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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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스페인어: Valencia, 카탈루냐어: València)는 스페인 발렌시아주의 주도이다. 발렌시아는 지중해에 면한 스페인의 항구도시로 인구는 약 80만 명이고 발렌시아 도시권의 인구는 약 160만 명이다. 발렌시아 항구는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붐비는 컨테이너 항구이며 지중해에서 두 번째로 붐비는 컨테이너 항구이다.[1]
개요[편집]
발렌시아는 이베리아반도의 동부 지중해에 면한 발렌시아주의 주도이며, 자치주를 구성하는 3개의 도(道) 중 발렌시아의 도청소재지이다. 발렌시아는 스페인에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이은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도시이자, 바르셀로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로 대표적인 관광도시이다. 기원전 138년 식민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한 발렌시아는 투리아강(Río Turia) 양안에 위치해 발렌시아만을 마주하고 있다. 발렌시아라는 도시의 이름은 ‘용맹’을 의미하는데, 갈라이쿠스(Decimus Junius Brutus Callaicus) 집정관이 용맹한 부하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기 위해 도시를 세운 것에서 유래한다. 15세기에는 섬유산업의 발전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재정을 지원할 정도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르네상스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신대륙 발견 이후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면서 쇠퇴하였다. 에스파냐 왕국으로 복속된 이후에는 자치왕국의 지위를 가진 발렌시아왕국의 수도로 지정되어 번영했다. 시의 중심인 구시가는 발렌시아 북역 바로 앞쪽에 위치하고 항구 쪽으로는 예술과 과학 도시(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와 신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발렌시아는 카탈루냐어의 방언으로 알려진 발렌시아어를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발렌시아는 유럽에서 5위 안에 드는 물동량을 가진 스페인 최대의 컨테이너 항구이다. 주요 수출품은 식료품과 음료이고 오렌지, 가구, 도자기 타일, 섬유와 금속제품 등도 수출된다. 야금, 화학, 섬유, 조선과 양조 등의 제조업이 발달해 있으며 중소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발렌시아는 관광, 건축, 통신 및 자동차 산업의 성장으로 2008년 세계 경제난 이전까지 빠르게 성장했다. 포드자동차사의 조립공장이 발렌시아 외곽에 있다. 발렌시아의 수호성인인 성 요셉(Saint Joseph)을 기억하기 위해 매년 3월 15일~19일 사이에 열리는 발렌시아 파야스 축제는 2016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기록될 정도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발렌시아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라론하 국립 도자기 박물관, 발렌시아 대성당 등이 있다.[2]
발렌시아에는 로마시대, 아랍시대, 중세시대의 다양한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가장 유명한 발렌시아 성당은 13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건축됐으며 발렌시아 고딕 건축양식에 바로크 및 로마네스크 양식이 가미된 건물이다. 고대 로마구역의 중심부에 있다. 15세기에 건축된 세라노스 탑과 콰르트 탑은 도시를 둘러싼 성벽의 일부였다. 초기 발렌시아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비단시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발렌시아 아르누보 양식의 중앙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큰 전통 시장이다. 중세교회로 산트 호안 델 메르카트, 산트 니콜라우, 산타 카탈리나, 산트 에스테베 등이 있다. 발렌시아에서 가장 넓은 플라사 델 아훈타멘트 광장은 삼각형 모양이다. 광장 서쪽에 시청사가, 동쪽에 중앙우체국과 극장, 레스토랑과 바가 있으며 북쪽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다. 1960년대 투리아강이 크게 범람한 뒤로 물줄기를 바꾸는 공사가 있었으며 원래의 강바닥에 정원과 놀이터, 분수, 운동장이 들어섰다.
지리 및 기후[편집]
발렌시아는 지중해 서부의 발레아레스해의 일부인 발렌시아만에 접하고 있으며, 투리아강이 발렌시아만으로 흐른다. 로마인에 의해서 건설된 마을은 지중해에서 투리아강을 따라 6.4km를 올라간 위치에 있었다. 도심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11km의 거리에는 스페인 국내에서 최대급의 담수호 중 하나인 알부페라가 있다.
발렌시아는 아열대 지중해성 기후이며,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는 Csa에 속한다. 연평균기온은 18.4°C이며 낮 평균기온은 23.0°C, 밤 평균기온은 13.8 °C다. 가장 추운 1월중 낮 최고기온은 14~21°C, 밤 최저기온은 5~10°C다. 가장 더운 8월중 낮 최고기온은 28~34°C, 밤 최저기온은 21~23°C다. 지중해 연안 남유럽 도시인 발렌시아는 푄 현상 때문에 유럽에서 가장 온화한 지역으로 겨울 날씨가 북유럽의 여름날씨와 비슷한 정도다. 연평균 일조시간은 2,696시간이며 겨울에는 일평균 5시간, 여름에는 10시간에 달한다.[3]
역사[편집]
발렌시아는 기원전 138년 로마공화국의 집정관 갈라이쿠스(Decimus Junius Brutus Callaicus)가 자신을 따라 에데타니(Edetani) 지역 정벌에 동참한 부하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기 위해 설립한 식민도시였다. 그는 도시의 이름을 발렌시아 에데타노룸(Valencia Edetanorum)이라고 지었는데, 발렌시아는 ‘용기’라는 의미로 발렌시아 에데타노룸은 ‘에데타니의 용맹한 자’라는 의미였다. 기원전 75년에는 이베리아반도 전역을 장악한 전직 집정관 세르토리우스(Quintus Sertorius)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로마에서 파견된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Magnus) 집정관에 의해 도시가 철저히 파괴되기도 했다. 이후 로마에서 온 정착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도시는 재건되어 전형적인 로마식 도시가 되었다.
5세기 초 로마제국의 약화를 틈타 서고트족에 의해 정복되었으나 6세기 중반 비잔틴제국의 침략으로 동로마제국의 영토가 되었다가 625년 다시 서고트족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714년에는 아프리카에서 무어인(Moors)들에게 정복되어 발란시야(Balansiyya)로 불리게 되었다. 무어인들의 통치 시절 발렌시아는 종이, 실크, 가죽, 세라믹 등 무역을 통해서 번성하였고, 교회가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되고 각종 이슬람식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도시는 점차 이슬람화되었다. 11세기 이베리아반도에 세워진 이슬람왕국이 분열되자 발렌시아에는 1021년 발렌시아 무어왕국이 세워졌다. 발렌시아에 수도를 둔 무어왕국은 1094년 에스파냐 중부 카스티야(Castilla) 귀족인 엘 시드(El Cid)에 의해 정복되어 다시 기독교화되었지만 1102년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들의 무라비트 술탄국(Almoravid)의 침략을 받아 다시 이슬람화되었다. 1238년 아라곤 왕국의 정복왕 차이메 1세(Jaume el Conqueridor)에 의해 정복당할 때까지 이슬람 세력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아라곤 왕국 치하에서 발렌시아 왕국은 자체적으로 법률과 의회를 가진 자치왕국으로 성장했다. 차이메 1세에 의해 정복된 이후 5만여 명의 무어인들이 아프리카로 떠났지만, 여전히 수만 명의 이슬람인들이 남아있었다. 이후 발렌시아는 이슬람, 기독교, 유대인들이 공존하는 도시가 되었다. 14세기 중반 흑사병이나 반란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면서 도시는 혼란을 겪었지만, 1479년 아라곤 왕국이 카스티야레온 연합왕국에 합병된 뒤에도 자치권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최고의 번영기를 누렸다. 섬유산업의 발전으로 실크거래소(Llotja de la Seda)와 은행 등이 설립되었고, 1492년에는 콜롬부스의 항해를 위해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Isabella I)에게 돈을 빌려주고 건축과 예술을 후원하는 등 황금기를 구가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처음으로 인쇄기가 도입되었고 '발렌시아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또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노예무역 시장이 운영되었으며, 이베리아반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성장했다.
발렌시아의 발전은 16세기 초반 정체되었는데, 발렌시아가 재정을 지원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갔고, 북아프리카 해안의 해적활동이 해상 무역에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발렌시아의 경제가 위축되자 1519년 수공업자조합이 공화주의를 요구하면서 반란을 일으키고 이슬람과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로 개종을 강제하며 차별했다. 17세기에는 발렌시아 경제의 상당 부분을 지탱했던 이슬람인들을 대대적으로 추방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8세기 초에 발생한 스페인계승전쟁(1701~1714)에서 발렌시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 대공(나중의 카를 6세)의 편에 섰다. 하지만 전쟁에서 절대왕정을 추구하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가 승리를 거두며 펠리페 5세가 스페인의 왕으로 등극하게 되자 발렌시아는 자치권을 박탈당했다. 부르봉 왕가의 통치기에 발렌시아는 실크산업과 세라믹 산업의 성장으로 경제가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초 에스파냐를 속국으로 만든 나폴레옹 1세의 지배에 대항해 일어난 반도전쟁에 발렌시아 역시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1808년 6월 프랑스군을 격퇴했으나, 1812년 루이 가브리엘 쉬셰(Louis Gabriel Suchet, 1770~1826) 장군의 공격에 도시의 방어 체계가 무너졌다. 나폴레옹의 형이자 에스파냐 호세 1세(José I)로 임명된 조제프 보나파르트는 궁정을 발렌시아로 옮겼지만 1813년 6월 비토리아 전투(Battle of Vitoria)에서 패배한 프랑스군은 7월 발렌시아에서 철수했다.
20세기 초 발렌시아는 가죽·목재·식료품 산업 등이 발전하면서 호황을 누렸지만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감귤 수출의 감소로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스페인내전(1936~1939) 동안 왕당파의 임시 수도가 되어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을 지원하는 독일과 이탈리아군의 대대적인 폭격을 당하기도 했다. 3,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폭격으로 사망하고 프랑코 독재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발렌시아의 자치가 금지되고 발렌시아어를 말하거나 가르치는 것도 금지되었다. 1957년에는 투리아강의 대홍수로 81명이 사망하고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후 시 정부는 강을 남쪽으로 우회시키고 옛 강변을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이후 민주주의의 회복과 함께 발렌시아에는 자치 권한이 부여되어 발렌시아 자치주의 주도가 되었다.[4]
교통[편집]
발렌시아는 스페인 중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수도 마드리드와 북부의 바르셀로나에서 약 350㎞ 떨어져 있지만, 비행기와 열차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까지는 국영철도인 렌페(Renfe)가 운영하는 고속열차(AVE)를 이용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발렌시아의 주요 철도역은 발렌시아 북역(Estación del Norte)으로, 역사지구와 바로 연결된다. 발렌시아 공항은 도시의 중심에서 약 9㎞ 서쪽에 위치하고 지하철이나 셔틀버스로 바로 발렌시아 북역과 연결된다. 고속도로 역시 주요 도시인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톨레도 등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시내 교통은 발렌시아 정부철도(Ferrocarrils de la Generalitat Valenciana:FGV)가 운영하는 전철, 트램, 버스가 담당한다. 전철은 총 9개 노선이 도시를 동서남북으로 연결하고 있다. 전철은 지하 구간을 운영하는 노선과 지상에서 운행하는 전철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밖에 트램이 전철이 연결되지 않은 구간을 운영하고 있다. 발렌시아는 주민과 여행객들의 시내 이동의 편의성을 위해 발렌비시(Valenbisi)라는 자전거 공유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관광[편집]
관광지는 구시가지 일대에 몰려 있는데 비르헨 광장을 중심으로 발렌시아 대성당,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미켈레테탑, 레이나 광장, 중앙 시장,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라 론하 데 라 세다(비단 거래소) 등이 있다. 현지인들이 놀러 가는 곳으로는 한국의 코엑스몰이나 벡스코과 비슷한 '예술 과학 도시'라는 문화 단지가 있는데 세계적인 건축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했다. 독특한 건축 형태의 건물들이 인상적이고 수족관, 과학관, 놀이시설, 컨벤션 센터 등이 있다. 발렌시아 동물원(Bioparc Valencia)도 스페인에서 인기 있는 편이다.
발렌시아 중앙시장은 발렌시아식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자체가 볼거리다. 물론,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상점들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발렌시아의 해변은 상당히 넓게 펼쳐져 있지만 관광 중심부에서 다소 거리가 있어서 바르셀로나의 바르셀로네타 해변처럼 바글거리지 않는다. 물가도 바르셀로나보다 저렴한 편이다. 대도시임에도 관광지로서의 인지도는 바르셀로나, 마드리드에 비해 현저하게 낮기때문에 혼잡도가 덜하고 치안에 대한 불안도 덜하다. 시내 중심부인 성당에서 좀 벗어나면 그냥 사람 사는 도시같은 느낌이다. 뚜리아강을 메워서 길게 조성된 공원에는 현지인들이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전시장(컨벤션센터)인 페리아 발렌시아가 위치해 있다. 페리아 발렌시아는 1917년 개장하여 2017년 개장 100주년을 맞았다.
매년 3월 열리는 라스 파야스(Las Fallas)라고 불리는 '발렌시아 불꽃놀이 축제', 8월 말에 부뇰(Buñol)이라는 마을에서 열리는 토마토 축제 라 토마티나도 유명하다. 라스 파야스 축제 기간에는 불꽃놀이와 폭죽이 내내 이어지고 800개에 육박하는 니놋(Ninot)이라 불리는 대형 인형들이 발렌시아 시내에 세워지고 축제 마지막 날에 이 인형들을 모두 불태우는 것으로 축제를 마무리한다. 토마토 축제날이 되면 아예 토마토를 트레일러 째로 가져다 놓고 사방에서 상당히 많이 던져대는지라 온 도시가 토마토 범벅이 된다. 이때 쓰이는 토마토들은 소위 잉여 생산물 수준인 거의 먹기 힘든 수준의 토마토를 던진다고 하니 그렇게까지 자원 낭비는 아닌 듯하다. 토마토가 주식 작물은 아니고 이 행사는 원래 똥값이 된 토마토 값 책임지라고 농민들이 토마토 던지며 시위하던 것에서 비롯되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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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발렌시아〉, 《위키백과》
- ↑ 〈발렌시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발렌시아(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발렌시아〉, 《요다위키》
- ↑ 〈발렌시아(스페인)〉,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 〈발렌시아〉, 《위키백과》
- 〈발렌시아(스페인)〉, 《나무위키》
- 〈발렌시아〉, 《요다위키》
- 〈발렌시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발렌시아(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