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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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영어: Oslo)는 노르웨이 수도이며 남부 해안에 있는 도시이다. 또한 노벨평화상이 수상되는 도시로 유명하다.
1048년에 바이킹 왕 하랄드에 의해 건설되었다. 13세기 호콘 5세에 의하여 수도로 정해져 한자 동맹[1]의 항구로서 번영했다. 1624년에 일어난 대화재 후에 재건되었으며 그 당시의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에 의하여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또는 Kristiania)라고 명명되었으나, 20세기에 이르러 오슬로란 본명으로 되돌아갔다. 도시의 크기는 남북 약 40km, 동서 약 20km로 면적이 매우 넓다. 도시 안에는 녹지와 숲과 공원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또 피오르가 들어와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성 홀바르드를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으며, 휘장에서 화살 세 개를 쥐고 있는 남자가 바로 그이다.
개요
- 행정 단위: 노르웨이 수도
- 면적: 454 km²
- 인구: 693,494명 (2020년)
- 지역어: 노르웨이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oslo.kommune.no/
역사
노스 사가에 따르면 오슬로는 하랄 하르드라다에 의해 1049년경에 설립되었다.
호콘 5세 시대(1299~1319년)부터 수도로 여겨져 왔으며, 그는 이 도시에 영구 거주한 최초의 왕이다. 그는 또한 아케르스후스 요새(노르웨이어판)와 오슬로 콩스가르드(Kongsgård)의 건설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세기 후 노르웨이는 덴마크와의 동군연합에서 부속역할이었고, 오슬로의 역할은 코펜하겐에 군주가 상주하면서 지방 행정중심지로 전락했다. 오슬로 대학교가 1811년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은 국가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쳤다.
오슬로는 화재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고, 1624년 크리스티안 4세는 아케르스후스 요새 부근의 만 건너 새로운 부지에 재건을 명령하고 크리스타니아(Christiania)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보다 훨씬 전에, 크리스타니아는 노르웨이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1624년부터 건설된 이 도시의 부분은 정규적이고 네모난 블록의 직교적 배치 때문에 현재는 종종 크바드라틴(Kvadraturen)이라고 불린다. 오슬로에서 일어난 마지막 흑사병은 1654년에 일어났다. 1814년 덴마크와의 연합이 해체되면서 크리스타니아는 다시 한 번 진정한 수도가 되었다.
19세기에는 왕궁(1825–1848), 국회의사당(Stortingsbygningen, 1861–1866), 오슬로 대학교, 국립극장, 증권거래소 등 많은 랜드마크가 세워졌다. 이 시기에 이곳에 살았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 중에는 헨리크 입센과 크누트 함순(후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이 있었다. 1850년 크리스타니아도 베르겐을 추월해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1877년에 그 도시는 크리스티아니아(Kristiania)로 개명되었다. 오슬로의 원래 이름은 1925년에 복원되었다.
기후
겨울에는 위도에 비해 따뜻하며, 1월 평균 기온 -3℃[6], 7월 평균 기온은 17℃이다. 연 평균 기온은 6.8도로 대관령과 비슷하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는 오슬로를 냉대습윤기후(Dfb) / 서안 해양성 기후 (Cfb)로 구분한다.
인구
인구는 2020년까지 693,494명으로 많지는 않지만 오슬로를 중심으로 한 도시권 인구는 92만명, 오슬로 수도권 전체를 합하면 171만명 정도에 달해 노르웨이 인구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고임금 때문에 이주민이 많으며 노르웨이 자체 출산율도 높기 때문에 도시권 인구는 점차 불어나고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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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북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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