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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천군(肅川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서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숙천군의 면적은 418.96㎢이며 인구는 178,509명(2008)이다. 동쪽은 운곡지구, 순천시, 평성시와, 서쪽은 황해와, 남쪽은 평원군과, 북쪽은 문덕군과 접해 있다. 1413년 숙주를 개편하여 내온 군인데, 숙천은 고려 때에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외적들의 침입을 막아 나라를 지키고 민심을 안정시킨 고을이라 하여 엄숙할 숙(肅)자를 써서 숙주라 한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1구 20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숙천읍이다.
평양을 제외하고는 지역명을 바꾸거나 아예 지역명이 안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 북한 영화 중에서, 숙천군 성남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인 한순희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인 '생의 흔적'과 후속편 '이어가는 참된 삶'에서는 숙천군을 배경으로 만들어서인지 이름이 그대로 나온다.
자연환경[편집]
숙천군은 열두 삼천리벌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데, 대체적으로 동부지역이 높고 서부지역으로 가면서 낮아지는 지세를 이루고 있다. 동부에 청룡산줄기(靑龍山-)가 안주시와 순천시, 평성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 상산(上山, 527m), 박달봉(316m), 도운산(都雲山, 441m), 강룡산(降龍山, 445m) 등 산이 솟아 있다. 남동부에는 오석산줄기(烏石山-)의 강룡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체봉산(崹峯山, 176m), 유성산(留聖山, 202m), 조운산(朝雲山, 237m) 등이 평원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간석지 벌이 발달되어 있는데, 주로 해창강(海倉江)의 하류일대의 창동리, 칠리, 광천리, 사산리 일대와 남양노동자구, 해빛리, 대성리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이 일대의 해발은 10m 미만이다. 그러나 해창강 상류지역의 용덕리, 흥오리, 장흥리, 백암리 지역은 해발 300~400m 정도의 산과 구릉들로 둘러싸인 분지모양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기반암은 낭림층군, 평안계, 제3기층 암석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낭림층군 암석들은 숙천읍, 검산리, 운정리, 평산리, 금풍리, 신풍리, 약전리 일대에 분포되어 있으며 흑운모결정편암, 흑운모편마암, 편마암 등으로 되어 있다.
평안계층은 서해 기슭의 남양노동자구와 와룡산(臥龍山) 일대에 분포되어 있으며 사암, 분사암, 점판암 등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안에 얇은 탄층이 들어 있다. 제3기층은 칠리와 창동리의 두꺼운 제4기층 밑에 있으며 역암, 사암 등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갈탄층이 들어 있다. 이 지역에는 철, 금, 운모, 이탄, 흑연, 화강석, 석비레 등 지하자원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해안선의 길이는 27.2km이며 간석지면적은 1만 5,873정보이다.
해안선에서 6km 정도 바다 쪽으로 넓게 이루어진 간석지는 청천강(淸川江)과 해창강(海倉江)에서 흘러든 충적물이 쌓여 감탕기가 비교적 많다. 오래 전부터 간석지를 개간하여 온 숙천군에서는 창동리 일대에서만도 1960년대에 1,000여 정보의 간석지가 개간되어 생산성이 높은 논으로 되었으며 남양 일대에서는 간석지를 개간하여 염전을 늘렸다.
토양은 동부지역의 쌍운리 · 장흥리 · 흥오리 일대에는 화강암풍화토 위에 이루어진 양토 사양토의 갈색 산림 토양이, 서부지역에는 질흙 · 질메흙으로 된 논토양, 충적토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숙천군의 기후는 서해와 직접 잇닿아 있는 군으로서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평균기온이 높고 기온교차가 비교적 작다. 연평균일조율은 55%로서 평안남도내에서 높은 군에 속한다. 일조율이 가장 높은 달은 10월로서 63%이며 가장 낮은 달은 비가 많이 내리는 7월로서 38%이다.
연평균기온은 9.3℃로서 증산, 평원 등 지역과 비슷하다. 기온이 가장 높은 8월 평균기온은 24.2℃, 가장 낮은 1월 평균기온은 –7.8℃이다. 최고극 기온은 34.9℃(1978년 8월 28일과 30일), 최저극 기온은 -25.9℃(1981년 1월 5일)이다. 남양노동자구와 칠리, 창동리를 비롯한 서부바닷가지구와 백암리, 평화리, 쌍운리를 포괄하는 동부지구는 숙천읍에 비하여 연평균기온이 0.3℃ 정도 낮다.
연평균강수량은 1,059mm인데, 여름철에 연강수량의 61%가 내린다. 봄철과 가을철에 무더기비가 때때로 내린다. 첫서리는 10월 18일경에, 마감서리는 4월 중순경에 내린다. 숙천군의 기본 수계는 해창강이다. 지역 내로 유입된 5km 이상의 하천은 모두 7개이며 그 가운데서 5개가 해창강의 지류들이다. 그러므로 해창강과 그 지류들이 전반적 지역에 나뭇가지모양으로 뻗어 있다. 이 밖에 평산천(平山川), 중교천(中橋川), 서사리개 등의 하천들이 있다.
저수지는 덕수 저수지, 미남저수지 등이 있다. 또한 460여 km에 달하는 평남관개수로를 비롯하여 수많은 관개수로가 뻗어 있다. 그러므로 숙천군은 북한에서 관개수원천이 가장 풍부한 지역의 하나로 되어 있다. 산림은 숙천군 전체면적의 20%를 차지하고 있는데, 주로 동부와 남동부의 평화리, 쌍운리, 장흥리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수종으로는 소나무, 잎갈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이고 이밖에 참나무, 오리나무, 아까시나무, 평양포플러나무 등 활엽수도 있다. 서해 앞바다에는 꽃게, 털왕게, 빙어, 농어, 망등어, 학꽁치 등 게류와 어류가 분포되어 있다.[3]
역사[편집]
숙천군 지역은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판도로 되어 있었다. 삼국시대에 넓은 벌지대를 끼고 있는 고장이라 하여 현재의 숙천군과 평원군 일대를 평원이라고 하였다. 고려왕조가 건립된 이후 925년에 고을의 진산(鎭山, 당산)에 토성을 쌓았다 하여 진국성(鎭國城)이라 하였다.
928년(고려 태조 11년)에는 진국성을 이축하여 통덕진(通德鎭)이라 하고 이곳에 주를 옮겼다. 939년에 외적들의 침입을 막아 언제나 고요한 마을이라 하여 통덕진을 숙주성(肅州城)이라 부르다가 후에 숙주(肅州)라 하였고 11세기 초에 이르러 숙주를 숙천(肅川)이라 개칭하였다. 조선왕조가 건립된 후 1416년(태종 16년)에 숙천도호부(肅川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670년(현종 11년)에는 숙천현(肅川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678년(숙종 4년)에는 다시 숙천도호부로 복귀되었다.
1896년에 지방관제개편을 실시하며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 평안남도 숙천군으로 개편되면서 동부방(東部坊), 서부방(西部坊), 우하방(右下坊), 우상방(右上坊), 동산방(東山坊), 하검방(下檢坊), 애산방(艾山坊), 법리방(法里坊), 상검방(上檢坊), 송리방(松里坊), 삼리방(三里坊), 성산방(聖山坊), 취리방(吹里坊), 고리방(高里坊), 평리방(坪里坊), 당리방(堂里坊), 보민방(補民坊) 등 17개 방을 면으로 개편하여 동부면(東部面), 서부면(西部面), 우하면(右下面), 우상면(右上面), 동산면(東山面), 하검면(下檢面), 애산면(艾山面), 법리면(法里面), 상검면(上檢面), 송리면(松里面), 삼리면(三里面), 성산면(聖山面), 취리면(吹里面), 고리면(高里面), 평리면(坪里面), 당리면(堂里面), 보민면(補民面) 등 17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평원군에 통합되면서 군이 폐지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평원군의 숙천면(肅川面) · 조운면(朝雲面) · 서해면(西海面) · 검산면(檢山面) · 동송면(東松面) · 해소면(海蘇面)의 전체 리와 용호면(龍湖面)의 7개 리를 병합하여 숙천군을 복귀하였는데, 이때 숙천면의 관동리 · 관전리 · 당하리 · 사직리 · 성남리 · 심정리를 병합하여 숙천읍(肅川邑)으로, 숙천면의 내동리 · 덕수리 · 만흥리 · 송저리 · 신남리를 병합하여 흥오리(興五里)로, 숙천면의 미남리 · 백로리 · 신흥리를 병합하여 장흥리(長興里)로, 동송면 용담리와 숙천면의 통덕리 · 도덕리를 병합하여 용덕리(龍德里)로, 검산면의 검서리 · 신지리 · 동검흥리 · 서검흥리를 병합하여 검흥리(檢興里)로, 검산면의 노산리 · 송양리 · 신성리를 병합하여 대성리(大成里)로, 검산면의 검양리 · 용포리 · 학산리를 병합하여 검산리(檢山里)로, 동송면의 송현리 · 청룡리 · 월봉이리를 병합하여 평화리(平和里)로, 동송면의 군자리 · 운평리 · 운룡리 · 월봉일리를 병합하여 쌍운리(雙雲里)로, 동송면의 백석리 · 수암리 · 백운리를 병합하여 백암리(白巖里)로, 용호면의 약전리 · 용강리 · 응오리 · 당우리를 병합하여 약전리(藥田里)로, 해소면의 금학리 · 종률리 · 내덕리를 병합하여 기은리(基隱里)로, 해소면의 용현리 · 월현리 · 송정리를 병합하여 신풍리(新豊里)로, 해소면의 난산리와 용교리를 병합하여 소은리(蘇恩里)로, 용호면의 관성리 · 장평리 · 남양리를 병합하여 연화리(蓮花里)로, 서해면의 광천리 · 당오리 · 남포리를 병합하여 광천리(廣川里)로, 서해면의 연풍리 · 보원리 · 보덕리를 병합하여 창동리(倉東里)로, 서해면의 원흥리 · 중흥리 · 신덕리를 병합하여 칠리(七里)로, 서해면의 사산리와 용산리를 병합하여 사산리(蛇山里)로, 조운면의 송천리 · 순정리 · 성덕리를 병합하여 송덕리(松德里)로, 조운면의 조운리 · 재정리 · 응암리를 병합하여 운정리(雲井里)로, 조운면의 태평리와 갈산리를 병합하여 평산리(平山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1리를 관할하였다.
1953년에 검흥리 일부(동검흥리 일부)를 검산리에, 칠리 일부(신덕리 일부)를 사산리에 편입하였고, 1963년에 연화리를 남양노동자구(南陽勞動者區)로 개편하였다. 1967년에 백암리 일부(송리 일부)가 용덕리에 편입되었고, 1972년에 백암리 일부(수암리 일부)가 평화리에 흡수되었으며, 1977년에 소은리가 해빛리로 개칭되었다. 1982년에 기은리가 금풍리(金豊里)로 개칭되었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숙천읍), 1구(남양노동자구), 20리(검산리, 검흥리, 광천리, 금풍리, 대성리, 용덕리, 백암리, 사산리, 송덕리, 신풍리, 쌍운리, 약전리, 운정리, 장흥리, 창동리, 칠리, 평산리, 평화리, 해빛리, 흥오리)로 구성되어 있다. 숙천군 소재지는 숙천읍이다.[4]
산업[편집]
광복 전 숙천군은 낙후한 농업 생산지역이었다. 광복 후 발전된 농업과 공업을 가진 군으로 전변되었다. 숙천군에서는 벼를 비롯한 곡물 생산에 기본을 두면서 과수업 등 기타 농산물들을 다각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 일대의 농민들은 광복 전 관개시설이 없었던 탓으로 건갈이를 하고 동이로 물을 길어 꼬창모를 심어 놓고는 거북등처럼 갈라진 땅을 치면서 원한 많은 세상을 저주하였다. 그러므로 이 고장 사람들은 맑은 물을 마음껏 마시고 쓰면서 논농사를 지어보려는 것이 세기적인 숙망이었다. 이것은 광복 후 평남 관개체계의 실현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
현재 숙천군에는 평남관개의 기본 간선들과 지선들로 이루어진 관개망이 거미줄처럼 덮여 있다. 그리하여 숙천군은 관개망이 가장 조밀한 지역의 하나로 전변되었다. 전체 농경지 면적에서 논이 77%를 차지하고 있는데, 논벼 정보당 및 총 생산량으로 보아 가장 높은 지역 중의 하나로 되어 있다. 논벼는 전반적 지역에서 재배되나 특히 열두삼천리벌을 비롯한 서부와 중부 지역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옥수수는 동부와 남동부 지역에서 주로 산출된다.
숙천군에서 곡물생산 다음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과수업이다. 광복 후 야산과 산기슭을 비롯한 적지들을 개간하여 과수밭을 많이 조성함으로써 숙천군은 평안남도에서 과일생산량이 가장 많은 지역의 하나로 되었다. 숙천군에서 생산되는 과일은 그 맛이 단 것으로 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 과일은 사과, 배, 복숭아, 자두, 포도 등이다.
채소는 숙천과 남양을 비롯한 도시 주변과 흥오리, 은정리, 백암리 등 지역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숙천군은 소금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광복 전 숙천군에서는 남양 일대에서 발로 수차를 돌려 바닷물을 퍼 올리고 돌썰매로 염전을 다지면서 약간의 소금을 생산하였다. 광복 후 남양지구의 간석지가 개간되면서 염전이 늘어나고 소금생산의 전반적 공정이 기계화됨으로써 소금생산이 급격히 늘어났다.
숙천군 지방공업은 식료품, 일용품, 피복, 종이, 도자기 공업 등 여러 가지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식료품공업부문에서는 장류, 기름, 당과류, 청량음료, 고기, 과일, 채소, 수산물 가공품들이 산출되고 있는데, 특히 과일가공업이 식료품공업에서 중요한 부문을 이루고 있다. 일용품공업에서는 가구류와 부엌세간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들이 생산된다. 수산업도 발달되어 있는데 숭어, 전어, 망동어, 까나리, 멸치 등 어류와 조개류들을 많이 어획하고 있다. 곤쟁이젓, 조개젓, 까나리젓은 이곳 명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5]
교통[편집]
교통은 중심으로 평의선과 안주탄광선, 남동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숙천역, 남동역, 만풍역, 염전역 등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평의선과 병행하여 평양~신의주 간 1급 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신안주~남포 간 도로와 평양~향산 간 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숙천군〉, 《위키백과》
- ↑ 〈숙천군〉, 《나무위키》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숙천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숙천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숙천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숙천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숙천군〉, 《위키백과》
- 〈숙천군〉, 《나무위키》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숙천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숙천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숙천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숙천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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