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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페르난데스 제도'''<!--후안페르난데스 제도-->(영어: Juan Fernández Islands, 스페인어: Archipiélago Juan Fernández)는 [[남아메리카]], [[칠레]] 앞바다에 [[로빈슨크루소섬]], [[알레한드로셀커크섬]], [[산타클라라섬]]으로 이루어진 제도이다. 칠레의 발파라이소주 발파라이소현의 후안페르난데스 코무나이다. 이름은 1570년대에 그들을 발견한 [[스페인]] 탐험가 후안 페르난데스(Juan Fernández)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9B%84%EC%95%88%ED%8E%98%EB%A5%B4%EB%82%9C%EB%8D%B0%EC%8A%A4_%EC%A0%9C%EB%8F%84 후안페르난데스 제도]〉,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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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페르난데스 제도'''<!--후안페르난데스 제도-->(영어: Juan Fernández Islands, 스페인어: Archipiélago Juan Fernández)는 [[남아메리카]], [[칠레]] 앞바다에 [[로빈슨크루소섬]], [[알레한드로셀커크섬]], [[산타클라라섬]]으로 이루어진 제도이다. 칠레의 발파라이소주 발파라이소현의 후안페르난데스 코무나이다. 이름은 1570년대에 그들을 발견한 [[스페인]] 탐험가 [[후안 페르난데스]](Juan Fernández)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9B%84%EC%95%88%ED%8E%98%EB%A5%B4%EB%82%9C%EB%8D%B0%EC%8A%A4_%EC%A0%9C%EB%8F%84 후안페르난데스 제도]〉,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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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4일 (수) 22:49 기준 최신판

로빈슨크루소섬의 마을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 위치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영어: Juan Fernández Islands, 스페인어: Archipiélago Juan Fernández)는 남아메리카, 칠레 앞바다에 로빈슨크루소섬, 알레한드로셀커크섬, 산타클라라섬으로 이루어진 제도이다. 칠레의 발파라이소주 발파라이소현의 후안페르난데스 코무나이다. 이름은 1570년대에 그들을 발견한 스페인 탐험가 후안 페르난데스(Juan Fernández)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1]

개요[편집]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는 칠레 해안에서 670km 떨어진 남태평양에 위치한 제도이다. 화산섬으로 구성되었으며 면적은 93km²이다. 그중 가장 큰 섬은 알레한드로셀커크섬으로 면적은 49.5km², 로빈슨크루소섬은 47.9km², 산타클라라섬은 2.2km²이다. 제도에서 최고종은 알레한드로셀커크섬의 세로 데 로스 인텐테스(Cerro de Los Innutentes)로 1268m이다. 1704년부터 4년 이상 동안 정박하다가 1709년에 구조된 스코틀랜드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Alexander Selkirk, 1676년 ~ 1721년 12월 13일)가 4년 동안의 무인도 표류 생활을 끝냈다. 셀커크의 조난 생활은 다니엘 데포의 《로빈슨 크루소》등에 영감을 주었다는 견해가 있다. 1966년 1월 1일 셀커크가 머문 섬은 공식적으로 로빈슨크루소섬으로 개칭됐다. 동시에 후안페르난데스 제도의 최서단 섬은 알레한드로셀커크섬으로 개칭됐다. 현재 주민의 대부분은 로빈슨크루소섬에 집중해서 살고 있으며, 바닷가재잡이를 생업으로 한다. 제도는 1977년부터 아치피에라고 데 후안 페르난데스 국립공원으로 불리는 자연보호구역의 일부로 되었다.[2]

구성[편집]

로빈슨크루소섬[편집]

로빈슨크루소섬(스페인어: Isla Robinson Crusoe)은 후안페르난데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원래 이름은 마스아티에라섬(Más a Tierra, "육지에 가까움") 또는 아과스부에나스섬(Aguas Buenas, "좋은 물")이었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서쪽으로 약 600km 떨어져 있다. 1704년, 스코틀랜드의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가 이 섬에서 4년 4개월 동안 표류를 하다가 탈출했다. 이 이야기는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대니얼 디포는 《로빈슨 크루소》를 쓰기도 했다. 1966년 칠레 정부는 이 섬의 이름을 소설의 이름을 따라 "로빈슨크루소"로 공식적으로 바꾸었다. 과거 섬은 난파선 선원들이나 표류자들이 머무는 장소가 되어 왔으나, 결국 스페인이 요새와 감옥을 설치해 섬에 다가오는 이들을 막았다. 이 섬은 1877년까지 무인도였다가, 스위스 이민자인 알프레드 드 로트가 칠레 정부의 허가를 얻어 섬에 정착촌을 세웠다. 이곳은 농사를 짓고 본토에 바닷가재를 수출해 자급자족하게 되었다. 이름이 로빈슨 크루소 섬으로 바뀐 것은 관광객들을 끌어 수입을 더해 보려는 목적에서였다. 섬의 공동체는 아직 남아 있으나, 이 섬의 독특한 자연 서식지에 대한 자각이 높아 가면서 점차 그늘이 드리워졌다. 섬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칠레 정부는 1935년 이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이후 유네스코 세계 생물권보호지역이 되었다.[3]

알레한드로셀커크섬[편집]

알레한드로셀커크섬(Alejandro Selkirk Island, 스페인어: Isla Alejandro Selkirk)은 칠레 후안페르난데스 제도에 속하는 이다. 태평양 남동쪽 로빈슨 크루소 섬에서 서쪽으로 180km 떨어져 있다. 칠레 정부는 1966년 이 섬과 관련된 문학적 전설을 반영하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알레한드로셀커크섬으로 개칭했다. 섬은 남북 길이 11km, 동서 6km, 면적은 49.5km²이며 나무가 울창하고 산이 매우 많으며수많은 깊은 협곡은 섬 동쪽의 가파르고 험준한 해안으로 연결되며 깊이는 엄청나게 깊다. 해안 절벽은 높이가 1000m(3281ft)에 이른다.[4]

산타클라라섬[편집]

산타클라라섬(Santa Clara Island)은 칠레 후안페르난데스 제도에 속하는 이다. 섬은 태평양에 있는 작은 무인도이다. 이 섬은 화산 기원이며 길이가 약 1km이고 폭이 0.6km이다. 제도는 정치적으로 남미 국가 칠레의 일부이며 행정적으로 발파라이소 지역에 속한다. 로빈슨크루소섬에서 남서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주로 평탄한 표면을 가지고 있다. 주요 경제활동은 가시가 있는 바닷가재 낚시, 자스 프론티스, 관광 등이다. 제도는 1977년부터 아치피에라고 데 후안 페르난데스 국립공원으로 불리는 자연보호구역의 일부로 되었다.[5]

역사[편집]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1574년 유럽 선원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제도는 1574년 11월 22일 스페인 선원 후안 페르난데스(Juan Fernández)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는 북쪽의 험볼트(Humboldt) 해류를 피하는 칠레 해안에서 서쪽으로 수백 마일 떨어진 항로를 따라 캘라오(Callao)와 발파라이소(Valparaíso) 사이에 남쪽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그는 이 섬들을 마스 아푸에라(Más Afuera), 마스 티에라(Más a Tierra), 산타 클라라(Santa Clara)라고 불렀다. 17세기와 18세기에 이 섬들은 해적들의 은신처로 사용되었고 망명자 식민지가 되었다. 알렉산더 셀커크(Alexander Selkirk)가 그 섬에 고립된 것은 이 시기였다. 1740년대에 앤슨 제독이 남해로의 불운한 모험을 하던 중 소함대가 이곳을 방문했다. 군도의 위치는 1790년 알레산드로 말라스피나(Alessandro Malaspina)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전 차트는 위치에 따라 달랐다. 영국과 미국의 포경선은 1795년 런던(조슈아 관 선장)호를 시작으로 이 섬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19세기 초 해양 모피 무역 시대에 이 섬들은 물개 가죽의 원천이었고 후안 페르난데스의 물개는 거의 멸종 위기에 처했다. 리차드 헨리 다나 주니어(Richard Henry Dana Jr.)는 그의 저서 '마스트 2년 전'(7장)에서 1834년 경에 이 섬들을 발견하면서 그 섬들을 묘사했다. 이때 본섬은 망명자 군락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1840년대 초 존 쿨터(John Coulter) 박사가 망명자 식민지를 방문했을 때, 그는 약 1000명의 죄수들이 봉기하고 그들을 포로로 가두었던 군인들과 주지사가 살해된 후 섬이 버려졌다고 보고했다. 죄수들은 칠레 본토로 도망갔고, 그곳에서 그들은 나중에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이 이야기는 콜터의 책 '태평양의 모험'(Adventures in the Pacific, 1845년)에 등장한다. 1908년 스웨덴 마젤란 탐험대가 이 섬들을 방문했고 칼 스코츠버그(Carl Skottsberg)는 살아있는 산타룸 페르난데지아눔(Santalum fernandezianum) 나무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으로 추정된다.

1914년 말, 이 섬들은 막시밀리안 폰 스피(Maximilian von Spee) 제독의 동아시아 함대가 코로넬 전투에서 크리스토퍼 크라독(Christopher Cradock) 제독 휘하의 영국군을 격파하기 전에 함선을 모을 때 집결지였다. 한 달 뒤 포클랜드제도 전투에서 영국 해군이 승리한 데 이어 유일하게 살아남은 독일 순양함 SMS 드레스덴(Dresden)은 1915년 초 칠레 영해에 있었지만 마스 티에라(Mahs a Tierra)에서 체포되어 불법으로 궁지에 몰렸다. 1966년 칠레 정부는 관광 진흥을 위해 마스 아푸에라(Más Afuera)를 알레한드로 셀키르크 섬(Alejandro Selkirk Island)으로, 마스 티에라(Más a Tierra)를 로빈슨 크루소 섬(Robinson Crusoe Island)으로 개칭했다. 2007년 7월 30일 헌법 개정이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와 이스터섬에 칠레의 "특별 영토"의 지위를 부여했다. 헌장이 제정될 때까지 그 군도는 발파라이소 지역의 공코뮌으로 계속 통치될 것이다.2010년 2월 27일 칠레 마우레(Maule) 앞바다에서 규모 8.8의 지진이 발생한 후 쓰나미가 발생해 최소 8명이 사망했고 11명이 실종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일부 초기 보고서에서는 쓰나미가 40m 높이라고 설명했지만 이후 보고서에서는 3m로 측정됐다. 로빈슨 크루소 섬의 산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 마을 대부분이 파괴되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후안페르난데스 제도〉, 《위키백과》
  2.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 《요다위키》
  3. 로빈슨크루소섬〉, 《위키백과》
  4. 알레한드로 셀커크 섬〉, 《요다위키》
  5. 산타클라라 섬〉, 《요다위키》
  6. "Juan Fernández Islands", Wikipedia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국가
남아메리카 도시
남아메리카 지리
남아메리카 섬
남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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