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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섬'''(Mahe Island, Mahé)은 [[세이셸]] 북동부에 위치한 [[섬]]이다. '''마헤섬'''<!--마헤 섬-->이라고도 부른다. 마에섬은 면적 155km², 인구 78,539명(2010년 기준)으로, 세이셸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세이셸의 수도인 [[빅토리아]]가 마에섬ㅇ레 위치하며, 세이셸 전체 인구 가운데 약 86%가 마에섬에 거주한다. 섬 이름은 [[모리셔스]] 총독을 역임한 프랑스의 외교관 베르트랑프랑수아 마에 드 라 부르동네(Bertrand-François Mahé de La Bourdonnais)에서 유래된 이름이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C%97%90%EC%84%AC 마에섬]〉, 《위키백과》</ref> | '''마에섬'''(Mahe Island, Mahé)은 [[세이셸]] 북동부에 위치한 [[섬]]이다. '''마헤섬'''<!--마헤 섬-->이라고도 부른다. 마에섬은 면적 155km², 인구 78,539명(2010년 기준)으로, 세이셸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세이셸의 수도인 [[빅토리아]]가 마에섬ㅇ레 위치하며, 세이셸 전체 인구 가운데 약 86%가 마에섬에 거주한다. 섬 이름은 [[모리셔스]] 총독을 역임한 프랑스의 외교관 베르트랑프랑수아 마에 드 라 부르동네(Bertrand-François Mahé de La Bourdonnais)에서 유래된 이름이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C%97%90%EC%84%AC 마에섬]〉, 《위키백과》</ref> |
2023년 6월 5일 (월) 10:3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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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섬(Mahe Island, Mahé)은 세이셸 북동부에 위치한 섬이다. 마헤섬이라고도 부른다. 마에섬은 면적 155km², 인구 78,539명(2010년 기준)으로, 세이셸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세이셸의 수도인 빅토리아가 마에섬ㅇ레 위치하며, 세이셸 전체 인구 가운데 약 86%가 마에섬에 거주한다. 섬 이름은 모리셔스 총독을 역임한 프랑스의 외교관 베르트랑프랑수아 마에 드 라 부르동네(Bertrand-François Mahé de La Bourdonnais)에서 유래된 이름이다.[1]
개요
마에섬은 아프리카 케냐 동부 인도양에 위치한 큰 섬으로 세이셸에 위치한 섬들 중 하나이며 세이셸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세이셸의 중심를 이루고 있다. 세이셸이 열대기후에 속하고 인도양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사이클론이 오는 경우가 있다. 세이셸의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마에 섬도 원래는 무인도였다. 포르투갈인들이 세이셸을 발견한 이후, 처음에 프랑스인들이 마에 섬을 포함한 세이셸의 다른 섬들을 개척 및 정착하면서 프랑스령이라고 선포했다. 1609년 영국인이 이 섬을 방문했지만 1742년 프랑스의 탐험가 라자르 피코(Lazare Picault)가 탐험할 때까지 유럽인들의 방문은 없었다. 1812년 마에섬의 소유권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넘어갔고 1976년 세이셸이 독립할 때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섬의 북쪽과 동쪽에 대부분의 주민이 거주하며 국제공항이 있다. 가장 높은 해발 905m 높이의 몬세이셸루아(Morne Seychellois)산을 중심으로 하는 몬세이셸루아국립공원(Morne Seychellois National Park)이 있고 섬의 남쪽과 서쪽에는 베테르나이 해상국립공원(Baie Ternay Marine National Park)과 포트로나이 해상국립공원(Port Launay Marine National Park)이 있다. 또한 해안에는 세인트앤 해상국립공원(Ste Anne Marine National Park)이 있다. 섬의 열대우림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마에섬에 만 서식하는 해파리나무(Jellyfish tree)와 식충 식물인 피쳐플랜트(Pitcher plant), 다양한 종류의 희귀 난 등과 같은 토종 식물이 서식한다. 마에섬의 중심 관광지는 서쪽 해안에 있는 보벌룬(Beau Ballon)으로 아름다운 해변이 있으며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2][3][4]
관광
마에섬은 세이셸에서 가장 큰 섬으로 전체 인구의 86%가 거주하고 있으며 세이셸국제공항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수도 빅토리아와 대외무역항이 있는 북동부 지역은 섬에서도 가장 발달한 상업중심지이다. 빅토리아 시계탑 같은 랜드마크를 비롯해 국립역사박물관, 식물원, 대성당, 쇼핑거리와 마켓, 각종 레스토랑과 바 등이 몰려 있어 마에섬에 머무는 관광객이라면 꼭 방문하게 되는 곳이다. 남부지역은 북쪽에 비해 개발이 덜 되어 있고 좀 더 자연친화적이다. 마에섬 북쪽의 보발롱 해변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크고 작은 해안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고, 그 일대에 저렴한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식당 등이 들어서 있다. 마에 섬은 해안가를 제외한 내륙 대부분이 울창한 산으로 덮여 있는데, 북서쪽에 위치한 몬 세이셸 국립공원은 세이셸을 대표하는 산으로 905m의 높은 봉우리와 12개의 하이킹 코스를 가지고 있다. 마에섬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렌터카 혹은 택시 대절을 통해 섬 일주를 하는 것이다. 마에섬은 제주도의 10분의 1 정도 되는 크기로, 자동차로 쉬지 않고 섬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2시간 30분 소요된다.[5]
세이셸
세이셸(Seychelles)은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이다. 정식 국명은 세이셸공화국(Republic of Seychelles)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약 1,600km 떨어져 있다. 수도는 빅토리아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인도식 화폐인 루피를 쓴다. 세이셸 주변의 다른 섬 나라들로 남쪽에 모리셔스, 레위니옹(프랑스령), 남서쪽에 코모로, 마요트(프랑스령), 북동쪽에 수바디브, 몰디브 등이 있다. 세이셸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오스트로네시아인 항해자 혹은 아랍인 상인들로 추정되지만, 기록상 최초의 발견은 1502년 포르투갈인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 일행에 의한 것이며, 섬에 최초로 상륙한 것은 1609년 영국 동인도 회사 함선이었던 Ascension의 선원들이다. 프랑스가 1756년에 재정 장관이었던 장 모로 드 세셸(Jean Moreau de Sechelles)의 이름을 빌려 군도를 명명하고 통치를 시작하기 전까지, 아프리카와 아시아 간 무역의 통과점으로 해적들이 사용하곤 했다. 1794년부터 1811년까지 영국과 프랑스는 통치권을 두고 경쟁을 벌였으며 1814년에 결국 영국에게 할양되었다. 1903년에는 모리셔스에서 분리된 직할 식민지가 되었으며 1976년에 독립하여 영연방 소속 공화국이 되었다. 헌법에서 1979년부터 1992년까지 사회주의 일당 통치 국가로 선언했었다.
세이셸은 115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33개는 무인도이다. 마헤(Mahé)섬을 위주로 화강암으로 구성된 섬들에 대부분의 인구가 몰려 있다. 특히 수도인 빅토리아가 위치해 있는 마헤섬에는 인구의 80%가 거주하고 있다. 외곽의 섬들은 소규모의 산호섬이다. 세이셸은 연중 섭씨 22~32도의 열대 기후이며, 몬순의 영향으로 5월말부터 9월까지는 기온이 낮아지고,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더 따뜻하다. 세이셸은 열대성 저기압대에서 벗어나 있다. 2004년 12월의 인도양 지진 해일 사태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는 않았으나, 해일로 인한 피해를 입었고 2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었다. 지상 최후의 낙원’으로 불리는 세이셸공화국은 영국 BBC방송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천국’으로 선정했으며, 트래블러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해변 1위에 오른 섬나라이다. 11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이셸은 다양한 해양 생물과 산호를 만날 수 있으며, 15억 년 전 태곳적 원시림과 생물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영국 윌리엄 왕자 부부의 신혼여행, 축구 스타 베컴 부부가 결혼 10주년 여행,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전 가족들과 휴양지로 선택한 곳으로 유명하다.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 빛 바다, 따뜻한 햇살과 진귀한 해양 동식물, 드넓게 펼쳐진 해변은 흡사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6]
역사
세이셸의 섬은 12세기경부터 아라비아인, 페르시아인, 16세기 초에는 포르투갈인의 왕래가 있었으나 그 후 18세기경까지는 무인도였다. 1741년과 1744년에 프랑스인이 탐험하여 마에섬을 프랑스령(領)으로 하였다. 프랑스인이 정주하게 된 것은 1770년대로 그들은 노예를 이끌고 특산물인 바다거북을 남획하고 목재를 벌채하여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프랑스 당국은 천연자원이 고갈된다는 이유로 이를 금지하여 이후 이주자들은 쌀, 목화, 옥수수 재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19세기 초의 나폴레옹전쟁 때 인도양의 세이셸 제도 부근도 영불해전(英佛海戰)의 무대가 되어 세이셸은 모리셔스 제도와 함께 영국에 점령된 결과 1814년의 파리회의를 거쳐 정식으로 영국령이 되었다. 이후 1세기 동안 영국은 이들 제도를 통치하였다. 1903년 세이셸은 모리셔스와 분리하여 영국 직할식민지가 되고, 1970년에는 대폭적인 자치권을 획득하였다가 1976년 6월 마침내 세이셸공화국으로서 독립하였다. 세이셸의 초대 대통령 만캄은 구(舊)종주국 영국과의 우호친선관계 유지를 바탕으로 온건한 중립정책을 취하고 내정면에서도 산업의 개발, 특히 관광사업의 촉진이라는 시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정(施政)은 불과 1년으로 그쳤다. 1977년 6월 대통령 만캄이 영국연방 회의에 출석하기 위해서 런던 체재 중 수도 빅토리아에서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 총리인 프랑스 알베르 르네(France Albert Rene)가 정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대통령 르네는 1979년에도 재선되었으며, 공산정권을 내세워 1977년에는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고 이듬해에는 중국, 북한을 방문하는 등 좌경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와 같은 르네 공산정권에 대한 반발로 1978~1979년에는 반정부 쿠데타 계획이 있었고, 1981년 11월에는 외국인 무장그룹이라고 부르는 일단의 세력이 세이셸 공항(空港)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1982년 1월 UN의 조사단이 세이셸에 도착하여 진상규명에 나서기도 하였다.[7]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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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마에섬〉, 《위키백과》
- 〈세이셸〉, 《위키백과》
- 〈마에 섬〉, 《나무위키》
- 〈마헤, 세이셸 - 〉, 《요다위키》
- 〈마에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마에섬(세이셸 여행)〉, 《네이버 지식백과》
- 〈세이셸의 역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