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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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포르투갈어: Lisboa 리스보아, 영어:Lisbon)은 포르투갈의 수도이다. 리스보아 현의 중심도시이자,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도시다. 대서양에 면한 항구도시로 연적은 100.05km² 인구는 약 55만 명이다. 시 공휴일은 파도바의 안토니오의 날인 6월 13일이다. 유럽 연합의 유럽 마약 감시 센터 (EMCDDA)와 유럽 해양 환경청 (EMSA),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의 본부가 리스본에 있다.[1]
개요[편집]
리스본은 이베리아반도의 가장 긴 강인 타구스강 하구의 북쪽 연안, 유럽대륙 서쪽 끝에서 동쪽으로 약 13㎞ 지점에 위치한다. 서쪽과 북쪽 외곽의 위성 도시들과 함께 리스본 광역도시권을 형성하며 인구는 약 290만 명이다. 지중해와 북해를 잇는 중개 무역항으로 발달하기 시작해 BC 205년에는 올리시포(Olisipo)라는 이름으로 로마의 지배 하에 들어 갔다. 714년 이래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리사보나로 불렸다. 844년에 노르만족, 1093년에 카스티야 왕 알폰소 6세가 점령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1108년에 노르웨이의 왕 시구르드 1세가 십자군 원정 중 3년 동안 점령했다가 다시 무슬림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1147년 포르투갈의 왕 아폰수 1세에 의해 레콩키스타의 일환으로 점령되었다. 1255년 코임브라에서 천도한 뒤 수도로서 현재까지 이르렀고 15세기∼16세기 대항해시대에는 유럽 유수의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1755년 대지진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폼발 후작(Sebastião de Carvalho, marquês de Pombal)에 의해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된 도시로 재건되었다. 대지진으로 일어난 피해와 그로 인한 화재, 해일로 시가지의 2/3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적인 건조물은 그리 많지 않다. 교육기관으로 리스본 대학(Universidade de Lisboa)은 1911년 창립되었으며, 오늘날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대학이다. 8개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1930년 설립된 리스본 공과대학, 1973년 설립된 신 리스본대학 등이 있다. 리스본의 포르투갈 국립도서관은 300만 권이 넘는 책과 원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구텐베르크 원서 등 희귀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 리스본에 있는 토레 도 톰보 국립문서보관소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물 보관소 중 하나로 6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리스본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 중 하나는 벨렘(Belém) 지구이다. 이곳에는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 탑, 바스코 다 가마 기념 수도원, 아주다 궁전 등이 위치해 있고, 1290년 세워진 대학도 이곳에 있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서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벨렘탑은 인근에 위치한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함께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리스본은 타구스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럽 대륙의 최서단 지역이기도 하다. 리스본의 서쪽 부분은 10km²에 이르는 도시공원인 몬산토 포레스트 파크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시의 10%에 달하는 면적이다.
지중해성 기후의 리스본에는 온화하면서 비가 내리는 겨울과 따뜻하고 건조한 여름이 있다. 연평균기온은 17.4℃(낮 21.3℃, 밤 13.5℃)이다. 가장 추운 달은 1월로 낮 최고기온은 10℃에서 18℃, 야간 최저기온은 3℃에서 13℃로, 평균 해수 온도는 15℃이다. 가장 따뜻한 달은 8월이며, 낮 최고기온은 일반적으로 25℃에서 32℃, 야간 최저기온은 14℃에서 20℃, 평균 해수 온도는 20℃이다. 인구 50만 명 이상을 가진 유럽 도시 가운데 리스본은 가장 따뜻한 겨울(발렌시아, 말라가 이하)과 가장 온화한 밤 온도를 가진 도시 중 하나다. 리스본에서 기록한 최저 기온은 1956년 2월의 –1.2℃, 최고 기온은 2018년 8월 4일의 44.0℃였다. 연평균 강우량은 774mm이며, 가장 습한 달은 11월이다.
역사[편집]
신석기 시대에는 부족들에 의해 종교적 기념물과 고인돌 등이 만들어졌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까지 리스본 주변 지역에 남아 있다. 기원전 1000년에는 켈트족의 침략으로 이전의 인구와 혼합되면서 지방 부족이 생겨나기도 했다. 리스본의 카스텔로 언덕에 있는 최초의 요새는 기원전 2세기보다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견들은 철기시대의 사람들이 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까지 이곳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리스본은 내륙 부족과의 상업적 교역에도 요긴한 장소였다. 특히 타구스강 하구의 항구는 페니키아 선박의 하역 및 보급에 적합한 안전지대였을 것으로 보인다. 리스본 대성당 근처에서 발굴된 유적들을 통해, 기원전 1200년부터 이 지역에 페니키아인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올리시포라는 지명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전쟁 중의 동맹을 통해 제국에 통합되었고 이후 로마의 속주 루시타니아 지방과 합쳐졌다. 이때 펠리키타스 율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우구스투스 통치 시대 로마인들은 이곳에 극장, 사원, 성곽과 건물들을 지었다. 이 시기의 유적들은 18세기 중반에 최초로 발굴된다. 이후 해적 행위가 사라지고 기술적 진보가 도입되면서 도시는 번창했고,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보급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 경향은 로마 제국의 쇠퇴기까지도 이어졌다.
로마제국의 멸망 후 반복되는 침략 끝에, 리스본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 함락되었다. 711년의 일이었다. 정복자들은 많은 모스크와 집을 지었고, 도시 성벽을 재건했으며, 행정 통제를 확립했다. 현재도 남아있는 리스본의 옛 시가지 ‘알파마’는 아랍어 알함마(al-hamma)에서 유래된 이름이기도 하다.
1147년, 포르투갈의 십자군에 포위된 리스본은 다시 기독교 통치하에 놓이게 된다. 일부 이슬람 교민들은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주로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등 이슬람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도망쳤다. 기존의 모스크들은 모두 파괴되거나 교회로 전환되었다.
1255년 리스본은 새로운 포르투갈 영토의 수도가 되었다. 1290년에는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이 설립되었다. 중세 후반, 리스본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북유럽과 지중해를 아우르는 중요한 교역소가 되기에 이르렀다.
16세기는 리스본의 황금 시대였다. 유럽의 명실상부한 상업 중심지였으며, 향신료, 설탕, 직물 등 다양한 상품의 거래로 큰 부를 누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된 벨렝 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 등도 이 시기에 건축된 유적들이다.
18세기까지 리스본은 몇 차례의 지진을 겪었는데, 특히 1755년의 대형 지진은 수만 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도시 건물의 85%가 파괴되는 재해를 불러왔다. 이는 당시 유럽 전체에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후 폐허가 된 리스본은 폼발 후작에 의해 재건되었는데, 이를 통해 현대적인 사각형 구획의 디자인으로 재구성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리스본은 중립적이면서 개방된 극소수의 유럽 항구들 중 하나였다. 도시는 미국으로 가는 난민들을 위한 주요 관문이자 안식처로 기능했으며, 1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리스본을 통해 나치 치하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리스본은 20세기 포르투갈 3대 혁명의 현장이기도 했다. 먼저,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포르투갈 왕정은 종식되고, 포르투갈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후 부패한 제1공화국은 1926년 6월 6일 혁명을 통해 무너졌으며, 이를 통해 에스타도 노보가 집권하게 된다. 세 번째 혁명은 1974년에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이다. 이후 우익 에스타도 노보의 종말과 함께, 현재의 포르투갈 제3공화국이 되었다. 2007년에는 유럽연합의 새로운 모델을 합의하는 회의를 주최했으며 이 결과를 토대로 ‘리스본조약’이 체결되기도 했다.[3]
경제[편집]
리스본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포르투갈 GDP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1인당 GDP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리스본의 경제는 주로 3차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포르투갈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의 본사 대부분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가장 크고 정교한 지역 시장이자 인구 밀집 지역 중 하나로, 리스본은 오늘날 금융과 기술의 역동적인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발달된 규모의 대중매체 보유지로, 주요 방송국과 신문사 등 언론 기업의 본거지이다.
또한 이곳에는 암스테르담, 브뤼셀, 파리의 증권거래소와 함께 유로넥스트 시스템의 일부인 유로넥스트 리스본 증권거래소가 있다. 유로넥스트는 2007년부터 뉴욕 증권 거래소와 제휴하여 최초의 다국적 뉴욕증권거래소(NYSE) 유로넥스트 증권거래소를 형성했다.
관광산업은 리스본 경제에서 중요한 분야다. 리스본은 매년 평균 45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호텔 매출만으로도 7억 1,480만 유로를 올려 전년보다 18.7% 증가했다.
교통[편집]
리스본의 지하철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규모가 가장 크다. 리스본 메트로는 도심과 상부, 동부 지역을 연결하며, 교외에도 닿아 있는 가장 빠른 운송수단이다. 리스본 공항 역에서 시내 중심까지는 약 25분 정도가 소요된다. 2018년 기준 개별 색상(파란색, 노란색, 녹색, 빨간색)으로 식별되는 4개 노선으로 나누어지며 56개 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트램은 리스본의 전통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1901년에 도입되었다. 미국에서 수입되어 ‘아메리카노’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 20세기 초반부터 제작된 디자인의 소형 차량을 여전히 사용한다. 이 독특한 노란색 전차는 리스본의 관광 아이콘 중 하나로 리스본의 가파른 언덕과 좁은 거리에 잘 어울린다.
리스본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카스카이스, 신트라, 아잠부자, 세투발까지의 네 가지 노선으로 나누어진다. 시내 주요 철도역으로는 산타 아폴로니아, 호시우, 가레 도 오리엔테, 카이스 두 소드레 등이 있다. 리스본 내 지역 버스 서비스는 카리스사가 운영한다. 리스본은 광범위한 고속도로망을 통해 교외 및 포르투갈 전역으로 연결되어 있다.[4]
관광[편집]
관광의 중심은 리스본에서 가장 큰 광장인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북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있는 바이샤(Baixa) 지구이다. 바이샤 지구는 1755년 대지진과 해일로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폼발 후작(Sebastião José de Carvalho e Melo)에 의해 약 1년 만에 재건되었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코메르시우 광장은 원래 마누엘 1세의 왕궁이 있던 곳이었지만 1755년 대지진 때 파괴되어 광장으로 조성되었다. '궁전광장(Terreiro do Paço)'이라고도 불리며 주변에는 관공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광장에서 호시우 광장까지 뻗은 아우구스타 거리(Rua Augusta)의 양쪽은 화려한 상점들이 들어차 있는 리스본의 대표적인 쇼핑 거리이다. 거리 곳곳에는 부서진 성벽이나 모자이크 보도블록 등 이슬람의 흔적이 남아있다.
리스본은 풍부한 건축물로 유명하다. 도시 전역에서 로마네스크, 고딕, 마누엘린, 바로크, 현대 및 포스트모던 형식의 다양한 건축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각국에서 온 수많은 미술품 및 전시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국립 고미술관(MNAA)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술 컬렉션 중 하나로, 그림, 조각, 가구, 섬유, 도자기 및 인쇄물 등 4만 개 이상의 항목을 소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왕실 마차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 마차박물관, 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이 전시된 국립 아줄레주박물관을 비롯해 국립 고고학박물관, 리스본박물관, 국립 현대미술관, 국립 자연사과학박물관 등이 있다. 리스본의 오페라 하우스인 산 카를로스 국립극장은 주로 가을 및 겨울에 활발한 이벤트를 개최한다. 이외에도 벨렘 문화센터, 마리아 2세 국립극장 등의 극장들이 유명하다.
타구스강 남쪽에서는 리스본 예수상(Cristo-Rei)을 볼 수 있다. 리스본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에 있으며, 포르투갈이 전쟁의 참상과 파괴를 면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워졌다. 리스본에는 벨렝 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두 개의 유적지가 있다. 1994년 리스본은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되었으며, 1998년에는 ‘대양, 미래를 위한 유산’을 주제로 세계 박람회(EXPO)를 개최했다.[5]
리스본 중심 도로의 대부분은 1755년의 대지진 후 재상 조제 폼발 후작의 지휘로 부흥과 재개발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정비된 것이다. 헤스타우라도르스 광장에서 북서로 향해 폼발 후작 광장까지 뻗은 나비 90m, 길이 1.5km의 리베르다드 거리는 리스본의 중심가이며 1880년 개통하였다. 바이샤 지구는 문화·상업·행정·교통의 각 시설이 집중해 있는 곳으로 호시우 광장과 코메르시우 광장이 있다. 호시우 광장 동쪽의 구릉 위에 상 조르지 성이 솟아 있다.
영국과 역사적 관련이 많으며 리베르다드 거리 북서쪽의 에드워드 7세 공원은 영국왕의 포르투갈 방문을 기념한 것이다. 서쪽 끝의 벨렝 지구에는 마누엘 양식의 벨렝 탑(1515)이 서 있고, 그 북동에는 16세기 마누엘 양식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있다. 국립고미술관, 굴벤키안미술관, 해양박물관, 고고학·인류학박물관 등 문화 시설도 많다. 리스본 대학교, 가톨릭대학 등의 종합 대학이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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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리스본〉, 《위키백과》
- 〈리스본〉, 《나무위키》
- 〈리스본〉, 《요다위키》
- 〈리스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리스본(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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