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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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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大使館, embassy)은 법률 대사가 주재국에서 공무를 처리하는 기관이다. 또는 그런 청사(廳舍). 일반적으로 주재국의 수도에 설치하며, 국제법에 따라 본국 영지(領地)와 동일하게 간주되며 불가침권을 가진다.[1]

개요[편집]

대사관은 대사가 주재국에서 직무를 보는 기관이다. 보통 특명전권대사가 파견된 나라의 수도에 놓여 특명전권대사의 국가를 대표하면서 파견국에서의 외교 활동의 거점이 된다. 그뿐 아니라 사증과 증명서를 발급하고 자국민을 보호하며 문화 교류 활동, 타국 정보 수집 활동, 국제 회의와 교섭 준비 등의 업무를 실시한다.

영구적 외교 임무는 전형적으로 대사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무 책임자는 대사 또는 고등 판무관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 공관의 구성원은 대사관 건물 내부 또는 외부에 거주 할 수 있으며 사적인 거주지는 불가침 및 보호와 관련하여 임무 전제와 동일한 권리를 누리게 된다. 대사관을 세우려면 설치하려는 국가의 승인이 필요하고, 대사관은 설치한 국가의 영토로 본다.[2]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편집]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駐日本大韓民國大使館)은 1965년 일본 도쿄도에 개설된 대한민국 외교부 소속의 대사관이다. 위치는 미나미아자부 1초메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임 대사는 윤덕민이다.

연혁
  • 1949년 (쇼와 24년) 1월 29일: 주일본 한국대표부 발족.(긴자 핫토리빌딩<현재의 긴자 와코 백화점> 4층을 사무실로 사용함)
  • 1951년 (쇼와 26년) 10월: 도쿄도 미나토구 아자부주반으로 이전
  • 1962년 (쇼와 37년) 11월: 재일동포 서갑호, 대사관 토지와 건물을 대한민국 정부에 기증
  • 1965년 (쇼와 40년) 12월: 주일본 한국대표부, 대사관으로 승격
  • 1979년 (쇼와 54년) 9월: 대사관 청사 및 관저 신축[1]
  • 2013년 (헤이세이 25년) 6월: 대사관 청사 및 관저 개축(대사관 지상 7층, 지하 1층)[3]

주한영국대사관[편집]

영국대한민국에 설치한 대사관급 외교공관.

역사

1883년(고종 20년) 11월에 조선과 영국은 조영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다음해 4월에 비준서를 교환하여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당시 영국은 거문도를 무단으로 2년간 점령했었는데 이 거문도 문제 해결 및 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수교했다. 영국은 곧바로 한성에 영사관을 두었다. 이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한성에 설치한 서양 외교공관이었다.

처음에는 정동에 있는 신헌[3] 부자가 살던 한옥에 입주했다. 그러나 서양인들에게 한옥 생활은 매우 낯설고 불편했으므로, 1890년(고종 27년) 5월에 한옥을 철거하고 서양식 건물을 짓는 공사를 시작했다. 1호관은 1891년(고종 28년), 2호관은 1892년(고종 29년)에 완공했다. 영국영사관은 대한제국 수립 후인 1898년(광무 2년) 2월에 공사관으로 승격했다.

1905년(광무 9년) 11월에 일제가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여 국교가 끊겼다. 영국공사관은 다시 영사관이 되었고 경술국치 이후에도 계속 남아있었다. 8.15 광복 이후 1949년에 외교관계를 재개했고, 1957년에 서울 영국공사관이 주한영국대사관으로 승격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사

현 대사는 주북영국대사였던 콜린 크룩스이다. 사이먼 스미스 전 대사 은퇴 이후 내정되었다.

주한 대사가 북한 지역에 대한 외교 업무를 겸직하는 경우는 많지만, 양쪽에 모두 대사를 파견한 국가에서 양국의 대사로 모두 일한 경력을 가지게 되는 사람은 콜린 크룩스가 최초라고 한다. 한국어 역시 한국인에 더 가까울 정도로 상당히 능통하다.

2022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망한 이후 대한민국에 메시지를 전했는데, 이번에도 우수한 한국어 실력을 발휘하였다. 주한 벨기에 대사인 프랑수아 봉땅 대사와 같이 한국계 배우자를 두고 있으며,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국왕의 안동 하회마을 방문 당시 수행원으로 근무했었다.

엘리자베스 2세 사망 이후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배우자가 경상북도 안동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크룩스 대사 본인은 엘리자베스 2세 국왕의 안동 방문을 보좌하면서 안동 출신의 배우자를 만났었고, 엘리자베스 2세가 궁중요리, 지역 향토 한정식 등 한국 요리에 감동받았다는 것을 밝혔다.[4]

각주[편집]

  1.  〈대사관〉 《국어사전》
  2.  〈대사관〉 《위키백과》
  3.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 《위키백과》
  4.  〈주한영국대사관〉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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