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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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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Swiss
베른. 외관이 수백 년간 크게 변하지 않아 1983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취리히
루체른
제네바
로잔
16세기에 재건된 후 베른의 명물로 자리 잡은 시계탑.
인터라겐. 스위스 베른주에 위치한 도시

스위스(Swiss)는 중앙유럽에 있는 연방 공화국이며, 내륙국이다. 스위스의 수도는 법률상으로는 없으나, 베른이 사실상 수도 기능을 하고 있다. 스위스의 최대 도시는 취리히이다. 중세시대에 프랑크왕국, 신성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1291년 스위스 지역의 3인 대표가 국가의 기원이 된 영구동맹을 맺었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에 따라 독립을 승인 받았다.

개요[편집]

스위스는 유럽 중앙부에 있는 나라로서, 영어로 스위스(Swiss), 독일어로 슈바이츠(Schweiz), 프랑스어로 쉬이스(Suisse), 이탈리아어로 스비체라(Svizzera), 로만슈어로 주비츠라(Svizra)라고 한다.

스위스의 정식 국명은 헬베티아 연방(라틴어: Confoederatio Helvetica 콘포이데라티오 헬베티카)이지만, 스위스 연방(영어: Swiss Confederation 스위스 컨페더레이션, 독일어: Schweizerische Eidgenossenschaft 슈바이처리셰 아이트게노센샤프트, 프랑스어: Confédération suisse 콩페데라시옹 쉬이스, 이탈리아어: Confederazione Svizzera 콘페데라치오네 스비체라, 로만슈어: Confederaziun svizra 콘페데라치운 주비츠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가 도메인은 .ch으로 Confoederatio Helvetica의 약자이다. 타칭 국명은 스위스 연맹을 지도적으로 형성했던 슈비츠(Schwyz)주에서 유래하였고, 정식 명칭은 로마제국 시기의 헬베티족 또는 갈리아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에 비해 영세중립국으로 잘 알려진 국가다. 헌법상의 수도는 따로 없지만 연방의회와 국제기구가 많이 위치한 베른이 사실상 수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대 도시는 취리히이다. 스위스의 인구는 8,544,000명이다. 지정학적 의미로 분류할 때 스위스는 중앙유럽으로, 정치경제적 의미로 분류할 때는 서유럽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스위스는 유럽연합(EU) 국가는 아니다. EFTA(유럽자유무역연합, 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 가입국이지만, EFTA에 가입한 다른 국가(리히텐슈타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함께 유럽연합에 가입을 하지 않았다. EU 가입신청 시 즉시 승인이 날 만한 국가이지만, 영세중립국이라는 명목으로 EU 가입을 않고 있으며, 스위스의 보호국인 리히텐슈타인도 마찬가지로 스위스의 정책을 따른다는 이유로 영세중립국을 유지하고 있다. EFTA에 가입되어 있어 EU 가입국과 거의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으며, 또한 솅겐조약에 가입되어 있어서 주변국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에는 여권이 필요하지 않다. 더불어 WTOOECD의 가입국이다. 영세중립을 이유로 오랫동안 UN에도 가입 않다가 2002년에야 가입했다. 유럽 연합, NATO 등에도 가입하지 않은 나라로, 덕분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중립국감독위원회로 자리잡고 있다.

면적은 41,285km²(412만 9,039㏊)로 네덜란드랑 거의 똑같은 크기고, 남한의 41%, 경상도보다 좀 더 크다. 26개의 칸톤이 연방을 이루고 있다. 반주(半州)를 하나의 주로 볼 것인가, 두 개의 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주의 숫자가 달라질 수 있었으나 1999년 연방헌법 개정으로 이제는 반주도 하나의 주로 취급한다. 칸톤은 미국의 주 개념과 비슷한데, 헌법상 영구적 지위를 부여받으며 사실상 별개의 나라 수준의 자치도를 가지고 있다. 각 칸톤은 외교권과 중무장 병기만 없다. 하지만 최근 통과시킨 새 헌법에 따르면 각 칸톤에도 일정 수준의 외교권을 부여한다고 한다.

인구는 900만 명도 안 되나, 영업이익 기준으로 SK하이닉스 수준의 대기업을 4개나 보유하고 있는 초강소국이다. 타미플루로 유명한 로슈, 네스카페로 유명한 네슬레, 글리벡으로 유명한 제약사 노바티스, 키보드, 마우스 제조회사인 로지텍, 시멘트 기업 홀심, 전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전기, 전자 종합회사인 ABB가있다. 임플란트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트라우만, SIC임플란트를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국가인데도 제조업이 강세이며, 로슈와 노바티스라는 양대 축을 가진 제약업이 스위스 전체 수출의 30%를 담당하고 있다. UBS와 크레디트스위스를 비롯한 금융산업도 매우 강세인 편. 특히 스위스가 만들어내는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오토매틱 손목시계로, 유명한 시계 브랜드인 롤렉스를 비롯해 다수 럭셔리 브랜드들의 연고지이다. 또한, 시계마니아들 사이에서 소위 Big 5 라고 불리는 워치메이커 중 4개가 스위스 회사이고, 나머지 하나는 독일 회사지만 이마저도 스위스 회사에서 인수했다.

화폐는 스위스 프랑(CHF)을 사용한다. 2011년 하반기부터 1프랑당 1.2유로의 최저환율제를 도입하였으나, 2015년 03월 18일 기준으로 포기하였다. 유로화 사태 시작 전인 2008년만 해도 외환보유고는 800억 달러로 대한민국의 1/4 수준이었으나, 유로화와의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무제한 매입에 들어가 2014년 5,300억 달러를 기록해 세계 3위로 7위인 대한민국보다 높다. 평균 연봉은 9만 스위스 프랑(한화 약 1억 원), 실업률은 3% 미만으로 주변 유럽 국가와 경제력 수준 차이가 크다 보니, 전쟁의 위험이 사라진 현재에도 상대적으로 배타적인 정책들을 취하고 있다.

국가 상징[편집]

국호[편집]

공식 명칭은 헬베티아 연방(Confoederatio Helvetica). 헬베티아는 로마 시대 이전부터 스위스 지역에 거주하던 헬베티족에서 따온 라틴어명이다. 지역마다 언어가 달라 스위스의 공용어가 4개나 되기 때문에 라틴어로 공식 명칭을 지었다. 그 4개 언어를 병기할 공간이 없거나 기타 이유로 한 언어로만 표기해야 할 경우에는 이 언어 중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닌 라틴어를 사용한다.[23]

라틴어 이외의 각 언어의 명칭은 모두 오늘날 스위스의 모체가 되는 스위스 동맹을 처음으로 주장한 지역인 슈비츠에서 유래했다. 한국어 명칭 스위스는 영어의 스위스에 대한 형용사형 Swiss나 프랑스어의 Suisse에서 따온 것인데, Swiss도 결국 Suisse에서 따온 것이므로 프랑스어 이름에서 온 것이다.

스위스의 국가 코드는 일반적으로 CH를 쓰는데, Confoederatio Helvetica의 약자이다. 국가 도메인이 .ch인 이유도 마찬가지. 한편 IOC나 FIFA 등에서는 프랑스어 기준 약자인 SUI를 쓴다.

국기 · 국장[편집]

스위스의 국기  
스위스의 국장  

빨간색 바탕에 백십자가 그려진 국기인데 유럽에서는 덴마크와 함께 오래된 국기로 손꼽히고 있다. 슈비츠 주의 주기에서 따온 것으로, 1499년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독립한 뒤, 1841년 도안, 1848년 공식 국기로 지정하였다. 국기의 의미는 자유, 명예, 충성을 나타내었지만 현재는 영세 중립, 민주주의, 평화, 보호 등을 뜻한다. 전신인 스위스 서약동맹에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슈비츠 주와 함께 뇌샤텔 주도 백십자를 포함하여 사용하고 있다.

적십자기가 이 깃발의 색을 반전한 것에서 유래했다. 국제 적십자사의 창설자 앙리 뒤낭이 자신의 모국의 국기에서 창안해 적십자기와 '적십자' 명칭을 제정했다. 스위스의 중립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국가[편집]

국가는 스위스 찬가이다. 작곡가인 알베리히 츠비시히(Alberich Zwyssig)가 가톨릭 수도사였기 때문에 기독교 찬송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가사는 레온하르트 비트머(Leonhard Widmer)가 붙였는데 1절부터 4절까지 있으며 독일어 가사, 프랑스어 가사, 이탈리아어 가사, 로망슈어 가사 모두 존재한다.

본래 스위스는 스위스 연방을 결성한 1848년 이래 공식적인 국가가 없었으나 이 곡이 국가처럼 쓰였다. 스위스가 이 노래를 공식적인 국가로 채택하지 않은 것은 국민들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국가에 반영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 Rufst du, mein Vaterland 라는 노래(영국 국가에서 가사만 바꾼 것)가 공식적인 국가로 채택되었다. 현재의 국가가 공식 국가가 된 것은 1961년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가로 쓸지 재심의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1981년에는 이런 규정을 없애고 공식 국가로 확정했다.

지리[편집]

스위스는 동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과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는 프랑스, 남쪽으로는 이탈리아, 북쪽으로는 독일과 국경을 접한다. 네 방면이 모두 육지이기 때문에 바다는 없지만 대신 큰 호수들이 많다. 알프스 한복판이지만 의외로 조산대의 영향으로부터 빗나가 있기 때문에 대형 지진은 드물다.

스위스는 지리적으로 산이 많은 지형이기 때문에 만년설, 빙하도 많다. 하지만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사라질 위기를 겪고 있다. 이미 스위스내의 빙하중에는 사라지고 있는 빙하가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스위스 내무부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알프스의 빙하가 지난 5년동안 10%이상이 녹아서 사라졌다고 밝혔다.

스위스에 주요 국제기구 본부가 많은 관계로 영토가 좁은데 비해 유럽국가치고 한국인에게 알려진 도시가 많은 편이다. 취리히(FIFA), 제네바(UN 유럽본부), 베른(만국우편연합), 로잔(IOC), 바젤(국제결제은행) 등 스위스 이곳저곳의 도시들이 스위스도 안 가본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다.

지형[편집]

스위스 북동부에 있는 알프스 산맥 최대의 빙하 '알레치'. 연합DB.jpg
라우터브루넨
라인폭포
우주에서 본 융프라우-알레치
스위스 관광의 백미로 꼽히는 해발 2천132m의 필라투스 산. 경사가 45。를 넘어 톱니바퀴가 달린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간다.
아름답고 깨끗한 스위스의 자연 풍경을 간직한 루체른 호수.

스위스는 높은 산과 깊은 계곡, 잘 보존된 울창한 산림, 높은 고원지대의 방목지 그리고 전국에 산재한 호수로 대표적인 환경 청정국가로 알려져 있다. 스위스의 면적은 412,285㎢이며 지리적으로 중서부 유럽에 위치하고 남북으로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어 다양한 기후와 지리적 특성을 갖는다. 지정학적으로 스위스는 남쪽으로 알프스 산맥(the Alps), 중부지역의 스위스 고원(Swiss Plateau) 그리고 남서 방향으로는 프랑스와 스위스 사이에 걸쳐있는 쥐라산맥으로 구성되어있다.

쥐라산맥은 남쪽의 알프스산맥에 비해 해발고도가 낮으며, 주로 중생대의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습곡산지이다. 스위스 영내의 쥐라산맥 중 최고점은 1,679m로 비교적 낮은 해발고도이지만, 이 산지는 유럽 교통상의 일대 장애였다. 본래 쥐라산맥 지역은 농업과 임업이 활발한 지역이었는데, 겨울철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시작된 시계공업이 지금은 스위스의 대표산업이 되었다. 북쪽의 쥐라와 남쪽의 알프스의 두 산지에 낀 중앙저지는 습곡작용을 그다지 받지 않은 곳이며 주로 제3기층으로 된 해발고도 300~800m의 완만한 구릉성 지역이다. 빙하퇴적물에 막혀서 형성된 레만·뇌샤텔·취리히 등의 대도시가 있고, 인구밀도가 높다.

알프스 산맥은 스위스 남부에서 중부까지 영토의 약 60% 그리고 스위스 고원지역은 영토면적의 약 30% 정도를 점하여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보기 드물게 산지가 많은 국가이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스위스의 인구밀도는 평방킬로미터당 195명이지만 평야지대가 많은 중부지역에 보다 많은 인구가 거주한다. 단적으로 알프스 산맥으로 구성된 그라우뷘덴주는 스위스에서 가장 면적이 큰 주이지만 인구밀도는 평방키로미터당 27명에 불과하다.

스위스에는 4,000m 이상 높이를 가진 산이 45개나 있을 정도로 산악지대가 많은 지형적 특성을 지닌다. 해발 4,634m의 몬테로사(Monte Rosa)는 스위스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알프스산맥을 통틀어 프랑스에 있는 몽블랑(몽블랑(Mont Blanc)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해발 4,478m인 마테호른산(Matterhorn)이 스위스를 대표하는 산으로 널리 알려져 산악인들의 등반코스로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또한 산이 많은 만큼 여러 큰 강들이 국토를 가로질러 흐른다. 라인강, 론강, 인강, 그리고 티치노강 등 유럽대륙의 주요 강의 발원지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강인 라인강은 길이가 1,230km에 달하며 스위스에서 발원하여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을 따라 북해로 흐른다. 또한 총길이 813km에 달하는 론강은 스위스에서 발현하여 프랑스를 거쳐 유럽의 강 중 유일하게 지중해로 연결된다.

스위스에는 약 1,500여개에 달하는 호수가 국토전역에 산재해 유럽전역 민물담수의 약 6%를 보유하여 서유럽중부유럽 전역에서 주요한 수자원의 보고이다. 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인 제네바호(lake Geneva)는 레만호(Lac Léman)로 더욱 널리 불리며 프랑스와 공유하는 유럽의 대표적 호수이다. 또한 보덴호는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북쪽은 독일 그리고 동쪽은 오스트리아와 접하며, 호수로 인해 주변지역 기온이 온화하여 포도재배가 활발하다. 이외에도 마조레호는 이탈리아 북부와 접하는 주요한 호수이다.

베른주에 위치한 도시인 라우터브루넨은 빙하계곡에 위치하여 72개의 폭포와 골짜기로 형성되어 그림 같은 풍광으로 유명하다. 또한 라우터브루넨은 해발 4,158m로 스위스의 가장 유명한 관광코스인 융프라우산이 위치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되었다. 남동부 그리종(Graubünden)주의 엥가딘계곡(Engadin Valley)은 베르니나산맥(Bernina Range)에 위치하며 해발 4,049m에 달하는 베르니나봉(Piz Bernina)으로 유명한 곳이다.

기후[편집]

스위스의 기후는 전반적으로 온화하지만 산지가 많아 지형에 따른 기후 변화가 심하고 지역 간 기후도 다양하다. 단적으로 이탈리아와 접한 마조레호(lake Maggiore)는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로 야자수도 자라지만, 깊은 계곡은 추운 지방에서 서식하는 종려나무가 분포하며 알프스 산맥 정상은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여름철인 7~8월 기온은 18~28°C 사이로, 덥고 습하며 비가 자주 내려 초원지대의 경우 축산에 유리하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5월부터 여름 기온을 보이기도 하며 한여름에는 30°C 이상 기온이 오르기도 한다.

겨울인 12~2월 기온은 –2°C에서 7°C 정도로 온난하지만 비교적 건조하며 산지는 기온이 급격이 내려가고 눈이 많이 내린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후 온난화로 강설량이 이전보다 줄어 여러 스키 리조트에서는 인공눈을 살포하는 실정이다. 한편 봄철인 3월부터 6월 그리고 가장 건조한 계절인 9월부터 11월까지의 가을에는 평균 기온이 8°C에서 15°C 사이로 활동하기 쾌적하다.

스위스는 높은 산지로 이루어진 지형의 특성상 연중 (Föhn) 현상이 자주 일어 갑자기 덥고 습한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기도 하며 알프스 남쪽지역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그러나 스위스 남동부의 그리종(Graubünden)주를 비롯해 산간지역의 경우 높은 알프스 산맥에 가로막혀 비구름 형성이 어려워 매우 건조한 기후를 보이기도 한다. 반면에 고도가 높은 티치노주는 때때로 해가 내리쬐는 동안에도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스위스는 산지가 많고 기후 온난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 매년 기온 변동이 심한 편이다.

생태환경[편집]

스위스는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지역이 195m, 가장 높은 곳은 4,600m에 이르러 고도에 따른 기온차가 크고 고도, 토양, 일조량, 그리고 지형적 특성이 다양해 좁은 영토에 다양한 동식물이 분포한다. 스위스의 남부지역인 티치노주, 발레주 그리고 그라우뷘덴(Grisons) 계곡은 지중해성기후를 보여 관목과 밤나무가 자생하고 토마토, 포도 및 살구나무가 재배된다. 남부의 가파른 지형 역시 기후가 온난해 농작물 재배가 가능하지만 관계수로 등 인위적인 설비를 갖추지 않으면 농업이 어렵다.

북부지역의 해발 1,400m 이하 지역은 남부보다 추운 기후로 너도밤나무, 단풍나무 및 떡갈나무 등 낙엽송이 주로 자라며 천연림이 넓게 분포한다. 또한 고도가 높은 지역에는 소나무, 가문비나무와 전나무 등의 침엽수림이 자생하는데 상당수의 수목은 인공적으로 가꾼 조림목이다. 한편 알프스 산지는 여러 식물이 자생하며 해발 500m까지는 관목이 자라므로 소와 양의 방목이 가능하다. 그러나 해발 1,800m 이상의 고지대는 동양의 분재와 비슷한 작은 관목이 드문드문 분포하여 방목이 힘들고 해발 2,300m 까지는 다양한 야생화와 초지가 펼쳐져 있다. 이외에 3,200m 이상의 고도에는 이끼와 지의류 이외에는 식물이 자랄 수 없다.

라보 포도원 테라스

스위스에서 자생하였던 곰, 늑대, 스라소니와 비버 등 야생동물은 20세기 들어 거의 멸종되었으며 토끼도 매우 드물고 사슴과 담비 정도만 숲속에 서식하며 때때로 교외에서도 관찰된다. 최근 수십 년간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늑대가 관찰되고 있며 강과 호수에는 약 800여 마리의 비버가 살고 있다. 이외에 알프스 산지에는 영양과 다람쥐 등이 분포하며 야생 염소는 멸종되었다가 인위적인 복원을 통해 적은 개체수가 서식한다. 스위스의 야생동물은 20세기 들어 멸종 혹은 수가 줄어든 반면, 조류는 약 200여 종 가까이 서식한다. 되새, 딱새, 꾀꼬리, 굴뚝새, 백조, 딱따구리와 찌르레기 등 다양한 종류의 야생 조류들이 서식한다. 알프스 산지에 살던 독수리는 개체 수가 줄어 거의 멸종하였으나, 복원 작업으로 적은 개체 수가 생존하고 있다.

환경정책[편집]

스위스는 국토 전역에 걸쳐 알프스 산맥이 걸쳐있어 평야지대가 주를 이루는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와 달리 기후변화에 보다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여건을 고려하여 스위스는 각 지역마다 고유한 친환경 정책을 실행하는데 특히 관광객이 많이 찾는 산악지대에 위치한 마을과 도시는 환경보존과 관광산업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따라 스위스는 2018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규모가 유럽연합(EU) 평균 보다 14% 정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환경 청정국가이다.

세계경제포럼이 전 세계 180개국을 조사하여 발표하는 환경평가지수(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에 따르면 스위스는 매년 최고 수준의 환경 선진국으로 분류되어왔다. 2020년 스위스의 환경평가지수는 덴마크와 룩셈부르크에 이어 3위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지열과 수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대와 정부차원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의 효과적 운영에 기인한다.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환경과 기후변화 대응을 효과적으로 연계하여 시행하는 국가이다. 2017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은 운송 32%, 주거와 빌딩 27%, 산업 20%, 농업 14%, 그리고 수력발전을 포함한 기타 7%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 규모가 큰 운송부분에 정책이 집중되어 있다. 스위스는 2005~2017년 기간 온실가스 배출 규모를 매년 평균 1.2%씩 감축하여 1990년 대비 12%를 감축하였고, 이는 도쿄의정서(Tokyo Protocol)에서 제시한 감축안 8%를 상회하고 있다.

스위스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2008년부터 난방용 유류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기술기금을 조성하여 산업계에 진행하는 온실가스 배출저감 기술과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재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정부는 환경보호 차원에서 공유경제 활성화를 위한 여러 지원책 시행으로 카쉐어링이 확대되고 있다. 각 주에서도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 자동차에 세금 부과를 완화하는 정책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신차 구매자의 3%만이 전기자동차를 선택하였는데 높은 차량가격과 충전소 부족 등 여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스위스는 국제사회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대응하는 국가로 한국과 멕시코와 함께 기후변화협약(UNFCCC) 내 환경협력그룹(Environmental Integrity Group)의 창립국가이다. 2000년 교토의정서 협의과정에서 스위스의 주도로 결성된 환경협력그룹은 기후변화 대응에 공동협력을 취하기 위한 국가 간 협상그룹이다.

역사[편집]

1848년 이래로 스위스 연방은 상대적으로 자치적인 주들로 이루어진 연방공화국이었으며, 그중 일부는 7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연방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 중 하나이다.

이 지역의 초기 역사는 고산 문화와 관련이 있다. 스위스에는 헬베티족이 거주했으며,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갈로로마인 문화는 고대 후기에 게르만 영향과 융합되어 스위스 동부가 알레만족의 영토가 되었다. 스위스 지역은 6세기에 프랑크 제국에 편입되었다. 중세 시대에 동부는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슈바벤 공국의 일부가 되었다. 서쪽 부분은 부르고뉴의 일부였다.

중세 후기에 구스위스 연방(8개 주)은 합스부르크 가문과 부르고뉴 공국으로부터 독립을 확립했고, 이탈리아 전쟁에서는 밀라노 공국으로부터 알프스 남쪽의 영토를 얻었다. 스위스 종교 개혁은 남부 연합을 분열시켰고, 근세에 13개 주 사이의 내부 투쟁의 역사를 초래했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스위스는 1798년 프랑스의 침공에 함락되어 프랑스의 위성국가인 헬베티아 공화국이 되었다. 나폴레옹의 1803년 중재법은 스위스의 지위를 연방으로 회복시켰고, 나폴레옹 시대가 끝난 후 스위스 연방은 혼란기를 겪었으며, 1847년 짧은 내전과 1848년 연방 헌법 제정으로 절정에 달했다.

1848년 이후 스위스의 역사는 대체로 성공과 번영의 역사였다. 산업화는 전통적인 농업 경제를 변화시켰고, 세계 대전 중 스위스의 중립성과 은행산업의 성공으로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경제 국가 중 하나로 부상했다.

스위스는 1972년 유럽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양자조약을 통해 유럽통합 과정에 참여해 왔지만, 그 영토가 1995년 이후로 거의 완전히(극소 국가인 리히텐슈타인 제외) EU 회원국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의 완전한 가입을 거부한 것이 두드러졌다.

기원[편집]

유적 발굴을 통한 조사로 현재의 스위스 지역에는 기원전 1,000년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위스는 호수와 빙하 부근에서 기원전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유적은 스위스 서부 뇌샤텔호(Lac de Neuchâtel)에서 발견된 기원전 450년 철기시대 겔트족의 마을 유적이다. 또한 2017년 스위스의 아우세르실(Aussersihl)에서 기원전 200년에 사망한 40세 가량의 온전한 여성의 시체와 당시의 유물이 발견되어 고고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기원전 4세기부터는 갈리아 부족의 일파인 헬베티족(Helvetii), 에트루리아인(Etruscans) 그리고 로마민족이 거주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기원전 스위스에 거주하였던 사람들은 이후 이탈리아, 북부 독일, 스코틀랜드와 스칸디나비아 등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한다.

스위스가 역사에 최초로 기록된 것은 2세기경 로마에서 스위스 지역에 거주하는 켈트족의 일파인 헬베티족(Helvetii)이 언급되면서이다. 그러나 스위스에는 이미 기원후 1세기경부터 로마인 보다 앞서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하였던 에르투리아인(Etruscans)의 후손인 리에티아인(Rhaetians)이 동쪽 알프스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또 유사한 시기 현재의 독일 서남부 지역인 스위스 중앙고원에도 사람이 거주하였다.

로마의 지배기[편집]

로마 시대 스위스 지도

스위스는 기원전 1세기부터 1세기까지 200여 년간 점진적으로 로마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어 5세기까지 로마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현재의 스위스 남부에 위치한 티치노주(Ticino)를 점령하였다. 이후 로마는 현재의 제네바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기원전 58년 로마황제 시저(Julius Caesar)는 스위스 고원지대에 거주하는 겔트족 일파인 헬베티족이 게르만족의 침략을 피해 남하하는 것을 막았다. 당시 시저는 스위스 지역을 로마제국과 이민족 거주지역과의 완충지대로 생각해 스위스에 거주하는 민족의 이동을 통제한 것이다. 시저가 죽고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역시 스위스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의 남하를 철저히 통제하였다.

로마의 점령기 동안 스위스는 5개의 지역으로 분할되어 느슨하게 통치되어 스위스 각 지역의 민족들은 지역 내에서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스위스의 공용어는 라틴어였지만, 겔트어도 여전히 통용되었다. 로마는 스위스 각 지역의 통치를 위해 건축물과 라틴어 교육 학교를 지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 겔트문화는 사라지고 로마화 되었다. 로마의 입장에서는 스위스가 무역과 전쟁을 위해 유럽의 북부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이에 따라 로마는 바젤(Basel)에 인접한 아우구스타 라우리카(Augusta Raurica), 베른(Bern) 그리고 인근의 아벙슈(Avenches) 등 주요 지역에 도로를 구축하고 기간시설을 다수 건설하였다.

스위스는 서기 3세기경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로마의 북부 국경지역에는 라인강을 따라 요새화된 도시들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401년 고트족(Goth)이 침입하자 로마군은 북부 알프스에서 철수하여 스위스는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또 3~4세기에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지리적 경계가 만들어진 시기이다. 알레마니 민족은 스위스 북부로 이동하여 현재의 스위스 독일어권을 형성하였다. 또한 스위스 서부에서는 겔트어 방언이 소멸하면서 프랑스어가 사용되었다. 이외에 알레마니 민족이 정복에 실패한 티치노(Ticino) 지역에서는 라틴어 방언을 사용하였는데, 현재의 이탈리아어와 로망슈어의 모태가 되었다.

한편 381년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이후 로마의 지배에 있던 스위스에도 기독교가 보급되어 여러 도시에 교회가 들어섰다. 로마가 물러난 이후에도 스위스는 기독교 왕국인 부르고뉴왕국(kingdom of Burgundy)의 지배를 받아 대부분의 지역이 기독교화 되었다. 다만 독일계 알레마니 부족은 7세기까지도 이교도로 남아 있다가, 아일랜드 수도사들의 선교로 뒤늦게 기독교화 되었으며, 7세기 무렵에는 스위스 전역에 여러 수도원이 들어섰다. 당시 수도원은 많은 땅을 소유하여 본격적으로 농업기술을 발전시켰고 독일계 지배계층과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민족의 스위스 침입과 지배기[편집]

스위스는 로마가 물러난 이후 4세기부터 10세기까지 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게 되었다. 로마의 지배가 끝나고 게르만계 왕조인 부르고뉴왕국(kingdom of Burgundy)이 스위스 서부를 지배하였고, 게르만계 부족의 연맹체인인 알레마니(Alemanni)는 중부와 동부, 그리고 알파인 지역은 로마제국 시대에 로마화된 갈라로마인(Gallo-Roman)이 거주하였다. 그러나 3세기경에는 독일계 부족인 알레마니가 훈족의 침입을 피하여 스위스 서부와 중부 고지대까지 진출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이민족의 침입으로 스위스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남부 알프스 지역으로 후퇴하였다.

6세기에는 스위스의 알레마니와 롬바르드 지역이 서쪽 지역에서 침입한 독일계 프랑크족(Frank)에 점령 당하였고, 9세기에는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 the Great)의 영토가 되었다. 샤를마뉴 대제 사망 이후 프랑크 제국이 분열되었지만 스위스는 11세기까지 독일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9~10세기에는 무슬림 왕조인 사라센(Saracens) 제국이 서부 알프스 지역을 점령하였다가 스위스 내 프랑크족에게 밀려 퇴각하였다. 이후에도 917년 헝가리인들이 스위스를 침공하여 바젤(Basel)을 점령하고 여러 수도원을 파괴하였다. 이후 955년 독일의 오토 1세(Otto I)에 의해 헝가리인은 스위스에서 퇴각하였다.

이후 스위스는 925년부터 1125년까지 200년간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 하에서 스위스에는 사보이백국(County of Savoy) 등 몇몇 가문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스위스를 통치하였다. 당시 스위스는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화폐발행, 관세징수, 법원과 시장 운영 등 다방면에서 폭넓은 자치권을 인정받아 경제적으로 풍족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새로운 경작기술의 발달과 토지를 소유한 자작농이 형성되어 농업 생산력이 증대하였다. 이는 인구 증가를 가져와 상인과 예술인 계층이 형성되어 경제, 사회적으로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중세 시대[편집]

1291년 우리(Uri), 슈비츠(Schwyz) 그리고 운터발덴(Unterwalden) 등 스위스 내 세 개의 마을은 연방헌장(Federal Charter)을 채택하여 느슨한 연방을 구성하였다. 3개의 마을 간 연방구성은 외부의 침략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당시 스위스 연방에 참여한 도시와 마을은 각각이 고유한 행정시스템을 갖고 정기적으로 만나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하였다. 이후 연방에 참여한 3개의 마을대표는 1307년 뤼틀리 서약(Rütli Oath)을 체결하여 상호결속을 맹세하였다. 뤼틀리 서약은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von Schiller)가 1804년에 쓴 《윌리엄 텔(William Tell)》에 언급되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뤼틀리 서약은 3개의 마을이 수차례 동맹을 맹세하였지만 최초로 이러한 맹세를 문서화한 것이며 스위스 연방을 지탱하는 오랜 전통의 근거가 되었다.

스위스 연방은 1332는 루체른(Lucerne), 1351년 취리히(Zurich), 1352년 글라리스(Glarus)와 쥬크(Zug) 그리고 1353년 베른(Bern)의 참여로 1481년까지 7개의 마을과 도시로 유지되었다. 이후 1415년에 오스트리아 영토인 아르가우(Aargau)와 1460년에 역시 오스트리아 영토인 투르가우(Thurgau)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후에도 스위스 연방은 주위의 여러 도시를 병합하여 연방의 관할권 하에 두었고 일부 지역은 연방으로 편입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평화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며 도시와 마을은 이해관계를 두고 대립하기도 하였다.

1474~1477년 사이에 벌어진 부르고뉴 전쟁(Burgundian Wars)에서 스위스의 도시와 마을들은 연방으로 하나가 되어 부르고뉴군을 격파하여 유럽에서 최강의 군사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4~15세기 서유럽에서는 부르고뉴공국이 세력을 확대하면서 스위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부르고뉴 전쟁은 원래 부르고뉴 공국과 프랑스 간 서유럽의 패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었으나 스위스 연방은 프랑스 편에 서서 참전하여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부르고뉴 전쟁을 계기로 스위스 연방의 결속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한편으로 부르고뉴 전쟁을 통해 라이슬로이퍼(Reisläufer)로 불리는 스위스 용병이 탄생하여 이들은 15세기 이후 타 유럽국가에서 급여를 받고 전투에 참여하여 스위스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스위스 연방은 1499년 슈바벤전쟁(Swabian War)과 1515년 마리냐노전투(Battle of Marignano)를 계기로 용병 배출과 군사적 팽창에 종지부를 찍고 중립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499년 슈바벤전쟁은 스위스 연방이 북쪽으로 확대되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한 합스부르크 제국이 벌인 전쟁이었다. 슈바벤전쟁에서는 스위스가 승리하여 합스부르크제국의 막시밀리언 1세(Maximilian I)는 사실상 스위스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본 전쟁으로 스위스 연방이 원했던 북부지역으로의 영토 확장은 좌절되었고, 스위스는 이후에도 1648년까지 합스부르크 제국의 일원으로 남아 있었다.

곧이어 스위스 연방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드 지역에 대한 영토확장 욕심으로 1510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북부도시와 합스부르크 및 프랑스 간 전개된 이탈리아 원정전쟁(Italian campaigns)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스위스 연방은 1515년 마리냐노전투에서 프랑스에 패하여 이후 중립국으로 외교노선을 변경하였다.

종교개혁

스위스의 종교개혁은 1518년 이후 취리히의 대성전 교회의 사제인 훌드리히 츠빙글리에 의해 주도된 1523년에 시작되었다. 프리부르와 졸로투른은 가톨릭을 유지했다. 글라루스와 아펜첼은 분할되었다. 이로 인해 1529년과 1531년에 여러 주 간의 종교 전쟁(Kappeler Kriege)이 발생했는데, 이는 각 주가 반대하는 종교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두 개의 의회, 즉 아라우에서 개신교 모임과 루체른에서 가톨릭 모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바덴에서 일반적으로 만나는 공식적인 전체 의회가 있었기 때문에 연방은 살아남았다.

근대 스위스[편집]

16세기 이후 서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양편으로 나뉘어 대규모의 전쟁을 벌였는데 스위스에도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쳐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기틀이 되었다. 1618부터 1648년간 진행된 30년전쟁으로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쟁에 휘말렸지만 스위스는 중립을 고수하였다. 그 결과 전후 베스트팔렌조약이 체결돼 스위스는 공식적으로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았다. 스위스가 완전한 주권국가가 되었지만 내부에서는 1653년 농민반란(peasant war) 그리고 1656년과 1712년에는 가톨릭과 신교도주 간에 전쟁을 겪으며 혼란이 일었다.

그러나 스위스는 점차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각 주마다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게 되었다. 스위스 연방은 17세기 들어 6개 주(canton)가 참여하는 의회를 결성하고 취리히, 바젤 그리고 샤프하우젠 등 주요 도시에서는 상인조합인 길드(guild)가 결성되어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베른(Bern)과 루체른(Lucerne) 등 여러 도시에서는 일부 귀족이 도시를 통치하면서 일반 시민과 농민들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계층 간 정치, 경제적 격차가 존재하였다.

1798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이후 프랑스는 스위스를 점령한 뒤 위성국가로 헬베티아공화국(Helvetic Republic)을 세워 스위스의 오랜 지방분권화 전통을 무시하고 중앙집권화 된 통치를 하였다. 이에 스위스 각지에서 프랑스 통치에 반발이 야기되었고 급기야 1798년 스위스에서 니트발텐 혁명(Nidwalden Revolt)으로 불리는 봉기가 일었으나, 프랑스군에 의해 제압되었다. 그러나 1803년 나폴레옹은 스위스 정치 지도자들과 중재법(Act of Mediation)으로 불리는 확약을 맺고 스위스 연방의 자주권을 인정하였다. 이후 1815년 빈회의(Congress of Vienna)에서 유럽열강들은 스위스의 독립과 중립국 지위를 승인하고 발레주(Valais), 뇌샤텔(Neuchâtel) 그리고 제네바를 스위스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이때 형성된 스위스 국경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빈회의를 통해 스위스는 주권을 회복하였지만 곧이어 1839년 취리푸취(Züriputsch)로 불리는 보수파의 반발과 가톨릭계의 7개 주가 독립적 연합을 세우려고 연방을 탈퇴하면서 독립전쟁(Sonderbundskrieg)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행하였다. 스위스 독립전쟁은 19세기 유럽에서 일었던 여러 독립전쟁 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이후 스위스의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세기 들어 스위스는 미국과 유사한 연방시스템을 확립하고, 법적으로 신분제를 폐기하고 헌법수정 등 주요 사안을 국민에게 묻는 국민투표제를 도입하는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도입하였다. 19세기 유럽전역에서 산업혁명이 일고 인구가 증가하였는데 스위스 역시 이에 영향 받아 1848년 연방헌법을 제정하여 22개 주(cantons)에서 통과되었다. 이후에도 스위스는 1874년과 1891년 연방헌법을 수정하여 각 주에 대한 고도의 자치권 유지와 함께 중앙정부는 국방, 무역과 헌정 및 법적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근대적인 연방국가 시스템을 완성하였다. 또한 이 시기부터는 보통선거에 기반한 직접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현대화된 정당정치가 점진적으로 활성화되었다. 1848년에는 새롭게 연방의회가 구성되었고 같은 해 연방의회에서는 베른(Bern)을 연방의 수도로 정하고 최초의 연방대통령으로 요나스 푸러(Jonas Furrer)를 선출하였다.

18~19세기 오랫동안 스위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왔던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저지하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고 교회의 세력도 쇠퇴하였다. 또한 일련의 헌법 수정을 통해 시민의 기본권이 확대되어 일반시민들은 출판, 종교 및 거주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었다. 19세기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스위스의 경제발전 기틀이 마련된 시기였다. 1850년에는 스위스 프랑(Swiss franc)이 공식적인 단일 통화로 지정되었고 각 주간 통행세가 폐기되어 연방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바티칸 근위병을 제외한 모든 병력의 해외파병을 금지하였다.

현대 스위스[편집]

베른 최초의 연방 궁전 (1857)

산업화[편집]

내전의 결과로 스위스는 1848년 연방 헌법을 채택하여 1874년에 광범위하게 수정했으며, 국방, 무역 및 법적 문제에 대한 연방 책임을 설정하고 다른 모든 문제는 주 정부에 맡겼다. 그 이후로 그리고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지속적인 정치, 경제, 사회 개선이 스위스 역사의 특징이 되었다.

고트하르트선, 1882년

스위스는 주로 시골 지역이었지만, 도시는 19세기 후반 특히 직물에 중점을 둔 산업혁명을 경험했다. 예를 들어 바젤에서는 실크를 비롯한 직물이 주요 산업이었다. 1888년에 여성은 임금 소득자의 44%를 차지했다. 거의 절반의 여성이 섬유 공장에서 일했으며 가사도우미는 두 번째로 큰 직업 범주였다. 노동력에서 여성의 비율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보다 1890년과 1910년 사이에 더 높았다.

19세기 후반 스위스 대학은 의학 교육을 받았던 여학생의 수로 유명세를 떨쳤다.

세계대전(1914–1945)[편집]

제1차 세계대전 중 강대국은 스위스의 중립을 존중했다. 그림-호프만 사건에서 연합군은 한 정치인이 동부전선에서 평화를 협상하자는 제안을 비난했다. 그들은 독일을 묶어 두기 위해 그곳에서 전쟁이 계속되기를 원했다.

산업 부문이 19세기 중반에 성장하기 시작한 반면, 유럽에서 가장 번영한 국가 중 하나로 스위스가 부상한 것, 즉 ‘스위스의 기적’은 무엇보다도 세계 대전 중 스위스의 역할과 결부된 20세기의 짧은 발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스위스 침공을 고려했지만, 공격하지는 않았다. 앙리 귀장(Henri Guisan) 장군 휘하의 스위스군은 침공에 맞서 민병대를 대규모로 동원할 준비를 했으며, 레뒤(Réduit)로 알려진 알프스 고지대에 강력하고 비축된 진지를 구축했다. 스위스는 군사적 억제, 독일에 대한 경제적 양보, 전쟁 중 대규모 사건으로 침공이 지연됨에 따라 행운이 결합되어 독립과 중립을 유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스위스 육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울리히 빌레(Ulrich Wille) 장군

스위스의 작은 나치당이 독일과 안슐루스를 일으키려는 시도는 비참하게 실패했는데, 이는 주로 스위스의 다문화 유산, 강한 국가 정체성, 직접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에 대한 오랜 전통 때문이었다. 스위스 언론은 종종 독일 지도자들을 화나게 하는 제3제국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스위스는 분쟁에서 양측에 의한 첩보 활동의 중요한 기지였으며, 종종 추축국과 연합국 사이의 통신을 중재했다.

스위스의 무역은 연합군과 추축국 모두에 의해 봉쇄되었다. 양측은 스위스에 공개적으로 무역을 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했다. 경제 협력과 제3제국에 대한 신용 확대는 침략 가능성과 다른 교역 파트너의 가용성에 따라 다양했다. 양허는 1942년 비시 프랑스를 통과하는 중요한 철도 연결이 끊어지고, 스위스가 추축국에 완전히 둘러싸인 후 절정에 이르렀다. 스위스는 식량의 절반과 기본적으로 모든 연료를 무역에 의존했지만, 독일과 이탈리아 사이의 중요한 고산 횡단 철도 터널을 통제했다.

전쟁 중 스위스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은 정밀 공작 기계, 시계, 보석 베어링(폭탄 조준기에 사용됨), 전기 및 유제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스위스 프랑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유 태환이 가능한 주요 통화였으며 연합군과 독일군 모두 스위스 국립 은행에 많은 양의 금을 판매했다.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독일 제국 은행은 스위스 프랑 및 기타 외화와 교환하여 스위스 은행에 13억 프랑 상당의 금을 판매했다.

이 금의 수억 프랑 가치는 점령 국가의 중앙은행에서 약탈한 금전적 금이었다. 동유럽의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서 빼앗은 581,000프랑의 "Melmer" 금이 스위스 은행에 팔렸다. 전체적으로 독일과 스위스 간의 무역은 독일의 전쟁 노력에 약 0.5% 기여했지만, 전쟁을 크게 연장하지는 않았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스위스는 30만 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이 중 104,000명은 헤이그 협약에 명시된 중립국의 권리와 의무에 따라 억류된 외국 군대였다. 나머지는 외국 민간인이었고 억류되었거나 주 당국에 의해 관용 또는 거주 허가를 받았다. 난민들은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난민 중 60,000명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민간인이었다. 이 중 26,000~27,000명이 유대인이었다. 10,000~25,000명의 민간인 난민이 입국을 거부당했다. 전쟁이 시작될 때 스위스에는 18,000에서 28,000 사이의 유대인 인구가 있었다. 그리고 약 4백만의 총인구.

분쟁 당시 스위스 내에는 온건한 양극화가 있었다. 일부는 평화주의자였다. 일부는 국제 자본주의 또는 국제 공산주의에 따라 편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 그룹에 더 많이 기울었는데,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 일부는 동맹국에 더 가깝고 스위스-독일 지역의 일부는 추축국에 더 가깝다. 정부는 스위스에서 극단주의로 행동하거나 국가의 통합을 깨뜨리려는 개인, 정당 또는 분파의 활동을 방해하려고 시도했다. 스위스-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은 언어적으로 독일에서 사용되는 표준(고급) 독일어에서 멀어졌으며, 지역 스위스 방언에 더 중점을 둔다.

1960년대에 나치 독일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역사가들 사이에 중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1990년대까지 논쟁에는 홀로코스트 시대 은행 계좌의 유대인 자산에 대해 뉴욕에서 제기된 집단 소송이 포함되었다. 정부는 나치 정권과 스위스의 상호 작용에 대한 권위 있는 연구를 의뢰했다. Bergier Commission으로 알려진 이 독립적인 국제학자 패널의 최종 보고서는 2002년에 발행되었다.

1945년 이후[편집]

냉전기간 동안 스위스 당국은 스위스 핵폭탄 제작을 고려했다. 폴 쉐러와 같은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의 주요 핵물리학자 들은 이것을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국방예산의 재정적 문제로 상당한 자금이 배정되지 못하여,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이 유효한 대안으로 여겨졌다. 나머지 핵무기 건설 계획은 1988년에 모두 중단되었다.

1959년부터 의회에 의해 선출된 연방의회는 개신교 자유민주당, 가톨릭 기독교민주당, 좌파적 성향의 사회민주당, 국민주의적 성향을 가진 스위스 인민당의 4개 주요 정당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본질적으로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야당의 강력한 위치를 반영하는 상당한 규모의 의회 야당은 없다.(일치 시스템 참조).

1963년 스위스는 유럽 평의회에 가입했다. 1979년, 베른주의 일부가 독립하여 새로운 쥐라주를 형성했다.

많은 유엔 및 국제기구에서 스위스의 역할은 중립성에 대한 국가의 우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02년 스위스 유권자들은 55%의 찬성으로 UN에 찬성했고, UN에 가입했다. 이것은 수십 년에 걸친 토론과 1986년 3-1 대중 투표로 회원 자격을 거부한 이후에 이루어졌다.

스위스의 여성 참정권은 1971년 일반 투표로 도입되었다. 평등권 수정안은 1981년에 비준되었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1995년 오스트리아가 가입한 이후로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EU 영토로 둘러싸여 있다. 2005년 스위스는 솅겐 조약과 더블린 협약에 국민 투표로 가입하는 데 동의했다. 2014년 2월, 스위스 유권자들은 스위스 이민에 대한 할당량을 복원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승인하여 스위스가 채택한 EU의 이동 자유 협정을 위반하지 않는 이행을 찾는 기간을 시작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스위스는 러시아에 대한 모든 EU 제재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이그나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전례가 없었지만, 스위스 중립에 부합했다"고 말했다. 행정부는 또한 스위스가 분쟁의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한 서비스를 계속 제공할 것임을 확인했다. 스위스는 인도주의적 임무에만 참여하고, 우크라이나 인구와 주변 국가에 구호물자를 제공한다.

정치[편집]

연방의회 의사당.
스위스 연방법원
로잔대법원

스위스는 양원제로, 상원인 연방의회 (스위스)와 하원인 국민의회 (스위스)에서 일부 국가 사항에 대해 논의한다.

스위스 정치는 1848년 연방 헌법에 따라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국민들이 국가의 주요 정책 사항에 참여한다. 또한 스위스 의회는 항상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 반면 투표율은 40%대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스위스는 연방 헌법에 따라 18개월 내에 유권자 100,0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누구나 헌법 개정안을 신청할 수 있다. 또한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대해 유권자 50,000명이 100일 이내에 서명한 명단을 제출하면 국민투표 회부를 요구할 수 있다.

스위스의 정부 형태는 기본적으로 내각제에 바탕하고 있다. 즉 의회가 정부를 구성하고, 스위스의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일 뿐 행정부 수반은 아니다. 연방 정부는 연방 평의회라고 불리는데, 의회에서 선출되는 7명의 각료(장관)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연방 평의회의 의장을 대통령이라고 부르는데, 7명의 각료들이 1년씩 번갈아 가며 맡는다. 스위스 대통령은 연방 평의회를 주재하지만, 다른 장관들과 상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에 있다. 한편 내각제 국가에서는 보통 총리가 행정부 수반을 담당하지만, 스위스는 행정부 수반을 따로 두지 않고, 서로 대등한 관계인 7명의 각료들에 의한 집단 지도체제로 정부를 운영한다. 이 때문에 스위스 정부 형태를 스위스식 회의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방 수상이 있긴 하지만, 스위스 연방 수상은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연방 평의회가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사무 기관일 뿐이다. 연방 수상은 연방 평의회를 구성하는 7명의 멤버가 아니며, 연방 평의회에 참석은 할 수 있지만, 투표권은 없다.

입법과 정부[편집]

스위스는 1848년 연방헌법을 제정한 뒤로 1874년과 1891에 각각 헌법수정을 거쳐 현대적인 민주국가로 발전하였다. 이후 1999년 시대 변화를 반영하여 연방헌법이 다시 한 번 수정되었지만 기존의 연방시스템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스위스의 연방헌법에는 연방을 구성하는 26개의 주(cantons)와 연방정부의 기능과 책임이 명기되어 있다. 또한 연방헌법에 따라 스위스 국민은 소속된 주와 연방의 공공정책에 참여할 권한을 갖는다.

스위스의 헌정질서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 직접 민주주의와 연방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스위스 정치시스템은 수직적으로는 연방(federal), 주(canton) 그리고 지방자치시(municipality) 등 3단계로 구성되며 각각의 정부가 수평적 관계 속에서 기능을 달리한다. 연방정부는 연방수준에서 입법제안과 전국적인 선거를 제안할 수 있으며 본 사안은 연방의회의 승인을 거쳐 실행할 수 있다. 다만 연방의회에서 연방정부가 제안한 입법과 정책에 거부권을 행사 할 수도 있다. 스위스에서는 100일 이내에 시민 50,000명이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이의를 제기하면 본 사안을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 또한 18개월 이내에 시민 100,000명이 서명하여 헌법개정을 요청할 수 있다. 이외에도 26개 연방 중 8개 연방이 연합하여 연방법률 수정을 위한 선거를 요청할 수 있다.

스위스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상호 간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권한을 공유한다. 즉, 연방정부는 각 주가 실행할 수 없거나 연방 차원에서 통일된 조치를 요구될 때만 개입할 수 있다. 이 경우 각 주는 연방정부를 지원할 의무를 갖는다. 이러한 헌정구조로 스위스 연방정부는 외교, 국방, 안보, 관세, 통화 그리고 국가 전체에 적용되는 입법으로 기능이 제한된다. 또한 고등교육정책 등과 같이 국가 전역에서 통일성을 요하는 정책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협력을 통해 기능을 분할할 수도 있다.

스위스의 연방정부는 연방이사회(Federal Council)와 양원제로 구성된 연방의회(Federal Parliament)가 행정과 입법기능을 담당한다. 연방이사회는 연방정부의 행정부로 7명의 이사진이 선거로 선출된다. 이사진의 임기는 4년이며 연방의회의 위임과 감독 하에 정부를 운영한다. 연방의 대통령은 연방의회에서 7명의 연방이사회 이사 중에서 선출하는데 관행적으로 7명의 연방이사회 이사가 1년 주기로 로테이션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정부 운영 전반을 지휘하며 연방정부를 대표하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크지 않다. 연방이사회 이사진은 모두 수평적 관계로 각각의 이사는 정부부처를 운영하면서 고도의 자율성을 갖는다. 한편 스위스는 정부수반으로 의회에서 선출하는 수상을 두고 있다. 수상의 임기는 4년으로 통상 연방이사회와 임기를 같이한다.

스위스의 연방정부는 1959년 이후 4개의 주요 정당 간 연정으로 구성되어 왔다. 연방이사회 내 7명의 이사진은 선거 투표율과 정당이 얻은 의석수에 비례하여 각 정당에 인원이 배정된다. 1959~2003년 기간 연방이사회는 기독민주국민당(CVP/PDC), 자유민주당(FDP/PRD), 사회민주당(SPS/PSS)에서 각 2명 그리고 스위스국민당(SVP/UDC)에서 1명의 이사가 배정되었다. 2015년 연방이사회 선거로 기독민주국민당이 1석으로 이사진 수가 줄고 여타 3개 정당은 2명의 이사를 배출하였다.

이렇게 고도로 분권화된 연방시스템에 기인하여 스위스는 공식적인 수도를 두지 않고 있다. 중세시기 국가 형태를 갖추지 못해 수도를 갖지 못하여 1500년 이전까지는 바티칸 교황의 특사가 루체른, 베른, 취리히, 바덴(Bade) 등지에서 스위스 각 지역의 대표들과 회동을 가졌다. 또한 16세기부터는 가톨릭계 주는 루체른, 그리고 신교도계 주는 아라우에서 각기 모임을 갖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스위스는 1848년 연방헌법 제정 이전까지 느슨한 연합형태의 연방으로 유지되어 중앙 집중화된 기능을 갖는 수도를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위스의 각주의 대표들은 매년 취리히(Zürich)와 바덴(Bade) 등지에서 수차례에 걸쳐 모임을 갖고 연방운영에 대한 전반적 사항을 논의하였다.

1848년 제정된 연방헌법에 수도와 연방기구에 관한 내용이 명기되어 이후 연방의회에서는 베른을 상징적인 수도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수도로 집중되는 권한을 피하기 위해 여러 연방기구는 루체른에 설립하고 연방공과대학교(Federal Polytechnical School)는 취리히에 두었다. 1999년 연방헌법이 개정되었지만 본 헌법에는 스위스의 공식적인 수도에 대한 언급이 없어 이후 베른을 연방도시(Federal City)로 지위를 강화하자는 논의가 제기되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스위스는 베른이 수도의 기능을 갖지만 정치, 행정적으로 공식화된 수도는 아니다.

의회와 정당[편집]

스위스 의회는 의회(parliament)라는 명칭 대신 이사회(council)을 사용한다. 스위스는 양원제 시스템으로 상원에 해당하는 국가의회(Council of States)와 하원의 성격을 갖는 국민의회(National Council)로 구성된다. 양 의회는 연방의회(Federal Assembly)를 구성하여 베른에서 공동으로 회기를 갖는다. 국가의회와 국민의회의 의원 임기는 4년이다. 양 의회는 연 4회 정기회기를 갖고 각 회기는 약 3주간 진행된다. 만약 정기회기 중에 시간 제약으로 입법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추가로 임시회기를 개최할 수 있다. 국가의회와 국민의회는 헌법상 동등한 입법 권한을 갖고 양 의회가 입법에 대해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따라서 입법 성사를 위해 양 의회는 입법의 독해과정에서 만나 의견을 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원에 해당하는 국가의회는 46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데 20개의 주에서 2명의 의원(Councillors)이 할당된다. 그러나 옵발덴(Obwalden), 니트발덴(Nidwalden), 바젤 슈타트(Basel-Stadt), 바젤 란드샤프트(Basel-Landschaft), 아펜첼 아우서로덴(Appenzell Ausserrhoden) 그리고 아펜첼 이너로덴(Appenzell Innerrhoden) 등 6개 주에서는 역사적으로 1명의 국가의회 의원만이 배정되어 왔다. 이러한 국가의회 의원들은 각 주에서 고유한 선거절차에 의해 선출된다. 뇌샤텔주와 주라주(Jura)에서는 외국인에게도 국가의회 선거권을 부여한다.

국가의회 의원은 각 주를 대표하지만 소속 주정부의 간섭 없이 의원 개인의 판단에 따라 표결과 입법기능을 행사한다. 국가의회는 매년 의장(President of the National Council)을 선출하는데 의장은 국가의회 회기와 국민의회와 함께 진행하는 연방의회 회기도 주재한다. 국가의회 의장은 헌정구조상 스위스 연방대통령보다 하위에 위치한다.

한편 국민의회는 하원에 해당하며 2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고 각 주의 인구비중에 따라 선출된다. 1848년에 제정된 연방헌법에는 국민의회의 의석 수가 명기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인구 20,000명당 1명의 국민의회 의원을 배출키로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져 1848년에 구성된 국민의회의 의석수는 111명이었다. 이후 1963년 국민의회 의원수는 200명으로 확정되었고 주기적으로 실행하는 인구센서스 결과를 토대로 각 주의 의석수가 배정된다.

스위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안정된 정당구조가 확립되어 특정 정당이 지배적 지위를 점하지 못하고 4~5개의 정당이 연정을 통해 연방정부를 구성하여 왔다. 1959년 이후 기독민주국민당(CVP/PDC), 자유민주당(FDP/PRD), 사회민주당(SPS/PSS) 그리고 스위스국민당(SVP/UDC) 등 4개 정당이 의석수에서 균형을 이루어 연방이사회에서 연정을 구성하여 왔다. 이외에도 스위스에는 녹색당(GPS/PES), 노동당(PdA/PST)과 기독사회당(CSP/PCS) 등 10여 개의 군소정당이 존재하는데 매 선거에서 득표율 미달로 연방이사회에서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하였다.

선거제도[편집]

란제메인데(Landsgemeinde)는 직접민주주의의 오래된 형태이며 여전히 두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스위스의 선거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가장 잘 구현하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거제도는 연방과 주정부 차원으로 이원화 되어 실행되며, 시민은 언제든지 연방헌법과 주 법률의 수정을 위한 입법 제안을 제기할 수 있다. 스위스의 연방수준에서 실행되는 선거는 연방의회 선거, 연방의회에서 연방헌법 수정을 위한 선거, 연방의회에서 통과한 법안에 이의제기를 위해 50,000명 이상 시민의 서명을 받아 실행되는 선거, 그리고 연방헌법 개정을 위해 100,000만 명 이상 시민의 서명을 받아 실행되는 국민제안(popular initiatives) 투표 등 네 유형이 있다.

투표 연령은 18세이며 모든 국민은 매년 평균 국민제안을 포함하여 연방, 주, 자치 시 차원에서 4회 정도의 투표에 참여한다. 가장 빈번하게 투표가 진행되는 이슈는 복지, 보건, 마약, 공공 인프라, 이민, 교육 및 환경 등 전반적인 사회문제를 총망라한다. 1971년까지 일부 주에서는 선거가 의무로 미투표자에게는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였다. 현재도 샤프하우젠시(Schaffhausen)에서는 타지역보다 투표율이 저조하여 선거를 의무화하였다.

지방행정[편집]

스위스는 26개의 주(canton)으로 구성되며 각 주는 독립적인 헌정질서를 갖고 고도의 자치권을 행사한다. 26개의 주는 법률상 동등한 지위를 갖지만 상원에 해당하는 국가의회(Council of States)의 경우 20개의 주는 각 2명의 의원(councillor)이 할당되는 반면, 6개 주는 1명으로 제한된다. 또한 이들 6개 주는 헌법개정을 위한 선거에서도 타 주에 비해 50%의 비중만을 갖는다. 즉 2개의 주가 1개로 취급된다. 각 주는 고유한 헌법과 의회, 정부, 법원과 경찰을 보유하는데 주마다 인구와 지정학적 환경이 달라 구성방식은 각기 상이하다. 또한 각 주는 독립적으로 예산운용과 조세 징수 권한을 갖고 주정부는 해당 주에서 시민들의 선거로 구성된다.

한편 26개의 주는 다시 2,300여 개의 자치시(communes)으로 나뉘며 이중 약 50여 개는 시 혹은 규모가 큰 마을이다. 이러한 자치시는 일종의 포럼 형식의 소규모 의회를 보유하며 모든 주민은 투표권을 갖고 참여한다. 각 자치시는 주민에 대한 복지와 에너지 공급, 학교 운영, 도로관리와 지방세 징수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사법부[편집]

스위스의 사법부는 연방과 주정부 차원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연방차원의 사법부는 연방고등법원(Federal Supreme Court), 연방형사법원(Federal Criminal Court), 연방행정법원(Federal Administrative Court)과 연방특허법원(Federal Patent Court)으로 구성된다. 스위스의 주 역시 연방정부의 법원과 유사한 편재로 사법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고 1심 법원의 역할을 한다.

연방고등법원은 각 주와 연방법원에서 다룬 사건의 최종 상고심 법원으로 형사, 행정 및 특허소송 등 모든 법적분쟁을 다룬다. 연방법원은 스위스의 연방법이 개별 소송에 적절하게 적용되며, 헌법에 보장된 스위스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데 목적이 있다. 스위스에서는 대부분의 형사사건은 주 정부의 형사법원에서 다루지만 조직범죄, 자금세탁, 부패와 테러 등 연방차원에서 중대한 사안은 연방형사법원에서 다룬다. 한편 연방행정법원은 연방정부에서 제기된 행정소송을 다루며 난민, 망명 그리고 공공인프라 구축계획 등 정치적으로 논쟁이 되는 사건도 다룬다. 이외에 2012년에 설립된 연방특허법원은 특별법원으로 특허 소유권, 특허권 침해 및 특허의 인정 유무 등 특허소송 전반을 다룬다.

국방[편집]

쉬스플라츠 뷔켄 군사기지 탱크.

중세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가 스위스는 가장 무장이 잘되어 있고 가장 자유롭다고 말한 바와 같이, 스위스는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징집제를 유지하면서 군사적으로 무장되어 있는 국가이다. 스위스군은 육군공군으로 구성되며 내륙국가의 특성상 해군은 없지만 국경을 접한 호수에는 국경 수비를 위한 순찰 보트가 운영된다. 스위스는 징집제 국가로 18세 이상의 남성은 18주간 군사훈련과 함께 의무복무를 한다. 여성의 경우 지원병으로 군에 복무할 수 있다. 스위스는 18세 이상의 남성은 징집 대상이다. 그러나 대상자 중 약 1/3은 현역병 복무에 적절치 않아 군복무 대신 여타 다른 사회적 서비스 부분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는데, 근무기간과 조건은 현역병과 차별화된다. 스위스는 오래 전부터 중립국을 유지하면서 자국민의 외국군 복무를 금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이유로 바티간 근위병 근무와 이중국적자에 한해 타국에서의 복무를 허용한다.

스위스는 2003년 국민투표를 통해 군 21계획(Army XXI)을 추진하여 현역병 수를 200,000명 수준으로 줄이기로 하였다. 이중 120,000명은 상시 훈련을 받는 현역병이며 80,000명은 예비 병력이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2017년 기준 스위스의 현역병력은 120,496명으로 이중 9,163명은 직업군인이며 이외의 병력은 징집 혹은 자원 입대한 병력이다. 스위스군에서 여성병력은 타 서유럽에 비해 낮은 비율로 총 929명이 복무하여 전체 병력의 1% 미만에 머물고, 이중 25% 정도는 비전투병이다.

스위스의 현역군은 자신이 사용할 개인화기를 집에서 보관한다. 스위스 국민의 29%가 자택에 총기를 보관하고 있는데, 이외에도 여러 군용무기를 민간에서 보유하고 있다. 2007년까지는 탄약도 개인이 자택에서 보관하였다. 일부 인권단체와 정당에서는 총기사고 등의 우려로 이러한 조치를 금지토록 추진하고 있는데 본 사안에 대해서는 스위스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스위스는 16세기 이후 중립국을 표방하여 군사적 충돌에 개입하지 않는 전통을 고수하여 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수회에 걸쳐 자국의 영토방어를 위해 군대를 동원한바 있다. 1870~1871년 기간에는 프랑스와 프로이센간 전쟁(Franco-Prussian War),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시 그리고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시 독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었다.

이와 같이 스위스는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 타국에서 전개되는 군사적 충돌에 개입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여 외국에 군대를 파병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변화하여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평화 유지를 위한 활동에는 소규모 병력이 참여하고 있다. 스위스군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평화 유지를 위해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물류와 의료지원 활동을 하였다. 당시 평화 유지 활동에는 스위스의 엘리트 병력 50~55명이 팀을 이루어 6-12개월간 임무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스위스는 1815년 이후 최초로 2003~2008년 기간 31명의 전투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하여 독일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였다.

한편 스위스는 한국전 휴전 이후 중립국 감독위원회(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일원으로 현재까지도 한국의 비무장지대(DMZ)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스위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파트너십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스위스는 중립국 지위를 들어 2017년 브라질이 제안한 핵무기 금지조약(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본 조약은 50개국 이상 서명하면 발효키로 하였는데, 2020년 9월 기준 전 세계에서 46개국이 조약에 서명하였으나 스위스는 참여하고 있지 않다.

행정구역[편집]

너츠(NUTS)는 스위스의 지역 분류로 7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스위스는 26개의 주(칸톤)로 구성된 연방 국가다.

스위스 연방은 26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다. 그라우뷘덴주가 가장 면적이 넓으며, 인구는 취리히주가 가장 많다.

너츠

너츠(NUTS)는 스위스의 지역 분류로 7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Nomenclature of Territorial Units for Statistics'의 약자로 통계용 영토 단위 명명법 이라는 뜻이다. 주로 EU 회원국에서 통계을 위해 나누는 지역 분류로 스위스는 EU는 아니지만 EFTA 가입국으로 속해 있다. 각각 너츠1, 2, 3 단계로 나누어 지는데 국가는 너츠1 단계이고 지금 아래에 나와 있는 7개의 분류는 너츠2 단계이다. 다시 26개의 칸톤이 너츠3 단계가 된다. 그 아래에는 라우(LAU)가 1, 2단계 있다. 라우1 단계는 지구이며 라우2 단계는 코뮌이다.

  • 1. 제네바 호수 권역(Lake Geneva region) : 보, 발레, 제네바, 몽트뢰, 브리그, 로잔, 체르마트
  • 2. 중앙 고지(Espace Mittelland) : 베른, 프리부르, 졸로투른, 뇌샤텔, 쥐라
  • 3. 서북 스위스(Northwestern Switzerland) : 바젤슈타트, 바젤란트, 아르가우, 아라우
  • 4. 취리히(Zurich) : 취리히, 빈터투어
  • 5. 동 스위스(Eastern Switzerlan) : 글라루스, 샤프라우젠, 아펜첼아우서로덴, 아펜첼이너로덴, 장크트갈렌, 그라우뷘덴, 투르가우, 쿠어, 생모리츠, 다보스
  • 6. 중앙 스위스(Central Switzerland) : 루체른, 우리, 슈비츠, 옵발덴, 니트발덴, 추크, 슈피츠, 인터라켄, 안데르마트
  • 7. 티치노(Ticino) : 티치노, 벨린초나, 로카르노, 루가노
칸톤

스위스는 26개의 주(칸톤, 독일어: Kanton, 프랑스어: Canton, 이탈리아어: Cantone)로 구성된 연방 국가다. 스위스의 주는 1848년 스위스 연방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국방과 통화를 포함한 완벽한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었으며, 연방이 성립된 이후에도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고유한 정치 체계와 입법권, 행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칸톤은 이른바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로 알려진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시행하여 참정권을 가진 주민이 직접 모여 의사 결정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나, 이러한 방식은 1990년대 거의 폐지되었으며, 현재는 아펜첼이너로덴 주와 글라루스 주에만 남아 있다.

반주

스위스의 26개 주 가운데 6개의 반주(독일어: Halbkanton, 프랑스어 demi-canton, 이탈리아어: semicantone, 로망슈어: mez-chantun)가 존재하며, 반주의 기원은 주마다 각각 다르다. 옵발덴 주와 니트발덴 주는 운터발덴 주로 존속하였지만, 지리적인 문제와 나폴레옹 시대에 헬베티아 공화국의 연방 가입 문제 등으로 갈라져 반주가 되었으며, 바젤슈타트 주와 바젤란트 주는 이전에 바젤 주로 존속하였으나 19세기 중반 전 유럽을 휩쓴 혁명을 두고 자유주의 성향의 바젤 시와 보수주의 성향의 농촌 간의 대립과 내전의 결과 바젤 시가 바젤슈타트 주로, 농촌 지역이 바젤란트 주로 갈라져 각각 반주가 되었다. 아펜첼이너로덴 주와 아펜첼아우서로덴 주는 아펜첼 주로 존속하였다가 1597년 스위스의 종교 개혁 때 갈라져 가톨릭 교도가 많은 아펜첼이너로덴 주와 개신교도가 많은 아펜첼아우서로덴으로 나뉘어 반주가 되었다.

반주는 독자적인 발언권을 가지지 못했으나, 1999년 스위스 연방 헌법 개정으로 반주법이 개정되면서, 주의 독자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다만, 기존 주들과의 형평을 고려해서 몇 가지 점에서는 차별이 있으며, 제일 주요한 구분점은 연방 평의회에 보내는 각주의 대표를 다른 주들은 2명씩 보내는 반면에, 반주의 경우 1명만 보낼 수 있으며, 이외에 투표상에서도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지구

26개 중 18개의 주는 3~13개의 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코뮌

스위스에는 총 2,740개의 코뮌이 존재한다. 가장 작은 코뮌은 코리포(Corippo)로 11명에 불과하다.

외교[편집]

제네바에 있는 국제 연합의 유럽 본부인 국가 궁전 (Palace of Nations).

스위스 연방헌법에 따르면 스위스의 외교정책 목적은 스위스의 독립과 안녕을 위해 국가간 상호공존과 인권, 민주주의, 법치를 구현하며, 대외적으로 스위스의 경제적 이해를 촉진하고, 국제적으로 빈곤을 완화하며,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외교정책 목적에 따라 스위스는 전통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중립을 유지하면서 모든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고 주요한 국제조약에 적극 참여하여 왔다.

스위스는 국제사회에서의 평화정착 노력과 함께 특별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근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 시각에서 스위스의 정치, 경제적 이해 확대를 위해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심화하고 있다. 한편 스위스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기능을 확대하며, 제네바를 국제기구와 국제 평화를 위한 장소로 유지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16세기 이후 타국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충돌에 군사, 정치 및 경제적 조치에 참여치 않는 원칙을 고수하여 왔다. 이러한 스위스의 중립외교는 1815년에 개최된 빈회의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스위스는 중립국을 표방하기 때문에 냉전시대에서도 사회주의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었지만 국제연합(UN)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되면서 국민투표를 통해 2002년 뒤늦게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또한 중립외교를 고수하되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스위스는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시 적극적으로 양국 간 분쟁을 조정하였고, 2009년에는 오랜 대립관계인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간 관계 정상화에도 적극 개입하였다.

스위스는 중립국 지위와 연방국가라는 국가 정체성으로 국제사회에서 결성된 여러 정치, 경제통합기구에 선택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1960년 유럽 일부 국가들 간 경제협력을 위해 결성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에 가입하여 현재까지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은 스위스 이외에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4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그러나 스위스는 유럽자유무역연합과 유럽연합(EU) 간 시장통합을 의도한 유럽경제지역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한편 스위스는 유럽연합이 단순한 경제통합을 넘어 정치, 군사 및 사회 등 다양한 부분에서 통합을 의도한 기구라는 점에서 국가 주권과 각 연방의 자율권 보전을 위해 가입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적 이해관계로 유럽연합과 유럽자유무역연합에 참여하는 26개 국가 간 국경 개방을 담은 솅겐협정에는 1996년 이후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물론 스위스 일부에서는 솅겐협정을 탈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는데, 무역과 관광 등 여러 부분에서 경제적 이해가 걸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약 200여 개에 달하는 국제기구의 본부가 스위스에 위치한다. 적십자는 제네바에서 출범하였고 이러한 역사적 요인으로 유엔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본부는 제네바에 위치한다. 제네바의 유엔 기구는 욕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또한 국제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 국제결제은행(BIS),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세계지식재산권기구(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등 국제적으로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랜 국제기구들은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이외에도 전 세계 주요 경제인과 정치인들이 참석하는 세계경제포럼이 스위스에서 개최된다. 국제 스프츠계에서도 주요 기구가 스위스에 위치하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축구연맹(FIFA), 국제핸드볼연맹(IHF), 유럽축구연맹(UEFA),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그리고 국제사이클연맹(UCI) 등이 대표적이다.

대한관계

스위스는 한국과 1963년 2월 11일 수교하였고, 북한과는 1974년 12월에 수교하였다. 북한 측에서는 주스위스 대사관을 설치하였으나, 스위스는 주중국 스위스대사관이 북한대사관 업무를 겸한다. 스위스는 역사적으로 중립국을 고수한 국가로 남북한과 동등한 외교정책을 견지하지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와 법치를 공유하는 한국과의 정치, 경제적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고려한다.

스위스는 중립국 지위로 1953년 한국전쟁 종전 후 판문점의 중립국감시위원단(NNSC)에 대표를 파견하여 현재까지도 약 700여 명의 군인과 관료를 파견하여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약 60여 년간 중립립감시위원단을 거쳐간 스위스인들이 자발적으로 스위스-한국협회(Swiss-Korean Association)를 결성하여 스위스 내에서 친한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은 스위스와 1971년 투자보장협정 체결 이후 2005년 한국・ EFTA 자유무역협정, 2008년 과학기술협력협정, 2012년 이중과세방지협정 개정의정서 및 2014년 사회보장협정 등 다수의 협정을 체결하였다. 2014년 1월 양국 간 수교 이래 최초로 박근혜 대통령이 스위스를 국빈 방문하여 직업교육, 기초과학, 정밀기술, 기술산업화, IT 기반 등 양측 간 비교우위 분야를 중심으로 11건의 MOU를 체결하여 양국 간 관계가 더욱 강화되었다.

스위스에는 주요 국제기구가 위치하여 국제적 회의가 다수 개최되므로 한국의 주요 인사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유럽국가 중 하나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정상의 스위스 방문은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하지만 세계경제포럼 참석차 한국의 주요 인사들이 스위스를 다수 방문하였다. 2005년 정동영 통일부장관, 2006년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이명박 서울시장, 2009년 한승수 국무총리, 2010년 이명박 대통령, 2011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등은 세계경제포럼 참석을 위해 스위스를 방문하였다. 2015년에는 윤병세 외교장관이 다보스포럼 참석을 위해 스위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편 2016년에는 요한 슈나이더아만(Johann Schneider-Ammann) 대통령 그리고 2018년에는 알랭 베르세(Alain Berset) 대통령이 각각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외에 스위스 측에서는 2000년대 들어 여러 정부부처 장관들의 실무 논의, 한국-스위스 의원친선협회 개최 그리고 여러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스위스의 고위급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2003년 조제프 다이스(Joseph Deiss) 경제부장관, 2006년 도리스 로이타르트(Doris Leuthard) 부통령겸 경제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2012년에는 디디에 부르칼테르(Didier Burkhalter) 외교장관이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였고 2015년에는 디디에 부르칼테르(Didier Burkhalter) 외교장관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OSCE-아시아회의 참석을 위해 내한한 바 있다.

2014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스위스를 국빈 방문하여 여러 건의 과학기술협력 MOU를 체결하면서 2015년 이후부터 과학의 날 행사, 과학기술공동위, 생명과학심포지엄 등이 연례적으로 양국을 오가며 개최되고 있다. 또한 한국과 스위스는 2000년대 이후 한국-스위스 고위외교정책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비롯한 외교안보 이슈는 물론이고 경제, 통상 및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 스위스는 민간부문에서도 여러 단체가 구성되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는 스위스-한국협회(Swiss-Korean Association)로 판문점 중립국감시단(NNSC)에서 근무한 약 700여 명의 스위스인들이 자발적으로 친한단체를 결성하여 2007년 스위스 국방부의 공식적 군사협회로 등록되었다. 스위스-한국협회는 베른(Bern)에서 연 1회 정기총회를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본 협회는 베른에 위치한 연방군사도서관(Bibliothek am Guisanplatz)에 한국자료전시실(Korea-Archives) 설치에 크게 기여하였다. 1979년에 결성된 한국-스위스문화협회(Cultural Society of Republic of Korea-Switzerland)는 약 3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친한단체로 매년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이외에 2005년 한국과 스위스에서 27명의 의원으로 결성된 한국-스위스 의원친선협회는 상호교류 방문을 통한 양국 간 현안을 논의한다.

스위스에 대한 한국의 수출은 2019년 기준 35억 7,000만 달러로 주요 수출품목은 승용차, 시계, 타이어, 전기자동차, 기타 정밀 화학재료 반도체 부품, 선박 등이다. 스위스는 세계적인 시계 생산국인데 본 지역에 대한 시계수출은 한국 내 스위스 기업에서 제조된 제품이 역수출된 것이다. 한편 스위스로부터의 수입은 2019년 기준 29억 8,000만 달러로 시계, 의약품, 금, 금속절삭가공기계, 의료용 기기, 펌프와 밸브 및 농약 등이다.

한국의 스위스에 대한 투자는 2019년 누계 신고기준 8억 4,000만 달러로 주로 삼성전자, LG전자, 대한항공 및 고려제강 등 현지 판매법인에 대한 투자가 주를 이룬다. 한편 스위스의 한국에 대한 투자는 2019년 기준 31억 달러로 한국의 스위스에 대한 투자보다 월등히 많다. 이러한 이유는 제약사인 노바르티스, 로슈(Roche), 식품회사인 네슬레, 엘리베이터 제조사인 쉰들러(Schindler), 시계제조사인 스와치 그룹(Swatch Group)의 한국 내 제조업에 대한 투자로 풀이된다.

스위스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2019년 기준 3,936명이며 이중 2,081명이 영주권을 갖거나 유학과 기업의 현지 주재원 등 단기 체류자이며, 1,855명은 스위스 시민권자이다. 스위스에는 한인연합회가 조직되어 스위스의 5개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다.

경제[편집]

150만 명의 주민과 150,000개의 회사가 있는 취리히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중심지 중 하나dl다.
바젤(Roche Tower )은 전 세계 스위스 수출의 약 38%를 차지하는 국가 제약 산업의 도시이다.

스위스는 1848년 연방국가 출범 시 제네바, 바젤 등 일부 대도시는 산업과 무역이 활발하였으나 농촌지역은 소득이 낮아 유럽에서도 빈곤한 국가였다. 그러나 19세기 초부터 금융관광산업이 성장하고 19세기 말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산업혁명이 진행되어 괄목할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스위스는 19세기부터 자유방임에 기조한 무역과 산업정책을 실행하여 20세기 초에는 '스위스의 기적(Swiss miracle)'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는 노동집약적인 섬유산업이 발달하여 전체 여성의 약 절반이 섬유산업에 종사하였다. 이에 따라 1890~1910년 기간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1960~70년대를 능가하였다. 섬유산업이 발달하면서 철도와 도로 등 운송인프라도 급격히 확대되었다. 1847년 취리히와 바덴 간 철도개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전역에 철도망이 구축되면서 1860년에 철도 총연장은 1,000km에 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시에는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반면, 중립국 지위를 유지한 스위스는 군수품 수출과 독일 나치의 자금유입으로 금융업이 성장하여 경제가 유지되었다. 이후 1950년대 들어 스위스는 탄탄한 금융업을 기반으로 연평균 5%의 GDP 성장이 이어졌고, 1970년에는 연평균 6.5%까지 GDP가 급격히 확대되었다. 스위스는 1980년대에도 매년 3~4%의 꾸준한 국내총생산 성장이 이어져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1990년대에는 연평균 GDP 성장이 2% 수준으로 하락하였지만 1%의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였고, 2000년대 이후에도 평균 2~3%의 연평균 GDP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스위스는 1997년에 실업율이 5.3%까지 증가하였고, 2008년 유로존 금융위기로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 특히 스위스는 유로존 국가와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2008년 유로존 금융위기 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당시 스위스 중앙은행은 이자율 제로를 유지하면서 경제활성화를 꾀하여 불과 1~2년만에 2010년 이후 이전 수준으로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스위스 경제는 고도의 기술집약적 산업구조, 안정된 금융시스템과 거시경제 환경, 높은 수준의 고등교육 시스템과 낮은 실업률을 특징으로 한다. 이외에도 스위스는 개방적이며 효율적인 금융시장과 낮은 법인세율, 투명한 법률시스템이 장점으로 꼽힌다. 이러한 경제환경으로 스위스는 노르웨이, 룩셈부르크와 함께 유럽에서 1인당 소득수준이 최상위에 위치한다. 스위스 인구는 2020년 기준 인구는 약 870만 명에 불과해 전 세계 인구의 0.11%에 불과하며 인구수로는 전 세계 101위에 위치한다. 그러나 2019년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표한 스위스의 GDP는 약 7,031억 달러로 세계 20위 수준이었다. 같은 해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발표한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은 83,717달러로 전 세계적으로 룩셈부르크에 이어 두 번째로 부유한 국가이다.

제약업의 로슈, 노바티스, 공업의 ABB, 립헬, 식품업계 1위 기업 네슬레, 알프스 산맥과 자연경관을 내세운 관광업, 금융업의 UBS, 광물업의 홀심, 무역업의 메이저 기업 글렌코어, 고부가가치 제조업 롤렉스 등이 발달해 있다.

유로를 안 쓰는 유럽 국가 중 하나. 주변 나라에서 죄다 유로를 쓰는 것과 달리 스위스는 아직 스위스 프랑이라는 독자 화폐를 쓴다. 스위스의 중앙은행은 스위스 프랑의 더 이상의 절상을 막기 위하여 2011년 8월 6일에 1유로=1.2스위스 프랑을 최저 제한선으로 하는 사실상의 고정환율을 선언했다. 그리고 2015년 1월 15일(현지시각) 고정환율제도를 폐지했다. 이로 인해 스위스 화폐가치는 폭등했다. 현재(2021년 10월18일) 유로화랑 가치가 비슷하다.

제약산업[편집]

2019년 기준 스위스 제약산업 부분 종사자는 135,000여 명으로 스위스 전체 수출의 약 30%를 점하는 핵심산업이다. 스위스의 제약산업은 세계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데, 노바르티스, 로슈(Roche), 셀진(Celgene)을 비롯하여 많은 제약회사들이 연구개발 부분에서 선두에 위치하면서 세계 제약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지속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적 규모로 성장하였다. 바젤과 취리히는 스위스 제약산업의 본거지로 바젤의 경우 19세기 말부터 여러 제약회사가 설립되어 유럽 전역에서 우수한 인력이 유입되었다. 바젤에는 2019년 기준 약 900여 개의 제약과 의료기술 관련 중소기업에서 약 50,000여 명 그리고 취리히에도 수백여 개의 제약관련 중소기업에서 약 21,000여 명의 근로자가 종사한다.

시계제조업[편집]

스위스는 오래 전부터 정밀기계산업이 발달하면서 연관 산업인 시계제조 부분에서도 세계적으로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스위스 시계산업은 쥐라산맥을 끼고 있는 제네바, 베른, 보(Vaud)과 뇌샤텔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롤렉스. 오메가, 론진, 파텍필립과 같은 하이엔드 시계제조사로 유명하다. 이들 상위 4개 시계제조사는 2019년 기준 스위스 시계시장의 약 45%를 점한다. 이외에도 스위스에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대중적 시계 브랜드인 스와치(Swatch), 그리고 시계부터 보석류와 필기구까지 생산하는 종합 패션브랜드인 리치몬트(Richemont) 그룹 등 다수의 시계와 보석가공회사가 있다.

2019년 기준 스위스 시계산업 수출규모는 약 240억 달러로 수출지역은 홍콩, 중국, 일본, 미국, 영국 등 동아시아와 서유럽 및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스위스 시계산업은 1970년대 이후 일본 등 후발 경쟁국가의 성장과 저렴함 수정발진식 시계(quartz watch)의 대중화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2010년대 이후에도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시계제조업은 고가 브랜드를 제외하면 성장이 정체된 상태이다. 이에 따라 1970년대 스위스 시계산업 종사자는 약 90,000여명에 달하였으나 2013년에는 약 57,000여명 수준으로 감소하였고, 같은 기간 시계제조사도 1,600개에서 572개사로 격감하였다.

금융업[편집]

금융은 관광과 함께 스위스의 대표적인 서비스산업으로 2017년 기준 스위스 총 부가가치의 약 7.4%를 점하였다. 2018년 기준 스위스의 금융산업 종사자는 국외에서 근무 근로자를 포함하여 107,388명으로 제약사 다음으로 많은 인력이다. 금융산업 종사자는 높은 연봉으로 2017년 기준 조세 수입의 10.7%가 금융산업에서 발생할 정도로 공공기금과 경제의 동력이 되고 있다. 스위스는 전체 근로자의 약 70%가 중소기업에 근무하는데,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이들 중소기업의 약 90%는 스위스 내 여러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거나 대출을 받아 영업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스위스의 중소 제조업의 경쟁력 역시 잘 갖추어진 금융 인프라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기준 스위스에는 248개 은행이 2,615개의 지점을 개설하였으며, 7,187개의 ATM 기계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스위스계 은행은 전 세계에 223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는 금융업 중 은행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새로운 금융비즈니스 모델 창출에 최선두에 있다. 스위스는 4개의 대규모 은행과 각 지방정부(canton)에 뿌리를 둔 24개의 지역은행, 43개의 주식거래은행 그리고 60개의 저축은행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스위스에는 최근 수년간 디지털 금융시장이 급성장하여 핀테크 관련 기업도 약 330여 개나 분포한다. 스위스 은행은 철저하게 고객정보를 보호하는 시스템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유동자산의 약 27%에 해당하는 6조 1,600억 달러 정도가 스위스 은행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편집]

스위스는 좁은 영토와 산지가 많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구대비 농지가 부족한 국가로 여타 산업분야와 달리 농업은 철저하게 보호무역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스위스의 농산물 시장은 유럽은 물론이고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구조이다. 또한 시장보호정책으로 농작물과 식품가격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높은 구매력으로 폐쇄적인 농산물 시장이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보호조치로 스위스는 농경지가 부족하지만 농산물 자급률은 약 60-65% 수준에 이른다. 감자, 채소류, 돼지고기와 소고기 등의 육류 및 유가공품은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된다.

정부는 수입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국내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막대한 농업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2016년 스위스의 정부지출 중 5.5%가 농업보조금으로 약 39억 달러에 달한다. 이에 따라 농업부문에서 보호무역을 취하는 유럽연합(EU)은 역내 생산 농산물 중 약 30~40%에 보조금을 지불하는 반면, 스위스는 약 70% 수준으로 월등히 높다. 스위스 정부는 막대한 농업보조금 지출에 따른 재정부담으로 1990년대 초부터 수차례에 걸쳐 농업정책 개혁을 단행하여, 고품질의 친환경 농업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정책으로 스위스는 농약 사용 최소화와 친환경 비료사용, 경작지 보호를 위한 순환작물 재배 및 축산부문에서 동물복지 강화 등으로 질 높은 농축산물과로 유명하다.

운송교통[편집]

스위스는 세계적으로 운송망이 가장 잘 갖추어진 국가이며 철도와 도로의 총연장은 24,500km에 달하고 2,600여 개의 역이 운영되고 있다. 스위스가 위치한 알프스 지역은 유럽의 남북을 잇는 길목으로 1882년부터 철도터널이 건설되었다. 특별히 스위스는 철도운송망이 유럽에서 가장 촘촘하게 구축된 국가이며 모든 철도망은 전철화되어 있다. 2015년 기준 철도 총 연장은 5,250km로 연인원 5억 9,60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였고, 같은 해 스위스 국민 1인당 평균 철도이용 연장은 2,550km에 달했다.

철도는 스위스연방철도회사(Swiss Federal Railways)와 BLS AG 등 두 개의 국영기업이 관리한다. BLS AG는 베른주가 55.8% 그리고 연방정부가 21.7%의 지분을 각각 소유하고 있다. 이외에 스위스에서 흔히 볼수 있는 협궤 철도망은 라에티안철도회사(RhB: Rhaetian Railway)와 마티호른 가타드 반(MGB: Matterhorn Gotthard Bahn) 등 두 곳의 민영회사가 운영한다. 두 곳의 민영협괴철도회사는 체르마트(Zermatt)와 생 모리츠(St. Moritz)의 산악리조트를 잇는 산악고속철도를 공동으로 운영한다.

스위스는 2016년 5월 알프스 산맥에 총 57.1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은 곳에 있는 고트하르트 바시스 터널(Gotthard Base Tunnel)을 개통하여 같은 해 11월부터 정기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본 터널은 스위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신알프스철도(NRLA: New Railway Link through the Alps) 계획의 일환으로 계획 수립후 완공까지 17년이 소요되었다.

자동차 도로망 연장은 2017년 기준 1,638km 이며 고속도로를 포함하여 모든 도로망이 무료로 별도의 통행요금을 징수하지 않는다. 도로 관리예산은 자동차와 유류세의 일부로 충당한다. 대신 모든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은 1년간 유효한 44달러의 통행스티커를 구입해야 한다.

취리히공항은 스위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제공항으로 2018년 한해에 3,10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였다. 취리히공항은 스위스국제항공(Swiss International Air Lines)과 루프트한자(Lufthansa)의 허브공항으로서 이용객이 늘어나 2003년 대규모 확장공사를 통해 새로운 터미널이 들어서고 지하철 및 주요 도시를 연계하는 철도와 연계망을 대폭 강화하였다. 뒤를 이어 제네바공항(Genève Aéroport)은 1,760만 그리고 바젤에 위치한 유로에어포트공항(EuroAirport Basel Mulhouse Freiburg)은 860백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였다.

제네바공항은 3,900m에 달하는 스위스에서 가장 긴 활주로를 보유하고 있다. 제네바공항 활주로는 1960년 건설 당시 프랑스 정부의 양혜를 구하여 프랑스 영토까지 활주로가 이어져 있다. 한편 바젤공항은 저가항공사인 이지젯(EasyJet)의 허브공항이다. 바젤공항은 바젤시에서 3.5km 떨어진 거리에 있어 바젤시를 찾는 승객이 주로 이용하지만 지리적으로는 프랑스 영토 안에 있다. 이에 따라 바젤공항은 세계적으로 드물게 스위스와 프랑스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운영한다.

1990년대 유럽연합은 항공운송 자유화정책(Open Sky Policy)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는데, 스위스 정부도 이에 대응하여 1996년 기존 스위스항공이 누렸던 제네바공항 독점 이용권을 폐기하였다. 결국 2002년 스위스항공은 도산하고 새롭게 스위스국제항공이 출범하였다.

에너지자원[편집]

스위스의 에너지 정책의 목적은 에너지 안보와 적정한 가격의 에너지 공급을 통해 경제사회 발전을 지속하는 것이다. 스위스는 1950년대까지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한 석탄과 높은 산지를 활용한 작은 규모의 수력발전 그리고 바이오메탄 에너지를 주로 사용하였다 이후 천연가스와 원유, 원자력, 수력 등으로 에너지원이 다양화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신재생에너지수력발전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러나 2018년 기준 스위스는 에너지 자립도가 52.1%에 불과하다. 2018년 스위스의 에너지 소비는 석유 39.8%, 원자력 24.3%, 수력발전 12.3%, 천연가스 10.9%, 기타 12.7% 순으로 해외에서 수입에 의존하는 화석연료 사용비중이 여전히 높다. 스위스는 유럽에서 비교적 흔한 석탄도 채굴되지 않는 국가로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원자력도 해외에서 수입한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는 수력발전과 재생에너지 정도에 불과하다.

스위스는 1970년대까지 전력생산의 90%를 수력발전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전력수요 증가와 수력발전 건설입지의 한계로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점진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2019년 스위스의 전력생산은 수력발전 56.4%, 원자력, 35.2%, 신재생에너지 6% 그리고 화석연료 2.6% 순이다. 스위스는 202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전체에너지 사용대비 20%까지 줄인다는 계획인데 이는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목적이 외에도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다. 스위스의 신재생에너지는 대부분 바이오메탄이다. 이러한 이유는 지형적 특성으로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는 보조금 지급과 태양광 경매제도 도입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체 에너지 생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스위스는 전력생산을 청정에너지인 수력과 원자력에 크게 의존하면서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규모는 유럽연합 평균보다 28% 정도 적고 원자력 발전규모가 큰 프랑스와 유사한 수준이다. 스위스는 2006년 연방에너지법(Federal Energy Act)을 통해 원전의 추가건설을 금지하였고 향후 원자력을 통한 전력생산은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

2015년 스위스의 연방정부격인 연방이사회(Federal Council)에서는 기존 에너지정책의 전환을 담은 에너지전략 2050(Energy Strategy 2050)으로 불리는 연방에너지법 수정안을 의결하여 2017년 국민투표에서 58.2%의 지지를 얻어 정책을 실행 중이다. 스위스는 에너지전략 2050을 통해 원자력의 점진적 폐기, 에너지 효율성 확대를 위한 기술개발, 수력, 태양발전, 풍력발전, 지열과 바이오메탄 등 신재생에너지의 사용확대 조치를 실행하고 있다. 에너지전략 2050에는 또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단계적으로 원자력에너지 사용을 줄여 2034년에는 완전한 탈원자력을 이룬다는 목표도 담았다.

무역[편집]

스위스는 유럽자유무역연합 회원국으로 유럽연합과 사실상 시장이 통합된 개방적 경제구조로 수출규모는 세계 10위권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스위스는 농업을 제외하고 모든 경제분야에서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통상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또한 WTO를 통한 다자간 협상과 주요 교역국과의 양자협상을 병행하며 국제사회에서 지적소유권, 관광,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시장개방과 자유화를 적극 지지하는 국가이다. 단적으로 스위스는 2008년 유로존 금융위기시 WTO에서 신속한 경제회복을 위해 개도국을 중심으로 금융서비스시장 개방을 주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스위스는 여러 선진국 중에서도 개도국애 대하여 무역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IPs) 준수에 강력한 입장을 취하는 국가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시 본 사항을 반드시 명기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자국이 경쟁력을 갖는 제약분야 교역에서 지식재산권 준수에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여 개도국과 잦은 마찰을 야기하였다. 이에 따라 스위스는 '국경없는 의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여러 NGO로부터 개도국의 의료환경을 외면하는 처사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스위스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지만 경제통상 부분에서는 양자 간 여러 협정을 맺어 무역법규와 안전규정, 노동의 자유이동, 표준화, 공공조달, 운송, 과학기술 등 유럽연합의 여러 입법을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양자협정을 통해 스위스는 농업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유럽연합과 무역장벽을 제거하였다. 또한 스위스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EFTA 회원국으로 역내에서 시장장벽을 완전히 제거하였다. EFTA와 유럽연합은 여러 조약을 통해 사실상 통합된 경제권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스위스는 유럽연합이 구축한 단일시장(single market)에 편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스위스는 전통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부분 모두 유럽연합 27개국을 포함한 유럽국가와의 교역이 약 절반을 점한다. 이외에 스위스의 주요 교역상대국은 미국, 중국, 영국 및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와 아세안 국가들이다. 스위스의 주요 수출품목은 화학, 제약, 의료기기, 정밀기계와 장비, 시계, 보석가공품 등이다. 또한 주요 서비스 수출은 운송, 관광, 금융서비스, 보험과 연금서비스, 정보통신, 무역과 비즈니스 컨설팅, 특허권 수입 등이다. 반면에 주요 수입대상은 자동차, 섬유의류, 에너지 및 보석원석 등 주로 스위스에서 생산하지 않는 품목이다.

2019년 기준 스위스의 수출액은 2,636억 달러이며 수입은 2,233억 달러로 403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 제약과 화학은 2019년 스위스 전체 수출의 47.3%를 점하였고 뒤를 이어 전자 및 기계 13.2%, 시계 9.0%, 정밀기계 7.0%, 금속 5.6%, 보석 4.8%, 식품 3.7% 등이다. 이와 같이 제약과 화학은 스위스의 수출을 주도하는 핵심산업이며 이중에서도 백신 등 면역체계 관련 의약품을 포함한 의료제가 수출의 약 70%를 점한다. 또한 수출지역은 독일 18.2%, 미국 17.3%, 프랑스 5.9%, 이탈리아 5.8%, 중국 5.5%, 영국 3.8%, 일본 3.3% 등이다. 스위스 수출의 약 50%는 유럽연합을 포함한 유럽국가에 집중되며 이외에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 한국 등이 주요 수출지역이다.

2019년 기준 스위스의 수입은 제약과 화학 25.7%, 기계와 전자 15.6%, 자동차 9.5%, 보석 8.1%, 금속 7.3%, 섬유의류 5.8%, 식품 5.3%, 에너지 4.5% 등이다. 스위스의 수입품목은 제약, 화학, 기계, 전자 등 수출산업의 1차 원료 및 가공품과 자동차와 에너지 등 국내산업이 취약한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스위스는 수입의 약 70%를 유럽국가에 의존하여 최대 수입국은 독일 26.2%이며 이외에 이탈리아 9.1%, 프랑스 7.4%, 중국 7.3%, 미국 6.7%, 영국 4.6%, 오스트리아 4.0% 등이다.

물가[편집]

북유럽 국가들과 함께 세계 최고의 물가를 자랑한다. 이러한 경향은 대체로 세금이 얼마나 붙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스위스에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싼 물품이 존재하는 반면 아닌 것도 존재한다. 보통 스위스/프랑스 국경지대 사람들(바젤, 제네바 등)이 국경 넘어 프랑스로 장을 보러 오는 경우가 꽤 많은데, 가끔 프랑스에서도 물가가 더 비싼 룩셈부르크나 스위스로 물건을 사러 넘어가는 경우도 꽤 있다. 주요 구매품은 담배/주류같이 세금이 많이 붙는 품목들. 관광객들에겐 눈 돌아간다 싶을 정도로 비싼 곳이다.

의외로 마트에서 구입하는 채소류 등의 원재료 물가는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한국과 스위스의 소득 차를 볼 때, 원재료 물가는 상대적으로 많이 저렴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건비가 들어가는 식당, 택시 등의 경우에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물가를 자랑하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고용노동[편집]

스위스의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870만 명이며 이중 약 500만 명이 노동가용 인력이다. 스위스 고용자의 노조 가입률은 약 18%로 유럽에서 노조가입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스위스 노조는 건설부문 노동자에서부터 요리사까지 경제영역 전반에 걸쳐 분포하여 교섭력이 높고 노동권 보호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시장 환경으로 스위스는 노조 가입률은 낮지만 유럽에서도 노동자의 권익이 가장 높은 국가로 평가받는다.

스위스 노동조합은 정치적 지향과 종교적 배경에 따라 스위스노조연합(Swiss Federation of Trade Unions)과 스위스노조연맹(Travail Suisse)으로 양분되어 있다. 스위스노조연합은 사회주의 노선에 입각한 스위스 내 최대 규모의 노조로 2012년 기준 16개의 산별노조에서 366,811명의 노조원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스위스노조연맹은 기독교 이념에서 출발한 노조로 12개 산별노조에 165,542명의 노조원이 가입되어 있다.

스위스 내 대다수 근로자는 노조에 가입되지 않았지만 연방노동법의 사업장 경영참여법률(Federal Participation Act)에 의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는 직장협의회(works council)를 구성할 수 있다. 근로자들은 직장협의회를 통해 사측과 사업장 안전과 보건, 집단해고, 연금가입, 직무변경 등 주요 현안을 논의한다. 또한 사용자는 연중 최소 1회 이상 직장협의회를 통해 경영상태와 근로자가 요구하는 사항을 고지해야 한다. 직장협의회에서의 노사 간 합의는 공식적인 법률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집단협약으로 인정된다.

스위스는 유연한 고용시장과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는 국가이다. 스위스의 실업률은 2009년 유로존 금융위기 시 4.4%까지 상승하였지만 2000년대 들어 2~3%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왔다. 2014년 실업률은 3.2%였으나 2018년은 2.5% 그리고 2019년은 2.3%으로 2010년대 이후 안정된 고용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스위스의 고용법은 비교적 자유로워 육아휴직 및 대량감원 등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다. 또한 고용해지 역시 사용자가 임의대로 남용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사용자의 행위는 공식적 절차에 준해야 하며, 고용계약, 노동시간과 비차별 등 노동조건에 관한 법률 적용은 매우 엄격하다.

2020년 7월부터 스위스에서는 남녀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새로운 노동법이 실행되고 있다. 100인 이상 사업장은 남녀 간 임금격차가 발생치 않도록 과학적인 분석에 따른 임금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본 법률에 의해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4년마다 남녀 고용자의 임금상황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여 주주와 고용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2020년 기준 스위스의 월평균 급여는 세전 7,131달러로 유럽에서 룩셈부르크에 이어 두 번째로 임금수준이 높다. 이러한 평균 급여도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급여로 순수 스위스인의 월 급여 평균은 11,117달러에 달하는 높은 수준이다. 또한 산업부문 간 임금격차도 비교적 큰데 금융과 제약산업 근로자가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다.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주택임대, 세금, 사회보장비가 높고 상품가격 역시 높은 수준이지만 전반적인 고임금 구조로 가구당 평균 임금의 15% 정도는 저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다. 스위스 노동자의 주 근로시간은 40~50시간으로 산업 간 특성을 고려해 유연하게 설정되어 있으며 초과근무 시는 통상 시간당 임금의 125%를 지급해야 한다.

스위스는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고숙련 노동자 위주의 인적자본이 풍부한 국가이다. 스위스 학생들은 16세까지 중등초급과정을 이수하면 이후 3~4년간의 학업과 직업교육을 병행하고 기업에서 파트타임으로 업무를 습득할 기회가 열려있다. 이러한 산학연계 구조로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스위스의 중등교육 재학생의 약 70%는 직업교육시스템에 참여하면서 학업도 병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스템은 고숙련 노동인력 양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위스의 노동인력은 무역, 금융, 관광 등 서비스 산업에 집중되어 있다. 이중 금융부분 근로자는 은행, 보험, 선물 등 전문성이 높은 분야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알프스 산맥에 있는 지역에서는 관광산업 종사자 비율이 높다. 한편 제조업 분야 근로자들은 스위스의 대표적인 수출산업인 화학, 제약, 기계금속, 엔지니어링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농업분야 종사자는 갈수록 줄어들어 전체 근로자의 1% 미만이다.

인문사회[편집]

인구[편집]

스위스의 인구는 2020년 기준 863만7,000 명이다. 1800-1990년 동안 인구가 4배로 증가했으며, 평균적으로 2배로 증가하는데 95년이 걸렸다. 인구 성장률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1950-1970년 연평균 1.4%) 가파르게 증가했으며, 1970-1980년대에는 비교적 성장률이 둔화되었다가 2000년대에 다시 1%대로 증가했다. 인구의 75% 이상이 중앙고지에 거주하고 있다.

2019년 연방 정부가 공표한 통계에 따르면, 기대수명은 남성 81.9세, 여성 85.6세로 전체 평균 83.8세로 나타났다.

언어[편집]

스위스는 연방헌법에 의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로망슈어를 공식언어로 규정하고 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독일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등 공식언어를 사용하고 연방의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프랑스어와 로망슈어도 병행 사용한다. 연방의회는 또한 모든 입법을 독일어, 프랑스어 및 이탈리아어로 번역하여 공표해야 한다.

스위스는 시민의 다양한 언어 활용을 국가의 자산으로 인식하여 각 주마다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하나의 공식언어 지정을 인정하되, 타 공식언어의 학습기회도 열어 놓았다. 따라서 각 주정부에서는 하나의 공식언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스위스 정부의 언어교육 방침에 따라 모든 공식언어가 자유롭게 통용된다. 또한 주정부마다 각 급 학교에서 사용할 하나의 공식언어를 지정할 수 있지만, 다언어주의 원칙에 따라 일반적으로 타 공식언어도 학습 코스를 개설한다. 각 학교에서는 공식언어 이외의 외국어 교육이 의무화되어 학생들 대부분이 공식언어 이외에 1개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적은 영토에 인구도 870여만 명에 불과하지만 4개의 공식언어를 사용하고 이들 언어는 다시 지역에 따라 여러 방언으로 나뉜다. 스위스에서 사용하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는 헬버티즘(Helvetisms)이라고 불리는데, 독일과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해당 언어와 어휘와 발음에서 차이가 있다. 스위스에서 사용하는 독일어는 20세기 후반 들어 각 지역마다 여러 방언으로 분화되었으며 TV와 라디오 등 미디어에서도 이러한 방언을 많이 사용한다. 다만 문어체에 있어서는 스위스 표준 독일어가 사용된다.

반면에 스위스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는 프랑스 혁명이후 프랑스 전역의 학교에서 교육하는 표준 프랑스어(Francien)를 따르기 때문에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매우 가깝다. 다만 스위스 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역시 사용지역에서 방언이 존재하였으나 20세기 후반 들어 거의 사라져,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방언을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5% 미만에 불과하다.

스위스는 다언어주의를 표방하여 오랫동안 4개의 공식언어를 유지한 국가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가 점차 비즈니스와 일상 용어로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각 급 학교에서도 상급 과정에서 학생들은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제 2언어, 그리고 영어를 제 3언어로 학습하는데, 활용도와 실용성에 있어 영어 습득을 더 선호하는 추세이다. 특히 독일어권 사용지역에서는 제2 모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어 학습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이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영어가 점차 프랑스어를 대체하는 흐름을 보인다.

종교[편집]

베른 민스터 대성당

스위스는 가톨릭과 신교 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16세기 종교개혁의 발상지가 되었던 국가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 종교 간 공존은 스위스의 정치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여겨졌왔다. 이에 따라 스위스는 1948년에 제정한 연방헌법을 통해 모든 종교와 주가 동등한 권한을 갖고 정치에 참여하는 협치국가(consociational state)를 지향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스위스는 고도의 산업국가로 발전하였지만 종교는 여전히 스위스인의 삶에 큰 역할을 한다. 1980년 국가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를 묻는 국민투표가 78.9%의 반대로 기각된 사례는 이러한 스위스인의 종교관을 보여준다.

스위스는 연방차원에서 공식적인 국교가 없다. 다만 오랜 종교적 전통으로 제네바(Geneva)와 뇌샤텔(Neuchâtel)을 제외한 모든 주에서는 로마가톨릭 혹은 스위스개혁교회를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여러 주에서는 고대 가톨릭교회와 유대교 등 여러 소수종파에 대해서도 신자들이 납부한 세금으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2018년 기준 15세 이상 인구 중 66.5%가 기독교인으로 로마가톨릭교회 35.8%, 스위스개혁교회 23.8%, 동유럽 정교 2.5%, 복음주의 기독교 1.2%, 루터교 1.0%, 기타 기독교 2.2% 등이다. 이외에 무슬림 5.3%, 힌두교 0.6%, 불교 0.5%, 유대교 0.2%, 기타 0.3%, 확인되지 않는 인구 1.4% 등이며 종교를 믿지 않는 인구도 26.3%에 달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신자 수가 정체되어 있지만 이민자의 증가로 무슬림 신자는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스위스는 로마가톨릭과 신교도가 다수를 점하였는데 이들 두 종교는 갈등 속에서도 평화적으로 공존하여 왔다. 스위스는 전통적으로 제네바, 취리히, 베른, 바젤 등 대도시와 이들 도시가 위치한 주에서는 신교가 우세하며 발레주, 티치노주, 아펜첼주 등 농촌과 교외지역이 넓게 분포한 주에서는 가톨릭을 믿는 신자가 보다 많다. 아펜첼주의 경우 1597년 공식적으로 가톨릭과 신교 지역을 분할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 이후 전통적으로 신교가 우세한 지역에서 가톨릭 인구가 보다 많은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데, 이러한 양상은 가톨릭교도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종교를 믿지 않는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제네바는 프랑스 종교개혁가인 장 칼뱅이 1546년 제네바에 망명하기 전인 1541년에 이미 신교로 전환하였다. 당시 제네바에 도착한 칼뱅은 이 도시를 그의 종교적 이상이 구현된 곳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앞선 종교개혁으로 제네바는 ‘신교도의 로마(Protestant Rome)’로 불리며 테오도르 드 베즈(Theodore Beza)와 기욤 파렐(William Farel) 등 선구적인 종교개혁가가 배출되었다. 취리히 역시 종교개혁의 또 다른 중심도시로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의 양대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신학자 울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가 활동하였다.

이민[편집]

2020년 기준 스위스의 인구는 8,675,630명으로 대부분의 선진국과 유사하게 스위스 역시 산업혁명기인 17~18세기에 인구가 급증하였다. 2019년 기준 외국인 비율은 25.2%로 유럽에서도 룩셈부르크와 함께 노동인력의 문호가 넓은 편이다. 스위스의 외국인은 유럽연합(EU)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에서 유입된 인구가 전체 외국인의 64%를 점하며 국별로는 독일 15.2%, 포르투갈 12.7%, 스리랑카 6.3%, 프랑스 5.6%, 세르비아 5.3%, 튀르키예 3.8%. 스페인 3.7% 그리고 오스트리아 2% 순이다. 이러한 스위스 내 외국인은 서유럽으로부터의 고급인력 및 발칸과 스리랑카의 타밀족 등 난민 유입에 기인한다.

19세기까지 스위스는 농지와 자원이 부족한 가난한 국가로 외국으로 이민을 많이 떠났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들어 급속한 산업화와 금융업의 발달로 인근 국가에서 많은 노동자가 유입되었다. 이에 따라 1880년에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7.5%를 점하게 되었고 1910년에는 14.7%로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그러나 1, 2차 대전을 겪으며 외국인 수는 급감하여 1941년에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중은 5.1%에 불과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인 경제성장이 진행되면서 1960년대에 이민자 비중은 다시 15%선을 회복하였으나, 이후 강화된 이민정책으로 1980년대까지 이민자 비중은 1960년대 수준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스위스는 1999년 유럽연합과 노동의 자유이동을 담은 양자협정을 체결하고, 2004년에는 유럽연합과 국경을 개방하는 솅겐협정을 체결하면서 유럽연합 회원국으로부터 고급인력이 대거 유입되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인근의 발칸반도와 중동지역에서의 분쟁으로 난민까지 유입되어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25% 선을 넘어섰다. 2010년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스위스는 전 세계적으로 약 1,200여 명에 달하는 난민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로 향후 불법 이민을 포함하여 많은 난민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이다.

급증하는 난민으로 2000년대 들어 스위스 역시 서유럽의 주요 국가와 유사하게 인종 혐오 및 반외국인 정서가 팽배해졌다. 2018년 스위스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9%가 인종차별은 스위스의 심각한 문제라고 답하였고, 스위스 연방통계국의 조사에서도 갈수록 인종차별과 관련된 범죄와 분쟁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교육[편집]

바젤대학교

스위스는 연방헌법에 의해 각 주마다 고유한 교육시스템이 인정된다. 이에 따라 주마다 초중등교육 제도가 다소 상이하고, 다양한 형태의 공립과 사립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높은 학비로 유명한 다수의 사립국제학교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4~6년 과정의 초등과정은 의무교육으로 학비가 무료이다. 스위스의 초등교육은 6세부터 시작되는데, 대부분의 주에서는 4~5세부터 이미 초등학교(children's school) 진학이 시작되어 4~6년간 진행된다. 초등학교에서는 스위스의 타 공용어를 제2 외국어로 공부하는데 2000년대 들어서는 영어를 제2 외국어로 택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초등교육을 마친 학생들은 능력과 선호에 따라 여러 형태의 중등교육과 직업교육 과정에 진학한다. 초등과정을 이수한 학생의 약 25%는 12~13년 과정의 중등교육학교에 진학한다. 이들 학생들은 재학 중 졸업장 혹은 학위(matura)로 불리는 시험을 통과해야 연방차원에서 대학진학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한편 중등교육 이외에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각 주마다 운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직업교육기관에 진학하는데 최소 9년 정도를 수학한다.

스위스는 고등교육과정에 12개의 대학이 있으며 이중 2개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설립된 국립대학교, 10개는 주정부에서 설립된 주립대학(Cantonal Universities)의 성격을 갖는다. 이외에도 스위스는 독일에서 시작된 응용과학대학(Universities of Applied Sciences)을 벤치마킹하여 1995년부터 전국에 7개의 응용과학대학을 설립하여 실용기술을 겸비한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1855년 설립된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ETHZ: Swiss Federal Institute of Technology Zurich)와 1969년에 설립된 로잔연방공과대학교(EPFL: École polytechnique fédérale de Lausanne)는 연방정부에서 설립한 고등교육기관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위스의 과학기술은 학문 수준이 높은 2개의 공과대학교와 응용과학 등 학문기반이 탄탄한 대학교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10개에 달하는 주립대학교에서는 500여 개의 학사 프로그램과 12개의 석박사 프로그램을 두어 매년 우수한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스위스는 수준 높은 고등교육기관이 다수 분포하여 호주에 이어 외국인 유학생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특히 스위스는 고등교육기관의 학문적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박사학위과정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비율이 세계 최고수준에 달한다.

스위스의 12개 대학은 대부분 세계적으로 학문적 명성을 인정받고 있다. 1460년에 설립된 바젤대학교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인문학, 신학 및 의학분야로 유명하다.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연구대학원(IHEID: The Graduate Institute, Geneva)은 국제관계 및 국제개발학 분야에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원과정이다. 스위스 대학은 경영학 분야에서도 각별한 학문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로잔에 위치한 국제경영대학원(IMD: 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있는 MBA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또한 북동부 도시 장크트갈렌에 위치한 생갈대학교 역시 여러 세계적인 MBA 평가기관의 학교평가에서 최상위에 위치하는 대학교이다. 이외에도 취리히대학교는 25,000여 명이 재학하는 스위스 내 최대 규모의 대학으로 경영학 분야에서 학문적 명성이 높다.

사회보장제도[편집]

스위스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연방 차원에서 통합된 사회복지정책을 실행한다. 2017년 기준 스위스의 GDP 대비 사회보장 지출 비중은 23.3%로 유럽연합 27개국 평균 28.1%와 유사한 수준이며 유럽의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프랑스 34.1%, 덴마크 32.2% 등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다. 스위스는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이 진행된 19세기 후반부터 주 차원에서 긴급구호, 무상 초등교육, 노인복지 등 여러 복지정책이 실행되었다.

스위스의 사회 안전을 위한 정책은 연금보험을 근간으로 하면서 의료보험, 실업, 장애에 대한 지원, 가족수당 그리고 소득손실 보장 등 여러 사회보험으로 구성되며 재원은 시민들이 납부하는 소득세에 의존한다. 이외에 스위스는 서유럽의 여러 기독민주당의 노선과 유사하게 보수적인 경제정책 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회 안전을 보장한다.

1948년에 도입된 연금제도는 모든 고용자를 대상으로한 의무적인 시스템으로 은퇴 후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연금보험은 17세이상 근로자부터 납부하며 직업이 없는 경우에도 20세부터는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한다. 직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는 봉급의 4.35%를 연금보험으로 납부하고, 사용자 역시 같은 비율의 금액을 지원한다. 자영업자의 경우 소득의 9.95%를 납부한다. 연금은 남성은 65세 그리고 여성은 64세부터 수령할 수 있다.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보험과 장애보험 역시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1996년 관련 법규의 정비로 의료보험을 통해 폭넓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며 장애보험은 예기치 못한 사고 등에 재활과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보험이다. 2009년 연방차원에서 가족수당이 도입되어 자녀를 둔 가정에게는 16세 미만의 자녀 1인당 매월 219달러의 조세 환급 형태의 가족수당이 지급된다. 또한 16~25세의 자녀에게는 매달 274달러의 교육훈련비가 지급된다. 이외에 소득손실보장은 군복무 등 피치 못할 사유로 소득소실이 발생할 경우 소득의 약 80%(일일 최대 214달러)까지 지급하는 제도이다. 소득손실보장을 위한 재원은 소득의 0.45%를 납부하는 보험료로 운영된다.

스위스는 세계적으로 삶의 질이 최상위에 위치하는 국가이지만 소득격차에 따른 빈곤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스위스는 월소득 4,380달러 이하이며 2인의 자녀를 둔 가정은 빈곤층으로 분류하는데 2020년 기준 스위스 국민의 8.2%는 빈곤선 이하로 집계된다. 또한 편부 혹은 편모가정, 의무교육 이후 교육을 받지 않고 무직인 경우 대부분 빈곤층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민의 4.3%는 직업이 있는 경우에도 저소득으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데 대부분 외국인과 여성이다. 또한 스위스는 전반적으로 높은 물가로 2008년 스위스 연방통계국에 따르면 스위스 인구 중 자가소유는 37%에 불과하여 유럽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스위스 역시 여타 서유럽 국가와 같이 인구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2018년 기준 평균연령은 42.5세로 세계 최고령 국가군에 속한다. 2020년 기준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OECD 평균인 약 20% 수준이지만, 노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척되어 2060년에는 전체 인구의 약 30%까지 상승하여 OECD 평균 27%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스위스 정부는 출산율 증가를 위한 다양한 조치와 이민정책을 병행하고, 산업계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 연금, 고용, 보건의료 등 여러 사회정책을 지속적으로 개혁하고 있다. 스위스는 연금지급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기업과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65세 이상 고령인구에게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근로시간 유연화 조치를 통해 이들 노령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유지토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65세 이상 근로자에게 근로소득과 연금수익을 늘리고 계층 간 빈부격차 완화에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문화[편집]

스위스는 유럽 대륙의 중앙에 있기 때문에 외국 문화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3대문화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다채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다. 또 스위스는 종교개혁·프랑스혁명·나폴레옹전쟁 등과 같은 동란의 시기에 자유와 양식(良識)의 도피처로서 창조적인 인물들을 숨겨주었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역할에는 변함이 없었다. 에라스무스는 바젤에 거주하였고 릴케는 스위스 남부에 살았으며, 나치스에 쫓긴 아인슈타인은 연방공과대학에 적을 두었고 토마스 만도 만년(晩年)에는 스위스에서 지냈다.

제1회 노벨 평화상수상자 앙리 뒤낭(1828∼1910)은 국제적십자의 창설자이며, 3대에 걸쳐 8명의 수학자를 낸 바젤의 베르누이가(家)의 수학과, L.오일러(1707∼1783)의 광학·기계학·항해술은 오늘날 공업국의 기초가 되었다. 인문·사회과학 방면에서는 E.파텔(1714∼67)이 국제법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문화사가이며 미술사가인 J.부르크하르트(1818∼1897)는 《이탈리아 문예부흥기의 문화》, 《그리스 문화사》 등의 저작으로 유명하다. 또 건축학에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서양의 건축 경향을 크게 좌우했던 국제건축학교 창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스위스의 문화사업 및 문화의 보존·발전은 주정부, 지방자치단체, 사설문화재단이 담당하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발생 직전인 1939년 연방정부에 의해 설립된 스위스 문화재단 프로 헬베티카(Pro Helvetia)가 스위스 문화를 신장·보존하고 외국과의 문화를 교류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문학[편집]

스위스는 다민족 국가로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등 다양한 언어로 문학작품이 집필되었다. 그러나 스위스는 1291년 3개 주들이 연맹을 구성할 당시에는 대부분 독일어를 사용하여 오랜 기간 문학작품은 독일어로 저술되었다. 18세기 들어 베른을 비롯한 주도 도시에서 프랑스어가 세련되고 지적인 언어로 인식되면서 프랑스어로 창작된 문학작품도 대중화되었다. 스위스 문학은 근대 이후 본격화되어 19세기 들어 독일어로 작품활동을 한 여러 작가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8세기 스위스를 대표하는 작가는 '사회계약론'을 저술한 장 자크 루소로 그는 공화주의자이며 계몽주의자로 그의 사상은 스위스는 물론이고 프랑스에서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제네바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에서 활동한 낭만주의 소설가 제르멘 드 스탈도 18세기 프랑스어로 작품을 남긴 스위스의 대표적 작가이다. 이외에도 18세기 이후 스위스에서는 이탈리아어와 로망슈어로 작품을 남긴 소수의 작가들이 있었지만 독일어와 프랑스어권 작가들에 비해 작품수도 적고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19세기에는 단편소설 '검은개미(The Black Spider)'로 널리 알려진 예레미아스 고트헬프(Jeremias Gotthelf) 그리고 스위스의 괴테로 불리는 고트프리트 켈러(Gottfried Keller)와 같은 걸출한 작가가 배출되었다. 20세기 들어서는 극작가 막스 프리쉬(Max Frisch, 1911~1991)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urrenmatt, 1921~1990)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여러 작품은 후에 할리우드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독일에서 출생한 작가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는 1923년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하고 이후 스위스에서 집필활동을 하였다.

취리히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아동작가인 요하나 슈피리는 1881년 한국에서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Heidi)》로 알려졌으며 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요하나 슈피리의 작품은 독일어로 집필되었는데 19세기 후반 들어 영어로 번역이 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포츠[편집]

스위스에서는 지형적 조건으로 스키, 스노보드, 산악 등반 등을 대중적으로 즐긴다. 봅슬레이 등 여러 동계스포츠 종목은 스위스에서 시작되었을 정도로 동계스포츠의 발상지이며 강국이다. 1928년에는 제2회 동계올림픽이 알프스산맥에 접한 생모리츠(St. Moritz)에서 개최되었으며, 최초의 세계스키대회도 1931년 스위스의 뮤렌(Mürren)과 1934년 생모리츠에서 개최되었다. 또한 1929년에는 세계 최초로 스키학교가 문을 열면서 이후 스위스는 동계 스포츠의 성지가 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스위스는 1980년대 알파인 스키에서 올림픽과 세계대회를 휩쓴 피르민 추브리겐(Pirmin Zurbriggen)와 1990년대 역시 알파인 스키에서 세계 최강자로 군림한 디디에 쿠체(Didier Cuche) 등 많은 동계스포츠 스타들을 배출하였다. 스위스는 아이스하키 강국으로 12개의 팀으로 구성된 아이스하키 리그가 큰 인기가 있으며 국가대표팀은 2013년과 2018년에 세계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하였다. 2009년에는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가 스위스에서 개최되었다.

스위스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등반 열풍이 일어 전문적인 산악인들이 여러 알프스 봉우리의 등반 루트를 개척하여 천혜의 자연환경이 널리 알려지고 관광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영국의 판사이며 산악인인 앨프리드 윌스(Alfred Wills)는 1854년 해발 3,692m의 베터호른산을 최초로 등반하여 화제가 되었다. 수년 후 1865년 영국 산악인 에드워드 윔퍼(Edward Whymper)는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마터호른산의 루트를 개척하여 본격적으로 알프스 등반의 길을 열었다. 이에 따라 1857년 런던에는 세계 최초로 전문 산악인들의 모임인 알파인클럽이 결성되었고, 스위스에서도 1863년 스위스 알파인클럽이 발족하였다. 유명 산악인의 연이은 알프스 등정으로 19세기 말부터는 알프스 산맥 전역에 철도와 케이블카가 들어서 사계절 내내 관광지로 발전하였다.

스위스는 내륙국이지만 전국에 많은 호수가 산재하여 대표적 해양 스포츠인 요트의 인기도 높다. 스위스 요트팀 알링기(Alinghi)는 요트 월드컵으로 불리는 아메리카컵 대회에서 2003년 유럽팀으로는 최초로 우승을 하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테니스도 스위스에서 대중적인 스포츠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마르티나 힝기스(Martina Hingis) 등 걸출한 테니스 선수를 배출하였다. 로저 페더러는 20여 차례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여 남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선수가 되었다.

스위스는 1955년부터 자동차 경주대회인 르망 24시간레이스에 참여할 정도로 모터스포츠가 큰 인기를 끌고 세계적인 드라이버를 다수 배출하였다. 2014년 르망 24시에서는 스위스 출신인 알랭 메뉴(Alain Menu), 그리고 2015년 뉘른베르크 24시(24 Hours Nürburgring)에서는 니코 뮬러(Nico Müller)가 우승하였다. 이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개최되는 모터스포츠에 스위스 팀과 선수들이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다.

축구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유사하게 스위스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대중 스포츠 가운데 하나이다. 스위스는 1954년 월드컵을 유치하였고 2008년에는 오스트리아와 공동으로 유로 2008 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스위스 아마추어팀 FC 그슈폰(FC Gspon)의 홈그라운드인 오트마 히츠펠트구장(Ottmar Hitzfeld Stadium)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해발 2,000에 위치한 구장으로 유명하다.

한편 스위스에서만 즐기는 몇몇 전통 스포츠도 현대까지 보존되어 일부 주에서는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스위스 레슬링으로 잘 알려진 '슈빙겐(Schwingen)'’, 야구와 골프를 모아놓은 형태의 경기인 '호너스(Hornussen)', 선사시대부터 고산지대 주민들로부터 유래한 돌던지기 경기인 '스타인스토센(Steinstossen)' 등은 스위스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 스포츠이다.

축제[편집]

스위스는 알프스 산맥을 접하고 있는 지형으로 여름철뿐 아니라 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마을마다 연중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 특징이 있다. 동남부의 그라우뷘덴주와 글라루스주 등 알프스와 접하는 지역에서는 1~3월 기간에 '썰매경주(Horn sled races)'가 수시로 열린다. 썰매경주는 알프스 지역의 오랜 전통으로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코스에서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변화되었다.

매년 1월 13일과 12월 31일에 아펜첼주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개최되는 '질베스터클라우젠(Silvesterchlausen)'은 이를 기념하는 기념주화가 발행될 정도로 스위스 전역에서 인기 높은 축제이다. 질베스터클라우젠은 신년을 맞이하여 마을 주민들이 다양한 종류의 마스크를 쓰고 그룹을 지어 마을을 돌며 요들송을 부르는 전통적인 축제이다. 질베스터클라우젠은 스위스의 색채를 보여주는 축제로 기독교 보급 이전 이교도 신앙에 뿌리를 둔 연원이 오랜 축제이다.

매년 1월 중순에 발레주의 작을 마을 벨랄프(Bellalp)에서 열리는 '마법사 언덕썰매경기(Witches Downhill Race)'는 마녀와 마법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벌이는 썰매경주로 모든 연령대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축제이다. 어린이들은 별도로 분장을 하고 경주를 벌이기도 한다. 언적썰매경기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토요일에 열리는 단체경주로 이날은 DJ까지 동원되어 음악과 경주를 즐기는 날이다.

서부 보주의 모르주(Morges)에서는 3~5월에 마을 전역에서 '튤립축제(Tulip Festival)'가 열려 이를 관람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툴립축제 기간에는 약 300여 종의 튤립 15,000여 송이가 약 6주 동안 마을 곳곳에서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며,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마을과 시장에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모르주 마을은 레만호 인근에 위치하여 튤립축제가 열리는 기간 레만호를 찾는 관광객들도 많이 참여하여 즐긴다.

매년 부활절이 지나고 40일 후에는 루체른주에 인구 약 5,000여명의 작은 마을 베로뮌스터(Beromünster)에서는 예수승천일행렬(Traditional Ascension Day Procession)이 열린다. 예수승천일행렬은 아침부터 시작되어 저녁 늦게까지 진행되는데 150여 명의 말을 탄 사람들이 앞에서 행렬을 이끌고 마을 주민들이 뒤를 따른다. 오후부터는 전국에서 교회의 사제들과 음악가들이 다양한 복장을 하고 악기를 연주한다. 약 18km에 달하는 베로윔스터 마을의 승천일행렬 루트는 500여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스위스는 각 마을에서 열리는 전통축제 이외에도 20세기 들어 시작된 현대적인 축제와 행사가 풍부하다. 대표적으로 매년 1~2월에 개최되는 국제열기구축제(International Balloon Festival), 3월에 개최되는 제네바모터쇼, 그리고 7월에 열리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은 전 세계인이 찾는 국제 행사이다.

매년 1~2월 보주의 샤또데(Château-d’Oex)에서 열리는 국제열기구축제는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수백여 명의 조종사들이 열기구를 타고 약 2주 동안 동안 경기를 진행한다. 1979년부터 시작된 국제열기구축제는 공식적인 대회와 함께 열기구 전시와 각종 공연도 펼쳐진다. 세계적인 열기구 조종사인 베르트랑 피카르(Bertrand Piccard)은 1999년 최초로 열기구를 타고 샤또데를 출발하여 지구를 한 바퀴 돈 기록을 가지고 있어 본 축제가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3월 중순 제네바의 팔렉스포(Palexpo)에서 개최되는 제네바모터쇼는 세계 3대 모터쇼 중 하나로 전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들의 신차가 최초로 선을 보이는 행사이다. 제네바모터쇼가 열리는 기간에는 전 세계의 언론과 많은 산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39개국이 가입한 자동차산업무역(Organisation Internationale des Constructeurs d'Automobiles)이 1905년부터 진행하는 제네바모터쇼는 자동차 산업의 기술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행사로 관련 산업계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관람객들도 많이 참여한다.

7월 스위스 몽트뢰에서 개최되는 몽트뢰재즈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매년 개최되는 수백여 개의 재즈페스티벌 증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 이어 규모가 큰 행사이다. 1971년부터 시작된 몽트뢰재즈페스티벌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큰 명성을 얻어 행사가 개최되는 7월에는 전 세계에서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도시를 찾는다.

요리[편집]

스위스는 작은 영토이지만 다양한 기후와 지형으로 각 지역마다 고유 음식이 발달하였다. 여러 전통음식 중에서도 퐁뒤, 라클레테(raclette), 뢰슈티(rösti) 등은 스위스 전역에서 즐기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퐁뒤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지역에서도 널리 즐기는 일종의 치즈를 녹인 전골음식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라클레테는 치즈를 녹인 뒤 감자 등과 함께 먹는 음식이며, 뢰슈티는 원래 농가에서 즐기던 음식으로 감자를 썰어 후라이팬에서 튀기는 요리이다. 이와 같이 스위스의 대중적인 요리는 치즈와 감자 등 스위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만든 소박한 음식이 대부분이다.

스위스는 오래 전부터 낙농업에 특화된 농업구조로 다양한 치즈의 산지이다. 그뤼에르(Gruyère) 지역에서 만든 그뤼에르 치즈는 퐁뒤 요리에 널리 쓰이며, 역시 지명을 딴 에멘탈 치즈는 유럽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스위스산 치즈이다. 스위스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함께 국민 1인당 와인 소비량이 상위에 위치하는 국가이다. 스위스는 포도재배에 적합한 지형으로 제네바, 발레(Valais), 보(Vaud), 티치노(Ticino) 등에서는 로마시대부터 와인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스위스의 와인 생산량은 많지 않아 대부분 국내에서 소비되고 수출량은 2% 미만이다.

스위스는 전통적인 요리와 음식에 현대적인 기술을 적용하여 대량생산을 시작한 국가로, 그 대표적인 예가 초콜릿이다. 스위스에서는 18세기부터 초콜릿을 제조하였고 19세기 말 이후 유럽 전역에서 질 높은 초콜릿으로 명성을 얻었다. 19세기부터 현대적인 기술을 도입하여 다양한 형태의 초콜릿을 생산하여 바리 칼리바우트(Barry Callebaut)와 같은 기업은 세계 최대 초콜릿 생산회사로 발전하였다. 또한 스위스 의사 막시밀리안 비르헤르-베너(Maximilian Bircher-Benner)는 20세기 초 오트밀과 마른 견과류를 우유와 함께 먹는 뮤즐리를 영양식으로 발전시켜 시리얼로 상품화하였다.

관광[편집]

시옹성
벨린초나성
융프라우요흐 역
알불라철도
스위스 마터호른산

스위스는 잘 보존된 자연환경과 발달된 대중교통, 안전하고 쾌적한 사회적 환경 등으로 유럽의 대표적인 관광국가이다. 스위스를 찾는 관광객은 오래된 건축물과 시가지 및 문화유적과 함께 알프스 산맥의 여러 봉우리와 산림지대 및 호수 등 자연경관을 즐긴다. 또한 스위스 전역에서는 스키리조트와 산악스포츠, 하이킹을 즐길 수 있어 스위스는 전 국토가 관광지라 할 수 있다.

건축

서부 몽트뢰시 인근 레만호수(Lake Léman) 동쪽 끝에 위치한 시옹성은 스위스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성으로 유명하다. 10세기부터 건축이 시작되어 오랫동안 개축과 확장이 거듭 이루어진 시옹성은 스위스의 국가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관리받고 있다. 역시 레만호수 북쪽에 약 30km에 걸쳐 펼쳐진 라보 포도밭(Lavaux vineyards)은 10세기부터 조성된 곳이다. 라보 포도밭은 200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주정부 차원에서 엄격히 관리되고 있으며 2016년부터는 살충제 사용이 금지되었다. 라보 포도밭은 멋진 경관으로 하이킹 코스로도 유명하다.

남부 티치노주의 주도인 벨린초나에 위치한 벨린초나성(Castles of Bellinzona)은 3개의 성과 성곽으로 구성된 곳이다. 벨린초나성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에 건설되어 도시를 지키는 성곽으로 기원 전부터 요새가 들어선 곳으로 4세기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건축이 진행되었다. 벨린초나 성은 2000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동부 장크트갈렌(Gallen)에 위치한 성갈렌수도원(Abbey of St. Gallen)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도서관이 있는 곳으로 1983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유서깊은 가톨릭 유산이다.

역사적인 유적 이외에 20세기에 건축된 여러 건물과 구조물이 독특한 건축양식과 풍광으로 관광명소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해발 3,571m의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에 건축된 스핑크스 천문대(Sphinx observatory)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천문대로 연중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스핑크스 천문대는 2014년에 개봉한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 등 여러 영화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졌으며 정상에는 2곳의 과학기지도 위치한다.

스위스 남부 발레주에 위치한 그랑드디상스댐(Grande Dixence Dam) 역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랑드디상스댐은 1950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961년에 완공되었으며 약 400,0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그랑드디상스댐은 높이가 285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중력댐이며 유럽에서 최고 높이의 댐으로 화제가 되어 이후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스위스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알불라철도(Albula Railway)이다. 남부 그라우뷘덴주에 위치한 알불라철도는 55개의 다리와 39개의 터널로 연결된 단선철로로 1903년에 완공되었다. 본 철로 중에서도 1902년에 건축된 아치형 석화암 철교로 슈미텐(Schmitten)과 필리수르(Filisur)를 잇는 란트바써 비아둑트(Landwasser Viaduct)는 최고 명소이다.

자연

이탈리아와의 국경에 위치한 해발 4,478m의 마터호른산은 알프스 산맥을 대표하는 산으로 1865년 영국의 산악인 에드워드 휨퍼(Edward Whymper)가 북동부 능선을 통해 최초로 정상을 정복한 이후 전 세계 산악인들의 필수 등반코스로 자리매김했다. 마터호른산은 스위스의 랜드마크로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지 않아 모험을 즐기는 등반객들이 주로 찾는다. 일반 등반객들은 북벽의 회른리그라트(Hörnligrat)를 통해 해발 3,260m에 위치한 회론리산장(Hörnli Hut)까지 오르는 루트를 많이 찾는다.

융프라우산은 스위스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케이블과 기차로 접근이 용이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베른주와 발레주에 걸쳐있는 해발 4,158m의 융프라우는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융프라우는 1865년에 북쪽으로 등반할 수 있는 루트가 개척되었고, 20세기 들어 산악철도와 케이블카가 건설되면서 알프르 산맥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되었다. 특히 알레치 빙하 지역은 2001년 UNESCO의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스위스에는 약 1,500여 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산재하는데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는 호수는 레만호(Lake Léman)로 더욱 널리 알려진 제네바호(Lake Geneva)와 루체른호이다. 레만호는 면적 583km²에 달하는 스위스 최대 규모의 호수로 세개의 주에 걸쳐 있으며 프랑스와도 국경을 접한다. 레만호는 오래 전부터 관광지로 개발되어 호수를 오가는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다. 인접한 제베바시와 몽트뢰시 그리고 시옹성을 함께 둘러보는 코스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편 또 다른 인기 관광지인 루체른호는 면적이 114km²에 달하는 광대한 호수로 스위스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이며 다섯 개의 주와 접하고 있고, 주위는 알프스 산맥이 둘러쌓고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루체른호를 찾는 관광객들은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크루즈선을 타고 루체른 호수를 둘러싼 복잡하고 다양한 지형을 감상하거나, 호수 주변을 따라 하이킹을 즐기기도 한다.

스위스 지도[편집]

서유럽 산맥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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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주변 지도[편집]

서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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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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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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