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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5일 (수) 10:10 판
류블랴나(슬로베니아어: Ljubljana, 독일어: Laibach, 이탈리아어: Lubiana, 라틴어: Emona)는 슬로베니아의 수도이다. 11개 특별시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알프스 산맥과 지중해의 연결 부분과, 사바 강으로 흘러서 들어가는 류블랴냐 강의 하구에 있다.
해발 298m 지점에 위치해 있고, 동쪽에서 흐르는 류블랴니차강, 사바강, 캄니크 비스트리강(the Kamnik Bistrica Rivers)의 합류점에서 홍수가 빈번하게 발생해왔으며, 남쪽 류블랴나 습지는 그루버 운하(The Gruber Cana) 건설 이후 홍수의 위험이 감소했다.
기계·섬유·화학·제약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슬로베니아의 문화, 사회, 경제, 정치 및 행정 중심도시이다.
개요
- 행정 단위: 슬로베니아 수도
- 면적: 163.8km²
- 인구: 295,504명 (2020년)
- 지역어: 슬로베니아어
- 시장: Zoran Janković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ljubljana.si/
역사
류블랴나 지명의 기원은 불분명하나, 슬라브어의 ‘사랑스러운(Ljublj-)’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5세기에서 6세기 로마인들은 에모나(Emona, 류블랴나의 과거 지명)를 포함한 세 곳에 주둔지를 세워 슬로베니아를 가로지르는 군사 도로를 건설하였다. 당시 에모나(Emona)는 약 6천 명의 주민을 수용했으며, 수많은 전투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 9세기에는 마자르족(the Magyars)의 침략을 받다가, 10세기 프랑크족에 장악되었다. 에모나의 몰락과 이주 정착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2세기 초 사바강 남쪽 영토는 카린시아(the Carinthian)의 공작이 관리하면서,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3세기에는 장인들이 길드를 조직하였고, 튜턴 기사단(The Teutonic Knights), 프란체스코 수도회(the Franciscans), 프란체스코 수녀원(the Conventual Franciscans)이 마을에 정착하였다. 1256년 카르니올라(Carniola)의 공작이 된 카린시아 공작(the Carinthian duke Ulrich III of Spanheim)이 수도를 캄니크(Kamnik)에서 류블랴나로 이전하였다. 1270년 보헤미아 왕국에 정복되었다가, 1278년 오스트리아ㆍ헝가리 제국에 합병되면서 라이바흐(Laibach)로 개명되었으며, 1335년부터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받았다.
1436년, 슬로베니아 가문의 첼레(Celje)가 공작으로 등극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첼레 가문은 1456년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20세기 초까지 슬로베니아의 중심인 류블랴나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461년에는 도시 내에 로마 카톨릭 교구(Roman Rite Catholic Diocese of Ljubljana)가 설립되었다. 16세기 류블랴나 인구는 약 5,000명으로 그 중 70%가 슬로베니아어를, 30%가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였다. 같은 시기 최초의 중등학교, 공립 도서관, 인쇄소가 설립되면서, 국가 내 중요한 교육 센터 역할을 담당하였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와 함께 류블랴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슬로베니아의 비공식 수도로 되었다.
1941년 4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독일 이탈리아와 주축국의 전투가 이 도시에 영향을 미쳤고, 이탈리아는 슬로베니아를 침공하여 류블랴나는 이탈리아군에 의해 점령되어 류블랴나 주로 바뀌었고, 1942년부터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는 슬로베니아인에 대한 대량학살과 학살을 시작했다. 도시는 지하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고 1942년 2월 23일 이탈리아는 슬로베니아 저항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30km 길이의 철조망으로 도시를 완전히 포위했다. 1943년 9월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 나치 독일이 이탈리아인을 대신해 도시를 점령했다. 이 도시는 1945년 5월 슬로베니아 게릴라들이 도시를 해방할 때까지 독일이 통치하였다.
1955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요시프_브로즈_티토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국민들이 보여준 영웅주의로 인해 류블랴나의 '영웅 도시' 칭호를 수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류블랴나는 유고슬라비아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1991년, 슬로베니아는 독립을 쟁취하여 류블랴나를 수도로 삼았다.
지리
알프스산맥과 지중해의 연결 부분과, 사바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류블랴니차강(Ljubljanica R.)의 하구에 위치한다. 면적은 163㎢로 해발 평균 295m이며, 북쪽의 세인트마리아(Saint Maria)의 봉우리가 676m로 가장 높다.
건기가 거의 없는 온대기후로 대륙 동안과 서안 사이에 기온 차가 뚜렷하여, 여름이 무더운 온난습윤기후(Cfa)와 다소 선선한 서안 해양성기후(Cfb)가 공존하다. 연평균 강우량은 약 1,400mm로 유럽 내 가장 습한 국가 중 하나이며, 안개가 많이 낀다. 최저 기온은 0°C, 최고 기온은 30°C이다.
류블랴나는 2016년 유로피언 그린 캐피탈(European Green Capital)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깨끗한 환경을 자랑한다. 유로피언 그린 캐피탈 어워드는 2008년부터 유럽위원회에 의해 매년 1개의 유럽 도시가 녹색 수도로서 선정되는 상이다. 도시 내 굳이 생수를 사 마실 필요 없이 도시 곳곳에 마련된 음용 분수대에서 언제든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시에서 운영하는 전기 자동차 ‘카발리에(Cavalier)’를 애용하여 도시 공해가 적다. 시스카 지구(Šiška District)에 있는 코세즈 연못(Koseze Pond)은 수많은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보호·관리받고 있다.
도시 구조
류블랴나는 류블랴니차강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류블랴니차강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구시가지에는 류블랴나성(Ljubljana Castle)을 둘러싼 중세 건물들이 도시의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 준다. 12세기에는 카르니올라 공작(Carniola)인마그라브(Margraves)의 거주지로 사용되고, 15세기에서 16세기에는 튀르키예의 침략을 막는 요새로, 17세기에서 18세기에는 군사 병원 및 무기 저장고로 활용되었다. 현재는 슬로베니아 역사 전시관, 웨딩홀, 전망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시가지에는 류블랴나의 중심인 프레셰렌 광장(Prešeren Square)이 자리하고 있다. 프레셰렌 광장은 슬로베니아 민족 낭만주의의 시인이자 국민적 영웅인 프란체 프레셰렌의 이름이 붙여진 장소로, 그의 시 〈축배(Zdravljica)〉는 1992년 슬로베니아 독립 당시 국가가 되었으며, 그의 기일인 2월8일은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프레셰렌 광장 옆으로는 부처스 브릿지(Mesarski Most, Butcher’s Bridge)와 트리플 브릿지((Tromostovje, Triple Bridge)가 펼쳐진다. 부처스 브릿지는 2010년 개통한 현대식 다리로, 과거 류블랴나 중앙시장(Central Market)의 정육점(Butcher)들이 모여 있던 장소였다. 트리플 브릿지는 세 갈래로 나뉜 다리로 1280년 목조로 건설되었다가, 화재 이후 1842년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반니 피코(Giovanni Picco)에 의해 석조 다리의 원형을 갖추었다. 1931~1932년 슬로베니아 대표 건축가인 요제 플레츠니크(Joze Plecnik)가 보행자 전용 다리를 양쪽에 추가하여 현재와 같이 세 갈래 형태를 갖추었다.
행정 구역
류블랴나는 자체 행정부를 둔 17개의 구로 형성되었다.
- 베지그라드(Bežigrad)
- 쩬테르(Center)
- 츠르누체(Črnuče)
- 드라빌리에(Dravlje)
- 고로베(Golovec)
- 야르쉐(Jarše)
- 모스테(Moste)
- 폴리에(Polje)
- 포사비에(Posavje)
- 로쥬닉(Rožnik)
- 루드닉(Rudnik)
- 소스트로(Sostro)
- 슈트비드(Šentvid)
- 시스카(Šiška)
- 슈마르나 고라(Šmarna gora)
- 트르노보(Trnovo)
- 비츠(Vič)
경제
1980년대 이전에는 산림업, 섬유산업, 금속산업이, 80년대 이후에는 자동차, 지계, 전자, 제약, 화학 등의 제조업이 발달하였으며, 슬로베니아의 경제 중심지로서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생산하고 있다. 류블랴나 증권거래소(The Ljubljana Stock Exchange: Ljubljanska borza)는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증권거래소로 슬로베니아 석유회사 ‘Petrol d.d’, 통신사 ‘Telekom Slovenije’ 등 크고 작은 국내 기업들을 상장하고 있다. 2008년도에는 비엔나 증권거래소에 인수되었다가, 2015년도 자그레브 증권거래소에 인수되었다.
문화
류블랴나 최초의 소학교는 13세기 게르만 기사수도회(Teutonic Knights)와 글라라 수녀회(Poor Clares)에 의해 세워졌다. 1775년 오스트리아 황제 마리아 테레사에 의해 초등 의무 교육이 시작되었으며, 1868년이 되어서야 종교와 분리된 일반 공립학교가 설립되었다. 2020년 현재 류블랴나에는 50여 개의 초등학교, 13개의 중등학교가 있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자랑하는 류블랴나 대학교는1991년 설립되어 법학, 행정학, 응용과학을 포함하는 23개의 학부와 3개의 예술 아카데미로 구성되어 있다. 그 밖에 요제프 스테판 연구소(Jožef Stefan Institut), 화학 연구소 및 국립 생물학 연구소 등의 교육기관이 있다.
1991년 개관한 국립박물관(National Gallery)을 포함하여 건축, 철도, 스포츠, 양조장 등 총 14개의 박물관과 56개의 미술관이 있다. 그중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는 가장 영향력 있는 슬로베니아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메텔코바 박물관(Metelkova Museum)은 대안 문화시설로서 현대미술관, 도서관, 기록 보관소뿐 아니라 공연장 및 클럽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 밖에 슬로베니아 국립극장(Slovenian National Theatre), 국립 오페라 및 발레 극장(Slovene National Opera and Ballet Theatre), 피지컬 극장(Betontanc), 스포츠 챔피언십 극장(theatre sports championship Impro League), 즉흥극장(IGLU Theatre), 인형극장(the Ljubljana Puppet Theatre)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시설이 있다. 시스카 문화단지(Šiška Cultural Quarter)의 키노 시스카 센터(Kino Šiška Centre for Urban Culture)에서는 매주 다양한 음악 밴드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도심에서는 국제 영화제, 예술제 등을 포함하여 매년 10,000여 개가 넘는 문화행사 열린다. 1953년부터 열린 류블랴나 축제(The Ljubljana Festival)는 그중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 각국의 예술단체들이 참여해오고 있다. 류블랴나는 이러한 다양한 문화행사로 인해 매년 약 8만 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도시를 대표하는 프로 축구 구단으로 ‘NK 올림피야 류블랴나’가 있으며, 관련 시설로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큰 축구 경기장을 갖춘 스토지체 스타디움(Stožice Stadium)과 류블랴나 스포츠 파크(Ljubljana Sports Park), 일리리야(Ilirija Sports Park)등이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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