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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시(龜城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시이다.[1][2]
개요
구성시의 면적은 652.5㎢이며 인구는 196,515명(2008)이다. 본래 구성군으로 불리다가 1967년에 시로 승격했다. 고려-요 전쟁의 격전지였던 귀주대첩 전쟁터가 이 곳에 있다. 서북쪽은 천마군, 북쪽은 대관군, 동쪽은 태천군, 남쪽은 정주시와 곽산군, 서남쪽은 선천군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재 행정구역은 25동 18리로 구성되어 있다.
1455년(세조 1년)에 정주목을 분리하여 신설한 군인데, 거북산 기슭을 따라 쌓은 구주성이 있다 하여 구성군이라 하였다. 구주성(구성)은 구성시 북쪽에 솟은 이구산의 자연지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축조한 석성으로서 성벽으로 둘러막힌 이구산의 산줄기들이 가로세로 뻗은 것이 마치 거북이의 잔등무늬 같다 하여 유래되었다.
고구려 시대에는 만년군(萬年郡)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귀주(龜州)라고 불린 북방의 중요 거점으로 제1차 여요전쟁 때 서희의 담판으로 얻어낸 강동 6주 중 하나였으며, 강감찬이 거란군을 이긴 귀주 대첩으로 거란과의 전쟁을 끝낸 곳이다. 그후 몽골 제국과의 전쟁 당시에도 박서와 김경손이 몽골군을 맞아 철저히 항전한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고려의 북방전쟁사와 관계가 깊은 도시다.
구성시가 한반도에서 압록강으로 가려면 사실상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이었기도 하다. 실제로 평안북도에서 압록강을 넘으러 가는 길을 보면, 해안가를 따라 나있는 큰길을 제외하면 거의 다 구성시를 통한다. 철도는 평북선과 구성선이 갈라지는 분기점이며, 주요 도로망도 2개나 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군사적인 시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가지에서도 벽 안쪽에 둘러싸여 바깥과 달리 울창한 지역이 몇 군데 있고, 95호 탄약공장 같은 군수시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주성 성벽이 있던 자리 한쪽에도 군사 시설이 있다.[3]
자연환경
구성시는 전형적인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천방강이 흐르는 동부지역을 제외한 변두리는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시내로 들어가면서 점차 저지로 되어 있다. 천방강 연안에는 농업생산에 유리한 방현벌이 형성되어 있다. 서부지역에는 천마산줄기가 거의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여기에는 청룡산(920m), 삿갓봉(778m), 길상산(594m) 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천마군과의 경계에는 대청령(463m)이 있다. 북부에는 삼각산(747m), 중모산(521m) 등이 솟아 있으며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는 신배령(260m)이 있다.
지형의 해발별 비율을 보면 100m 미만의 지역이 25.9%, 101~200m 지역이 49.6%, 201~400m 지역이 18.9%, 401m 이상 지역이 5.6%를 차지한다. 구성시에서 가장 높은 곳은 서부의 청룡산(920m)이고, 가장 낮은 곳은 기룡리 남부(60m)이며 구성시 중심부의 해발은 85m이다. 기반암은 낭림층군의 퇴적변성암과 혼성암, 연화산암군과 단천암군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 금, 납, 아연, 중석, 흑연 등 지하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특히 평안남도 내의 기타 시, 군에 비하여 지방건축재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석비레와 풍화점토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평균기온은 8.2℃인데, 그 중 8월 평균기온은 23.5℃, 1월 평균기온은 -9.4℃이다. 최저극기온은 -28.6℃(1958년 1월 24일), 최고극기온은 35.8℃(1956년 8월 2일)이였다. 구성시는 북한에서 강우량이 많은 지역의 하나로서 연평균강수량은 1,380mm이다. 최고강수량은 2,060.8mm(1964년), 최저강수량은 827.1mm(1955년)였다. 일조율은 평안북도에서 중간 정도에 속하는데, 4~10월 사이에 평균 53%의 일조율을 보이고 있다. 안개 일수는 연평균 16일로서 도에서 가장 적다. 10℃이상 적산온도는 3,365℃이며 첫서리는 10월 15일경에, 마감서리는 4월 22일경에 내린다.
하천은 천방강과 그 지류인 운천강을 비롯하여 30여 개의 하천이 유입되어 있는데, 그중 길이가 5km 이상 되는 하천은 16개이다. 천방강은 중심부를 통과하여 기룡리에서 태천군으로 흘러나가는데, 영역 내에서의 길이는 45.5km이다. 저수지로는 풍산저수지, 청룡저수지, 조양저수지, 신덕저수지, 이구저수지 등이 있는데, 풍산저수지는 구성시에서 가장 큰 저수지로서 운포천을 수원으로 하고 있으며 만수위 때 면적은 1.54km2이다.
산림은 구성시 전체면적의 62%를 차지하는데, 산림 면적의 48.8%를 차지하는 소나무림은 해발 200m 이하의 지역에, 소나무 · 참나무 혼성림은 200~500m 지역에, 참나무를 기본으로 하는 활엽수림은 500m 이상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산림 속에는 산토끼, 여우, 노루, 고라니, 멧돼지 등 여러 가지 산짐승들이 서식하고 있다.[4]
역사
구성시 지역은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주변에 있는 여러 지역에서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들이 다량으로 발굴된 것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고구려의 판도로 되어 만년군(萬年郡)이라 하였다. 고려왕조가 건립된 이후 994년(성종 14년)에 구주(龜州)로 불리다가, 1231년(고종 18년)에 서북면 정원대도호부(定遠大都護府)로 되었고, 후에 정주목(定州牧)으로 개칭되었다. 1455년(세조 1년)에 평안도 구성군(龜城郡)으로 되었다가, 1462년에 다시 구성도호부로 되었다.
1895년에 부군제를 실시하면서 의주부(義州府) 구성군으로 되었다가, 이듬해인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평안북도 구성군으로 되어 북면(北面), 용연면(龍延面), 부내면(府內面), 동산면(東山面), 오봉면(五峯面), 방현면(芳峴面), 서산면(西山面), 노동면(蘆洞面), 용두면(龍頭面), 이현면(梨峴面), 천마면(天摩面), 사기면(沙器面) 등 12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북면이 부내면에, 용연면이 동산면과 오봉면에, 용두면이 이현면과 노동면에 각각 편입되면서 폐지되고 천마면 · 사기면 각 일부를 병합하여 관서면(館西面)을 신설하였으며, 1918년에 부내면을 구성면(龜城面)으로 개칭하였다. 광복 전까지 구성군은 10개 면(구성면, 동상면, 오봉면, 방현면, 서산면, 노동면, 이현면, 사기면, 관서면, 천마면)과 91개 동으로 되어 있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사기면 · 천마면 · 관서면은 새로 설립되는 천마군에, 이현면의 8개 리는 선천군에 편입하고 나머지 구성면 · 동산면 · 오봉면 · 방현면 · 서산면 · 노동면의 전체 리와 이현면 중 6개 리 · 태천군 원면의 송백리 일부를 통합하여 평안북도 구성군을 새로 개편하였는데, 이때 구성면의 좌부리 · 우부리 · 성외리 · 서산면 남평리를 병합하여 구성읍(龜城邑)으로, 구성면의 백상리 · 차유리 · 은곡리 · 원흥리를 병합하여 차흥리(車興里)로, 구성면 하단리 · 동산면 양지리 · 서산면 입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양하리(陽下里)로, 동산면의 덕화리 · 백석리 · 풍덕리 · 차복리와 남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산리(東山里)로, 동산면의 용덕리 · 금곡리 · 부풍리를 병합하여 금풍리(金豊里)로, 오봉면의 양지리 · 인봉리 · 엄교리를 병합하여 오봉리(五峯里)로, 오봉면의 용연리 · 사기리 · 봉덕리를 병합하여 기룡리(氣龍里)로, 오봉면의 남양리 · 내양리 · 선모리와 태천군 원면의 송백리 일부를 병합하여 남흥리(南興里)로, 방현면의 하단리 · 시중리 · 하창리 · 상창리 · 월천리 · 와룡리를 병합하여 남창리(南倉里)로, 노동면의 내양리 · 양교리 · 운계리를 병합하여 운양리(雲陽里)로, 노동면의 운포리 · 운흥리 · 풍산리를 병합하여 운풍리(雲豊里)로, 노동면의 상승리 · 상석리와 백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백상리(白上里)로, 서산면의 염잠리와 입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서산리(西山里)로, 구성면의 이구리 · 청룡리 · 백운리를 병합하여 이구리(犂邱里)로, 구성면의 상단리 · 중단리 · 고양리를 병합하여 상단리(上端里)로, 동산면의 용풍리를 구성군 용풍리(龍豊里)로, 동산면의 남산리 일부와 선흥리를 병합하여 남산리(南山里)로, 오봉면의 조양리 · 상단리 · 장우리를 병합하여 조양리(朝陽里)로, 방현면의 발산리 · 송정리를 병합하여 발산리(鉢山里)로, 방현면의 소룡리 · 청송리 · 변산리를 병합하여 청송리(靑松里)로, 서산면의 왕인리 · 평지리를 병합하여 왕인리(王仁里)로, 서산면의 대성리 · 용흥리 · 상석리를 병합하여 상석리(上石里)로, 서산면의 신풍리 · 신덕리 · 인평리를 병합하여 신풍리(新豊里)로, 노동면의 중방리 · 중현리와 백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중방리(中坊里)로, 이현면의 택인리와 노동면 청룡리 · 운남리를 병합하여 청룡리(靑龍里)로, 이현면의 길상리 · 북리와 방현면의 길하리를 병합하여 길상리(吉祥里)로, 이현면의 광덕리 · 오상리 · 대안리를 병합하여 대안리(大安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54년에 차흥리가 이구리 · 상단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차흥노동자구(車興勞動者區)로 승격되었고, 남창리가 청송리 일부를 흡수하고 얼마 후 방현노동자구(芳峴勞動者區)로 개편되었으며 상단리 · 양하리 각 일부가 구성읍에 편입되었다. 1956년에 길상리가 원진리(元鎭里)로 개칭되었고, 1961년에 정주군 봉명리 일부가 원진리에 편입되었다.
1967년에 구성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구성읍을 분리하여 동문동(東門洞), 성안동(城安洞), 역전동(驛前洞), 청년동(靑年洞), 새날동, 새골동, 서성동(西城洞), 남산동(南山洞), 백석동(白石洞), 방직동(紡織洞) 등 10개 동을 신설하고, 상석리는 상석동으로, 양하리는 양하동으로, 이구리는 이구동으로, 상단리는 상단동으로 각각 개편되었으며, 서산리는 과일동과 서산동(西山洞)으로 분리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 1974년에 차흥노동자구, 방현노동자구가 각각 동으로 격하되었다.
1976년에 차흥동 일부를 분리하여 백운동(白雲洞)으로, 방현동 일부를 분리하여 신흥동(新興洞)으로 각각 개편하였으며, 1985년에 차흥동을 분리하여 차흥일동(車興一洞), 차흥이동(車興二洞), 약수동(藥水洞)을, 신흥동을 분리하여 신흥일동(新興一洞), 신흥이동(新興二洞)을, 방현동 일부를 분리하여 남창동(南倉洞)을 각각 신설하고, 운양리를 동으로 하였다. 1991년에 왕인리를 금산리(金産里)로 개칭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25동(과일동, 남산동, 남창동, 동문동, 이구동, 방직동, 방현동, 백석동, 백운동, 상단동, 상석동, 새골동, 새날동, 서산동, 서성동, 성안동, 신흥일동, 신흥이동, 약수동, 양하동, 역전동, 운양동, 차흥일동, 차흥이동, 청년동), 18리(금산리, 금풍리, 기룡리, 남산리, 남흥리, 대안리, 동산리, 용풍리, 발산리, 백상리, 신풍리, 오봉리, 운풍리, 원진리, 조양리, 중방리, 청룡리, 청송리)로 구성되어 있다.[5]
산업
구성시의 경제는 중앙공업과 지방공업 그리고 농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복 전에 구성시에는 아마, 역삼 같은 것을 가공하는 수공업이 있었을 뿐이었다. 광복 후 구성시에는 4월 3일종합공장, 구성방직공장을 비롯한 규모가 큰 중앙공업공장들과 중소규모의 지방산업공장들이 많이 발족되어 하나의 완벽한 지방산업을 이루고 있다.
공업에서 기본은 기계공업과 방직공업인데, 주로 선반류, 보링머신류, 수자조종공작기계 등을 비롯한 공작기계들과 고급양복천을 비롯한 천류를 생산하고 있다. 지방공업은 식료품, 일용품, 화학, 종이, 제약, 건재 공업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서 생산되는 의약품과 분쇄기, 자전거와 같은 철제일용품은 평안북도 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농경지는 시 전체면적의 22.6% 되는데, 그 중에서 논이 30%를 차지한다. 벼 산출량의 60%는 방현벌과 동상벌에 집중되어 있으며, 옥수수는 동산리, 남흥리, 청송리, 원진리, 청룡리 등 지역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축산업에서는 이 지역에는 구성닭공장, 서산닭공장 등 국영축산기업소들과 농장원들의 부업축산 그리고 협동농장의 축산반에 의해 많은 가축들을 사육하고 있다.
과수업에서는 사과, 배, 복숭아 등이 많이 산출되고 있으며 그 주요 산지는 남부지역과 서부지역이다. 양잠업도 발달하여 고치 생산은 평안북도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양봉업은 주로 남흥리, 용풍리, 남산리, 청송리, 원진리, 운양리, 대안리 등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다.[6]
교통
구성시 지역은 평안북도 내륙 지역의 주요 교통요지이다. 중심으로 평북선(정주~청수)이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방현역, 구성역, 백운역 등 3개의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동부로는 평북선의 구성역에서 분리된 구성선(구성~팔원)이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농풍역, 어미현역, 동산역 등 3개의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삭주~정주, 의주~구장, 구성~선천 간 도로가 달리고 있다. 구성에서 철도로 정주까지는 40여 km이다.[7]
지도
동영상
각주
- ↑ 〈구성시〉, 《위키백과》
- ↑ 〈구성시〉, 《나무위키》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구성시 지명유래〉,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구성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구성시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구성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구성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구성시〉, 《위키백과》
- 〈구성시〉, 《나무위키》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구성시 지명유래〉,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구성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구성시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구성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구성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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