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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군(江東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북동부에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강동군의 면적은 516km²이며 인구는 221,539(2008)명이다. 서쪽은 대동강, 남쪽은 황해북도 승호구역, 동쪽과 북쪽은 성천군, 평안남도와 접한다. 강동이라는 지명은 대동강의 동쪽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본래 평안남도 소속이었으나 1983년에 평안남도에서 분리되어 평양직할시로 편입되었다. 현재 기준 1읍 9로동자구 18리로 구성되어 있다. 1999년 12월에 평성시에서 1개리를 편입했고, 2010년대에 또 다시 평성시에서 2개리를 편입했다. 행정구역상으론 평양 소속이지만 평양 중심 시가지와는 거리가 먼 지역으로, 읍내 외에는 완연한 시골인 것을 위성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평양강동간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이 비교적 쉽다.
군의 동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기 산업을 담당하는 제2 경제위원회가 위치해 있다. 김정일의 별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환경[편집]
이 지역의 전반적 지형은 북부와 동부, 남동부가 높고 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구릉과 평야로 되어 있는데, 북서부에는 봉화산(烽火山, 196m), 추봉산(514m)이 솟아 있고 북동부에 태을덕산(太乙imagefont山, 526m), 각흘산(角屹山, 631m)이 솟아 있으며, 남부에 풍어산(楓於山, 766m), 제령산(祭嶺山, 499m)이 솟아 있다. 해발이 200m 아래인 지역은 약 55%, 200~400m 지역은 45% 정도이며 그보다 높은 지역은 극히 적다.
연평균기온은 9.7℃, 1월 평균기온은 -10℃, 8월 평균기온은 23℃, 10℃이상 적산온도는 3,600℃, 연평균일조율은 51%이다. 첫서리는 10월 중순, 마감서리는 4월 하순에 내리며 연평균강수량은 1,100mm 정도이다. 이 지역의 남부에 있는 삼등에서 1967년 8월 26일~28일 사이에 393.0mm의 많은 비가 내렸는데, 이때 1일 최대강수량은 302.9mm(1967년 8월 28일)였다.
하천은 대동강(大同江)과 그 지류인 남강(南江), 수정천(水晶川)을 비롯한 여러 개의 하천들이 유입되어 있는데, 수정천 하류 연안을 따라 강동벌이 전개되어 있다. 지질은 상부원생대의 상원계층, 하부고생대의 황주계층, 상부고생대의 평안계층, 상신세분출암, 남강암군 등으로 되어 있다. 토양의 대부분은 인성분이 많은 갈색산림토양이다.
이 지역은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서 상부고생대의 평안계(사동통)에 있는 무연탄을 비롯하여 연, 아연, 자철광, 석회석 등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특히 강동지방은 북한의 이름 있는 석탄산지 중 하나이다. 산림은 군 전체면적의 76%를 차지하는데, 이 산림면적의 약 36.5%, 산림축적량의 75%가 구빈, 명의, 순창, 하리, 송가 등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산림축적량에서는 침엽수가 약 80%를 차지한다.[3]
역사[편집]
이 지역의 남부에 인접해 있는 흑우리에서 검은모루유적이 발굴된 것은 이 지역에서도 원시시대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강 노동자구에서 고조선 시대의 성터와 돌널무덤이 발견된 것은 이 지방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문흥리 대박산에 있는 단군릉은 우리 민족의 반만년 유구한 역사와 문화전통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유적이다.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이 지역은 4세기 초에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이 지역에서 고구려의 유물들이 발굴된 사실은 이 지역이 고구려 영토였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 후 668년(보장왕 27년)에 신라의 북진정책과 나당연합군의 세력에 의해 이 지역은 신라의 영토로 되었다. 고려국이 건립된 후인 1136년(인종 14년)에 서경(평양)을 6개의 현으로 나눌 때 평양동촌 지역에 있던 잉을사향, 반석촌, 박달곶촌, 마탄촌을 병합하여 현으로 설정되면서 대동강의 동쪽에 있다 하여 강동현이라 하였다. 그 후 강동현이 성주에 소속되면서 송양이라 개칭하였다. 1391년에 평양부 강동현으로 개편되었고, 1413년에 평안도에 이관되었다.
1435년에 평안도 삼등현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가, 1482년에 삼등현에서 분리되어 다시 강동현으로 복귀되었다. 1896년에 전국을 13도로 나누면서 평안남도 강동군으로 개편되어 산하에 현내면(縣內面), 정호면(晶湖面), 영수면(靈峀面), 삼등면(三登面), 만달면(晩達面), 고읍면(古邑面), 구지면(區池面), 마산면(馬山面), 고천면(高泉面), 원당면(元堂面), 마탄면(馬灘面) 등 11개 면을 두고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성천군 문헌면과 현내면을 병합하여 강동면(江東面)을 신설하였다. 1929년에 마산면과 구지면을 병합하여 봉진면(鳳津面)을 신설하고 고읍면을 원탄면과 고천면에, 정호면을 강동면과 삼등면에 분리 편입하여 6개 면을 개편 관할하다가, 1947년에 만달면을 승호면(勝湖面)으로 개칭하고 중화군의 풍동면(楓洞面), 청룡면(靑龍面)과 대동군의 시족면(柴足面)을 이관하여 9개 면을 관할하였다.
1948년에 군 소재지를 강동면 아달리에서 승호면 승호리로 옮기고, 1950년에 다시 승호면에서 강동면 아달리로 옮겼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승호면이 분리되어 승호군으로 승격되었고, 강동면의 아달리 · 칠포리 · 지례리 · 송학리를 병합하여 강동읍(江東邑)을, 삼등면의 송가일리 · 송가이리 · 사탄리 · 제령리를 병합하여 송가리(松街里)를 각각 신설하고 삼등면의 상속리를 흑령노동자구(黑嶺勞動者區)로, 강동면의 문흥리 · 지리 · 문평리 · 봉진면의 문왕리를 병합하여 문흥리(文興里)로, 봉진면의 향목리 · 봉당리 · 건천리 · 변희리 · 운룡리 일부를 병합하여 향목리(香木里)로, 봉진면의 동리 · 북삼리 · 낙암리 · 연리를 병합하여 동리(東里)로, 고천면의 맥전리 · 고성리를 병합하여 맥전리(麥田里)로, 강동면의 용흥리 · 용복리와 와룡리 일부, 고천면의 명리를 병합하여 용흥리(龍興里)로, 강동면의 명의리 · 명례리와 와룡리 일부를 병합하여 명의리(明義里)로, 삼등면의 대리 · 영대리 · 사단리를 병합하여 대리(垈里)로, 삼등면의 문명리 · 봉의리 · 옥정리 · 용연리 · 반룡리를 병합하여 문명리(文明里)로, 삼등면의 송석리 · 명학리 · 고류리 · 생금리를 병합하여 송석리(松石里)로, 성천군 삼흥면의 향단리 · 광탄리를 병합하여 향단리(香壇里)로, 성천군 삼흥면의 난산리 · 창평리를 병합하여 난산리(卵山里)로, 성천군 삼흥면의 구빈리 · 일청리를 병합하여 구빈리(九賓里)로, 강동면의 화강리 · 원효리와 삼등면의 봉오리를 병합하여 화강리(花岡里)로, 삼등면의 태잠리 · 고봉리 · 봉서리를 병합하여 태잠리(太岑里)로, 삼등면의 자양리 · 석문리 · 봉래리를 병합하여 자양리(紫陽里)로, 고천면의 향교리와 봉진면의 동삼일리 · 동삼이리를 병합하여 향교리(鄕校里)로, 강동면의 하리 · 상리 · 효덕리 · 숭의리를 병합하여 하리(下里)로, 봉진면의 하단리 · 용연리 · 신리 · 금곡리 · 중단리와 운룡리 일부를 병합하여 하단리(下端里)로, 봉진면의 한왕리 · 고성리 · 봉호리 · 외단리를 병합하여 한왕리(漢王里)로, 고천면의 도덕리 · 동서리 · 열파리 · 선광리 · 수리를 병합하여 도덕리(道德里)로, 고천면의 광덕리 · 구암리 · 용천리 · 반석리 · 고성리를 병합하여 광덕리(廣德里)로, 원탄면의 삼성리와 고천면의 마학리 · 관학리 · 천답리를 병합하여 삼성리(三成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1구 23리를 관할하였다.
1954년에 한왕리 일부가 광덕리에 흡수되었고, 1956년에 평안남도 회창군 순창리(順昌里)가 편입되었다. 1958년에 승호군 금옥리 일부가 송가리에 편입되었고, 1959년에 광덕리 · 삼성리 · 도덕리가 평양시 삼석구역에 이관되고, 평안남도 승호군의 고비리(高飛里) · 화천리(貨泉里) · 금옥리(金玉里) · 삼청리(三靑里) 등이 군에 편입되어 1읍 1구 25리를 개편 관할하였다.
1960년에 금옥리 · 화천리 · 삼청리를 승호구역에 편입하였고, 1963년에 하리를 하리노동자구로 승격하여 1읍 2구 22리를 관하에 두게 되었다. 1967년에 하단리와 한왕리를 평안남도 평성시에 이관하고 향교리를 봉화리(烽火里)로 개칭하였으며 고비리, 송가리, 대리를 각각 노동자구로 승격하여 1읍 5구 17리로 개편되었다.
1977년에 문명리를 삼등리(三登里)로, 자양리를 문화리(文化里)로 각각 개칭하였다. 1989년에 향단리를 남강노동자구로 승격하여 1읍 6구 15리로 되었으며, 1995년에 하리노동자구를 분리하여 상리노동자구(上里勞動者區)를, 흑령노동자구를 분리하여 속추노동자구(束芻勞動者區)를, 송가노동자구를 분리하여 영남노동자구(嶺南勞動者區)를 각각 신설하였다.
2002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강동읍) 9구(고비노동자구, 남강노동자구, 대리노동자구, 영남노동자구, 상리노동자구, 속추노동자구, 송가노동자구, 하리노동자구, 흑령노동자구) 15리(구빈리, 동리, 난산리, 용흥리, 맥전리, 명의리, 문화리, 문흥리, 봉화리, 삼등리, 송석리, 순창리, 태잠리, 향목리, 화강리)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강동읍이다.[4]
산업[편집]
평양시 강동군의 경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석탄생산이다. 광복 후 석탄공업이 빨리 발전하였다. 현재 강동군은 흑령탄광(黑嶺炭鑛), 강동탄광(江東炭鑛), 덕산탄광(imagefont山炭鑛), 영남탄광(嶺南炭鑛), 대리탄광(垈里炭鑛), 삼등탄광(三登炭鑛) 등 여러 개의 탄광들을 가진 대규모의 석탄산지로 전변되었다. 이와 함께 식료, 일용품, 기계, 방직 및 피복, 건재 등 여러 공업부문들이 새로 발족하였다.
군에는 강동장공장, 강동식료공장, 강동남새과일가공공장, 강동제약공장(江東製藥工場), 강동편직공장(江東編織工場), 강동수지일용품공장(江東樹脂日用品工場), 강동악기공장(江東樂器工場), 강동농기구공장(江東農器具工場) 등이 있으며 여기서는 수백 가지의 공업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강동군은 북한의 중부지대 농업발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군 중 하나이다. 1972년부터 이 지역에서는 지대적 조건에 맞게 중부지대 알곡생산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옥수수밭면적을 대대적으로 늘림으로써 곡물구성의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하리지역에는 군 전체면적의 약 20%에 해당한 100정보의 계단밭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논이 17%, 밭이 68%, 과수밭이 9%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옥수수, 벼, 콩, 채소, 담배 등이 있다. 가축업도 발달되어 있는데, 원근에 유명한 강동닭공장, 강동오리공장이 있다. 이밖에 샘과 못을 이용하여 칠색송어, 초어, 잉어 등 물고기를 많이 양식하고 있다. 밤은 예로부터 이 지방의 명산물로 알려져 있다.[5]
교통[편집]
평덕선(平德線) 철도가 군의 중심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군 영역내에 삼동역, 흑령역, 석흠역, 강동역 등 4개역이 설치되어 군내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도노망은 평양~원산 간 1급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강동~평양, 강동~연산, 강동~평성, 강동~승호리, 강동~성천 간 2급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시내 교통으로는 강동~대성산 간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이밖에 대동강을 이용한 맥전~미림 간 수상통로가 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강동군〉, 《위키백과》
- ↑ 〈강동군〉, 《나무위키》
- ↑ 〈조선향토대백과 평양시 강동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양시 강동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양시 강동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양시 강동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강동군〉, 《위키백과》
- 〈강동군〉, 《나무위키》
- 〈조선향토대백과 평양시 강동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양시 강동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양시 강동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양시 강동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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