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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두츠'''(독일어: Vaduz [faˈdʊʦ])는 '''[[리히텐슈타인|리히텐슈타인]]'''의 수도이며 리히텐슈타인의 서쪽 중앙에 위치하며 도시의 서쪽 경계는 스위스와 국경을 이루는 라인강의 지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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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두츠'''(독일어: Vaduz [faˈdʊʦ])는 '''[[리히텐슈타인|리히텐슈타인]]'''의 수도이다. 파두츠는 리히텐슈타인의 서쪽 중앙에 위치하며 도시의 서쪽 경계는 스위스와 국경을 이루는 라인강의 지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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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7일 (일) 21:18 기준 최신판

파두츠 시기
파두츠 휘장
파두츠 전경
파두츠 성

파두츠(독일어: Vaduz [faˈdʊʦ])는 리히텐슈타인의 수도이다. 파두츠는 리히텐슈타인의 서쪽 중앙에 위치하며 도시의 서쪽 경계는 스위스와 국경을 이루는 라인강의 지류가 흐른다.

개요[편집]

역사[편집]

14세기 중반까지 파두츠는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던 베르덴베르그-파두츠 백작령(County of Werdenberg-Vaduz)의 일부에 불과하였다. 1342년 베르덴베르그-파두츠 백작령에서 분리되고, 1396년 신성로마제국의 제국직할령(Reichsunmittelbarkeit)이 되면서 파두츠는 새로운 백작령의 수도가 되었다. 1416년 백작의 후계를 이을 자손이 없게 되자 스위스 베른주의 에멘탈(Emmental) 지역의 브란디스 남작 가문에게 넘어갔다. 1499년 스위스 연방과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스위스 독립전쟁으로 불리는 슈바벤전쟁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기도 했다.

1507년에는 독일 남서부의 자치도시인 슐츠(Sulz) 공국이 파두츠-쉘렌베르그 공국을 사들였고, 1613년에는 다시 신성로마제국의 호헤넴스(Hohenems) 공작에게 매각되었다. 1684년 호헤넴스 가문이 파산하자 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드 1세(Leopold I, 1658~1705)는 쉘렌베르그와 파두츠 두 지역을 자신의 동생인 야곱 한니발(Count Jakob Hannibal) 공작에게 넘겨주었다. 한니발 공작은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오스트리아 남부에 위치한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후작령의 요한 아담(Johann Adam)에게 1699년에는 쉘렌베르크를, 1712년에는 파두츠 지역을 팔았다. 1719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6세(Charles VI, 재위 1711~1740)는 이를 승인하고 리히텐슈타인을 제국직할령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파두츠는 리히텐슈타인 제국직할령의 수도가 되었다. 군주는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안톤 플로리안(Anton Florian of Liechtenstein, 1656~1721)이 되었다.

파두츠가 리히텐슈타인 제국직할령의 수도가 되었지만, 정작 군주인 안톤 플로리안은 파두츠에 거주하지 않았고, 120년 동안 그의 후계자들도 파두츠를 방문하지도 않았다. 리히텐슈타인 왕실의 거주지는 가문의 영지가 있던 비엔나 근처 마리아 엔체르스도르프(Maria Enzersdorf)에 있는 리히텐슈타인 성이었다. 파두츠는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인구가 1,0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였다. 그마저도 인구의 반 이상은 주변의 농촌 지역에 거주해 상징적 수도에 불과했다.

1920년대 초반 복권 및 카지노 사업을 시작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한 기업법이 제정되자 외국의 기업과 은행들이 설립되기 시작하면서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1933년에는 새로운 시청이 건축되었지만 파두츠는 여전히 왕가의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파두츠에 왕가가 옮겨오고 명실상부한 수도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아돌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합병 이후였다. 히틀러가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귀족의 영지와 재산을 몰수하자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근거지를 파두츠 성으로 옮기게 되었다. 1950~1960년대 걸쳐 파두츠는 도시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재정비하였다. 1956년에는 인구가 3,000명을 넘어서게 되었고 1985년 9월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도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지리[편집]

리히텐슈타인의 서쪽 중앙에 위치하며 도시의 서쪽 경계는 스위스와 국경을 이루는 라인강의 지류가 흐른다. 동쪽은 알프스산맥 지류의 높은 산봉우리가 가로막고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추운 서안해양성기후를 보이며, 겨울보다 여름에 많은 비가 내린다. 연중 습도가 70% 이상으로 습한 편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947㎜ 정도이다. 겨울인 12월부터 2월 사이의 평균기온은 영하 1.4℃에서 영하 2.8℃ 사이로 추운 편이고, 6월부터 8월 사이 여름철 평균기온은 17℃에서 19℃로 시원하다. 가장 더운 날에도 25℃를 넘어가는 일이 없다.

행정[편집]

파두츠 시의회는 시장과 12명의 시의원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각각 4년의 임기 동안 두 차례의 직접 대중 선거를 통해 선출됩니다. 비례대표제에서는 시의회, 다수제에서는 시장. 시의회와 시장은 그들의 권한에 따라 시를 대표한다.

경제와 인구[편집]

파두츠의 인구는 약 5,700명에 불과하지만 8,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약 1,000여 개의 기업체에 고용되어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인근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서 통근하는 사람들이다. 파두츠 산업의 중심은 전체 일자리의 약 20%를 차지하는 금융업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이 적은 조세 천국으로 알려져 외국기업들의 페이퍼컴퍼니(paper company)들이 많이 설립되어 있다. 과거에는 조세피난처로도 알려져 리히텐슈타인에 비밀계좌를 두는 부자들이 많아 금융업이 각광받았다. 금융업 외 주요 산업은 관광업과 우표 발행 사업이다. 아름다운 산악 지형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고 여름에는 휴양과 하이킹 등을 즐기기 위한 여행객들이 찾아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이 고르게 방문한다.

1912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리히텐슈타인 우표는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우표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19세기 리히텐슈타인은 우편 시스템을 가지지 못해서 오스트리아의 우편 시스템을 이용하였는데, 오스트리아는 1818년 리히텐슈타인 남부 도시 발저스(Balzers)에 첫 우체국을 개설하였고, 1845년에는 파두츠에 두 번째 우체국을 개설하였다. 1852년 오스트리아와의 협약을 통해 자국 내에서 오스트리아 우편 시스템의 운영을 인정하였으나, 파두츠는 1912년부터 오스트리아와의 협정을 깨고 독자적으로 우표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우표 사업은 과거에는 리히텐슈타인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현재는 약 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농업 및 식료품 산업 등이 주요 산업이다.

인구 중 외국인이 40%를 넘을 정도로 외국인 비율이 높다. 이들은 대부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출신이고 비 유럽계 외국인은 튀르키예인이 가장 많다. 종교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지배적이지만 프로테스탄트교회와 이슬람교도 각각 10%와 8% 정도를 차지한다.

기타[편집]

파두츠에는 공항이나 철도역이 없어 버스나 승용차로만 접근할 수 있다. 공항은 약 120km 거리에 있는 스위스의 취리히공항을 이용해야 하고, 철도는 시에서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샨(Schaan)이라는 도시의 샨-파두츠 역을 이용한다. 샨-파두츠 역에 정차하는 기차도 인근 스위스의 부크스(Buchs) 역이나 오스트리아의 펠트키르히(Feldkirch) 역을 오가는 로컬선 뿐으로 자주 운행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위스의 부크스 역이나 오스트리아의 펠트키르히 역에서 내려 리히텐슈타인 버스 회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파두츠 시내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파두츠 시내 관광은 슈테틀(Stadtle) 거리를 따라 차례로 파두츠 시청, 예술박물관, 우표박물관, 국립박물관, 의회, 정부청사, 성 플로린 성당이 150m 거리 내에 위치해 있다. 관광의 핵심은 리히텐슈타인 군주의 공식 거주지인 파두츠 성(Schloss Vaduz)이다. 파두츠 성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불명확하지만, 12세기에 탑의 일부분이 지어졌다가 13세기 후반에 주거 용도로 보완되었다. 이후 파두츠를 소유한 여러 귀족의 소유가 되었다가 15세기 후반 슈바벤전쟁으로 성의 일부분이 불에 타 파괴된 후, 16세기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슐츠(Sulz) 백작 가문에 의해 확장·보수되었다. 1712년 리히텐슈타인 공작이 소유하게 되면서 오늘날 리히텐슈타인 왕실의 재산이 되었다. 20세기 초 복원 작업을 마치고 1939년부터 왕가의 공식 거주지가 되었다. 성 내부는 관광객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성의 전망대에서 파두츠 시내를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1930년에 설립된 우표박물관(Liechtenstein Postal Museum)에는 1912년부터 발행한 리히텐슈타인의 우표들뿐만 아니라 우편 업무에 사용되던 각종 집기들과 옛날 편지 배달 방식까지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쿤스트박물관(Liechtenstein Museum of Fine Arts)은 2000년 현대적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근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국립미술관이다. 특히 미술품 수집 애호가로 알려진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미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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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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