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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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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

시골길도시에서 떨어져 한적한 느낌을 주는 시골에 나 있는 길을 말한다.

시골길 안전수칙

시골길은 도심의 여러 개 차선이 있는 것과 달리 1차선으로 되어 있는 곳이 많다. 간혹,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과 마주하게 되거나 앞에 속도가 느린 농기계를 하염없이 따라가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편에서 차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차량 뒤의 상황을 보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후진하여 서로가 양보할 수 있는 미덕이 필요하다. 또한, 차량 앞에 농기계를 보았았을 때, 우선 서행하여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경적을 울려서 농기계 운전자에게 자동차가 뒤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시골길은 포장된 아스팔트 길과 달리 움푹 패고, 돌 등이 널려있어서 자동차가 심하게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비포장도로가 많은 시골에서는 속도를 내면 자동차의 외부뿐만 아니라 하부에 충격이 가해져 고장이 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서행하면서 움푹 팬 곳과 돌이 많은 곳을 피해야 한다.

도심에서는 인도차도의 구분이 명확하지만, 시골길에서는 구분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더군다나 가로등이 없는 시골길에서는 야간 운전 시 운전자의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보행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여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야간 운전을 최대한 자제하고, 만약 운전할 상황이 생기면 서행하며 주변을 살펴야 한다.[1]

걷고 싶은 여름 시골길

때때로 차를 버리고, 걷고 싶은 길이 있다. 오로지 발바닥으로 흙바닥과 교감하며, 길의 질감을 느끼고 싶은 길이 있다. 인류 문명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가 길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것은 속도물류 기능이 더해진 도로가 되면서 자연과 자원을 파괴하는 통로가 되고 말았다. 기능적으로 도로는 다른 것이다. 길이 태생적이고 자연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도로는 인위적이고 문명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길은 애당초 보행을 목적으로 한것이지만, 도로는 자동차나 기차와 같은 교통수단을 위한 것이다. 길에는 자연의 모든 흔적과 무수한 전설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지만, 도로에는 시공일자와 교통사고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어쩐지 길에서는 걸어야 할 것 같고, 도로에서는 달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난다.

전통적인 우리의 길이 맨 처음 파괴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가 침략과 수탈로에 다름아닌 철길과 교통로를 건설하면서부터이다. 물자수송과 침략을 위해서는 되도록 넓고 곧게 도로를 건설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천년이나 이어져 온 우리의 길은 뭉청뭉청 잘려나가거나 일직선으로 뻗은 신작로가 되고 말았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시작된 경제개발시대에 이르러 또 한번 우리의 옛길은 대대적인 수난을 당해야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수난의 길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겨우 남아 있는 시골길은 눈물겹다. 간신히 흘러가는 시골길은 안쓰럽다.

마장터 가는 길

인제 마장터 가는 길: 숨겨진 마을, 은밀한 산중길

마장터 가는 길은 바퀴가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잡아당기는 길. 길은 미시령 '창바우'라는 곳에서 제법 수량 많은 계곡을 건너야 시작된다. 산 사람들은 이 길을 샛령길이라 부른다. 옛날 인제나 원통의 지게꾼들은 감자나 잡곡을 지고 이 샛령길을 넘었고, 고성이나 속초의 마부들은 소금을 싣고 반대쪽을 넘어와 마장터에 이르렀다. 그 옛날 마장터는 난장으로 물물교환을 하던 산중장터였던 셈이다. 마장터라는 이름도 바로 이 곳에 마방과 장터가 있었다는데서 비롯하였다.

곰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무섭도록 적막한 숲길. 신비가 드리운 계곡의 그늘. 내 옆에는 낮게 깔린적막과 적막을 적시는 계곡과 하늘에 잠긴 나무들, 숨찬 언덕과 평화, 거친 숨소리뿐이다. 내내 계곡을 따라가던 길은 작은 샛령에 이르러 비탈진 고개를 넘는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드디어 마장터에 이르게 된다. 미시령 '창바우'에서 1시간 남짓 걸어서 당도한 마장터. 설악산 북쪽 한복판에 숨겨진 마을. 분명 이 곳의 풍경은 70년대의 낡은 흑백사진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마장터에는 두 채의 샛집이 있고, 봄이면 샛집 주변에는 돌배꽃과 산복사꽃이 그림처럼 피어난다. 워낙에 깊은 산중인지라 마장터에는 아직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문암골 가는 길
방에서는 아직도 등잔불을 켜고, 아궁이에서 꺼낸 불씨를 화덕에 담아 거기에 라면을 끓이고 밥을 한다. 분명 이 문명화된 세상에 마장터는 비문명의 방식으로 엄연히 존재한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지층연대 위에 마장터는 존재한다.

살둔 지나 문암골 가는 길: 숲속의 산중 20리 길

문암산맹현봉 사이로 우마차 한 대가 넉넉히 다닐 정도의 덜컹이는 비포장길이 숲으로 나 있다. 살둔에서 이십여 리 길.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적막하고, 변함없이 덜컹거리는 길. 저 산과 들, 숲속의 나무와 풀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젊고 싱싱한데, 언젠가 그곳을 지나간 나그네만 이렇게 나이를 먹었다. 이십여 리 먼길이지만, 이 길은 걸으면서 찬찬히 길의 탄력을 느껴야 제격인 길이다.

물소리 새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강산. 시오리쯤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아담한 시멘트 다리를 두고 길은 세 갈래로 흩어진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가면 문암골이다. 행정구역상 홍천군 내면 율전리 문암동. 마을에는 채 열 가구도 살지 않지만, 마을 중간에는 교회까지 있다. 100여 년의 역사가 깃든 문암교회는 오랜 풍우에 낡은 만큼 주변의 풍경과 행복하게 어울려 있다. 요즘의 교회건물처럼 뾰족한 첨탑이 하늘을 찌르지도 않고, 그 건물이 커서 위압감을 주지도 않는다. 아담하고 소박하게 자연으로 들어가 있다. 이 곳의 종교성은 교회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둘러싼 산과 들에 있는 듯하다. 산과 밭, 나무와 꽃이 교리이고 성자인 것이다. 문암골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골짝이다. 마을에는 옛날 두메마을에 흔했던 귀틀집도 몇 채 만날 수 있다.

제주 중산간 삼나무 목장길: 한국에도 이런 길이!

제주 중산간 삼나무 목장길

산은 험하고 바다는 사납다. 옛 사람들이 제주를 두고 표현한 말이다. 이는 아마도 화산섬인 제주가 지형적으로 높은 한라산을 품고 있는 데다 오름이 많고, 언제나 바람이 심해 고요한 바다를 만나기 어려운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말일 터이다. 제주의 중산간은 대부분 목장지대라 할 수 있다. 지도에 표기된 목장만도 10여 개가 넘고 표기되지 않은 목장까지 합치면 20여 개가 넘는 목장이 중산간에 포진해 있다. 이들 목장은 거개가 말목장인데, 이들 말목장의 풍경은 제주 아니고는 만날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기도 하다.

특히 목장이 많이 몰려 있는 1112번 도로와 1118번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그리고 좀 더 운치있는 목장의 풍경을 감상하는 방법은 주도로를 벗어나 목장의 경계를 따라 들어선 삼나무길을 따라 천천히 달리거나 트레킹을 즐기는 일이다. 제동목장이나 건영목장 인근에는 정말 영화에나 나올법한 비밀스런 삼나무길이 숨어 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길의 들머리에서 길의 끝머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삼나무길이 펼쳐진 곳도 있다. 한국에도 이런 길이 있나, 하고 눈을 의심하게 되는 길이 이 곳이다.

천연하고 은밀한 40리 산중 길: 왕피천 왕피리 가는 길

왕피천 왕피리 가는길

왕피천을 끼고 있는 왕피리울진에서 가장 궁벽한 곳으로 통한다. 10년 전만 해도 서면 삼근리에서 왕피리로 넘어가는 박달재는 포장이 안된 원시림 속의 비포장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까지 시멘트 포장이 된 산복도로가 이어져 있다. 옛날에는 왕피리가 워낙에 오지 중의 오지여서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는 바람에 결국 빈 마을이 되고 말았다. 이 곳에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생태농업을 실천하는 생활공동체 한농복구회 사람들이 이 곳으로 집단 이주를 시작하면서 왕피리는 이제 600가구가 넘게 사는 대규모 마을로 변모했다.

왕피리는 접근이 어려울지언정 골짜기 안은 제법 너른 터를 이루고 있어 옛날에도 한천, 임광터, 동수골, 속사, 시목, 뱀밭, 햇내, 시리들 등 10여 곳이 넘는 자연마을이 있었다. 본래 왕피리라는 이름은 왕이 피난을 왔던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말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곳 왕피리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
담양 봉서리 대숲길
왕피리 임광터가 바로 임금이 머물던 곳이고, 박달재를 품은 통고산도 공민왕이 통곡을 하며 넘었다고 생겨난 이름이다. 마을길은 왕피천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마을에서 매화리로 넘어가는 40리 비포장길은 지금도 왕피리의 비상로 노릇을 하고 있는데, 이 길은 산비탈의 금강송(황장목) 군락지가 은밀하게 펼쳐진 천연한 길로 남아 있다.

은은하고 향긋한 대숲 산책로: 담양 봉서리 대숲길

담양하고도 금성면 봉서리 대숲은 최근에 CF와 영화, 드라마의 단골무대가 되어온 곳이다. 30여 년전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이 곳의 대숲은 어언 3만여 평에 2천여 그루의 대나무로 뒤덮였다. 봉서리 대숲에 들어서면 영화 <와호장룡>에서나 본 듯한 울창한 대밭 풍경이 펼쳐진다. 수만 평 산자락을 빌려 들어선 수천 그루의 대나무. 바람에 실려오는 은은한 대나무향을 따라 숲길을 거닐다보면 먹먹한 가슴이 풀리고, 마음이 다 향긋해진다. 이른 아침의 대숲은 사람이 찾지 않아 더욱 호젓하다.

대전면에 자리한 삼인산 대숲도 담양에서는 꽤나 알려진 대숲이다. 드라마 <다모>에서 남녀 주인공이 칼을 겨누고 대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아름다운 결투'을 펼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봉서리 대숲이 산자락을 따라 비탈지고 굴곡지게 조성돼 있다면, 삼인산 대숲은 대체로 평지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오르막이 없는 이 곳의 대숲 산책로에서 느긋하게 죽림욕을 즐기곤 한다. 대나무는 공기 정화능력이 뛰어난 까닭에 대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폐부를 정화하고, 누적된 심신의 피로를 씻는 효과가 있다.[2]

동영상

각주

  1. 한국교통안전공단, 〈시골길 안전수칙 알아두세요!〉, 《네이버 블로그》, 2014-08-26
  2. dall-lee, 〈:: 걷고싶은 숨겨진 여름 시골길 5곳〉, 《티스토리》, 2010-06-10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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