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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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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위치
룡천군 위치

룡천군(龍川郡, 표준어: 용천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룡천군의 면적은 270.2㎢이며 인구는 135,634명(2008)이다. 북쪽으로 신의주시, 남쪽으로 염주군, 동쪽으로 피현군이 있다. 하구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신도군중국 랴오닝성의 둥강시가 있다. 동서(학흥리~진흥구) 간의 길이는 23.5km이고 남북(덕흥리~동신리) 간의 길이는 16.3km이며, 도 전체면적의 2.13%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3구 19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용천읍이다.

물이 많은 고장이라 하여 용천이란 지명이 생겼다 한다. 용(龍)은 원래 물과 관련한 상상동물을 이르는 말로서 우리말로 미루 또는 미리라 하였다. 용, 즉 미루, 미리는 물을 나타낸 옛말이므로 물이 많다는 뜻이고 천은 고을을 나타내던 주(州)자를 지대에 따라 천자로 바꾸어 쓴 데서 온 말이다.

압록강황해로 흘러들어가는 하구(河口)의 룡천평야 중심에 있으며,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에 접해 있다. 황해 연안에는 여러 섬들이 있다. 신도와 황금평, 서호섬 등은 룡천군에 속해 있었으나, 1988년에 신도군으로 분리되었다. 룡천군은 육지 중에서는 한국 최서단에 있는 군이다.

룡천은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의 명칭이고 두음법칙을 적용 시에는 용천군이다. 6.25 전쟁 와중인 1950년 11월 1일 영국군 27 여단이 군 남부에 위치한 외상면 정차동까지 진격해 유엔군이 가장 서쪽으로 진격한 지역이기도 하다.

룡천군은 신도군과 더불어 남북통일만 된다면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의주군이 신의주시에게 자리를 내줬듯 통일후에는 신의주시가 갖고 있는 국경 도시기능을 용천이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이미 중국의 경우 신의주 맞은편에 있는 단둥시도 압록강의 퇴적 작용으로 인해 항구기능을 상실해 용천군 용암포 맞은편 둥강시에 새로운 항구 시설을 갖춘상황이다.

룡천군은 지난 2004년에 열차폭발 사고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룡천역과 함께 중학교와 룡천읍의 수십여 채의 살림집, 그리고 농업전문학교가 파괴되었으며 그와 더불어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해외 여러 나라의 지원으로 복구 사업을 시작해 룡천군의 살림집들이 다시 건설되었는데, 폭발 전에 흰색과 회색빛으로 지어진 건물이 많았으나, 지금은 푸른색과 핑크색, 하얀색 등 다양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조선중앙방송은 이 시의 복구 사업을 소개하면서, '조선의 지방 도시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말한 바가 있다.[3]

자연환경[편집]

룡천군은 해안선이 길고 평안북도에서 가장 큰 벌인 용천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벌지대로서 해발 100m 미만의 지역이 93.3%를 차지하며 그 이상 되는 지역은 6.7% 밖에 되지 않는다. 룡천군 면적에서 경사도가 5°못 미치는 지역은 43.9%, 5~15°지역은 28.4%, 15°이상 지역은 27.7%를 차지한다. 지세는 북동부와 남동부가 높고 서부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게 되는데, 북서부에는 해발 2~3m 정도의 간석지 벌이 발달되어 있다. 용천군에서 가장 높은 산은 북동부에 있는 법흥산(160m)이다. 용천군은 해양의 영향을 직접 받는 서해안기후구에 속한다.

연평균기온은 8.3℃인데, 1월 평균기온은 -9.3℃이고 8월 평균기온은 23.4℃이다. 최고극기온은 33.4℃(1975년 8월 13일), 최저극기온은 -27.3℃(1985년 1월 14일)이였다. 10℃이상 적산온도는 3.327℃이고 연평균풍속은 3.1m/s이며 연평균강수량은 980mm이다. 첫서리는 10월 24일경에, 마지막 서리는 4월 7일경에 내리며 일조율은 60%이다. 대기습도는 평안북도에서 가장 높다. 용천군의 서부 37.7km 구간으로 압록강이 남북방향으로, 북부 신의주시와의 사이 11km 구간으로 삼교천이 동서방향으로 유입된다. 이밖에도 쌍룡천(119km), 용산천(6km), 임평천(4km)과 같은 작은 하천들이 흐른다. 용천군은 지역이 낮은 연고로 수해가 심한 지역이었다.

광복 후에 용천군에서는 원유 관개시설을 개조하고 압록강과 삼교천 호안공사를 비롯한 하천공사와 함께 압록강의 물을 퍼 올리는 1단, 2단 양수장을 설치하는 등 수리화를 진행하였다. 특히 압록강 관개체계가 마련됨으로써 수해를 방지하고 용천군 전역에 완벽한 관개를 보장하고 있다. 산림은 용천군 면적의 2.2%를 차지하며 수종은 주로 소나무로 되어 있다. 산림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동부 쌍룡리와 학흥리 일대이다. 용천군의 대부분 지역에는 충적토과 논토양이, 일부 지역에는 갈색산림토양이 분포되어 있다.[4]

역사[편집]

룡천군 지역의 용연리, 신암리 일대에서 신석기시기의 유물유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시대에 이미 인류가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시기에 안흥군(安興郡)이라 하였는데, 고려시대에 들어서서 거란족의 침입으로부터 수복한 강동6주(江東六州)에 속하였다. 1014년(현종 5년)에 안흥군은 용주(龍州)로 개칭되었으며, 1270년(원종 11년) 원나라 동녕부(東寧府)에 예속되었다가 1278년(충렬왕 4년)에 수복되어 용만부(龍灣府)로 개편되었다. 1310년(충선왕 2년)에 다시 용주로 복귀되었다. 1413년(태종 13년)에 용천군으로 개편하였다. 1620년(광해군 12년)에 용천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 부군제를 실시할 때 의주부 용천군으로 개편되어 부내면(府內面), 부남면(府南面), 미라면(彌羅面), 북상면(北上面), 북하면(北下面), 내하면(內下面), 내상면(內上面) 등 7개 면을 관할하였고, 1896년 13도로 개편할 때 평안북도 룡천군으로 되면서 부내면, 부남면, 미라면, 북상면, 북하면, 내하면, 내상면, 외상면(外上面), 외하면(外下面), 구읍면(舊邑面), 동상면(東上面), 동하면(東下面), 광화면(光化面), 양상면(楊上面), 양하면(楊下面), 양서면(楊西面), 신도면(薪島面) 등 17개 면을 개편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내상면과 내하면을 병합하여 내중면(內中面)을, 북상면과 북하면을 병합하여 북중면(北中面)을, 부남면 일부와 미라면을 병합하여 부라면(府羅面)을, 동상면과 구읍면 일부를 병합하여 읍동면(邑東面)을, 광화면과 양상면을 병합하여 양광면(楊光面)을 각각 신설하고 부남면 나머지 일부를 부내면에, 구읍면 나머지 일부를 동하면에 각각 편입하여 부내면, 부라면, 북중면, 내중면, 외상면, 외하면, 읍동면, 동하면, 양광면, 양하면, 양서면, 신도면 등 12개 면을 산하에 두고 있었다.

1918년에 부내면을 용천면(龍川面)으로 개칭하였으며, 1939년에 용천면을 용암포읍(龍巖浦邑)으로 개편하여 광복 전에 1개 읍(용암포읍), 11개 면(외상면, 내중면, 양하면, 양광면, 양서면, 북중면, 부라면, 동하면, 신도면, 외하면, 읍동면)과 157개 동으로 되어 있었다.

그때 군 소재지는 지금의 용암포였다. 광복 직후 용암포읍이 용암포면(龍巖浦面)으로 강등되었고 읍동면이 다시 동상면으로 개칭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외하면 · 외상면 · 내중면의 전체 리와 부라면의 12개 리는 염주군에, 동상면의 전체 리와 양광면의 15개 리는 피현군에 각각 편입하고 나머지 용암포면 · 북중면 · 양하면 · 양서면 · 동하면 · 신도면의 전체 리와 부라면의 7개 리 · 양광면의 3개 리 · 신의주시(新義州市)의 17개 리를 병합하여 용천군을 새로 구성하였는데, 이때 양하면의 시동리 · 시남리 · 시서리 · 시북리를 병합하여 용천읍(龍川邑)으로, 용암포면의 중흥리 · 신흥리 · 진곶리 · 용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진흥리(辰興里)로, 용암포면의 신봉리 · 덕봉리 · 소흥리 · 신전리 · 부라면 서겸리 일부를 병합하여 덕흥리(德興里)로, 용암포면의 소의리 · 서호리 · 석성리 · 송림리를 병합하여 서석리(西石里)로, 용암포면의 운흥리 · 용암리 · 용신리 · 용포리 · 용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암포리(龍巖浦里)로, 부라면의 서겸리 일부 · 덕암리 · 덕천리 · 백현리 · 동단리 · 송현리 · 용승리를 병합하여 덕승리(德昇里)로, 북중면의 추정리 · 하장리 · 원흥리 · 원송리 · 동송리 · 인고리를 병합하여 장산리(長山里)로, 북중면의 수봉리 · 중성리 · 매장리를 병합하여 수성리(秀城里)로, 북중면의 북현리 · 동양리 · 쌍성리 · 진흥리 · 백암리를 병합하여 쌍학리(雙鶴里)로, 북중면의 원봉리 · 가성리 · 기계리를 병합하여 북중리(北中里)로, 북중면의 안심리 · 오송리 · 신안리 · 청송리 · 구송리 · 동하면 덕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흥리(五興里)로, 양하면의 신창리 · 입암리를 병합하여 신암리(新巖里)로, 양하면의 장송리 · 수송리 · 양서면 용봉리를 병합하여 용송리(龍松里)로, 양서면의 팽량리 · 동상리 · 신성리 일부 · 동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양서리(楊西里)로, 양서면의 북성리 · 북평리 · 서망리를 병합하여 서북리(西北里)로, 양서면의 용연리 · 용성리 · 북중면 서룡리를 병합하여 용연리(龍淵里)로, 양서면의 동망리 · 동평리 일부와 양하면 신서리 · 신의주시 수문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신리(東新里)로, 양서면의 견일리 · 신평리 · 신성리 일부를 병합하여 견일리(見一里)로, 동하면의 고령리 · 용흥리 · 용산리 · 쌍학리를 병합하여 쌍룡리(雙龍里)로, 동하면의 원서리 · 덕흥리 일부 · 대산리 · 남산리를 병합하여 동하리(東下里)로, 동하면의 대인리 · 삼인리 · 영흥리 · 북중면 용주리를 병합하여 인흥리(仁興里)로, 동하면의 학령리 · 법흥리 · 사흥리를 병합하여 학흥리(鶴興里)로, 양광면의 현가리 · 산두리 · 망양리를 병합하여 산두리(山斗里)로, 신도면의 동주리 · 남주리를 병합하여 신도리(薪島里)로, 신도면의 노평리 · 황초리 · 농화리 · 병호리를 병합하여 신서리(薪西里)로, 신의주시 성서리 · 화평리 일부 · 동초리를 병합하여 성서리(城西里)로, 신의주시 토성리 · 정심리 · 성외리 · 수문리 일부를 병합하여 토성리(土城里)로, 신의주시 낙원리 · 낙청리를 병합하여 낙원리(樂元里)로, 신의주시 대석리 · 남미력리 · 용연리 · 용상리 · 용하리를 병합하여 삼룡리(三龍里)로, 신의주시 창포리 · 토교리 일부 · 와이리 일부를 병합하여 창포리(倉浦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9리를 관할하였다.

1953년에 용천읍 일부가 신암리와 산두리에, 오흥리 일부가 용천읍에, 동신리 일부가 토성리에 각각 편입되었다. 1954년에는 덕흥리 일부가 용암포리에, 북중리 일부가 쌍학리에, 산두리 일부가 삼룡리에 각각 편입되었고 북중리가 북중노동자구로 승격되었으며 성서리, 토성리, 낙원리, 삼룡리, 창포리가 신설되는 광성군에 이관되었다. 1961년에 쌍학리 일부가 용송리에 흡수되었고, 1963년에 신서리 일부가 신도리에 편입되면서 신도노동자구로, 용암포리가 용암포노동자구로 각각 승격되었다. 1967년에 신서리 · 신도노동자구 · 서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도군(薪島郡)을 신설하였으며 진흥리를 진흥노동자구로 승격하였다.

1969년에 용천군과 신도군이 통합되었으며 이때 신도읍이 비단섬노동자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1982년에 신서리가 황금평리(黃金坪里)로 개칭되었고, 1988년에 비단섬노동자구 · 황금평리 · 서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도군을 복귀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용천읍), 3구(용암포노동자구, 북중노동자구, 진흥노동자구), 19리(견일리, 덕승리, 덕흥리, 동신리, 동하리, 용송리, 용연리, 산두리, 서북리, 서석리, 수성리, 신암리, 쌍룡리, 쌍학리, 양서리, 오흥리, 인흥리, 장산리, 학흥리)로 구성되어 있다. 용천군 소재지는 용천읍이다.[5]

산업[편집]

룡천군은 압록강과 삼교천의 충적작용으로 형성된 용천벌의 넓은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토질이 비옥하고 압록강 관개체계 등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평안북도 내에서도 곡창지대로 유명하다. 평안북도에서 농경지 비율이 가장 높고 논이 가장 많다. 농경지 가운데서 논이 73%, 밭이 21%, 과수밭이 3.7%를 차지한다.

농경지는 모두 해발 100m 미만의 지대에 분포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서 84%가 5°이하의 평지에 위치해 있다. 농경지가 많은 지역은 덕승리, 양서리, 장산리 등 지역이다. 곡물생산에서 98%를 차지하는 벼는 주로 신암리, 견일리, 용연리, 양서리, 서북리, 동신리, 덕승리, 장산리 등 지역에서 재배되고 옥수수는 주로 쌍학리, 쌍룡리, 학흥리 등 지역에서 재배된다.

과수업에서 사과, 배, 복숭아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과수밭은 쌍룡리, 덕승리 등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축산업에서는 벌지대의 특성에 맞게 돼지, 오리, 닭 등 가축을 많이 사육하고 있으며 학흥리에는 전문오리공장이 설치되어 있다. 공예작물에서는 담배가 큰 의의를 가진다. 수산업도 발달되어 있는데, 서해안에서 어획량이 많은 지역에 속한다. 주요 수산업체로는 용암포수산사업소와 견일수산협동조합, 진흥수산협동조합, 서포수산협동조합 등이 있다. 주로 서해바다의 명산물로 알려진 전어와 뱅어, 멸치, 까나리, 농어, 새우, 조개류, 굴 등을 생산하고 있다.

교통망이 잘 구축되어 있고 국경관문도시 신의주에 인접하여 있는 등 유리한 조건으로 하여 공업생산도 발달되어 있는데, 오래 전부터 농기구제조공장과 항공기부속품을 제작하는 공장, 비철금속성광석을 제련하는 공장이 있었으며 이밖에도 알루미늄, 유리공장이 있었다. 광복 후에 기계공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였는데 현재 북한의 조선공업과 수산업의 발전에 큰 의의가 있는 디젤기관, 냉동기 등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이밖에 보일러, 각종 쇠사슬, 광산설비, 금속 및 화학공업 영역의 대상설비들이 생산된다. 지방공업에서는 식료품, 피복, 신발, 철제일용품 등이 생산되고 있는데, 그 중 양말과 신발은 평안북도 전역에 공급되고 있다.[6]

교통[편집]

교통철도 운수, 도로 운수, 해상운수가 발달되어 있다. 평의선이 용천군의 중심을 통과하고, 용천역에서는 다사도선이 분리된다. 도로는 평양~신의주 간 1급 도로와 용암포~염주, 용암포~영산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수상운수는 용암포항을 통하여 압록강의 하천운수와 서해바다를 통한 해상운수가 진행된다. 용암포~비단섬~신의주 사이에는 여객선과 화물선이 운행되고 용암포~해주 간에도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용천에서 철도로 평안북도 소재지인 신의주시까지는 15.3km, 도로로 용암포까지는 12km이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룡천군〉, 《위키백과》
  2. 룡천군〉,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용천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용천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용천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용천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7.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용천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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