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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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러시아어: Курск, 영어: Kursk, 문화어: 꾸르스크)는 러시아 중앙연방관구 쿠르스크주의 주도이다. 쿠르스크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을 바꿔 놓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차전으로 유명하다. 쿠르스크는 세계 최대의 철 매장량을 자랑하며 쿠르스크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 우크라이나군은 2024년 8월 6일에 본격적으로 쿠르스크 지역을 공격하였다.[1]
개요
쿠르스크는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주의 주도로 중앙 러시아 고지에 있으며 쿠르강과 투스카르강과 세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450km 떨어져 있다. 쿠르스크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2012년 도시 창건 980주년을 맞았다. 러시아의 고도(古都)이며 성(聖)테오도시우스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다. 11∼12세기에 모스크바를 경비하는 국경 요새가 되었고, 몽골의 바투 칸이 1237년에 이 도시를 파괴했다. 1283년에 다시 재건되었다. 1508년에는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통합되었다. 주변의 토양은 흑토(黑土)지대에 속한다. 대규모의 농산물 가공공장이 집중하여 제분, 양조, 담배, 피혁제조업 등이 성하다. 중공업도 발달하여 트랙터 부품, 주조품(鑄造品), 제분용 기계, 곡물 엘리베이터, 전기기구, 컴퓨터 등이 생산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대격전지이며, 부근에서는 쿠르스크 지자기 이상(地磁氣異常)이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적철광계(赤鐵鑛系)의 철광석이 발견되어 1950년대부터 약 20개소에서 채굴이 시작되었다. 교육, 의학, 농업 연구소, 고등교육기관, 극장, 향토박물관 등이 있다. 소련의 해체 이후에 다시 국경도시가 되었지만,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와 벨라루스의 민스크가 대규모 시장을 가진 상업도시로써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했고, 러시아 경제가 자원에 의존하게 된 관계로 내륙의 도시인 쿠르스크는 어떠한 성장압력도 받지 못해서 현재는 흔한 러시아의 저개발 지방도시 중 하나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다. 쿠르스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삼위일체 수도원의 상부 교회이다. 이 건물은 표트르 대제 초기 통치 시기의 전환 양식을 잘 보여준다. 가장 오래된 세속 건물은 소위 로모다노프스키 방인데, 이 건물은 로모다노프스키 가문이 사라진 18세기 중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도시 대성당은 1752년에서 1778년 사이에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너무나도 화려하게 장식되어 많은 미술사가들이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의 작품으로 여겼다. 비록 라스트렐리가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이 대성당은 제국 가문이나 제국 수도에서 지어진 것이 아닌 엘리자베스 바로크 양식의 가장 인상적인 기념물이다.[2]
역사
고고학계에서는 현재의 쿠르스크가 위치한 곳이 기원전 5~4세기에 정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착지는 요새화되었고 적어도 8세기 초에는 슬라브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쿠르스크가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032년이다. '이고르 전쟁' 설화에서 이고르공이 세베리아 마을의 하나로 언급하였다.
작은 공국이었던 쿠르스크는 12~13세기에 폴란드의 침략을 받았고 1237년 몽골의 바투 칸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283년에 재건되었다. 쿠르스크는 1360부터 150년 가까이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지배를 받았고, 1508년 중앙집권화된 모스크바 대공국에 편입되어 남부 국경의 지방 도시가 되었다. 쿠르스크는 우크라이나와의 옥수수 교역에서 주요 거점이 되었고 '쿠르스크의 성모' 수도원 담장 밑에서 매년 대규모 장을 열었다. 새로운 요새가 1596년에 세워졌고, 1616년에는 1,300명 이상의 병사가 주둔하였다.
쿠르스크는 17세기 내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1612년, 1616년, 1617년, 1634년)과 크리미아 타타르족, 노가이 칸국의 끈질긴 공격을 받았고 1611~18년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았다. 오룔을 비롯한 남부 러시아 도시의 주민들은 쿠르스크로 옮겨졌다(1678년까지 2,800명 재정착).
모스크바나 키이브(옛 키예프)에서 크림반도로 가는 최단 노선의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쿠르스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쿠르크스는 키예프 총독부(1708~27), 벨고로드 총독부(1727~1779), 쿠르스크 총독부(1779~97)에 차례로 소속되었다. 쿠르스크는 1779년에 도시로 승격하였고 1797년에 쿠르스크주 주도가 되었다.
1781년의 대화재로 시가지가 황폐해지자 시장을 도심 한복판에 설치하는 새로운 도시 계획이 입안되었다. 시장은 후에 '붉은 광장'으로 알려진 중앙 광장에 들어섰다. 1768년 보스키르센스코 일린스카야(Voskirsensko Ilinskaya) 교회가 건설되었고 1778년에는 세르기에프 성당, 카잔 성당, 바로크와 트리니티 세르기우스 성당이 모두 완공되었다. 1783년 쿠르크스에 첫 귀족학교가 개교하였고, 1808년에는 남자 체육관, 1817년에는 신학교가 각각 문을 열었으며, 1870년에는 여자 체육관이 개관하였다.
쿠르스크는 20세기 초에 식품을 비롯한 여러 산업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였다. 러시아 최대 양조장의 하나인 크빌리추(Kvilitsu)가 쿠르스크에서 가동하였다. 기계공업이 발달하였으며 1914년에는 철로공장을 비롯해 철공소 7곳이 있었다. 쿠르스크 공장들의 근로여건은 가혹하였기 때문에 때때로 파업이 일어나곤 하였다. 1901~03년까지 파업에 들어간 설탕공장 노동자들도 그런 사례의 하나다. 쿠르스크 노동자들은 1905년 러시아 혁명 때 정치 총파업에 참가하였다.
1917년 11월 소련이 정권을 잡았다. 데니킨 장군의 부대가 1919년 9월 쿠르스크로 진주하였고 11월 적군(赤軍)이 쿠르스크를 점령하였다. 소련 정부는 쿠르스크의 풍부한 철광석 매장량을 중시하고 러시아 서남부 철도 거점의 하나로 발전시켰다. 얌스카야 슬로보다(Yamskaya Sloboda) 마을이 1932년 쿠르스크에 합병되었다. 쿠르스크 시내에서 전차가 1935년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쿠르스크는 쿠라강 왼쪽 제방에 위치한 레닌스키구와 쿠라강 오른쪽 제방에 자리잡은 드제르진스키(Dzerzhinsky)구와 키로프구(야마스카야 슬로보다)로 분할되었고 1937년에는 스탈린스키구가 쿠르스크 남쪽 외곽에 신설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쿠르스크는 1941년 11월 4일~1943년 2월 8일까지 독일군에 점령되었다. 독일군은 1943년 7월 쿠르스크를 다시 장악하기 위해 시타델 작전을 개시하였다. 쿠르스크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 전선(독일 기준)의 판도를 좌우한 주목할 만한 전투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갑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일군은 오랫동안 이 전투를 준비한 후 선제공격을 가했지만, 소련군은 쿠르스크 인근의 프로호로프카 전투에서 독일군을 저지하였고, 곧이어 반격을 개시하여 오룔과 벨고로드, 하르코프를 탈환하였다. 이 전투는 소련군이 독일군과 전투에서 여름에 승리한 최초의 전투였다. 독일군은 쿠르스크 전투에서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회복에 시일이 걸리면서 이후 두 번 다시 공세로 전환하지 못한 채 소련의 공세에 부딪히자 동부전선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시타델 작전은 소련에 대한 독일의 마지막 대규모 공격이었다.
쿠르스크 재건 노력은 1944년 2월에 시작되었고 영화관과 극장이 다시 문을 여는 등 문화생활도 재개되었다. 도시 경제는 1950년까지 완전히 회복되었고 전차가 1953년 운행을 시작하였다. 1956년 8월 스탈린스키구는 프로미슐레노스트(Promishlenost)구로 개칭되었고, 드제르진스키 구는 폐지되면서 프로미슐레노스트구와 레닌스키 구로 분할되었다. 쿠르스크는 2010년 역사적 마을의 지위를 얻었지만 러시아 문화부는 얼마 안 가서 이 지위를 박탈하였다. 쿠르스크는 도시의 중앙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30년 만에 처음으로 현대식 장비를 갖춘 소방서를 2011년에 개설하였다.[3]
경제
쿠르스크는 행정 중심지로서의 위치 못지않게 산업 중심지로서도 위치도 확고히 인정받고 있다. 쿠르스크의 경제 활동은 제철, 화학, 전자 등에 집중되어 있지만 '흑토' 지대에 위치한 덕분에 농업도 크게 발달하였고 따라서 식품가공산업이 활발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세계에서 매장량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쿠르스크 마그네틱 아노말리로, 이곳의 광석은 철 함량이 35~60%에 이른다. 서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쿠르차토프에는 쿠르스크 원자력발전소가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 발전소는 1986년 폭발로 대재앙을 초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와 비슷한 원자로 4개를 사용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원자로는 1977년부터, 최신형은 1986년부터 각각 가동하고 있다.
교통
쿠르스크는 1868년 모스크바와 철도로 연결되었다. 쿠르스크는 모스크바와 하르코프 사이의 주요 철도 노선에 자리잡고 있으며, 보로네시나 키이브로 가는 열차도 있다. 쿠르스크 보스토치니공항에는 국내선만 취항한다. 대중교통수단으로는 버스, 트롤리버스, 전차가 있으며 2007년부터 내비게이션을 도입했다. 쿠르스크의 도로망은 총 595.8km이며, 이 중 496.2km가 포장도로다.
쿠르스크에서 연방고속도로 M2 크림과 A144 고속도로(쿠르스크-보로네시-사라토프) 및 P199(우크라이나 국경)에 접근할 수 있다. 도시 서북부의 쿠르스크 버스정류장에서 벨고로드주, 브랸스크주, 보로네시주, 오룔주 등의 인근 지역과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론 하르키우와 수미 같은 우크라이나 도시들까지 운행하는 장거리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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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쿠르스크〉, 《위키백과》
- 〈쿠르스크〉, 《요다위키》
- 〈쿠르스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러시아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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