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문화[편집]

포드고리차에는 옛 수도인 체티네를 비롯해 몬테네그로의 역사 깊은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등 국가의 문화를 선도하는 여러 문화 기관이 있다. 그 중 몬테네그로 국립극장(Crnogorsko Narodno Pozorište)이 유명하며, 이곳에선 매년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 행사가 열린다. 그밖에 포드고리차 시립 박물관(Muzej grada Podgorice), 고고학 연구센터(Centar za arheološka istraživanja), 마르카 밀라노바 박물관(Muzej Marka miljanova), 자연사 박물관(Prirodnjački muzej Crne Gore)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페트로비치 성(Dvorak Petrovića)에는 니콜라스 왕의 돔(Perjanički Dom)과 예배당 및 주변 건물들이 1984년 미술관(Centar savremenih umjetnosti)으로 개조되어 15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포드고리차에는 국영방송국인 RTCG 본부가 있으며, 가장 오래된 일간지인 포베다(Pobjeda)를 비롯해 거의 모든 몬테네그로의 일간지가 포드고리차에서 발행된다.

몬테네그로의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로 대부분의 몬테네그로 고등교육기관이 포드고리차에 있다. 대표적으로 몬테네그로 대학(University of Montenegro)이 위치해 있으며 국립 과학ㆍ예술 아카데미(Montenegrin Academy of Sciences and Arts)와 2006년 몬테네그로의 첫 번째 사립대학으로 세워진 지중해 대학(Mediterranean University)이 있다. 이외 30여 개의 초등학교와 10여 개의 중학교가 있으며, 체육관과 국립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지도[편집]

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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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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