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트
피아트(Fiat, 菲亚特)는 피아트 크라이슬러(Fiat Chrysler) 회사에 소속된 이탈리아의 자동차 브랜드이다. 2014년 미국의 크라이슬러 회사를 인수하여, 피아트 크라이슬러 회사가 되었다. 중국어로는 페이야터(菲亚特, fēi yà tè)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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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피아트는 이탈리아의 피아트 크라이슬러 회사가 제조하는 자동차 브랜드이다. 1899년 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를 포함하는 투자자들의 무리에 의해 설립되었다. 피아트의 계열사로는 페라리,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란치아 등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70년 4월 아시아자동차에 의해 소형차 124가 시판되어 1973년까지 생산되었고, 이후 1979년 기아자동차에 의해 중형차 132도 시판되었지만, 1981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인해 생산이 중단되어 단종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에 피아트 판다, 란치아 브랜드 등이 런칭하였지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크라이슬러를 완전히 인수한 이후, 2013년 1월 크라이슬러의 네트워크를 통해 피아트가 대한민국에 다시 진출하였다. 하지만 2017년 9월 지프의 인기와 판매 부진으로 수입이 중단되었다. 미국에서는 전륜구동 소형 해치백인 피아트 500 시리즈만 판매 중이다. 대한민국에는 피아트 500 시리즈와 크라이슬러 산하 닷지 브랜드의 크로스오버인 닷지 저니를 피아트 버전으로 출시한 프리몬트도 대한민국에 출시되었으나, 2014년에 판매 부진으로 수입이 중단되었고, 대신 2016년에 피아트 500X가 들어왔다. 이후 크라이슬러를 자본 제휴하기 시작하여 자회사로 편입하였다.[1] 피아트 브랜드 자동차는 세계 여러 곳에 세워져 있다. 이탈리아를 제외한 가장 큰 생산국은 브라질이다. 아르헨티나, 폴란드, 멕시코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다른 국가에서 자사 제품의 라이센스 제조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피아트는 9개의 '올해의 유럽 자동차 상'을 비롯해 많은 국제적인 상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 일산화탄소(CO) 최하위권에 랭크되었다.[2]
역사[편집]
1899년 7월 11일, 조반니 아넬리는 피아트의 창립 멤버 일원이 되었다. 최초의 피아트 공장은 1900년에 35명의 직원이 24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문을 열었다. 1903년 피아트는 첫 트럭을 생산하고, 적은 이익을 내고 135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그리고 1906년에는 생산량이 1,149대로 늘어나게 되었다. 1908년 피아트 자동차가 최초로 미국에 수출되었다. 같은 해 최초의 피아트 항공기 엔진이 생산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피아트 택시는 유럽에서 인기를 끌게 된다. 피아트는 1908년 미국에 피아트 오토모빌 코퍼레이션을 설립한 뒤 승용차는 물론 상용차, 선박, 엔진, 트럭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갔다.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피아트는 모든 공장을 연합군의 항공기, 엔진, 기관총, 트럭, 구급차를 공급하는 데 바쳐야 했다. 1917년 미국의 전쟁 진입과 동시에 미국의 규제가 심해지면서 공장이 폐쇄됐다. 전쟁 후, 피아트는 첫 번째 트랙터인 702를 선보였다. 1920년대 초까지 피아트는 이탈리아에서 80%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다.[2] 1922년에는 당시 유럽 최대 규모로 레이싱카도 시험 주행 할 수 있는 링고토 공장이 문을 열어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1939년 피아트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육군과 레지아 항공, 그리고 후에 독일군을 위해 군용 기계와 차량을 만들었다. 또한 사보이아-마르체티스(Savoia-Marchettis)와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항공기 중 하나였던 피아트 CR.42와 경전차, 장갑차를 만들었다. 1950년대 자동차 산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피아트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농기계, 항공기 등 사업 영역을 무한 확장해 나갔다. 1951년 이탈리아 첫 제트기인 G80을 만들어낸 것도 피아트이다. 1984년 알파로메오, 1993년 마세라티를 인수하며 대중차에서 슈퍼카를 아우르는 라인업을 보유하게 되었다. 질주하던 피아트는 1990년대 위기를 맞는다. 장기 불황으로 경영이 악화됐고, 급기야 2003년 아넬리 가문 경영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2004년에는 부도 위기까지 내몰리게 되지만 새로운 최고경영자 세르지오 마르치오네(Sergio Marchionne)가 등장하며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마르치오네는 강력한 구조 조정으로 불과 2년 만에 회사를 정상화했다. 이후 신진 디자이너를 대거 영입해 신차 푼토를 출시하고 2007년에는 브라보를 선보이며 다시 부활했다. 2009년에는 크라이슬러의 우량 자산을 인수하며 기존 이탈리아 감성이 깃든 소형차에 고성능 SUV까지 완벽한 라인업을 완비하며 재도약 발판을 마련했다.[3] 2014년 1월 29일, 피아트 그룹(Fiat Group)의 전 소유주였던 피아트 S.p.A.가 2014년 말 이전에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새로운 지주회사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FCA)에 합병될 예정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가 피아트 그룹의 새로운 소유주가 되었다. 2014년 8월 1일, 피아트 S.p.A.는 합병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주주 승인을 받았으며, 이는 2014년 10월 12일 시행되었다. 2018년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별세한 후, 지프와 픽업트럭 램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마이클 맨리(Michael Manley)가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주요 인물[편집]
조반니 아넬리[편집]
- 생애
1866년 피에몬트주 피네롤로 부근의 작은 마을 빌라 페로사(Villar Perosa)에서 태어났다. 아직도 아넬리 가문의 주요 거처와 매장지가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빌라 페로사의 시장이었는데, 조반니가 겨우 다섯 살이었을 때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반니는 토리노의 콜레지오 산 주세페에서 공부한 후 1893년까지 군 생활을 시작했고, 빌라 페로사로 돌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1895년에 시장이 되었다. 아그넬리는 당시 말 없는 마차의 발명 소식을 듣고 즉시 그의 공학과 기업가적 기술을 이용할 기회를 보았다. 1898년, 그는 말 없는 마차 프로젝트를 위해 투자자들을 찾고 있던 브리케라시오의 이매뉴얼 카케라노 백작을 만나게 된다.
- 사업 경력
1899년 7월 11일, 조반니는 '파브리카 이탈리아나 디 오토모빌리 토리노'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다. 1년 후, 그는 피아트의 상무이사를 맡고 1920년에 회장이 되었다. 최초의 피아트 공장은 1900년에 35명의 직원이 24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문을 열게 되었다. 피아트는 창립 초기부터 엔지니어링 직원들의 재능과 창의성으로 유명한 상태였다. 1903년까지 피아트는 135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며 적은 이익을 냈지만, 1906년 1,149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 후 피아트는 밀라노 증권거래소를 통해 주식을 공매도했다. 조반니는 보유 주식에 추가할 수 있는 모든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조반니는 1917년 유럽으로 미국의 원조를 운송하는 금융업자 리카르도 구알리노(Riccardo Gualino)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들은 미국에 있는 해양 회사와 조선 회사에 투자했다. 미국의 해양 상사는 석탄을 수출했고, 국제 조선 회사는 동력화된 선박을 만들었다. 이 회사들은 전쟁이 끝났을 때 전쟁 수요를 충족하도록 구성되었기 때문에 실패했지만, 소유주에서 큰 이익을 돌려주었다. 조반니와 구알리노는 1918년 초 크레도 이탈리아노(Credito Italiano)를 인수하려고 시도했다.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은행 이사회에 합류하게 된다. 조반니는 1917년부터 1926년까지 구알리노의 회사인 SNIA SpA의 부사장으로 지냈다. 1920년대 초 SNIA는 인공 섬유 섬유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1920년 구알리노와 조반니는 개인은행 장 드 페넥스(Jean de Fernex)의 자본화에 참여하여 라 스탬파(La Stampa)의 발행인인 알프레도 프라사티(Alfredo Frassati)의 지분 3분의 1을 사들였다. 구알리노와 조반니는 밀라노, 제노바, 토리노를 고속철도와 연결하자는 제안을 제시했고 시멘트, 자동차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들의 파트너십은 1926년경 구알리노의 프랑스 자동차 산업 투자로 인해 깨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피아트는 이탈리아 산업 기업 중 30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피아트가 설립된 지 4년 만에 최초의 포드 공장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1906년 브로드웨이 맨해튼에 미국 최초의 피아트 자동차 딜러점이 설립되었다. 조반니는 1923년에 상원의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피아트에 대한 변함없는 집중력을 유지했고, 피아트를 국제무대로 이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도 피아트와 함께 하다가, 전쟁이 끝난 1945년에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4]
세르지오 마르치오네[편집]
- 생애
1952년 이탈리아 아브루초 치에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스트리아의 카라비니에르에서 아내를 만났다. 마르치오네의 할아버지 지아코모 주콘(Giacomo Zuccon)은 1943년 9월 이스트리아 바반 인근에서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인들에게 살해당했고, 같은 해 삼촌 주세페 주콘(Giuseppe Zuccon)은 나치에 의해 살해당했다. 1945년 이 지역이 유고슬라비아군에 점령당하자 마르치오네의 부모는 아브루초 치에티로 이주했다. 13살에 가족과 함께 친척들이 거주하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로 이민을 갔다. 캐나다 시민권과 이탈리아 시민권을 동시에 소지한 그는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마르치오네는 캐나다 공인 회계사(FCGA), 법정 변호사, 온타리오 주 공인 회계사였다. 마르치오네는 토론토 대학교에서 철학 학부 과정을 마치기 전에 세인트 미카엘 대학교에 입학했다. 또한 윈저 대학교에서 상업 학사(1979년)와 경영학 석사(1985)를 취득하기 전, 요크 대학교의 오스구드 홀 로스쿨(1983)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했다. 월시 대학교(2013년)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5]
- 사업 경력
마르치오네가 처음부터 자동차 업계에 발을 들인 건 아니었다. 그는 대학을 마치고 회계법인 딜로이트에서 회계사로 일했다. 이후 편의점 브랜드 로손에서 부사장을 지내고 스위스 제약사 론자그룹의 최고경영자 등을 거쳤다. 그가 자동차 업계와 연을 맺은 건 품질안전성을 인증하는 민간 기업 에스지에스(SGS)에서 근무할 당시 위기에 빠진 에스지에스를 회생시키면서부터이다. 2003년 마르치오네는 피아트 이사로 선임됐고 이듬해인 2004년 피아트 수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피아트는 에스지에스를 살려낸 마르치오네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피아트는 거액의 빚더미에 올라 휘청거렸는데, 마르치오네는 취임 2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놔 자동차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마르치오네는 파산 위기였던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피아트와 미국 자동차 기업 크라이슬러를 각각 회생시키고 2014년 두 회사를 합쳐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를 만들었다. 마르치오네는 취임 후 미 제너럴모터스에서 20억 달러(약 2조 2400억원)를 받아냈다. 지엠은 2000년 피아트 지분 20%를 사들이면서 체결한 계약 때문에 경영난에 허덕이는 피아트를 인수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문제는 지엠이 피아트를 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때 마르치오네가 나서서 이 계약을 종료하는 조건으로 지엠에 20억달러를 요구했고 지엠이 이를 받아들였다. 마르치오네는 이후 인력 수천 명을 감축하고 공장을 정리했으며, 새 브랜드를 빠르게 출시해 피아트를 다시 살려냈다.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부채를 줄였다는 평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2009년 정부 구제금융으로 겨우 연명하던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2년 만에 파산 상태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후 2014년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를 합쳐 FCA를 출범시켰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의 형제 기업이자 수퍼카 브랜드 페라리도 같이 경영했다. 피아트 최고경영자를 맡은 2004년부터 시작해 14년간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 매출은 3배 늘었고 기업가치는 60억 유로(약 7조 9000억원)에서 600억 유로로 10배 이상 높아졌다. 2009년 이후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의 미국 판매량은 배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에서 200만대, 전 세계에서 420만대를 팔아 세계 7위 자동차 업체로 우뚝 섰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 그룹은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를 포함해 지프와 닷지 등을 거느린 대형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다. 마르치오네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미국 지엠에도 끊임없이 합병을 제안했다. 자동차 업계에서 생존하려면 규모가 커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지엠 합병은 성사되지 않았다.
소문난 일벌레였던 그는 2018년 7월 21일 최고경영자직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났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인 6월 2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 계열사의 지프 차량을 군경찰 카라비니에리에 전달한 것을 마지막으로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르치오네는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스위스 취리히의 대학병원에서 합병증으로 투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66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6]
마이클 맨리[편집]
마이클 맨리(Michael Manley)는 1964년 3월 6일에 태어난 영국의 사업가이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전 최고경영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난다는 발표에 이어 2018년 7월 피아트크라이슬러자동차(FCA)의 최고경영자로 선임됐다. 최고경영자로 임명되기 전 맨리는 2009년부터 지프 부문장을 역임했다. 그는 2009년 32만 대 수준이던 지프 판매량을 2017년에 140만 대까지 올려놓았다. 10년 만에 외형을 4배 이상 키운 것이다. 영국 출신인 맨리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경영학을 공부했다. 2000년 다임러크라이슬러 영국법인 네트워크개발이사로 입사하며 피아트크라이슬러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다. 지프 브랜드 최고경영자로 발탁되기 전에는 상품 기획과 판매 부서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는 르노와 푸조 대리점에서 일한 뒤 렉스 오토세일즈 자동차 대리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 렉스 오토세일즈는 다임러크라이슬러 영국에 인수되었고, 맨리는 다임러크라이슬러 영국의 네트워크 개발 담당 이사로 선임되었으나 2003년 미국으로 전보되었다. 2008년에는 크라이슬러의 기획 및 영업 담당 부사장에 이어 아시아 지역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2009년, 맨리는 피아트와의 합병 이후 피아트크라이슬러자동차와 함께 있던 지프 부문 최고경영자가 되었다.[7] 그는 지프 최고경영자로 명성을 얻었지만 피아트와 합병되는 과정을 겪으며 마르치오네와 중요한 가치를 공유했다. 지프뿐 아니라 피아트크라이슬러자동차에 속한 모든 브랜드의 경쟁력을 고르게 높이는 '따로 또 같이' 전략이다. 이런 신념을 행동으로 드러낸 일화가 있다. 2015년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기 직전에 생긴 일이다. 그는 지프 전시장으로 가려고 했던 기자들을 크라이슬러 부스로 돌려세우며 말했다. "지금은 지프보다는 다음달 한국에서 출시될 크라이슬러 신차 옆에서 찍는 게 좋겠네요." 맨리 사장은 미국 온라인 언론과 인터뷰하며 이런 명언을 남겼다. "지프는 어제보다는 내일의 삶을 경험하게 하는 자동차다." 지프를 넘어 피아트크라이슬러자동차의 모든 브랜드에 이런 유전자를 심는다면 그는 전임자를 뛰어넘는 경영자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8]
자동차[편집]
승용차[편집]
소형[편집]
- 피아트 500
- 1세대
- 1957년과 1975년 사이에 제조된 도시형 자동차 형식의 승용차이다. 리어 엔진, 2도어, 4인승 차량으로 쿠페 타입과 스테이션 웨건 타입으로 출시했다. 이름이 500인 이유는 500cc의 배기량을 가진 소형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1세대 친퀘첸토는 크게 누오바 500, 500 D, 500 자르디니에라(Giardiniera), 500 베를린(Berlina), 500 루쏘(Lusso), 500 리노바타(Rinnovata)로 제작되었다. 누오바 500의 경우 479cc에 2기통 엔진 13마력이다. 추후 스포츠 버전이 나왔는데 엔진 마력을 높히기 위해 499.5cc까지 배기량을 높였다. 누오바는 문의 앞쪽이 개방되는 일명 수어사이드 도어와 지붕을 개폐할 수 있는 천으로 되어있다. 500 D는 누오바와 매우 흡사하지만 엔진의 크기와 개폐형 지붕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500 Giardiniera 자르디니에라는 에스테이트 버전이다. 지붕이 후편까지 개폐되며 엔진은 트렁크 밑쪽에 배치되어 있다. 500 리노바타는 좀 더 낮은 회전수에서 더 큰 힘을 낼 수 있게 만든 모델이다. 1세대 룩으로 나온 차량으로는 마지막 차량에 속한다.[9]
- 2세대
- 2세대부터는 영문 '친퀘첸토'(Cinquecento)로 모델명이 표기된다. 500 누오바의 후속이였던 피아트 126을 대체하는 역할이였으며, 에르만노 크레소니(Ermanno Cressoni)가 담당한 디자인은 앞바퀴굴림 구성에다가 실용성에 중점을 둔 키가 크고 각진 디자인이었다. 피아트 126이 생산되던 폴란드의 티히(Tychy) 공장에서 생산이 이루어졌고, 아우토비안키 Y10과 비슷한 외관 디자인은 공기저형계수 0.33cd를 기록해 공기역학적인 편이었다. 기술적으로는 피아트 티포와 비슷한 구성의 앞뒤 독립식 서스펜션, 앞바퀴 디스크 브레이크, 크럼플 존과 사이드 임펙트 바, 아연도금된 차체 패널이 적용되어 이전 모델 대비 상당히 진보적이었고, 랙 엔드 피니언식 스티어링이 적용되었다. 파워스티어링은 제공되지 않았으며, 대신 센트럴 록킹 시스템이나 파워 윈도우, 에어컨, 썬루프, 일부 사양에 적용된 전동 캔버스탑같은 다양한 사양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특이점이라면 저배기량 버전은 엔진이 세로로 배치되었고, 고배기량 버전은 엔진이 가로로 배치되었다는 점으로, 전 세계에서 상당히 드물게 가로 및 세로배치 모두가 적용된 단일차종이라는 의의를 남겼다. 1991년 12월에 출시되었을 때에는 704cc나 903cc 엔진이 제공되었다. 704cc OHV 2기통 30~31마력 엔진은 본래 폴란드 내수용으로 개발되었으며, 나중에 같은 엔진을 쓰던 피아트 126p BIS로부터 같은 엔진을 물려받되 앞바퀴굴림 구성에 맞추기 위해 크랭크축을 반대 방향으로 바꾸는 등의 여러 개량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시장에서 하위 사양이었던 903cc 엔진은 최고출력 39마력을 기록했으며, 피아트 100 OHV 4기통 엔진을 개량해 SPI 구성의 연료분사 시스템이 적용되었다. 1993년에는 높은 비용을 이유로 배기량을 899cc로 낮춘 38마력 엔진으로 대체했다. 1994년에 출시된 스포팅 버전은 피아트 푼토로부터 가져온 1108cc SOHC 53마력 엔진과 조합되었으며, 차체 높이를 낮추고 앞바퀴에 안티롤바를 달았다. 13인치 알로이 휠과 차체 색상으로 마감한 범퍼 및 백미러, 타코미터, 스포츠 시트, 빨간 안전벨트, 가죽 스티어링과 변속기 손잡이, 기어비를 조절한 변속기가 장착되었다. 1998년에 친퀘첸토를 기반으로 한 업데이트판 경차였던 세이첸토(Seicento)를 후속으로 맞이했다. 이때까지 약 200만대가 만들어졌으며, 세이첸토는 130만대 이상이 생산되었다.[10]
- 3세대
- 폭스바겐 비틀과 미니(MINI)의 뒤를 이은 컴팩트 레트로 카 부활 프로젝트로, 2007년에 50주년을 기념하여 3세대로 출시되었다. 32년 만인 2007년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새 단장을 하고 재출시되었다. 국내에는 친퀘첸토 팝, 라운지, 카브리올레 모델인 친퀘첸토-C가 판매되고 있다. 친퀘첸토는 트렌디한 스타일 못지않게 외장 컬러만 10가지에 달할 만큼 다양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여기에 시트커버부터 루프 랙, 후드 그래픽 등 150개가 넘는 액세서리가 더해지면 가능한 조합만 50만가지에 달할 만큼 개성이 묻어나는 ’나만의 친퀘첸토’를 만들 수 있다. 작은 체구에도 1.4ℓ 16V 멀티에어 엔진과 전자식 6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되어 최고 출력 102마력, 최대 토크 12.8㎏ㆍm를 자랑한다. 연비도 12.4㎞/ℓ로 준수한 수준이다. 스포츠 주행 모드도 가능해서 다이내믹한 주행감도 만끽할 수 있다. 운전석, 동반석, 사이드, 무릎 에어백 등 총 7개 에어백에 전자식주행안정프로그램(ESP), 언덕길밀림방지장치(HSA) 등이 장착되어 있어 안전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친퀘첸토-C는 15초 만에 완전히 열리고, 시속 80㎞ 주행 시에도 여닫을 수 있는 소프트톱이 장착되어 있다.[3] 2009년에는 캔버스탑 컨버터블인 피아트 500C가 추가되었고, 2010년에는 멕시코 현지공장을 가동하게 되면서 2011년에 북미 시장에도 진출했다. 북미형은 유럽형보다 전고가 살짝 높다. 2019년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에서는 삼성이 소유한 하만 인터네셔널(Harman International)에서 최첨단 기술을 집약한 500e의 스터디카를 선보였다. 로드스터 스타일로 달라진 이 차는 코너 레이더, 장거리 범위 카메라, 차량 좌우에 달린 센서들을 활용하여 주변 상황을 감시, 기록, 평가하는 기능을 가졌다. 기존의 3개의 거울 대신 카메라를 사용하여 후방 상황을 확인한다. 사각지대 감시 기능, 차선변경 보조, 후방충돌 경고 기능을 갖췄다. 레이저 레이다(LiDAR)를 활용하여 앞차와 안전 거리를 유지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또한 운전자의 심장박동수, 동공 크기를 측정하는 기능이 있다. 이런 기능들은 레벨3 자율주행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상태를 파악하는거싱 중요하므로 갖췄다고 한다. 2020년 1월, 판다와 함께 마일드 하이브리드 사양이 공개되었다. 69마력을 내는 1.0L 파이어플라이 엔진 + 6단 수동 조합에 12V 벨트 스타터 모터를 추가한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했고, 외양상으로는 H자를 강조한 새 전용 로고와 전용컬러인 듀 그린(Dew Green) 메탈릭 도장, 그리고 바다 10% + 육지 90% 출처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시퀄(Seaqual) 시트 커버로 구분된다. 또한 파워트레인을 45mm 가량 낮게 배치해 무게 중심을 낮추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0% 줄었다고 한다.[10]
- 피아트 판다
- 1세대
- 디자인: 피아트의 A 세그먼트급 해치백 소형차이다. 초대 판다는 1979년, 이탈리아 언론에 먼저 공개된 뒤, 이듬해 열린 1980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어 판매되기 시작한다. 초대 피아트 판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특유의 상자 같은 외형이다. 사방이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심지어 휠아치 조차 직선에 가깝게 디자인되어 있다. 외형 전반에서부터 이미 심미성 보다는 생산성 쪽에 한참 무게가 실려 있는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차체 전반에 걸쳐 곡면으로 처리된 부분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심지어 측면 창과 테일게이트 창은 물론, 전면의 윈드스크린 마저 곡면 유리가 아닌 평면 유리로 되어 있다. 또한 일반적인 자동차의 차체는 상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테이퍼드(Tapered) 형상을 취하는데 피아트 판다의 차체 상부는 거의 수직에 가깝게 치켜 올라간다. 이렇게 수직에 가깝게 올라가는 차체 상부의 구조는 공기역학적으로 불리해지는 대신 상부의 공간을 더욱 넓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차량의 설계에서도 철저하게 '생산성'과 '저비용'을 중시한 점들이 보인다. 초대 피아트 판다의 후륜 서스펜션은 판스프링을 사용하는, 리지드 액슬 서스펜션 구조를 취했다. 상기한 창의 경우, 평면으로 제작되어 있는 덕분에 좌우측 창이 서로 호환이 된다. 또한 곡면을 최대한 배제하여 설계된 도어 및 바디 패널 등은 생산성이 뛰어나 부품 단가도 매우 낮았고 유지보수 측면에서 유리했다.
- 제원: 출시 초기인 1980년도에는 두 가지 가솔린 엔진이 준비되었다. 그 중 하나는 피아트 126에서 가져온 652cc 공랭식 직렬 2기통 엔진으로, 전륜구동 자동차로서는 독특한 세로배치 엔진이었다. 다른 하나는 피아트 127에서 가져온 903cc 배기량의 수랭식 직렬 4기통 엔진이었다. 903cc 엔진은 가로로 장착되었다. 652cc 엔진을 장착한 판다는 '판다 30'이라는 이름으로, 903cc 엔진을 장착한 판다는 '판다 45'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판다는 첫 공개 후 2개월 만에 7만 대가 넘는 주문이 몰렸다. 출시 후 2년이 지난 1982년도에는 피아트 850에 쓰인 843cc 수랭식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한 '판다 34'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차명 뒤에 붙는 숫자는 '최고 출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같은 해 열린 파리모터쇼를 통해 외관 및 편의사양을 대폭 증강한 '판다 45 수퍼' 모델을 공개하며 라인업을 넓혔다. 판다 45 수퍼는 5단 변속기와 기존의 비대칭형 그릴 대비 더욱 세련된 디자인의 블랙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하였다.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에는 크롬으로 도금 처리된 피아트의 사선형 엠블럼이 적용되었다. 이듬해에는 판다 30 모델에도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1983년도에는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한 '판다 4x4'가 추가되었다. 판다 4x4는 가로배치 전륜구동 기반의 차종으로는 세계 최초로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한 선진적인 설계가 돋보인다. 판다 4x4는 48마력의 출력을 내는 965cc 수랭식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했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파트 타임 방식으로, 1단 레인지를 저속 기어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평상시 출발 가속을 하는 경우에는 과거 1톤 화물차처럼 2단에서 출발해야 했다. 뛰어난 소형화설계로 피아트 판다의 작은 몸집에도 적용 가능한 이 사륜구동 시스템은 오스트리아의 자동차 및 방산 기업, 슈타이어-푸흐(Styer-Puch)와의 공동 개발로 만들어졌다. 초대 피아트 판다는 생산이 시작된 지 6년 만인 1986년도에 한 차례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이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판다는 외관 디자인은 물론, 파워트레인과 상품 구성 등 많은 부분을 일신했다. 엔진의 경우, 기존에 생산하고 있었던 가솔린 엔진은 '파이어(FIRE, Fully Integrated Robotized Engine)'라는 이름의 신형 엔진으로 교체했다. 파이어 엔진은 공정 전체에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를 달성한 엔진이다. 피아트 판다에 적용된 파이어 엔진은 769cc 사양과 999cc의 사양의 두 가지로, 직렬4기통 수랭식 SOHC 방식을 채택했다. 이 외에도 1.3리터(1,301cc)의 디젤 엔진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출력 유래의 트림명을 배기량에서 유래한 750/1000으로 변경했다.
- 1986년도부터는 후륜 서스펜션에 기존의 리지드 액슬(리프 스프링) 방식 대신 새롭게 개발한 토션 빔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판다에 적용된 신형 토션빔 서스펜션은 독특한 오메가(Ω) 형태의 트레일링 암 링크 구조가 특징이다. 아울러 '수퍼' 모델에만 적용되었던 시트와 신규 그릴을 모든 트림에 확대 적용했다. 아울러 계기반의 크기를 키우는 한 편, 앞좌석 측면 도어의 삼각창도 폐지하고 일체형으로 교체하는 등, 차량 전반에 걸쳐 한 단계 고급화가 이루어졌다. 이 때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피아트 판다는 '세리에 2(Seconda serie)'로 불리게 되었다. 세리에는 이탈리아어로 '시리즈', 내지는 영어의 '배치(Batch)'와 유사한 의미다. 영미권에서는 '마크2(Mk.II)'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1990년, 피아트는 판다를 기반으로 한 순수 전기자동차 모델, 판다 엘레트라(Elettra)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초기의 전기자동차 중 하나로 꼽히는 지엠의 'EV1'보다도 훨씬 먼저 시장에 등장한 전기자동차로, 사양에 따라 19마력(14kW)과 23.8마력(18kW)의 모델이 존재했다. 이는 초대 판다의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구조 덕분에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의 변환이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이다. 이 차는 오늘날의 전기차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저출력의 모터를 사용했고, 일반적인 납축전지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충전관련 솔루션이 부실했던 탓에, 완전충전에는 8~10시간이나 걸렸다. 가격은 2,560만 리라에 달했는데, 이는 판다 750 모델 3대분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이 차는 지나치게 비싼 가격과 부족한 성능 및 편의성 탓에 비록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시도였다. 1991년도에는 또 한 차례의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 페이스리프트에서는 새로운 5줄 사선형의 피아트 엠블럼이 적용된 가로 바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적용되었고, '셀렉타(Selecta)'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변속기가 추가되었다. 이는 전자기식 클러치를 사용하는 무단변속기(Continuously Variable Transmission, 이하 CVT)로, 촉매 변환기 및 SPI(Single-Point fuel Injection) 연료분사 기구가 적용된 999cc 파이어 엔진에 적용 가능했다. 또한 유로 법안의 통과와 함께 촉매가 장착되지 못한 769cc 엔진은 모두 단종되었으며, 새로운 전자식 연료분사 기구를 적용한 신규 899cc 엔진이 추가되었다. 피아트 판다는 스페인의 세아트(SEAT)에서도 생산된 바 있다. 세아트가 피아트에 라이센스를 취득하여 생산하기 시작한 '세아트 판다(SEAT Panda)'는 1986년도까지 생산되었다가 1987년도부터 마르벨라(Marbella)라는 새 이름과 더불어 약간의 디자인 변경을 거쳐 1998년도까지 생산되었다. 세아트 마르벨라는 원본 피아트 판다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했으며, 그 중에는 패널밴 형태의 모델도 존재했다. 상용 모델은 이탈리아판 피아트 판다와 외관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아트 판다는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스페인 방문에서 교황 의전용 차량으로도 사용된 바 있다.[11]
- 2세대
- 2003년에 첫 출시되었다. 개발 단계에서 판다는 징고(Gingo)라는 이름이 될 뻔했지만 르노의 트윙고(Twingo)와 유사한 점이 지적되어 판다라는 차명을 계승하게 되었다. 또한 피아트 세이첸토의 후속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했으며, 세이첸토처럼 폴란드의 티히(Tychy) 공장에서만 생산되었다. 크리스 뱅글이 디자인 과정에 참여했고, 소형 SUV 및 MPV를 참조해 키를 키웠으며, 뒷창문까지 연장된 길쭉한 후미등이 장착되었다. 옵션으로는 등받이를 쪼갠 뒷좌석이 포함되어 있었고, 변속기 레버를 대시보드 중앙에 배치해 조작하기 편하도록 조치했다. 2003년부터 판매가 시작되었고, 엔진은 직렬 4기통 1.1L 또는 1.2L 파이어(FIRE) 가솔린이 먼저 제공되었고, 변속기는 5단 수동을 기본으로 6단 수동과 5단 세미오토 변속기가 제공되었다. 2004년에는 1.3L 멀티젯 디젤 엔진이 추가되었고, 2005년 9월에는 조수석 에어백과 ABS를 기본으로 제공했다. 2006년에는 1.4L 파이어 가솔린 엔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고, 2007년 3월에는 대시보드 색상이 진해지고 시디(CD) 플레이어가 기본으로 장착되었으며, 그 해 여름부터는 새로운 피아트 엠블럼이 장착되었다. 2004년에 '유럽 올해의 차'로 선정되었으며, 4륜구동 버전과 트레킹, 100HP, 알레시(Alessi) 등을 포함한 여러 모델들도 출시되었다. 2005년 9월부터는 잠김 방지 제동 장치(ABS)와 전자식 제동력 분배 장치(EBD), 운전석 에어백 등이 모든 라인의 기본장비가 되었으며, 10월에는 바로 50만번째 2세대 판다가 출고되었다. 탑기어 지의 2006년 설문조사에서는 152종의 차량들 중 신뢰성, 조립품질, 유지비, 운전 경험, 서비스 등을 종합한 평가에서 8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어 100만 번째 판다는 2007년 10월 5일에, 200만 번째 판다는 2011년 7월 4일에 출고되었다. 2007년에는 이 차의 플랫폼으로 기반으로 500이 부활했고, 3세대가 등장한 이후에도 "판다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2012년까지 병행 판매되었다.[12]
- 3세대
- 2011년에 출시되었으며 크로스오버다운 외관이 특징이다. 판다 특유의 디자인을 계승하면서도 피아트의 새로운 패밀리 룩이 조화를 이뤘다. 헤드 램프에는 주간주행등(DRL) 기능도 내장되었고, 실내 공간을 넓히기 위해 시트 등받이가 얇게 제작되었다. 유럽의 교통 법규에 따라 모든 엔진에 스타트&스톱 시스템이 기본 적용되었다. 생산지는 이탈리아 내 공장을 감축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따라 폴란드에서 이탈리아로 옮겼다. 2018년 10월 피아트 판다의 디젤모델의 생산이 중지되었다. 2018년 8월 판다 총 판매량 중 디젤의 비율은 15%에 불과하며 피아트 500의 경우 디젤 비율은 4%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피아트 판다는 낮은 안정성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유로 엔씨에이피(NCAP)에서 피아트 판다는 별 0개를 받아 피아트 푼토에 이어 유로 엔씨에이피 역사상 두 번째 별 0점을 기록하게 되었다. 2020년 1월, 피아트 500과 함께 피아트 팬더 마일드 하이브리드 사양이 공개되었다. 69마력을 내는 1.0L 파이어플라이 엔진과 6단 수동 조합에 12V 벨트 스타터 모터를 추가한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했다. 공식 사진 상에서는 크로스의 전륜구동 버전인 시티 크로스를 기반으로 했고, 외양상으로는 H자를 강조한 새 전용 로고와 전용컬러인 듀 그린(Dew Green) 메탈릭 도장, 그리고 바다 10% + 육지 90% 출처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시퀄(Seaqual) 시트 커버로 구분된다. 또한 파워트레인을 45mm 가량 낮게 배치해 무게 중심을 낮추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0% 줄었다고 한다.[12]
준중형차[편집]
- 피아트 티포(Fiat Tipo): 1988년에 처음 등장한 C-세그먼트형 준중형 승용차이다. 이데아 인스티튜트(I.D.E.A Institute)의 손을 거친 혁신적인 디자인과 우수한 공간설계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티포의 이름은 피아트의 새로운 C세그먼트 승용차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섰다. 2014년에 등장한 새로운 피아트 티포가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피아트 티포는 피아트와 터키의 자동차 회사 토파쉬(Tofas)와 함께 진행한 에게아(Ægea)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되었다. 새로운 티포의 개발에 파트너로 참여한 터키의 토파쉬는 1976년 부터 '피아트 131'을 면허 생산하며 피아트와 친분을 쌓은 인연이 있다. 피아트의 티포(Tipo)는 2015년 이스탄불 모터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2015년 10월 터키에서 먼저 판매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11월에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에서 피아트 티포 세단을 판매한다. 멕시코와 중동에서는 독특하게도 티포를 닷지 네온(Dodge Neon)으로 판매한다. 네온은 과거 1995년 미국 시장에서 크라이슬러와 닷지 브랜드로 출시한 소형차였다. 2005년 출시되었던 2세대 네온을 끝으로 단종된다. 하지만 피아트 크라이슬러 그룹은 피아트 티포를 이용해 멕시코에서 닷지 네온으로 부활시켰다. 티포는 유럽 소형차 시장에서 경쟁자들보다 저렴한 가격과 품질로 총 판매량 8위를 기록해 인상적인 판매량을 보였다. 피아트는 이에 힘입어 2019년형 티포를 선보였다. 이전 모델과 동일하게 3가지 모델(4도어, 5도어 해치백, 왜건)을 출시했고 4가지 트림(스트리트, 미러, S디자인, 스포츠)으로 판매한다. 특히 새로운 S디자인과 스포츠 버전을 출시해 독특한 개성과 스포티한 성격을 부여했다. 실내에는 새로운 7인치 터치 스크린과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를 통해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시스템을 탑재했다.[13]
RV[편집]
소형 SUV[편집]
- 피아트 500X: 2014년에 출시된 기존의 소형 SUV이자 스즈키와 공동개발한 세디치(Sedici)의 후속작이다. 500C의 디자인을 그대로 적용하여 전면부 헤드램프나 동글동글한 외관이 500C를 꼭 닮았다.[14] 플랫폼은 제너럴모터스와 피아트가 공동개발한 스몰 플랫폼의 변형인 스몰 와이드 4×4(Small Wide 4×4)를 이용하고, 지프 레니게이드와 플랫폼을 공용한다. 생산은 이탈리아 바실리카타 주 포텐차 현의 멜피에 위치한 공장에서 레니게이드와 함께 이루어진다. 엔진은 유럽 사양이 직렬 4기통 1.4L 멀티에어 II(140ps) SOHC 터보 가솔린 1종과 1.6L(120ps) 및 2.0L(140ps) 멀티젯 DOHC 디젤이 제공되고, 북미 사양은 1.4L 멀티에어(162ps) 터보 엔진과 크라이슬러제 2.4L 타이거샤크(182ps) SOHC 등 가솔린 엔진 두 가지가 제공된다. 변속기는 6단 수동을 기본으로 6단 듀얼클러치 미션이 장착되었고, 1.4L 터보 가솔린과 2.0L 디젤, 2.4L 가솔린 엔진은 ZF제 9단 자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다. 구동방식은 FF가 기본이고 4WD가 일부 트림에 제공된다. 대한민국 시장에서는 2016년 3월 24일에 출시되었고, 2.0L 디젤 및 2.4L 가솔린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린 버전이 수입되었다. 트림 체계는 2.4L 가솔린 사양의 팝 스타와 2,0L 디젤 사양의 크로스 및 크로스 플러스 트림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경쟁 차량 대비 높은 가격으로 판매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피아트의 철수에 따라 자연히 수입이 중단됐다.[10]
중형 SUV[편집]
- 피아트 프리몬트(Fiat Freemont): 수입차 2.0 디젤로는 유일한 7인승 풀타임 4륜구동(AWD)이다. 7개 풀사이즈 시트는 32가지 조합이 가능해 공간활용 면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인다. 2, 3열을 접으면 적재용량이 최대 1461ℓ에 달할 정도다. 2.0리터 I4 터보 디젤 멀티젯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최고 출력 170마력, 최대 토크 37.5㎏m를 낸다. 연비는 복합 기준 11.5㎞/ℓ다.[3] 프리몬트의 기본이 되는 자동차는 크라이슬러 산하의 닷지 브랜드의 저니(Dodge Journey)라는 모델이다. 저니는 한국시장에서 철수한 닷지의 캘리버의 후속모델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외형적인 이미지는 투박스럽고 야무진 미국 스타일이다. 아직까지 캘리버의 이미지가 차 이곳저곳에 스며들어 있다. 프리몬트는 미국에서 디자인되고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 및 조립된 후, 다시 유럽 시장으로 건너가 프리몬트라는 이름의 수입차로 판매된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닷지의 캘리버의 실내와 흡사한 구조이다. 대표적으로 닷지 차량에서 볼 수 있는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을 그대로 프르몬트에 적용시켰다. 센터페시아의 구조는 단순하다. 8.4인치 대형디스플레이창을 중심으로 3개의 다이얼구조의 버튼들이 자리잡고 있다. 인지하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하다. 또한 유커넥트(Uconnect)를 통해 다양한 미디어의 지원이 가능하고 알파인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8.4인치의 디스플레이창에 한국형 3D 내비게이션과 DMB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장거리 운전시 동반 어린이들 무료함을 달랠 수도 있다. 안전에 대한 사항들도 빠지지 않는다. 전좌석 사이드 커튼 에어백, 주행 보조 장치 ESC, TCS, 전자식 전복방지 시스템, 크루즈 컨트롤,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액티브 헤드 레스트, 능동적 보행자 보호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15]
스포츠카[편집]
- 피아트 쿠페(Fiat Coupé):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된 소형 2인승 스포츠카이다. 1993년 12월 볼로냐 모터쇼에서 선보였으며, 센트로 스틸 피아트(Centro Stile Fiat)에서 크리스 뱅글(Cris Bangle)의 독특하고 각진 외관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내부는 피닌파리나에 의해 설계되었다. 피아트 디자인의 황금기 시절 중 한대로 알려져 있으며 독특한 부채꼴 모양의 사이드 패널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페라리 디자이너 특유의 트윈 원형 테일 램프와 후드 위로 볼록하게 솟아오른 헤드램프, 스테인리스 주유구, 숨김형 타입의 도어 핸들까지 간결한 분위기를 가져오면서도 독특한 디자인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 파워트레인은 직렬 4기통 16V 1.8 리터, 2.0 리터와 직렬 5기통 트윈캠 20V 2.0 리터 엔진을 마련해 두었으며 추가적으로 4가통 16V 2.0 터보와 5기통 트원캠 20V 2.0 리터 터보 엔진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란치아의 고성능 모델인 '란치아 델타 인테그랄레'(Lancia Delta Integrale)에서 가져왔다. 5단 및 6단 수동변속기가 조합되었지만, 자동변속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피아트 쿠페가 판매되었으며, 직렬 4기통 16V 2.0리터 엔진의 터보 플러스 모델만 수입되었다. 2000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생산을 끝내면서 7년 동안 총 72,762대가 생산되었다.[16]
- 124 스파이더(124 Spider): 1966~1974년에 피아트에서 출시한 일본의 마쯔다 MX5와 동일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모델이다. 하지만 마쯔다 MX5보다 더 넓은 트렁크와 살짝 높은 성능, 조용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다. 모델 종류로 기본형인 클래시카(Classica), 고급형인 루소(Lusso), 고성능형 아바스(Abarth)가 있다. 기본형인 클래시카의 유럽 판매 가격이 1만9545파운드 (약 3250만원)부터로, 미국 판매 가격인 2만4995달러(약 2930만원)보다 조금 비싸다. 어댑티드 헤드램프와 LED 주간주행등, 오토 와이퍼와 아홉 개의 스피커를 갖춘 보스 사운드 시스템이 달리는 가장 비싼 루소 플러스는 2만3295파운드(약 3870만원)다.[17] 현재 판매 중인 124 스파이더 2세대는 1966년에 출시했던 1세대 피아트 124 스파이더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한 모델이다. 무려 31년 만에 다시 부활했는데, 같은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마쯔다 MX5보다 전장이 13cm 길고, 트렁크 공간은 0.3리터 정도 증가했다. 실내의 대시보드는 마쯔다 MX5와 동일한 디자인이다. 표준으로 3인치 디스플레이가 제공되며, 7인치 디스플레이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좌석은 2인승이며, 가죽으로 손질된 마이크로 화이버 시트가 장착되어 있다. 내부는 고품질의 소재가 사용되어 콤팩트하면서도 기능성이 뛰어나다. 그리고 피아트의 124 스파이더 아바스에서 꼽을 수 있는 큰 특징 중 하나는 차량 전체에 방음 유리와 단열재를 사용하여 주행 시 조용한 승차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1.4리터 멀티 에어 터보 엔진은 160마력을 얻지만 아바스 트림은 최고 출력 164마력과 184파운드-피트의 토크를 얻는다. 또한 로드스터를 즐길 수 있는 6단 수동 변속기로 기본 제공된다. 업그레이드된 빌스테인 스포츠 서스펜션과 미끄러움을 방지해 주는 장치는 코너링을 향상시켜 준다. 또한 운전자의 선호에 따라 주행을 더욱 역동적으로 할 수 있는 스포츠 모드가 있으며, 아바스눈 브램보 브레이크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트림 레벨이다.[18]
전기자동차[편집]
- 피아트 500 EV: 2020년 3월 공개된 피아트 500 4세대형 전기자동차이다. 기존의 컴팩트하고 개성 넘치는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장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전동화트렌드에 맞춘 파워트레인의 변화를 담았다. 신형 피아트 500은 피아트 500 고유의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전장과 전폭을 각각 60mm 확장하고 휠베이스를 20mm를 늘리며 실내 공간의 여유를 더했다. 이외에도 측면과 후면의 실루엣을 새롭게 다듬고 디테일을 개선하며 시각적안 만족감을 높였고, 고유의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나, 알로이 휠 디자인을 통해 이탈리아 브랜드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실내 공간 역시 기본적인 구성이나 특징은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한층 개선된 계기판이나 대시보드, 그리고 팝업 타입의 디스플레이 패널을 기반으로 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기능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전기차로 변화한 만큼 피아트 500은 전통적인 기어 시프트 레버 대신 기어 시프트 패널을 더했으며 실내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 및 디테일을 한층개선하며 전체적인 품질을 개선했다. 피아트 500의 핵심은 바로 전동화의 성공적인 도입이다. 118마력을 낼 수 있는 전기모터와 42kWh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했다. 이를 통해 피아트 500은 정지 상태에서 9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그리고 최고 150km/h의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1회 충전 시 320km(WLTP)의 주행 거리를 확보했으며, 85kW급 급속 충전이 가능한 온보드차저(OBC)를 장착해 즉각적이고 기민한 충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레벨 2수준의 자율주행 보조 시스템이 더해진다.[19]
국제 업무[편집]
유럽[편집]
피아트의 주요 시장은 주로 이탈리아에 집중된 유럽이다. 역사적으로 시티카와 슈퍼미니스 사업에 성공했던 피아트는 현재 이 두 분야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피아트사는 현재 대형 패밀리 카도, 임원용 카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장 부문은 피아트도 소유하고 있는 란치아와 알파로메오 브랜드가 어느 정도 커버하고 있다. 피아트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2000년 9.4%에서 2004년 여름 5.8%로 줄었다. 이 시점에서 피아트의 최고 경영자로 세르히오 마르치오네가 임명되었다. 이후 2009년 3월까지 그들의 시장 점유율은 9.1%로 확대되었다. 피아트는 1915년에서 1918년 사이에 5층짜리 링고토 공장을 세웠는데, 그 당시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자동차 제조 공장이었다. 나중에 토리노에도 미라피오리 공장이 세워졌다. 완전히 새로워진 피아트 128의 생산을 준비하기 위해 피아트사는 1968년 10월에 라이베타 공장을 열었다. 128대가 생산에 들어갈 때까지 이 공장은 850과 124의 스포츠 버전뿐만 아니라 피아트 디노의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피아트의 2018년형 승용차 엔진은 11대, 가솔린 8대, 다이엘 3대로 구성됐다. 현재 모델 범위는 다음과 같다.
- 시티카: 피아트 500(Fiat 500), 피아트 판다(Fiat Panda)
- 소형차: 피아트 티포(Fiat Tipo)
- 미니 MPV: 피아트 500L(Fiat 500L)
- 미니 SUV: 피아트 500X(Fiat 500X)
- 로드스터: 피아트 124 스파이더(Fiat 124 Spider)
2011년 Fiat 판매량은 최대 67만 6704건으로, 전년 대비 17.3% 감소된 결과였다.
Model | 2011년 매출 |
---|---|
피아트 푼토 | 220,343 |
피아트 판다 | 189,527 |
피아트 500 | 156,301 |
피아트 리나 | 35,499 |
피아트 브라보 | 31,673 |
피아트 세디치 | 14,777 |
피아트 프리먼트 | 13,651 |
피아트 알베아 | 8,951 |
피아트 이데아 | 5,982 |
경형 상용차는 유럽에서 피아트 프로페셔널이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피아트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 시장에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는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127대의 슈퍼미니와 128대의 소형 패밀리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판매되어 실용성과 효율성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피아트의 점유율은 1980년대 피아트 우노 1983년 6월부터 영국으로 수입되면서 영국 내 베스트 셀러로 더욱 증가했으며, 1994년 3월 피아트 푼토가 도착하기 전까지 1990년대 초반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2세대 푼토는 1999년 10월 출시 이후 영국에서 판매 호조를 보였지만, 2008년 1월에 출시된 현대판 피아트 500은 피아트의 영국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리지널 피아트 500은 1960년대 전성기 때 상징적인 미니의 몇 안 되는 직접적인 경쟁자 중 하나였다.[2]
남아메리카[편집]
피아트는 남미, 주로 수년동안 시장을 선도해 온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오랫동안 투자해 왔다. 1973년 그레이터 벨로 호라이즌테 시에 브라질 최초의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브라질 시장의 규모는 유럽과 유사하며, 프로젝트 178이라고 불리는 공통 플랫폼에서 생산되는 브라질을 위한 특별한 제품이 추가되었다. 팔리오 위켄드(Palio Weekend), 팔리오 어드벤쳐(Palio Adventure), 피아트 스트라다(Strada)가 이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브라질에서 개발된 우노, 팔리오, 그랜드 시에나, 피오리노, 토로, 아르고, 크로노스, 모비 등 다양한 신형 모델이 출시되었다. 다른 유럽 모델들, 예를 들면 피아트 500은 여전히 브라질로 수입되고 있다. 피아트는 브라질에서 피아트 브랜드인 유러피안 피아트 프로페셔널 경상용차를 판매하고 있다.[2]
북아메리카[편집]
피아트는 미국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08년, 피아트자동차가 국내에 설립되었고, 1년 후 뉴욕주 푸키프시에 있는 공장에서 피아트 60 HP, 피아트 16-20 HP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뉴저지 공장은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뒤 폐쇄됐다. 피아트는 1950년대에 북미로 돌아와 오리지널 500, 피아트 600 멀티플라, 피아트 1100, 피아트 1200, 피아트 1300을 판매했다. 그 해에 스포츠카인 피아트 124 스포츠 스파이더와 피아트 X1/9가 생산되었다. 이 두 스포츠카는 1980년 전체 생산의 거의 60%를 차지했을 만큼 미국 시장에서 성공적이었다. 대부분 녹이 슬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열악한 품질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북미 시장에서 피아트 자동차는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시대 동안 북아메리카에 마지막으로 소개된 피아트 모델은 1979년 2월에 소개된 스트라다였다. 이에 따라 미국 내 판매량은 1975년 10만 511대로 최고치였던 것이 1982년 1만 4113대로 떨어졌다. 1983년 스파이더와 X1/9가 각각 피닌파리나, 베르톤 배딩으로 소량 판매되고 있지만 피아트는 미국 자동차 시장을 떠났다. 그리고 2009년 1월, 피아트 그룹은 미국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의 지분 20%를 취득했다. 이 거래를 통해 피아트 브랜드가 25년 만에 북미로 복귀하게 되었다. 복귀 후 최초로 등장한 피아트 브랜드 모델은 당시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피아트 500 시티카 모델이었다. 피아트 500 모델은 멕시코 톨루카에 있는 크라이슬러의 조립 공장에서 만들어졌는데, 현재 피아트 프리몬트 크로스오버도 만들고 있다. 피아트사는 북미에서 램프로마스터와 램프로마스터시티로 리브랜딩된 상용차 피아트두카토와 피아트도블레도 판매하고 있다.[2]
아프리카[편집]
피아트 승용차는 1950년에 남아프리카에서 조립을 시작했고, 1966년에 로슬린 공장에서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었다. 1970년경 판매량은 약 5%의 최고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신형 128 베이스 반 톤짜리 픽업 트럭이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일조했다. 또한 El-Nasr 자동차 제조 회사를 통해 이집트에서 조립되었으며, 피아트 브랜드 125, 127, 128을 조립하였다.[2]
아시아[편집]
피아트의 중국 시장 진출은 유럽, 일본, 한국, 미국 경쟁국에 비해 한계가 있다. 2012년 초, 피아트는 피아트 브라보와 피아트 500 모델만 수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2년 피아트와 광저우자동차는 중국 시장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피아트 비아지오(Fiat Viagio)를 생산하기 위해 합작 투자 공장을 열었다. 피아트 비아지오는 피아트 모델인 닷지 다트(Dodge Dart)에서 파생된 소형차이다. 피아트는 일본 소비자들에게 500개의 쿠페와 컨버터블 바디 스타일, 그리고 팬더 스타일을 제공하고 있다. 피아트는 타타자동차와 합작해 1948년부터 인도 시장에 진출해 왔다. 인도 시장에 제공되는 모델은 피아트 푼토와 피아트 라이나이다.[2] 2013년 3월, 피아트가 다시 한국에 출범했다. 하지만 출시와 동시에 가격 논란에 휩싸였고, 소비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20]
각주[편집]
- ↑ 피아트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C%95%84%ED%8A%B8
- ↑ 2.0 2.1 2.2 2.3 2.4 2.5 2.6 Fiat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Fiat
- ↑ 3.0 3.1 3.2 임성현 기자, 〈(Brand Story) 100년 역사 피아트의 얼굴 친퀘첸토〉, 《매일경제》, 2013-10-22
- ↑ Giovanni Agnelli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Giovanni_Agnelli
- ↑ Sergio Marchionne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Sergio_Marchionne
- ↑ 이다비 기자, 〈(His 스토리) ‘줄담배 일벌레’ 마르치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를 살려내고 떠나다〉, 《조선일보》, 2018-07-26
- ↑ Michael Manley (CEO)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Michael_Manley_(CEO)
- ↑ 장박원 기자, 〈(CEO 인사이트) 마이크 맨리 FCA 사장의 '따로 또 같이'〉, 《매일경제》, 2018-08-01
- ↑ 엉클지, 〈피아트 500 (친퀘첸토)이야기와 1세대 피아트 클래식카〉, 《네이버 블로그》, 2017-03-02
- ↑ 10.0 10.1 10.2 피아트 500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D%94%BC%EC%95%84%ED%8A%B8%20500
- ↑ 박병하 기자, 〈(특별했던차)피아트 판다(Tipo 141) – 하편〉, 《모토야》, 2019-11-18
- ↑ 12.0 12.1 피아트 판다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D%94%BC%EC%95%84%ED%8A%B8%20%ED%8C%90%EB%8B%A4
- ↑ 모토야편집부, 〈유럽의 틈새시장을 노린 소형차, 피아트 티포〉, 《모토야》, 2019-01-18
- ↑ 이병희 기자, 〈(시승기) 깜직한 SUV '피아트 500X'...귀엽지만 연비, 소음은 아쉬워〉, 《조선비즈》, 2016-04-26
- ↑ 표영도 기자, 〈다목적 패밀리 카, 프리몬트(FREEMONT)〉, 《모토야》, 2013-12-11
- ↑ 싼마차, 〈크리스 뱅글과 피닌파리나의 손길, 피아트 쿠페 1993-2000 FIAT 175 Coupe〉, 《네이버 블로그》, 2017-08-28
- ↑ 서인수 에디터, 〈124 스파이더가 유럽에 상륙한다〉, 《더 네이버》, 2016-08-02
- ↑ 디파츠, 〈피아트 124 스파이더! 가성비 최고의 슈퍼카를 소개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2019-06-14
- ↑ 김학수 기자, 〈피아트, 전기차 전환을 알리는 '피아트 500' 공개〉, 《한국일보》, 2020-03-23
- ↑ 김상영 기자, 〈(기자수첩) 피아트를 현명하게 사는 법〉, 《모토그래프》, 2017-02-16
참고자료[편집]
- 피아트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C%95%84%ED%8A%B8
- Fiat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Fiat
- Giovanni Agnelli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Giovanni_Agnelli
- Sergio Marchionne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Sergio_Marchionne
- 피아트 500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D%94%BC%EC%95%84%ED%8A%B8%20500
- 피아트 판다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D%94%BC%EC%95%84%ED%8A%B8%20%ED%8C%90%EB%8B%A4
- Michael Manley (CEO)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Michael_Manley_(CEO)
- 임성현 기자, 〈(Brand Story) 100년 역사 피아트의 얼굴 친퀘첸토〉, 《매일경제》, 2013-10-22
- 표영도 기자, 〈다목적 패밀리 카, 프리몬트(FREEMONT)〉, 《모토야》, 2013-12-11
- 이병희 기자, 〈(시승기) 깜직한 SUV '피아트 500X'...귀엽지만 연비, 소음은 아쉬워〉, 《조선비즈》, 2016-04-26
- 서인수 에디터, 〈124 스파이더가 유럽에 상륙한다〉, 《더 네이버》, 2016-08-02
- 김상영 기자, 〈(기자수첩) 피아트를 현명하게 사는 법〉, 《모토그래프》, 2017-02-16
- 엉클지, 〈피아트 500 (친퀘첸토)이야기와 1세대 피아트 클래식카〉, 《네이버 블로그》, 2017-03-02
- 싼마차, 〈크리스 뱅글과 피닌파리나의 손길, 피아트 쿠페 1993-2000 FIAT 175 Coupe〉, 《네이버 블로그》, 2017-08-28
- 이다비 기자, 〈(His 스토리) ‘줄담배 일벌레’ 마르치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를 살려내고 떠나다〉, 《조선일보》, 2018-07-26
- 장박원 기자, 〈(CEO 인사이트) 마이크 맨리 FCA 사장의 '따로 또 같이'〉, 《매일경제》, 2018-08-01
- 모토야편집부, 〈유럽의 틈새시장을 노린 소형차, 피아트 티포〉, 《모토야》, 2019-01-18
- 디파츠, 〈피아트 124 스파이더! 가성비 최고의 슈퍼카를 소개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2019-06-14
- 박병하 기자, 〈(특별했던차)피아트 판다(Tipo 141) – 상편〉, 《모토야》, 2019-11-15
- 박병하 기자, 〈(특별했던차)피아트 판다(Tipo 141) – 하편〉, 《모토야》, 2019-11-18
- 김학수 기자, 〈피아트, 전기차 전환을 알리는 '피아트 500' 공개〉, 《한국일보》, 2020-03-2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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