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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령 군소제도]](United States Minor Outlying Islands)는 [[태평양]] 및 [[카리브해]]에 산재한 소규모의 미국령 [[섬]]들과 [[환초]]들을 아울러 이르기 위해 ISO 3166-1 표준에 등록된 지역명이다. [[나배사섬]], [[미드웨이 환초]], [[베이커섬]], [[웨이크섬]], [[자르비스섬]], [[존스턴 환초]], [[킹먼 환초]], [[팔미라 환초]], [[하울랜드섬]] 등 아홉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 정부는 카리브해의 바조노에보뱅크와 세라닐라뱅크도 미국령 군소 제도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주변 나라와 분쟁 중이다. 이중 팔미라 환초만이 미국의 공식 영토이다. 2008년 기준으로, 어떤 섬에도 정착해서 살고있는 사람은 없다. 과학적 구사적 이유로 잠시 거주하는 사람만이 일부 있다. 2000년 미국 인구 조사에는 존스턴 환초에는 315명, 웨이크섬에는 1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원주민도 1940년 인구 조사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1936년에는 베이커섬, 자르비스섬, 하울랜드섬 등이 식민지화되긴 했으나,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을 위해 모든 주민이 대피하고 무인도가 되었다. 통계의 편의를 위해 묶인 단위이며, 행정이나 문화, 정치적인 단위로 묶여 취급되지는 않는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A%B5%AD%EB%A0%B9_%EA%B5%B0%EC%86%8C_%EC%A0%9C%EB%8F%84 미국령 군소 제도]〉, 《위키백과》</ref> | [[미국령 군소제도]](United States Minor Outlying Islands)는 [[태평양]] 및 [[카리브해]]에 산재한 소규모의 미국령 [[섬]]들과 [[환초]]들을 아울러 이르기 위해 ISO 3166-1 표준에 등록된 지역명이다. [[나배사섬]], [[미드웨이 환초]], [[베이커섬]], [[웨이크섬]], [[자르비스섬]], [[존스턴 환초]], [[킹먼 환초]], [[팔미라 환초]], [[하울랜드섬]] 등 아홉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 정부는 카리브해의 바조노에보뱅크와 세라닐라뱅크도 미국령 군소 제도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주변 나라와 분쟁 중이다. 이중 팔미라 환초만이 미국의 공식 영토이다. 2008년 기준으로, 어떤 섬에도 정착해서 살고있는 사람은 없다. 과학적 구사적 이유로 잠시 거주하는 사람만이 일부 있다. 2000년 미국 인구 조사에는 존스턴 환초에는 315명, 웨이크섬에는 1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원주민도 1940년 인구 조사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1936년에는 베이커섬, 자르비스섬, 하울랜드섬 등이 식민지화되긴 했으나,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을 위해 모든 주민이 대피하고 무인도가 되었다. 통계의 편의를 위해 묶인 단위이며, 행정이나 문화, 정치적인 단위로 묶여 취급되지는 않는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A%B5%AD%EB%A0%B9_%EA%B5%B0%EC%86%8C_%EC%A0%9C%EB%8F%84 미국령 군소 제도]〉, 《위키백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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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랜드섬(Howland Island)은 미국령의 해외 영토로, 주민이 거주하지 않는 무인도 환초섬이다. 정확한 위치는 북쪽 적도 부근에 있는 태평양 중심에 있으며, 하와이주 주도 호놀룰루에서 남서쪽으로 3,100km 떨어진 곳에 있다. 하울랜드섬은 미국령 군소제도에 속한다.[1]
개요[편집]
하울랜드섬은 하와이와 오스트레일리아 중간에 있으며 가장 가까운 섬은 남쪽으로 68km 떨어진 베이커섬이다. 하울랜드섬은 남북으로 가늘고 긴, 가지 모양으로 길이 2.25km, 너비 0.89km, 면적은 2.6km²이다. 피닉스제도의 북서쪽에 있으며 미국 내무부 산하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에서 관리한다. 경제적 활동은 없으며 여성 비행사 어밀리아 에어하트가 세계일주 비행 여정 중 이 섬을 향해 비행하다가 실종된 어밀리아 에어하트 실종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섬의 중서부에 그녀의 이름을 딴 에어하트 라이트라는, 작은 등대와 유사한 역할을 하지만 등화는 없어 야간에는 볼 수 없는 주간 항로 표식이 있다. 2차 세계 대전 기간동안 일본군의 공격으로 파손되었으나 이후 다시 재건되었다. 사람이 거의 가지 않는 무인도다 보니 현재는 관리 미흡으로 페인트가 벗겨지고 금이 가는 등 상태는 좋지 못하다.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금지 팻말이 있으며 출입금지 안내문은 영어 외에 한국어와 두 가지 버전의 한자로 써 있다. 1856~90년에 걸쳐 구아노[海鳥糞]가 채취되었으며 1937년 이래 비행장이 건설되어 있으며 상주인구는 없다. 1937년 여성 조종사 어밀리아 에어하트와 그녀의 파트너 프레드 누난이 이 섬을 목적지로 정해 향해가다가 태평양 상공에서 실종되었다.[2]
역사[편집]
1822년경 포경선 낸터킷(Nantucket)의 조지 B 워스(George B. Worth) 선장은 하울랜드섬을 발견하고 워스 아일랜드(Worth Island)라고 불렀다. 미국 포경선 미네르바 스미스(Minerva Smith)의 대니얼 맥켄지는 워스(Daniel MacKenzie)가 1828년 이 섬을 도표로 만들고 1828년 12월 1일 그의 선주의 이름을 따서 이 섬의 이름을 명명했을 때 워스의 목격을 알지 못했다. 하울랜드섬은 마침내 1842년 9월 9일 지오 선장 밑에 있는 포경선 이사벨라호에서 본 망루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HMS 바운티의 윌리엄 블라이(William Bligh) 선장은 1789년 4월 반란군에 의해 표류된 직후 이 섬에 들렀다고 말했다. 그는 굴, 물, 새와 같은 영양분을 얻기 위해 섬을 샅샅이 뒤졌으며 18명의 선원들을 데리고 있었다. 블라이는 그 섬의 이름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지도 제작자들에게는 분명히 알려져 있었다. 블라이의 하울랜드섬에 대한 설명은 그가 배를 타고 통가와 토푸아 사이를 항해하기 시작했고 서쪽으로 티모르섬으로 직행했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 1856년 구아노 제도법에 따라 미국이 하울랜드섬을 점령했을 때 무인도였다. 그 섬은 수십 년 동안 항해의 위험으로 알려졌고 몇 척의 배가 그곳에서 난파되었다. 구아노 광상은 1857년부터 1878년 10월까지 미국 회사들에 의해 채굴되었다. 이사벨라호의 선장 테일러(Taylor)는 인도양에서 또 다른 구아노 섬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들은 두 섬에서 구아노의 혜택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1857년에 설립된 아메리카 구아노 회사(American Guano Company)의 일원이 된 조지와 매튜 하울랜드(Matthew Howland)가 포프 선장의 지휘 하에 루소호(Rousseau)를 타고 섬을 방문하기로 스테슨에게 약속하면서 다른 기업가들이 접근했다. 스테트슨(Stetson)은 1854년에 섬에 도착하여 그 섬을 새와 쥐가 많다고 묘사했다. 아메리카 구아노 회사는 1856년 미국 구아노 제도법에 따라 인정된 베이커섬(Baker Island)과 자르비스섬(Jarvis Island)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벤슨(Benson)은 미국 구아노 회사에 하울랜드섬에 관심을 보이려 했지만 회사 이사들은 이미 충분한 광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1857년 10월 회사는 벤슨의 아들 아서(Arthur)를 베이커섬과 자르비스섬에 보내 구아노 퇴적물을 조사하게 했다. 그는 또한 하울랜드섬을 방문해 구아노의 샘플을 채취했다. 벤슨은 아메리카 구아노 회사에서 사임하고 미국 구아노 회사를 설립하여 하울랜드섬의 구아노를 채굴하였고, 이 주장은 1856년 미국 구아노 제도법에 따라 인정되었다. 1859년 미국 구아노 회사가 구아노를 채굴하기 위해 자신들의 배를 파견했을 때 그들은 하울랜드섬이 이미 아메리카 구아노 회사에 의해 보내진 사람들에 의해 점령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과 두 회사는 1878년 10월 고갈될 때까지 구아노 광상을 채굴할 수 있게 되었다. 채굴 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하와이 출신을 포함한 태평양 주변에서 왔고, 하와이 노동자들은 하울랜드섬을 울루코우(Kou tree ground)라고 이름 붙였다. 19세기 후반에 이 섬에 대한 영국의 주장과 함께 채광 시도가 있었다. 영국 회사인 아룬델 앤 컴퍼니는 1886년부터 1891년까지 섬을 점령했다. 미국의 주권을 명확히 하기 위해 1936년 5월 13일 행정명령 7368이 발령되었다. 1937년 여성 조종사 어밀리아 에어하트와 그녀의 파트너 프레드 누난이 이 섬을 목적지로 정해 향해가다가 태평양 상공에서 실종되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군의 공습으로 식민지 개척자 리차드 카나니 왈리와 조셉 켈리하누이가 사망했다. 이번 공습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가마카이위 야전 3곳의 공습이 있은 지 하루 만에 이루어졌다. 이틀 후, 일본 잠수함의 포격으로 식민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그 후 몇 주 동안 폭격기 한 대가 두 번 돌아와 잔해 위에 더 많은 폭탄을 투하했다. 생존자 2명은 1942년 1월 31일 마침내 미 해군 구축함인 헬름함에 의해 대피되었다. 생존자 두 명 중 한 명인 토마스 베더만은 후에 1942년 3월 9일자 라이프에서 사건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하울랜드는 1943년 9월 미 해병대 대대에 의해 점령되었고 1944년 5월까지 하울랜드 해군 비행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1944년 이후 모든 주거 시도는 포기되었다. 1974년 6월 27일 하울랜드섬은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되었다.[3]
미국령 군소제도[편집]
미국령 군소제도(United States Minor Outlying Islands)는 태평양 및 카리브해에 산재한 소규모의 미국령 섬들과 환초들을 아울러 이르기 위해 ISO 3166-1 표준에 등록된 지역명이다. 나배사섬, 미드웨이 환초, 베이커섬, 웨이크섬, 자르비스섬, 존스턴 환초, 킹먼 환초, 팔미라 환초, 하울랜드섬 등 아홉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 정부는 카리브해의 바조노에보뱅크와 세라닐라뱅크도 미국령 군소 제도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주변 나라와 분쟁 중이다. 이중 팔미라 환초만이 미국의 공식 영토이다. 2008년 기준으로, 어떤 섬에도 정착해서 살고있는 사람은 없다. 과학적 구사적 이유로 잠시 거주하는 사람만이 일부 있다. 2000년 미국 인구 조사에는 존스턴 환초에는 315명, 웨이크섬에는 1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원주민도 1940년 인구 조사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1936년에는 베이커섬, 자르비스섬, 하울랜드섬 등이 식민지화되긴 했으나,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을 위해 모든 주민이 대피하고 무인도가 되었다. 통계의 편의를 위해 묶인 단위이며, 행정이나 문화, 정치적인 단위로 묶여 취급되지는 않는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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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미크로네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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