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王妃)는 왕의 정식 부인이다. 비(妃)는 왕비라는 뜻 외에 '짝하다', '배필' 등의 의미가 있다. 즉 왕과 짝한 사람 혹은 왕의 배필이라는 뜻으로 결국 왕의 부인을 뜻한다. 조선에서 왕비는 왕후(王后), 중궁(中宮), 중전(中殿), 곤전(坤殿), 내전(內殿) 등으로도 불렸는데, 왕후는 주로 시호에서 사용되었다. 본래 후(后)는 ‘뒤’라는 뜻으로 왕후, 천자후(天子后) 등은 왕 또는 천자의 뒤에 있는 사람 즉 부인을 의미하였다.[1]
왕비(王妃)는 왕의 아내를 뜻하는 한자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질 수 있다.
- 제후국 왕의 정실부인.
- 자주국 왕의 정실(왕후) 다음가는 부인.
제후국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여성이기는 하지만, 여왕과는 다른 개념으로 여왕은 본인이 여성 군주일 경우, 왕비는 남성 군주와 결혼한 여성이다. 내명부 수장이면서 외명부의 수장인데 조선의 경우 모든 여성들의 수장이였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대통령 영부인겸 여성가족부 장관 정도 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전혀 다르다. 가장 신분이 높은 여성이니 비슷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사실 현대에는 왕비와 매칭되는 직업 자체가 없기도 하고. 애시당초 대통령 영부인은 그 어떤 법적 근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아내여야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여성가족부 장관과도 전혀 다르다.[2]
변천사항[편집]
왕의 배우자를 가리키는 왕비의 호칭을 사용한 시기는 세종 대인 1427년(세종 9)부터였다. 왕비로 부르기 전에는 고려의 영향을 받아 미호(美號) 한 글자를 덧붙여 불렀다. 예를 들어 태조비 신의왕후는 절비(節妃), 신덕왕후는 현비(顯妃), 정종비 정안왕후는 덕비(德妃), 태종비 원경왕후는 정비(靜妃)였다. 이 당시 세종이 미호를 폐지한 것은 고려시대 여러 명의 왕비를 동시에 두어 이들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고 중원의 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1432년(세종 14)에 한 차례 논의가 있다가 그로부터 2년 후인 1434년(세종 16)에서야 중궁인 왕비의 칭호가 공식적으로 결정되었다.
그 후 대한제국 시기에 들어와 왕비는 황후(皇后)로 승격되었다. 조선이 중국의 제후국의 위치에서 황제국으로 변화하면서 왕비의 지위도 황후로 격상된 것이다. 황후의 위치는 1910년 한일합병 이전까지 지속되었다.[1]
왕비의 위상[편집]
고려 때는 왕의 적처를 왕후라고 하고, 첩은 부인(夫人)이라고 하여 귀비(貴妃), 숙비(淑妃) 등의 칭호를 주었다. 그런데 이때에는 여러 명의 적처가 동시에 존재하여 태조 왕건의 경우 신혜왕후 류씨(神惠王后 柳氏), 장화왕후 오씨(莊和王后 吳氏) 등의 적처를 동시에 두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예에는 두 명의 적처를 둘 수 없다(禮無二嫡)’는 예법에 따라 왕에게는 한 명의 적처만이 가능하게 하였다. 처와 첩의 구분이 엄격해지고 따라서 적처인 왕비의 위상이 높아졌다. 배우자였던 왕이 승하하고 사왕(嗣王)이 즉위한 후 왕대비(王大妃)가 되었고 왕비 사후에 왕후로 추존되었으며, 신위가 종묘에 배향되었다. 왕대비와 왕후는 전왕의 정비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서 후궁은 비록 왕을 낳았어도 대비가 될 수 없었다. 고려 때 아들이 왕이 되면, 후궁이라도 태후(太后)가 될 수 있었던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조선에서 왕비는 간택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간택 제도는 태종 때 시작하여 세종 이후 정착되었다. 그런데 왕비는 대개 세자빈으로 왕실에 들어오고 남편이 왕위에 오른 후에 왕비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곧바로 왕비가 되는 것은 왕비가 일찍 사망하여 계비로 선발되는 경우에 한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후궁 중에 왕비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이후에는 후궁에서 왕비가 나온 것은 희빈 장씨(禧嬪 張氏)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다. 처첩 구분과 적처 존중 의식이 강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1]
왕비의 역할과 권한[편집]
왕비의 대표적인 직무 중 하나는 내명부(內命婦)의 수장 역할이다. 『예기』에서 ‘천자후(天子后)는 6궁(宮) 3부인(夫人) 9빈(嬪) 27세부(世婦) 81어처(御妻)를 두어 내치(內治)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천자가 ‘6관(官) 3공(公) 9경(卿) 27대부(大夫) 81원사(元士)’를 두어 외치(外治)를 하는 것에 대한 상대 개념이다. 즉 왕비는 품계를 초월한 무품(無品)이며 국가의 내치를 맡아 다스리는 공적 역할의 수행자이다. 『경국대전』에 정1품 빈(嬪)에서 종9품 주변궁(奏變宮)까지 18품계의 내명부가 있는데 조선의 왕비는 이들의 수장으로서 내치가 잘 이루어지도록 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종9품까지 왕비가 직접 다 관리하는 것은 아니고 분야별로 후궁들에게 분담하여 관리하게 하는 형태였다.
왕비의 또 다른 중요 역할은 왕과 함께 종묘를 받들고 후손을 이어가는 일이었다. 종묘를 받드는 것은 양반가 종부의 봉제사(奉祭祀)와 같다. 이는 왕의 적처만이 할 수 있는 일로 후궁들이 대신할 수 없었다. 왕비가 일찍 사망할 경우, 반드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왕과 함께 종묘를 받들 존재가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왕은 현비(賢妃)를 세워 종묘를 받들고 집안과 나라를 다스린다.’는 내용이 왕비들의 교지에 자주 나타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왕비가 적자를 낳아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의무였으나, 이는 종묘를 받드는 것만큼 대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후궁이 낳은 아들도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궁의 아들이 왕이 되어도 대비의 위치는 후궁이 아닌 왕비가 차지하였다. 말하자면 '내전취자(內殿取子)'라 하여 후궁의 아들을 왕비 자신의 아들로 삼게 되는 것이다. 조선 왕비의 배타적 절대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기본적인 직무와 권한 외에 왕비는 대비로서 왕위 계승자 지명권, 어린 왕을 대신하여 정치를 하는 수렴청정(垂簾聽政) 등의 권한을 가진다. 특히 다음 왕을 지명할 수 있는 대비로서의 권한은 조선 정치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또 다른 특혜는 부모에 대한 관직 수여, 출산 시 산실청이 마련되는 것, 죽음에 대한 특별한 장례 절차, 종묘에의 입실,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에의 기록, 『열성왕비세보(列聖王妃世譜)』에의 기록 등으로 다양하였다.[1]
의의와 평가[편집]
왕비에 대한 권한 부여와 특혜가 이처럼 많았던 것은 왕비가 왕과 짝하는 존귀한 존재로서 그 권위를 존중받아야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왕은 태어나는 존재지만, 왕비는 다른 집안에서 왕실로 들어와 왕비로 만들어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권위가 더 보장돼야 하는 측면이 있었다.
왕비는 서양사에 보이는 여왕과 그 개념이 다르다. 왕비가 왕의 배우자를 뜻한다면, 여왕은 통치자이자 지배자 여성을 의미한다.[1]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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