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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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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實驗, experiment)은 실제로 해보는 일 혹은 이론이나 현상관찰하고 측정함을 의미한다.[1]

개요[편집]

실험은 개인 스스로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 실제로 해보는 일과 전문 인원들이 진행하는 기술적 혹은 과학적인 연구 차원에서 어떤 이론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하는 행위이며 방법이기도 하다.

과학 연구에는 관찰과 실험의 방법이 있다. 관찰은 연구자가 연구하는 대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어떤 작용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실험은 연구자가 그 연구 대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작용하고 연구 대상에 대한 외부의 영향이나 다른 요인의 개입을 제거하여 대상을 일정한 상태에 머물도록 한 다음, 단순화된 조건을 갖추어 실시한다.

이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계장치가 요구된다. 그리고 대상이 가진 여러 요소, 그 상호 관계, 구조 등을 명확히 하고, 또 전제된 가설검증하는 데 사용된다. 실험에는 기술적 수단이나 기타의 사정 때문에 위에서 말한 실험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 실험을 하고 나서 '이러이러'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논리적 추구(追究)로 수행하는 사고실험(思考實驗)도 있지만, 이것은 본래의 실험에 속하지는 않는다.

관찰이나 실험은 모두 과학 연구상의 실천인데, 이것에 의해 인간은 대상에 관한 지식의 원천을 획득하고, 또 기존의 지식의 검증을 수행하지만, 그것에 의해 획득된 자료는 단지 현상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고의 적용에 의해 자료의 모든 사실의 추구(追究)를 진행하여 본질적 통찰에까지 이르는 것이 필요하다.[2]

실험과 시험 차이[편집]

실험하면 비슷한 단어인 시험을 떠올리는데 실험과 시험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항상 둘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이 있다.

  • 시험은 이미 증명된 이론이나 기술을 전제로 그것에 맞춰 모르는 대상을 검증하거나 혹은 그것에 맞춰 만들어진 대상이 제대로 된 결과를 보여주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 실험은 아직 실증되지 않은 이론이나 기술을 전제로 그걸 입증하기 위해 실제로 해보거나 새로운 이론 또는 기술을 찾기 위하여 관측, 제작, 작동 등을 진행한다.[3]

실험의 역사[편집]

대부분의 과학적 사실은 과학자들이 밝혀낸 연구와 실험의 결과물이다. 과학자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특이한 현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반복했다.

고대 연금술[편집]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된 과학이라는 학문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할 수도 있지만,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은 자연을 인간 스스로 의지를 갖추고 조작할 수 있지 않다고 여겼다.

실험이라는 실제로 여러 가지로 조작해 보거나 어떤 이론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하는 행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연금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연금술이란 싼 금속으로 변환시키고자 하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한 비술이다.

만물은 4가지 원소로 이뤄진 질료와 형상의 적절한 조화로 이뤄졌다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봉했던 연금술사들은 물질의 형상을 바꿔 다른 물질로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물질은 3단계의 과정, 형상을 없애는 흑화와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백화 혹은 황화, 마지막으로 반짝임을 만드는 광택화라는 3가지의 과정을 통해 물질을 변환할 수 있다고 여겼다.

연금술사들은 금속을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도구를 개발했다. 액체를 증발시켜 분류하는 도구인 증류기는 물론 플라스크, 여과기 등의 기구를 탄생했고. 증류법, 결정법과 같은 실험 기술들도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유용하게 이용하였다. 이런 도구의 발달은 다양한 결과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결과들에 대해서 연금술사들은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물질이 액체에 녹아내리는 용해, 미처 녹지 않은 물질을 거르는 거름, 용액이 특정한 모습으로 굳는 결정화 등등이었다.

3세기 무렵 연금술의 뿌리는 이슬람으로 고스란히 전해지게 되면서 그 명맥을 이어나가게 됨은 물론, 더 세련되게 발전되게 된다. 자비르 이븐 하이얀은 연금술의 성공 비결이 체계적인 행위의 반복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순서는 다음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1. 먼저 연금술에 사용되는 대상의 양을 잘 측정한 뒤, 그 물질들을 잘 증류해 분리한다.
  2. 다음으로 분리한 물질들을 서로 다르게 혼합해 보면서 새로운 물질로 만들어보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물질들의 특성을 잘 기록한다.
  3.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 새로운 물질을 또다시 분류하거나 분석해 다시 그 물질을 만들 방법을 정리한다.

이는 근대과학의 실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하이얀의 이러한 제안은 이슬람의 연구 성과를 크게 진보시키는 역할은 물론,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면서 다시금 부활하는 유럽 자연 철학자들에게 막대한 자료와 영감을 불어넣게 되었다. 그들이 세련되게 가다듬은 증류 기술과 용해 결정인 응고, 화소, 승화, 산화, 증발, 여과와 같은 이러한 기법들은 서양의 연금술사에게 있어 피와 살이 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꿈은 '현자의 돌'이라고 불리는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현자의 돌은 값싼 금속을 금으로 만들 때 꼭 필요한 일종의 금 제조재료의 역할을 하는 물질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금술은 단순한 화학 실험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상들을 결합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아이작 뉴턴과 같이 세계 과학 역사를 흔들어 놓은 인물들조차 연금술에 빠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은 현자의 돌은 물론 금을 만드는 일에도 실패하게 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연금술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시작은 근대 화학의 첫 단추를 끼웠다고 평가받는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보일이다. 그는 원소의 개념을 확립하고 연금술사를 최초로 비판하면서 연금술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렇게 연금술을 비판했지만, 그에게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연금술 때문이었다.

1669년 독일의 연금술사인 브란트가 신비한 물질을 찾기 위해 화로에 불을 피우고 어떤 액체를 증발시키고 있었다. 이 액체 속에서 침전물을 끄집어냈더니 놀랍게도 거기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브란트는 이 신비한 물질을 자랑하기 위해 바다 건너 영국의 찰스 2세에게 가져다줬지만, 그는 찰스 2세에게 이 물질의 근원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궁금해진 찰스 2세는 이 물질이 무엇인지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별다른 사전 정보도 없이 물질의 본질을 밝혀낸다는 것은 당시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보일은 철저한 실험을 통해 마침내 이 물질이 인간의 소변 안에 섞여 있는 물질 중 하나인 백린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 백린을 이용해 처음으로 성냥을 발견하기도 했다.

비록 연금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당시 사용하던 여러 도구는 그대로 시대의 흐름과 함께 계속 전해졌고. 그뿐만 아니라 연금술을 위해 분류하고 만들어낸 새로운 물질인 알코올, 에테르, 아세트산, 질산, 염화암모늄, 질산은, 비누 등의 다양한 물질 역시 후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4]

17세기 이후[편집]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전반 사이에 많은 자연학자들이 다양한 도구와 방법으로 갖가지 실험을 했다. 보일의 진공펌프 실험이나 라부아지에연소실험은 후대에도 줄곧 이야기될 내용이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 사이에는 특히 , , 전기기체의 성질이나 작용에 대한 온갖 실험이 시도되었고, 그 중 많은 내용이 출판되었다. 그 책들은 아직도 세계 여러 도서관의 고서 코너를 그득히 채우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여전히 현대에 출판되고 있는 책들과 섞여 공공 도서관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5]

자동차의 실험[편집]

자동차는 시험의 산물로 불릴 만큼 많은 시험들이 있다. 이런 시험들을 모두 실험할 수 있으며 이런 시험은 최초 실험을 통하여 타당한 시험 방법과 평가 기준을 제정했다고 할 수 있다. 의혹이 제기되거나 새로운 이론이다 더 좋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다.

제조 메이커에서 진행하는 실험은 주로 연구소에서 담당하여 진행되며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실험이란 직접 운전 혹은 탑승해 보는 실험이다.

2013년 6월에 국토교통부가 수년째 끊이지 않는 자동차 급발진 의혹을 규명하고자 공개 실험을 진행한 적도 있었다. 가속페달 센서 오작동, 스로틀밸브 강제 개방, 전자제어장치(ECU)에 가습, 자동차 부위별 전기적 충격, 주행 중 가속페달과 제동 페달 동시 밟기, ECU 중앙처리장치 가열 및 접촉 불량, 연소실 카본 퇴적 등 7가지 상황에 대해 실험했는데 결과 급발진은 확인되지 않았다.[6]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실험〉, 《네이버 어학사전》
  2. 실험〉, 《네이버 백과사전》
  3. 요정조각, 〈실험과 시험의 차이점〉, 《네이버 블로그》, 2014-12-10
  4. 이효종, 〈실험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사이언스》, 2019-08-30
  5. 김기윤, 〈자연을 이해하려는 과학의 역사〉, 《사이언스타임즈》, 2014-05-08
  6. 김기윤, 〈국토부 공개실험까지 했지만…차량 급발진 '미확인〉, 《연합뉴스》, 2013-06-27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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