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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제도]](영어: Caroline Islands)는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을 이루는 [[태평양]] 서부의 제도이다. 2개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도로 정상부분이 산호층으로 이루어진 동쪽의 화산군과 습곡작용과 압력을 받아 대양 표면으로 솟아오는 지각층에 해당하는 동쪽의 섬들로 나누어진다. 캐롤라인 제도 동부는 2세기 이전에 사람들이 이미 정착했던 것으로 보이며, 서부의 여러 섬에는 7세기 무렵 [[중국]]의 무역상품들이 이곳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16세기에 이 제도를 방문했던 [[스페인]]의 항해가들은 그들의 왕인 카를로스 2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지만 19세기에 와서야 이곳을 스페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1898년의 미국-스페인 전쟁이 끝난 후 이 제도는 [[독일]]에게 넘어갔으며, 1914년 [[일본]]에게 점령되었고, 1919년 이후에는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으로서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일본에게 철저하게 방어되고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에게 점령되었고 1947년 미국의 관할권 아래 있는 국제연합(UN)의 전략적 신탁통치지역이 되었다. 1986년 신탁통치지역이 해제되었지만 지금도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은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캐롤라인 제도에는 매우 다양한 지형·문화·언어들이 공존한다. 서부의 섬들은 멜라네시아와 필리핀의 영향이 혼합되어 있고, 동부 섬들에서는 폴리네시아의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BA%90%EB%A1%A4%EB%9D%BC%EC%9D%B8_%EC%A0%9C%EB%8F%84 캐롤라인 제도]〉, 《위키백과》</ref> | [[캐롤라인제도]](영어: Caroline Islands)는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을 이루는 [[태평양]] 서부의 제도이다. 2개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도로 정상부분이 산호층으로 이루어진 동쪽의 화산군과 습곡작용과 압력을 받아 대양 표면으로 솟아오는 지각층에 해당하는 동쪽의 섬들로 나누어진다. 캐롤라인 제도 동부는 2세기 이전에 사람들이 이미 정착했던 것으로 보이며, 서부의 여러 섬에는 7세기 무렵 [[중국]]의 무역상품들이 이곳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16세기에 이 제도를 방문했던 [[스페인]]의 항해가들은 그들의 왕인 카를로스 2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지만 19세기에 와서야 이곳을 스페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1898년의 미국-스페인 전쟁이 끝난 후 이 제도는 [[독일]]에게 넘어갔으며, 1914년 [[일본]]에게 점령되었고, 1919년 이후에는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으로서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일본에게 철저하게 방어되고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에게 점령되었고 1947년 미국의 관할권 아래 있는 국제연합(UN)의 전략적 신탁통치지역이 되었다. 1986년 신탁통치지역이 해제되었지만 지금도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은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캐롤라인 제도에는 매우 다양한 지형·문화·언어들이 공존한다. 서부의 섬들은 멜라네시아와 필리핀의 영향이 혼합되어 있고, 동부 섬들에서는 폴리네시아의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BA%90%EB%A1%A4%EB%9D%BC%EC%9D%B8_%EC%A0%9C%EB%8F%84 캐롤라인 제도]〉, 《위키백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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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다오브섬(Babeldaob) 또는 바벨투아프섬(Babelthuap)은 팔라우에서 가장 큰 섬으로, 면적은 331km²이며 팔라우 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하며 나라 인구의 약 30%, 약 6,000명이 살고 있다. 괌섬 다음으로 미크로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며 팔라우의 수도 멜레케오크(Melekeok)가 섬에 위치한다.[1]
개요[편집]
바벨다오브섬은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의 캐롤라인제도에 있는 섬이다. 코로르섬(Koror)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팔라우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아이라이주(Airai)가 있다. 바벨다오브섬은 태평양에서 가장 개발이 덜 된 섬 중 하나이다. 바벨다오브의 동부 해안에는 많은 모래 해변이 있고 북쪽에는 많은 맹그로브 숲이 있는 해안선이 있다. 팔라우의 다른 섬에 비해 산이 많으며 팔라우에서 가장 높은 산인 게르첼추스산(Ngerchelchuus, 해발 242m)이 이 섬에 위치한다. 아이라이주는 팔라우 국제공항이 위치한 주이다. 코로르섬과 바벨다오브섬 간에는 폭 약 250m, 수심 약 30m의 해협으로 떨어져 있으며, 다리가 완성되기 전에는 배를 통해 왕래했다. 팔라우 국토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 두 섬을 잇는 다리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팔라우 정부 성립 이전인 태평양 제도 신탁통치령 정부 시절에 계획이 추진되었다. 바벨다오브섬 최남단에 위치한 아이라이주와 코로르주와는 코로르-바벨다오브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바벨다오브섬에는 컴팩트 로드라고 부르는 일주 도로가 있다.[2]
역사[편집]
유럽인들이 기록한 바벨다오브섬, 코로르섬, 펠레리우섬을 처음 목격한 것은 1543년 1월 말 루이 로페스 데 비야로보스(Ruy López de Villalobos)의 스페인 탐험대에 의해 기록되었다. 섬은 로스 아레시페스(Los Arrecifes)로 표기되었다. 1710년 11월과 12월, 이 세 섬은 산타세마 트리니다드 호를 타고 사르젠토 시장 프란시스코 파딜라(Francisco Padilla)가 이끄는 스페인 선교 탐험대에 의해 다시 방문되고 탐험되었다. 2년 후 그들은 스페인 해군 장교 베르나르도 데 에고이(Bernardo de Egoy)의 탐험대에 의해 자세히 탐험되었다. 섬은 1686년부터 1899년까지 스페인 동인도 제도에 있었다. 스페인-미국 전쟁의 결과로 스페인은 독일-스페인 조약(1899년)에 따라 팔라우(바벨다오브 포함), 캐롤라인, 북마리아나(괌 제외)를 1700만 마르크에 독일 제국에 팔았다. 새로 획득한 섬들은 독일령 뉴기니에서 관리되었다. 바벨다오브는 소케스섬과 폰페이에서 소케스 반란이 일어난 후 소케스 부족의 426명이 식민지 당국에 의해 추방된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일본은 적도 북쪽의 모든 독일 섬을 점령했다. 전후 국제연맹의 의무권으로서 일본은 1917년부터 1927년 사이에 소케스를 폰페이에게 단계적으로 반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바벨다옵의 일본 수비대는 이노우에 사다에(Sadae Inoue) 중장이 지휘하는 21,449명의 일본 제국군과 이토 겐미(Kenmi Itoh) 중장이 지휘하는 8,286명의 일본 제국 해군으로 구성되었다. 바벨다오브는 전쟁 중에 연합군에 의해 우회당했다.[3][4]
바벨다오브섬의 주(州)[편집]
팔라우를 구성하는 16개 주 가운데 10개는 바벨다오브섬에 위치한다.
- 아이멜리크주(Aimeliik)
- 아이라이주(Airai)
- 멜레케오크주(Melekeok)
- 가라르드주(Ngaraard)
- 가르첼롱주(Ngarachelong)
- 가르드마우주(Ngaradmau)
- 가렘렝구이주(Ngeremlengui)
- 가트팡주(Ngatpang)
- 체사르주(Ngchesar)
- 기왈주(Ngiwal)
코로르-바벨다오브 다리[편집]
코로르-바벨다오브 다리(Koror-Babeldaob Bridge) 또는 일본-팔라우 우호의 다리(Japan-Palau Friendship Bridge), KB 브릿지(K-B Bridge)는 팔라우의 옛 수도인 코로르섬과 바벨다오브섬을 잇는 413m의 콘크리트제 다리이며 과거 붕괴 사고가 일어나 현재의 다리는 2002년에 재건된 것이다. 1977년, 한국인 이찬우가 사장인 건설 회사 SOCIO가 섬을 잇는 콘크리트 다리를 건설했다. 설계상 풍속 67m의 폭풍과 심한 흔들림에도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건설업자 선정입찰 때 SOCIO가 카지마건설이 제시한 액수의 절반수준의 입찰가격을 제시하여 낙찰되었다. 건설 직후 다리 중앙부가 움푹 들어가 20년도 지나지 않아 약 1.2m나 함몰했다. 세계 각국의 회사가 보수, 보강 공사를 진행했지만 1990년에 팔라우 정부는 230만 달러를 들여 보강 공사를 실시했다. 1996년 9월 26일 오후 5시 35분경, 굉음과 함께 갑자기 중앙부에서 두동강이 나며 붕괴되었다. 2명이 사망, 4명이 부상을 당했다. 다리는 코로르섬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유일한 도로일 뿐만 아니라, 바벨다오브섬에서 코로르섬으로 공급되던 전기, 수도, 전화 등 생명선이 지나고 있었기에 수도기능이 마비되어 구니오 나카무라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선언을 발령했다. '암흑의 9월 사건'(Black September)으로 알려져 있다. 그 직후 관민이 손을 잡고 복구 작업이 진행되어 9월 30일 긴급 송전선을 부설하여 전선이 복구되었다. 뒤이어 10월 6일에는 다리 양쪽에서 소방용 호스를 이용하여 제한적이었지만 수도를 복구시켰고 교통수단으로서 선박이 부활했다. KB브릿지 붕괴로 인하여 각국도 지원을 시작했다. 일본도 음료수 긴급수송과 가설교 설치 등 지원에 힘썼다. 이 다리에 관해서는 건설당초부터 부실공사 의혹이 지적되었고 주민은 피난로를 확보하기 위해 자동차 창문을 열어 느리게 서행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했다. KB브릿지는 한글과 알파벳으로 비문이 새겨진 기념비만 남아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KOREA'라는 문자가 지워졌다.
2002년 1월,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에 의해 재건된 엑스트라도즈드교. 정식명칭은 '일본-팔라우 우호의 다리'(Japan-Palau Friendship Bridge)이며 통칭, "일본 팔라우 우호교"로 불린다. 설계상 내용 연수는 50년이다. 팔라우 정부가 재정적인 이유로 자금 지원을 단념했다. 1997년에 일본의 무상원조로 다리 재건이 결정되어 카지마 건설이 재건 업무를 맡았다. 구교와 같은 위치에 건설되었지만 구교의 콘크리트가 저품질이었기에 구교 잔존부를 재이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짓게 되었다. 5년 뒤인 2002년 1월에 다리를 완성하여 1월 11일에 개통식 행사가 열렸다. 이 새로운 다리의 기념비에는 일본-팔라우 우호의 다리라고 새겨져 우호의 상징으로서 양국 국기가 그려져 있다. 이 다리와 양국 국기는 다리 완성 후 2012년 1월에 팔라우 우편국에서 발매한 건설 1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 우표에도 그려져 있다. 2002년에는 일본 토목학회 다나카상을 수상했다.[5]
캐롤라인제도[편집]
캐롤라인제도(영어: Caroline Islands)는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을 이루는 태평양 서부의 제도이다. 2개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도로 정상부분이 산호층으로 이루어진 동쪽의 화산군과 습곡작용과 압력을 받아 대양 표면으로 솟아오는 지각층에 해당하는 동쪽의 섬들로 나누어진다. 캐롤라인 제도 동부는 2세기 이전에 사람들이 이미 정착했던 것으로 보이며, 서부의 여러 섬에는 7세기 무렵 중국의 무역상품들이 이곳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16세기에 이 제도를 방문했던 스페인의 항해가들은 그들의 왕인 카를로스 2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지만 19세기에 와서야 이곳을 스페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1898년의 미국-스페인 전쟁이 끝난 후 이 제도는 독일에게 넘어갔으며, 1914년 일본에게 점령되었고, 1919년 이후에는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으로서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일본에게 철저하게 방어되고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에게 점령되었고 1947년 미국의 관할권 아래 있는 국제연합(UN)의 전략적 신탁통치지역이 되었다. 1986년 신탁통치지역이 해제되었지만 지금도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은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캐롤라인 제도에는 매우 다양한 지형·문화·언어들이 공존한다. 서부의 섬들은 멜라네시아와 필리핀의 영향이 혼합되어 있고, 동부 섬들에서는 폴리네시아의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6]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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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바벨다오브섬〉, 《위키백과》
- 〈코로르-바벨다오브 다리〉, 《위키백과》
- 〈캐롤라인 제도〉, 《위키백과》
- 〈바벨다오브〉, 《요다위키》
- "Babeldaob", Wikipedia
- 〈바벨다오브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미크로네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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