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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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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프랑스어: Bruxelles, 네덜란드어: Brussel, 영어: Brussels, 문화어: 브류쎌)은 벨기에수도이다. 벨기에의 한복판에 위치한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며 유럽연합(EU) 본부가 위치해 사실상 유럽연합의 수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양한 국제기구의 설립으로 국제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1][2]

개요[편집]

브뤼셀은 스헬데강의 지류 센강이 남에서 북으로 시가를 흐른다. 일반적으로 브뤼셀은 브뤼셀 수도 지역보다 더 넓은 범위인 브뤼셀 도시권을 의미한다. 브뤼셀 수도 지역은 하위 행정구역으로 브뤼셀 수도 행정구를 두고 있지만 경계와 인구는 브뤼셀 수도 지역과 동일하다. 공식 이름은 브뤼셀 수도권 지역(프랑스어: Région de Bruxelles-Capitale, 네덜란드어: Brussels Hoofdstedelijk Gewest)으로 법적 수도인 브뤼셀시를 포함한 19개 지방 자치체로 구성되어 있다. 브뤼셀 도시 인구는 약 120만 명이고 수도권 지역의 인구는 약 250만 명이다. 브뤼셀이라는 지명의 어원은 '늪지대의 정착'이라는 의미의 브로셀라(Brosella)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문헌에서 '브로셀라'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695년으로, 프랑크족(Frank)이 현재의 브뤼셀 센강가에 거주하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경에 이미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평을 받은 브뤼셀의 역사는 길다. 브뤼셀은 벨기에의 플라망어(네덜란드) 사용지역에 속해 있으나, 사실은 2개 언어 지역의 특색이 농후하여 거리 이름은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로 표시되며 어디를 가나 프랑스어가 통한다. 유명한 레이스, 융단을 비롯하여 모직물, 면직물, 염색, 가구, 종이, 인쇄, 출판 등 각종 산업이 발달한 남부의 공업구에서는 브뤼셀의 고유한 방언이 사용된다. 제1·2차 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나, 1958년 원자력의 이용을 주제로 한 전후 최초의 국제박람회가 개최되었다. 해마다 많은 국제회의가 열리며, 유럽연합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도 이곳에 있어 유럽의 수도 구실을 하고 있다. 세 가지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의 수도인 브뤼셀에서는 공식 언어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인정되지만 실질적으로는 85~90%의 시민이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브뤼셀의 건축물들은 고딕, 바로크, 루이 14세 스타일 등 다양한 양식을 가지고 있다. 다만, 17세기에 도시가 화재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오늘날 중세 시대의 모습은 많이 볼 수 없다. 하지만 일부 건축물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까지 남아있는 대부분의 중세 건축물들은 시내 중심부 생 게리(Saint-Géry), 세인트 캐서린(Sainte-Catherine) 그리고 그랑플라스 주변에 있다. 그랑플라스의 경우 브뤼셀 관광의 중심지로 13세기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발달했다. 그랑팔라스 주변에 위치한 브뤼셀 시청사(Flamboyant Town Hall), 브레드하우스(the neo-Gothic Breadhouse), 길드홀(Guildhalls), 오줌싸개동상(Manneken Pis) 등은 도시의 상징이자 관광명소로 1998년 유네스코는 이를 한데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3]

지리 및 기후[편집]

브뤼셀은 벨기에의 북중부에 위치하고 있다. 브뤼셀 수도지역 전체 면적은 161.38km²이며 브뤼셀시 만의 면적은 32.61km²다. 벨기에 해안에서 약 110km, 벨기에 남쪽 끝에서 약 180km 떨어져있다. 안트베르펜(Antwerp)에서 남쪽으로 45km, 샤를루아(Charleroi)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져있다. 평균 고도는 해발 57m다. 센강 외에도 말베이크(Maalbeek)와 월루에(Woluwe)와 같은 지류가 수도지역에 있다.[4]

브뤼셀은 대서양의 영향으로 해양성기후(Cfb)가 나타난다. 여름 평균기온은 18.5℃, 겨울 평균기온은 3.5℃다. 강수량은 연간 약 820㎜로 1월부터 12월까지 고른 편이다. 사계절이 나타나는 브뤼셀에서 봄은 날씨가 변덕스러운 편으로 비가 예보 없이 내릴 때가 많다. 4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비교적 강수량이 적고 일조시간이 길기 때문에 여행하기 좋은 기간에 속한다. 겨울은 날씨가 춥고 눈이 자주 내리는 편이며 일조시간도 짧다.

역사[편집]

고대[편집]

브뤼셀에 인류가 정착한 시기는 석기시대로 올라간다. 거석, 고인돌, 입석 등 인류문명의 흔적이 있다. 브뤼셀과 그 인근은 로마 점령지였다. 서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이 지역은 프랑크 왕국의 통치를 받는다.

현재의 브뤼셀은 580년경 센강의 생제리섬(Saint Géry Island)에 성 가우제리코(Saint Gaugericus, 550~619) 교회를 세우고 이주하면서 시작됐다. 979년 프랑스 남부 로렌의 샤를(Charles, 953–993)공작이 생 구둘라(Saint Gudula, 646~?)의 유물을 이 예배당으로 옮긴 것을 브뤼셀의 공식 출범으로 본다.

중세[편집]

루뱅의 백작인 랑베르 1세(Lambert I, 950~1015)는 샤를 공작의 딸과 결혼하여 브뤼셀 지역의 자치구 1,000여 개를 얻어 통치한다. 헨트, 쾰른 사이의 중요한 무역로인 센강 기슭에 위치한 브뤼셀은 섬유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무렵 도시의 인구는 3만 명에 달했고, 주변 습지로 도시는 더욱 커졌다.

1183년 브라반트(Brabant)의 공작이 루뱅의 백작이 되면서 브뤼셀은 브라반트 공국의 통치를 받는다. 브라반트는 플랑드르와 달리 신성 로마 제국에 편입됐다. 13세기 초 브뤼셀에 요새가 세워진 이후 도시는 크게 성장했다. 도시를 확장하기 위해 1356~1383년 요새의 두 번째 벽이 세워졌다.

15~19세기초[편집]

15세기 부르고뉴 공국은 주변국과의 혼인 정책으로 영토를 확장한다. 15세기에 플랑드르의 여성 백작인 마가렛 3세(Margaret III, 1350~1405)와 부르고뉴 공작 인 용담공 필립(Philip the Bold, 1342~1404)의 아들인 앙트완(Antoine, 1384~1415)이 브라반트의 공작이 되었다. 부르고뉴 공작의 딸인 마리(Mary, 1457~1482)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 세(Maximilian I, 1459~1519)의 혼인으로 저지대 국가(Low Countries, 당시 네덜란드를 의미하며 현재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지역을 포함한다)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받게 된다. 브라반트는 이 저지대 국가에 속했고, 브뤼셀은 부르고뉴 네덜란드의 수도로 번성했다.

1482년 마리가 사망한 후 아들인 미남 필립(Philip the Handsome, 1478~1506년)은 부르고뉴와 브라반트의 공작이 됐다. 미남 필립 사망 후 그의 아들 카를로스 5세 (Charles V, 1500~1558)가 스페인 왕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카를로스는 브뤼셀을 수도로 삼아 ‘해가 지지않는’ 합스부르크 제국을 통치했다.

1695년 9년전쟁 중 프랑스의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는 브뤼셀을 포격했다. 도시 건물 전체의 3분의 1인 4,000채가 파괴됐다. 그랑 플라스(Grand Place) 주변도 피해를 입었다. 당시의 공격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남부 네덜란드의 통치권이 스페인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로 넘어간다. 브뤼셀은 1746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중에 프랑스가 점령했다가 3년 뒤 오스트리아가 되찾는다. 프랑스 혁명 이후인 1795년,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남부 네덜란드는 프랑스의 수중에 들어간다.

프랑스 통치는 1815년 나폴레옹이 지금의 브뤼셀 수도지역의 남쪽에 위치한 워털루 전쟁서 패하면서 끝난다. 이후 비엔나 회의 결과에 따라 브뤼셀이 속한 남부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the Netherlands)의 일원이 된다. 브뤼셀은 남브라반트 주도가 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편집]

벨기에 혁명은 브뤼셀 모네극장(La Monnaie)에서 오베르(Daniel François Esprit Auber, 1782~1871)의 오페라 포르티치의 벙어리 처녀(La Muette de Portici) 공연이 끝난 후 시작되었다. 독립과 함께 브뤼셀은 벨기에의 수도가 됐고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1831년 7월 21일, 최초의 벨기에 국왕인 레오폴트 1세(Leopold I, 1790~1865)가 왕위에 올라 파괴된 도시를 복구했다. 투자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 벨기에가 시작한 수십 개의 회사 덕분에 브뤼셀은 금융센터가 되었다. 산업혁명과 브뤼셀-샤를루아 운하의 건설은 제조업과 상업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19세기 브뤼셀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도시와 주변 지역 인구는 8만 명에서 62만 5,000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센강은 시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이에 1867~1871년 도시지역 하천 전체를 복개했다. 그래서 오늘날 브뤼셀 시내의 특징인 중앙대로를 중심으로 한 재건축이 가능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브뤼셀은 독일이 점령했지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1944년 9월 3일 영국군 기갑사단이 독일군을 밀어 낼 때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이 끝나고 브뤼셀은 광범위한 현대화를 경험했다. 1988년 헌법 개혁 이후 1989년 6월 18일 브뤼셀시를 중심으로 18개 지방자치단체를 묶은 브뤼셀 수도지역이 결성됐다. 2000년 다른 8개 유럽도시와 함께 유럽 문화 수도로 지명되었다.[5]

경제[편집]

브뤼셀은 17세기 이후 레이스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는 국가 GDP의 1/5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직업의 88%가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만큼 서비스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벨기에를 비롯하여 유럽연합, 다국적 기업 및 세계기구 등의 본부가 벨기에에 자리하고 있다.

브뤼셀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손꼽힌다. 1822년 벨기에 금융회사 소시에테 제네랄드 벨지크(Société Générale de Belgique)가 설립된 이후 국제 금융거래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스위프트(Swift), 뱅크시스(Banksys), 유로클리어(Euroclear) 등의 국제은행, 증권거래소, 60여 개의 은행 사무소가 위치해 있어 금융의 본거지로 여겨진다. 최근 ICT 산업의 발전으로 관련 회사들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양조산업이 발전해 450가지 종류의 맥주를 생산한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172,000t의 초콜릿을 생산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 브랜드가 위치하고 있다.

생명공학, 제약, 건강 산업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분야로 2개의 대형 과학단지가 있다. 이곳에는 연구소, 대학병원, 군병원, 종합 및 전문병원이 들어서 있다. 이외에도 제조업, 전자, 화학, 인쇄, 출판, 의류, 통신, 항공기 건설, 식품 산업 등이 있다.[6]

교통[편집]

지하철[편집]

브뤼셀 지하철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흔히 잘 알고 있는 지하철과 프레메트로(premetro)라 불리는 지하 전차가 있다. 첫 프레메트로 노선(Schman~De Brouckère)은 1965~1969년에 개통되었으며 1970년에 두 번째 노선(Madou~Porte de Namur/Naamsepoort)이 개통되었다. 1972년에는 외곽 노선이 개통되었으며 1975년 노선 확장이 이루어졌다.

지하철은 1976년 9월 20일 2개 노선으로 개통되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노선이 확장되면서 1A, 1B라는 명칭으로 나뉘었다. 2020년 현재 브뤼셀 지하철은 총 6개의 노선으로 나뉘며 4개의 지하철 노선(M1, M2, M5, M6)과 2개의 프레메트로를 운영하고 있다.

버스[편집]

버스가 처음 운행된 것은 1907년이다. 하지만 1913년 운행이 중단되었고 이후 1920년부터 다시 운행되었으며 1926년 버스회사 레 아우토부스 브룩셀루아(Les Autobus Bruxellois)가 설립되면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브뤼셀 대중교통 운행회사(STIB) 설립 후 이듬해 1955년 레 아우토부스 브룩셀루아를 인수하였고 3개의 버스노선, 1개 트롤레이버스를 운행하였다. 2020년 기준으로 50개의 버스 노선과 11개의 심야버스 노선이 운행 중이다.

트램[편집]

브뤼셀에 트램이 처음 도입된 시기는 1869년으로 당시 트램은 말이 끄는 방식이었다. 이후 1877년에 증기 트램이 도입되었으나 언덕이 많은 지형에서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운행이 중단되었었다. 1894년 전기로 운행되는 전차가 배치되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동안 트램은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등 원활하게 운행되지 못했다. 1928년 트램 운행 네트워크가 통합되었고 1935년에는 240km의 노선을 가지면서 유럽에서 가장 큰 트램 네트워크를 가지게 되었다. 1945년 1월 1일 브뤼셀 공공운송그룹(STIB/MIVB)을 설립하면서 트램 시설 및 운영에 큰 발전이 이루어졌다. 2020년 현재 트램은 17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관광[편집]

브뤼셀에서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사용한다. 각 언어 공동체에서 관련된 문화가 발전하면서 두 언어 집단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문화가 발전되었다. 뿐만 아니라 브뤼셀은 게르만, 라틴 유럽 등이 만나는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한 전략적 위치에 속해 있어 수세기 동안 풍부한 문화가 교차하는 혜택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미식, 코믹 스트립, 회화와 건축 등이 발전하게 되었다.

건축물[편집]

브뤼셀의 건축물들은 고딕, 바로크, 루이 14세 스타일 등 다양한 양식을 가지고 있다. 다만, 17세기에 도시가 화재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오늘날 중세 시대의 모습은 많이 볼 수 없다. 하지만 일부 건축물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까지 남아있는 대부분의 중세 건축물들은 시내 중심부 생 게리(Saint-Géry), 세인트 캐서린(Sainte-Catherine) 그리고 그랑플라스 주변에 있다. 그랑플라스의 경우 브뤼셀 관광의 중심지로 13세기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발달했다. 그랑팔라스 주변에 위치한 브뤼셀 시청사(Flamboyant Town Hall), 브레드하우스(the neo-Gothic Breadhouse), 길드홀(Guildhalls), 오줌싸개동상(Manneken Pis) 등은 도시의 상징이자 관광명소로 1998년 유네스코는 이를 한데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브레드 하우스(Breadhouse)는 브뤼셀 시립 박물관으로 신고딕 양식 건축물이다. 약 7,000여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미술, 조각, 태피스트리, 판화,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오줌싸개동상의 원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시립 박물관과는 다른 건물이지만 오줌싸개동생 옷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도 있다.

길드홀(Guildhalls)은 벨기에를 비롯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의 모든 도시들이 가지고 있었다. 길드홀은 무역을 위한 곳이었고 길드홀 자체로 정교하고 화려할수록 길드의 위상을 보여주곤 했다. 브뤼셀 길드는 중세 말기와 근대 초기 브뤼셀시의 경제를 이끌었던 길드 연합체였다. 브뤼셀 길드는 7대 귀족계급과 함께 도시의 자본가 계급을 형성했다. 오늘날 그랑플라스에 있는 길드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오줌싸개동상(Manneken Pis)은 청동 분수 동상으로 브뤼셀의 랜드마크이다. 분수에 대한 초기 언급은 1451~1452년 브뤼셀의 식수 보급을 위한 분수 설치와 수로에 관한 행정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1572년 첫 조각상은 조지 브라운(Georg Braun)과 프란츠 호겐베르크(Franz Hogenberg)가 그린 도시 지도에 표현되어 있다. 초창기 동상에 대한 또 다른 자료는 1615년 블랑드르 화가인 데니스 반 알스루트(Denis Van Alsloot)의 그림에서 개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1619년 조각가 제롬 뒤크누아(Jérôme Duquesnoy)에 의해 청동으로 다시 제작되었다. 동상은 역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1817년 동상이 도난 당하면서 11조각으로 파손되었다. 이내 복원 되었지만 1965년 발과 발목만 남겨진채 파손된 상태로 또 한 번 도난 당했다. 1966년 도난 당한 동상이 샤를르와(Charleroi) 운하에서 발견되었고 다시 복원되었다. 복원된 동상은 현재 브뤼셀 시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오늘날 관광객들이 관람하는 동상은 1965년에 만들어진 복제품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편집]

브뤼셀에는 8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벨기에 왕립 미술관은 브뤼헐(Bruegel), 바이덴(Rogier van der Weyden),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야코프 요르단스(Jacob Jordaens) 등의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마그리트 박물관(Magritte Museum)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세계 최대 규모로 소장하고 있다. 그 외에 벨뷰뮤지엄(BELvue Museum), 브뤼셀 왕립군사역사박물관(the Royal Museum of the Armed Forces and Military History), 만화박물관(Centre Belge de la Bande Dessinee), 브뤼셀 왕립미술관(the Royal Museums of Art and History) 등이 있다. 또한, 브뤼셀 라 모네 왕립극장(Royal Theatre of La Monnaie)은 1700년에 건설되었으며 유럽에서도 가장 유명한 오페라 극장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축제 및 행사[편집]

매년 도시 전역에서 다양한 공연 및 예술 축제가 열린다. 그중 쿤스텐페스티벌(Kunstenfestivaldesarts)은 1994년부터 매년 5월에 열리는 축제로 브뤼셀의 20여 개의 극장과 예술센터에서 다양한 공연 및 예술을 관람할 수 있다. 3주 동안 열리는 이 축제는 특정 주제를 따르지 않고 미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주목할 만한 현대 예술작품들을 한데 모은다. 1년 내내 많은 행사들이 열리는데 아이리스 축제(Iris Festival), 브뤼셀 국제 영화제(BIFFF, The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of Brussels), 유럽연합(EU) 기관에서 개최하는 유럽 축제(The Festival of Europe) 등이 열린다.

다양한 민속 및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로 오메강 축제(Ommegang)는 1549년 찰스 5세(Charles V) 황제의 성대한 입국을 역사적 재현의 형태로 하는 민속 행렬이며 매년 7월에 열린다. 메이붐(Meyboom)은 1213년 루뱅(Leuven)을 상대로 브뤼셀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로 매년 8월 9일에 열린다. 메이붐은 5월의 나무라는 의미로 사블르 가(Rue des Sables)와 마헤 가(Rue du Marais) 교차점에 오후 5시 이전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 나무를 심기 전 낮에는 다양한 민속활동과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축제 외에도 왕립투네극장(Royal Theatre of Toone)에서는 지방방언과 생활방식을 엿볼 수 있다.[7]

지도[편집]

서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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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브뤼셀〉, 《위키백과》
  2. 브뤼셀시〉, 《위키백과》
  3. 브뤼셀(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브뤼셀(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5. 브뤼셀〉, 《요다위키》
  6. 브뤼셀〉, 《나무위키》
  7. 브뤼셀의 문화 및 관광(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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